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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코로나 사태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보는 각국 정치인들의 리더십

‘天動說’과 냉소주의 바탕으로 보고 싶은 것만 보는 한국 지도자

글 : 유민호  퍼시픽21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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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발언은) 열린 민주주의의 요소이자 내용에 따른 것… 정책 결정을 투명하게 하고 모두에게 알려줘야”(메르켈 독일 총리)
⊙ “코로나19 이후 미국은 과거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일상(new normal)으로 나아가게 될 것”(쿠오모 뉴욕주 지사)
⊙ 미국, 코로나19 사태 이후 트럼프 지지도 올라가… 일본, 아베의 코로나19 대처에 국민 대부분 수긍
⊙ 문재인의 코로나19 관련 발언은 主語 없는 유체이탈 화법… 현실회피·책임회피가 바닥에 깔려 있어

劉敏鎬
1962년생.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일본 마쓰시타정경숙(松下政經塾) 졸업(15기) / 딕 모리스 선거컨설팅 아시아 담당, 《조선일보》 《주간조선》 등에 기고 / 現 워싱턴 에너지 컨설팅 퍼시픽21 디렉터 / 저서 《일본직설》(1·2), 《백악관의 달인들》(일본어), 《미슐랭 순례기》(중국어) 등
문재인 대통령은 3월 25일 코로나19 진단시약 업계 대표 간담회에 참석, 한국의 코로나19 검사 능력을 칭찬했다. 사진=뉴시스
  코로나바이러스19(우한폐렴·이하 코로나19)의 위세가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중세(中世) 먼 나라 얘기로만 알던 역병(疫病) 공포가 2020년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다. 치사율 5% 미만이라고 하지만, 심리적 치사율은 100% 이상이다. 사람을 멀리할수록 나의 안전이 확보되는 시대다. 결국은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우리 모두 함께’로 채워진 글로벌 상식에서 벗어난, 오랜만에 맛보는 고독이다. 영어로 ‘고독’이란 단어는 ‘loneliness’와 ‘solitude’로 나뉜다. 전자(前者)는 원치 않지만 혼자로 남게 된 수동적(受動的) 상황의 고독, 후자(後者)는 스스로 원해서 혼자가 된 능동적(能動的) 차원의 고독이다. 양자(兩者)는 세상을 어떻게 대할지에 대한 자세가 다를 수밖에 없다. 바이러스로 인해 한순간 ‘loneliness’에 빠진 사람들이 대부분일 듯하다. 전염병이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상황임을 감안하면 이제 ‘solitude’로 적응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영화 〈12인의 성난 사람들〉
 
시드니 루멧이 감독하고 헨리 폰다가 주연을 맡은 영화 〈12인의 성난 사람들〉.
  〈12인의 성난 사람들(12 Angry Men)〉이란 영화는 ‘loneliness’와 ‘solitude’가 교차되던 시간 속에서 발견한 명화(名畵)다. 1957년 시드니 루멧 감독이 제작한 흑백영화로, 배심원(陪審員) 12명의 재판 관련 토론을 주제로 한 영화다. 안건은 아버지를 칼로 찔러 살해했다는, 빈민가 10대 소년에 대한 유죄(有罪) 여부다. 토론 초기에 11명의 배심원이 유죄라고 주장하지만, ‘단 한 명’만이 유죄가 아닐 수 있다고 말한다. 다수(多數)에 맞선 사람은 배심원 8번인데, 헨리 폰다가 그 역을 맡았다.
 
  당연하지만, 법원에서는 유죄가 아니면 무죄(無罪)다. 무죄라는 증거가 있기에 무죄가 아니라, 유죄라는 증거가 없다면 무조건 무죄다. 누구라도 유죄가 아닐 수 있다는, ‘이유 있는 의심(reasonable doubt)’을 가장 먼저 제기한 배심원이 8번이다.
 
  미국에서 배심원은 이름이 아니라 번호로 호명한다. 평등・익명(匿名)에 기초한, 12명 전원 합의가 배심원 제도의 기본이다. 법원 심리가 끝난 뒤의 배심원 전원 합의를 통해 유죄 여부가 최종 결정된다. 영화 속에서 최종 결론은 소년에 대한 배심원 전원 무죄판결이다. 8번이 나머지 11명을 전부 설득하면서 유죄에서 무죄로 뒤집힌 것이다.
 
