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ㆍ경북 사람들은 점점, 박근혜 전 대표를 TK에서 떠나보내야 할지 모른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안타깝지만, 오히려 그쪽이 속 편할지 모른다. 逆으로 그런 선택이 박 전 대표나 대구ㆍ경북 모두를 위한 일이라고 느끼고 있다.
⊙ 대선 출마로 지역구 불출마 가정해 현재 10여 명 靜中動
⊙ 대구ㆍ경북 사람들은 ‘동남권 신공항’ 밀양 유치를 밝히지 않은 박근혜에게 서운하게 생각해
⊙ 박근혜의 ‘대리인’ 박경호 전 군수 “요즘 박 전 대표와 안 만나. 郡內 민심도 몰라”
⊙ “박근혜씨에 대해 달성군이나 대구ㆍ경북 민심이 이반(離反)됐다고 듣고 있고, 저도 달성군에서
그걸 느끼고 있어요”
⊙ “동남권 신공항 불발로 한나라당에 대한 비토와 분노가 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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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의 ‘대리인’ 박경호 전 군수 “요즘 박 전 대표와 안 만나. 郡內 민심도 몰라”
⊙ “박근혜씨에 대해 달성군이나 대구ㆍ경북 민심이 이반(離反)됐다고 듣고 있고, 저도 달성군에서
그걸 느끼고 있어요”
⊙ “동남권 신공항 불발로 한나라당에 대한 비토와 분노가 만연”
지난 4ㆍ27 재ㆍ보궐 선거의 패배로 한나라당이 어수선하다. 당 쇄신에 가장 목소리가 큰 정두언(鄭斗彦) 최고위원은 박근혜(朴槿惠) 전 대표에 대해 “지지기반이 한정돼 있고, (친박계) 문화가 폐쇄적이고 권위적이다. 이걸 빨리 고치지 않으면 (대선 승리가) 어렵다”고 했다.
여기서 한정된 지지기반이란 영남지역을 의미한다. 더 좁혀 말하면 대구ㆍ경북이다.
그러나 이 지역 사람들은 정 최고위원의 말이 불쾌하다. TK(대구ㆍ경북)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기자는 5월초 대구 달성군에 갔다. 인구 18만여 명이 사는 도농복합지역인 달성군은 ‘부동의 1위 대선 후보’를 배출한 지역구다.
누구나 아는 얘기지만, 대구의 옛 지명은 달구벌이다. 또한 달구벌은 달성(達城)의 옛 이름이다. 이 지역 방언으로 닭을 ‘달구’라고 부르는 것에서 유추해 보면 대구는 닭이라는 동물을 토템으로 삼았던 계림(鷄林)의 통치권역에 속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신라(新羅)라는 국호가 생기기 이전 경북 경주를 계림이라고 불렀음을 떠올릴 때, 달성은 신라 경주와 뿌리가 같음을 짐작게 한다. 그런 유서 깊은 곳이 박근혜 전 대표의 지역구다.
달성군은 대구의 8개 구ㆍ군(區郡) 가운데 가장 도시화가 덜된 곳이다. 원래는 경북에 속했지만 1995년 대구로 편입됐다. 몇 년 사이 공단과 아파트, 상가가 많이 들어섰지만, 여전히 시골의 풍광(風光)을 간직하고 있다. 5일장이 열리고, 도로가 논밭 사이로 이어져 있다. 혈연과 지연이 복잡하게 얽히고 보수적 성향에다 구전(口傳)이 위력을 발휘한다.
토호가 아닌 박근혜
사실 박 전 대표는 달성군과 별 연고가 없다. 뒤집어 말해 지역 토호(土豪) 출신이 아니다. 그런 곳에서 1998년 4월 보궐선거에 ‘전략 공천’돼 인연을 맺은 뒤 이곳에서만 내리 4선(選)을 했다. 햇수로 따지자면 13년째다.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달성군민조차 놀라워한다. “벌써 그렇게 됐느냐”고 반문한다.
그런 달성에서 이상 징후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지난해 6ㆍ2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군수를 당선시키지 못한 것이다. 박 전 대표의 집과 개인사무실이 있는 달성군 화원읍에서도 무소속 군의원이 당선됐다. 박 전 대표를 달리 부르는 표현인 ‘선거의 여왕’은, 자신의 지역구에서만큼은 아니었다.
그리고 1년이 지났다. 겉보기에는 이전과 달라진 것이 없었다. 군수의 당적 유무가 군정(郡政)에 무슨 결정적 영향을 미치겠는가.
장터 민심과 정치평론
5월 6일 화원읍 5일장이 열렸다. 많은 사람이 마치 늑장을 부리듯 물건을 흥정하며 장터를 서성거렸다. 대개 사지도 않으면서 뒤적거리기만 하는 것 같았다. 장바닥은 말끔히 쓸렸는데도 상인들이 내놓은 물건들로 길은 비좁았다. “싸다(싸구려)”고 외치는 소리가 행인들의 목소리에 눌려 기를 못 펴고 있었다. 고무 대야에 야채를 잔뜩 담아 놓은 할머니에게 다가가 박근혜 전 대표에 대한 이야기를 물었다.
“아이고, 늙은 것이 그걸 어찌 아노”라면서도 “대통령이 돼야 안되겠나. 글쎄 되면야 좋지만 그게 쉬운 일이가. 옛날에는 공손하게 인사하는 모습이 보기 좋더니만, 요새는 좀 거북살스러워 보이기도 하데? 인심을 좀 잃긴 잃었지.”
한 상인은 박경호(朴京鎬) 전 달성군수 이야기를 했다. 박 전 군수는 1998년과 2002년 한나라당 공천을 받아 민선 2~3기 달성군수를 지냈다. 지난해 6ㆍ2 지방선거 이전만 하더라도 박 전 군수는 박 전 대표의 대리인 내지 후견인으로 알려졌었다. 누가 뭐래도 그는 달성군의 토호다.
