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진단] 鄭長善 전 민주당 사무총장이 말하는 ‘민주당이 사는 길’ : 월간조선

민주통합당(민주당)은 지난 1월 9일 문희상(文喜相) 의원을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선출했다. 열흘 뒤에는 대선(大選)평가위원회(위원장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와 정치혁신위원회(위원장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를 구성했다.

하지만 지난 석 달 동안 민주당의 모습은 그다지 ‘비상(非常)’하지 않았다. 민주당이 뭔가 달라지고 있는 모습, 아니 달라지는 시늉이라도 하고 있는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1년여 전 한나라당은 박근혜(朴槿惠) 전 대표를 중심으로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린 후 20대(代) 젊은이를 비상대책위원으로 영입한다, 당(黨)의 상징색(象徵色)을 파란색에서 빨간색으로 바꾼다, 당명(黨名)을 바꾼다 하면서, 매일같이 정말 ‘비상’하게 돌아갔던 것과 지금의 민주당은 대조적이다. 대선평가위원회가 4월 9일 어렵게 대선평가보고서를 내놓았지만, 이는 5·4전당대회를 앞두고 친노(親盧)와 반노(反盧) 간의 갈등을 부채질하는 결과만 가져왔다.

당내(黨內) 사정이 그렇다 보니, 야당(野黨) 본연의 역할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새로 출범한 박근혜 정부가 온갖 실점(失點)을 거듭하고 있지만, 민주당의 지지율은 새누리당의 절반 수준이다. 급기야 4·24 재·보궐선거에서는 노원병(丙) 선거구를 안철수(安哲秀) 전 서울대 교수에게 상납(上納)하기까지 했다.

제1야당이 이렇게 비틀거리는 것은 한국 정치의 선진화를 위해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스스로 60년 역사의 정통야당의 맥(脈)을 이었다고 자부하는 제1야당이 왜 이렇게 무기력한 것일까. 민주당은 어디서부터 활로(活路)를 찾아야 할까.

이에 대한 답을 듣기 위해 지난 4월 1일 정장선(鄭長善·55) 전(前) 민주당 의원을 만났다. 그는 노무현(盧武鉉) 정권 시절에는 노 정권이 이념문제나 과거사문제에 몰두하는 데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냈었다. 제18대 국회 후반기 지식경제위원장으로 있으면서 이 위원회를 고성·파행·정쟁이 없는 ‘3무(無) 우수 상임위’로 만들었다. 2011년엔 당 살림을 책임지는 사무총장을 지냈다. 그리고 작년 제19대 총선을 앞두고는 몸싸움하는 국회가 부끄럽다면서 스스로 불출마(不出馬)를 선언했다. 이런 정치인이라면, 민주당의 현실에 대해 좋은 진단을 내놓지 않을까 싶었다.

4월 1일 정장선 전 의원을 만난 곳은 서울 광화문에 있는 정의용(鄭義溶) 전 의원의 사무실이었다. 정장선 전 의원은 “따로 사무실이 없어서, 서울에 올라올 때는 이곳에서 사람을 만난다”고 말했다. 정 전 의원은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월간조선》이 민주당 정치인하고 인터뷰를 한 적이 있던가요?”라고 물었다. “2007년에 추미애(秋美愛) 의원, 2012년 황주홍 의원 등 여럿 있다”고 했더니, 그는 “그렇군요”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민주당은 2002년 이전 생각에 머물러 있어”

—2011년 10·26재·보선(再·補選) 때만 해도 2012년 총선(總選)과 대선에서 민주당이 이기는 것은 따놓은 당상(堂上)이라고들 생각했습니다. 그럼에도 작년 총선과 대선에서 민주당이 패배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합니까.

“자만(自慢)했던 게 가장 큰 이유 같아요. 그러다 보니 후보 선출을 위한 모바일투표, 현장투표를 하면서 일부 지역에서 갈등이 나타났고, 비례대표 공천(公薦)에서는 시민단체나 운동권 출신 중심으로 수혈(輸血)을 하면서 중도(中道)로 확장을 하지 못했습니다.

