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선공작’ 의혹 김만배, 박영수에 이재용 구속 무마 청탁 정황… 무산되자 사이 틀어져
⊙ 삼성, 이재용과 김만배 연관성 없어
⊙ “김만배가 남욱 대장동 사업권 빼앗아… 둘이 엄청 싸우자 특검님(박영수)이 중재”(녹취록 중에서)
⊙ “金, ‘자기가 잘되면 아파트 한 채 주겠다’는 둥 목이 가면 갈수록 뻣뻣해져”
⊙ “아직도 이재명 대통령 돼야 자신의 은닉 자금 쓸 수 있다는 희망 가진 듯”(대장동 사업가)
⊙ 대선 전 “이재명은 대통령 되지”라고 확신한 김만배
⊙ 삼성, 이재용과 김만배 연관성 없어
⊙ “김만배가 남욱 대장동 사업권 빼앗아… 둘이 엄청 싸우자 특검님(박영수)이 중재”(녹취록 중에서)
⊙ “金, ‘자기가 잘되면 아파트 한 채 주겠다’는 둥 목이 가면 갈수록 뻣뻣해져”
⊙ “아직도 이재명 대통령 돼야 자신의 은닉 자금 쓸 수 있다는 희망 가진 듯”(대장동 사업가)
⊙ 대선 전 “이재명은 대통령 되지”라고 확신한 김만배
- 사진=뉴시스
김만배(화천대유 대주주)씨가 ‘대선 개입 여론조작’을 시도한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김씨가 과거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당시는 부회장·이하 회장으로 표기)의 특검 수사에도 개입하려 한 정황이 포착됐다.
기자는 김만배씨가 박영수 특검(편의상 특검으로 표기)을 통해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 뇌물공여와 위증 혐의, 특가법상 횡령 혐의로 구속 위기에 처해 있었던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구속영장 청구를 막으려 한 정황이 담긴 녹취를 확보했다. 이 녹취는 특검에 파견된 적 있는 박영수 전 특검과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A 변호사와 그의 지인이 통화한 것이다.
둘의 전화 통화는 2021년 9월 30일 이뤄졌다. 당시는 대장동 민간업자들로부터 50억원을 약속받았다는 이른바 ‘50억 클럽’ 의혹이 제기되는 등 대장동 비리 관련 보도가 쏟아지던 시기다.
“이재용 구속영장 발부되면 내 손에 장 지진다”(김만배)
녹취 일부를 살펴보자.
〈A 변호사: (김만배가 남욱으로부터 대장동 사업권 주도권을 뺏은 뒤) 어떻게 하는 줄 아세요? 얼마나 거들먹거리고 다니면서 나한테 자기가 잘되면 아파트는 한 채 주겠다는 둥 목이 가면 갈수록 뻣뻣해지더라고. 그러더니 특검 들어가 있는데 특검님한테 ××××(욕설) 한 거야. 이재용이 구속영장을 친다고.
지인: 아.
A 변호사: 나한테 나한테는 뭐라고 한 줄 아세요? 삼성을 건드리면 어떻게 하냐? 저기 뭐야. 이재용이 구속영장이 발부되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 내가 그랬어요. 장 지져야겠다고.
지인: 왜 자기가 나서서 삼성을…
A 변호사: 그러니까. 지가 또 잘 안다고 삼성 쪽하고 뭐 해가지고 와서 또 청탁 집어넣으려고 해본 거지. 특검님과의 친분 이용해서. 근데 먹혔겠어? 그렇게 해서 그 ×××× 한 다음부터는 특검이 김만배하고 연락도 안 했어요.〉
김만배 청탁 일축한 박영수
김씨가 박영수 특검에게 이재용 구속 무마 청탁을 한 시기는 2016년 12월 21일~2017년 1월 16일 중으로 추정할 수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6년 11월 30일 박영수 변호사를 특검으로 임명했다. 다만 본격 수사는 2016년 12월 21일 현판식과 함께 시작했다. 검찰 특수본 수사 결과를 뛰어넘는 성과를 내야 했던 특검은 삼성 뇌물 수사에 집중했다. 20여 일 동안 특검팀 수사는 사실상 ‘최순실 특검’이 아니라 ‘삼성 특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최씨의 국정농단과 박근혜 전 대통령을 둘러싼 의혹에 대해선 2016년 가을 검찰 특별수사본부가 대부분 수사를 마쳤다. 검찰은 이를 토대로 최씨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정호성 전 비서관 등을 구속기소했고, 박 대통령도 이 사건의 공범(共犯)으로 입건했다. 국회의 박 대통령 탄핵안 가결에서도 검찰의 수사 결과가 결정적인 근거로 인용됐다.
검찰 수사에서도 박 전 대통령에게 제3자 뇌물죄, 삼성 등에는 뇌물 공여 혐의 적용을 검토했지만, 결국엔 대기업들은 박 전 대통령과 최씨의 ‘협박·강요’에 따라 어쩔 수 없는 돈을 낸 ‘피해자’로 판단했다.
특검팀은 검찰 수사에서 빠져 있던 박 전 대통령과 삼성, 그리고 최씨 모녀(母女) 지원 사이의 고리를 찾는 데 집중했다.