“박경호 군수 때문에 사람들이 다 등 돌렸다고 하던데, 소문이야 그렇지 우리 같은 사람이 실상을 어떻게 압니까? 물론 소문이야 많지요.”
그러더니 기자의 얼굴을 외면하고선 자기 일에 빠져 버렸다.
행인을 붙잡고 다시 물었다. 그는 상이군인 출신으로 6ㆍ25 때 참전, 한쪽 눈을 잃었다고 했다. 공교롭게도 상이군경회 달성군지회 사무실과 박근혜 전 대표의 개인사무실은 층만 다른 같은 건물이었다.
“사람들이 박근혜, 박근혜케도(해도) 그 어른(박정희 대통령) 보고 밀었지. 인자는(이제는) 생각도 많이 바뀌었거든, (한나라)당은 내삐리고(내버리고) 사람, 인품보고 찍어야지.”
―인품이 뭔데요.
“지대로(제대로) 공부는 했나, 어디서 뭘 했는지, 그런 것 있잖아.”
―박근혜 전 대표가 대통령이 될 것 같은가요.
“돼야지. 그렇다고 우리가 손핵규(손학규 민주당 대표)를 찍겠나?”
―박경호 전 군수의 근황은 어떤가요.
“한나라당 탈당이야 하겠는교? 달성의 우두머리였는데, 그래도 요즘은 조용하다 하데. 좀 놀랐을 낍니다. 요새는 절대로 한나라당이라 해서 다 안 찍어 줍니다. 시골이라 깔보면 안 되지!”
이 노인의 음성이 느리고 조용조용해서인지 근엄하게 들렸다.
‘의성 떡 방앗간’ 주인인 유경목(兪景穆)씨는 화원읍 시장번영회 회장이다. 그는 “저번에 박경호씨가 박근혜 대리 행세를 하다가 욕 많이 얻어먹었지요. (6ㆍ2 지방선거에서) 똑똑한 사람 다 빼고 지(자기) 사람들만 공천했다는 소문이 많았다”고 했다.
“만약에 내년 대통령 선거 나간다고 박근혜 전 대표가 (국회의원 선거에) 안 나서면 박경호씨가 1순위가 안 되겠습니까. 좋든 싫든 워낙 이름이 마이(많이) 알려졌잖아요. 그런데 당선될지는 모르지. 민심을 알 수야 있습니까. 저는 그때 가서 누가 나오는지 보고 판단할랍니더.”
“무서운 거라, 민심이….”
―대구ㆍ경북은 무조건 한나라당이라고 하던데 달성군 사람들은 좀 다르네요?
치킨집을 운영하는 시장번영회 총무 김옥수(金沃洙)씨의 말이다.
“하하. 나이 든 사람은 몰라도 60대 밑으로는 인식이 많이 바뀌었지요. 인물감이 되고 할 만하다 싶은 사람을 찍는다고들 말합니다. 6ㆍ2지방선거 때, 박근혜 대표가 한나라당 후보를 위해 뛰었는데, 그래도 보소. 무소속이 안됐습니까. 무서운 거라, 민심이….”
―그래도 대통령 선거는 다르겠지요?
그는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군수는 무소속 뽑아도 대통령은 박근혜로 밀어야지”라고 했다.
달성군 의회 하용하(河龍夏) 부의장의 지역구는 화원읍이다. 박 전 대표가 달성에 내려오면 기거하는 집이 화원에 있다. 하 부의장은 초선이지만, 민정당 시절부터 한나라당까지 정치 이력이 30년이 넘는다. 그러나 현재 당적은 없다.
하 부의장은 지난 2007년 12월 대선 당시 ‘명사랑’(이명박 공식 팬클럽) 중앙회 영남지역본부 대구 대표를 지냈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한나라당 입당이 불허됐다.
박근혜 전 대표와의 인연도 오래됐다. 박 전 대표가 정치에 입문하던 1998년 4월 보궐선거 당시 43살이던 그는 한나라당 달성군지구당 조직부장이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1998년 보궐선거 총책임자나 다름없었다”고 했다.
“김석원(金錫元) 의원이 물러나는 바람에 지구당이 텅 비게 됐고, 상대 당 후보로 엄삼탁(嚴三鐸)씨가 출마하면서 많은 분이 그쪽으로 넘어갔지만 저는 당을 지켰습니다. 그때(1997년 대선) 이회창(李會昌) 총재가 낙선하지 않았습니까. 하도 억울해서 혼자 당에 남았습니다. 박 대표가 공천을 받아서 오기에, 손 털고 정치 안 하려고 했는데 주위에서 하도 붙잡아서 선거를 치렀지요.”
“선거 때 나를 안 도왔지 않습니까”
보선에서 박 전 대표가 승리하자, 하 부의장은 한나라당 대구시의원 후보로 공천됐다.
그러나 달성군수 후보는 마땅한 인물이 없었다고 한다. 박 전 대표는 내심 달성 출신 대구ㆍ경북견직물조합 이사장인 하영태(夏榮兌)씨를 마음에 뒀다고 한다. 그러나 하 이사장이 고사했다.
하 부의장은 당시 민선 1기 달성군수였던 양시영(梁始榮)씨를 추천했다. 양씨는 무소속이었으나 1997년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에 입당한 상태였다. 하 부의장의 말이다.
“저는 달성군의 대통합을 위해 양 군수가 좋다고 말씀드렸더니, 박 대표는 ‘선거 때 나를 안 도왔지 않습니까’라며 탐탁지 않게 여겼습니다.”