여기에 더해 김용민 막말 파문이라든가, 당 지도부가 주한(駐韓) 미국대사관 앞에서 한미(韓美) FTA 반대 시위를 한 것, 통합진보당과의 관계를 명확히 정리하지 못한 것 등이 국민들에게 불안감을 안겨 준 것 같습니다. 민주당이 서민(庶民)을 위한 정당이라고 자처하는데, 제 주위의 서민들도 작년 총선 때 민주당을 찍지 않았어요.”

—총선은 그렇다고 해도, 대선에서도 패배한 이유는 뭐라고 봅니까.

“총선 패배 이후 반성하고, 획기적으로 혁신하는 모습을 보여줬어야 했습니다. 그걸 제대로 못하고 바로 대선 국면으로 들어가면서 후보 단일화에만 목을 매다가 패배한 것이죠.”

—혁신을 가로막은 요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어쨌든 그때 당을 맡았던 분들, 흔히 말하는 친노그룹에게 책임이 있죠. 한명숙(韓明淑) 대표가 총선 패배 책임을 지고 물러났지만, 이해찬(李海瓚) 대표가 맡자 ‘했던 사람들이 또 한다’는 인식 때문에 주류(主流)와 비주류(非主流)의 갈등이 더 커졌지요. 결국 이해찬 대표도 사퇴했지만, 국민들에게는 ‘사람만 바뀌지, 근본적인 변화는 없다’는 생각만 심어 줬습니다.”

—1997년이나 2002년 대선 당시 민주당의 선거운동을 보면 변화를 선도(先導)한다는 느낌이 절로 들었습니다. 하지만 작년 총선과 대선에서는 영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더군요. 그 이유가 어디 있다고 봅니까.

“결국 사람들의 문제죠. 과거 DJ(김대중) 정권과 노무현(盧武鉉) 정권 시절 시민단체나 운동권 출신 ‘젊은 피’들이 민주당에 많이 들어왔고, 기대를 모았었습니다. 문제는 그들이 계속해서 2002년, 혹은 그 이전의 생각과 정신에 머물러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회는 변하고 발전하는데, 그에 따르는 새로운 시대정신을 제시하지 못하면서 정체(停滯)하게 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系派, 있기는 하지만 실체 명확지 않아”

—새누리당도 시대정신을 제시한 것은 없잖습니까.

“새누리당도 잘한 건 없죠. 물론 박근혜라는 독특한 인물이 있기는 했지만…. 하지만 새누리당은 상당히 큰 위험을 감수하면서 당의 상징색을 빨간색으로 바꾸었잖아요. 우리(민주당)는 10년 전의 노랑 목도리, 노랑 점퍼를 그대로 입고 다니고…. 그러니 국민들이 민주당을 봐도 변화를 못 느끼는 거죠.”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 체제가 들어섰지만, 민주당은 별다른 변화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민주당은 무난한 분을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앉혀 놓고, 무난한 길을 가다가, 무난하게 망할 것’이라는 사람도 있습니다.

“문희상 비대위원장은 좋은 분이기는 하지만, 주류와 비주류가 다투다가 탄생한 게 비대위(非對委)인지라,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을 것입니다. 결국 전당대회 이후 새 지도부가 들어서야 무엇인가 변화가 가능하겠죠.”

—과거 DJ와 같은 오너가 없어서 당이 표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분명 리더십의 부재(不在)도 원인이겠죠. 하지만 지금은 DJ와 같은 강한 리더십을 구하기 어려운 때이기도 하거니와, 주류와 비주류의 골이 워낙 깊어서, 강력한 지도자가 나와도 어떻게 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차라리 1970년대 신민당이나, 과거 일본 자민당(자유민주당)처럼 계파(系派)를 양성화(陽性化)하고 서로 경쟁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지금도 민주당에 계파는 있어요. 예전처럼 특정한 리더가 돈 만들고 공천권 행사하는 건 아니지만, 이념이나 동질성에 따라 일정한 응집력을 보이는 친노세력, 민평련(민주평화국민연대・ 김근태계), 486 그룹, 손학규 그룹, 정세균 그룹 등이 있죠.

그렇다고 명확한 실체가 있는 건 또 아니에요. 친노에게 반감이 있으면 비주류라고 통칭하는 정도죠. 누가 대표가 되느냐에 따라 형성됐다 없어졌다 하는 게 지금 민주당의 계보죠. 리더도 없는 데다가 그런 형태가 되다 보니 책임 소재도 불분명해지고….”

결국 ‘계파 정치의 양성화’는 어렵다는 얘기로 들렸다.