특검팀은 2017년 1월 12일 이 회장을 소환해 22시간 동안 조사했다. 소환 당일만 해도 특검팀 대변인인 이규철 특검보는 “증거가 나오면 조사와 기소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공언했다. 특검팀 주변에선 곧바로 이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할 것이란 얘기가 나왔다. 특검팀은 1월 16일 이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김만배씨가 박영수 전 특검에게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구속영장 청구를 막기 위해 연락 등을 한 시기를 2016년 12월 21일~2017년 1월 16일 중으로 특정한 이유다. 박 특검은 김만배씨의 청탁을 귓등으로도 안 들은 것이다.
다만 1월 19일 서울지법은 이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관련자 조사를 포함한 수사 진행 경과가 미흡하다”는 게 이유였다. 사실 이 회장에 대한 특검의 구속영장 청구는 무리한 점이 없지 않았다. 이 회장에 대해 뇌물 공여 혐의를 적용하는 건 무리라는 지적은 줄곧 있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삼성과 특별한 연관이 없는 김만배씨가 박영수 특검에게 이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라 마라며 수사에 개입할 권한은 전혀 없었다.
특검은 2월 13일 이 회장을 재소환했다. 그러고 바로 다음 날인 14일 구속영장을 재청구했다. 첫 번째 구속영장을 청구한 지 26일 만이었다. 영장 재청구에 대해 특검의 의지라는 시각도 있고 무리한 오기 수사라는 지적도 나왔다. 17일 이 회장이 전격 구속됐다. 삼성그룹 총수가 구속되는 것은 창사 79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녹음대로라면 김만배씨는 자신의 손에 장을 지져야 한다.
대선 국면 바꿀 능력 없다는 김만배의 말 사실일까?
녹취를 통해 확인한 김만배씨의 대담함을 보면 그가 자신이 연관된 두 가지 사건에 대한 해명이 거짓일 가능성이 크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첫 번째는 최근 정국을 강타 중인 ‘대선 개입 여론조작 사건’에 대해서다.
‘대선 개입 여론조작 사건’의 내용은 간단하다.
김씨는 2021년 9월 15일 신학림 전 언론노조 위원장과 인터뷰를 했고, 신씨는 인터뷰 편집본을 자신이 전문위원으로 있는 ‘뉴스타파’를 통해 대선 사흘 전인 2022년 3월 6일 공개했다. ‘윤 대통령이 2011년 부산저축은행 사건의 주임 검사 시절 대장동 대출 브로커 조우형(천화동인 6호 실소유주)씨의 수사를 무마해줬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신씨가 그 인터뷰 직후 김씨에게 1억6500만원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인터뷰 사전 기획’ 의혹이 제기됐다. 이에 뉴스타파는 이날 뒤늦게 ‘김만배 인터뷰’ 녹취파일 전체를 공개했다. 김만배씨와 교감설을 부인하는 차원이었다.
그럼에도 ‘인터뷰 기획 보도’ 의혹은 사그라지지 않았는데, 2022년 3월 뉴스타파 보도에서 윤 대통령이 수사 무마와 관련 없다는 부분은 빠져 있다는 지적 때문이다. 가령, 신씨가 김씨에게 “(조우형이) 윤석열하고 (커피를) 마시고 온 거야?”라고 묻자 김씨가 “아니”라고 답한 부분이 당시 보도에는 반영되지 않았다. “(검사가 아니라) 직원이 (커피를) 타줬다”는 답변도 있다. 대신 김씨가 신씨에게 말한 “윤석열이 ‘니가 조우형이야?’ 이러면서” 등의 대목은 당시 보도에 포함됐다.
게다가 신학림씨의 ‘김만배 인터뷰’는 2022년 3월 6일 보도됐는데도 2021년 10월부터 민주당과 일부 언론이 그 핵심 내용을 다루기 시작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김만배·신학림 허위 인터뷰’를 대선 사흘 전 보도한 뉴스타파 등을 겨냥해 “극단적 편향 언론이 반박할 기회가 없게 하려고 투표 며칠 전에 조직적으로 허위 뉴스를 퍼뜨렸다면, 그리고 그것이 특정 후보를 밀려는 의도였다면, 당연히 중대 범죄가 될 것”이라고 했다.
2023년 9월 7일 구속 기간 만료로 석방된 김씨는 구치소를 나오며 기자들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았다.
“인터뷰로 대선 국면을 바꾸려는 의도가 있었냐?”
이에 김씨는 “제가 그렇게 능력 있는 사람은 아니다”고 답했다.
능력이 없는 사람이 박영수 특검에게 대놓고 이재용 회장의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말라는 제안을 거친 언어를 쓰면서까지 할 수 있었을까. 본지가 입수한 ‘과거 박영수 특검의 수사에 개입하려 한 정황이 담긴 녹취록’ 속에서 제3자가 서술한 김만배씨만 보면 인터뷰로 대선 국면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있어 보인다.
권순일 통한 이재명 재판거래 의혹 해명도 거짓일 수 있어
두 번째는 권순일 전 대법관을 통한 이재명 재판거래 의혹이다.
권 전 대법관은 2020년 7월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선거법 위반 사건에 대한 대법원 무죄판결을 주도하고 퇴직 후 대장동 개발 회사인 화천대유 고문으로 가 ‘재판거래’ 의혹을 받는 당사자다.