  고전 명화답게 이 영화에서도 결론보다 세심하고 예민한 과정이 중시된다. 이미 결론이 내려진 이념이나 주의·주장이 아니라 결론으로 이어지는 구체적이고도 촘촘한 과정을 보여준다. 상식이지만 민주주의는 결론이 아닌 과정에 있다. 21세기 들어서는 찾아보기 어렵지만, 197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그런 관점의 영화를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영화 〈12인의 성난 사람들〉은 유죄라고 예단(豫斷)하던 배심원들의 변화과정을 논리적·심리적·감정적으로 세심하게 연출해내고 있다.
 
 
  배심원들
 
영화 〈12인의 성난 사람들〉은 미국 배심재판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영화를 보면서 특히 주목한 부분은 배심원 12명 각각의 캐릭터들이다. 배심원들은 ‘이유 있는 의심’에 동의하거나 반대하는 과정에서 각자의 고유한 캐릭터를 보여준다. 영화 속 배심원 12명의 캐릭터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배심원 1번: 체육 교사 출신. 배심원 사회를 진행한다.
 
  배심원 2번: 은행가. 전체 분위기와 자신만의 이성(理性)을 합쳐서 판단하는 캐릭터다.
 
  배심원 3번: 수송업 관계자. 자수성가(自手成家)했지만 10대 자식과 불화 중인 아버지다.
 
  배심원 4번: 주식 중개인. 현실에서만 통하는 송곳 논리로 유죄 유무를 판단한다.
 
  배심원 5번: 공장 노동자. 어릴 때 빈민가에서 자란 성장배경을 갖고 있다.
 
  배심원 6번: 도장공(塗裝工). 인간에 대한 정(情)이 깊은 사람이다.
 
  배심원 7번: 세일즈맨. 재판 자체에 흥미가 없다. 끝내고 야구경기장 갈 생각만 한다.
 
  배심원 8번: 건축가. 제일 먼저 소년이 유죄가 아닐 수 있다고 말한다.
 
  배심원 9번: 80대 노인. 인생 경험에서 나오는 지혜를 가지고 재판에 임한다.
 
  배심원 10번: 자동차 수리 공장 경영자. 빈민층(貧民層)에 대한 편견이 강하다.
 
  배심원 11번: 유대인 이민자로 시계수리공. 인생의 원칙을 분명히 지키는 캐릭터다.
 
  배심원 12번: 광고업자. 사교적이고 머리회전도 빠르지만, 분위기 보면서 입장을 바꾼다.
 
 
  인간 群像
 
  배심원들의 토론은 무더운 여름철에 이뤄진다. 토론이 시작되는 즉시, 빨리 끝내고 집에 돌아가자는 분위기가 표류한다. ‘소년=유죄’라고 보는 입장이 11명이다. 8번이 반대 의견을 내자 모두 ‘정신 나갔다’는 식의 반응을 보인다. ‘유죄=사형’이란 점에서 다시 한 번 자세히 살펴보자는 것이 8번의 생각이다.
 
  곧이어 진술자들이 보여준 각종 증거에 대한 재점검에 들어간다. 세심한 관찰 끝에, 진술자들의 증언 속에 과장이나 모순이 있다는 것이 하나둘 드러난다.
 
  8번의 ‘이유 있는 의심’에 가장 먼저 동의한 사람은 9번이다. 80대 노인으로, 그는 머리가 아니라 삶의 경륜에서 오는 혜안으로 유죄가 아닐 수 있다고 말한다. 이어 5번과 11번이 8번 생각에 동의한다. 빈민가에서 자란 경험과, 원칙에 근거해 살아온 유대인으로서 배경을 통해 유죄가 아니라 말한다.
 
  이후 토론을 거듭하면서 유죄가 아니란 생각이 확산된다. 이 과정에서 ‘유죄든 무죄든 나와 무관하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도 나타난다. 야구에 미친 세일즈맨 7번, 머리 좋고 사교적인 광고업자 12번이 그런 범주의 배심원들이다.
 
