하마스의 유대인 학살과 네타냐후의 정보 오판은 두 강경 세력의 퇴장을 불러 두 개 국가 노선의 오슬로 정신으로 돌아가는 길을 열지 모른다.
“모든 하마스 조직원은 죽은 목숨이다. 그들은 소년 소녀들 머리를 쏘고, 태워 죽이고, 여성들은 강간 살해하고, 군인들을 참수했다.”(네타냐후)
“모든 하마스 조직원은 죽은 목숨이다. 그들은 소년 소녀들 머리를 쏘고, 태워 죽이고, 여성들은 강간 살해하고, 군인들을 참수했다.”(네타냐후)
- 10월 12일 이스라엘 남부에서 가자지구로 이스라엘 전차들이 이동하고 있다. 사진=AP/뉴시스
10월 11일 현재 하마스 테러 작전에 의한 이스라엘 측 사망자 약 1200명, 이 가운데 약 1000명은 민간인이고 나머지는 군인이다. 이스라엘군은 소탕 작전을 통해 이보다 많은 1500명의 테러분자들을 사살하고 가자지구를 폭격, 약 1000명을 죽였다. 그러나 네타냐후 총리의 표현대로 이는 시작일 뿐이다.
하마스 테러리스트의 만행이 드러나면서 히틀러가 벌인 홀로코스트 이후 가장 큰 유대인 학살 사건으로 부각되고 있다. 학살 장면이 하마스와 이스라엘 측이 찍은 영상으로 알려지면서 세계적 분노를 촉발시키고 있다.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 작전은 전쟁이 아니라 테러 진압으로 성격이 바뀌면서 행동에 상당한 자유를 갖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 국방장관도 이들을 “야만인으로 대할 것”이라고 선언, 통상적인 전투 규칙을 무시할 것임을 시사했다. 아랍 국가들도 하마스가 납치해간 150명 이상의 인질을 풀어줘야 한다는 세계 여론에 직면, 하마스를 돕는 카타르 등에 대한 압박을 가하고 나올 가능성도 있다.
이번 사건의 본질은 전투가 아니다. 전투는 목적이 일정한 지역을 점령하거나 상대방 군사력을 무력화(無力化)시키는 것인데 하마스는 이스라엘 민간인을 잔인하게 죽이고 많이 잡아가서 공포심을 확산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수백 평방킬로미터의 거주 공간을 무대로 수천 명의 테러분자들이 수십만 명의 주민들을 상대로 벌인 인간사냥이자 최대 규모의 자살테러였다(하마스 요원들도 대부분 사망).
이 영화 같은 장면들이 세계 역사상 처음으로 소셜미디어를 통하여 거의 실시간으로 생중계되다시피 했다. 여기서 하마스와 그 배후 세력인 이란의 치명적 판단 착오가 있다. 아무리 광신적(狂信的) 테러집단이라고 해도 여론을 거스르면서 일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세계인의 분노가 잘 조직된다면 중동(中東) 정세를 바꿀 것이다. 인간 본연의 원초적 분노는 네타냐후 정권에 작전상의 프리 핸드를 주는 측면이 있지만 정보 오판(誤判)으로 이 사태를 막지 못한 그에게 돌아갈 몫도 만만치 않다. 결국 하마스와 네타냐후가 이번 학살 사건으로 동반 몰락 내지 퇴장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팔레스타인 문제를 핵심으로 하는 중동사태에 돌파구를 마련할 수도 있다. 끔찍한 인명피해가 평화로 가는 길을 연다면 희생된 사람들의 목숨도 헛되진 않을 것이다.
주검들
1개 연대 규모의 하마스 테러리스트들은 가자지구를 둘러싼 장벽을 부수고 이스라엘 영토로 쏟아져 들어와 픽업트럭이나 오토바이(또는 패러글라이더)를 타고 이웃한 마을과 키부츠(집단농장), 음악행사장 등을 덮쳤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난사하고 수류탄을 던지고 불을 지르고 개까지 쏘아 죽이고, 죄인처럼 끌고 갔다. 이런 장면들을 하마스가 동영상으로 찍어 올린 것이다. 그들은 이단자들을 처단하는 지하드(聖戰)를 실천, 천당에 간다고 확신, 자랑삼아 그렇게 했겠지만 이런 동영상과 그들이 남기고 떠난 시신(屍身)들이 불러일으킬 분노의 힘을 계산하지 못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더구나 이들이 죽인 사람들 가운데는 미국·러시아·독일·프랑스·태국 등 외국인들도 많다. 이들 나라에서 하마스 동정론이 나올 수 있겠는가? 세계인의 분노는 하마스에 대하여 인질을 석방하라는 압력으로 작용할 것인데 그렇게 되면 잡아간 인질들이 인간방패가 아니라 부담이 될 것이다. 하마스를 지원하는 이란과 카타르도 한 발 빼려 할 것이다. 이런 만행을 세계에 알리는 데는 유대인들이 천재적 소양을 갖고 있다.