당시 박경호씨는 한나라당 달성군지구당 부위원장이었다. 군수에 출마할 생각이 있었던 박씨는 하 부의장이 양 군수를 지지하는 것에 불만을 품었다고 한다. 하 부의장과 박경호씨는 둘 다 달성군 토박이로 윗대부터 훤히 아는 사이였다. 하 부의장은 화원읍 천내3동, 박 전 군수는 천내1동 출신이다. 계속된 그의 말이다.
“박경호씨가 제게 ‘(1998년 보궐선거 때) 당원 명부를 달라’고 으름장을 놓는 겁니다. 지구당 책임자가 저였기 때문에 저는 못 준다고 했지요. 저더러 시의원 출마하지 말고, 자기 군수선거나 도와달라는 얘기였지요. 박경호씨와 실컷 싸우고 저는 시의원 안 한다고 공천장을 내던졌어요. 그리고 박 대표에게 편지를 팩스로 보내고 훌쩍 떠나 버렸지요.”
―뭐라고 썼나요.
그는 편지 쓴 날짜(1998년 5월 10일)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달성지구당이 사당화(私黨化) 돼선 안된다고 했어요. 그때 박 전 대표가 보선에 당선되고 서울로 올라간 뒤 잘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박경호씨가 기고만장했지요. 자기가 없으면 달성군이 안된다는 식으로 상황(上皇)처럼 사람들을 안하무인(眼下無人)격으로 대했어요.”
그러나 1998년 민선 2기 지방선거에서 결국 박경호씨는 군수가 됐고, 하 부의장은 시의원 공천권을 반납하고 빈손으로 지구당을 떠났다. 그 길로 박근혜 전 대표와 멀어졌다.
박경호 전 군수의 근황
박경호씨가 군수(1998~2006)로 재직하던 시절, 하용하 부의장은 지역신문인 《달성신문》에 칼럼을 쓰며 군수를 견제하기도 했다. 다음은 그가 쓴 ‘영원한 권세는 없다’라는 제목의 칼럼 일부다.
<박경호 군수가 당선되고 군내 토목업체가 많이 등록되었다. 면면을 살펴보면 박 군수 선거를 도운 자들이 대다수이다. 특히 기존 업체 중 군 발주 수의계약을 1건도 수주 못한 것은 무슨 이유일까? (중략) 공무원 속에서도 서로 눈치 보고 동료 간에도 불신이 왜 있는 것인가? 그리고 박 군수의 실세 핵심참모가 읍ㆍ면에 몇 명씩 있어 사사건건 간섭을 하고 공무원이 눈치를 봐야 한다니 한심하지 않은가? 또한 초상이 나면 군수 조화를 읍ㆍ면 공무원이 제일 먼저 들고 와 조문한다. 슬픈 유족에게 위로는 될지 모르나 공무원이 그렇게도 할 일이 없는가?>
하 부의장은 “군정을 잘 이끌라는 뜻에서 쓴소리를 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저처럼 박경호씨에게 바른 소리 하는 사람도 없을 겁니다. 지난번 (지방선거에서) 무소속 군수가 당선된 것은 박근혜 전 대표를 등에 업고 기고만장하던 자를 군민들이 심판한 것이라고 봅니다.”
―박경호씨에 대한 부정적인 민심을 박근혜 전 대표는 몰랐을까요.
“전달이 안됐겠지요. 박 전 대표는 박경호씨를 믿었지만, 껍데기만 보고 (민심의) 속이 다 썩어 가는 줄 몰랐던 거지요.”
―6ㆍ2 지방선거 이후 박경호씨의 근황은 어떤가요.
“소문에는 박 전 대표 주변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했다고 하데요. 이제는 그 실체를 완전히 다 알았으니까. 언로(言路)가 소통되는지 모르지만, 누가 보고하는 사람이 안 있겠습니까. 선거에 지고, 박 전 군수는 달성군 당원협의회 수석부위원장 자리도 내놨다고 하데요. 그리고 밖으로 안 다니는 모양입니다. 다니면 부끄러우니까….”
―현재 무소속이지요? 주위에서 한나라당에 입당하라고 권유하는 분도 있지요?
하 부의장은 이 질문에 답하지 않고 지난 2007년 대선 당시를 떠올렸다. 당시 그는 이명박(李明博) 대통령의 당선을 돕던 사조직(명사랑)의 대구 대표였다.
“대통령 선거 때 위(중앙당)에서 입당하고 싶은 사람을 전부 다 받으라고 했어요. 한 표가 아쉬웠기 때문에 타당 출신도 다 복당시켰어요. 그 무렵, 한나라당 대구시당 복당 심사위원회가 꾸려졌지요. 대구시당에서 제게 복당신청서를 내라고 해서 팩스로 보냈지요. 각 지역 당원협의회마다 부위원장이나 실무자가 와서 복당심사에 참여했는데, 전력(前歷)을 안 묻고 다 복당시켜 줬다고 해요. 그런데 달서구와 달성군만 복당이 안됐습니다. 바로 저랑 김문오, 박성태 세 사람입니다.”
공교롭게도 복당이 안된 김문오(金文澳)ㆍ박성태(朴成泰)ㆍ하용하(河龍夏) 세 사람 모두 지난해 6ㆍ2 지방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김문오씨는 군수, 박성태씨는 시의원, 하용하씨는 군의원에 당선됐다. 하 부의장의 계속된 말이다.
“세 사람을 심사하는데, 대구시당 실무자가 박경호씨에게 전화를 걸어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박씨 왈(曰), ‘대표에게 물어보고 답을 주겠다’더랍니다. 잠시 후 전화가 와서 ‘(박 대표가) 세 사람 모두 복당시키지 마라’고 했다고 해요. 그 짧은 시간에 정말 박 대표에게 전화했을까요? 저는 복당을 못한 것이 박 대표 뜻은 아니라고 봅니다.”