  그러나 3번과 10번은 끝까지 소년을 살인범이라고 주장한다. 증언자들의 생각을 근거로 한다지만, 사실 유죄를 고집하는 진짜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 3번은 10대 자식과의 불화가, 10번은 빈민층에 대한 편견이 주된 이유다. 결국 최종적으로 돌이킬 수 없는 증거를 내놓자, 3번과 10번 모두 마지못해 무죄에 동의한다. 영화는 열두 배심원 전원 합의하에 ‘소년=무죄’란 결정을 내리면서 막을 내린다.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라 했던가. 영화를 한 번만 봐도 모두 고개를 끄덕일 부분이 하나 있다. 열두 배심원의 캐릭터가 현실 세계에서 만날 수 있는 수많은 인간 군상(群像)의 압축판이란 점이다. 회사, 학교, 군대, 국가 등 어떤 조직에서든 볼 수 있는 캐릭터들을 하나로 전시한 느낌이다.
 
 
  21세기 정치가의 리더십 보여준 메르켈의 연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지난 3월 18일 대국민담화를 통해 코로나19 사태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의 위기’라고 강조했다. 사진=AP/뉴시스
  코로나19 사태에 즈음한 각국 지도자들을 보면서도 영화 속 캐릭터들이 떠오른다. 이 영화를 보기 전에 우연히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대(對)국민 담화를 시청했다. 무척 인상 깊게 봤기 때문이겠지만,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대하는 세계 정치인들의 캐릭터가 자연스럽게 비교됐다.
 
  메르켈은 지난 3월 18일 TV 생중계를 통해 대국민 담화를 전했다. 21세기 정치가의 리더십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 최고의 모델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오늘 현 상황에 대해, 아주 예외적인 방법으로, 의회 및 연방정부 내 나의 친구들과 국민 여러분에게 말하려 합니다. 나의 발언은 총리로서 부여된 권한에 근거한 것입니다. (나의 발언은) 열린 민주주의의 요소이자 내용에 따른 것입니다. 우리는 정책 결정을 투명하게 행해야 하고, 모두에게 알려줘야 합니다.… 독일 재(再)통일, 아니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래 개개인의 연대(連帶)가 지금처럼 우리나라에 중요하게 떠오른 적은 없습니다.…”
 
  내가 메르켈의 연설을 들어본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이를 접하는 순간 뭔가에 빨려 들어가듯 몰입했다. 이유는 진실과 노력 그리고 원칙에 있다. 담화 전체를 통해 느낄 수 있는 메르켈만의 캐릭터다. 감동이 밀려왔다. 전염병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민주주의를 지키면서도 개개인은 어떤 식으로 공동대처해야 하는지, 국가는 전염병 확산 저지를 위해 어떤 일을 할 것인지 등에 대한 얘기가 12분40초에 걸친 담화에서 구체적으로 제시되고 있었다. 뭔가 숨기거나,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다거나, 과장하면서 자화자찬(自畫自讚)에 빠져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투명하고도 솔직하게 대처하면서, 독일 국민 모두 힘을 합쳐 전염병을 막아내자는 결의가 곳곳에서 느껴졌다. ‘아무리 큰 위기가 와도, 결국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도 메시지 속에 들어 있다. 전염병 방역(防疫) 하나에 맞춰진 담화가 아니라, 국민통합에 방점(傍點)을 찍는 담화였다. 영화 〈12인의 성난 사람들〉 속 캐릭터로 치자면, 소년이 유죄가 아닐 수 있다고 말하면서 구체적으로 하나씩 증명해가는 8번 배심원이라고 할까.
 
 
  ‘뉴노멀’ 강조한 쿠오모
 
앤드루 쿠오모 뉴욕 주지사는 코로나19 사태 이후의 ‘뉴노멀’을 강조하고 있다. 사진=AP/뉴시스
  미국 뉴욕 주(州)지사 앤드루 쿠오모도 인상 깊다. ‘미국의 우한(武漢)’으로 불리며 전염병 확진자가 수직상승하고 있는 곳이 뉴욕이다. 위기 상황을 맞아 지난 3월 31일 쿠오모는 이렇게 말했다.
 