선거법 위반 사건은 이 대표의 정치 생명과 직결된 것이었다. 이 대표는 경기도지사 선거 토론에서 친형의 정신병원 강제 입원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 허위사실 공표로 항소심에서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대법원이 이 사건을 무죄 취지로 파기 환송하면서 지난 대선에 출마할 수 있었다. 사실상 ‘TV 토론에선 거짓말을 해도 된다’는 선례를 만든 판결이었다. 당시 대법관 중 가장 선임이던 권순일 대법관은 유무죄 의견이 5대 5로 갈린 상황에서 무죄 의견을 내 판결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그 무렵 화천대유 소유주 김만배씨는 권 전 대법관을 8차례나 찾아가 만났다.
8차례 중에는 이 대표 사건이 대법원에 회부되기 일주일 전(2020년 6월 9일), 회부 다음 날(6월 16일), 파기환송 선고 다음 날(7월 17일)도 포함됐다.
이후 퇴임한 권 전 대법관은 2020년 11월 김만배씨가 대주주인 화천대유의 고문으로 취업해 총 1억5000만원을 고문료로 받다가 ‘대장동 의혹’이 터지자 그만뒀다.
남욱 변호사는 “김만배(화천대유 대주주)씨가 ‘이 대표의 선거법 위반 사건을 권순일(당시 대법관)에게 부탁해 대법원에서 뒤집히도록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고 검찰에서 진술했다.
이 의혹과 관련 김만배씨는 “편의상 ‘권순일 대법관 방문’이라고 쓰고 실제론 대법원 구내 이발소를 갔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대법원 내규대로라면, “편의상 대법관 이름을 적고 이발소를 갔다”는 해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와 관련 판사 출신인 국민의힘 전주혜 의원은 “김만배씨의 거짓말이 드러난 것”이라며 “권순일 전 대법관이 김만배씨와 약속을 하고 만난 것이라면, 무슨 목적으로 만났겠는가. 이재명 지사의 생환 로비가 그 목적임이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고 했다.
김씨는 세간의 이목이 쏠린 특검에게도 거리낌 없이 자신의 요구를 했던 사람이다. 과연 권순일 이름을 쓰고 대법원 구내 이발소를 갔다는 그의 해명은 사실일까.
권 전 대법관은 소위 50억 클럽에도 이름을 올렸다. ‘50억 클럽’ 의혹 당사자 중 권 전 대법관에 대한 수사가 가장 부진하다. 재판거래 의혹이 사실이라면 사법부 문을 닫아야 할 엄중한 사안이다. 한 법조인은 “권 전 대법관은 김만배씨에게 돈을 받은 사실이 나왔기 때문에 검찰이 수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김만배가 남욱 대장동 사업권 빼앗아(녹취 中)
사건 초기 중심인물은 김씨의 의도대로 유동규 전 성남도개공 본부장이었다.
김씨는 신학림씨와 허위 인터뷰를 한 이후 조우형씨에게 “이 형(김만배)이 아주 엉뚱한 방향으로 사건을 끌고 갈 것이니 너는 그냥 모른 척하고 있으면 된다”고 말했다고 한다. 또 조씨에게 “이재명을 끌어들이면 안 된다. 유동규(전 성남도시개발공사 본부장)의 개인 일탈로 몰고 가야 되니 인터뷰 요청이 오면 너도 그런 취지로 이야기하라”고 했다. 그런데 녹취에 따르면 김만배씨는 대장동 중심인물이다. 김씨가 원래 사업권을 가지고 있던 남욱 변호사를 밀어냈다는 것이다.
녹취에서 박 특검의 후배 변호사 A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남욱이가 중간에 구속[남 변호사는 2009년 하반기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대장동 개발사업을 공영으로 추진하자 이를 민영으로 바꿔달라는 청탁과 함께 8억3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2015년 구속기소됐지만, 무죄를 선고받았다]이 됐었잖아. 이 사이에 김만배가 얘 사업(대장동)을 홀라당 주도권을 뺏어버린 거야. 남욱이하고 둘이(남욱과 김만배) 엄청 싸웠어. 특검님이 중간에서 중재를 좀 해주신 거예요. 둘 다 잘 아는 놈들인데, 욕심 그만 내고 적절히 분배해서 나눌 거 나누고 하라고. 그래서 (박영수 특검이) 고문(화천대유)을 하게 된 것이고.”
남욱 변호사는 검찰에 대장동 사업 과정에 자신의 지분이 줄어든 배경에 대해 당시 성남시장이었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몫이 반영됐기 때문이라고 진술했다.
남 변호사는 자신의 배당 지분이 최종적으로 25%까지 줄어든 것에 대한 검찰 질문에 “김씨가 ‘내 지분도 12.5%밖에 안 된다, 실제로 49% 지분 중 37.4%는 이재명 시장 측 지분이라 내가 갖는 게 아니다’라면서 ‘네가 25%를 가져도 민간사업자 중 비중이 크니 받아들이라’고 했다”고 밝혔다.
김만배가 유독 박 특검 관련 진술만 자세히 한 까닭
김만배씨가 사업의 중심인 만큼 소위 대장동의 ‘그분’을 밝혀내기 위해서는 그의 진술이 필수다. 그런데 지금까지 김씨의 진술을 보면 선택적이란 지적이다. 대부분 조사를 받을 땐 자신에게 유리한 진술을 한다. 죄를 떠넘기기도 한다. 그러나 김씨의 경우는 그 정도가 ‘도’를 넘어선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박영수 특검에 대한 진술이 대표적이다. 김씨는 유동규 전 본부장, 남욱 변호사의 “대장동 그분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란 증언을 부인하면서도 박 특검의 범죄 행위 의혹에 대해서는 유독 자세히 말했다.