박근혜 불출마 소문에 10여 명 거론
기자는 달성군에 내려와 박근혜 전 대표가 내년 총선에 출마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대통령 선거 출마가 확실한 만큼 총선에 나서지 않을 것이란 얘기였다. 대선 후보가 되면, 지역구 의원직을 내놓는 것이 관례인 만큼, 그럴 바에야 전국구로 옮겨 가거나 아예 출마를 하지 않는 것이 순리라는 것이다.
이런 소문은 달성군 공무원들과 지역 유지들 사이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공공연한 비밀이었고 한나라당 대구시당에서도 관련설을 확인시켜 주었다. 아무래도 지역구 방문이 드문 박근혜 전 대표로서는 무척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현재 자천타천 거론되는 인사로는 대구지검 서부지청장을 역임한 곽상도(郭尙道) 변호사, 고(故) 구자춘(具滋春) 의원의 아들이자 《조선일보》 기자 출신의 구성재(具聖宰)씨, 현 김문오 달성군수, 재경(在京)달성군향우회 수석부회장인 김징완(金澄完) 전 삼성중공업 부회장, 전직 대구시의원 출신의 전성배(田聖培)씨, 박경호ㆍ이종진(李鍾振) 전 달성군수와 6ㆍ2지방선거에 한나라당 군수후보로 나섰던 이석원(李石原)씨, 박상희(朴相熙) 대구경영자총협회 회장, 미래희망연대 소속 송영선(宋永仙) 의원 등 10명 안팎이다.
그렇다고 움직임이 왕성한 것 같지는 않다. 달성경찰서 관계자는 “이름이 거론되는 수준 이상의 행보는 없다는 것이 현지 주민들의 한결같은 얘기”라고 귀띔했다. 아무래도 박 전 대표를 의식해서다. 유력 대선 후보 지역구를 휘젓고 다닐 배짱 두둑한 이가 몇이나 될까. 괜히 나섰다간 역풍을 맞을 게 뻔하다.
다만, 지난해 6ㆍ2 지방선거 이후 박 전 대표에 대한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는 점에서 후보자들의 움직임이 과거와 달라진 것만큼은 분명해 보였다.
달성군에서 만난 한 공무원은 후보자의 면면을 이렇게 전했다.
“박근혜 전 대표가 부득이 빠지면 박경호씨가 가장 유리할 수 있는데, 바닥 민심이 여전히 차갑다는 것이 걸림돌이죠. 전성배 전 시의원은 박경호씨의 ‘직계(直系)’로 알려졌습니다. 아주 가까운 사이입니다.
후보자끼리 벌써 예민해져
이종진 전 군수는 최근 한나라당 달성군 당원협의회 운영위원을 맡았다고 합니다. 박경호씨 대신 이 전 군수가 박 대표의 심부름꾼 역할을 하면서 자기 목소리를 낼 것이란 이야기도 들려요.
송영선 의원은 공개적으로는 달성군에 관심이 없다고 합니다. 대신 달성군과 인접한 ‘달서구 병(丙)’ 지역을 챙긴다는 얘기가 많은데 모르죠, 여건만 된다면 덤벼들지 않겠습니까.
고 구자춘 의원의 아들인 구성재씨가 열심히 군내(郡內) 이런저런 행사에 얼굴을 내밀고 있어요. 세월이 흘렀지만, 과거 부친(父親)에 대한 향수와 그를 돕던 사람과 조직이 아직 건재하다고 해요. 또 구자춘 의원은 박정희(朴正熙) 대통령과 돈독한 사이였고, 박근혜 전 대표와도 인연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김징완 전 부회장은, 저는 아니라고 보는데 누구는 뜻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어요. 김 전 부회장은 지난 4월 23일 달성군 참꽃축제 개막식에 고속버스를 대절해 재경향우회 인사들과 함께 찾았지요. 김문오 군수가 내빈 중에서 김 부회장만 일으켜 세워 인사시킨 것을 두고 말들이 나와요. 유독 그만 소개했느냐고요. 김문오 군수 말이 ‘외지에서 온 고향 선배고, 재경향우회를 대표하지 않느냐’고 했다고 합니다. 후보자들끼리 벌써 예민해지고 있어요.
민주당 전국구 의원 출신인 박상희씨도 좀 뜻이 있는 것 같아요. 당적이 좀 문제가 되겠지만 지난 2007년 10월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에 입당, 당 재정위원회 고문을 맡았고, 대선 당시 당 중앙선대위 직능정책본부 중소기업위원장으로 뛴 경험도 있어요.
곽상도 변호사의 이름이 간혹 흘러나오지만, 열심히 움직이는 것 같지는 않아요. 문희갑(文熹甲) 전 대구시장은 주위에서 많이 권한다는 얘기는 있으나, 본인은 별 내색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달성군에 출입하는 《매일신문》 김성호 기자는 이렇게 말했다.
“만약 박근혜 전 대표가 지역구를 물려준다면 누굴 주겠어요? 제일 믿을 수 있고, 신뢰하는 사람에게 주겠지요. 지금 거론되는 인사 중에서 박 전 대표의 마음에 흡족한 사람은 추측건대, 잘 안 보입니다. 그나마 제일 가까운 쪽이 박경호ㆍ이종진씨 정도인데 군민들이 받아들일까요?”
박근혜는 ‘TK 정치인’인가, 아닌가?
박근혜 전 대표는 이른바 ‘TK(대구ㆍ경북) 출신’이지만 달성군민도, 대구ㆍ경북 사람들도 그를 ‘TK 정치인’의 범주에 ‘가두려’ 하지 않는다. 그 역시 TK 정치인에 편입되길 바라지 않는 눈치다.