수천 명이 몰렸던 뮤직 페스티벌 현장에서 약 260구의 시신이 발견되고, 베리 키부츠에선 100구 이상의 시신, 닐 오즈 마을에선 더 많은 시신 등등, 수복지구에서 드러난 하마스의 만행은 가자 폭격 피해를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페이스북에 하마스 측이 올린 것으로 보이는 동영상엔 닐 오즈 마을에서 테러분자들이 시신을 향하여 확인 사살하는 장면도 있다. 다른 영상에선 테러분자가 냉장고를 열고 물을 마시더니 라이터를 켜 불을 지르고, 달려드는 개를 쏴 죽이는 장면이 나온다. 이들은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죽이고 그런 뒤 아이 목을 자르는가 하면 자신이 죽인 사람의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어 페이스북에 올리기도 했다. 대피소에 몰려 있는 민간인들을 향하여 수류탄을 던지고 지나가는 승용차를 향해선 집중사격, 울부짖는 부녀자와 노약자를 끌고 가는 장면의 핏자국과 비명 등이 이번엔 꼭 장사 지내야 할 하마스를 향한 곡소리로 들리기도 한다. 벤자민 네타냐후 총리는 전시(戰時) 내각 출범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모든 하마스 조직원은 죽은 목숨이다. 그들은 소년 소녀들 머리를 쏘고, 태워 죽이고, 여성들을 강간 살해하고, 군인들을 참수(斬首)했다.”
“이스라엘군 不敗의 권위에 구멍”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 10월 9일 보도에서, 이란의 혁명수비대 간부들이 하마스와 함께 석 달 동안 이스라엘 공격을 계획했고, 10월 2일 베이루트에서 작전 개시를 승인했다고 전했다. 하마스와 헤즈볼라의 고위 간부들로부터 얻은 정보라고 했다. 지난 8월부터 혁명수비대 간부들은 하마스와 함께 육해공 입체 공격을 준비해왔는데 베이루트에서 몇 차례 회의를 가져 작전계획을 다듬었다는 것이었다. 이 회의에는 혁명수비대 이외에 이란이 지원하는 하마스, 헤즈볼라 등 4개 무장단체 대표가 참석했다고 한다. 미국은 이란이 이번 공격의 배후란 정보는 아직 없다는 입장이지만, 유럽의 한 전문가와 시리아 정부 자문관은 이란의 관련성에 대하여 하마스와 헤즈볼라 고위 간부와 같은 증언을 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한편 하마스 고위 간부 마무드 미르다위는 “이 공격은 팔레스타인과 하마스의 결정사안이었다”고 했다. 이란의 유엔대표부 대변인은 ‘이란이 가자의 행동을 지지하긴 하지만 지시하진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스라엘 안보부서 간부들은 테헤란이 이스라엘인 학살에 책임이 있다는 것이 확인되면 이란 지도층을 타격하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혁명수비대의 전략은 이스라엘을 목 조를 수 있는 다방면의 위협요인을 조직하는 것”인데 하마스의 작전 성공은 이스라엘군이 가진 불패(不敗)의 권위에 구멍을 내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안보기구에 의구심을 갖도록 만들었다고 했다.
이 신문은, 이란이 최근 중동의 다른 문제는 젖혀놓고, 혁명수비대가 이스라엘에 적대적인 무력(武力)집단을 돕는 데 집중했었다고 전했다. 이스라엘 네타냐후 정권이 국내 갈등으로 고립되어 있다는 판단을 했을 것이라고도 했다. 미국이 중재하는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관계 정상화가 이란에 위협적이라고 여기고 이를 흔들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는 게 하마스, 헤즈볼라 간부들의 생각이었다.
이스라엘 포위망
이란의 지도를 받는 테러그룹들은 지난 8월 이후 이란 혁명수비대의 주도로 레바논에서 2주에 한 번 정도 모의를 지속했다. 헤즈볼라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 이슬람 지하드 지도자 알 낙할라, 그리고 살레 알 아로우리 하마스 군사 부문 지휘자가 참석했고 이란 외무장관도 두 번 동석했다. 전문가들은 이 정도 규모의 공격은 이란의 도움 없이는 이뤄질 수 없을 것이라고 본다.
이집트는 이스라엘에 대하여 만약 가자지구 안으로 군대를 투입하면 레바논에 주둔한 헤즈볼라의 개입을 불러 제2전선(戰線)을 만들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고 한다. 하마스는 자신들의 이스라엘 공격이 성공적이라고 보고 서안(西岸)지구 및 이스라엘에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인의 무장봉기를 선동하고 있다. 이란 측은 만약 이스라엘이 자신들을 공격하면 이란은 레바논, 예멘, 이란으로부터 미사일을 쏘고, 시리아의 이란 전사(戰士)들을 이스라엘의 북부와 동부 도시로 침투시킬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미국 CIA의 전(前) 테러부서 책임자는 과거 소련은 중동에서 반(反)이스라엘 세력의 최종 조력자로서 강경노선을 누그러뜨리는 역할을 해왔지만 이란은 다르다고 했다. “소련은 이스라엘을 영구적인 적으로 보지 않았지만 이란은 그렇게 본다”는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이란 입장에서 보면 이스라엘은 이란이 조종하는 무장집단에 포위되어 있다. 19개 수하 조직이 가자, 요르단강 서안, 레바논, 시리아에서 활동 중이다. 가자의 하마스와 이슬람 지하드, 레바논의 헤즈볼라 등은 이란의 혁명수비대로부터 돈, 훈련, 무기를 지원받는다. 이스라엘 국방부에 따르면 이란은 매년 1억 달러를 하마스에, 7억 달러를 헤즈볼라에, 수천만 달러를 이슬람 지하드에 제공한다. 하마스는 이란의 기술적 지원에 힘입어 무기를 자체적으로 생산한다. 가자 자치 지구는 거대한 테러기지라고 봐야 한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란과 핵 협상을 이어나가기 위하여 이란에 대한 현금 유입을 허용하기도 했다. 이란에 억류된 미국인 5명의 석방을 위하여 한국이 동결(凍結)시켰던 약 60억 달러의 석유대금을 이란이 찾아갈 수 있도록 한 것이 대표적 사례이다.
