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거 끝나면 위임받은 국민 권한 멋대로 왜곡·배신하는 국회… 견제 도구 필요
⊙ 구조적 한계에 직면한 한국 대의민주주의 보완해 한국형 모델로 발전시켜야
⊙ 엄격한 운용 통해 제도적 허점 막고 종북세력의 악용 경계해야
成三英
⊙ 46세. 청주대 사회학과 졸업.
⊙ 한국정책거래소 대표, 북한민주화청년학생포럼 기획이사.
⊙ 구조적 한계에 직면한 한국 대의민주주의 보완해 한국형 모델로 발전시켜야
⊙ 엄격한 운용 통해 제도적 허점 막고 종북세력의 악용 경계해야
成三英
⊙ 46세. 청주대 사회학과 졸업.
⊙ 한국정책거래소 대표, 북한민주화청년학생포럼 기획이사.
- 본회의 연기로 텅 빈 국회 본회의장.
민주주의의 핵심은 ‘국민’이다. 국민의 요구를 제대로 반영하는 것은 대의(代議)민주주의에서 국회와 정치인이 해야 하는 중요한 역할이다. 그럼에도 요즘 대다수 국민은 정치인과의 소통에 불편함과 답답함을 느끼고 있다.
선거 때마다 정치인들은 기득권 포기와 국민 불편에 귀기울이겠다고 국민 손을 꼭 잡아준다. 지난해 치른 국회의원 총선거와 대통령 선거에서는 이 약속이 어느 때보다 구체적이고 강하게 표출됐다. 하지만 선거가 끝난 다음 국회는 자신들에게 부여된 기득권을 당당하게 지키는 것으로 낯두꺼움을 보여줬다. 지금 우리 정치는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쇄신의 발목을 잡고 있고, 국민 이익보다 당파 이익에 더 가까이 다가가 있다. 이로 인해 많은 국민은 희망을 가져다주는 새 정치, 기득권을 변화시킬 수 있는 정치인 출현에 기대를 갖고 있다.
우리 사회에 정치 쇄신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뚜렷하다. 짧은 시간에 이뤄진 사회 환경, 기술 환경 등의 발전은 개인 사이, 사회 집단 사이에 다양한 소통 및 교류 방식을 만들었고 사회적 의사 표현의 르네상스 시대를 열어줬다. 이러한 사회 환경은, 산업화와 민주화가 이뤄낸 성과의 융합을 통한 시대 간 화해와 그 토대 위에 한국 민주주의가 다음 단계로 진화해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
필자는 한국 민주주의가 다음 단계로 진화하기 위한 제도적 정치 쇄신 방안으로 국민입법권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국회 권한 일부를 국민과 공유해야
국민입법권은 용어의 생소함으로 처음 접할 때 오해가 있을 수 있다. 국민입법권은 대의민주주의의 기본 틀 내에서 운영된다. 국회의 고유 권한인 입법권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국민에게 독립된 입법권이 보장돼야 한다는 주장도 아님을 명시한다.
국민입법권은 국회가 자신의 권한 일부를 국민과 공유하는 것에 관한 문제다. 선거가 끝난 후에 국민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국회가 국민의 뜻을 자의적으로 왜곡, 배신하는 것에 대한 견제 도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선거 기간에 약속한 것을 지키도록 압박하는 제도적 장치로 국민입법권 도입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면 국민입법권이란 무엇인가.
국민입법권은 ‘국민 개개인이 우리 주변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사회적 문제에 대해 스스로 정책을 만들어 국회에 입법을 제안하는 국민 정치 권리’로 정의할 수 있다. 이 새로운 국민 정치 권리를 위해 국회의 양보가 필요하다. 더불어 국민입법권을 통해 국민의 정치 권리가 합리적으로 실현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원칙이 합의돼야 한다.