동남권 신공항을 경남 밀양에 유치하려고 ‘TK 정치인’이 몸이 달 때도, 박 전 대표는 이들과 거리를 두었다. “신공항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TK의 요구인 밀양 유치를 두둔하지 않았다. 물론 친박계 TK 국회의원들은 밀양에 목을 맸다. 이 지역 사람들은 그런 박 전 대표에 대해 내심 섭섭하게 생각하고 또 속이 상하다고 말한다. 박 전 대표를 지지하면서도 지지해야 할 이유가 점점 줄어드는 곤란함을 느낀다. 그리고 자문한다. “박근혜는 ‘TK 정치인’인가, 아닌가?” 하고.
이런 박 전 대표의 어정쩡한 입장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밀양을 언급하는 순간, “TK 금배지들과 유권자들의 아우성을 뿌리치지 못한 사욕(私欲)”이라는 비난이 쏟아질 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TK 정치인’으로서 지역을 살갑게 챙겨 달라는 기대, 또한 지역을 벗어나 중앙무대에서 성공하기를 바라는 염원이 복잡하게 얽혀 갈등상태에 빠져들고 있다.
《영남일보》 편집국장과 사장을 역임한 김상태(金相台)씨는 “TK에는 두 가지 부류가 있다”며 하나는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대구ㆍ경북에 눌어붙어 사는 거주민 TK, 다른 하나는 서울과 수도권에 진출해 권력과 재력까지 갖춘 ‘강남 TK’를 꼽는다. 강남 TK는 일찍 경상도 정권을 창출하고 유지하는 데 앞장섰거나 그들과 교분을 쌓아 정보에 한발 앞선 덕에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며 오늘날 세력을 형성한 사람 또는 그 직계들을 말한다. 김 전 사장은 “강남 TK는 개구리 올챙이 시절 모르듯 이미 고향을 잊은 지 오래일 뿐 아니라 아직도 낙후한 대구ㆍ경북에 사는 지역민들을 마음속으로 오히려 업신여기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박 전 대표는 이 두 부류 TK 중 어느 쪽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어느 쪽에도 해당 안되는 것 같다.
《매일신문》 서영관(徐泳瓘) 논설주간은 박 전 대표에 대한 지역민의 복잡한 심사(心思)를 이렇게 전했다.
“솔직히 대구ㆍ경북 사람들은 박근혜 전 대표가 밀양을 지지해 주길 바랐지요. 유권자가 언제부터 친정엄마처럼 마음이 넓었습니까? 오히려 보채고 투정하는 아이지요. 지역민의 눈높이가 무엇인지, 그들의 간절한 염원을 읽을 수 없다면 지역 정치인이 아니지요. 그래서 서운해하고 섭섭해합니다.”
박근혜가 밀양공항을 지지했다면…
대구ㆍ경북 사람들은 점점, 박근혜 전 대표를 TK에서 떠나보내야 할지 모른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안타깝지만, 오히려 그쪽이 속 편할지 모른다. 역(逆)으로 그런 선택이 박 전 대표나 대구ㆍ경북 모두를 위한 일이라고 느끼고 있다.
기자는 달성군 화원읍 본리에 위치한 ‘남평(南平) 문씨(文氏) 세거지(世居地)’를 찾았다. 목화(木花)씨를 들여온 문익점 선생의 18대손 문경호씨가 터를 닦아 남평 문씨 일족이 모여 사는 곳이다. 문희갑 전 대구시장이 이곳에 똬리를 틀고 산 지가 6년 가까이 된다. 그는 대구시장 시절, 카리스마 있는 시장으로 유명했다. 별명이 ‘문 핏대’, 하도 핏대를 올려서 붙여졌다.
성공한 TK가 너도나도 서울로 향하지만, 그는 공직에서 물러나고 고향에 뿌리를 내렸다.
“대구시장 그만두고 서울을 완전히 잊었지요. 서울 방배동에 집도 있고, 고시(考試) 출신 공무원 모임과 국회의원 모임 등 10여 개의 친목모임이 있지만 모두 끊어 버렸습니다. 중요한 길흉(吉凶)사만 챙겨요. 그 외에는 서울에 가지 않습니다. 고향에서 원로(元老)문화, 낙향(落鄕)문화를 만들고 싶어서입니다. 저를 만나고 싶어하는 분들이 찾아오면 기꺼이 만나고 문중(門中) 일도 도맡아 합니다. 그런데 시골에 살아 보니 그것도 쉽지 않아요. 기회만 있으면 그린벨트를 풀어 아파트를 지으려고 합니다. 겪어 보니 희한합디다.”
박근혜에 대한 양면성
문희갑 전 시장은 “무슨 고리타분한 얘기나 하는 원로가 아니라, 지역에서 큰 걱정거리나 위기가 닥칠 때 원로가 나서서 해결하는 풍토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는 공직에 있을 때 국방부 예산국장, 경제기획원 예산실장ㆍ차관 남북경제회담 수석대표 등 경제 요직을 두루 거쳤다. 노태우(盧泰愚) 대통령 시절,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있으면서 노 대통령을 설득해 인천국제공항 건설을 입안했다고 한다. KTX 건설, 서해안 고속도로, 분당ㆍ일산 등 수도권 6개 신도시 건설, 200만호 주택건설, 서울 도봉구 번동 임대아파트 건설 등 그의 손을 거쳐 간 국책(國策)사업이 적지 않다.
칩거 중이던 문 전 시장은 최근 동남권 신공항 문제가 불거지자, 모처럼 밖으로 얼굴을 내비쳤다. ‘영남권 신공항 밀양유치 범 시ㆍ도민 결사추진위원회’ 대구 명예위원장을 맡은 것이다. 그의 말이다.