—그럼 지금 민주당의 계파문제는 어떻게 풀어 나가야 한다고 봅니까.

“계파문제보다는 민주당의 근본방향을 어떻게 잡고, 사람을 어떻게 충원해 가야 하느냐에 대한 합의부터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독재 대(對) 반(反)독재’라는 이분법적(二分法的) 사고(思考)방식에서 벗어나고, 변화하는 시대의 추이에 맞게 각 분야에서 새로운 시대정신을 국민에게 제시하면서 거기에 맞는 사람들을 충원함으로써 전체 무대를 바꾸어야 합니다.”

“민주당 생각이 바뀌지 않는 것은 여당 때문이기도”

민주통합당은 작년 대선 패배 이후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왼쪽부터 정해구 정치혁신위원장, 한상진 대선평가위원장,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 박기춘 원내대표.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나 486세대 정치인들 같은 경우, 평생 이분법적 사고방식을 갖고 살아온 사람들인데 쉽게 바뀌겠습니까.

“민주당 사람들의 이분법적 사고가 바뀌지 않는 것은 여당 때문이기도 합니다. MB(이명박 전 대통령)도 그랬지만, 박근혜 대통령도 소통(疏通)을 못하고 있잖습니까? 정치는 감정인데, 이런 것들 때문에 야당이 다시 그런 굴레(이분법적 사고)로 들어가는 측면이 있습니다.”

민주당 심재권(沈載權) 의원은 지난 4월 8일 국회에서 류길재 통일부 장관에게 북한 김정은(金正恩)에 대한 호칭과 관련해 “정중한 예의를 갖추라”고 지적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민주당의 ‘청년비례대표’ 몫으로 국회의원이 된 김광진 의원(32)은 2012년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6·25 영웅인 백선엽(白善燁) 장군을 ‘민족 반역자’라고 불렀다. 천안함 폭침 사건에 대해서도 민주당은 정부의 발표를 흔쾌히 받아들이지 않고, 의혹을 확대재생산하는 편에 섰다. 이런 것들이 쌓여 민주당의 이념적 정체성(正體性)에 대한 의구심을 낳고 있다.

—민주당의 이념적 정체성에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나는 남북관계는 대화와 협력을 통해 풀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여기에 이견을 가진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북한이 핵개발, 천안함·연평도 사건을 일으키고, 우리를 공격하겠다고 하니, 국민들이 불신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안보문제에 대해서는 당이 분명한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북한은 오판(誤判)을, 국민은 오해를 할 수 있습니다.”

“민주당, 127석 걸맞은 위상 못 가져”

—김광진 의원 같은 사람은 어떻게 비례대표가 된 것입니까.

“비례대표공천심사위에서 결정한 것이죠. 민주당이 경제·환경·정보통신·인권 등 각 분야의 전문성과 새로운 시대정신을 가진 젊은 인재들을 영입하려면 공천심사위부터 그에 걸맞은 사람들로 구성해야 합니다. 다변화하는 세상의 변화를 담지 못하고 폐쇄적으로 운영을 하면, 거기에 맞는 사람들만 들어올 뿐입니다.”

—작년 총선에서 민주당이 통합진보당과 연대(連帶)한 것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통합진보당이 애국가를 안 부른다든가, ‘남쪽 정부’라는 말을 한다든가 해서 의심을 받고 있는데, 민주당이 그와 혼동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그런 오해를 받을 부분에 대해서는 정리를 해야 합니다.”

—민주당은 4·24 재·보궐선거에서 노원병 선거구를 안철수 후보에게 양보했습니다. 민주당이 안 전 교수 지원에 나서면 오히려 지지율이 떨어진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합니까.

“민주당은 노원병에서 후보를 ‘안’ 냈다기보다는 ‘못’ 낸 거죠. 가슴 아픈 일입니다. 2011년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도 후보를 못 냈고, 작년 대선에서는 안철수 후보가 사퇴하는 바람에 간신히 후보단일화가 됐습니다. 이런 일이 계속되는 것은 민주당이 127석의 의석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그에 걸맞은 위상을 못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죠. 민주당으로서는 정말 뼈아프게 생각해야 합니다.”

—앞으로 민주당은 어떻게 될 거라고 봅니까. 이대로 가면 결국 민주당은 소멸될 거라고 보는 사람도 있는데요.