  “코로나19 이후 미국은 어제의 통상적인 일상(normal)으로 되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과거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일상(new normal)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쿠오모의 말 속 키워드는 ‘새로운 일상’, 즉 ‘뉴노멀’이다. 일상과 무관한 잠정적·예외적(例外的) 차원의 ‘비일상(非日常・abnormal)’이 아니다. 정상적인 일상으로서 항구적(恒久的)으로 지속될 새로운 상황으로서 ‘뉴노멀’이다.
 
  쿠오모는 ‘뉴노멀’의 구체적 본보기로 ‘체육관·극장·수영장 폐쇄’를 예로 들었다. 직접 언급하지 않았지만, 보통 시민이라면 학생들의 등교 중단과 슈퍼마켓의 일상용품 품귀현상, 재택(在宅) 근무, 대규모 실업(失業)과 기업 파산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바이러스 발병) 첫날 이래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 똑같은 일들이(바이러스 재창궐이) 반복될 수 있다.”
 
  쿠오모는 “4월 말이 뉴욕의 전염병 절정기라고 말하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고 고백했다. 4월 말 종결이 아니라, 그 이후라도 바이러스 재창궐로 인해 비일상이 ‘뉴노멀’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과연 언제까지 ‘뉴노멀’이 이어질까? 쿠오모는 “구체적인 시기는 아무도 모른다”는 전제하에, “언제 끝날지 점치기는 어렵다”는 식으로 말했다.
 
  영화 〈12인의 성난 사람들〉 속 캐릭터로 풀어보면, 쿠오모는 배심원 9번과 11번에 비견될 수 있다. 삶의 체험과 지혜로 세상을 바라보는 80대 노인과, 시계수리공이란 직업에서 보듯 기본과 원칙에 맞춰 대응하는 유대인 이민자에게서 볼 수 있는 캐릭터다. 현실을 정확히 판단한 뒤 미래를 준비하는 캐릭터로, 결코 과장하거나 축소하지 않고 현실을 바탕으로 대처해나가는 정치가다.
 
 
  지도자는 ‘잠수함 속의 토끼’
 
  희망과 비전은, 물론 정치가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하루에 전염병 사망자 1000명이 나오는 판국에 멀고 먼 장밋빛 미래만 읊조릴 수만은 없다. 지금 당장의 처방이 필요하다. 전염병 공포 속 정치지도자는 남보다 먼저 위기 상황을 알아채고 경고하는 ‘잠수함 속의 토끼’에 비교될 수 있다. 더 어려운 상황이 올 것이란 현실을 모두에게 알리고, 최전선(最前線)에 서서 함께 싸우겠다는 결의를 다지는 역할이다. 부사와 형용사로 점철된 무책임한 달콤한 말이 아니다. 미래를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쿠오모의 ‘뉴노멀’에 주목하고 큰 그림 속에서 내일에 대응하게 될 것이다.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百戰百勝)이라 했던가?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두 가지다.
 
  첫째, 순서다. 내가 아니라 상대를 아는 것이 먼저다. 현재만이 아닌, 상대에 관한 과거의 행적도 파악해야 한다. 그 같은 과정을 거친 뒤, 나를 아는 것이 순서다.
 
  둘째, 과정으로서의 지기(知己)다. 나를 안다는 것은, 단순히 나의 역량이나 상황을 이해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핵심은 ‘과거’가 아닌, ‘현재’ 나의 역량이다. ‘옛날에 내가 말이야…’는 오히려 역(逆)효과만 낼 뿐이다. 상대를 알고 난 뒤 ‘냉철히 객관적’으로 파악된 나를 상대에 맞춰나갈 경우 이길 수 있다는 의미다.
 
