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원순에 쏟아진 의혹에 대해 “한나라당보다 심하지 않다”며 외면
⊙ “광우병 대책회의가 왜 좌파 활동이냐”며 민감
⊙ 응답자 90.8%, ‘내년 총선에서 무소속 후보 뽑을 수 있다’
⊙ “광우병 대책회의가 왜 좌파 활동이냐”며 민감
⊙ 응답자 90.8%, ‘내년 총선에서 무소속 후보 뽑을 수 있다’
- 10·26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 출구조사 결과, 나경원 후보 지지율(23.8%)의 세배인 75.8%가 박원순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서울시 강남구 세곡동에 사는 32세 직장인 고진호(가명)씨는 지난 10월 26일 평소보다 30분 일찍 일어났다. 출근 전에 서울시장 보궐선거 투표를 하기 위해서다. 고씨는 “이명박 정부가 너무 싫다는 것을 보여주려 박원순(朴元淳) 후보에게 투표하고자 시계 알람을 맞춰 놓았다”고 했다. 그가 생각하는 이명박 정부는 부유층을 위한 정부, 서민과 복지정책에 실패한 정부다. ‘스카이(SKY)’ 대학을 나와 외국계 금융회사에 근무하는 고씨의 정치성향은 무당파(無黨波). 그는 회사 동료들과 거의 정치 얘기를 하지 않지만, 또래의 동네 친구들과 만나면 정치 얘기를 종종 한다. 그는 “친구들이 한나라당을 바라보는 시선은 거의 비슷하다. 한나라당이 국민과 소통하고 변화를 추구한다고 하지만, 그래 봐야 거기서 거기일 것”이라며 “내년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는 무조건 뽑지 않을 것이다”고 했다.
같은 회사에 다니는 서른여섯의 이범준(가명·서초구 거주)씨는 투표를 하지 않았다. 이씨는 “투표장에 갔다면 나경원(羅卿瑗) 후보를 찍었겠지만, 나 후보를 열렬히 지지하는 편이 아니라 출근길에 투표소에 들르는 수고를 하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딱히 정치 성향이 없지만, 좌파·종북(從北) 세력에 대해서는 알레르기를 보일 정도로 거부감이 있었다. 그렇다고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것도 아니다. 이씨는 “심정적으로 나경원 후보를 지지했던 30대 사람들은 대부분 투표를 하지 않았다”며 “박원순을 지지하는 후배들이 아침 일찍 일어나 투표하고 출근했다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노무현-이명박-박원순 찍은 아리송 세대
대한민국 정치권이 ‘30대’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다. 투표권자로서 30대의 성향이 도무지 파악되지 않아서다.
30대가 누구인가. 지난 2002년 대선(大選)에서 노무현(盧武鉉) 당시 민주당 후보를 열렬히 지지했던 세대다. 지난 2008년 대선에서는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에게 기대를 표시하며 투표를 했다. 하지만 이번에 치러진 서울시장 선거에서 이들은 박원순 후보에 몰표를 던졌다. ‘노무현-이명박-박원순(이하 정치인 존칭·직책 생략)’의 전혀 공통점 없는 이들을 지지한 세대다.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이들의 75.8%는 박원순을 뽑았다고 대답(YTN 출구조사)했다. 나경원 지지율(23.8%)의 세 배다.
‘75.8’이라는 숫자는 무시무시한 위력으로 다가온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서치앤리서치 배종찬(裵鍾贊) 이사는 ‘75.8’에 대해 이렇게 분석했다.
“절대적인 지지율이죠. 특정 집단의 75%가 한 사람을 지지한다면, 그 사람 입장에서는 100%가 나를 지지한다고 느낄 정도의 숫자입니다. 숫자의 패러독스인데, 나를 지지하지 않는 사람이 단 한명도 없다고 느낄 정도의 수치입니다. 만약 이들이 박원순을 좋아해서 이처럼 몰표를 던졌다면, 그에게 절대적인 신뢰와 지지를 보내는 것을 뜻합니다. 반대로 박원순이 좋아서가 아니라, 누군가가 싫어서 그에 대한 반감으로 박원순을 뽑았다고 해보죠. 이때 75.8%라는 숫자는 박원순의 대항세력에 대한 불만이 극도로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해석됩니다. 불만의 최고조,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을 정도로 화가 났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한나라당과 MB정부 싫었다
대한민국의 30대는 박원순이 절대적으로 좋았던 것일까. 아니면 나경원, 혹은 한나라당에 대한 불만이 극에 달했던 것일까.
《월간조선》은 지난 11월 3일부터 12일까지 이번 선거에서 박원순을 찍은 30대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박원순을 찍은 이유, 박원순에게 쏟아졌던 병역기피, 재벌로부터의 특혜의혹 등 각종 의혹이 투표에 영향을 끼쳤는지 여부,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어떤 정당을 지지할 것인지 등 총 16개 문항이었다.
약 200여 명이 설문에 응했고, 복수응답 등을 한 설문을 제외한 141명(남성 105명, 여성 36명)에 대해 통계를 냈다. 평균 연령은 33.4세로, 거주지역은 강남구 18명, 노원구 11명, 송파구 10명, 서초·관악구 각 9명, 성북구 7명, 성동·동대문·은평·마포구 각 6명 등 서울시 전역이다. 직업은 대기업·중소기업 회사원, 공무원, 학생, 서비스업 종사자, 의사, 언론인, 자영업자 등 천차만별이다.
‘박원순을 뽑은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 ‘서울시장으로 적절해서 뽑았다’고 답한 사람은 전체의 36.9%(총 52명)뿐이었다.
‘한나라당 혹은 이명박에 대한 반감 때문에 박원순을 뽑았다’가 24.8%(35명), ‘나경원이 부족하다고 생각돼서’가 20.6%(29명)였다. 응답자의 5%(7명)는 ‘안철수가 박원순을 지지해서’라고 답했다.
박원순이 시장감으로 좋아서라기보다, 나경원이 부족하거나 이명박 대통령이 싫어서 투표한 30대가 전체의 절반(45.4%) 가까이 됐다. 30대 표심(票心)은 비(非)나경원, 반(反)한나라·MB정부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강남구 양재동에 거주하며 한 골프회사 팀장으로 재직 중인 서른다섯의 박영훈(가명)씨 얘기다.
“박원순에 투표했지만, 여전히 박원순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MB정부는 정말 싫습니다. 정권 초기부터 무조건 밀어붙이기 식으로 정치를 하고, 기득권 세력을 대변했습니다. 박원순을 보고 좌파 아니냐, 시장감이 아니다 등 여러 말이 있지만, 상위 10%를 대변하는 MB정부만 할까요? 한나라당이 보수 색채가 짙은 정당 정도라고 생각했지 이렇게 싫지는 않았습니다. 이번에 한나라당 후보가 시장 할까 봐 무서워서 박원순을 찍었습니다.”
“어떤 의혹이 나와도 이 정부에 대한 실망만 하겠느냐”
대기업에서 차장으로 근무하는 최윤정(36·가명)씨는 ‘강남 8학군’ 출신이자 고려대를 나왔고, ‘골수 한나라당 팬’ 부모를 뒀다. 그는 야당이 주장하는 ‘전면 무상급식’에 반대하지만, 이번에 박원순을 찍었다.
“나경원은 한나라당이 다급하니까 어느 날 갑자기 짠하고 등장시킨 후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박원순은 결과야 어찌됐든 시민운동가로 활동했고, 본인의 의지로 사회의 변화를 일구려는 모습들을 보여줬죠. 나경원은 ‘엄친딸’(외모 좋고 능력 있는 사람을 뜻함)이라는 것을 제외하고는 보여준 모습이 없었어요. 나경원의 ‘1억 피부과설(說)’이 나왔을 때 전혀 놀랍지 않았습니다. 실망하지도 않았고요. 당연히 그렇겠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투표소에서 마지막까지 고민하다 박원순을 찍었습니다. 평소 한나라당에 대한 반감이 크지 않았는데 이 정부 들어서는 정말 너무한다 싶어서요.”
국내 재벌그룹 계열사에서 과장으로 근무 중인 조문용(36·가명)씨는 이랬다.
“박원순이 좋은 것이 아니라 반 한나라 심정으로 찍었습니다. MB정권은 소통을 강조하면서 뭐가 진정한 소통인지 개념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민심(民心)을 무서워하는 것은 맞는지 의심이 갈 정도입니다. 솔직히 박원순 의혹이 나올 때마다 ‘허허, 의외네’ 싶은 생각은 들었어요. 하지만 어떤 의혹이 더 나왔어도 이 정부에 대한 실망만큼이야 하겠습니까. 박원순이 서민을 지향한다면서 정작 본인은 서민이 아닌 것도 알고, 정책이 좋아 보이지도 않지만 그를 찍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장 투표가 이 정권에 대한 심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몇몇 대기업에 다니는 대리와 과장들은 설문조사를 하면서 기자에게 “제 부서의 임원을 만나면 (본인이) 박원순 찍었다는 얘기를 비밀로 해달라”고 했다.
국내 4대 그룹에 근무하는 이모 대리의 얘기는 이랬다.
“좋은 학교 나와서 좋은 직장에 다니면 당연히 보수이고, 우파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이번 선거 때 상무님이 ‘박원순 찍는 젊은 애들 보면 정말 철딱서니가 없어 보여. 너희는 아니지?’라고 말씀하셨거든요. 실제로 서울대, 카이스트 나오고 좋은 직장 다니면서 강남 사는 친구들 중에 박원순 열혈 지지자들이 많습니다. 한나라당이 집권해서 양극화가 극대화되고 서민들의 삶이 팍팍해졌으니까요. 가끔 나이 든 분들이 사회에 불만 있는 젊은층이 야권 후보를 지지한다는 식(式)으로 얘기할 때면 ‘정말 몰라도 너무 모르는구나’ 싶습니다.”
“어차피 2년8개월밖에 안 남았는데 무소속이 해봐라”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이사는 이번 선거를 이렇게 분석했다.
“박원순이냐 나경원이냐가 아니었습니다. 애초 박원순의 지지도가 5%였는데 안철수가 지지의사를 밝히자 단숨에 45%가 됐습니다. 전(全) 세계에서 한 달 동안 9배나 뛴 주식이 있을까요. 사람들은 실체를 보는 것이 아니라 프레임을 봅니다. 가령 안철수를 지지하는 사람들도 안철수를 하나하나 분석하면서 좋아하는 것이 아닙니다. 안철수의 어떤 형태, 어떤 내용이 사람들에게 하나의 지향점이 되는 거죠. ‘한나라당을 어떻게 심판을 할까’하다가 반대편을 찍는 식입니다. 젊은이들은 마음속에 어떤 모양을 만들고, 그 모양이 안철수에 가까우면 안철수를 지지하고, 박원순에 가까우면 박원순을 지지하는 식입니다. 이 정부에 대해 반감이 극에 달한 30대에게 이번 선거는 고민할 필요가 없는 일이었죠.”
함인희(咸仁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투표에는 이번 시장 선거처럼 특정 후보가 좋아서가 아니라 상대가 싫어서 대안으로 선택하는 경우가 사실 더 많다”고 말했다.
노원구 상계동에 사는 36세의 자영업자 윤명훈(가명)씨가 박원순을 뽑은 이유는 또 달랐다. 그는 투표권을 가진 이후에 민주당이나 무소속 후보에게 한번도 투표를 해본 적이 없을 정도로, 친(親) 한나라당 성향이다. 야당이 주장하는 ‘전면 무상급식’도 반대한다.
윤씨는 “나경원의 ‘강남 아줌마’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고, 일본 자위대 창설 기념식에 참석한 것에 몹시 실망했다”며 “한나라당이 하는 일이 번번이 실수투성이여서 어차피 2년8개월밖에 임기가 남지 않았는데 무소속이 한번 해보라는 심정으로 뽑았다”고 말했다. 그는 내년 총선, 대선에서 무소속 후보를 뽑을 생각이 없다.
“박원순 병역이 문제면 한나라당 절반은 그만둬야”
박원순은 각종 의혹에 시달렸다. 박원순을 지지한 30대는 이런 의혹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이런 사실을 눈여겨보지 않았을까.
조사 결과 박원순 후보의 병역 의혹과 고급 빌라 거주, 재벌그룹으로부터의 후원 등에 대해서는 대다수가 ‘알고 있었다’고 답했다. 반면 박원순 후보 참모의 좌파 활동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는 답이 많았다.