“박근혜 대통령하고, 안철수 교수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는데, 어느 쪽이나 녹록지 않아요. 박근혜 대통령이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지금 안보상황과 경제상황이 굉장히 안 좋잖아요? 국민들이 이런 상황에 많이 불안해하면서도, 그 때문에 오히려 민주당에 표를 줄 생각은 없어 보여요. 민주당이 그만큼 국민들에게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죠. 민주당의 시련은 당분간 계속될 것 같아요.”

정장선 전 의원은 노태우 대통령 시절 청와대 행정관으로 공직에 입문, 1995년까지 청와대에서 근무했다. 1995년 무소속으로 경기도 도(道)의원으로 당선됐고, 1998년에는 자민련(자유민주연합) 소속으로 재선(再選)됐다. 도의원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하자 2000년 제16대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새천년민주당)에 입당했다.

“사실 나는 자민련 공천으로 평택시장(평택시, 평택군, 송탄시가 통합되기 전의 평택시)을 해 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평택시가 통합이 되고, 당시 시장이 자민련에 입당하는 바람에, 무소속 국회의원 출마로 방향을 돌렸습니다. 낙선하면 정치를 접어야겠다고 생각하던 참에, 민주당에서 입당 제의가 들어왔습니다.”

“국회선진화법, 효율성 면에서 나쁘지 않다”

—출신 성분상 열린우리당이나 민주당의 정체성과는 잘 안 맞는 것 아닙니까.

“그런 얘기를 많이 듣습니다. 그러나 남북관계를 대화와 타협으로 풀어 나가야 한다든지, 서민을 위한 정치를 해야 한다든지 하는 원칙에서는 민주당의 정체성과 차이가 없습니다.

다만 민주당의 과도한 이념성(理念性) 같은 것과는 조금 괴리(乖離)가 있었죠. 노무현 대통령 시절, 국민정서와는 달리 국가보안법 폐지를 추진했을 때나 강정구 교수 파문 같은 데는 동의하기 어려웠습니다. 저는 보안법의 문제점을 보완할 필요는 있겠지만, 폐지는 시기상조라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이 정도 괴리감이 전혀 없는 국회의원은 없을 겁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여야 간의 소통이 갈수록 예전만 못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 때는 여야 간에 몸싸움을 한 기억이 없는 것 같아요. 김대중 전 대통령은 국회의원을 오래 했기 때문인지 국회를 존중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여야 간에 대화와 소통이 사라지고 ‘투쟁’이라는 말이 국회를 지배하게 된 것 같아요. 국회선진화법이 만들어졌으니, 이제 여야 간에 대화하고 타협하는 문화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합니다.”

—국회선진화법이라지만, 재적 5분의 3이 동의해야 입법이 가능하게 한 것은 국회를 오히려 ‘식물국회’, ‘복지부동(伏地不動)국회’로 만든 것 아닌가요.

“나도 국회선진화법을 만드는 데 찬성한 사람입니다. 그런 얘기는 효율성을 중심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나오는 겁니다. 과거에는 법안이 상정되면 언제 여당이 날치기를 할지 몰랐어요. 때문에 야당은 아예 상정 자체를 못하게 막았고, 어렵게 상정을 하면 심의 자체를 보이콧했어요. 그 바람에 위원회가 마비되면 꼭 필요한 민생법안도 처리할 수 없었습니다.

국회선진화법은 일단 법안을 상정해서 논의할 수 있도록 하고, 특별히 심의가 필요하면 별도로 위원회를 구성해서 일정 시간 논의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다른 법안은 정상적으로 논의할 수 있어요.”

정 전 의원은 “국회선진화법이 효율성 면에서도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과거 4대강법, 미디어법, 사학법 등은 실질적인 심의를 못하면서 1~2년을 끌었어요. 그러다가 날치기로 법을 통과해도 나중에 문제점이 나오고…. 그러는 것보다는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여야가 논의해서 통과시키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봅니다.

이번에 정부조직법이 50일 만에 통과되었다고 비판합니다만, 정권 출범하면서부터 몸싸움하는 것보다는 그게 낫잖아요? 여야 모두 대화를 통해 풀어 나가는 훈련이 필요한데, 국회선진화법은 그런 훈련을 하게 만드는 법이기도 합니다.”