1970년대 팔레비 왕정 때는 이스라엘과 이란이 협조적이었는데 호메이니 혁명 이후 불구대천의 원수 관계로 바뀌었다.
이란과 이라크는 시아파가 다수(多數)인데 수니파 후세인 정권의 붕괴 이후 시아파 정권이 들어서 이라크도 이란의 영향권 아래에 있다. 중동에서 이란의 두 숙적(宿敵)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인데 두 나라가 관계 정상화를 위한 밀담을 하고 있다. 이란은 하마스를 시켜 이런 움직임을 견제하려고 이번 사태를 일으켰다는 게 거의 정설이다.
네타냐후의 정보 오판
《타임스 오브 이스라엘》은 이집트 정부 측에서 네타냐후 정부에 그동안 여러 차례 “가자에서 큰 사건이 터질 것이다,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이다”고 경고하였음에도 무시당했다고 보도했다. 네타냐후 정부엔 서안지구 정착민들 편을 드는 극우파(極右派)가 많고 이들은 지지자들의 희망에 따라 이곳의 소요사태를 진압하는 데 더 큰 신경을 써 가자지구 방어에는 소홀했다는 것이다. 네타냐후 정권이, 2개 국가 지향의 오슬로 합의를 반대하는 강경 세력에 영합하는 정책을 편 것이 정보 오판으로 이어져 기습을 허용했다는 이야기이다. 지난 7월 이스라엘군 1000명은 서안지구의 제닌 난민촌으로 진입, 팔레스타인 무장 세력 진압 작전을 벌였다. 팔레스타인 측은 10여 명이 죽고 80명이 다쳤다. 서안 지역의 이런 소란에 비하여 가자지구는 상대적으로 조용했던 것이 네타냐후를 속이기 위한 양동(陽動) 작전이었다는 말이 나온다.
10월 7일은 건국 이후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장 많이 죽은 날이 되었다. 이스라엘판 진주만 기습이었다. 하마스에 이런 기습을 허용한 책임은 고스란히 네타냐후 총리에게 돌아가게 생겼다. 그는 작년 연립정부를 구성하면서 극우파와 손을 잡았다. 그가 국가보안부 장관으로 임명한 사람은, 과거 서안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사람 수십 명을 학살한 유대인을 존경한다고 초상화를 걸어놓던 이였다. 네타냐후 정부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멸시하는 기조에서, 팔레스타인 자치기구가 관할하는 서안지구에 들어선(국제법상 불법) 유대인 정착촌을 보호하고 확대하는 정책을 지원했다.
올해 들어서는 수시로 서안 지역에 군대를 투입, 팔레스타인 난민촌을 공격, 많은 사상자를 내게 했다. 그만큼 가자엔 관심이 작아진 것이다. 자신에 대한 부패 수사를 가로막기 위한 ‘사법개혁’ 파동으로 정치적 기반이 약화된 네타냐후는 60만 명이 넘는 서안지구 유대인 정착민, 즉 자신의 표밭을 위한 서비스에 치중하는 사이에 정작 위험한 가자지구의 하마스에 대해선 소홀히 했다.
10억 달러를 들여 만든, 가자지구를 둘러싼 장벽이 하마스에 의하여 돌파된 가장 큰 원인은 여기 배치된 이스라엘 병력의 부족 때문이라고 한다. 네타냐후가 서안지구 유대인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병력을 빼간 것이다.
네타냐후는 상대적으로 온건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보다 강경한 하마스 편을 든다는 인상까지 주었다. 아마도 두 세력을 분열시켜 관리하려고 했던 모양이다. 그는 하마스를 경제적으로 지원하면 테러를 삼갈 것이란 오판도 했다. 하마스는 도발할 의지를 상실했다는 그의 자만심은 독이 되었다. 최고 권력자가 오만과 허영심을 같이 가지면 반드시 망한다. 지도자가 선입견을 가지고 정보를 정치적으로 판단하면 아무리 좋은 정보가 쌓여도 소용이 없다. 푸틴이 우크라이나에 대하여 한 실수를 네타냐후는 하마스에 대하여 한 셈이다.
군·정보기관 출신들, 네타냐후의 사법개혁 반대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 작전을 재정적으로, 기술적으로, 군사적으로 지원해온 이란은 네타냐후가 이스라엘 국론(國論)을 분열시키는 것을 보고 공격의 기회를 잡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네타냐후는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된 상태에서 대법원의 권한을 축소시키는 이른바 사법개혁을 추진하다가 온건·세속(世俗) 세력의 격렬한 반대를 불렀다. 반(反)정부 시위엔 예비군이 많이 참여했다. 특히 모사드 등 정보기관 출신들이 많았다고 한다. 이들은 “이스라엘 군대가 지키려는 나라는 민주국가이지 독재국가가 아니다”는 생각이었다. 네타냐후 정권이 예비군 동원령을 내리면 응하지 않겠다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였다. 군대를 뒤흔든 이런 국론 분열은 이스라엘 건국 역사상 처음이었다. 국방장관조차 사법개혁 추진을 보류해달라고 공개 성명을 냈을 정도다. 군대와 안보부서의 이런 불만이 이번 정보 오판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지는, 진상조사를 통하여 드러날 것이다.
일이 터지자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표변, 하마스를 IS 같은 흉악무도한 테러집단으로 분류, “앞으로 며칠 동안 우리가 우리의 적들에게 취할 행동은 세대를 이어서 그들을 뒤흔들게 될 것이다”고 연설했다. 네타냐후는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곧 가자지구로 진입할 것임을 통보하고 “중동에선 약하게 보이면 안 된다. 달리 도리가 없다”고 했다는 미확인 보도도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국방장관은 가자지구의 완전봉쇄를 명령했다. 물·음식·전기·연료의 반입을 금지시켰다.