실제 검찰이 지난 6월 26일 박영수 전 특별검사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며 ‘200억원 약정’ 혐의를 적용한 데에는 김만배씨의 진술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한다.
박 특검은 우리은행 이사회 의장이던 2014년 11~12월 남욱 변호사(천화동인 4호 소유주) 등에게 “성남의뜰 컨소시엄에 우리은행이 참여하거나 여신(與信) 의향서를 발급해달라”는 청탁을 받으면서 200억원 상당을 대가로 약정받은 혐의 등을 받고 있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김만배씨는 검찰 조사에서 “2015년 1월쯤 남욱 변호사에게 대장동 사업 주도권을 넘겨받을 때 남 변호사가 ‘박 전 특검에게 200억원을 줘야 한다’며 관련 내용을 인수인계해줬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그 무렵 남 변호사가 다른 사건으로 검찰 수사를 받게 되자, 김씨는 ‘남 변호사가 사업을 계속하면 이재명 성남시장이 대장동 민간사업자로 선정해주지 않을 것’이라고 압박해 사업 주도권을 남 변호사에게서 넘겨받았다. 이때 남 변호사가 자신이 박 특검에게 약정한 200억원도 김씨가 지급해야 한다고 했다는 것이다.
김만배씨는 박 특검이 2014년 말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선거 자금 명목으로 현금 3억원을 남욱씨에게 받았다는 혐의에 대해서도 “당시 남 변호사에게서 박 특검에게 3억원을 전달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검찰에 진술했다고 한다.
한 법조인은 “대장동과 관련해 김씨는 다른 사람만 처벌되는 부분을 주로 진술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200억원 약정’과 ‘3억원 수수’가 모두 박 전 특검과 남욱 변호사 간에 이뤄진 것으로 본다면 이에 대해 김씨가 법적으로 직접 책임질 일은 없게 된다.
녹취 속 내용을 보면 박 특검과 김씨 두 사람의 관계는 김만배씨가 박 특검에게 이재용 회장 구속영장 미청구 요구를 한 후 금이 갔다.
남욱 변호사와의 관계도 김씨가 사실상 사업권을 뺏어가면서 ‘원수’와 다름없는 사이가 됐다. 김씨의 진술이 사실이 아닌 ‘감정’을 앞세운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물론 ‘감정’을 앞세운 진술이더라도 사실이라면 박영수 특검 등은 그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박 전 특검은 지난 8월 3일 구속됐다. 대장동 민간업자들에게 19억원을 수수하고 200억원 상당의 금품을 받기로 한 혐의다. 검찰은 지난 6월 30일 박 전 특검에 대한 첫 구속영장을 기각당한 뒤 보완 수사를 거쳐 다시 영장을 청구해 이날 발부받았다.
김만배의 이재명 방탄 이유
하지만 김씨의 진술 또는 주장이 특정인을 감싸기 위해 죄 없는 사람에게 덮어씌우기 위한 조작 성격이 강하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정영학 녹취록 속 대화 내용만 봐도 김씨가 검찰수사와 재판에서 어떤 성격의 진술을 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기자가 여러 번 보도했듯 김씨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대통령이 될 것으로 예상했고, 그렇게 되길 바랐다.
《월간조선》이 대선 기간 정영학 녹취록을 입수해, 그대로 공개한 단독 기사가 다시 주목받는 까닭이기도 하다. 2020년 3월 24일 정영학 녹취록을 보면 정영학 회계사(천화동인 5호 소유주)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지지율 추이를 묻자 김만배씨는 이렇게 답한다.
“이재명은 대통령 되지.”
7개월 후인 10월 26일에도 김만배씨는 정 회계사가 “요즘 이 지사(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여론조사도…”라고 묻자 “아니, 아니, 그런데 내 입장에서는 미스터 리(이재명 후보)가 이게(대통령 지칭한 듯) 돼”라고 답한다.
김씨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는 ‘님’자를 붙여 존대했지만 윤석열 대통령에 대해서는 윤석열이라 하대했다.
2020년 3월 24일 정영학 녹취록에 따르면 김만배씨는 정영학 회계사에게 “영학이, 나중에 이재명 님 청와대 가면은”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과 관련한 이야기를 할 때는 윤석열이라고 한다. “내가 가진 카드면 윤석열은 죽어”가 대표적이다.
차기 이재명 희망 아직도 못 버렸나?
검찰은 김만배씨와 신학림 전 언론노조 위원장의 이른바 ‘허위 인터뷰’ 의혹과 관련해, 특별수사팀을 구성했다. 이 수사를 계기로 김씨가 지금껏 해왔던 진술에 대해서도 다시 검증해볼 필요가 있다는 게 대체적인 견해다. 그래야 재판부도 객관적 판결을 내릴 수 있고, 진실이 밝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뉴스타파가 공개한 김씨와 신학림 전 언론노조 위원장의 2021년 9월 15일 대화 전문을 보면 김씨는 일관되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대장동 일당’의 연관성을 부인하며 “이 대표는 모른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신 전 위원장이 “이 사람(남욱씨·정영학씨 등 민간업자)들이 자기(김씨) 모르게 이재명하고 연관돼 있을 가능성이 제로는 아니잖아?”라고 묻자 김씨는 “아니, 이재명은 모르지”라고 한다.
김만배씨는 또 “얘네들이 도시개발공사에 돈 주고 그런 거 나는 (통제) 못 하는 거지”라면서 “이재명이도 책임은 없는 거고”라고 했다.