첫째, 국회 안에 국민이 제안한 법안을 다루는 ‘국민입법 심사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 ‘국민입법 심사위원회’에서 1차 심사를 진행한 후 관련 상임위원회로 넘겨 2차 심사를 진행, 다시 법제사법위원회로 넘겨 3차 심사를 진행한 후 본회의에 상정해 결론을 내리도록 하는 절차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 통해 국회와 국민 사이의 정책 교류 형태가 정착되도록 한다.
둘째, 국민이 제안한 법안 심사는 일정한 기간 내에 그 법안에 대한 찬반을 마무리하도록 한다. 이는 최소한 국민 요구가 여야(與野) 간 정쟁 대상으로 전락하는 것을 경계해야 함을 뜻한다.
셋째, 심사 과정과 결과는 공개하도록 한다. 국민이 제안한 법안 심사에 참여한 국회의원들의 찬성, 반대의사를 국민이 알게 해 책임 정치가 자리 잡도록 해야 한다.
국민입법권의 의미를 요약해 보면, 국민이 제안한 정책 법안을 국회가 적법한 절차와 여야 간 토론을 통해 심사함으로써 국민의 요구를 수용하는 제도적인 장치다. 이 제도적 교류시스템은 철저히 국회의 입법권을 존중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동시에 국회가 제도적으로 국민 요구를 수용해 국민의 정치에 대한 갈증을 해소해 주는 형식적 역할까지 가능하게 한다. 이는 대의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정책 정당 활성화 및 현실화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국민입법권은 생소한 영역이다. 그 어느 국가도 경험하지 못한 국민입법권 제도는 한국형 민주주의를 만들어줄 수 있다.
대의민주주의의 한계 보완
우리의 민주주의 역사는 대한민국을 건국하면서 국민에게 투표권을 부여하는 것에서 시작됐다. 1960~70년대 경제 우선주의와 북한과의 경쟁과정에서 민주주의가 왜곡되고 굴절됐던 시기도 있었지만 1980년대를 지나면서 국민 권리와 정치 환경의 비약적인 발전이 이뤄졌다. 그러나 현재 우리 정치 상황은 민주주의 발전을 지속시키지 못하고 정체돼 있다.
우리는 종종 국회의원들이 국민에게 직접 호소하기 위해 국회를 벗어나 거리 정치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는 그동안 국민이 힘을 모아 만들어온 제도적 성과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는 행동으로 비칠 수 있다. 정치의 출발은 국민에게 있다.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는 행위 예술이 정치일 수 있는데 우리 국회는 스스로 특권의 울타리를 해체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압축 성장한 한국 민주주의가 극복해 가야 할 환경적, 구조적 한계가 아닌가 한다.
이 글의 주요 쟁점은 국민입법권이 정치 쇄신의 핵심이라는 주장이다. 선거 때마다 정치 쇄신이 단골 메뉴로 나오고 이것이 되풀이되고 있다는 것은 우리의 민주주의가 위기에 직면해 있음을 알려주는 것과 다름없다. 현실 속에서 우리의 민주주의가 어떤 한계를 보이고 있는지 살펴보자.
현재 우리의 대의민주주의는 국민 주권을 선거 시기에만 행사하는 투표권에 가둬놓고 있다. 지난 총선 시기를 되돌아보자. 정당과 후보자들은 국민 비판을 의식해 앞다투어 특권 포기를 선언하며 표를 얻어갔다. 그런데 선거가 끝난 후 어떻게 됐는가. 국민에게 약속했던 특권을 포기했다는 소식을 누구도 들을 수가 없었다. 우리의 대의민주주의는 선거가 끝나면 국민이 정당과 국회를 견제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에서 구조적인 한계가 있다.
대의민주주의는 안정적인 정당을 기반으로 국민과 교류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정당은 선거결과와 정치 환경에 변화가 있을 경우 당명을 바꾸거나 다른 세력과의 합당을 너무 쉽게 하는 경향이 있다.
1990년대 이후 새누리당은 네 차례, 민주통합당은 여섯 차례 정도 당명을 변경했다. 이를 통해 우리가 경험한 사실은 정당이 국민을 가운데 두고 정권을 얻기 위해 서로 싸우기만 했을 뿐 국가 이익이나 시급한 민생 문제는 마지막 순간에 마지못해 타협하는 모습뿐이다.