네타냐후의 선동과 라빈 암살
네타냐후는 특공대 장교 출신이다. 그의 형은 1976년 라빈 총리가 지휘한 엔테베 인질 구출 작전의 현장 지휘자였다. 이 작전은 영화처럼 성공했는데 유일한 사망자는 특공대장 요나단 네타냐후였다. 이스라엘 사람들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인 요나단의 후광으로 그의 동생이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네타냐후는 라빈과 페레스와 아라파트가 추진한 오슬로 합의의 평화 정책을 반대하는 데 앞장서 강경파의 대표 인물로 부각되었고 라빈 암살 이후 총리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1995년 11월 초 라빈 총리 암살 직전 규탄 집회가 있었는데 네타냐후는 모의 장례식을 한다면서 관(棺)과 교수형용 밧줄을 등장시켰다. 시위대는 “라빈에게 죽음을!”이라고 외쳤다. 당시 국내 보안 책임자는 네타냐후에게 암살 음모 첩보가 있다면서 자제를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암살이 실제로 일어나자 네타냐후가 라빈 암살을 부추겼다는 비판을 받았다.
암살범 이갈 아미르는 라빈이 서안지구와 가자지구를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돌려주는 것은 유대교적 배신이라고 단정, 그를 죽이는 것은 종교적 의무라고 여겼던 확신범(確信犯)이었다. 이런 유의 생각이 라빈 암살 이후 근 한 세대 동안 이스라엘을 지배하니 팔레스타인 측의 반발도 거세졌다. 적대적 공생(共生)관계가 형성된 것이다.
그 네타냐후가 이번에 하마스를 끝장내겠다고 한다. 성공할지 모른다. 동시에 그마저 이스라엘 국민들의 지탄을 받아 물러난다면 양쪽 극단 세력의 동시 퇴장으로, 라빈 사망 이후 정체된 오슬로 합의 정신, 즉 ‘두 개 국가 정책’이 부활할 수도 있을 것이다.
누가 누구를 끝장내나?
국민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네타냐후는 초강경책을 쓰지 않을 수 없다. 하마스를 군사적으로 끝장낸다는 자세다. 무장단체로서의 기능을 영구 정지시키겠다는 기세다. 그렇게 하려면 가자지구로 진입, 수많은 땅굴을 다 찾아내고 테러리스트 간부들을 모조리 죽여야 한다. 하마스는 민간인과 인질들을 인간방패로 삼아 도시 게릴라 전투를 벌일 터인데 아무리 막강한 이스라엘 정규군이라도 이를 감당할 수 있을까? 이긴다 해도 인명 손실에 따른 여론 악화를 견딜 수 있을까?
하마스를 끝장내려면 정치적으로 뿌리 뽑아야 한다. 즉 가자지구를 장기간 점령, 이들의 정치적 영향력까지 말살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러려면 병력이 많이 필요하다. 2003년 이라크 후세인 정권을 간단히 무너뜨린 미군이 이라크 점령 정책에 실패, 늪에 빠졌던 그 교훈을 이스라엘군은 소화했을까?
하마스는 납치해간 150명 이상의 인질을 인간방패나 이스라엘에 억류된 팔레스타인 죄수들과의 교환용으로 쓸 것이다. 질라드 샬리트란 병사가 2006년 가자지구 침공 작전 때 하마스의 인질로 잡혔다. 이스라엘은 5년 뒤 감옥에 있던 팔레스타인 죄수 1000여 명을 풀어주고 그를 송환받았다. 풀려난 사람들 중엔 종신형(終身刑)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던 중죄인도 다수 있었다. 하마스 대공세의 중요한 목표가 이런 인간사냥이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하마스의 만행이 만천하에 드러나 국제 여론이 악화될 경우 하마스 측에 부담이 될 가능성이 있다.
가자지구는 세계에서 가장 큰 야외 감옥이란 말을 듣기도 한다. 230만 명의 절망적 생활고(生活苦)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이런 조건에선 테러리스트의 출현이나 하마스의 부활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중동의 친미(親美) 성향 부자나라들로 하여금 가자지구 발전에 돈을 쓰게 하는 일종의 마셜 플랜 같은 것을 추진하려면 이스라엘보다는 미국의 역할이 결정적이다.
엄청난 인명 손실을 부른 이번 사태로 하마스와 네타냐후의 퇴장 또는 약화는 피할 수 없게 되었다. 하마스는 네타냐후가 끝장내고 네타냐후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끝장낸 뒤에는 어떤 길이 열릴 것인가, 그 대답엔 정치적 상상력이 필요할 것이다.
정체성을 둘러싼 이스라엘의 딜레마
이스라엘은 한국처럼 1948년에 건국했지만 아직도 국가의 정체성(正體性)을 확정하지 못한 상태이다. 민주국가냐, 유대국가냐이다. 민주국가를 지향한다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유대인처럼 동등하게 대우하든지 독립을 허용, 2국가로 가야 한다. 유대국가이기를 원한다면 지금처럼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차별하는 비(非)민주국가로 있어야 한다. 이번 하마스 사태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이런 정체성 문제에 어떤 방향이 제시될지 모른다. 히브리대학의 역사과 유발 노아 하라리 교수는 《워싱턴포스트》 기고문에서 네타냐후의 포퓰리즘을 비판하면서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현 정부에 책임을 묻고, 포퓰리즘과 음모론과 메시아적 환상을 버리고, 정직하게 이스라엘의 건국정신인 민주주의와 세계평화를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하마스 테러리스트의 만행이 드러나면서 히틀러가 벌인 홀로코스트 이후 가장 큰 유대인 학살 사건으로 부각되고 있다. 학살 장면이 하마스와 이스라엘 측이 찍은 영상으로 알려지면서 세계적 분노를 촉발시키고 있다.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 작전은 전쟁이 아니라 테러 진압으로 성격이 바뀌면서 행동에 상당한 자유를 갖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 국방장관도 이들을 “야만인으로 대할 것”이라고 선언, 통상적인 전투 규칙을 무시할 것임을 시사했다. 아랍 국가들도 하마스가 납치해간 150명 이상의 인질을 풀어줘야 한다는 세계 여론에 직면, 하마스를 돕는 카타르 등에 대한 압박을 가하고 나올 가능성도 있다.