 
  한국 언론의 ‘天動說’과 냉소주의
 
  한국 언론의 특징 중 하나지만, 외신(外信)의 질적(質的)·양적(量的) 수준이 극히 빈약하다. 글로벌 시대라 말하기는 하지만 바탕이 되는 외국에 대한 정보가 절대적으로 모자란다. 위의 메르켈과 쿠오모 관련 기사를 다룬 신문과 방송도 몇 안 된다. 21세기 1강(强)인 미국조차 외국에 관심을 갖는 것이 글로벌 시대의 상식이다. 오지(奧地)에 있는 빈국(貧國)이라도 어떤 식으로든 지구촌 일원으로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뉴욕 타임스》를 보면 국내 정치 뉴스와 외신의 질적·양적 수준이 거의 비슷하다.
 
  외신은 상대를 알기 위한 기본 요소다. 이는 상식이다. 팩트에 기초한 1차 정보만이 아닌, 종합적 평가 분석 방향에 이르는 2차 정보의 원천(源泉)이다. 1, 2차 외신 정보에 맞춰, 스스로를 다질 경우 ‘백전백승’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그런 기초가 너무 허약하다. 최근 들어선 한국 언론 전체에 만연한 ‘기이한 현상’까지 겹쳐 한층 더 악화되는 상황이다.
 
  이미 정착된 한국 언론 내 ‘기이한 현상’은 두 가지다.
 
  첫째, 세상이 한국을 중심으로 돈다는 천동설(天動說)에 기초한 자화자찬이다.
 
  둘째, 빈정거림과 조롱 멸시로 점철된 냉소주의(cynicism)다.
 
  크게 보면 둘 다 오판(誤判)과 허세라는 점에서 통한다.
 
  먼저 천동설식의 자화자찬을 보자. 간단히 말해 주자학적(朱子學的) 이념 중심 세계관으로 무장한 우물 안 개구리들의 자기 자랑이다. 밖을 보기는커녕 눈이 안으로만 쏠린 골목대장 식견이라고 할까?
 
  코로나19 사태 이후 신문·방송 지면에 깔리는 ‘한국 의료=세계 최고’라는 식의 이야기는 좋은 본보기다. 검사 키트나 마스크 같은 코로나19 대응도구 관련 ‘한국 넘버원’ 기사는 낯간지러울 정도다. 과학적 근거나 객관적 비교도 없이, 외신 한 줄이나 외국 정상이 지나가는 말로 던진 인사치레가 ‘한국 넘버원’의 근거들이다.
 
 
  트럼프를 戱畵化하는 한국 언론
 
지난 3월 31일 코로나19 관련 언론 브리핑을 하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 코로나19 사태 이후 트럼프에 대한 지지율은 올라가고 있다. 사진=AP/뉴시스
  둘째, 냉소주의 현상을 보자. 대표적인 것은 미국과 일본에 관한 뉴스다. 부정적인 소식만 골라 마치 그 나라의 대세(大勢)인 것처럼 헐뜯고 왜곡하는 자세다. ‘애국심’의 발로이자 ‘언론의 자유’라 말할지 모르겠다. 반대로 일본·미국의 언론이 똑같은 행태로 맞설 경우 어떻게 말할지 궁금하다.
 
  전염병 대응과 관련해 아베 일본 총리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독선(獨善)과 무능(無能)의 대명사로 몰아가면서 희화화(戱畵化)하는 것은 좋은 본보기다. 한국에서 오해하는데, 코로나19에 맞서고 있는 트럼프에 대한 미국 국민의 지지율은 상승일로에 있다. 갤럽 조사에 따르면 지난 4월 1일 미국인의 트럼프에 대한 지지율은 44%다. 지난 1년간 조사를 통해 가장 높은 지지율이다. 다른 매체의 여론조사를 봐도 코로나19 사태에 맞선 트럼프의 리더십이 높게 평가되고 있다. 국민 지지율이란 것이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겠지만, 한국 언론에서 보는 것처럼 미국인 모두가 트럼프에게 비판적인 것은 아니다.
 
  코로나19 관련 기자회견이 열리면 거의 2시간 이상 기자들과 1대 1로 상대하는 인물이 트럼프다. 말꼬리 잡기로 날과 밤을 새우는 사람들도 많지만, 강력하고 열심히 일하는 대통령을 믿고 따르는 국민도 많다. 트럼프는 미국 대통령이기에 앞서 미국 그 자체라 볼 수도 있다. 트럼프에 대한 냉소와 희화화는 트럼프 개인이 아니라 미국 전체에 대한 오판이자 허세다.
 