이러한 현상은 정당이 국민에 대한 의무를 올바르게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정당 내부의 정치적 지향점에 대한 토론과 합의가 이뤄지지 못하는 원인이 돼 대의민주주의 약화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 속도는 빠르고 국민의 참여는 강렬하다. 그런데 현재 한국의 대의민주주의 운영시스템은 국민의 요구와 참여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국민은 자연스럽게 구세주에 가까운 정치인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게 된다. 이러한 우리의 정치 현실은 국민의 직접민주주의 확대 요구와 구세주형 정치 신인의 출현을 바라는 열망의 경계에 자리 잡고 있음을 말해준다. 정치 위기의 본질이다.
구세주형 정치 신인에게 정치 쇄신의 짐을 지우게 된다면 기존의 정치를 모두 해체의 대상으로 인식해 그동안 발전시켜 온 민주주의의 성과를 무시할 수도 있다. 오히려 국민의 요구를 수용하기 위해 합리적인 제도 개혁을 통해 국민의 직접참여 기회를 보장하는 것이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지름길이다. 국민이 한국 정치에 쇄신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기득권과 특권을 옹호하는 정치가 국민의 삶과 국가의 미래에 희망을 줄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입법권이 지금 단계에서 한국 민주주의 제도 개혁의 하나로 기록될 수 있고, 국민에게 정치적 희망이 될 수 있다.
국민 누구나 국민입법 제안
현재 한국 정치에서 국민입법권이 제기된 근거는 우리 대의민주주의가 구조적 한계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정치 쇄신 논란이 반복해서 제기되고 있으며, 국민의 참여 욕구가 확산되고 있다. 국민입법권이 한국 정치가 직면한 모든 문제에 대안이 될 수는 없겠지만 의미 있는 제도적 개혁 수단임 또한 부인될 수 없다. 이 시점에서 국민입법권에 대해 보다 구체적인 접근을 시도해 볼 필요가 있다.
국민입법권은 국가와 국민을 위한 한국형 대의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를 위해 국민에게 정책 법안 제안권을 부여하고, 국회에 적법한 심의 기능을 추가하자고 제안하는 것이다.
헌법 26조는, 국민이 국가기관에 문서로 청원할 권리와 국가의 심사 의무에 대해 명시하고 있다. 실제 국회에 청원하는 국민들도 많이 있다. 그러나 국회의원의 소개를 받아 내는 청원은 대부분 해당 국회의원실에서 잠자고 있는 실정이다.
청원권은 국민 개인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기본권으로 ‘피해의 구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는 청원 결과에 대한 강제성이 부족하다. 헌법재판소(1997.7.16 93헌마237 전원재판부)에 의하면, “청원 사항의 처리 결과에 심판서나 재결서에 준하여 이유를 명시할 것까지를 요구하는 것은 청원권의 보호 범위에 포함되지 아니” 한다. 이는 청원대상 기관의 심사 결과를 우선시하는 맹점이 있다. 청원권의 의미와 한계이며 잘 활용될 수 없는 이유다.
민주주의는 사회변화 발전에 따라 국민의 요구를 제도로 수용할 때 해당 국가에 적합한 틀로 정착될 수 있다. 국민입법권은 국민의 민주주의에 대한 의무와 책임 강화, 국회에 대한 압박적 견제의 현실화, 사회적 요구를 반영하는 통로를 제시하는 것에서 청원권과 다르다. 현재 한국의 민주주의 상황은, 헌법 26조 청원에 이어 국민입법권이 법률로 보장되기에 충분한 환경을 갖췄다.
그러면 국민입법 제안은 누가 할 수 있으며, 어디까지 가능해야 하는가. 기본적으로 국민입법 제안은 두 가지 방식으로 진행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이익단체, 기업연구소 등 이해관계 당사자를 제외한 국민과 시민사회단체가 직접 국회에 제안할 수 있게 한다.