‘박원순이 작은 할아버지에게 입양돼 군복무를 짧게 한 것을 알고 있었습니까’라는 질문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65명)와 ‘대략 알고 있었다’(40명) 등 ‘알고 있었다’는 응답자가 전체의 74.5%였다.
이들이 박원순의 병역 의혹을 바라보는 시각은 두 가지였다. 군 기피 의도가 있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래도 한나라당만 하랴’고 했고, 병역 의혹이 사실이 아니라는 사람들은 ‘한나라당의 네거티브 공세’라고 정리했다.
서대문구에 거주하는 32세의 여성 회사원은 “병역 의혹에 신빙성이 떨어지고 박원순의 해명이 구체적이며 논리적이었다”고 했다. IT서비스 분야에서 일하는 33세의 직장인(강남구)은 “60년대에 농촌에서 대가 끊어진다는 인식으로 양손 입양을 시켰을 수 있다. 병역 기피를 목적으로 자기 자식을 호적에서 빼는 부모는 있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30세의 박사과정에 다니는 남성(용산구)은 “박원순의 병역이 문제가 된다면 한나라당 국회의원의 절반은 그만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모 방송국의 PD인 여성(33세·영등포구)은 “박원순의 의혹이 해소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기존의 정치인들보다는 깨끗하다는 판단에서 그를 뽑았다”고 말했다.
박원순은 선거기간 내내 ‘친서민 후보’임을 내세웠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서초구 방배동의 61평짜리 빌라에 월세 250만원을 내며 거주하고 있다. 그는 한 방송에 출연해 “압구정동에 살다가 반포 살다가, 방배동으로 밀려왔다”는 표현도 했다.
“재벌 후원으로 시민단체 활동하는 것 당연”
박원순의 ‘고가 빌라 거주’에 대해서는 대다수가 알고 있었다고 했다. ‘잘 알고 있다’(76명)와 ‘대략 알고 있었다’(35명)는 응답자가 전체의 78.7%였다. ‘처음 듣는 소리다’는 이는 8명(5.7%)에 불과했다.
이런 사실이 투표에 영향을 끼쳤느냐고 물었다.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사람이 58명(41.1%)이었다.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나경원이 싫어서 뽑았다’는 27명(19.1%)이었다.
이 문항은 기타의 응답이 많았다.
‘그래 봐야 월세다’는 의견이 가장 많았고, ‘책을 위해서 넓은 곳에 산다면 문제없다’‘나경원은 더 비싼 데 산다더라’‘내곡동 사저로 시끄러웠던 MB만 하겠느냐’는 의견들이 있었다.
은평구에 사는 회사원 이현주(가명·32세)씨는 이랬다.
“부자가 서울시장이 될 자격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태어날 때부터 양손에 모든 것을 쥐고 태어나 약자의 삶이 무언지 가늠하지 못하는 후보가 자격이 없다는 얘기입니다. 나경원에게 서울시장이라는 자리는 자신의 정치 도약을 위한 발판일 뿐 아니었을까요? 박원순은 적어도 서민을 위한 운동을 했고, 서민의 삶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저는 고결하고 잘난 시장을 바란 적이 없습니다. 적어도 박원순처럼 조금이라도 나와 연관된, 내 피부에 닿는,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시장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박원순의 ‘아름다운 재단’이 태평양, 교보그룹 등 재벌그룹으로부터 1000억원 가까운 후원을 받은 사실에 대해서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 ‘잘 알거나, 대략 알고 있었다’는 응답자가 총 105명(74.5%)이었다. 30대의 대부분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었다.
‘재벌 후원으로 시민단체 활동을 하는 것은 너무 당연하고 바람직하다’(32세 남·서초구·회계사), ‘칼은 쓰는 사람에 따라 과도가 될 수도 있고, 흉기가 될 수도 있다. 적어도 아름다운 재단에서 헛으로 쓰지 않았다고 믿는다’(35세 남·영등포구·회사원), ‘아름다운 재단은 자선단체다. 자선단체에 대기업이 후원한 것은 훌륭한 일이지 나쁜 일이 아니며, 박원순 하나만 보고 했을 리는 없다’(33세 남·강동구·금융업), ‘재벌에게 돈 받았어도 사용 내역이 공개됐으면 공적(公的)으로 사용됐다는 거다. 땅 파면 돈 나오나? 아름다운 재단은 그런 데서라도 후원을 받아야 일한다’(30세 남·관악구·회사원), ‘재벌 후원을 받아서 어려운 사람을 도왔다. 한나라당은 뒤에서 더욱 심한 후원을 받지 않았나’(33세 여성·영등포구·방송인), ‘재벌의 재단후원은 사회공헌이며 법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문제될 것이 없다’(32세 여성·서대문구·회사원) 등이었다.
“박원순 참모의 좌파 활동 알았어도 지지”
위의 문항과 반대로, 박원순 후보의 참모가 좌파 활동을 했던 사실에 대해서는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박원순 후보 참모인 안진걸씨가 과거 광우병 대책회의 조직팀장 등을 맡으며 좌파 활동을 해온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까’라는 물음에 ‘알고 있었다’는 응답은 52명(36.8%)에 불과했다. ‘잘 모르고 있었다’(51명)와 ‘처음 듣는 소리다’(38명)는 응답이 총 63.2%였다.
하지만 응답자가 이 사실을 잘 몰랐다고 해서, 선거에 어떤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니었다. ‘만약에 좌파 활동 사실을 알았다면 다른 후보를 지지했겠느냐’는 질문에 대해 ‘그래도 박원순을 뽑았을 것’이라는 응답자가 총 84명으로, 전체의 94.4%였다.
이 설문의 결과를 놓고 보면, 가령 박원순에게 쏟아진 의혹이 이보다 훨씬 많았다고 해도 그를 향한 30대의 지지(엄밀히 말하면 반 MB 심리)는 달라지지 않았을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항목에 대해 응답자의 대다수는 분개했다. ‘광우병 대책회의 조직팀장 등을 맡으며 좌파 활동’이라고 명시한 대목 때문이었다. 몇몇 응답자는 속어와 원색적인 표현을 써가며 적대감을 드러냈다.
강동구에 사는 34세의 회사원 김주성(가명)씨의 얘기다.
“광우병 대책회의가 어떻게 좌파 활동입니까. 자기 의견을 표출한 거지. 가령 좌파 활동이라고 해도 나쁘지 않습니다. 수구(守舊) 보수보다 백 배 낫다고 생각합니다.”
노원구에 사는 30세 여성 사무직원 이혜원(가명)씨는 “좌파 활동이라는 명명(命名) 자체에 동의할 수 없다. 광우병 대책회의는 민심의 반영이었지 좌파 활동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 외에 ‘좌파’라는 단어에 대해 적대감을 드러낸 답변을 보자.
“좌파 활동이 문제가 됩니까? 그럼 당신들이 우파 활동을 하는 것도 문제가 되겠네요.”(30세·광진구·CEO)
“광우병 대책회의가 왜 좌파 활동입니까? 국민의 건강을 염려해서 조금 더 성실한 협상을 원한 활동이었을 뿐입니다.”(38세·서초구·사무직)
“광우병 대책회의가 좌파 활동이라면, 나도 좌파입니다.”(30세·성북구·학원강사)
“좌우 양분론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33세·동대문구·교사)
우파·좌파 구분 자체에 반감
성북구에 사는 30세의 대부업을 한다는 김지훈(가명)씨는 설문조사의 항목에 대해 이런 식으로 답을 했다.
“박원순의 병역 기피요? 한나라당 의원들이 하도 해서 그다지 신선해 보이지 않는데요. 고가 빌라요? 월세 산다잖아요. 재벌 후원 받은 것이요? 있는 놈들이 재단에 기부하는 것이 무슨 잘못입니까. 참모가 좌파라고요? 한나라당이 보기에는 좌파 활동이지만 제가 보기에는 상식적인 행동입니다.”
중구에 사는 30세의 여성 회사원 이혜원(가명)씨도 비슷한 입장이다.
“병역 기피 의혹이요? 한나라당보다는 낫지요. 재벌한테 후원 받은 것은 문제가 안 되죠. ‘아름다운 재단’의 회계 처리가 투명하잖아요. 참모가 좌파라고요? 상대 후보가 박원순이 아닌 그 누구였다고 해도 한나라당 후보를 당선시키지 않기 위해 뽑아야죠.”
왜 이들은 ‘좌파’라는 단어에 대해 예민한 반응을 보였을까. 광우병 대책회의가 좌파 활동이 아니라고 굳게 믿는 이유는 무엇일까.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는 이렇게 분석했다.
“우리나라에서 우파와 좌파는 뚜렷한 기준이 없이 상대적인 개념입니다. 유럽에서는 기존의 질서를 고수하면 우파, 기존의 질서를 바꾸려는 움직임은 좌파로 규정합니다. 미국의 경우 민주당과 공화당의 공약이 확연하게 다르고, 한 이슈를 보는 시각이 정반대입니다. 우리의 경우는 다릅니다. 보수와 진보(進步)라는 단어의 설정 자체가 잘못됐습니다.”
―무슨 얘기입니까.
“좌파에서 진보라는 단어를 선점하면서 의미가 묘해졌습니다. 우파는 꼴통보수, 좌파는 진보세력으로 규정됐죠. 진보라는 단어는 정말 좋은 단어입니다. 보수 역시 진보를 하고 싶지요. 세상에 진보 안 하고 싶은 곳이 어디 있나요. 구분이 모호하고 혼용되다 보니, 젊은층에 혼란을 주는 겁니다. 게다가 한나라당, 민주당은 정책을 보면 차이가 없습니다. 두 정당 모두 보수 정당이죠. 과거 386세대 이상은 이념적 성향으로 인해 좌우의 대립이 있었지만, 그 시대를 겪지 않은 오늘날의 젊은층은 그런 식의 이분법을 달가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방송국에 다니는 33세의 한 여성은 이렇게 말했다.
“좌파, 우파를 나누는 기존 정치권의 이분법적 사고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이번 선거에서 박원순을 찍은 이유는 기존 정치권에 대한 불신 때문이었습니다. 특히 한나라당에 대한 회의 때문이었죠. 30대는 취업난, 전세난에 허덕이는데 소위 엘리트 그룹이라는 한나라당은 ‘그들만의 리그’에 사는 사람 같았습니다. 좌우 대립 논리 때문이 아닙니다.”
지역성, 이념성을 거쳐 최근 트렌드는 세대성
요즘 정치권에서는 30대의 이런 습성에 대해 ‘세대 간의 골이 깊어진 것’으로 분석하는 분위기다. 새롭게 등장한 트렌드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이사의 얘기다.
“절대지지 현상은 지역성, 이념성, 세대성 등으로 분류됩니다. 세대성은 요즘 나타난 현상이죠. 오랫동안 우리 정치는 지역성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지난 2006년 지방선거 때 부산의 기초의원 선거구에서 한나라당 공천을 받은 후보가 등록을 하고 잠적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선거운동을 전혀 하지 않았지만 결과는 당선이었습니다. 결국 그 사람은 변사체로 발견됐지요. ‘깃발을 꼽으면 된다’는 지역성은 이제 옛말입니다. 1960년대 이후 80년대까지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이념성이 한동안 우리 사회를 지배했습니다. 진보적 성향을 가진 사람은 군사정권 잔재의 정당을 지지하지 않고, 좌우의 대립이 팽팽했습니다. 그 이후에 나타난 것이 세대성인데 가장 무서운 현상입니다.”
―그 이유는요.
“지역성은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많이 해소됐습니다. 거주지가 자유로워지면서 어디 출신, 어느 고향 등이 예전보다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요즘의 ‘호남향우회’가 예전 같지 않지요. 이념성은 시류적 측면이 강합니다. 우리 사회의 민주화가 이뤄졌기 때문에 타도의 대상이 없어졌습니다. 더 이상 이념으로 편 가르기를 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30대가 보여주는 세대성은 타도의 대상이 없습니다. 30대의 심리는 ‘차별받았다’, ‘피해받았다’는 것인데 도대체 누구를 향한 분노이고 울분인지 알 수 없습니다. 종합적으로 불만이 많지만, 누구의 잘못이라고 규정지어야 할까요. 어떤 문제인지 알아야 문제 풀이를 할 수 있는데, 이들의 분노를 누가, 어디서, 어떤 방법으로 해결해야 할지 대책이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30대 대화장, ‘나꼼수’로 도배
취재과정에서 자칭 본인을 ‘중도(中道)’라고 말하는 30대를 만났다. A씨(35세)는 자영업을 하고 있고, B씨(33세)는 준정부기관 같은 기업체에 근무하고 있으며, 회계사 C씨(36세)는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고, D씨(39세)는 모대학 병원의 교수다. 이들은 통성명을 나누자마자 ‘나꼼수’ 얘기를 시작했다. ‘나꼼수’는 ‘나는 꼼수다’의 줄임말로, 《딴지일보》에서 제작하는 팟캐스트 방송이다. 이명박 대통령을 비꼬기 위해 ‘가카(각하)’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이 대통령과 주변 인물들이 뉴스의 소재다. 나경원은 ‘1억 피부과 클리닉’ 허위사실 유포죄로 ‘나는 꼼수다’의 출연진을 고발했다.