이번 사건의 본질은 전투가 아니다. 전투는 목적이 일정한 지역을 점령하거나 상대방 군사력을 무력화(無力化)시키는 것인데 하마스는 이스라엘 민간인을 잔인하게 죽이고 많이 잡아가서 공포심을 확산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수백 평방킬로미터의 거주 공간을 무대로 수천 명의 테러분자들이 수십만 명의 주민들을 상대로 벌인 인간사냥이자 최대 규모의 자살테러였다(하마스 요원들도 대부분 사망).
이 영화 같은 장면들이 세계 역사상 처음으로 소셜미디어를 통하여 거의 실시간으로 생중계되다시피 했다. 여기서 하마스와 그 배후 세력인 이란의 치명적 판단 착오가 있다. 아무리 광신적(狂信的) 테러집단이라고 해도 여론을 거스르면서 일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세계인의 분노가 잘 조직된다면 중동(中東) 정세를 바꿀 것이다. 인간 본연의 원초적 분노는 네타냐후 정권에 작전상의 프리 핸드를 주는 측면이 있지만 정보 오판(誤判)으로 이 사태를 막지 못한 그에게 돌아갈 몫도 만만치 않다. 결국 하마스와 네타냐후가 이번 학살 사건으로 동반 몰락 내지 퇴장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팔레스타인 문제를 핵심으로 하는 중동사태에 돌파구를 마련할 수도 있다. 끔찍한 인명피해가 평화로 가는 길을 연다면 희생된 사람들의 목숨도 헛되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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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2일 이스라엘 크파르 아자에서 이스라엘 군인들이 하마스의 습격으로 숨진 희생자의 시신을 옮기고 있다. 사진=AP/뉴시스 |
더구나 이들이 죽인 사람들 가운데는 미국·러시아·독일·프랑스·태국 등 외국인들도 많다. 이들 나라에서 하마스 동정론이 나올 수 있겠는가? 세계인의 분노는 하마스에 대하여 인질을 석방하라는 압력으로 작용할 것인데 그렇게 되면 잡아간 인질들이 인간방패가 아니라 부담이 될 것이다. 하마스를 지원하는 이란과 카타르도 한 발 빼려 할 것이다. 이런 만행을 세계에 알리는 데는 유대인들이 천재적 소양을 갖고 있다.
수천 명이 몰렸던 뮤직 페스티벌 현장에서 약 260구의 시신이 발견되고, 베리 키부츠에선 100구 이상의 시신, 닐 오즈 마을에선 더 많은 시신 등등, 수복지구에서 드러난 하마스의 만행은 가자 폭격 피해를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페이스북에 하마스 측이 올린 것으로 보이는 동영상엔 닐 오즈 마을에서 테러분자들이 시신을 향하여 확인 사살하는 장면도 있다. 다른 영상에선 테러분자가 냉장고를 열고 물을 마시더니 라이터를 켜 불을 지르고, 달려드는 개를 쏴 죽이는 장면이 나온다. 이들은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죽이고 그런 뒤 아이 목을 자르는가 하면 자신이 죽인 사람의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어 페이스북에 올리기도 했다. 대피소에 몰려 있는 민간인들을 향하여 수류탄을 던지고 지나가는 승용차를 향해선 집중사격, 울부짖는 부녀자와 노약자를 끌고 가는 장면의 핏자국과 비명 등이 이번엔 꼭 장사 지내야 할 하마스를 향한 곡소리로 들리기도 한다. 벤자민 네타냐후 총리는 전시(戰時) 내각 출범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모든 하마스 조직원은 죽은 목숨이다. 그들은 소년 소녀들 머리를 쏘고, 태워 죽이고, 여성들을 강간 살해하고, 군인들을 참수(斬首)했다.”
“이스라엘군 不敗의 권위에 구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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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은 이란 혁명수비대가 배후조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9월 22일 아야톨라 호메이니의 성지에서 퍼레이드를 벌이는 이란 혁명수비대. 사진=AP/뉴시스 |
한편 하마스 고위 간부 마무드 미르다위는 “이 공격은 팔레스타인과 하마스의 결정사안이었다”고 했다. 이란의 유엔대표부 대변인은 ‘이란이 가자의 행동을 지지하긴 하지만 지시하진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스라엘 안보부서 간부들은 테헤란이 이스라엘인 학살에 책임이 있다는 것이 확인되면 이란 지도층을 타격하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혁명수비대의 전략은 이스라엘을 목 조를 수 있는 다방면의 위협요인을 조직하는 것”인데 하마스의 작전 성공은 이스라엘군이 가진 불패(不敗)의 권위에 구멍을 내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안보기구에 의구심을 갖도록 만들었다고 했다.
