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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세하는 좌파

한·미 FTA 재협상? 문재인 대통령이 먼저 풀어야 할 두 가지 숙제

국익은 뒷전…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진보 진영 어찌하나

글 : 김정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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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미 FTA 체결 주도했던 김현종 다시 통상교섭본부장에… 진보 진영은 반발
⊙ 첫 만남에서 노무현 눈에 띈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 나이가 어려 조정관으로 발탁된 뒤
    본부장으로 직행
⊙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 한·미 FTA 500페이지 보고서를 통해 진보 진영의 반미정서와
    ‘내로남불’ 식 태도 지적해
⊙ 트럼프의 한·미 FTA 재협상 카드로 다시 주목받는 진보 진영의 이중성
⊙ ‘코리아패싱’ 현실화되자 발등에 불. 반미·운동권 출신 주변에 즐비해. 인재난 겪나?
  문재인 대통령이 7월 30일 김현종(58) 한국외대 교수를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에 임명했다. 통상교섭본부장은 차관급이지만 대외적으로 ‘통상장관(Minister of trade)’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며 장관급 직무를 맡는다. 문 대통령이 김 본부장을 부른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 사후 이번이 세 번째다. 김 본부장은 2012년 대선에서도 문재인 캠프에 합류했고 20대 총선에서도 더불어민주당에 영입돼 인천 계양갑에 출마했다. 이번 2017년 대선 캠프에서는 문 대통령의 외교자문그룹 ‘아그레망’에 참여했다.
 
  김현종 본부장은 노 전 대통령의 개국공신(開國功臣)들이 한목소리로 한·미 FTA 추진을 반대할 때 칙명을 비밀리에 준비해 체결까지 이룬 대미 무역의 개방공신(開放功臣)이다. 그랬던 그에게 문재인 대통령이 무역협상의 키를 줬다. 김 본부장이 다시 키를 쥐자 진보 진영은 다시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진보 진영의 반미정서와 ‘내로남불’식 태도 지적한 김현종, 첫 만남에 노무현 눈에 들어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7년 8월 24일 오전 청와대에서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 등 9명의 임명장을 수여한 뒤 환담을 나누기 위해 자리를 옮기고 있다.
  김 본부장은 노 전 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에는 일면식도 없던 사이였다. 노 전 대통령은 정식 취임 전 김 본부장과의 첫 만남에서 김 본부장의 브리핑을 듣고 그를 통상교섭본부장 바로 아래 직책인 통상교섭조정관으로 발탁했다. 그의 교섭 실력을 한번에 알아봤던 것이다. 김 본부장은 한·미 FTA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끈 유일한 경험자다.
 
  그런 그가 다시 노 전 대통령 후계자의 부름을 받았다. 문재인 대통령 측근들 중에는 유독 반미·운동권 출신들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김 본부장과 같은 대미 전문가를 찾기 어려웠을 것이다.
 
  김 본부장은 한·미 FTA 체결을 이뤄낸 과정을 《김현종, 한·미 FTA를 말하다》라는 500페이지 분량의 책에 보고서 형태로 담았다. 왜 노 전 대통령이 한·미 FTA를 추진했는지, 왜 김 본부장이 목숨 걸고 노 전 대통령을 도왔는지 기록한 보고서다. 한·미 FTA의 진행부터 체결까지의 과정도 상세하게 기록돼 있다.
 
  노 전 대통령은 책이 완성되면 꼭 보여달라고 했을 만큼 그의 책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김 본부장은 노 전 대통령과의 첫 만남과 한·미 FTA를 추진하게 된 계기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WTO 법률국에 근무하는 김현종입니다. 통상 분야에서 느낀 점을 몇 가지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당선자(노 전 대통령)께서 고개를 끄덕였다.
 