지금 김씨와 이재명 대표의 최측근 정진상 전 민주당 정무조정실장, 김용 전 민주연구원장 등을 제외하고 이런 주장을 하는 사건 관련자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대장동 사업가들은 “김씨는 아직도 이재명 대표가 차기 대통령이 되면 자신이 은닉한 돈을 쓸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는 것 같다”고 했다. 김씨는 수사 과정에서 은닉 자금이 들통나기도 하고, 관련자들에게 회유하는 듯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왜 김씨는 대장동 사건의 실체가 드러나면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에게 불리할 것으로 우려했을까. 진실은 멀리 있지 않아 보인다.⊙
기자는 김만배씨가 박영수 특검(편의상 특검으로 표기)을 통해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 뇌물공여와 위증 혐의, 특가법상 횡령 혐의로 구속 위기에 처해 있었던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구속영장 청구를 막으려 한 정황이 담긴 녹취를 확보했다. 이 녹취는 특검에 파견된 적 있는 박영수 전 특검과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A 변호사와 그의 지인이 통화한 것이다.
둘의 전화 통화는 2021년 9월 30일 이뤄졌다. 당시는 대장동 민간업자들로부터 50억원을 약속받았다는 이른바 ‘50억 클럽’ 의혹이 제기되는 등 대장동 비리 관련 보도가 쏟아지던 시기다.
“이재용 구속영장 발부되면 내 손에 장 지진다”(김만배)
녹취 일부를 살펴보자.
〈A 변호사: (김만배가 남욱으로부터 대장동 사업권 주도권을 뺏은 뒤) 어떻게 하는 줄 아세요? 얼마나 거들먹거리고 다니면서 나한테 자기가 잘되면 아파트는 한 채 주겠다는 둥 목이 가면 갈수록 뻣뻣해지더라고. 그러더니 특검 들어가 있는데 특검님한테 ××××(욕설) 한 거야. 이재용이 구속영장을 친다고.
지인: 아.
A 변호사: 나한테 나한테는 뭐라고 한 줄 아세요? 삼성을 건드리면 어떻게 하냐? 저기 뭐야. 이재용이 구속영장이 발부되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 내가 그랬어요. 장 지져야겠다고.
지인: 왜 자기가 나서서 삼성을…
A 변호사: 그러니까. 지가 또 잘 안다고 삼성 쪽하고 뭐 해가지고 와서 또 청탁 집어넣으려고 해본 거지. 특검님과의 친분 이용해서. 근데 먹혔겠어? 그렇게 해서 그 ×××× 한 다음부터는 특검이 김만배하고 연락도 안 했어요.〉
김만배 청탁 일축한 박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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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조선》은 김만배씨가 박영수 특검을 통해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 뇌물공여와 위증 혐의, 특가법상 횡령 혐의로 구속 위기에 처해 있었던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당시는 부회장)의 구속영장 청구를 막으려 한 정황을 보여주는 녹취를 확보했다. 2017년 2월 26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서울 강남구 대치동 특별검사 사무실로 소환되고 있다. 사진=뉴시스 |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6년 11월 30일 박영수 변호사를 특검으로 임명했다. 다만 본격 수사는 2016년 12월 21일 현판식과 함께 시작했다. 검찰 특수본 수사 결과를 뛰어넘는 성과를 내야 했던 특검은 삼성 뇌물 수사에 집중했다. 20여 일 동안 특검팀 수사는 사실상 ‘최순실 특검’이 아니라 ‘삼성 특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최씨의 국정농단과 박근혜 전 대통령을 둘러싼 의혹에 대해선 2016년 가을 검찰 특별수사본부가 대부분 수사를 마쳤다. 검찰은 이를 토대로 최씨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정호성 전 비서관 등을 구속기소했고, 박 대통령도 이 사건의 공범(共犯)으로 입건했다. 국회의 박 대통령 탄핵안 가결에서도 검찰의 수사 결과가 결정적인 근거로 인용됐다.
검찰 수사에서도 박 전 대통령에게 제3자 뇌물죄, 삼성 등에는 뇌물 공여 혐의 적용을 검토했지만, 결국엔 대기업들은 박 전 대통령과 최씨의 ‘협박·강요’에 따라 어쩔 수 없는 돈을 낸 ‘피해자’로 판단했다.
특검팀은 검찰 수사에서 빠져 있던 박 전 대통령과 삼성, 그리고 최씨 모녀(母女) 지원 사이의 고리를 찾는 데 집중했다.
특검팀은 2017년 1월 12일 이 회장을 소환해 22시간 동안 조사했다. 소환 당일만 해도 특검팀 대변인인 이규철 특검보는 “증거가 나오면 조사와 기소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공언했다. 특검팀 주변에선 곧바로 이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할 것이란 얘기가 나왔다. 특검팀은 1월 16일 이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김만배씨가 박영수 전 특검에게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구속영장 청구를 막기 위해 연락 등을 한 시기를 2016년 12월 21일~2017년 1월 16일 중으로 특정한 이유다. 박 특검은 김만배씨의 청탁을 귓등으로도 안 들은 것이다.
다만 1월 19일 서울지법은 이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관련자 조사를 포함한 수사 진행 경과가 미흡하다”는 게 이유였다. 사실 이 회장에 대한 특검의 구속영장 청구는 무리한 점이 없지 않았다. 이 회장에 대해 뇌물 공여 혐의를 적용하는 건 무리라는 지적은 줄곧 있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삼성과 특별한 연관이 없는 김만배씨가 박영수 특검에게 이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라 마라며 수사에 개입할 권한은 전혀 없었다.