이 신문은, 이란이 최근 중동의 다른 문제는 젖혀놓고, 혁명수비대가 이스라엘에 적대적인 무력(武力)집단을 돕는 데 집중했었다고 전했다. 이스라엘 네타냐후 정권이 국내 갈등으로 고립되어 있다는 판단을 했을 것이라고도 했다. 미국이 중재하는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관계 정상화가 이란에 위협적이라고 여기고 이를 흔들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는 게 하마스, 헤즈볼라 간부들의 생각이었다.
이스라엘 포위망
이란의 지도를 받는 테러그룹들은 지난 8월 이후 이란 혁명수비대의 주도로 레바논에서 2주에 한 번 정도 모의를 지속했다. 헤즈볼라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 이슬람 지하드 지도자 알 낙할라, 그리고 살레 알 아로우리 하마스 군사 부문 지휘자가 참석했고 이란 외무장관도 두 번 동석했다. 전문가들은 이 정도 규모의 공격은 이란의 도움 없이는 이뤄질 수 없을 것이라고 본다.
이집트는 이스라엘에 대하여 만약 가자지구 안으로 군대를 투입하면 레바논에 주둔한 헤즈볼라의 개입을 불러 제2전선(戰線)을 만들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고 한다. 하마스는 자신들의 이스라엘 공격이 성공적이라고 보고 서안(西岸)지구 및 이스라엘에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인의 무장봉기를 선동하고 있다. 이란 측은 만약 이스라엘이 자신들을 공격하면 이란은 레바논, 예멘, 이란으로부터 미사일을 쏘고, 시리아의 이란 전사(戰士)들을 이스라엘의 북부와 동부 도시로 침투시킬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미국 CIA의 전(前) 테러부서 책임자는 과거 소련은 중동에서 반(反)이스라엘 세력의 최종 조력자로서 강경노선을 누그러뜨리는 역할을 해왔지만 이란은 다르다고 했다. “소련은 이스라엘을 영구적인 적으로 보지 않았지만 이란은 그렇게 본다”는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이란 입장에서 보면 이스라엘은 이란이 조종하는 무장집단에 포위되어 있다. 19개 수하 조직이 가자, 요르단강 서안, 레바논, 시리아에서 활동 중이다. 가자의 하마스와 이슬람 지하드, 레바논의 헤즈볼라 등은 이란의 혁명수비대로부터 돈, 훈련, 무기를 지원받는다. 이스라엘 국방부에 따르면 이란은 매년 1억 달러를 하마스에, 7억 달러를 헤즈볼라에, 수천만 달러를 이슬람 지하드에 제공한다. 하마스는 이란의 기술적 지원에 힘입어 무기를 자체적으로 생산한다. 가자 자치 지구는 거대한 테러기지라고 봐야 한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란과 핵 협상을 이어나가기 위하여 이란에 대한 현금 유입을 허용하기도 했다. 이란에 억류된 미국인 5명의 석방을 위하여 한국이 동결(凍結)시켰던 약 60억 달러의 석유대금을 이란이 찾아갈 수 있도록 한 것이 대표적 사례이다.
1970년대 팔레비 왕정 때는 이스라엘과 이란이 협조적이었는데 호메이니 혁명 이후 불구대천의 원수 관계로 바뀌었다.
이란과 이라크는 시아파가 다수(多數)인데 수니파 후세인 정권의 붕괴 이후 시아파 정권이 들어서 이라크도 이란의 영향권 아래에 있다. 중동에서 이란의 두 숙적(宿敵)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인데 두 나라가 관계 정상화를 위한 밀담을 하고 있다. 이란은 하마스를 시켜 이런 움직임을 견제하려고 이번 사태를 일으켰다는 게 거의 정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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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사진=퍼블릭 도메인 |
10월 7일은 건국 이후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장 많이 죽은 날이 되었다. 이스라엘판 진주만 기습이었다. 하마스에 이런 기습을 허용한 책임은 고스란히 네타냐후 총리에게 돌아가게 생겼다. 그는 작년 연립정부를 구성하면서 극우파와 손을 잡았다. 그가 국가보안부 장관으로 임명한 사람은, 과거 서안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사람 수십 명을 학살한 유대인을 존경한다고 초상화를 걸어놓던 이였다. 네타냐후 정부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멸시하는 기조에서, 팔레스타인 자치기구가 관할하는 서안지구에 들어선(국제법상 불법) 유대인 정착촌을 보호하고 확대하는 정책을 지원했다.
올해 들어서는 수시로 서안 지역에 군대를 투입, 팔레스타인 난민촌을 공격, 많은 사상자를 내게 했다. 그만큼 가자엔 관심이 작아진 것이다. 자신에 대한 부패 수사를 가로막기 위한 ‘사법개혁’ 파동으로 정치적 기반이 약화된 네타냐후는 60만 명이 넘는 서안지구 유대인 정착민, 즉 자신의 표밭을 위한 서비스에 치중하는 사이에 정작 위험한 가자지구의 하마스에 대해선 소홀히 했다.
10억 달러를 들여 만든, 가자지구를 둘러싼 장벽이 하마스에 의하여 돌파된 가장 큰 원인은 여기 배치된 이스라엘 병력의 부족 때문이라고 한다. 네타냐후가 서안지구 유대인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병력을 빼간 것이다.
네타냐후는 상대적으로 온건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보다 강경한 하마스 편을 든다는 인상까지 주었다. 아마도 두 세력을 분열시켜 관리하려고 했던 모양이다. 그는 하마스를 경제적으로 지원하면 테러를 삼갈 것이란 오판도 했다. 하마스는 도발할 의지를 상실했다는 그의 자만심은 독이 되었다. 최고 권력자가 오만과 허영심을 같이 가지면 반드시 망한다. 지도자가 선입견을 가지고 정보를 정치적으로 판단하면 아무리 좋은 정보가 쌓여도 소용이 없다. 푸틴이 우크라이나에 대하여 한 실수를 네타냐후는 하마스에 대하여 한 셈이다.