C씨: 요즘 ‘나꼼수’ 들으라고 파일 보내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아요?
B씨: 남자 셋이 점심 먹으러 가면 한 시간에 40분은 ‘나꼼수’ 얘기예요. 저는 처음에는 안 들었어요. 그랬더니 대화에 낄 수가 없는 거예요. 요즘은 일부러 시간 내서 들어요.
A씨: ‘나꼼수’가 박원순 만들었죠. 박원순 표 30%는 ‘나꼼수’ 몫일 걸요?
C씨: 30%는 무슨, 100%죠.
이 대목에서 기자가 끼어들었다. 기자는 30대 중반임에도 이전까지 ‘나꼼수’를 들은 적이 없었고, 주위로부터 파일을 전송받은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모임 참석자들은 순식간에 기자를 외계인 보듯 했다. 대화에서 철저하게 배제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C씨: 《월간조선》 기자인데 누가 들으라고 하겠어요? 그런데 ‘나꼼수’ 모르고는 30대를 알 수가 없다니까요. 이번에 ‘카톡’(카카오톡·휴대폰 문자메시지)에 서울시장 투표하고 손에 도장 찍은 애들 사진으로 도배됐잖아요. 그런 사진 찍는 애들이 이상한 애들이 아니에요. 카이스트 나오고, ‘스카이대’ 나온 애들이거든요. ‘나꼼수’는 좀 덜 배운 사람들이랑 많이 배운 박사급이랑 둘 다 좋아해요. 뭐랄까, 포르노 보는 느낌? 또 좀 덜 배운 사람들은 소위 잘나가는 애들이 ‘나꼼수’에 열광하는 걸 보면서, 자기가 박사급과 동일하다고 느끼고요.
A씨: 우리 형이 광팬이잖아요. 아주 만날 들으라고 난리 치는 데 죽겠어요. 홍준표(洪準杓) 나온 거 완전 코미디 아니에요? 홍준표는 ‘나꼼수’가 뭔지 모른 거야. ‘좋은 시간대에 방송 잡아달라’고 했다잖아요. 무슨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나오는 줄 알았나 봐요. 당 대표라는 사람이 그 정도로 요즘 세상을 모르는 거죠. ‘나꼼수’ 만든 김어준 참 대단한 사람이에요. 왜 예전에 조폭들이 한쪽에서 주먹질, 한쪽에서 박치기하면서 싸우는데 갑자기 조양은이 사시미 들고 나와서 양쪽 아킬레스건 다 끊었잖아요. 예전 조폭이 패싸움을 해도 예의가 있었다면, 조양은이 나와서 조폭 질서를 한순간에 바꿔버린 거예요. 김어준이 딱 그거예요. 우파 좌파 할 것 없이 그냥 난도질을 하는데, 그게 엄청 먹히는 거예요.
C씨: 에리카 김이 육성(肉聲)으로 나는 이명박이랑 오빠 동생 하는 사이다, 이러면 다 믿잖아요.
A씨: ‘나꼼수’ 들으면 무조건 믿게 된다니까.
괴담, 음모론의 생산지 ‘나꼼수’
기자는 다시 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조선일보》가 며칠 전 조사에서, 30대의 절반 이상이 우리 사회에 떠돌고 있는 ‘괴담’을 믿고 있다고 보도해서다.
기자: ‘나꼼수’의 얘기가 괴담일 텐데 믿는다는 건가요?
C씨: 괴담 수준이 아니라 완전 음모론이죠. 히딩크가 4강 올라가니까, ‘히딩크는 외계인이다’ 하는 것처럼요.
B씨: 그런데 믿게 된다니까요. 저도 좋은 대학 나와서 좋은 직장 다니고 강남 살거든요. 걔들이 인터넷 방송을 하면서 사실과 허구를 적절하게 섞어서 사용해요. 물론 허구가 나오는 대목에서는 허구라고 말을 하는데, 나중에는 뭐가 소설이고 뭐가 진짜인지 헛갈리는 거예요. 자꾸 듣다 보면 믿을 수밖에 없어요. 게다가 음모론은 재밌고 매력이 있잖아요.
A씨: 요즘 좌파의 코어는 김어준이라니까요. 진중권은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김어준을 싫어하잖아요.
C씨: 진중권은 지키고 싶거든. 마지막 자존심을.
A씨: 그래도 ‘나꼼수’는 싫어요. 포르노 보는 기분이 들어서요.
A씨는 김어준이 싫어서 별로 듣고 싶지 않지만 주변에서 계속 파일을 보낸다고 했고, B씨는 직장 동료들과의 대화에 끼고 싶어서 일부러 밤늦게라도 시간을 내서 청취한다고 했다. C씨는 스스로 중독이 될까 두려워서 안 듣는다고 했다.
“10년 전에 떠난 70대가 다시 자리를 꿰찼더라”
기자: 왜 박원순을 찍었습니까.
B씨: 저는 선거 날 몸이 안 좋아서 휴가를 냈어요. 집에서 쉬고 있는데 와이프가 하도 가자고 해서 선거하러 갔어요. 와이프가 야당 지지자가 아닌데 꼭 가야 한다대요.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둘이 주소지가 다른데, 투표장을 왔다갔다하면서 찍었죠.
A씨: 이번에 이명박을 안 바꾸면 큰일 난다고 생각한 거죠.
C씨: 이번 정권, 완전히 기절이잖아요? 꼴통보수에 물러나야 할 사람들이 다시 돌아왔어요. 실버 계층의 재취업도 중요하지만, 젊은층은 뭔가요? DJ, 노무현까지 정권이 두 번이나 바뀌었는데 10년 전의 그분들이 또다시 진입을 한 거죠. 70세 넘은 사람이 대학총장 하고, 기업체 사장 하고, 그런 걸 보면서 젊은 애들이 부글부글 끓는 거예요. 노인들이 그 자리를 꿰차고 앉으면 젊은 애들이 올라갈 수가 없잖아요.
저희 시아버지는 72세이신데, 노무현 때 쉬시더니 이 정권 들어서 또 어떤 자리를 발령받아 월급이 1000만원이 넘어요. 갈 사람은 가고 올 사람은 와야 하는데 세대교체가 안 돼요. 30대가 직장 다니면서 월급받아서 세금, 보험료를 꼬박꼬박 내는데 70대는 그것도 아니에요. 무슨 혜택, 무슨 무상지원 받을 건 다 받으면서 떵떵거리니까 화가 안 날 수 있나요. 세금은 내가 내는데 잘나가는 건 70대인 거죠. 게다가 나는 집도 없고 땅도 없고, 하루하루가 팍팍한데요.
B씨: 여기 모인 사람들은 좋은 대학 나오고, 잘나가는 사람들이잖아요. 그런 우리가 이 정도면 평범한 30대는 대체 어떻겠어요. 도대체 살 수가 없는 거죠. 우리 회사 사장님도 70대예요.
C씨: 완전히 ‘왕의 귀환’이지.
B씨: 모회사에서 연령제한을 두고 있는데 30대가 보면 웃긴 거죠. 사내에서 세대갈등이 심해요. 실제로는 서로 무시하죠. 우리 같은 사람은 윗세대를 보고 시대 잘 만나서 아직까지 회사 다니고 산다고 생각하고, 윗세대는 저것들이 철모르고 엉뚱한 소리나 한다고, 철부지라고 하고요.
C씨: 70대가 돼도 다들 너무 젊은 거예요. 힘이 쌩쌩하고, 자기들이 한창때인 줄 아는 거죠. 이 정부가 그렇게 만들어줬고요. 어른들 보기에는 MB정부가 일자리도 재창출해 주고, 내야 할 세금을 유보해 주니 나쁠 것이 없겠죠.
A씨: 이명박이 ‘그래도 경제는 잘하지 않았느냐’고 말하면 정말 열받는 거예요. 지금 우리가 살기 어려운 게 세계 경제가 힘들어서 다 같이 어려우면 이해가 가요. 대기업도 어렵고, 중소기업도 어렵고, 나라 살림도 어려우면요. 그런데 신문 보면 대기업은 만날 사상 최대의 실적이라고 하고, 대통령은 나와서 GDP가 올랐네 어쩌네, 거시경제 지표가 좋네 하면 화가 나는 거지요.
“30대에 책무 부여하면서 여전히 10대 취급”
C씨: 30대가 느끼는 세대갈등의 초점은 우리가 주역인데 주역 인정을 못 받는다는 거예요.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세금 내는데, 주위에서는 여전히 10대 취급을 하는 거죠. 무슨 10대가 부담과 책무는 그렇게 많아요?
A씨: 그러니까 박원순 찍은 사람들이 그렇게 저소득층이 아니죠. 역사가 정반합(正反合)으로 흘러가야 되는데 정반정(正反正)으로 되돌아가는 거죠.
C씨: 이회창(李會昌)이 했으면 똑똑한 사람이라도 앉혔을 것 같아요. 이걸 뭐라 그러지, 이명박 정부는 너무 천박해요. 하는 짓이.
A씨: 내곡동 사저 얘기 봐요. 황당하지요. 그거 ‘나꼼수’가 터뜨렸잖아요. 그런 거 접하면 30대는 ‘나꼼수’에 열광하고 갈수록 이명박이 싫어질 수밖에 없죠.
C씨: 저는 이번에 시장 선거에서 강남·서초·송파에서 나경원 지지율이 높은 걸 보니까 창피하더라고요. 저는 원래 집이 강남인데 직장 때문에 서대문에 살고 있거든요. 서대문 입장에서 보면 강남은 완전히 말도 안 되는 거예요.
A씨: 강남·서초가 이번에 새로운 전선(戰線)을 만들었지요.
C씨: 있는 사람들만 ‘철옹성’이죠. 저도 회계사인데, 하는 일이 뭐예요. 돈 있는 사람들 보호해 주는 거죠 뭐. 돈 있으니까, 자본주의의 파수꾼이니까. 그런데 정말 세금 제대로 걷고 싶으면 상가에 입주한 자영업자들 가게 훑을 것이 아니라, 재벌그룹 빡세게 조사하고, 재벌가 오너들, 권력자들을 제대로 지켜봐야 하는 거 아닌가요. 요즘 세상은 못 살고, 힘없는 아랫사람들에게만 투명해졌어요. 윗사람들의 비리는 갈수록 커지고, 밑에 사람들은 비리가 아예 없어지는 희한한 구조인 거죠.
A씨: 우리가 잘사는 사람들에 대해 무작정 비판만 하는 건 아니라고요. 30대가 현실적이잖아요. IMF 때 20대를 보내면서 돈이 무서운 것을 알았어요. 주위에서 ‘IMF 때 헐값에 빌딩 사서 몇 배 장사했다더라. 주식에 몰빵해서 몇 배 올랐다’는 얘기도 들어봤어요. 그래서 빚내서 집도 사보고, 주식도 해보고 했는데, 그렇게 윗세대처럼 집 한 칸이라도 마련해 보려 아등바등했는데 안 되는 거예요. 하다 보니 화가 나고 짜증이 나는 거예요. 근데 ‘나꼼수’를 보면 시원한 거죠.
C씨: 부모님은 너희는 그렇게 열심히 사는데 왜 그렇게 못 사냐고, 연봉이 적은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돈을 못 모으니 그러세요. 그런 얘기 들으면 막 화가 나는 거죠.
B씨: 저는 MB가 정말 경제를 살리거나 조금이라도 낫게 해줄 줄 알았잖아요. 솔직히 BBK사건이 사실이라고 밝혀졌어도 MB가 대통령 됐을 거예요.