  “WTO에서는 자국의 국익을 위해 경제 강국들이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국제 간 무역분쟁이 자동차나 반도체 같은 공산품이나 농산물뿐만 아니라 서비스와 지적재산권 그리고 우리 일상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포장마차에서 판매하는 진로, 보해, 황진이, 이몽룡 소주가 위스키와 동종이라는 WTO 판결이 나와 우리 정부는 이들 주류에 같은 세율을 적용해야 했습니다. 최근에는 1997년 외환위기 당시 공적자금을 대출받은 기업과 산업이 상계관세 분쟁으로 흔들리고 있습니다. 반도체와 조선 등 우리나라 수출을 책임지는 여러 분야에 공적자금이 투입되었는데, 선진국들은 이 공적자금을 불법보조금으로 간주하여 우리나라 수출품목에 상계관세를 물리려고 벼르고 있습니다. 당장은 조선업계와 하이닉스사의 반도체에만 상계관세를 부과하는 문제로 분쟁이 걸려 있지만, 여기서 패소하면 전자, 신발, 제지, 가릴 것 없이 우리나라 주요 수출품목 전부가 상계관세를 피할 수 없게 됩니다. 우리나라는 국민총생산의 70%를 무역에 의존하고 있어서 구속력 있는 WTO 분쟁에서 패소하면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그거 문제네요. 어떻게 대처하면 되죠?”
 
  변호사 출신인 당선자께서는 공적자금에 대한 법률적 문제를 즉각 이해했다. 나는 두 번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듯 말했다.
 
  “당연히 승소해야죠.”
 
  노무현 당선자는 알겠다는 듯이 신중한 표정으로 앞에 놓인 메모지를 보았다. 나는 급하게 불을 꺼야 할 분야를 언급한 후 통상전략에 대해 말씀드렸다.
 
  “당선자께서 강조하시는, 대한민국을 동북아 중심 국가로 만드는 전략으로서 FTA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이 필요합니다. FTA를 부정적으로만 보지 말고 국가의 경쟁력 강화에 중요한 전략으로 삼아야 합니다. 대한민국이 국제사회 중심 국가의 일원이 되려면 ‘개방형 통상국가’가 되어야 합니다. 주변 국가들보다 기업 하기 좋은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개방형 통상국가가 되려면 WTO 차원의 다자 체제 무역협상은 물론이고 FTA를 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다자 체제에만 의존해 온 일본과 중국도 벌써 FTA를 체결했습니다. FTA의 장점은 원하는 협정 상대 국가를 택할 수 있고, 자유화 품목을 협상 과정에서 조정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한·칠레 FTA에서는 쌀, 사과, 배를 제외했습니다.”
 
  당선자께서는 조용히 듣고 있다가 말했다.
 
  “쌀은 예외 품목이죠?”
 
  “예,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과정에서 개도국 지위를 인정받아 2004년까지 관세화 유예를 받았습니다. 유예기간 10년이 끝나는 2004년에 다시 관세화 유예는 자동으로 지속된다는 말이 계속 나오는데, 당선자님, 이것은 명백한 거짓말입니다. 절대로 이 말을 믿지 마십시오.”〉
 
  노 전 대통령은 이 순간부터 김 본부장에게 한·미 FTA 추진을 맡기기로 마음먹었다. 다만 40대 초반의 무명(無名)에게 맡기기에는 남들 시선이 있어 본부장 바로 아래 직급인 조정관 자리를 맡겼다. 이 둘이 의기투합하면서 한·미 FTA 추진은 탄력을 받았다.
 
  특히 물러설 줄 모르는 반미정서와 ‘내로남불’식 흙탕물 싸움이 판을 치던 국회에서 균형 잡힌 시각으로 국가의 이득에만 관심을 보이던 김 본부장은 노 전 대통령의 눈에 꼭 필요한 사람으로 보였을 것이다.
 
  당시 진보 진영의 위선이 어느 정도였는지 또 그로 인해 어떤 고뇌를 했는지 그의 보고서는 조용히 기록하고 있다. 그는 한·미와 한·EU FTA 때 시위대 숫자를 비교, 한·미 FTA 반대가 반미정서에 기반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국내 반대자들의 의중을 관찰하면서 한 가지 알게 된 것은 그들이 FTA로 인한 개방 자체보다 미국과의 우호 관계에 반대한다는 점이었다. 대한민국 통상의 수장(首長)으로 이 부분에 동의할 수 없었다. 대한민국은 전 세계 누구와도 실익을 따져 통상 협상을 해야 한다. 어떤 국가에도 굴욕적인 양보를 하지 않으려면 더 철저히 준비하고 실력을 갖추어 협상에 임해야 하는 것이 최대 관건이다.
 