특검은 2월 13일 이 회장을 재소환했다. 그러고 바로 다음 날인 14일 구속영장을 재청구했다. 첫 번째 구속영장을 청구한 지 26일 만이었다. 영장 재청구에 대해 특검의 의지라는 시각도 있고 무리한 오기 수사라는 지적도 나왔다. 17일 이 회장이 전격 구속됐다. 삼성그룹 총수가 구속되는 것은 창사 79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녹음대로라면 김만배씨는 자신의 손에 장을 지져야 한다.
대선 국면 바꿀 능력 없다는 김만배의 말 사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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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배(화천대유 대주주)씨는 ‘대선 개입 여론조작 사건’의 배후로 지목됐다. 사진=유튜브 캡처 |
첫 번째는 최근 정국을 강타 중인 ‘대선 개입 여론조작 사건’에 대해서다.
‘대선 개입 여론조작 사건’의 내용은 간단하다.
김씨는 2021년 9월 15일 신학림 전 언론노조 위원장과 인터뷰를 했고, 신씨는 인터뷰 편집본을 자신이 전문위원으로 있는 ‘뉴스타파’를 통해 대선 사흘 전인 2022년 3월 6일 공개했다. ‘윤 대통령이 2011년 부산저축은행 사건의 주임 검사 시절 대장동 대출 브로커 조우형(천화동인 6호 실소유주)씨의 수사를 무마해줬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신씨가 그 인터뷰 직후 김씨에게 1억6500만원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인터뷰 사전 기획’ 의혹이 제기됐다. 이에 뉴스타파는 이날 뒤늦게 ‘김만배 인터뷰’ 녹취파일 전체를 공개했다. 김만배씨와 교감설을 부인하는 차원이었다.
그럼에도 ‘인터뷰 기획 보도’ 의혹은 사그라지지 않았는데, 2022년 3월 뉴스타파 보도에서 윤 대통령이 수사 무마와 관련 없다는 부분은 빠져 있다는 지적 때문이다. 가령, 신씨가 김씨에게 “(조우형이) 윤석열하고 (커피를) 마시고 온 거야?”라고 묻자 김씨가 “아니”라고 답한 부분이 당시 보도에는 반영되지 않았다. “(검사가 아니라) 직원이 (커피를) 타줬다”는 답변도 있다. 대신 김씨가 신씨에게 말한 “윤석열이 ‘니가 조우형이야?’ 이러면서” 등의 대목은 당시 보도에 포함됐다.
게다가 신학림씨의 ‘김만배 인터뷰’는 2022년 3월 6일 보도됐는데도 2021년 10월부터 민주당과 일부 언론이 그 핵심 내용을 다루기 시작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김만배·신학림 허위 인터뷰’를 대선 사흘 전 보도한 뉴스타파 등을 겨냥해 “극단적 편향 언론이 반박할 기회가 없게 하려고 투표 며칠 전에 조직적으로 허위 뉴스를 퍼뜨렸다면, 그리고 그것이 특정 후보를 밀려는 의도였다면, 당연히 중대 범죄가 될 것”이라고 했다.
2023년 9월 7일 구속 기간 만료로 석방된 김씨는 구치소를 나오며 기자들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았다.
“인터뷰로 대선 국면을 바꾸려는 의도가 있었냐?”
이에 김씨는 “제가 그렇게 능력 있는 사람은 아니다”고 답했다.
능력이 없는 사람이 박영수 특검에게 대놓고 이재용 회장의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말라는 제안을 거친 언어를 쓰면서까지 할 수 있었을까. 본지가 입수한 ‘과거 박영수 특검의 수사에 개입하려 한 정황이 담긴 녹취록’ 속에서 제3자가 서술한 김만배씨만 보면 인터뷰로 대선 국면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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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취를 통해 확인한 김만배씨의 대범함을 보면 김만배의 권순일 전 대법관을 통한 이재명 재판거래 의혹에 대한 해명은 거짓일 가능성이 크다. 2020년 12월 22일 문재인 전 대통령이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퇴임 대법관 훈장 수여식’에 참석해 권순일 전 대법관에게 청조근정훈장을 수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권 전 대법관은 2020년 7월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선거법 위반 사건에 대한 대법원 무죄판결을 주도하고 퇴직 후 대장동 개발 회사인 화천대유 고문으로 가 ‘재판거래’ 의혹을 받는 당사자다.
선거법 위반 사건은 이 대표의 정치 생명과 직결된 것이었다. 이 대표는 경기도지사 선거 토론에서 친형의 정신병원 강제 입원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 허위사실 공표로 항소심에서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대법원이 이 사건을 무죄 취지로 파기 환송하면서 지난 대선에 출마할 수 있었다. 사실상 ‘TV 토론에선 거짓말을 해도 된다’는 선례를 만든 판결이었다. 당시 대법관 중 가장 선임이던 권순일 대법관은 유무죄 의견이 5대 5로 갈린 상황에서 무죄 의견을 내 판결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그 무렵 화천대유 소유주 김만배씨는 권 전 대법관을 8차례나 찾아가 만났다.
8차례 중에는 이 대표 사건이 대법원에 회부되기 일주일 전(2020년 6월 9일), 회부 다음 날(6월 16일), 파기환송 선고 다음 날(7월 17일)도 포함됐다.