국민입법 제안이 단순히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형식 요건을 갖춰야 한다. 예를 들어, 국민입법 요지서, 국민입법 초안, 국민입법 제안자 정보 등이 포함돼야 한다. 국민입법 제안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적정수의 국회의원 혹은 원내교섭단체 기준 20명의 국회의원이 공동 제안하는 방법도 고려돼야 한다. 정책법안 제안자에게 민주주의에 대한 의무와 책임을 명확히 인식하게 하고 제안자에게 주어진 정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이다.
다른 방법은 국민입법 제안이 가능한 개인이나 시민사회단체가 정당과 정책제안 파트너가 돼 정당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국회에 제안하도록 한다. 이러한 방식은 국민이 입법권에 접근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지원하고 정당의 정책기능을 활성화해 대의민주주의 진화에 기여할 것이다.
국민입법권이 제도적으로 보장된다고 해서 모든 영역이 대상으로 인식돼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제도 보완은 그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고 민주주의 진화에 의미가 있다. 우리 사회의 근간인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할 수 있는 사안은 원칙적으로 금지해야 한다. 우리 정치 현실에서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내용은 국회의원이 불합리하게 누리는 특권, 정치권에서 외면하고 있는 민생 문제, 우리 사회를 위협하는 것으로부터 방어하는 문제 등을 주로 제안할 수 있다.
현실적으로 한국은 불완전한 국가를 유지하고 있다. 북한의 정치군사적 위협이 멈추지 않고 있으며 분단의 특성상 북한을 지지하는 정치세력, 시민사회세력, 개인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입법권이 도입된다면 국회는 매우 엄격한 운영을 통해 제도적 허점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국민입법권을 생동감 있게 운영하기 위해서는 앞에서 언급한 국회 안의 적법한 절차와 투명성이 원칙적으로 지켜져야 한다. 그리고 국민의 활발한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는 보상에 관한 내용도 포함되면 좋을 것이다.
사회 갈등 넘어 ‘한국형 민주주의’로
국민입법권은 한국 민주주의가 더욱 튼튼하게 진화할 것을 기대하는 의미에서 제안된 것이다. 한국이 걸어온 민주주의 과정과 직면한 현실을 감안해야 한다. 한국 사회가 국민입법권을 올바르게 수용하기 위해 공유해야 할 인식이 있다.
국민입법권은 대한민국 건국 이후 이룬 산업화와 민주화 유산의 융합에 의해 태어났다. 우리 사회는 보수와 진보로 나누어져 이념 갈등, 세대 갈등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백년전쟁’을 둘러싼 역사전쟁까지 겹쳐져 그 끝이 어디일지 짐작하기조차 어렵다. 우리 사회는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국가가 걸어온 객관적 사실과 개인들의 정치적 견해가 혼동되면서 과거를 부정하는 현상이 발생했다.
이러한 혼란에서 벗어나기 위해 역사적 사실에 해당하는, 1948년 8월 15일 건국된 대한민국 정통성, 박정희(朴正熙) 시대의 군사 정변과 유신 헌법에 의한 민주주의 왜곡, 그리고 박정희 시대에 이뤄진 산업화가 현재 한국 경제성장의 기초가 됐다는 것 등에 대한 인식 공유가 이뤄져야 한다. 국민입법권은 모든 역사의 공과를 바탕으로 한국 민주주의의 현재와 미래를 개척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국가가 분단된 상황에서 북한에 대한 현실 인식을 분명히 하고 국민입법권을 수용해야 한다. 한국 민주주의를 이야기하면서 북한을 비판하지 못하거나 북한의 잘못을 모른 척 넘겨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는 민주화 과정에서 북한을 추종하는 세력까지 양성시켰다. 현재 종북세력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하고 있다. 남북이 정치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우리 사회 내부에서 북한을 추종하는 세력에 대한 경계는 늦추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이들에게 한국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대한민국과 북한에 대한 정체성을 분명히 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
위기와 기회는 항상 같이 있다. 현재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국민 욕구가 매우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우리의 정치 현실은, 기득권 정치에 대한 국민의 반발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그럼에도 국회는 스스로 대안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그런 까닭에 국민은 축적된 대의민주주의 정치시스템이 아닌 다른 대안에 대해 열광하는 것이다. 이는 위기 상황이라 볼 수 있다.