  우리 1차 협상단은 1차 협상을 위해 워싱턴으로 날아갔다. 그 규모가 200명이 넘었고 동행한 기자들도 40~50명에 달했다. 미국 정부는 깜짝 놀랐다. 앞서 출범한 태국과의 FTA처럼 많아 봐야 40~50명을 예상하고 있었는데 이런 대규모 협상단이 워싱턴을 점령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한 것이다.
 
  보안검문 탓에 한국 협상단의 줄이 무역대표부 건물 밖까지 늘어서자 언론은 ‘굴욕적’이라고 표현했다. 밖에 서 있는 원정 시위대들은 우리 협상단에게 “매국노” “협상단이 개구멍으로 들어간다”는 표현들을 써가며 온갖 욕설을 퍼부었다.
 
  그들의 비난이 과연 합당한 것일까?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한·미 FTA 마지막 라운드 때의 시위 규모는 7500명, 호텔을 포위한 경찰 병력은 3000명이었던 반면 한·EU FTA 1차 협상 때의 시위대는 한·미 FTA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소수였고 경찰 병력은 100여 명이었다.
 
  개방 정도는 한·EU FTA가 한·미 FTA보다 크다. 그렇다면 시위대도 더 많아야 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2007년 5월 12일 중국 배가 우리 화물선을 침몰시켜 한국인 선원 7명, 외국인 선원 9명이 실종됐을 때도 중국 대사관 앞에서 대규모 시위를 했다는 보도는 없었다. 그 배가 미국 배였다면 결과가 어땠을까?〉
 
  김 본부장이 기록한 것처럼 미국과 관련한 협상은 단순히 외부 세력과의 협상 문제가 아니었다. 밖으로는 세계 최강국과 협상을, 안으로는 지지층의 반대를 이겨내야 하는 진퇴양난의 상황이 반복됐다. 지금 문재인 대통령과 대한민국이 직면한 상황도 당시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가오는 한·미 FTA 재협상 정국. 상대는 트럼프다. 협상에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두 가지 숙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
 
 
  #1 내로남불식 진보 진영 이제는 정리해야 한다
 
2012년 2월 15일 한명숙 전 대표가 대국민 기자회견에서 “한·미 FTA에 대해 침묵하거나 두둔하는 세력에게 정권을 맡길 수는 없다”고 말하고 있다.
  과거 한·미 FTA가 체결되기까지의 진행 과정을 보면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식의 찬반 논쟁이 주를 이뤘다. 실리를 따지기에 앞서 각 당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기 위한 명분 싸움에 열중했던 것이 사실이다.
 
  한명숙 전 총리는 한·미 FTA를 정치구호로 이용한 대표적인 정치인이다. 그는 노무현 정부 때 국무총리직을 맡으며 가장 앞서 한·미 FTA 추진을 주장했었다. 2007년 1월 ‘한·미 FTA 민간대책위원회’에서 “한·미 FTA는 반드시 성공적으로 마무리해야 된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라고 대표발언을 했다.
 
  하지만 2012년 민주당 당대표에 선출되고 난 후 말을 바꿨다. 그는 취임 1개월 기자회견에서 “우리가 승리하면 반드시 우선 재협상과 전면 재검토를 하게 될 것”이라며 “전면 재검토가 무산되거나 재협상도 무산될 경우에 우리는 폐기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통일부 장관을 역임하는 등 정권의 실세로 활동했던 정동영 전 최고위원 역시 열린우리당 의장 시절 “한·미 FTA가 완성되면 향후 50년간 한미관계를 지탱시켜 줄 기둥이(한·미 군사동맹에 이어) 두 번째로 생겨나는 것”이라고 말하는 등 대표적인 한·미 FTA 찬성론자였다.
 
  그랬던 그가 2011년 10월 외교통상위에서는 한·미 FTA를 “제2의 을사늑약”이라고 정의하는가 하면 당시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에게는 “옷만 바꿔 입은 이완용”이라고 했다. 또 같은 달 이뤄진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는 “미국 월가 시스템이 한·미 FTA 아니냐. 월가가 병들어서 고치라고 아우성인데 한국만 미국식을 쫓아가자고 역행하고 있다”며 한·미 FTA 폐기를 주장했다.
 