A씨: 우리는 죽었다 깨도 부모 세대만큼 살 수가 없을 거예요.
B씨: 오죽하면 그런 얘기가 나와요. 자식 교육 성공하려면 부모의 정보력, 조부모의 경제력이 있어야 한다고요.
IMF 좌절+2002년 월드컵으로 광장문화 체험
이들의 얘기에 대해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부자아빠 가난한 아들 세대’라는 표현을 썼다.
함 교수의 얘기다.
“한국 사회의 구조적 불평등을 형성하는 주요 축(軸)은 지역, 계급이 아니라 세대갈등이라는 분석은 1990년대 초반에 사회학자들에 의해 제기됐습니다. 오늘날의 50~60대는 유년시절에 가난을 경험했지만 청년기 이후에 고도성장의 열매로 인해 사회 전반이 상향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반대로 30대는 부모에 비해 유복한 유년시절을 보냈지만, IMF 외환위기 이후 저성장이 지속되고 고(高)실업사회가 되면서 부모보다 잘살 확률이 0%인 세대입니다. 원래 사회란 제한된 자원을 배분하는 것인데, 기성세대는 경제적으로 혜택을 입었지만 30대에게는 기회조차 없는 겁니다. 미래도 암울하죠. 결국 이런 기성세대를 향한 분노가 정치권으로 향하고 이들을 결집시키는 겁니다.”
김문조(金文朝)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세대 체험’에 대한 얘기를 했다.
“30대는 IMF가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전 국민이 힘들었지만 그때 청소년기, 20대 초반을 보낸 30대가 느끼는 심정은 다른 세대보다 충격적이었죠. 성장과정에서 큰 사건이 발생하면 많은 사람에게 집단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세대 체험’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386세대가 가난에서 풍요를 일궜다면, 30대는 고도성장에서 저성장을 체험하는 세대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경제가 회복기에 접어들 즈음 월드컵이라는 일대 행사를 치릅니다. 월드컵은 ‘길거리 문화’였죠. 그곳을 찾은 30대가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길거리에서, 광장에서 표출할 수 있다는 체험을 한 것입니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이사의 얘기다.
“30대의 특성 중 하나는 ‘집단행동’입니다. ‘컬렉티브 액션(collective action)’이라고 하는데 촛불집회 같은 것이 한 예입니다. 50대에서 ‘트위터’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사람이 모임에 속해 있으면 그런가 보다 하지만, 30대에서는 철저하게 아웃입니다. 또래가 문화를 공유하면서 정치 지형이 개별화된 것이 아니라 똑같아졌습니다.”
MB정부, ‘Listening’ 없고 ‘Speaking’만 있어
다시 설문조사 결과로 돌아가 보자. ‘나경원이 선거에서 패배한 결정적인 원인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졌다. 응답자 141명 중 31명이 ‘시민과의 소통 부재’라고 답했고, ‘네거티브 등 선거홍보의 미숙’(30명)이 뒤를 이었다. 나경원의 ‘1억원 피부과 출입 의혹’이나 이명박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등이 원인이었다고 답한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다.
기타 항목에서 ‘한나라당이 서민을 위해 한 것이 없다’, ‘MB정부, 한나라당, 나경원 다 꼴 보기 싫다’, ‘나경원은 말을 너무 잘해서 오히려 믿음이 안 갔다’, ‘나경원이 서울시장 되면 힘들게 오세훈(吳世勳)을 물러나게 한 것이 의미 없어서’, ‘객관식의 모든 항목이 패배 원인이다’는 답이 있었다. 기타를 제외한 객관식에서 가장 많이 꼽은 것은 ‘소통 부재’다. 대체 30대가 생각하는 ‘소통’이란 무엇인가.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이사의 얘기다.
“이들이 말하는 것은 ‘귀기울여 듣기’입니다. 이 정부는 스피킹만 있고, 리스닝이 없으니까 문제가 있는 겁니다. 박원순은 최소한 자기네 얘기를 들어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 정치인이 트위터를 개설해서 ‘오늘은 어디서 밥 먹었다’, ‘지금 어디에 와 있다’는 글을 지속적으로 올리는 것을 보면 30대가 어떻게 느끼는 줄 아십니까? ‘왜, 몇 시에 잤는지도 말하지, 화장실 가는 것도 쓰지’ 이렇게 비아냥댑니다. 30대는 유명 정치인이 일거수일투족을 트위터에 쓰는 것이 소통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기가 쓴 트위터 글에 댓글을 달고, 공감을 해주는 모습을 기대합니다.
30대에게 중요한 것은 ‘셰어(share)’입니다. 자기네 얘기를 들어주고, 어떤 대화에 끼워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30대는 결과가 자신들의 뜻과 달라도 거기에 도달하는 과정을 설명해 주면 고개를 끄덕입니다. 무작정 우리가 원하는 것을 들어달라고 떼쓰는 어린아이가 아닙니다. 다만 자신들을 이해하고, 함께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를 원하는 겁니다. 그것이 이들이 원하는 소통입니다.”
30대가 말하는 ‘소통’
이명박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몸담았고, 현재 회사를 운영하는 50대 한 인사는 “광우병 사태 때 집단행동을 보인 30대의 행동이 일정부분 이해가 간다”고 말했다.
“정부의 일방적인 정책 하달에 대해 국민, 특히 30대의 분노가 극에 달했던 일이었습니다. 정부 권력자들이 어느 날 미국에서 돌아와서 ‘미국 소 수입기로 했다’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이지 않았다고 생각해 봅시다.
미리 국민들에게 이런저런 이유로 미국을 방문하고, 또 얘기를 들어보니 이런 것이 있다고 설명을 했어야 합니다. 이런 일이 벌어질 경우 우리는 미국에서 소고기를 수입해야 하고, 대신에 우리가 얻는 것은 이런 점이 있다고 국민들을 설득하고 충분히 설명했어야 합니다. 그랬어도 30대가 그렇게 거리로 뛰쳐나왔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그들에게 얘기해 주고, 함께 고민했더라면 그런 일이 없었을 겁니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나 결과물이라도 난데없이 국민에게 이해를 강요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인터뷰에 나선 대기업 직장인 이모(36·서초구)씨에게 ‘박원순처럼 젊은이들의 의견을 듣는 척하는 것과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은 다르지 않으냐’고 물었더니 이런 답이 되돌아왔다.
“박원순 같은 부류가 서민인 척하면서 얘기를 들어주기만 할 뿐 아무 대안이 없다는 얘기를 많이 합니다. 어쩌면 얘기를 듣지 않고 듣는 척만 할는지도 모르지요. 저는 반대로 묻고 싶습니다. 그러면 한나라당과 이 정부는 얘기를 들어준, 최소한 듣는 척이라도 한 적이 있습니까? 문제에 대한 솔루션을 제시한다는 건 적어도 그 문제가 무엇인지를 파악한 다음에 이뤄집니다. 제가 느끼기에 한나라당은 30대의 얘기에 귀기울인 적이 없습니다.”
위의 답변에 대해 리서치 전문가인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이사는 이렇게 분석했다.
“30대가 간절히 바라는 것 중의 하나가 공감입니다. 길러드(Gillard) 호주 총리가 ‘위 셰어 드림(We share dream)’이라는 구호로 인기를 끈 적이 있는데 딱 그겁니다. 물론 박원순이 이들의 얘기만 한껏 듣고 아무 대책 없이 끝낼 수도 있죠. 하지만 적어도 이들은 박원순이 현실 가능한 얘기를 한다면 거기에 동참하고, 꼭 결론이 좋게 나지 않더라도 함께하고픈 겁니다. 솔루션 자체를 공학적으로 가져가면 이들의 마음을 얻을 수 없습니다. 30대가 원하는 것은 당장이라도 이명박 대통령이 단출한 수행원과 함께 뜬금없이 청와대 앞 호프집에 들러 그들과 반값등록금, 전세대란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국무회의에서 그들의 얘기를 진정성 있게 꺼내는 겁니다. 30대가 원하는 소통이란 그런 겁니다.”
노무현 향수로 안철수 바라보는 이들
기자가 참석했던 ‘중도’ 30대 모임의 대화 속으로 다시 들어가 보자. 그들의 얘기는 다양한 방향으로 전개되다가, ‘제3당’ 얘기로 들어갔다. 여기에는 ‘노무현에 대한 일종의 향수’도 뒤섞여 있었다.
A씨: 저는 정치인들이 거들먹거리는 모습이 그렇게 싫더라고요. 30대가 지지했던 노무현, 박원순, 안철수가 비슷한 것은 권위주의가 없는 거거든요. 정치권에서 권위주의는 유통기한이 지났어.
B씨: 우리도 알 만큼 알고, 배울 만큼 배웠는데 단순히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윗세대의 의견을 무조건 따라야 하나요. 가끔 정치인들이 ‘우리가 너희 얘기를 들어줄 테니 해 봐’라는 식으로 나올 때 너무 우스운 거예요. ‘얘기를 들어준다’는 건 적절하지 않죠. 우리 세금으로 월급받으면서 마치 높은 자리에서 아랫사람 내려다보듯이 하는 태도만으로 화가 나는 거죠.
C씨: 뭔가 새로운 사람이 나올 때가 됐죠.
D씨: 저는 솔직히 75세 이상은 투표권을 제한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갖고 있어요. 투표권이라는 권력을 한없이 끌고 갈 필요가 없지 않나요. 노인들이 경제생활을 하는 것도 아니고요.
A씨: 우리도 40대 대통령이 나올 때가 됐어요. 가장 열심히 일하고 실력 있을 때가 30~40대 아닐까 싶어요. 임금 피크제나 권력 피크제를 만들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어떤 기수가 검찰총장이 되면, 그 위의 기수는 줄줄이 옷 벗는 거 너무 우스워요. 그래서 좀 바꿀 사람이 있으면 싶은데 안철수는 왠지 불안해요. 노무현 때랑 똑같이 반복될 것 같아서요.
C씨: 심정적으로 안철수가 좋기는 한데, 너무 힘이 없잖아요. 그리고 우리는 한번 봤잖아요. 심정적으로 노무현 좋아해서 찍었는데 힘없으니까 맥없이 무너지는 모습을요.
D씨: 능력이 없는 건 아닌데, 옆에서 도와줄 사람이 없겠죠.
C씨: 국민이 든든한 조력자가 되지 못한다는 건 노무현 때 이미 알았죠. 그렇게 밀어줘도 안 되더라고요.
D씨: 노무현이 얼마나 그랬으면 ‘회전문 인사’를 했겠어요. 지금 MB 회전문 인사랑은 다르죠. 노무현은 정말 주위에 사람이 없었고, MB는 사람은 많지만 자기 사람 이외에는 쳐다보기가 싫은 거고요.
A씨: 안철수, 박원순 지지세력의 공통점은 반한나라, 비민주당이죠. 이 세력의 스펙트럼이 없어요. 별별 사람이 다 있어요. 순수 좌파, 이기적인 박쥐, 딱히 보수라고는 할 수 없는 보수까지 다 있어요.
C씨: 솔직히 이번에 박원순이 시민단체를 안 끌고 들어가서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대선은 다르니까요.
B씨: 저는 그냥 세상이 좀 어지러워도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권력을 나눠갖고, 그냥 승자독식이 싫어요.
D씨: 한나라당은 안 찍을 거예요. 싫어서가 아니라 바뀔 것 같지가 않아서요. 그렇다고 민주당도 아니고, 참 어려운 거죠.
‘한나라당 무조건 안 찍는다’(45.4%)
이번 조사에서도 기존 정당이 아닌, 새로운 세력의 출현에 대한 기대들이 여러 군데에서 감지됐다.
‘박원순이 민주당 후보였어도 지지했을 것’이라는 응답자가 전체의 83%(117명)였지만, ‘무소속’ 박원순을 응원한 이의 얘기도 구체적이었다.
양천구에 사는 31세 회사원은 “한나라당과 민주당 모두 나라를 살리는 게 아니라 말아먹고 있다. 나랏일은 하지 않고 두 당 모두 비판과 돈만 챙기고 있는데 박원순이 무소속이 아니었다면 찍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30대에게 ‘내년 총선에서 무소속에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뽑겠다’는 사람이 전체의 90.8%(128명)였다. ‘대선에서는…’에 대해서 역시 83.7%(118명)였다.