군·정보기관 출신들, 네타냐후의 사법개혁 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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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2월 9일 텔아비브에서는 예비군들이 도로를 막고 국기를 흔들며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사법개혁’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사진=AP/뉴시스 |
네타냐후는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된 상태에서 대법원의 권한을 축소시키는 이른바 사법개혁을 추진하다가 온건·세속(世俗) 세력의 격렬한 반대를 불렀다. 반(反)정부 시위엔 예비군이 많이 참여했다. 특히 모사드 등 정보기관 출신들이 많았다고 한다. 이들은 “이스라엘 군대가 지키려는 나라는 민주국가이지 독재국가가 아니다”는 생각이었다. 네타냐후 정권이 예비군 동원령을 내리면 응하지 않겠다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였다. 군대를 뒤흔든 이런 국론 분열은 이스라엘 건국 역사상 처음이었다. 국방장관조차 사법개혁 추진을 보류해달라고 공개 성명을 냈을 정도다. 군대와 안보부서의 이런 불만이 이번 정보 오판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지는, 진상조사를 통하여 드러날 것이다.
일이 터지자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표변, 하마스를 IS 같은 흉악무도한 테러집단으로 분류, “앞으로 며칠 동안 우리가 우리의 적들에게 취할 행동은 세대를 이어서 그들을 뒤흔들게 될 것이다”고 연설했다. 네타냐후는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곧 가자지구로 진입할 것임을 통보하고 “중동에선 약하게 보이면 안 된다. 달리 도리가 없다”고 했다는 미확인 보도도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국방장관은 가자지구의 완전봉쇄를 명령했다. 물·음식·전기·연료의 반입을 금지시켰다.
네타냐후의 선동과 라빈 암살
네타냐후는 특공대 장교 출신이다. 그의 형은 1976년 라빈 총리가 지휘한 엔테베 인질 구출 작전의 현장 지휘자였다. 이 작전은 영화처럼 성공했는데 유일한 사망자는 특공대장 요나단 네타냐후였다. 이스라엘 사람들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인 요나단의 후광으로 그의 동생이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네타냐후는 라빈과 페레스와 아라파트가 추진한 오슬로 합의의 평화 정책을 반대하는 데 앞장서 강경파의 대표 인물로 부각되었고 라빈 암살 이후 총리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1995년 11월 초 라빈 총리 암살 직전 규탄 집회가 있었는데 네타냐후는 모의 장례식을 한다면서 관(棺)과 교수형용 밧줄을 등장시켰다. 시위대는 “라빈에게 죽음을!”이라고 외쳤다. 당시 국내 보안 책임자는 네타냐후에게 암살 음모 첩보가 있다면서 자제를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암살이 실제로 일어나자 네타냐후가 라빈 암살을 부추겼다는 비판을 받았다.
암살범 이갈 아미르는 라빈이 서안지구와 가자지구를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돌려주는 것은 유대교적 배신이라고 단정, 그를 죽이는 것은 종교적 의무라고 여겼던 확신범(確信犯)이었다. 이런 유의 생각이 라빈 암살 이후 근 한 세대 동안 이스라엘을 지배하니 팔레스타인 측의 반발도 거세졌다. 적대적 공생(共生)관계가 형성된 것이다.
그 네타냐후가 이번에 하마스를 끝장내겠다고 한다. 성공할지 모른다. 동시에 그마저 이스라엘 국민들의 지탄을 받아 물러난다면 양쪽 극단 세력의 동시 퇴장으로, 라빈 사망 이후 정체된 오슬로 합의 정신, 즉 ‘두 개 국가 정책’이 부활할 수도 있을 것이다.
누가 누구를 끝장내나?
국민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네타냐후는 초강경책을 쓰지 않을 수 없다. 하마스를 군사적으로 끝장낸다는 자세다. 무장단체로서의 기능을 영구 정지시키겠다는 기세다. 그렇게 하려면 가자지구로 진입, 수많은 땅굴을 다 찾아내고 테러리스트 간부들을 모조리 죽여야 한다. 하마스는 민간인과 인질들을 인간방패로 삼아 도시 게릴라 전투를 벌일 터인데 아무리 막강한 이스라엘 정규군이라도 이를 감당할 수 있을까? 이긴다 해도 인명 손실에 따른 여론 악화를 견딜 수 있을까?
하마스를 끝장내려면 정치적으로 뿌리 뽑아야 한다. 즉 가자지구를 장기간 점령, 이들의 정치적 영향력까지 말살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러려면 병력이 많이 필요하다. 2003년 이라크 후세인 정권을 간단히 무너뜨린 미군이 이라크 점령 정책에 실패, 늪에 빠졌던 그 교훈을 이스라엘군은 소화했을까?
하마스는 납치해간 150명 이상의 인질을 인간방패나 이스라엘에 억류된 팔레스타인 죄수들과의 교환용으로 쓸 것이다. 질라드 샬리트란 병사가 2006년 가자지구 침공 작전 때 하마스의 인질로 잡혔다. 이스라엘은 5년 뒤 감옥에 있던 팔레스타인 죄수 1000여 명을 풀어주고 그를 송환받았다. 풀려난 사람들 중엔 종신형(終身刑)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던 중죄인도 다수 있었다. 하마스 대공세의 중요한 목표가 이런 인간사냥이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하마스의 만행이 만천하에 드러나 국제 여론이 악화될 경우 하마스 측에 부담이 될 가능성이 있다.