  이런 진보 진영의 ‘내로남불’식 행태는 ‘야합’을 이뤄내야 하는 현실정치에서 비롯되는 측면도 있다. 손학규 의원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2011년 한·미 FTA를 두고 여야가 한 치도 양보하지 않을 때 민주당 당대표였던 손학규 의원이 중재에 나섰다. 손 의원은 경기지사 시절에 외화유치에 발 벗고 나섰던 통상론자이자 FTA 찬성론자였다.
 
  그랬던 그가 같은 해 11월에 열린 의원총회에서는 한·미 FTA 여야 합의안에 대해 “차선이라도 취해야 한다는 현실적 고뇌가 담긴 협상”이라면서도 “야권연대 역시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문제”라고 했다. 군소야당과 사전에 협의하지 않은 것에 사과하며 “피해산업 대책도 더 논의되어야 하지만 특히 야권연대 문제가 있으니 당장 할 필요는 없다. 오늘 처리를 유보하자”고 했다. 당시 손 대표 주변에서 “소신대로 찬성했어야 했다”는 이야기가 나올 만큼 민주당의 한·미 FTA 반대는 ‘반대를 위한 반대’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이런 이유로 당시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는 손 의원을 뺀 8명 가운데 7명이 한·EU FTA에 반대하거나 더 늦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몇몇 최고위원은 “협상 결과는 좋게 평가하지만 야권연대와 연합을 위해 5월 혹은 6월로 넘겨서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합의안을 도출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당시 반대한 7명은 노무현 정권에서 통상과 직결된 산업자원부 장관을 지냈던 정세균 의원을 포함, 정동영·천정배·이인영·박주선·조배숙·김영춘 의원이다.
 
  한·미 FTA 타진에 단호한 의지를 보였던 노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문 대통령도 말을 여러 번 바꿨다. 문 대통령이 2007년 대통령비서실장일 당시 한·미 FTA 타결 전 반대여론이 국가 소송제도(ISD)를 문제 삼자 민정수석실(전해철 민정수석)은 ‘ISD 반대는 세계화를 하지 말자는 것’이라는 제목의 반박자료까지 냈다. 반박자료에는 “ISD는 세계적으로도 보편적인 투자자 보호제도”라며 “ISD가 독소조항이라면 국제사회가 독에 감염돼 있다는 말밖에 안 된다”는 주장이 담겨 있었다.
 
2011년 12월 11일 서울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야권통합을 위한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손학규 대표 등 당직자들이 한·미 FTA 무효 결의문에 따라 구호를 외치고 있다.
  문 대통령의 저서 《문재인의 운명》에서 문 대통령은 “노 대통령은 한·미 FTA 협상을 철저하게 국익을 따지는 장사꾼의 논리로 하라고 지시했다”면서 “우리가 교섭에서만큼은 미국에 주눅 들지 않고 최대한 우리 이익을 지켜내려고 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한·미 FTA가 확정됐을 당시 진보 진영의 분위기는 험악했다. 노무현 정권과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던 진보 성향 단체의 비난도 거셌다. 문재인 대통령이 소속돼 있었던 ‘민주주의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등 270여 진보 성향 단체들은 운동본부를 통해 “참여정부가 한·미 FTA를 강행하는 모습에서 과거 권위주의 정부의 어두운 그림자를 본다”고 주장했다. 당시 문 비서실장은 한·미 FTA의 타당성을 옹호했다.
 
  2011년 정권이 바뀌자 문 대통령의 자세는 바뀌었다. 당시 민주당에서 주장한 “ISD를 폐기해야 한·미 FTA 비준안 처리에 동의할 수 있다”는 의견에 대해서 찬성하는 입장으로 선회했다. 문 대통령은 인터넷방송 〈나는 꼼수다〉 25화에 출연해 한·미 FTA 비준안 문제에 대해 “참여정부 때 추진되고 타결됐지만 지금 현 상태에서 비준하는 것은 결단코 반대한다”며 “참여정부 때 타결했던 상황과 너무나 많이 달라졌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 재협상을 통한 추가 양보가 너무 컸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당시 한·미 FTA 중간 성적은 어땠을까. 노무현 정부에서 체결하고 MB정부에서 진행한 지 1년이 지난 2012년, 관세청 보고에 따르면 한·미 FTA가 발효되고 1년이 지난 시점 대미수출액은 537억 달러로 전년대비 2.67% 증가했다. 반면 수입액은 390억 달러로 전년대비 7.25% 줄었다.
 