“한국 국회의원들은 많이 먹어야 한다”

2011년 11월 16일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김진표 원내대표와 이야기를 나누는 정장선 사무총장(왼쪽).

정장선 전 의원은 국회 지식경제위원장 시절, 동(東)유럽 국가들을 방문했던 이야기를 했다.

“김형오(金炯旿) 전 국회의장과 루마니아를 방문했을 때였습니다. 식사를 대접받은 후 안내를 맡은 루마니아 외교관에게 ‘잘 먹었다’는 의미로 ‘과식을 한 것 같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그가 ‘한국하고 타이완(臺灣) 국회의원들은 많이 먹어야 한다’고 하는 거예요. 무슨 뜻인지 물어보았더니, ‘국회에서 싸우려면 잘 먹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더군요.

또 교민들을 만난 자리에서 ‘도와드릴 일이 없느냐’고 했더니, ‘안 도와줘도 되니, 제발 국회에서 싸우지나 마라. 동유럽에서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무척 좋은데, 국회에서 싸우는 게 뉴스에 나올 때마다 너무 창피하다’고 하는 겁니다. 얼마나 창피하던지….”

이런 부끄러움이 누적되어 정장선 전 의원은 결국 2011년 12월 12일 제19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작년 말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 국회가 전쟁터가 됐을 때 속으로 많이 울었고, 이런 일이 다시 벌어지면 불출마하겠다고 내 자신과 약속했다”며 “한미 FTA 비준동의안 처리로 난장판 국회가 재연된 것이 너무 창피하고 괴로웠다”고 말했다. 《조선일보》는 ‘국회를 지켜 줘야 할 정장선 의원은 뜻을 접고’라는 사설을 통해, 그의 불출마를 아쉬워했다.

“다시 국회로 돌아가는 건 탐탁지 않아”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까.

“2010년 4대강 예산문제로 1주일 동안 국회가 난장판이 됐을 때였습니다. 그렇게 싸우고 나서 평택에 있는 재래시장을 갔어요. 무척 추운 날이었어요. 손님은 하나도 없는데, 할머니들이 물건을 팔겠다고 나와 있었어요. 나이를 여쭈어 보니 제 어머니 나이뻘 되는 75세, 80세라고 하더군요. ‘저분들은 하루 종일 저렇게 앉아서 얼마를 벌까? 얼마나 이익을 남길 수 있을까? 내가 마시는 커피 한 잔 값도 못 벌 거다’라고 생각하니, 눈물이 나왔습니다. ‘도대체 정치가 뭔가, 정치가 뭐길래 1주일 동안 난장판을 벌였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사실 여야가 그렇게 싸웠던 것들이 지나 놓고 보면 아무 것도 아니에요. 차라리 ‘타협 못하면 죽는다’는 생각으로 대화를 하면 그런 일은 없을 텐데….”

—불출마 선언할 때, 주위에서 반대는 안 하던가요.

“사실 그때 많이 지쳐 있었어요. 평택 미군기지, 쌍용차 등 지역구 현안도 많았고요. ‘그래, 맨손으로 시작해서 도의원 두 번, 국회의원 세 번 했으면 많이 성취한 거다. 여기서 좀 쉬면서 생각할 시간을 가져 보자’고 했습니다. 불출마 선언하기 1년 전부터 집사람하고 상의를 했어요. 집사람도 찬성해 주었어요.

보좌관은 ‘지금 여기서 일단 정지하면 정치에 복귀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다섯 번이나 안 떨어지고 여기까지 왔다. 사무총장도 하고 상임위원장도 했으니 크게 만족하고 고맙게 생각하겠다. 만약 다시 정치를 하게 된다면, 좀 더 멋진 정치를 해 보겠다. 다시 정치를 못하게 되더라도 감사하게 받겠다’고 말해 줬어요.”

—후회는 없나요.

“지금도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정치활동을 재개할 생각은? 내년 지방선거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나온다는 얘기도 있던데요.

“당에서는 올 10월 평택 보궐선거에 출마해 달라고 하고 있어요. 솔직히 다시 국회로 들어가는 것은 탐탁지 않아요. 내년 지방선거도 있고…. 하지만 당으로서는 10월 재·보선에 사활(死活)이 걸려 있는데, 마냥 외면할 수도 없고… 고민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