가자지구는 세계에서 가장 큰 야외 감옥이란 말을 듣기도 한다. 230만 명의 절망적 생활고(生活苦)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이런 조건에선 테러리스트의 출현이나 하마스의 부활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중동의 친미(親美) 성향 부자나라들로 하여금 가자지구 발전에 돈을 쓰게 하는 일종의 마셜 플랜 같은 것을 추진하려면 이스라엘보다는 미국의 역할이 결정적이다.
엄청난 인명 손실을 부른 이번 사태로 하마스와 네타냐후의 퇴장 또는 약화는 피할 수 없게 되었다. 하마스는 네타냐후가 끝장내고 네타냐후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끝장낸 뒤에는 어떤 길이 열릴 것인가, 그 대답엔 정치적 상상력이 필요할 것이다.
정체성을 둘러싼 이스라엘의 딜레마
이스라엘은 한국처럼 1948년에 건국했지만 아직도 국가의 정체성(正體性)을 확정하지 못한 상태이다. 민주국가냐, 유대국가냐이다. 민주국가를 지향한다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유대인처럼 동등하게 대우하든지 독립을 허용, 2국가로 가야 한다. 유대국가이기를 원한다면 지금처럼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차별하는 비(非)민주국가로 있어야 한다. 이번 하마스 사태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이런 정체성 문제에 어떤 방향이 제시될지 모른다. 히브리대학의 역사과 유발 노아 하라리 교수는 《워싱턴포스트》 기고문에서 네타냐후의 포퓰리즘을 비판하면서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현 정부에 책임을 묻고, 포퓰리즘과 음모론과 메시아적 환상을 버리고, 정직하게 이스라엘의 건국정신인 민주주의와 세계평화를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가자지구
연간 7만t의 곡물 생산이 줄어든 셈이다. 이스라엘은 해안에서 어업 하는 행위도 제한한다. 영공·영해권은 이스라엘 관할이다. 외부의 큰 병원에 가려면 이스라엘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바깥으로 나갈 수 있다. 급수는 하루 6~8시간이고 쓰레기나 분뇨처리 시설도 부족하다. 80%는 외부 지원으로 먹고살고 95%는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없다. 실업률은 약 50%이다. 약 2만 명이 이스라엘에서 직장에 다닌다. 25세 이하가 약 65%인 가장 젊은 도시이기도 하다. 젊은층 실업률은 75%. 학교는 275개가 있는데 대피소로도 쓰인다. 국제사회는 요르단 서안의 파타 정권을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정통 정부로 인정하고 가자지구를 그 일부로 보지만 가자에 대한 실효적 지배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이다. 팔레스타인을 대표하는 두 세력이 서로 경쟁하여 문제 해결이 어렵다. 가자지구와 이집트 접경지대 지하엔 땅굴이 많다. 2007~2013년 사이엔 이런 땅굴이 1532개나 있었다. 땅굴을 통한 사람, 물자, 특히 기름, 무기, 건축자재의 왕래는 막기 힘들다.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데 쓰였던 무기도 상당 부분 이 땅굴을 통하여 들여왔을 것이다. 10여 년 전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공격하였을 때 6000개의 건물이 부서졌는데 이스라엘이 반입을 허용하는 물자의 양을 따랐다면 재건하는 데 80년이 걸렸을 것이다. 실제론 5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땅굴 덕분이었다. 팔레스타인 국가 유엔에선 국가로 인정받지 못하지만 아랍권에서는 인정받는 애매한 존재가 ‘팔레스타인 국가(State of Palestine)’다. 수도는 예루살렘으로 되어 있다. 아랍연맹, 유네스코, 국제사법재판소, IOC의 회원이다. 유엔에서는 ‘비회원 옵서버 국가’ 대우를 받는다. 팔레스타인이 관할권을 주장하는 지역은 요르단 서안, 예루살렘, 가자지구다. 현재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이 수도로 삼아 통치하고, 서안지구는 1967년 이후 군사적으로 점령한 상태에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당국(Palestine National Authority)과 함께 분할 관리하고 있다. 가자지구는 팔레스타인 당국을 주도하는 파타 세력이 선거에서 하마스에 패배, 관할권이 넘어가는 바람에 힘이 미치지 않는다. 팔레스타인이 영토라고 주장하는 지역의 인구는 523만 명이다. 서안 지역은 면적이 충북보다 약간 작은 5640㎢이고, 인구는 약 340만 명인데 이 중 67만 명은 이스라엘 정착민이다. 이스라엘 정착민의 운명을 두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격돌, 무력충돌이 끊이지 않는다. 유엔안보리는 결의에서 서안 지역에 대한 이스라엘 지배를 인정하지 않고 불법점거로 본다. 이 결의 때 미국은 기권했다. 1993년 이스라엘과 PLO(팔레스타인 해방기구)는 서안 및 가자 지역에서 팔레스타인의 자치에 합의하고 두 개 국가로 가는 방향을 잡았으나, 1995년의 라빈 수상 암살로 동력을 잃고 네타냐후로 대표되는 강경파가 득세하고 팔레스타인 안에서 이스라엘을 인정하지 않는 하마스 등 무장 세력의 반발, 이에 따른 팔레스타인 당국의 지도력 약화, 이란의 개입 등으로 길을 잃은 상태이다. 이런 갈등의 바탕에는 공동의 유일신을 믿는 유대교와 이슬람의 교리 차이가 있다. 정치적으론 이스라엘의 국가적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이란, 하마스, 헤즈볼라, 이슬람 지하드 등과 팔레스타인의 국가적 기능을 부인하는 이스라엘 내의 극단 세력이 적대적 공생관계를 이루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