  또 5년간 교역에서는 한국 제품 점유율이 2.6%에서 3.2%로, 한국의 수입에서 미국 제품은 8.5%에서 10.6%로 각각 올랐다. 결과만 놓고 봤을 때는 한·미 FTA 협상에서 한국의 양보가 컸다는 문 대통령의 주장이 무색하다.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노 전 대통령의 큰 그림을 봐왔을 그가 내세운 논리라고 보기엔 어딘가 설득력이 떨어져 보인다.
 
  이런 문 대통령의 오락가락한 태도에 대해 안희정 충청남도지사가 지적을 하기도 했다. 안 지사는 진보 진영 인사이면서 일관되게 한·미 FTA 찬성을 주장하고 있는 정치인이다. 안 지사는 2017년 더불어민주당 후보자 경선 TV토론에서 한·미 FTA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말 바꾸기를 지적했다.
 
  당시 문 대통령은 “한·미 FTA 협상을 다시 해야 한다”고 했고 안 도지사는 “노무현 정부가 추진해 성사시킨 FTA를 이명박 정부의 재협상 때문에 반대한다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같은 날 오후 대전에서 열린 민주당 경선 9차 TV토론에서도 문 대통령을 향해 “열린우리당 출신 많은 선배들이 FTA 협정은 신자유주의에 물든 잘못된 협정이라고 공격했다”며 “우리가 여당이었을 때 추진한 한·미 FTA를 야당 된 순간 폐기하거나 재협상하자고 했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이런 문 대통령의 갈팡질팡 행보에 대해 “한·미 FTA를 내심 찬성하지만 정치적으로 그럴 수 없는 입장의 진보 정치인들이 내세우는 핑곗거리(ISD)”라고 주장한다.
 
  노무현 정부 시절부터 MB정부까지 일관되게 한·미 FTA 반대를 주장했던 정태인 전 국민경제비서관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민주당이 ISD를 유일한 독소조항이라 주장한 것에 대해 “한·미 FTA는 미국식으로 우리나라의 법과 제도를 다 바꾸겠다는 게 핵심”이라며 “ISD가 없더라도 한국의 사회경제 시스템이 미국식으로 바뀌는 것이기 때문에 여전히 문제가 있고 민주당 내에서 한·미 FTA를 통과시키고 싶은 몇몇 사람이 ISD 폐기를 앞에 내세우고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비슷한 맥락에서 한·미 FTA를 바라보고 있다는 설명이다.
 
 
  #2 반미·운동권 출신으로 채워진 청와대, 대미 협상 땐 오히려 독이 될 것
 
2011년 11월 29일 청와대에서 한·미 FTA 비준안 서명을 위한 국무회의가 열리는 동안 당시 야5당 의원들이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한·미 FTA 비준안 서명을 비난하며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미 협상 문제를 유익하게 해결하기 위해 해결해야 할 두 번째 숙제. 무조건 미국이라고 하면 반대하는 위선자들을 솎아내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를 이끌 새 얼굴들은 과거 반미정서가 강했던 운동권 인사들이다.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신동호 연설비서관·백원우 민정비서관·한병도 정무비서관·유행렬 자치분권비서관실 행정관까지 전대협(전국대학생연합) 출신만 5명이다. 특히 임 비서실장은 주사파 출신으로 사상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청와대 정책실장에 임명된 장하성 교수는 반미·좌파적 경제인사로 분류된다. 그는 2010년에 열린 출판기념 기자간담회에서 “한·미 FTA는 30년 후에나 해야 한다”며 “FTA는 수준이 비슷한 나라끼리 하면 득을 보는 게 많지만 수준 차이가 나는 나라 사이에 하면 장기적으로 손해를 보게 된다”는 발언을 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자유무역협정이란 용어 자체에 어폐가 있다”며 “한쪽과 협정을 맺으면 다른 쪽을 차별하게 되는 만큼 적당한 용어가 아니다”라고 했다. 한·미 FTA 재협상 합의 관련한 보도가 나왔을 때는 청와대의 공식 입장이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민족주의·반미·학생운동으로 성장한 이들이 트럼프가 이끄는 미국과 일합(一合)이라도 제대로 겨룰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진보 진영의 오랜 정치적 동지들 역시 문 대통령이 넘어야 할 산이다. 이들은 일관된 반미파들로 타 정당이지만 수장 격으로 설득 자체가 불가능한 존재일 수도 있다.
 