 
  일본의 생존제일주의
 
일본 국민들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4월 7일 발동한 코로나19 긴급사태 선언을 수긍하는 분위기다. 사진=AP/뉴시스
  아베에 대한 한국 언론의 논조는 한층 더하다. 그를 멍청하고 느리고 시대착오적이라고 보는 것은 한국인의 착각일 뿐이다. 일본인의 생각은 다르다.
 
  일본인의 국민성은 쉽게 끓었다가 사그라지지 않는다. 돌다리를 두드리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부서질 정도 확인, 재확인하다가 돌다리 자체가 무너져 내리는 나라가 일본이다. 일본이 옳다는 것이 아니라, 한국과 전혀 다른 문화권이란 의미다.
 
  일본인들은 마스크 한 장, 진단 키트, 확진자 수에 목을 매면서 ‘지금 당장’ 아베를 탄핵하자고 떠들지 않는다. 필자가 보기에 일본은 이미 장기적 관점에서 코로나19 대책에 들어가 있다. 일본 국민들 사이에 흐르는 공기를 보면 코로나19가 지금 당장 해결될 만한 사안이 아니라는 데 의견이 일치하고 있는 것 같다. 이미 70대에 접어든 반(反)아베 단카이(團塊)세대를 중심으로 불만과 반발이 나오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대세는 장기전이다.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모든 국민이 코로나19에 걸리더라도 적자생존(適者生存)하면서 미래로 나아가자는 식의 옥쇄(玉碎) 분위기라고 볼 수도 있다. 입 밖으로 내놓지는 않지만 전염병에 걸려 죽는 것도 개인의 운명이라 믿는 분위기다. 아베가 아니라 그 누가 나타나도 해결할 수도 없고, 없는 마스크가 하늘에서 떨어질 수도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를 두고 체념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현실 적응이라 해석할 수도 있다.
 
  전 세계를 통틀어, 마스크 자가(自家) 제작 캠페인의 시발점은 일본이다. 마스크 하나, 빠른 검사결과보다 일본이란 나라의 존속, 당장 먹고살아 갈 사람에 대한 관심이 더 크다. 후쿠시마(福島) 방사능 문제에서 보듯 ‘생존제일주의’가 일본의 현실이다.
 
  아베는 그런 국민 정서를 대표하는 지도자다. 사실 아베가 시행한 전염병 관련 정책에 대한 여론을 보면 한국인이 생각하는 것과 전혀 다른 결과가 나타난다. 지난 3월 중순 반아베 노선이 분명한 《마이니치(每日)신문》 여론조사 결과를 보자. 아베 정권의 바이러스 대책에 대해 ‘평가한다’가 49%, ‘평가 안 한다’가 45%다. 갑자기 단행된 중·고등학교 임시휴교에 관한 조사에서는 63%가 ‘지지한다’, 정부의 이벤트 자숙 요청은 81%가 ‘타당하다’고 응답했다.
 
  아베를 영화 〈12인의 성난 사람들〉 속 캐릭터로 따진다면 2번이나 4번이 가장 어울릴 듯하다. 사회 전체 공기와 이성적 판단에 근거하는 은행가, 현실에서만 통하는 송곳 논리로 접근하는 주식 중개인 캐릭터다. 정책의 판단 기준은 감정·이념이 아니라 객관적 정세 판단과 차가운 머리다. 전체의 행복을 위해 부수적 피해도 감수하겠다는 자세다. 4월 7일 아베의 긴급사태 선언에 즈음한 기자회견에서 보듯 과장·허세·왜곡·자화자찬이 전혀 없다. 한국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캐릭터이고, 앞으로도 영원히 받아들일 수 없는 리더십이라 볼 수 있다.
 