이정희(李政熙)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번 시장 선거가 정치사의 터닝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장에 무소속 후보가 당선됐다는 것은, 물론 야당의 도움을 받았다고는 하나 새로운 변화입니다. 정치권이 잘하고, 정치사회가 공고화된 상황에서는 일반 시민들이 국회에 나설 여지가 없습니다. 이번 선거는 정당에 몸담지 않은 사람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보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박원순 시장이 제대로 시정을 펼친다면 이런 추세는 확산될 것입니다. 하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면 ‘구관이 명관’이라는 얘기가 나올 수 있습니다. 제3세력의 등장에 한계가 될 수 있습니다.”
한나라당에 대한 30대의 반감은 상당히 높은 것으로 이번 설문조사에서도 나타났다.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한나라당에 투표할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무조건 찍지 않겠다’는 답이 전체의 45.4%(64명)였다. ‘한나라당 후보의 인물을 보고 지지하겠다’가 29%(41명), ‘한나라당의 정책을 보고 지지하겠다’가 12%(17명)였다.
함인희 교수는 유권자 30대의 힘에 대해 이렇게 정의했다.
“30대는 디지털커뮤니케이션으로 무장된 세대입니다. SNS를 통해 투표 독려를 하는 행위도 디지털의 영향으로 자연스럽습니다. 이들은 투표를 통해서 그들의 파워를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실질적으로 득실(得失)을 따지고, 전통 차원에서의 권력이 50대 이상에 있다면, 30대는 사이버 권력을 통해 그들의 힘을 표출합니다. 더구나 이들은 평소에는 정치에 무관심하다가 필요한 순간에는 무섭게 결집하는 성향이 있어 유권자로서 중요합니다.”⊙
같은 회사에 다니는 서른여섯의 이범준(가명·서초구 거주)씨는 투표를 하지 않았다. 이씨는 “투표장에 갔다면 나경원(羅卿瑗) 후보를 찍었겠지만, 나 후보를 열렬히 지지하는 편이 아니라 출근길에 투표소에 들르는 수고를 하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딱히 정치 성향이 없지만, 좌파·종북(從北) 세력에 대해서는 알레르기를 보일 정도로 거부감이 있었다. 그렇다고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것도 아니다. 이씨는 “심정적으로 나경원 후보를 지지했던 30대 사람들은 대부분 투표를 하지 않았다”며 “박원순을 지지하는 후배들이 아침 일찍 일어나 투표하고 출근했다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노무현-이명박-박원순 찍은 아리송 세대
대한민국 정치권이 ‘30대’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다. 투표권자로서 30대의 성향이 도무지 파악되지 않아서다.
30대가 누구인가. 지난 2002년 대선(大選)에서 노무현(盧武鉉) 당시 민주당 후보를 열렬히 지지했던 세대다. 지난 2008년 대선에서는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에게 기대를 표시하며 투표를 했다. 하지만 이번에 치러진 서울시장 선거에서 이들은 박원순 후보에 몰표를 던졌다. ‘노무현-이명박-박원순(이하 정치인 존칭·직책 생략)’의 전혀 공통점 없는 이들을 지지한 세대다.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이들의 75.8%는 박원순을 뽑았다고 대답(YTN 출구조사)했다. 나경원 지지율(23.8%)의 세 배다.
‘75.8’이라는 숫자는 무시무시한 위력으로 다가온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서치앤리서치 배종찬(裵鍾贊) 이사는 ‘75.8’에 대해 이렇게 분석했다.
“절대적인 지지율이죠. 특정 집단의 75%가 한 사람을 지지한다면, 그 사람 입장에서는 100%가 나를 지지한다고 느낄 정도의 숫자입니다. 숫자의 패러독스인데, 나를 지지하지 않는 사람이 단 한명도 없다고 느낄 정도의 수치입니다. 만약 이들이 박원순을 좋아해서 이처럼 몰표를 던졌다면, 그에게 절대적인 신뢰와 지지를 보내는 것을 뜻합니다. 반대로 박원순이 좋아서가 아니라, 누군가가 싫어서 그에 대한 반감으로 박원순을 뽑았다고 해보죠. 이때 75.8%라는 숫자는 박원순의 대항세력에 대한 불만이 극도로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해석됩니다. 불만의 최고조,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을 정도로 화가 났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한나라당과 MB정부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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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서치앤리서치 배종찬 이사는 “특정 집단의 75%가 한 사람을 지지한다면, 그 사람 입장에서는 100%가 나를 지지한다고 느낄 정도”라고 했다. |
《월간조선》은 지난 11월 3일부터 12일까지 이번 선거에서 박원순을 찍은 30대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박원순을 찍은 이유, 박원순에게 쏟아졌던 병역기피, 재벌로부터의 특혜의혹 등 각종 의혹이 투표에 영향을 끼쳤는지 여부,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어떤 정당을 지지할 것인지 등 총 16개 문항이었다.
약 200여 명이 설문에 응했고, 복수응답 등을 한 설문을 제외한 141명(남성 105명, 여성 36명)에 대해 통계를 냈다. 평균 연령은 33.4세로, 거주지역은 강남구 18명, 노원구 11명, 송파구 10명, 서초·관악구 각 9명, 성북구 7명, 성동·동대문·은평·마포구 각 6명 등 서울시 전역이다. 직업은 대기업·중소기업 회사원, 공무원, 학생, 서비스업 종사자, 의사, 언론인, 자영업자 등 천차만별이다.
‘박원순을 뽑은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 ‘서울시장으로 적절해서 뽑았다’고 답한 사람은 전체의 36.9%(총 52명)뿐이었다.
‘한나라당 혹은 이명박에 대한 반감 때문에 박원순을 뽑았다’가 24.8%(35명), ‘나경원이 부족하다고 생각돼서’가 20.6%(29명)였다. 응답자의 5%(7명)는 ‘안철수가 박원순을 지지해서’라고 답했다.
박원순이 시장감으로 좋아서라기보다, 나경원이 부족하거나 이명박 대통령이 싫어서 투표한 30대가 전체의 절반(45.4%) 가까이 됐다. 30대 표심(票心)은 비(非)나경원, 반(反)한나라·MB정부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강남구 양재동에 거주하며 한 골프회사 팀장으로 재직 중인 서른다섯의 박영훈(가명)씨 얘기다.
“박원순에 투표했지만, 여전히 박원순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MB정부는 정말 싫습니다. 정권 초기부터 무조건 밀어붙이기 식으로 정치를 하고, 기득권 세력을 대변했습니다. 박원순을 보고 좌파 아니냐, 시장감이 아니다 등 여러 말이 있지만, 상위 10%를 대변하는 MB정부만 할까요? 한나라당이 보수 색채가 짙은 정당 정도라고 생각했지 이렇게 싫지는 않았습니다. 이번에 한나라당 후보가 시장 할까 봐 무서워서 박원순을 찍었습니다.”
“어떤 의혹이 나와도 이 정부에 대한 실망만 하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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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대 한 회사원은 “박원순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한나라당 후보가 시장을 할까 무서워 박원순을 찍었다”고 했다. |
“나경원은 한나라당이 다급하니까 어느 날 갑자기 짠하고 등장시킨 후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박원순은 결과야 어찌됐든 시민운동가로 활동했고, 본인의 의지로 사회의 변화를 일구려는 모습들을 보여줬죠. 나경원은 ‘엄친딸’(외모 좋고 능력 있는 사람을 뜻함)이라는 것을 제외하고는 보여준 모습이 없었어요. 나경원의 ‘1억 피부과설(說)’이 나왔을 때 전혀 놀랍지 않았습니다. 실망하지도 않았고요. 당연히 그렇겠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투표소에서 마지막까지 고민하다 박원순을 찍었습니다. 평소 한나라당에 대한 반감이 크지 않았는데 이 정부 들어서는 정말 너무한다 싶어서요.”
국내 재벌그룹 계열사에서 과장으로 근무 중인 조문용(36·가명)씨는 이랬다.
“박원순이 좋은 것이 아니라 반 한나라 심정으로 찍었습니다. MB정권은 소통을 강조하면서 뭐가 진정한 소통인지 개념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민심(民心)을 무서워하는 것은 맞는지 의심이 갈 정도입니다. 솔직히 박원순 의혹이 나올 때마다 ‘허허, 의외네’ 싶은 생각은 들었어요. 하지만 어떤 의혹이 더 나왔어도 이 정부에 대한 실망만큼이야 하겠습니까. 박원순이 서민을 지향한다면서 정작 본인은 서민이 아닌 것도 알고, 정책이 좋아 보이지도 않지만 그를 찍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장 투표가 이 정권에 대한 심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몇몇 대기업에 다니는 대리와 과장들은 설문조사를 하면서 기자에게 “제 부서의 임원을 만나면 (본인이) 박원순 찍었다는 얘기를 비밀로 해달라”고 했다.
국내 4대 그룹에 근무하는 이모 대리의 얘기는 이랬다.
“좋은 학교 나와서 좋은 직장에 다니면 당연히 보수이고, 우파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이번 선거 때 상무님이 ‘박원순 찍는 젊은 애들 보면 정말 철딱서니가 없어 보여. 너희는 아니지?’라고 말씀하셨거든요. 실제로 서울대, 카이스트 나오고 좋은 직장 다니면서 강남 사는 친구들 중에 박원순 열혈 지지자들이 많습니다. 한나라당이 집권해서 양극화가 극대화되고 서민들의 삶이 팍팍해졌으니까요. 가끔 나이 든 분들이 사회에 불만 있는 젊은층이 야권 후보를 지지한다는 식(式)으로 얘기할 때면 ‘정말 몰라도 너무 모르는구나’ 싶습니다.”
“어차피 2년8개월밖에 안 남았는데 무소속이 해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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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문 응답자의 대다수가 박원순이 고급 빌라에 사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진은 언론에 공개된 박원순의 방배동 자택 내부 모습. |
“박원순이냐 나경원이냐가 아니었습니다. 애초 박원순의 지지도가 5%였는데 안철수가 지지의사를 밝히자 단숨에 45%가 됐습니다. 전(全) 세계에서 한 달 동안 9배나 뛴 주식이 있을까요. 사람들은 실체를 보는 것이 아니라 프레임을 봅니다. 가령 안철수를 지지하는 사람들도 안철수를 하나하나 분석하면서 좋아하는 것이 아닙니다. 안철수의 어떤 형태, 어떤 내용이 사람들에게 하나의 지향점이 되는 거죠. ‘한나라당을 어떻게 심판을 할까’하다가 반대편을 찍는 식입니다. 젊은이들은 마음속에 어떤 모양을 만들고, 그 모양이 안철수에 가까우면 안철수를 지지하고, 박원순에 가까우면 박원순을 지지하는 식입니다. 이 정부에 대해 반감이 극에 달한 30대에게 이번 선거는 고민할 필요가 없는 일이었죠.”
함인희(咸仁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투표에는 이번 시장 선거처럼 특정 후보가 좋아서가 아니라 상대가 싫어서 대안으로 선택하는 경우가 사실 더 많다”고 말했다.
노원구 상계동에 사는 36세의 자영업자 윤명훈(가명)씨가 박원순을 뽑은 이유는 또 달랐다. 그는 투표권을 가진 이후에 민주당이나 무소속 후보에게 한번도 투표를 해본 적이 없을 정도로, 친(親) 한나라당 성향이다. 야당이 주장하는 ‘전면 무상급식’도 반대한다.
윤씨는 “나경원의 ‘강남 아줌마’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고, 일본 자위대 창설 기념식에 참석한 것에 몹시 실망했다”며 “한나라당이 하는 일이 번번이 실수투성이여서 어차피 2년8개월밖에 임기가 남지 않았는데 무소속이 한번 해보라는 심정으로 뽑았다”고 말했다. 그는 내년 총선, 대선에서 무소속 후보를 뽑을 생각이 없다.
“박원순 병역이 문제면 한나라당 절반은 그만둬야”
박원순은 각종 의혹에 시달렸다. 박원순을 지지한 30대는 이런 의혹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이런 사실을 눈여겨보지 않았을까.
조사 결과 박원순 후보의 병역 의혹과 고급 빌라 거주, 재벌그룹으로부터의 후원 등에 대해서는 대다수가 ‘알고 있었다’고 답했다. 반면 박원순 후보 참모의 좌파 활동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는 답이 많았다.
‘박원순이 작은 할아버지에게 입양돼 군복무를 짧게 한 것을 알고 있었습니까’라는 질문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65명)와 ‘대략 알고 있었다’(40명) 등 ‘알고 있었다’는 응답자가 전체의 74.5%였다.