  대표적 인물로 국민의당 천정배 전 대표와 심상정 정의당 전 대표가 있다. 이들은 문 대통령과 한·미 FTA를 대했던 자세가 다르다. 법무부 장관을 역임했던 천정배 국민의당 의원은 대표적인 한·미 FTA 반대파다. 천 의원은 노무현 정부가 한·미 FTA를 추진할 당시 수십 일간 단식을 하며 노무현 정부를 유신시대와 5공 시절에 빗대 비난했다.
 
  심상정 정의당 전 대표 역시 한·미 FTA 반대를 일관되게 주장한 대표적 진보 진영 인사다. 심 전 대표는 2007년 대선에 출마하면서 ‘한·미 FTA 저지’를 공약으로 내세웠고 MB정부 때는 한·미 FTA 반대송을 부르기도 했다. 이번 2017 대선 때도 ‘한·미 FTA 재협상’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진보단체들은 일관되게 한·미 FTA를 반대해 온 천 의원이나 심 의원을 지지하는 한편 문재인 대통령을 거세게 비난하고 있다. 전국농민회총연맹은 7월 25일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내는 농민들의 긴급 공개 호소문’을 통해 “문 대통령의 김현종 임명은 촛불 혁명을 배신한 것”이라며 “김현종씨는 농민의 고통과 호소를 외면하고 한·미 FTA를 추진했던 장본인으로서 일고의 반성도 없이 삼성에 입사해 관피아의 본모습을 유감없이 드러낸 사람”이라고 밝혔다.
 
  진보매체로 분류되는 ‘민중의 소리’는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취임하자 “김현종 임명은 촛불과 백남기를 배신하는 것”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냈다. 칼럼은 김 본부장을 ‘노무현 정부 시절에 한·미 FTA 협상을 이끈 인물’로 지적하며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촛불항쟁의 주역이었던 전국농민회총연맹은 신임 통상교섭본부장 임명에 대해 배신이라며 분노를 나타냈다. 농민단체가 이토록 강력하게 반발하는 것은 한·미 FTA뿐만 아니라 고 백남기 농민을 사망에 이르도록 만든 책임으로부터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도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노무현 정부의 실패에서 아무런 교훈을 찾지 못하고 있다. 독소조항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인사를 통상교섭본부장으로 세운다면, 한·미 FTA는 또 다른 개악의 운명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한·미 FTA 잔혹사… 밖으로는 세계 최강국, 안으로는 지지층과 대립
 
  한·미 FTA는 정치적 입지와 민관을 구분하지 않는 이권 및 생존권이 걸린 복잡한 사안이다. 대기업부터 농민에 이르기까지 모두를 만족시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한·미 FTA는 2004년 양국이 정식으로 의견을 교환했다. 2006년 본격 협상에 들어가 2008년 발효됐다. 한·미 양국 누구에 더 이득인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미국무역위원회(USITC)의 보고서는 한·미 FTA가 체결될 경우 한국의 대미국 수출은 21.4%, 미국의 대한국 수출은 53.9%씩 늘어날 것으로 추정했다. 반면 한국은 내수시장이 17배 큰 미국시장을 보고 한·미 FTA 협상을 추진했다. 이렇다 할 결과물을 보여줄 수 없는 상황에서 한·미 FTA 협상 체결은 녹록지 않았다. 당시 미국과 7위 교역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레임덕 상황에서 협상을 마무리 지어야 하는 열악한 상황이었다.
 