국민입법권은 위기에 빠진 한국 민주주의를 기회로 바꾸어줄 수 있다. 국민과 정치권이 힘을 모아 국민입법권 실현을 위한 의무에 충실해야 할 이유이다. 국민입법권이 우리 사회에 구체화된다면 머지않아 한국은 다른 국가에 산업화 모델과 민주주의 모델을 동시에 수출하는 유일한 나라가 될 것이다. 국가의 품격이 세계 속에서 높아질 수 있으며 한국 국민은 어디를 가도 존중받는 국가의 국민으로 기억되게 할 것이다.⊙
선거 때마다 정치인들은 기득권 포기와 국민 불편에 귀기울이겠다고 국민 손을 꼭 잡아준다. 지난해 치른 국회의원 총선거와 대통령 선거에서는 이 약속이 어느 때보다 구체적이고 강하게 표출됐다. 하지만 선거가 끝난 다음 국회는 자신들에게 부여된 기득권을 당당하게 지키는 것으로 낯두꺼움을 보여줬다. 지금 우리 정치는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쇄신의 발목을 잡고 있고, 국민 이익보다 당파 이익에 더 가까이 다가가 있다. 이로 인해 많은 국민은 희망을 가져다주는 새 정치, 기득권을 변화시킬 수 있는 정치인 출현에 기대를 갖고 있다.
우리 사회에 정치 쇄신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뚜렷하다. 짧은 시간에 이뤄진 사회 환경, 기술 환경 등의 발전은 개인 사이, 사회 집단 사이에 다양한 소통 및 교류 방식을 만들었고 사회적 의사 표현의 르네상스 시대를 열어줬다. 이러한 사회 환경은, 산업화와 민주화가 이뤄낸 성과의 융합을 통한 시대 간 화해와 그 토대 위에 한국 민주주의가 다음 단계로 진화해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
필자는 한국 민주주의가 다음 단계로 진화하기 위한 제도적 정치 쇄신 방안으로 국민입법권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국회 권한 일부를 국민과 공유해야
국민입법권은 용어의 생소함으로 처음 접할 때 오해가 있을 수 있다. 국민입법권은 대의민주주의의 기본 틀 내에서 운영된다. 국회의 고유 권한인 입법권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국민에게 독립된 입법권이 보장돼야 한다는 주장도 아님을 명시한다.
국민입법권은 국회가 자신의 권한 일부를 국민과 공유하는 것에 관한 문제다. 선거가 끝난 후에 국민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국회가 국민의 뜻을 자의적으로 왜곡, 배신하는 것에 대한 견제 도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선거 기간에 약속한 것을 지키도록 압박하는 제도적 장치로 국민입법권 도입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면 국민입법권이란 무엇인가.
국민입법권은 ‘국민 개개인이 우리 주변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사회적 문제에 대해 스스로 정책을 만들어 국회에 입법을 제안하는 국민 정치 권리’로 정의할 수 있다. 이 새로운 국민 정치 권리를 위해 국회의 양보가 필요하다. 더불어 국민입법권을 통해 국민의 정치 권리가 합리적으로 실현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원칙이 합의돼야 한다.
첫째, 국회 안에 국민이 제안한 법안을 다루는 ‘국민입법 심사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 ‘국민입법 심사위원회’에서 1차 심사를 진행한 후 관련 상임위원회로 넘겨 2차 심사를 진행, 다시 법제사법위원회로 넘겨 3차 심사를 진행한 후 본회의에 상정해 결론을 내리도록 하는 절차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 통해 국회와 국민 사이의 정책 교류 형태가 정착되도록 한다.