“대한민국이 ‘서울공화국’으로 바뀐 지 오래입니다. 돈과 사람이 ‘중앙’에 집중돼 이 나라가 옳은 나라가 되기 어려울 정도가 됐어요. 말이야 ‘지역균형이다’ ‘지방이 발전해야 한다’면서, 지방에 꼭 필요하고 국가 미래를 좌우할 사업을 이렇게 외면할 수 있나요? 대구와 부산 사람들이 인천국제공항에서 외국손님을 맞거나 해외출장을 가려면 서울에 올라가 하룻밤 자든지, 새벽 심야버스를 타야 합니다. 얼마나 불편한지 서울사람은 꿈도 못 꿉니다.
제가 인천공항 건설계획을 입안할 때, 회의론도 많았지만 ‘동양의 관문’이 필요하다고 설득했지요. 당시 홍콩이 신공항 사업을 시작했고, 일본도 오사카 간사이(關西)공항을 건설할 때였어요. 저는 박태준(朴泰俊) 포스코 명예회장 등과 머리를 맞대어 고민했지요. 비록 추진과정이 지난(至難)했고 여러 말들이 많았지만 지금 세계 제일의 공항이 됐잖아요. 자부심을 느낍니다.”
―대구ㆍ경북에서 박근혜 전 대표의 역할을 어떻게 보나요.
“객관적으로 지역 민심을 들어 보면 양면성(兩面性)이 있습니다. 박근혜 전 대표가 국가의 중요한 일을 신중하게 얘기한다는 시각과 대선 후보로서 자기 인기를 생각해 꼭 해야 할 일을 기피한다는 시각으로 나뉩니다. 박 전 대표는 대구 달성군의 국회의원이 아닙니까?
현실적으로 대구ㆍ경북의 지지를 받아 상당한 수준 올라갔다면 지역의 명운(命運)이 달린 밀양공항에 정치생명을 걸어야 했습니다. 차기 대통령이 이끌어갈 다음 정권은 우리가 전혀 경험하지 못한 어려운 시절이 닥칠지 모릅니다. 남북관계도 그렇고 지역갈등, 소득격차 등 복잡한 현안이 즐비합니다.
지금 TK는 극도의 흥분상태
지도자가 되려면 결단이 필요합니다.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이 반공(反共)포로를 석방한 것이나 박정희 대통령이 주한미군 철수를 막으면서 경제발전을 추진한 것은 모두 지도자로서의 결단이 있어 가능했지요. 박 전 대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예민하고 중요한 문제를 피해 가면, 대통령에 당선되는 데는 플러스가 될지 몰라도, 대통령이 됐을 때 걱정스러운 면이 한두 가지 아닙니다.”
―지난해 6ㆍ2 지방선거 때 달성군에서 일어난 변화를 어떻게 봅니까. 달성군이 이렇게 민도(民度)가 높았나요.
“박근혜 전 대표에 대해 달성군이나 대구ㆍ경북 민심이 이반(離反)됐다고 듣고 있고, 저도 달성군에서 그걸 느끼고 있어요. 이곳에 와서 보니 박경호 전 군수가 달성군을 좌지우지하더군요. 박 전 대표가 그걸 몰랐느냐? 본인은 몰랐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군민들이 승복을 안 하는 거예요. 사실 지난 지방선거에는 박 전 대표가 올인을 했습니다. 정말로 자기 몸 아끼지 않고 뛰었습니다. 제가 이곳에 살고 있으니 잘 압니다. 그런데 민심이 무섭더군요. 과거에는 그분에 대한 지지가 굉장했어요. 그와 손을 잡으려고 줄을 서고, 가는 곳마다 구름처럼 몰려들었잖아요.
그런데 이번에는 손을 내밀어도 전부 외면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쇼크를 많이 받았다고 해요. 유세를 끝내고 투표까지 마친 박 전 대표가 투표소를 나서면서 인사를 건네도 그 많은 사람 중에 두 사람 정도만 인사를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투표하자마자 수행비서하고 그 자리에서 서울로 올라갔다고 해요. 그런 상황을 잘 모르는 서울쪽 사람이나 다른 곳에서, 그래도 박 전 대표를 열렬하게 지지하니까 충격에서 빨리 벗어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대선후보 가운데 지지율이 앞서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달성군과 부근 지역, 그리고 대구ㆍ경북은 그전보다 (여론이) 다르게 봅니다. 제가 느끼고 듣는 것이 그렇습니다.”
―내년 총선에서 TK에서도 한나라당 지지세가 많이 꺾일 것이란 얘기가 돌던데요. 벌써 무소속 바람 얘기하는 사람도 있고요.
“아마 상당하게 소용돌이칠 겁니다. 심하게 이야기하자면, 대구ㆍ경북에서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계층이 극도의 흥분상태에 있습니다. 이것을 풀어 주는 현명한 처방(處方)이나 공천(公薦)이 나오면 한 번 더 믿어보겠지만, 또 과거와 같은 식이라면 아마 큰 소용돌이가 칠 겁니다. 그렇다고 대구ㆍ경북 기질로 봐서 민주당이나 민주노동당을 지지할 순 없지요. 그래서 무소속이 쏟아져 나올 것으로 보는 이가 많아요.”
―대구ㆍ경북의 총선 표심과 대선 표심이 엇갈릴 것으로 보시나요.
“그것 때문에 TK가 갈등에 빠질 것입니다. 그리고 벌써 고민하고 있어요.”
김문오 달성군수, “한나라당 입당 절박함 없다”
김문오 달성군수는 아직도 무소속이다. 그는 6ㆍ2 지방선거 당시 “군수에 당선되면 주민 의사를 물어보고 한나라당에 입당하겠다”고 했었다.
그러나 아직 입당한다는 이야기가 들리지 않는다. 지역민 중에는 한나라당 입당을 권하는 사람도 있지만, 박경호 전 군수가 있는 한 입당은 어렵지 않겠느냐는 시각이 더 많다.