  FTA는 모든 관세·비관세 장벽을 철폐한다는 원칙을 따른다. 하나의 경제권으로 묶여 제도·관행·규범 등 경제 부문에서 전반적인 변화를 겪게 된다. 이런 점에서 당시 한국 정부가 가장 우려했던 분야가 농업이었다. 평균 46.2%의 고관세로 보호를 받던 국내 농산물이 값싼 미국산 농산품과 관세보호 없이 경쟁해야 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쌀을 협상에서 배제할 가능성마저 두는 강수를 뒀지만 협상은 난항을 겪었다. 막판까지도 농업 관련 협상이 최대 쟁점으로 부각되면서 결과를 알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 전 대통령의 뚝심은 한·미 FTA 체결이라는 업적을 남겼다. 14조1000억 달러(약 1경3000조원) 규모의 세계 3위 경제권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EU(유럽연합 15조3000억 달러),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 15조1000억 달러)를 잇는 거대 시장이 출범했다.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한·미 FTA 타결을 선언하던 날,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한·미 FTA는 미국이 캐나다, 멕시코와 맺은 NAFTA 이후 세계 최대의 FTA”라며 양국 간 공산품의 관세가 100% 철폐되고 이 중 94%는 3년 내에 철폐된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성공적인 협상으로 볼 수 있었지만 진보 진영의 반발은 여전히 거셌다. 2007년 7월 미국산 쇠고기가 대형 마트 중 최초로 전국 53개 롯데마트 매장에서 선보였지만 일부 시민단체의 반발로 서울역점 등 6개 점포에서 판매가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해 같은 달 13일 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 관계자 100여 명은 롯데마트 서울역점에서 “광우병 위험 있는 미국산 쇠고기를 반대한다”는 시위를 벌였으며, 청주·충주·안성·광주점에서도 지역 시민단체에서 몰려와 판매 중단을 요구하는 농성을 벌였다. 2008년 보수 정권이 들어서자 한·미 FTA에 대한 비난 여론은 더욱 거세졌다. 일부 시민단체가 주장했던 광우병 괴담이 전국에 퍼졌다. 갓 태어난 정부는 본연의 목소리를 낼 겨를도 없이 성난 군중의 물결에 휩쓸려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었다.
 
 
  언제 닥칠지 모를 한·미 FTA 재협상 정국, 이제는 명분보다 실리가 중요
 
  2008년 이후 1년여간 침몰 위기를 겪은 한·미 FTA는 2009년 말부터 제도권에 들어섰다. 한국은 미국의 재협상 요구를 받아들였다. 한국은 자동차 부문에서 추가 양보를 했고 오바마는 적극적으로 비준안 통과를 추진했다. 반면 민주당은 이명박 정부가 재협상을 해서 “이익의 균형을 깼다”며 한·미 FTA 반대로 돌아섰다.
 
  그랬던 민주당이 이제는 다시 한·미 FTA를 지키기 위해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전략적 인내’로 통했던 오바마 정부와 달리 트럼프라는 강적을 만났기 때문이다. 코리아패싱이 언급되며 한국의 대미 외교력 부재에 대한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는 상황에서 실리 없는 명분 쌓기를 하다가 한미관계가 틀어질 수 있다는 점도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 7월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미대선 전부터 언급해 오던 한·미 FTA 재협상을 공식화했다. 이번 달 공식화된 북미자유협정(NAFTA)이 재협상에 돌입하면 내년 하반기에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트럼프가 “우리는 지금부터(한국과) 무역협상을 재협상하고 있다”고 몰아치면서 한·미 FTA 재협상을 기정사실화했다. 또 한·미 FTA에 대해 ‘끔찍한(Horrible)’이란 표현을 쓰며 재협상하거나 종료하길 원한다고 공식적으로 발언했다. 우리 정부는 ‘종료’를 언급한 것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미 FTA는 양국의 합의가 필요 없이 한쪽에서 종료를 희망한다는 의사를 서면으로 통보하면 180일 후에 종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후 한·미 FTA 관련 잘한 것이 하나 있다고 한다면 지지층이 반대하는 한·미 FTA 최고 전문가를 다시 불렀다는 점이다. 한·미 FTA 협상 관련해서 노무현 정부의 가장 큰 과제가 불확실성에 대한 과감한 모험이었다면 문재인 정부의 가장 큰 과제는 철저한 국익 추구여야 한다.
 
  그게 가능하기 위해선 국익보다 사익을 추구하는 위선자들부터 정리해야 한다. 수많은 구설에 올랐던 한·미 FTA는 이제 5년의 경험을 통해 실체가 어느 정도 드러난 상황이다. 한·미 FTA가 공식적으로 재협상을 하게 될지 여부는 아직 미지수다. 만약 재협상의 가능성이 있다면 외부적인 문제를 해결하기에 앞서 집안 문제부터 해결하는 것이 순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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