둘째, 국민이 제안한 법안 심사는 일정한 기간 내에 그 법안에 대한 찬반을 마무리하도록 한다. 이는 최소한 국민 요구가 여야(與野) 간 정쟁 대상으로 전락하는 것을 경계해야 함을 뜻한다.
셋째, 심사 과정과 결과는 공개하도록 한다. 국민이 제안한 법안 심사에 참여한 국회의원들의 찬성, 반대의사를 국민이 알게 해 책임 정치가 자리 잡도록 해야 한다.
국민입법권의 의미를 요약해 보면, 국민이 제안한 정책 법안을 국회가 적법한 절차와 여야 간 토론을 통해 심사함으로써 국민의 요구를 수용하는 제도적인 장치다. 이 제도적 교류시스템은 철저히 국회의 입법권을 존중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동시에 국회가 제도적으로 국민 요구를 수용해 국민의 정치에 대한 갈증을 해소해 주는 형식적 역할까지 가능하게 한다. 이는 대의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정책 정당 활성화 및 현실화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국민입법권은 생소한 영역이다. 그 어느 국가도 경험하지 못한 국민입법권 제도는 한국형 민주주의를 만들어줄 수 있다.
대의민주주의의 한계 보완
 |
| 대의민주주의의 구조적 한계는 국민으로 하여금 ‘구세주형 정치 신인’의 출현을 요구하게 만들었다. 사진은 지난해 대선 최대 화두였던 안철수 전 서울대 교수가 이번 재보궐 선거 관련 소감을 밝히는 모습. |
우리는 종종 국회의원들이 국민에게 직접 호소하기 위해 국회를 벗어나 거리 정치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는 그동안 국민이 힘을 모아 만들어온 제도적 성과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는 행동으로 비칠 수 있다. 정치의 출발은 국민에게 있다.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는 행위 예술이 정치일 수 있는데 우리 국회는 스스로 특권의 울타리를 해체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압축 성장한 한국 민주주의가 극복해 가야 할 환경적, 구조적 한계가 아닌가 한다.
이 글의 주요 쟁점은 국민입법권이 정치 쇄신의 핵심이라는 주장이다. 선거 때마다 정치 쇄신이 단골 메뉴로 나오고 이것이 되풀이되고 있다는 것은 우리의 민주주의가 위기에 직면해 있음을 알려주는 것과 다름없다. 현실 속에서 우리의 민주주의가 어떤 한계를 보이고 있는지 살펴보자.
현재 우리의 대의민주주의는 국민 주권을 선거 시기에만 행사하는 투표권에 가둬놓고 있다. 지난 총선 시기를 되돌아보자. 정당과 후보자들은 국민 비판을 의식해 앞다투어 특권 포기를 선언하며 표를 얻어갔다. 그런데 선거가 끝난 후 어떻게 됐는가. 국민에게 약속했던 특권을 포기했다는 소식을 누구도 들을 수가 없었다. 우리의 대의민주주의는 선거가 끝나면 국민이 정당과 국회를 견제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에서 구조적인 한계가 있다.
대의민주주의는 안정적인 정당을 기반으로 국민과 교류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정당은 선거결과와 정치 환경에 변화가 있을 경우 당명을 바꾸거나 다른 세력과의 합당을 너무 쉽게 하는 경향이 있다.
1990년대 이후 새누리당은 네 차례, 민주통합당은 여섯 차례 정도 당명을 변경했다. 이를 통해 우리가 경험한 사실은 정당이 국민을 가운데 두고 정권을 얻기 위해 서로 싸우기만 했을 뿐 국가 이익이나 시급한 민생 문제는 마지막 순간에 마지못해 타협하는 모습뿐이다.
이러한 현상은 정당이 국민에 대한 의무를 올바르게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정당 내부의 정치적 지향점에 대한 토론과 합의가 이뤄지지 못하는 원인이 돼 대의민주주의 약화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 속도는 빠르고 국민의 참여는 강렬하다. 그런데 현재 한국의 대의민주주의 운영시스템은 국민의 요구와 참여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국민은 자연스럽게 구세주에 가까운 정치인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게 된다. 이러한 우리의 정치 현실은 국민의 직접민주주의 확대 요구와 구세주형 정치 신인의 출현을 바라는 열망의 경계에 자리 잡고 있음을 말해준다. 정치 위기의 본질이다.