 
  ‘이유 있는 의심’ 제기가 없는 한국
 
  영화 〈12인의 성난 사람들〉 속 캐릭터는 한국 정치에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유 있는 의심’을 제기한 배심원 8번은 안 보인다. 소년을 무죄라 주장하기보다 유죄로 단정해 ‘빨리빨리’ 사형장으로 끌어가려는 데 앞장서는 캐릭터만이 넘친다.
 
  영화 속 〈12인의 성난 사람들〉 속 캐릭터들을 살필 때 유의할 부분이 하나 있다. 캐릭터 대부분의 주된 관심이 ‘진실 규명’ 자체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진실이 객관적으로 드러난다 해도 곧바로 진실로 받아들이지 않는 배심원이 대부분이다. 무관심으로 대충 넘기거나, 오래된 편견이나 개인적 경험에 근거해 진실을 왜곡하거나, 거꾸로 감정만을 앞세워 전면 부정하는 장면이 영화 속에서 이어진다.
 
  전염병 비상사태에 즈음한 한국 내 상황을 봐도 똑같다. 모순과 과장을 발견해 지적해도 전혀 변하지 않는다. 언뜻 보면 전염병 방역을 우선시하는 듯하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전혀 다르다. 자기가 본 세상, 자기가 좋아하는 세상, 나아가 자기 이익에 기초해 판단할 뿐 나머지는 전부 거부한다.
 
  한국은 중국에 이어 전염병 확산이 가장 먼저 일어난 나라다. 놀랍게도 지난 2월 13일 문재인(文在寅) 대통령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코로나19가 머지않아 종식될 것”이라고 말했다. 막 확산되기 시작하던 확진자가 ‘불과’ 사흘간 나타나지 않은 데 따른 결론이다. 아마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코로나19 종식 가능성을 선언한 듯하다. 그 무렵 한국 대통령 부부는 아카데미상을 받은 영화 〈기생충〉 팀을 청와대로 초청해 식사하면서 파안대소(破顔大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당시 상황을 고려할 때, 놀랍기도 하고 황당한 전망이라 말할 수밖에 없다.
 
  4월 8일 현재 한국 대통령은 코로나19 관련 대국민 담화를 아직까지 정식으로 발표하지 않고 있다. 독일은 물론 유럽,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대통령이나 총리 등 국가 최고지도자들이 텔레비전 생중계로 대국민 특별담화를 내보냈다. 현실을 직시하고, 지도자가 국민과 함께한다는 메시지를 주는 것이 특별담화가 갖는 가장 큰 의미다. 특히 트럼프는 누구보다 먼저 중국인 입국을 차단하고, 지난 3월 13일 500억 달러에 달하는 코로나19 지원기금 발표와 함께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主語가 없는 문재인 발언
 
  코로나19가 한창 확산되고 있을 때 코로나19 종식을 말하고 영화 〈기생충〉 관계자를 접대하는 국가 지도자의 판단 능력은 이상하다. 아니 비현실적이다. 비현실적 세계관의 원인은 크게 보아 두 가지다. 즉 현실에 대한 판단능력 결여나 현실 도피가 그것이다. 필자가 보기에 한국 대통령의 비현실적 세계관은 현실 도피적 사고(思考)가 배경에 있지 않나 싶다. 그가 하는 말이 증거다.
 
  문재인 대통령은 특유의 유체이탈 화법으로 유명하다. 지난 3월 31일 국무회의 중 발언을 살펴보자.
 
  “늘어나는 해외 유입에 대해서도 더욱 강력한 조치와 철저한 통제가 필요합니다. 내일부터 시행하는 해외 입국자 2주간 의무격리 조치가 잘 지켜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격리 조치를 위반할 경우 공동체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단호하고 강력한 법적 조치가 따라야 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은 세계 그 어떤 지도자에게서도 찾을 수 없는 ‘독특한 어법’을 구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간단히 말해 주어(主語)가 없다. 이런 모습은 다른 연설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대통령으로서 결의는커녕 전염병 현실을 직시하고 있다고 보기 어려운 제3자의 한가한 발언이다. 자식이 자동차에 치이기 직전인데 ‘안전법규를 지키고 천천히 운전하는 식의 자동차 매너가 중요하다’라고 말하는 식이다.
 
  메르켈이라면 어떻게 말했을까?
 