이후 퇴임한 권 전 대법관은 2020년 11월 김만배씨가 대주주인 화천대유의 고문으로 취업해 총 1억5000만원을 고문료로 받다가 ‘대장동 의혹’이 터지자 그만뒀다.
남욱 변호사는 “김만배(화천대유 대주주)씨가 ‘이 대표의 선거법 위반 사건을 권순일(당시 대법관)에게 부탁해 대법원에서 뒤집히도록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고 검찰에서 진술했다.
이 의혹과 관련 김만배씨는 “편의상 ‘권순일 대법관 방문’이라고 쓰고 실제론 대법원 구내 이발소를 갔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대법원 내규대로라면, “편의상 대법관 이름을 적고 이발소를 갔다”는 해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와 관련 판사 출신인 국민의힘 전주혜 의원은 “김만배씨의 거짓말이 드러난 것”이라며 “권순일 전 대법관이 김만배씨와 약속을 하고 만난 것이라면, 무슨 목적으로 만났겠는가. 이재명 지사의 생환 로비가 그 목적임이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고 했다.
김씨는 세간의 이목이 쏠린 특검에게도 거리낌 없이 자신의 요구를 했던 사람이다. 과연 권순일 이름을 쓰고 대법원 구내 이발소를 갔다는 그의 해명은 사실일까.
권 전 대법관은 소위 50억 클럽에도 이름을 올렸다. ‘50억 클럽’ 의혹 당사자 중 권 전 대법관에 대한 수사가 가장 부진하다. 재판거래 의혹이 사실이라면 사법부 문을 닫아야 할 엄중한 사안이다. 한 법조인은 “권 전 대법관은 김만배씨에게 돈을 받은 사실이 나왔기 때문에 검찰이 수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김만배가 남욱 대장동 사업권 빼앗아(녹취 中)
사건 초기 중심인물은 김씨의 의도대로 유동규 전 성남도개공 본부장이었다.
김씨는 신학림씨와 허위 인터뷰를 한 이후 조우형씨에게 “이 형(김만배)이 아주 엉뚱한 방향으로 사건을 끌고 갈 것이니 너는 그냥 모른 척하고 있으면 된다”고 말했다고 한다. 또 조씨에게 “이재명을 끌어들이면 안 된다. 유동규(전 성남도시개발공사 본부장)의 개인 일탈로 몰고 가야 되니 인터뷰 요청이 오면 너도 그런 취지로 이야기하라”고 했다. 그런데 녹취에 따르면 김만배씨는 대장동 중심인물이다. 김씨가 원래 사업권을 가지고 있던 남욱 변호사를 밀어냈다는 것이다.
녹취에서 박 특검의 후배 변호사 A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남욱이가 중간에 구속[남 변호사는 2009년 하반기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대장동 개발사업을 공영으로 추진하자 이를 민영으로 바꿔달라는 청탁과 함께 8억3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2015년 구속기소됐지만, 무죄를 선고받았다]이 됐었잖아. 이 사이에 김만배가 얘 사업(대장동)을 홀라당 주도권을 뺏어버린 거야. 남욱이하고 둘이(남욱과 김만배) 엄청 싸웠어. 특검님이 중간에서 중재를 좀 해주신 거예요. 둘 다 잘 아는 놈들인데, 욕심 그만 내고 적절히 분배해서 나눌 거 나누고 하라고. 그래서 (박영수 특검이) 고문(화천대유)을 하게 된 것이고.”
남욱 변호사는 검찰에 대장동 사업 과정에 자신의 지분이 줄어든 배경에 대해 당시 성남시장이었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몫이 반영됐기 때문이라고 진술했다.
남 변호사는 자신의 배당 지분이 최종적으로 25%까지 줄어든 것에 대한 검찰 질문에 “김씨가 ‘내 지분도 12.5%밖에 안 된다, 실제로 49% 지분 중 37.4%는 이재명 시장 측 지분이라 내가 갖는 게 아니다’라면서 ‘네가 25%를 가져도 민간사업자 중 비중이 크니 받아들이라’고 했다”고 밝혔다.
김만배가 유독 박 특검 관련 진술만 자세히 한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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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수 특검은 김만배씨의 요구를 일축했다. 김씨는 유동규 전 본부장, 남욱 변호사의 “대장동 그분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란 증언은 부인하면서도 박 특검의 범죄 행위 의혹에 대해서는 자세히 이야기했다. 사진=뉴시스 |
박영수 특검에 대한 진술이 대표적이다. 김씨는 유동규 전 본부장, 남욱 변호사의 “대장동 그분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란 증언을 부인하면서도 박 특검의 범죄 행위 의혹에 대해서는 유독 자세히 말했다.
실제 검찰이 지난 6월 26일 박영수 전 특별검사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며 ‘200억원 약정’ 혐의를 적용한 데에는 김만배씨의 진술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한다.