사실 김 군수와 박 전 군수는 화원초등학교 동창이자 죽마고우다. 서로를 누구보다 잘 아는 사이다.
지방선거 기간 중 김 군수는 박경호씨를 반대하는 인사들이 중심이 된 무소속 단일화 모임을 통해 ‘추대’ 형식으로 출마했다. 박근혜 전 대표에 대한 공격을 일절 하지 않았고 대신 ‘안티 박경호’ 전략으로 당선됐다고 한다. 그만큼 앙금이 있었기 때문이다.
달성군청을 찾아가 지난 1년간의 무소속 군수 경험담을 들었다.
―당적이 없어서 아쉬운 점은 없나요.
“군수는 정치인이 아니라 행정 CEO라고 생각합니다. 정치적 색깔을 띠거나 정치인처럼 행동하면 군정을 이끄는 데 오히려 부담이 됩니다. 무소속으로 당선될 때 주위 많은 분이 박근혜 전 대표와의 관계를 걱정하고 지금도 궁금해합니다. 또 제가 한나라당 입당할 것인지에 관심이 많아요. 나중에 지역민이 필요성을 제기한다면 그때 가서 진지하게 결정하겠습니다. 지금은 시기가 아닌 것 같아요.”
김 군수는 지난 1년간 박 전 대표와 행사장에서 여러 번 만났고, 지역현안을 협의하기 위해 2차례 독대(獨對)했다고 한다. 지난 1월 3일 달성군 신년인사회 때는 “나라의 큰 소임을 할 수 있도록 부탁한다”며 당초 연설 문안에는 없는 덕담을 건네 주위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군정을 이끌려면 박 전 대표의 힘과 도움이 필요합니다. 신년인사회 때 덕담한 것을 두고 지역 언론에서 ‘김 군수가 박 전 대표를 띄운 이유는?’이라는 추측성 기사를 쓰면서, 제가 한나라당에 입당하기 위한 행동이었다고 했어요. 또 일부에서는 ‘왜 갑자기 그러느냐’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도울 것은 도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후회는 안 합니다.”
―내년 대선이 되면 박 전 대표의 역할이 커질 텐데, 심정적으로는 도울 생각이죠?
“돕는다는 게 한나라당 당원처럼 움직일 수야 없지요. 지역 국회의원이고 그분이 큰일을 하시면 지역에 도움이 안되겠습니까?”
―한나라당 입당을 공식적으로 권하는 사람이 주위에 많다면서요.
“강력하게 권하는 이는 없지만 은근하게 권하는 사람은 많아요.”
“박경호씨, 요즘 박 대표 주변에서 안보여”
―입당을 원해도, 못하는 형편이 아닌가요.
“입당할 시점도 아니고 절박함도 없어요. 입당한다면 저더러 배신했다고 욕하는 사람도 안 있겠습니까?”
―당선되면 한나라당에 가겠다고 말해서 더 지지를 받은 게 아닌가요.
“사실 달성군은 한나라당 정서가 강하고, 한나라당을 지지하던 분 중에서 저를 많이 민 것도 사실이에요. 선거 당시 한나라당 입당을 표명하라고 주위에서 많이 권하긴 했어요. 그래서 좀 절충을 했어요. 박근혜 전 대표를 공격하지 않고, ‘주변에 호가호위(狐假虎威)하고, 잘못된 군민의사를 왜곡시키는 세력을 응징해야 한다’고 말했지요.”
―지난 1년간 박근혜 전 대표를 몇 번 만났나요.
“행사장에서 여러 번 뵈었지만 독대는 두 번인데, 서울에서 하고 대구에서도 만났지요. 사람들이 박 전 대표와 만나는 것에 얼마나 관심이 많은지…. 그래도 전직 군수(이종진)는 한 번도 독대한 적이 없다고 해요. 여러 사람이 있는 자리에 동석(同席)은 했지만 따로 만나지는 못했다는 거예요. 제가 박 전 대표와 독대한다고 하니 깜짝 놀라더군요.”
―독대할 때 입당 얘기는 했나요.
“에이, 정치 얘기는 안 했습니다.”
―박 전 대표가 요즘 박경호씨를 멀리하고 있다던데 사실인가요.
“그렇다는 얘기도 있고, 안 그렇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그러나 박 전 대표가 가는 자리에 (박경호가)안 나타나는 것은 사실인 것 같아요. 저도 들은 얘기지만 대구 국회의원들이 박경호씨에게 ‘당신이 여기 왜 나타나!’ 하고 나무랐다고 하는데 내부 속사정이야 모르지요. 정말 견원(犬猿)시하는지는 깊이 모르겠고, 과거에는 박 전 대표가 오시면 그림자같이 따라다니는데 요즘은 안 보이는 것 같기는 하더군요. 그런데 영 안 나타나는 것은 아니고, 가끔 먼발치에서 모습을 드러낸다고 합니다.”
―박경호씨가 군수시절, 그에게 줄을 선 공무원도 적지 않았다고 하던데, 인사문제는 어떻게 하고 있나요.
“과거 누가 그쪽 줄을 섰네 어쩌네, 여러 말이 있어요. 저는 그런 것 안 따지고 능력을 봅니다. 어떤 분은 저를 찾아와 자격지심 때문인지 ‘선거 때 정말 미안하다’고 말하는 분도 있어요. 저는 오히려 ‘걱정하지 마라’며 이런 말을 했어요. ‘선거라는 게 인연 따라 하는 것이니 개의치 않는다’고요.”
그러나 과거 박 전 군수를 ‘왕군수’라 부르고 군수직에서 물러나서도 군정을 좌지우지했으며 그를 수족처럼 따르는 공무원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인사를 어떤 식으로 했나요.