  “나는 해외 유입과 더불어 확산될 전염병 문제에 적극 대처하겠습니다. 어렵겠지만, 국민 모두 2주간 의무격리 조치에 적극 나서길 요청합니다. 대통령으로서 위반할 경우 법적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어가 없다는 것은 책임을 회피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현실 도피, 책임 회피를 안에 깔고 있는 어법이다.
 
 
  ‘한국 넘버원’ ‘대통령 넘버원’
 
  비현실적 사고는 더 큰 실책과 망상으로 이어진다. 문재인 대통령이 말한 ‘전염병 종식’이 허망한 말장난이라는 것이 드러나면서 갑자기 자화자찬 ‘대통령 넘버원’ 뉴스가 청와대에서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한국 넘버원’으로 포장돼 있지만, ‘대통령 넘버원’이 실제 의도다. 전염병 시국에서 핵심사는 바이러스 확진자와 사망자에 대한 관리다. 피해자 수를 줄이기 위한 방안을 강구하고 외국과 방역 협조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검사 키트, 마스크 공급에 성공한 공로로 대통령이 노벨상을 받든 말든 그것은 전염병 상황하의 국민들과는 ‘전혀’ 무관하다. 확진자 수가 넘쳐나고 곳곳에서 사망자 소식이 끊이지 않는데도 청와대발 ‘대통령 넘버원’ 뉴스는 계속 나오고 있다. 트럼프와 아프리카 대통령이 진단 키트를 부탁했다는 청와대 단독 기사가 확진자와 사망자 뉴스를 덮어버린다. 전장(戰場)에서는 병사들이 죽어 나가는데, 사령관의 무용담(武勇談)만이 울려 퍼지는 형국이다.
 
  영화 〈12인의 성난 사람들〉 속 캐릭터로 보자면 문재인 대통령과 가장 닮은 캐릭터는 세일즈맨 배심원 7번이다. 그는 소년의 유・무죄에는 관심이 없다. 빨리 재판을 끝내고 야구장으로 직행하는 것만이 최대 관심사다.
 
  여기서 야구는 ‘정략적(政略的) 의미의 정치’를 의미한다. 이 글이 나갈 때쯤 결론이 나겠지만, 당장 국회의원 총선에 대한 집착이 문재인 대통령의 비현실적 세계관과 자화자찬 정치의 배경일 듯하다.
 
 
  코로나19 사태 속 ‘탤런트 정치’
 
  광고업자 12번 캐릭터도 한국 정치가에게서 볼 수 있다. 유・무죄를 넘나들며, 일단 모두에게 좋은 얼굴 보이기에 올인(all in)하는 탤런트형 정치인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데 유력한 대권 후보로 거론되는 한 도지사가 “전염병이 쓰나미로 몰려올 것”이라 경고했다는 뉴스가 들어왔다. 중국발 바이러스가 전 세계로 확산된 지 ‘무려’ 4개월 만에 듣는 말이다. 삼척동자도 알고 있는 상황을 예언자처럼 지금에야 던진다. 그 사람이 그동안 무엇을 했는지 살펴보았다. ‘신천지 교회’ 때려잡는 일과 ‘정부 돈 퍼주기’ 외에 특별한 것이 없다. 《뉴욕 타임스》가 종교탄압이란 뉘앙스로 보도한 ‘신천지 박멸’이 그동안의 업적이다. 현란한 쇼와 한여름 밤의 폭죽 같은 이벤트로 점철된 전형적인 탤런트 정치인, 아니 광고업자 12번 캐릭터로서의 행적이다.
 
  영화 〈12인의 성난 사람들〉에서의 현안은 소년 한 명의 생명에 관한 문제였다. 2020년 전염병이 창궐하고 있는 한국에서는 전 국민 모두의 안전과 생명, 나아가 내일이 현안이다. 언제 끝날지 아무도 모른다. 총천연색 다양한 캐릭터들이 전염병 비상국면에 맞춰 속속 등장하고 있다. 지금 당장 보면 이념과 편견, 오판과 자화자찬, ‘탤런트 정치’와 ‘우물 안 개구리’만이 넘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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