이들이 박원순의 병역 의혹을 바라보는 시각은 두 가지였다. 군 기피 의도가 있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래도 한나라당만 하랴’고 했고, 병역 의혹이 사실이 아니라는 사람들은 ‘한나라당의 네거티브 공세’라고 정리했다.
서대문구에 거주하는 32세의 여성 회사원은 “병역 의혹에 신빙성이 떨어지고 박원순의 해명이 구체적이며 논리적이었다”고 했다. IT서비스 분야에서 일하는 33세의 직장인(강남구)은 “60년대에 농촌에서 대가 끊어진다는 인식으로 양손 입양을 시켰을 수 있다. 병역 기피를 목적으로 자기 자식을 호적에서 빼는 부모는 있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30세의 박사과정에 다니는 남성(용산구)은 “박원순의 병역이 문제가 된다면 한나라당 국회의원의 절반은 그만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모 방송국의 PD인 여성(33세·영등포구)은 “박원순의 의혹이 해소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기존의 정치인들보다는 깨끗하다는 판단에서 그를 뽑았다”고 말했다.
박원순은 선거기간 내내 ‘친서민 후보’임을 내세웠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서초구 방배동의 61평짜리 빌라에 월세 250만원을 내며 거주하고 있다. 그는 한 방송에 출연해 “압구정동에 살다가 반포 살다가, 방배동으로 밀려왔다”는 표현도 했다.
“재벌 후원으로 시민단체 활동하는 것 당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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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재단의 자매기관인 ‘아름다운 가게’. 30대 다수는 ‘시민단체에 대기업이 후원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
이런 사실이 투표에 영향을 끼쳤느냐고 물었다.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사람이 58명(41.1%)이었다.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나경원이 싫어서 뽑았다’는 27명(19.1%)이었다.
이 문항은 기타의 응답이 많았다.
‘그래 봐야 월세다’는 의견이 가장 많았고, ‘책을 위해서 넓은 곳에 산다면 문제없다’‘나경원은 더 비싼 데 산다더라’‘내곡동 사저로 시끄러웠던 MB만 하겠느냐’는 의견들이 있었다.
은평구에 사는 회사원 이현주(가명·32세)씨는 이랬다.
“부자가 서울시장이 될 자격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태어날 때부터 양손에 모든 것을 쥐고 태어나 약자의 삶이 무언지 가늠하지 못하는 후보가 자격이 없다는 얘기입니다. 나경원에게 서울시장이라는 자리는 자신의 정치 도약을 위한 발판일 뿐 아니었을까요? 박원순은 적어도 서민을 위한 운동을 했고, 서민의 삶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저는 고결하고 잘난 시장을 바란 적이 없습니다. 적어도 박원순처럼 조금이라도 나와 연관된, 내 피부에 닿는,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시장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박원순의 ‘아름다운 재단’이 태평양, 교보그룹 등 재벌그룹으로부터 1000억원 가까운 후원을 받은 사실에 대해서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 ‘잘 알거나, 대략 알고 있었다’는 응답자가 총 105명(74.5%)이었다. 30대의 대부분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었다.
‘재벌 후원으로 시민단체 활동을 하는 것은 너무 당연하고 바람직하다’(32세 남·서초구·회계사), ‘칼은 쓰는 사람에 따라 과도가 될 수도 있고, 흉기가 될 수도 있다. 적어도 아름다운 재단에서 헛으로 쓰지 않았다고 믿는다’(35세 남·영등포구·회사원), ‘아름다운 재단은 자선단체다. 자선단체에 대기업이 후원한 것은 훌륭한 일이지 나쁜 일이 아니며, 박원순 하나만 보고 했을 리는 없다’(33세 남·강동구·금융업), ‘재벌에게 돈 받았어도 사용 내역이 공개됐으면 공적(公的)으로 사용됐다는 거다. 땅 파면 돈 나오나? 아름다운 재단은 그런 데서라도 후원을 받아야 일한다’(30세 남·관악구·회사원), ‘재벌 후원을 받아서 어려운 사람을 도왔다. 한나라당은 뒤에서 더욱 심한 후원을 받지 않았나’(33세 여성·영등포구·방송인), ‘재벌의 재단후원은 사회공헌이며 법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문제될 것이 없다’(32세 여성·서대문구·회사원) 등이었다.
“박원순 참모의 좌파 활동 알았어도 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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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원순의 참모인 안진걸(사진 왼쪽)씨가 좌파 활동을 해온 사실을 알았더라도 박원순을 뽑았을 것이라는 응답이 94.4%에 달했다. |
‘박원순 후보 참모인 안진걸씨가 과거 광우병 대책회의 조직팀장 등을 맡으며 좌파 활동을 해온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까’라는 물음에 ‘알고 있었다’는 응답은 52명(36.8%)에 불과했다. ‘잘 모르고 있었다’(51명)와 ‘처음 듣는 소리다’(38명)는 응답이 총 63.2%였다.
하지만 응답자가 이 사실을 잘 몰랐다고 해서, 선거에 어떤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니었다. ‘만약에 좌파 활동 사실을 알았다면 다른 후보를 지지했겠느냐’는 질문에 대해 ‘그래도 박원순을 뽑았을 것’이라는 응답자가 총 84명으로, 전체의 94.4%였다.
이 설문의 결과를 놓고 보면, 가령 박원순에게 쏟아진 의혹이 이보다 훨씬 많았다고 해도 그를 향한 30대의 지지(엄밀히 말하면 반 MB 심리)는 달라지지 않았을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항목에 대해 응답자의 대다수는 분개했다. ‘광우병 대책회의 조직팀장 등을 맡으며 좌파 활동’이라고 명시한 대목 때문이었다. 몇몇 응답자는 속어와 원색적인 표현을 써가며 적대감을 드러냈다.
강동구에 사는 34세의 회사원 김주성(가명)씨의 얘기다.
“광우병 대책회의가 어떻게 좌파 활동입니까. 자기 의견을 표출한 거지. 가령 좌파 활동이라고 해도 나쁘지 않습니다. 수구(守舊) 보수보다 백 배 낫다고 생각합니다.”
노원구에 사는 30세 여성 사무직원 이혜원(가명)씨는 “좌파 활동이라는 명명(命名) 자체에 동의할 수 없다. 광우병 대책회의는 민심의 반영이었지 좌파 활동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 외에 ‘좌파’라는 단어에 대해 적대감을 드러낸 답변을 보자.
“좌파 활동이 문제가 됩니까? 그럼 당신들이 우파 활동을 하는 것도 문제가 되겠네요.”(30세·광진구·CEO)
“광우병 대책회의가 왜 좌파 활동입니까? 국민의 건강을 염려해서 조금 더 성실한 협상을 원한 활동이었을 뿐입니다.”(38세·서초구·사무직)
“광우병 대책회의가 좌파 활동이라면, 나도 좌파입니다.”(30세·성북구·학원강사)
“좌우 양분론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33세·동대문구·교사)
우파·좌파 구분 자체에 반감
성북구에 사는 30세의 대부업을 한다는 김지훈(가명)씨는 설문조사의 항목에 대해 이런 식으로 답을 했다.
“박원순의 병역 기피요? 한나라당 의원들이 하도 해서 그다지 신선해 보이지 않는데요. 고가 빌라요? 월세 산다잖아요. 재벌 후원 받은 것이요? 있는 놈들이 재단에 기부하는 것이 무슨 잘못입니까. 참모가 좌파라고요? 한나라당이 보기에는 좌파 활동이지만 제가 보기에는 상식적인 행동입니다.”
중구에 사는 30세의 여성 회사원 이혜원(가명)씨도 비슷한 입장이다.
“병역 기피 의혹이요? 한나라당보다는 낫지요. 재벌한테 후원 받은 것은 문제가 안 되죠. ‘아름다운 재단’의 회계 처리가 투명하잖아요. 참모가 좌파라고요? 상대 후보가 박원순이 아닌 그 누구였다고 해도 한나라당 후보를 당선시키지 않기 위해 뽑아야죠.”
왜 이들은 ‘좌파’라는 단어에 대해 예민한 반응을 보였을까. 광우병 대책회의가 좌파 활동이 아니라고 굳게 믿는 이유는 무엇일까.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는 이렇게 분석했다.
“우리나라에서 우파와 좌파는 뚜렷한 기준이 없이 상대적인 개념입니다. 유럽에서는 기존의 질서를 고수하면 우파, 기존의 질서를 바꾸려는 움직임은 좌파로 규정합니다. 미국의 경우 민주당과 공화당의 공약이 확연하게 다르고, 한 이슈를 보는 시각이 정반대입니다. 우리의 경우는 다릅니다. 보수와 진보(進步)라는 단어의 설정 자체가 잘못됐습니다.”
―무슨 얘기입니까.
“좌파에서 진보라는 단어를 선점하면서 의미가 묘해졌습니다. 우파는 꼴통보수, 좌파는 진보세력으로 규정됐죠. 진보라는 단어는 정말 좋은 단어입니다. 보수 역시 진보를 하고 싶지요. 세상에 진보 안 하고 싶은 곳이 어디 있나요. 구분이 모호하고 혼용되다 보니, 젊은층에 혼란을 주는 겁니다. 게다가 한나라당, 민주당은 정책을 보면 차이가 없습니다. 두 정당 모두 보수 정당이죠. 과거 386세대 이상은 이념적 성향으로 인해 좌우의 대립이 있었지만, 그 시대를 겪지 않은 오늘날의 젊은층은 그런 식의 이분법을 달가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방송국에 다니는 33세의 한 여성은 이렇게 말했다.
“좌파, 우파를 나누는 기존 정치권의 이분법적 사고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이번 선거에서 박원순을 찍은 이유는 기존 정치권에 대한 불신 때문이었습니다. 특히 한나라당에 대한 회의 때문이었죠. 30대는 취업난, 전세난에 허덕이는데 소위 엘리트 그룹이라는 한나라당은 ‘그들만의 리그’에 사는 사람 같았습니다. 좌우 대립 논리 때문이 아닙니다.”
지역성, 이념성을 거쳐 최근 트렌드는 세대성
요즘 정치권에서는 30대의 이런 습성에 대해 ‘세대 간의 골이 깊어진 것’으로 분석하는 분위기다. 새롭게 등장한 트렌드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이사의 얘기다.
“절대지지 현상은 지역성, 이념성, 세대성 등으로 분류됩니다. 세대성은 요즘 나타난 현상이죠. 오랫동안 우리 정치는 지역성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지난 2006년 지방선거 때 부산의 기초의원 선거구에서 한나라당 공천을 받은 후보가 등록을 하고 잠적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선거운동을 전혀 하지 않았지만 결과는 당선이었습니다. 결국 그 사람은 변사체로 발견됐지요. ‘깃발을 꼽으면 된다’는 지역성은 이제 옛말입니다. 1960년대 이후 80년대까지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이념성이 한동안 우리 사회를 지배했습니다. 진보적 성향을 가진 사람은 군사정권 잔재의 정당을 지지하지 않고, 좌우의 대립이 팽팽했습니다. 그 이후에 나타난 것이 세대성인데 가장 무서운 현상입니다.”
―그 이유는요.
“지역성은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많이 해소됐습니다. 거주지가 자유로워지면서 어디 출신, 어느 고향 등이 예전보다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요즘의 ‘호남향우회’가 예전 같지 않지요. 이념성은 시류적 측면이 강합니다. 우리 사회의 민주화가 이뤄졌기 때문에 타도의 대상이 없어졌습니다. 더 이상 이념으로 편 가르기를 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30대가 보여주는 세대성은 타도의 대상이 없습니다. 30대의 심리는 ‘차별받았다’, ‘피해받았다’는 것인데 도대체 누구를 향한 분노이고 울분인지 알 수 없습니다. 종합적으로 불만이 많지만, 누구의 잘못이라고 규정지어야 할까요. 어떤 문제인지 알아야 문제 풀이를 할 수 있는데, 이들의 분노를 누가, 어디서, 어떤 방법으로 해결해야 할지 대책이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30대 대화장, ‘나꼼수’로 도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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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티즌들은 투표했음을 증명하기 위해 투표소 앞에서 찍은 사진을 두고 ‘투표 인증샷’이라고 부른다. |
C씨: 요즘 ‘나꼼수’ 들으라고 파일 보내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아요?