박 특검은 우리은행 이사회 의장이던 2014년 11~12월 남욱 변호사(천화동인 4호 소유주) 등에게 “성남의뜰 컨소시엄에 우리은행이 참여하거나 여신(與信) 의향서를 발급해달라”는 청탁을 받으면서 200억원 상당을 대가로 약정받은 혐의 등을 받고 있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김만배씨는 검찰 조사에서 “2015년 1월쯤 남욱 변호사에게 대장동 사업 주도권을 넘겨받을 때 남 변호사가 ‘박 전 특검에게 200억원을 줘야 한다’며 관련 내용을 인수인계해줬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그 무렵 남 변호사가 다른 사건으로 검찰 수사를 받게 되자, 김씨는 ‘남 변호사가 사업을 계속하면 이재명 성남시장이 대장동 민간사업자로 선정해주지 않을 것’이라고 압박해 사업 주도권을 남 변호사에게서 넘겨받았다. 이때 남 변호사가 자신이 박 특검에게 약정한 200억원도 김씨가 지급해야 한다고 했다는 것이다.
김만배씨는 박 특검이 2014년 말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선거 자금 명목으로 현금 3억원을 남욱씨에게 받았다는 혐의에 대해서도 “당시 남 변호사에게서 박 특검에게 3억원을 전달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검찰에 진술했다고 한다.
한 법조인은 “대장동과 관련해 김씨는 다른 사람만 처벌되는 부분을 주로 진술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200억원 약정’과 ‘3억원 수수’가 모두 박 전 특검과 남욱 변호사 간에 이뤄진 것으로 본다면 이에 대해 김씨가 법적으로 직접 책임질 일은 없게 된다.
녹취 속 내용을 보면 박 특검과 김씨 두 사람의 관계는 김만배씨가 박 특검에게 이재용 회장 구속영장 미청구 요구를 한 후 금이 갔다.
남욱 변호사와의 관계도 김씨가 사실상 사업권을 뺏어가면서 ‘원수’와 다름없는 사이가 됐다. 김씨의 진술이 사실이 아닌 ‘감정’을 앞세운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물론 ‘감정’을 앞세운 진술이더라도 사실이라면 박영수 특검 등은 그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박 전 특검은 지난 8월 3일 구속됐다. 대장동 민간업자들에게 19억원을 수수하고 200억원 상당의 금품을 받기로 한 혐의다. 검찰은 지난 6월 30일 박 전 특검에 대한 첫 구속영장을 기각당한 뒤 보완 수사를 거쳐 다시 영장을 청구해 이날 발부받았다.
김만배의 이재명 방탄 이유
하지만 김씨의 진술 또는 주장이 특정인을 감싸기 위해 죄 없는 사람에게 덮어씌우기 위한 조작 성격이 강하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정영학 녹취록 속 대화 내용만 봐도 김씨가 검찰수사와 재판에서 어떤 성격의 진술을 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기자가 여러 번 보도했듯 김씨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대통령이 될 것으로 예상했고, 그렇게 되길 바랐다.
《월간조선》이 대선 기간 정영학 녹취록을 입수해, 그대로 공개한 단독 기사가 다시 주목받는 까닭이기도 하다. 2020년 3월 24일 정영학 녹취록을 보면 정영학 회계사(천화동인 5호 소유주)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지지율 추이를 묻자 김만배씨는 이렇게 답한다.
“이재명은 대통령 되지.”
7개월 후인 10월 26일에도 김만배씨는 정 회계사가 “요즘 이 지사(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여론조사도…”라고 묻자 “아니, 아니, 그런데 내 입장에서는 미스터 리(이재명 후보)가 이게(대통령 지칭한 듯) 돼”라고 답한다.
김씨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는 ‘님’자를 붙여 존대했지만 윤석열 대통령에 대해서는 윤석열이라 하대했다.
2020년 3월 24일 정영학 녹취록에 따르면 김만배씨는 정영학 회계사에게 “영학이, 나중에 이재명 님 청와대 가면은”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과 관련한 이야기를 할 때는 윤석열이라고 한다. “내가 가진 카드면 윤석열은 죽어”가 대표적이다.
차기 이재명 희망 아직도 못 버렸나?
검찰은 김만배씨와 신학림 전 언론노조 위원장의 이른바 ‘허위 인터뷰’ 의혹과 관련해, 특별수사팀을 구성했다. 이 수사를 계기로 김씨가 지금껏 해왔던 진술에 대해서도 다시 검증해볼 필요가 있다는 게 대체적인 견해다. 그래야 재판부도 객관적 판결을 내릴 수 있고, 진실이 밝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뉴스타파가 공개한 김씨와 신학림 전 언론노조 위원장의 2021년 9월 15일 대화 전문을 보면 김씨는 일관되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대장동 일당’의 연관성을 부인하며 “이 대표는 모른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신 전 위원장이 “이 사람(남욱씨·정영학씨 등 민간업자)들이 자기(김씨) 모르게 이재명하고 연관돼 있을 가능성이 제로는 아니잖아?”라고 묻자 김씨는 “아니, 이재명은 모르지”라고 한다.
김만배씨는 또 “얘네들이 도시개발공사에 돈 주고 그런 거 나는 (통제) 못 하는 거지”라면서 “이재명이도 책임은 없는 거고”라고 했다.
지금 김씨와 이재명 대표의 최측근 정진상 전 민주당 정무조정실장, 김용 전 민주연구원장 등을 제외하고 이런 주장을 하는 사건 관련자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대장동 사업가들은 “김씨는 아직도 이재명 대표가 차기 대통령이 되면 자신이 은닉한 돈을 쓸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는 것 같다”고 했다. 김씨는 수사 과정에서 은닉 자금이 들통나기도 하고, 관련자들에게 회유하는 듯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왜 김씨는 대장동 사건의 실체가 드러나면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에게 불리할 것으로 우려했을까. 진실은 멀리 있지 않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