구세주형 정치 신인에게 정치 쇄신의 짐을 지우게 된다면 기존의 정치를 모두 해체의 대상으로 인식해 그동안 발전시켜 온 민주주의의 성과를 무시할 수도 있다. 오히려 국민의 요구를 수용하기 위해 합리적인 제도 개혁을 통해 국민의 직접참여 기회를 보장하는 것이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지름길이다. 국민이 한국 정치에 쇄신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기득권과 특권을 옹호하는 정치가 국민의 삶과 국가의 미래에 희망을 줄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입법권이 지금 단계에서 한국 민주주의 제도 개혁의 하나로 기록될 수 있고, 국민에게 정치적 희망이 될 수 있다.
국민 누구나 국민입법 제안
 |
| 선거가 끝나면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멋대로 왜곡하고 배신하는 국회에 대한 제도적 견제 도구가 필요하다. 사진은 통합진보당 김선동 의원이 국회 본회의장에 최루탄을 터뜨리는 모습. |
국민입법권은 국가와 국민을 위한 한국형 대의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를 위해 국민에게 정책 법안 제안권을 부여하고, 국회에 적법한 심의 기능을 추가하자고 제안하는 것이다.
헌법 26조는, 국민이 국가기관에 문서로 청원할 권리와 국가의 심사 의무에 대해 명시하고 있다. 실제 국회에 청원하는 국민들도 많이 있다. 그러나 국회의원의 소개를 받아 내는 청원은 대부분 해당 국회의원실에서 잠자고 있는 실정이다.
청원권은 국민 개인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기본권으로 ‘피해의 구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는 청원 결과에 대한 강제성이 부족하다. 헌법재판소(1997.7.16 93헌마237 전원재판부)에 의하면, “청원 사항의 처리 결과에 심판서나 재결서에 준하여 이유를 명시할 것까지를 요구하는 것은 청원권의 보호 범위에 포함되지 아니” 한다. 이는 청원대상 기관의 심사 결과를 우선시하는 맹점이 있다. 청원권의 의미와 한계이며 잘 활용될 수 없는 이유다.
민주주의는 사회변화 발전에 따라 국민의 요구를 제도로 수용할 때 해당 국가에 적합한 틀로 정착될 수 있다. 국민입법권은 국민의 민주주의에 대한 의무와 책임 강화, 국회에 대한 압박적 견제의 현실화, 사회적 요구를 반영하는 통로를 제시하는 것에서 청원권과 다르다. 현재 한국의 민주주의 상황은, 헌법 26조 청원에 이어 국민입법권이 법률로 보장되기에 충분한 환경을 갖췄다.
그러면 국민입법 제안은 누가 할 수 있으며, 어디까지 가능해야 하는가. 기본적으로 국민입법 제안은 두 가지 방식으로 진행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이익단체, 기업연구소 등 이해관계 당사자를 제외한 국민과 시민사회단체가 직접 국회에 제안할 수 있게 한다.
국민입법 제안이 단순히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형식 요건을 갖춰야 한다. 예를 들어, 국민입법 요지서, 국민입법 초안, 국민입법 제안자 정보 등이 포함돼야 한다. 국민입법 제안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적정수의 국회의원 혹은 원내교섭단체 기준 20명의 국회의원이 공동 제안하는 방법도 고려돼야 한다. 정책법안 제안자에게 민주주의에 대한 의무와 책임을 명확히 인식하게 하고 제안자에게 주어진 정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이다.
다른 방법은 국민입법 제안이 가능한 개인이나 시민사회단체가 정당과 정책제안 파트너가 돼 정당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국회에 제안하도록 한다. 이러한 방식은 국민이 입법권에 접근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지원하고 정당의 정책기능을 활성화해 대의민주주의 진화에 기여할 것이다.