B씨: 남자 셋이 점심 먹으러 가면 한 시간에 40분은 ‘나꼼수’ 얘기예요. 저는 처음에는 안 들었어요. 그랬더니 대화에 낄 수가 없는 거예요. 요즘은 일부러 시간 내서 들어요.
A씨: ‘나꼼수’가 박원순 만들었죠. 박원순 표 30%는 ‘나꼼수’ 몫일 걸요?
C씨: 30%는 무슨, 100%죠.
이 대목에서 기자가 끼어들었다. 기자는 30대 중반임에도 이전까지 ‘나꼼수’를 들은 적이 없었고, 주위로부터 파일을 전송받은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모임 참석자들은 순식간에 기자를 외계인 보듯 했다. 대화에서 철저하게 배제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C씨: 《월간조선》 기자인데 누가 들으라고 하겠어요? 그런데 ‘나꼼수’ 모르고는 30대를 알 수가 없다니까요. 이번에 ‘카톡’(카카오톡·휴대폰 문자메시지)에 서울시장 투표하고 손에 도장 찍은 애들 사진으로 도배됐잖아요. 그런 사진 찍는 애들이 이상한 애들이 아니에요. 카이스트 나오고, ‘스카이대’ 나온 애들이거든요. ‘나꼼수’는 좀 덜 배운 사람들이랑 많이 배운 박사급이랑 둘 다 좋아해요. 뭐랄까, 포르노 보는 느낌? 또 좀 덜 배운 사람들은 소위 잘나가는 애들이 ‘나꼼수’에 열광하는 걸 보면서, 자기가 박사급과 동일하다고 느끼고요.
A씨: 우리 형이 광팬이잖아요. 아주 만날 들으라고 난리 치는 데 죽겠어요. 홍준표(洪準杓) 나온 거 완전 코미디 아니에요? 홍준표는 ‘나꼼수’가 뭔지 모른 거야. ‘좋은 시간대에 방송 잡아달라’고 했다잖아요. 무슨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나오는 줄 알았나 봐요. 당 대표라는 사람이 그 정도로 요즘 세상을 모르는 거죠. ‘나꼼수’ 만든 김어준 참 대단한 사람이에요. 왜 예전에 조폭들이 한쪽에서 주먹질, 한쪽에서 박치기하면서 싸우는데 갑자기 조양은이 사시미 들고 나와서 양쪽 아킬레스건 다 끊었잖아요. 예전 조폭이 패싸움을 해도 예의가 있었다면, 조양은이 나와서 조폭 질서를 한순간에 바꿔버린 거예요. 김어준이 딱 그거예요. 우파 좌파 할 것 없이 그냥 난도질을 하는데, 그게 엄청 먹히는 거예요.
C씨: 에리카 김이 육성(肉聲)으로 나는 이명박이랑 오빠 동생 하는 사이다, 이러면 다 믿잖아요.
A씨: ‘나꼼수’ 들으면 무조건 믿게 된다니까.
괴담, 음모론의 생산지 ‘나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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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딴지일보》에서 제작하는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
기자: ‘나꼼수’의 얘기가 괴담일 텐데 믿는다는 건가요?
C씨: 괴담 수준이 아니라 완전 음모론이죠. 히딩크가 4강 올라가니까, ‘히딩크는 외계인이다’ 하는 것처럼요.
B씨: 그런데 믿게 된다니까요. 저도 좋은 대학 나와서 좋은 직장 다니고 강남 살거든요. 걔들이 인터넷 방송을 하면서 사실과 허구를 적절하게 섞어서 사용해요. 물론 허구가 나오는 대목에서는 허구라고 말을 하는데, 나중에는 뭐가 소설이고 뭐가 진짜인지 헛갈리는 거예요. 자꾸 듣다 보면 믿을 수밖에 없어요. 게다가 음모론은 재밌고 매력이 있잖아요.
A씨: 요즘 좌파의 코어는 김어준이라니까요. 진중권은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김어준을 싫어하잖아요.
C씨: 진중권은 지키고 싶거든. 마지막 자존심을.
A씨: 그래도 ‘나꼼수’는 싫어요. 포르노 보는 기분이 들어서요.
A씨는 김어준이 싫어서 별로 듣고 싶지 않지만 주변에서 계속 파일을 보낸다고 했고, B씨는 직장 동료들과의 대화에 끼고 싶어서 일부러 밤늦게라도 시간을 내서 청취한다고 했다. C씨는 스스로 중독이 될까 두려워서 안 듣는다고 했다.
“10년 전에 떠난 70대가 다시 자리를 꿰찼더라”
기자: 왜 박원순을 찍었습니까.
B씨: 저는 선거 날 몸이 안 좋아서 휴가를 냈어요. 집에서 쉬고 있는데 와이프가 하도 가자고 해서 선거하러 갔어요. 와이프가 야당 지지자가 아닌데 꼭 가야 한다대요.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둘이 주소지가 다른데, 투표장을 왔다갔다하면서 찍었죠.
A씨: 이번에 이명박을 안 바꾸면 큰일 난다고 생각한 거죠.
C씨: 이번 정권, 완전히 기절이잖아요? 꼴통보수에 물러나야 할 사람들이 다시 돌아왔어요. 실버 계층의 재취업도 중요하지만, 젊은층은 뭔가요? DJ, 노무현까지 정권이 두 번이나 바뀌었는데 10년 전의 그분들이 또다시 진입을 한 거죠. 70세 넘은 사람이 대학총장 하고, 기업체 사장 하고, 그런 걸 보면서 젊은 애들이 부글부글 끓는 거예요. 노인들이 그 자리를 꿰차고 앉으면 젊은 애들이 올라갈 수가 없잖아요.
저희 시아버지는 72세이신데, 노무현 때 쉬시더니 이 정권 들어서 또 어떤 자리를 발령받아 월급이 1000만원이 넘어요. 갈 사람은 가고 올 사람은 와야 하는데 세대교체가 안 돼요. 30대가 직장 다니면서 월급받아서 세금, 보험료를 꼬박꼬박 내는데 70대는 그것도 아니에요. 무슨 혜택, 무슨 무상지원 받을 건 다 받으면서 떵떵거리니까 화가 안 날 수 있나요. 세금은 내가 내는데 잘나가는 건 70대인 거죠. 게다가 나는 집도 없고 땅도 없고, 하루하루가 팍팍한데요.
B씨: 여기 모인 사람들은 좋은 대학 나오고, 잘나가는 사람들이잖아요. 그런 우리가 이 정도면 평범한 30대는 대체 어떻겠어요. 도대체 살 수가 없는 거죠. 우리 회사 사장님도 70대예요.
C씨: 완전히 ‘왕의 귀환’이지.
B씨: 모회사에서 연령제한을 두고 있는데 30대가 보면 웃긴 거죠. 사내에서 세대갈등이 심해요. 실제로는 서로 무시하죠. 우리 같은 사람은 윗세대를 보고 시대 잘 만나서 아직까지 회사 다니고 산다고 생각하고, 윗세대는 저것들이 철모르고 엉뚱한 소리나 한다고, 철부지라고 하고요.
C씨: 70대가 돼도 다들 너무 젊은 거예요. 힘이 쌩쌩하고, 자기들이 한창때인 줄 아는 거죠. 이 정부가 그렇게 만들어줬고요. 어른들 보기에는 MB정부가 일자리도 재창출해 주고, 내야 할 세금을 유보해 주니 나쁠 것이 없겠죠.
A씨: 이명박이 ‘그래도 경제는 잘하지 않았느냐’고 말하면 정말 열받는 거예요. 지금 우리가 살기 어려운 게 세계 경제가 힘들어서 다 같이 어려우면 이해가 가요. 대기업도 어렵고, 중소기업도 어렵고, 나라 살림도 어려우면요. 그런데 신문 보면 대기업은 만날 사상 최대의 실적이라고 하고, 대통령은 나와서 GDP가 올랐네 어쩌네, 거시경제 지표가 좋네 하면 화가 나는 거지요.
“30대에 책무 부여하면서 여전히 10대 취급”
C씨: 30대가 느끼는 세대갈등의 초점은 우리가 주역인데 주역 인정을 못 받는다는 거예요.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세금 내는데, 주위에서는 여전히 10대 취급을 하는 거죠. 무슨 10대가 부담과 책무는 그렇게 많아요?
A씨: 그러니까 박원순 찍은 사람들이 그렇게 저소득층이 아니죠. 역사가 정반합(正反合)으로 흘러가야 되는데 정반정(正反正)으로 되돌아가는 거죠.
C씨: 이회창(李會昌)이 했으면 똑똑한 사람이라도 앉혔을 것 같아요. 이걸 뭐라 그러지, 이명박 정부는 너무 천박해요. 하는 짓이.
A씨: 내곡동 사저 얘기 봐요. 황당하지요. 그거 ‘나꼼수’가 터뜨렸잖아요. 그런 거 접하면 30대는 ‘나꼼수’에 열광하고 갈수록 이명박이 싫어질 수밖에 없죠.
C씨: 저는 이번에 시장 선거에서 강남·서초·송파에서 나경원 지지율이 높은 걸 보니까 창피하더라고요. 저는 원래 집이 강남인데 직장 때문에 서대문에 살고 있거든요. 서대문 입장에서 보면 강남은 완전히 말도 안 되는 거예요.
A씨: 강남·서초가 이번에 새로운 전선(戰線)을 만들었지요.
C씨: 있는 사람들만 ‘철옹성’이죠. 저도 회계사인데, 하는 일이 뭐예요. 돈 있는 사람들 보호해 주는 거죠 뭐. 돈 있으니까, 자본주의의 파수꾼이니까. 그런데 정말 세금 제대로 걷고 싶으면 상가에 입주한 자영업자들 가게 훑을 것이 아니라, 재벌그룹 빡세게 조사하고, 재벌가 오너들, 권력자들을 제대로 지켜봐야 하는 거 아닌가요. 요즘 세상은 못 살고, 힘없는 아랫사람들에게만 투명해졌어요. 윗사람들의 비리는 갈수록 커지고, 밑에 사람들은 비리가 아예 없어지는 희한한 구조인 거죠.
A씨: 우리가 잘사는 사람들에 대해 무작정 비판만 하는 건 아니라고요. 30대가 현실적이잖아요. IMF 때 20대를 보내면서 돈이 무서운 것을 알았어요. 주위에서 ‘IMF 때 헐값에 빌딩 사서 몇 배 장사했다더라. 주식에 몰빵해서 몇 배 올랐다’는 얘기도 들어봤어요. 그래서 빚내서 집도 사보고, 주식도 해보고 했는데, 그렇게 윗세대처럼 집 한 칸이라도 마련해 보려 아등바등했는데 안 되는 거예요. 하다 보니 화가 나고 짜증이 나는 거예요. 근데 ‘나꼼수’를 보면 시원한 거죠.
C씨: 부모님은 너희는 그렇게 열심히 사는데 왜 그렇게 못 사냐고, 연봉이 적은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돈을 못 모으니 그러세요. 그런 얘기 들으면 막 화가 나는 거죠.
B씨: 저는 MB가 정말 경제를 살리거나 조금이라도 낫게 해줄 줄 알았잖아요. 솔직히 BBK사건이 사실이라고 밝혀졌어도 MB가 대통령 됐을 거예요.
A씨: 우리는 죽었다 깨도 부모 세대만큼 살 수가 없을 거예요.
B씨: 오죽하면 그런 얘기가 나와요. 자식 교육 성공하려면 부모의 정보력, 조부모의 경제력이 있어야 한다고요.
IMF 좌절+2002년 월드컵으로 광장문화 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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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
함 교수의 얘기다.
“한국 사회의 구조적 불평등을 형성하는 주요 축(軸)은 지역, 계급이 아니라 세대갈등이라는 분석은 1990년대 초반에 사회학자들에 의해 제기됐습니다. 오늘날의 50~60대는 유년시절에 가난을 경험했지만 청년기 이후에 고도성장의 열매로 인해 사회 전반이 상향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반대로 30대는 부모에 비해 유복한 유년시절을 보냈지만, IMF 외환위기 이후 저성장이 지속되고 고(高)실업사회가 되면서 부모보다 잘살 확률이 0%인 세대입니다. 원래 사회란 제한된 자원을 배분하는 것인데, 기성세대는 경제적으로 혜택을 입었지만 30대에게는 기회조차 없는 겁니다. 미래도 암울하죠. 결국 이런 기성세대를 향한 분노가 정치권으로 향하고 이들을 결집시키는 겁니다.”
김문조(金文朝)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세대 체험’에 대한 얘기를 했다.
“30대는 IMF가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전 국민이 힘들었지만 그때 청소년기, 20대 초반을 보낸 30대가 느끼는 심정은 다른 세대보다 충격적이었죠. 성장과정에서 큰 사건이 발생하면 많은 사람에게 집단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세대 체험’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386세대가 가난에서 풍요를 일궜다면, 30대는 고도성장에서 저성장을 체험하는 세대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경제가 회복기에 접어들 즈음 월드컵이라는 일대 행사를 치릅니다. 월드컵은 ‘길거리 문화’였죠. 그곳을 찾은 30대가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길거리에서, 광장에서 표출할 수 있다는 체험을 한 것입니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이사의 얘기다.
“30대의 특성 중 하나는 ‘집단행동’입니다. ‘컬렉티브 액션(collective action)’이라고 하는데 촛불집회 같은 것이 한 예입니다. 50대에서 ‘트위터’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사람이 모임에 속해 있으면 그런가 보다 하지만, 30대에서는 철저하게 아웃입니다. 또래가 문화를 공유하면서 정치 지형이 개별화된 것이 아니라 똑같아졌습니다.”
MB정부, ‘Listening’ 없고 ‘Speaking’만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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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경원의 선거 패배 원인으로 ‘시민과의 소통 부재’와 ‘네거티브 등 선거홍보의 미숙’이 과반수를 차지했다. |
기타 항목에서 ‘한나라당이 서민을 위해 한 것이 없다’, ‘MB정부, 한나라당, 나경원 다 꼴 보기 싫다’, ‘나경원은 말을 너무 잘해서 오히려 믿음이 안 갔다’, ‘나경원이 서울시장 되면 힘들게 오세훈(吳世勳)을 물러나게 한 것이 의미 없어서’, ‘객관식의 모든 항목이 패배 원인이다’는 답이 있었다. 기타를 제외한 객관식에서 가장 많이 꼽은 것은 ‘소통 부재’다. 대체 30대가 생각하는 ‘소통’이란 무엇인가.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이사의 얘기다.
“이들이 말하는 것은 ‘귀기울여 듣기’입니다. 이 정부는 스피킹만 있고, 리스닝이 없으니까 문제가 있는 겁니다. 박원순은 최소한 자기네 얘기를 들어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 정치인이 트위터를 개설해서 ‘오늘은 어디서 밥 먹었다’, ‘지금 어디에 와 있다’는 글을 지속적으로 올리는 것을 보면 30대가 어떻게 느끼는 줄 아십니까? ‘왜, 몇 시에 잤는지도 말하지, 화장실 가는 것도 쓰지’ 이렇게 비아냥댑니다. 30대는 유명 정치인이 일거수일투족을 트위터에 쓰는 것이 소통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기가 쓴 트위터 글에 댓글을 달고, 공감을 해주는 모습을 기대합니다.
30대에게 중요한 것은 ‘셰어(share)’입니다. 자기네 얘기를 들어주고, 어떤 대화에 끼워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30대는 결과가 자신들의 뜻과 달라도 거기에 도달하는 과정을 설명해 주면 고개를 끄덕입니다. 무작정 우리가 원하는 것을 들어달라고 떼쓰는 어린아이가 아닙니다. 다만 자신들을 이해하고, 함께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를 원하는 겁니다. 그것이 이들이 원하는 소통입니다.”
30대가 말하는 ‘소통’
이명박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몸담았고, 현재 회사를 운영하는 50대 한 인사는 “광우병 사태 때 집단행동을 보인 30대의 행동이 일정부분 이해가 간다”고 말했다.
“정부의 일방적인 정책 하달에 대해 국민, 특히 30대의 분노가 극에 달했던 일이었습니다. 정부 권력자들이 어느 날 미국에서 돌아와서 ‘미국 소 수입기로 했다’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이지 않았다고 생각해 봅시다.
미리 국민들에게 이런저런 이유로 미국을 방문하고, 또 얘기를 들어보니 이런 것이 있다고 설명을 했어야 합니다. 이런 일이 벌어질 경우 우리는 미국에서 소고기를 수입해야 하고, 대신에 우리가 얻는 것은 이런 점이 있다고 국민들을 설득하고 충분히 설명했어야 합니다. 그랬어도 30대가 그렇게 거리로 뛰쳐나왔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그들에게 얘기해 주고, 함께 고민했더라면 그런 일이 없었을 겁니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나 결과물이라도 난데없이 국민에게 이해를 강요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인터뷰에 나선 대기업 직장인 이모(36·서초구)씨에게 ‘박원순처럼 젊은이들의 의견을 듣는 척하는 것과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은 다르지 않으냐’고 물었더니 이런 답이 되돌아왔다.
“박원순 같은 부류가 서민인 척하면서 얘기를 들어주기만 할 뿐 아무 대안이 없다는 얘기를 많이 합니다. 어쩌면 얘기를 듣지 않고 듣는 척만 할는지도 모르지요. 저는 반대로 묻고 싶습니다. 그러면 한나라당과 이 정부는 얘기를 들어준, 최소한 듣는 척이라도 한 적이 있습니까? 문제에 대한 솔루션을 제시한다는 건 적어도 그 문제가 무엇인지를 파악한 다음에 이뤄집니다. 제가 느끼기에 한나라당은 30대의 얘기에 귀기울인 적이 없습니다.”
위의 답변에 대해 리서치 전문가인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이사는 이렇게 분석했다.
“30대가 간절히 바라는 것 중의 하나가 공감입니다. 길러드(Gillard) 호주 총리가 ‘위 셰어 드림(We share dream)’이라는 구호로 인기를 끈 적이 있는데 딱 그겁니다. 물론 박원순이 이들의 얘기만 한껏 듣고 아무 대책 없이 끝낼 수도 있죠. 하지만 적어도 이들은 박원순이 현실 가능한 얘기를 한다면 거기에 동참하고, 꼭 결론이 좋게 나지 않더라도 함께하고픈 겁니다. 솔루션 자체를 공학적으로 가져가면 이들의 마음을 얻을 수 없습니다. 30대가 원하는 것은 당장이라도 이명박 대통령이 단출한 수행원과 함께 뜬금없이 청와대 앞 호프집에 들러 그들과 반값등록금, 전세대란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국무회의에서 그들의 얘기를 진정성 있게 꺼내는 겁니다. 30대가 원하는 소통이란 그런 겁니다.”
노무현 향수로 안철수 바라보는 이들
기자가 참석했던 ‘중도’ 30대 모임의 대화 속으로 다시 들어가 보자. 그들의 얘기는 다양한 방향으로 전개되다가, ‘제3당’ 얘기로 들어갔다. 여기에는 ‘노무현에 대한 일종의 향수’도 뒤섞여 있었다.
A씨: 저는 정치인들이 거들먹거리는 모습이 그렇게 싫더라고요. 30대가 지지했던 노무현, 박원순, 안철수가 비슷한 것은 권위주의가 없는 거거든요. 정치권에서 권위주의는 유통기한이 지났어.
B씨: 우리도 알 만큼 알고, 배울 만큼 배웠는데 단순히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윗세대의 의견을 무조건 따라야 하나요. 가끔 정치인들이 ‘우리가 너희 얘기를 들어줄 테니 해 봐’라는 식으로 나올 때 너무 우스운 거예요. ‘얘기를 들어준다’는 건 적절하지 않죠. 우리 세금으로 월급받으면서 마치 높은 자리에서 아랫사람 내려다보듯이 하는 태도만으로 화가 나는 거죠.
C씨: 뭔가 새로운 사람이 나올 때가 됐죠.
D씨: 저는 솔직히 75세 이상은 투표권을 제한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갖고 있어요. 투표권이라는 권력을 한없이 끌고 갈 필요가 없지 않나요. 노인들이 경제생활을 하는 것도 아니고요.
A씨: 우리도 40대 대통령이 나올 때가 됐어요. 가장 열심히 일하고 실력 있을 때가 30~40대 아닐까 싶어요. 임금 피크제나 권력 피크제를 만들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어떤 기수가 검찰총장이 되면, 그 위의 기수는 줄줄이 옷 벗는 거 너무 우스워요. 그래서 좀 바꿀 사람이 있으면 싶은데 안철수는 왠지 불안해요. 노무현 때랑 똑같이 반복될 것 같아서요.
C씨: 심정적으로 안철수가 좋기는 한데, 너무 힘이 없잖아요. 그리고 우리는 한번 봤잖아요. 심정적으로 노무현 좋아해서 찍었는데 힘없으니까 맥없이 무너지는 모습을요.
D씨: 능력이 없는 건 아닌데, 옆에서 도와줄 사람이 없겠죠.
C씨: 국민이 든든한 조력자가 되지 못한다는 건 노무현 때 이미 알았죠. 그렇게 밀어줘도 안 되더라고요.
D씨: 노무현이 얼마나 그랬으면 ‘회전문 인사’를 했겠어요. 지금 MB 회전문 인사랑은 다르죠. 노무현은 정말 주위에 사람이 없었고, MB는 사람은 많지만 자기 사람 이외에는 쳐다보기가 싫은 거고요.
A씨: 안철수, 박원순 지지세력의 공통점은 반한나라, 비민주당이죠. 이 세력의 스펙트럼이 없어요. 별별 사람이 다 있어요. 순수 좌파, 이기적인 박쥐, 딱히 보수라고는 할 수 없는 보수까지 다 있어요.
C씨: 솔직히 이번에 박원순이 시민단체를 안 끌고 들어가서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대선은 다르니까요.
B씨: 저는 그냥 세상이 좀 어지러워도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권력을 나눠갖고, 그냥 승자독식이 싫어요.
D씨: 한나라당은 안 찍을 거예요. 싫어서가 아니라 바뀔 것 같지가 않아서요. 그렇다고 민주당도 아니고, 참 어려운 거죠.
‘한나라당 무조건 안 찍는다’(45.4%)
이번 조사에서도 기존 정당이 아닌, 새로운 세력의 출현에 대한 기대들이 여러 군데에서 감지됐다.
‘박원순이 민주당 후보였어도 지지했을 것’이라는 응답자가 전체의 83%(117명)였지만, ‘무소속’ 박원순을 응원한 이의 얘기도 구체적이었다.
양천구에 사는 31세 회사원은 “한나라당과 민주당 모두 나라를 살리는 게 아니라 말아먹고 있다. 나랏일은 하지 않고 두 당 모두 비판과 돈만 챙기고 있는데 박원순이 무소속이 아니었다면 찍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30대에게 ‘내년 총선에서 무소속에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뽑겠다’는 사람이 전체의 90.8%(128명)였다. ‘대선에서는…’에 대해서 역시 83.7%(118명)였다.
이정희(李政熙)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번 시장 선거가 정치사의 터닝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장에 무소속 후보가 당선됐다는 것은, 물론 야당의 도움을 받았다고는 하나 새로운 변화입니다. 정치권이 잘하고, 정치사회가 공고화된 상황에서는 일반 시민들이 국회에 나설 여지가 없습니다. 이번 선거는 정당에 몸담지 않은 사람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보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박원순 시장이 제대로 시정을 펼친다면 이런 추세는 확산될 것입니다. 하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면 ‘구관이 명관’이라는 얘기가 나올 수 있습니다. 제3세력의 등장에 한계가 될 수 있습니다.”
한나라당에 대한 30대의 반감은 상당히 높은 것으로 이번 설문조사에서도 나타났다.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한나라당에 투표할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무조건 찍지 않겠다’는 답이 전체의 45.4%(64명)였다. ‘한나라당 후보의 인물을 보고 지지하겠다’가 29%(41명), ‘한나라당의 정책을 보고 지지하겠다’가 12%(17명)였다.
함인희 교수는 유권자 30대의 힘에 대해 이렇게 정의했다.
“30대는 디지털커뮤니케이션으로 무장된 세대입니다. SNS를 통해 투표 독려를 하는 행위도 디지털의 영향으로 자연스럽습니다. 이들은 투표를 통해서 그들의 파워를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실질적으로 득실(得失)을 따지고, 전통 차원에서의 권력이 50대 이상에 있다면, 30대는 사이버 권력을 통해 그들의 힘을 표출합니다. 더구나 이들은 평소에는 정치에 무관심하다가 필요한 순간에는 무섭게 결집하는 성향이 있어 유권자로서 중요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