국민입법권이 제도적으로 보장된다고 해서 모든 영역이 대상으로 인식돼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제도 보완은 그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고 민주주의 진화에 의미가 있다. 우리 사회의 근간인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할 수 있는 사안은 원칙적으로 금지해야 한다. 우리 정치 현실에서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내용은 국회의원이 불합리하게 누리는 특권, 정치권에서 외면하고 있는 민생 문제, 우리 사회를 위협하는 것으로부터 방어하는 문제 등을 주로 제안할 수 있다.
현실적으로 한국은 불완전한 국가를 유지하고 있다. 북한의 정치군사적 위협이 멈추지 않고 있으며 분단의 특성상 북한을 지지하는 정치세력, 시민사회세력, 개인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입법권이 도입된다면 국회는 매우 엄격한 운영을 통해 제도적 허점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국민입법권을 생동감 있게 운영하기 위해서는 앞에서 언급한 국회 안의 적법한 절차와 투명성이 원칙적으로 지켜져야 한다. 그리고 국민의 활발한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는 보상에 관한 내용도 포함되면 좋을 것이다.
사회 갈등 넘어 ‘한국형 민주주의’로
국민입법권은 한국 민주주의가 더욱 튼튼하게 진화할 것을 기대하는 의미에서 제안된 것이다. 한국이 걸어온 민주주의 과정과 직면한 현실을 감안해야 한다. 한국 사회가 국민입법권을 올바르게 수용하기 위해 공유해야 할 인식이 있다.
국민입법권은 대한민국 건국 이후 이룬 산업화와 민주화 유산의 융합에 의해 태어났다. 우리 사회는 보수와 진보로 나누어져 이념 갈등, 세대 갈등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백년전쟁’을 둘러싼 역사전쟁까지 겹쳐져 그 끝이 어디일지 짐작하기조차 어렵다. 우리 사회는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국가가 걸어온 객관적 사실과 개인들의 정치적 견해가 혼동되면서 과거를 부정하는 현상이 발생했다.
이러한 혼란에서 벗어나기 위해 역사적 사실에 해당하는, 1948년 8월 15일 건국된 대한민국 정통성, 박정희(朴正熙) 시대의 군사 정변과 유신 헌법에 의한 민주주의 왜곡, 그리고 박정희 시대에 이뤄진 산업화가 현재 한국 경제성장의 기초가 됐다는 것 등에 대한 인식 공유가 이뤄져야 한다. 국민입법권은 모든 역사의 공과를 바탕으로 한국 민주주의의 현재와 미래를 개척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국가가 분단된 상황에서 북한에 대한 현실 인식을 분명히 하고 국민입법권을 수용해야 한다. 한국 민주주의를 이야기하면서 북한을 비판하지 못하거나 북한의 잘못을 모른 척 넘겨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는 민주화 과정에서 북한을 추종하는 세력까지 양성시켰다. 현재 종북세력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하고 있다. 남북이 정치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우리 사회 내부에서 북한을 추종하는 세력에 대한 경계는 늦추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이들에게 한국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대한민국과 북한에 대한 정체성을 분명히 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
위기와 기회는 항상 같이 있다. 현재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국민 욕구가 매우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우리의 정치 현실은, 기득권 정치에 대한 국민의 반발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그럼에도 국회는 스스로 대안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그런 까닭에 국민은 축적된 대의민주주의 정치시스템이 아닌 다른 대안에 대해 열광하는 것이다. 이는 위기 상황이라 볼 수 있다.
국민입법권은 위기에 빠진 한국 민주주의를 기회로 바꾸어줄 수 있다. 국민과 정치권이 힘을 모아 국민입법권 실현을 위한 의무에 충실해야 할 이유이다. 국민입법권이 우리 사회에 구체화된다면 머지않아 한국은 다른 국가에 산업화 모델과 민주주의 모델을 동시에 수출하는 유일한 나라가 될 것이다. 국가의 품격이 세계 속에서 높아질 수 있으며 한국 국민은 어디를 가도 존중받는 국가의 국민으로 기억되게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