“과거 인사에 피해를 봤다고 할까요? 억울한 인사였다고 호소한 사람이 있으면 발탁했지요. 그러나 지금까지 보복인사는 안 했고, 또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높은’ 국회의원 대신 심부름꾼 원해
‘박경호-박근혜-지방선거 패배’라는 ‘사슬’은 선거가 끝난 지 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달성군의 논쟁거리가 되고 있었다. 기자는 박경호 전 군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방선거 이후 민심이 많이 달라졌느냐”는 질문에 그는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또 “무소속 군수에 대한 군민의 평가가 어떤지”에 대해서도 “요새는 일절 활동을 안 하니 저도 잘 모르겠다”고 했다.
“현재 한나라당 내 당직을 맡고 있는지” 물었더니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박근혜 전 대표를 자주 만나느냐”는 질문 역시 “만나지 않는다. 못 뵌 지 오래됐다”고 했다.
무소속 군수를 배출한 ‘민도 높은’ 달성군이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어떤 선택을 할까. 만약 박근혜 전 대표가 총선에 나서지 않게 되면 누가 공천장을 받을까. 현재 달성군민들은 고민하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고민의 강도가 거세질지 모른다. 기자와 만난 군민들과 상인, 공무원들은 한결같이 “당보다 인물을 보고 찍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6ㆍ2 지방선거의 표심으로 전국적 관심이 쏠렸던 달성군의 선택이 대구ㆍ경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두고 볼 일이다.
달성군 구지면에서 만난 한 이장의 말이다.
“달성군에서도 남부권, 그러니까 현풍ㆍ유가ㆍ구지 쪽은 지역개발 문제 때문에 한나라당에 대한 섭섭함이랄까 불만이 다른 지역보다 많은 게 사실입니다. 물론 누가 한나라당 공천을 받느냐가 중요한데, 깜냥도 안 되는 사람이 나서면 무소속이 이기는 상황이 도래하리라 봅니다. 우리는 ‘높은’ 국회의원보다 심부름 잘하는 일꾼을 원합니다. 살갑게 자주 얼굴 비치고 건의사항이 있으면 자기 일처럼 챙겨 주는 그런 분이 와야 해요.”
구지면에서 만난 한 50대 주민은 이렇게 말했다.
“총선은 그렇다 쳐도 대선은 좀 다르지 않겠습니까. 민주당 아니면 한나라당인데 민주당 후보를 찍겠습니까.”
대구ㆍ경북 인터넷 신문 《평화뉴스》의 유지웅(兪志雄) 편집장은 “그래도 박근혜 전 대표에 대한 영향력은 여전하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보수성향’의 지역정서는 ‘이명박ㆍ한나라당'보다 ‘박근혜ㆍ친박'에 더 무게를 싣는 분위기입니다. 내년 총선에서 박 전 대표가 전면에 나와 선거를 지휘한다면 다시 표심을 결집할 수 있다고 봅니다. 다만, 박 전 대표는 아직 대구ㆍ경북에 ‘뭔가’를 보여준 적이 없어요. 설령 박근혜 전 대표가 대통령이 된들, 지지해 준 고향을 잊지 않고 배려하고 챙겨줄까요? 전 아니라고 봅니다.”
내년 총선 때 무소속 돌풍의 기운 감돌아
대구문화포럼 박인환(朴仁煥) 공동대표는 “동남권 신공항 불발로 한나라당에 대한 비토와 분노가 만연해져 ‘당선된 뒤에 한나라당에 들어가겠다’고 말하면서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정치신인이 대거 등장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분위기를 요약했다.
“우선 무소속 후보의 난립 가능성이 점쳐져요. 그렇게 되면 표가 분산될 것이고, 내년은 대선까지 연결되는 해여서 ‘정권 재창출론’으로 이어지면 유권자들이 고민에 빠질 수 있어요. ‘그래도 한 번 더 밀어 보자’는 식으로 말이죠. 그러나 무소속 바람을 감안하면, 무소속 당선자 비율이 30%대에 이를 것으로 봅니다.”⊙
여기서 한정된 지지기반이란 영남지역을 의미한다. 더 좁혀 말하면 대구ㆍ경북이다.
그러나 이 지역 사람들은 정 최고위원의 말이 불쾌하다. TK(대구ㆍ경북)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기자는 5월초 대구 달성군에 갔다. 인구 18만여 명이 사는 도농복합지역인 달성군은 ‘부동의 1위 대선 후보’를 배출한 지역구다.
누구나 아는 얘기지만, 대구의 옛 지명은 달구벌이다. 또한 달구벌은 달성(達城)의 옛 이름이다. 이 지역 방언으로 닭을 ‘달구’라고 부르는 것에서 유추해 보면 대구는 닭이라는 동물을 토템으로 삼았던 계림(鷄林)의 통치권역에 속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신라(新羅)라는 국호가 생기기 이전 경북 경주를 계림이라고 불렀음을 떠올릴 때, 달성은 신라 경주와 뿌리가 같음을 짐작게 한다. 그런 유서 깊은 곳이 박근혜 전 대표의 지역구다.
달성군은 대구의 8개 구ㆍ군(區郡) 가운데 가장 도시화가 덜된 곳이다. 원래는 경북에 속했지만 1995년 대구로 편입됐다. 몇 년 사이 공단과 아파트, 상가가 많이 들어섰지만, 여전히 시골의 풍광(風光)을 간직하고 있다. 5일장이 열리고, 도로가 논밭 사이로 이어져 있다. 혈연과 지연이 복잡하게 얽히고 보수적 성향에다 구전(口傳)이 위력을 발휘한다.
토호가 아닌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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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월 23일 달성군 ‘참꽃 축제’의 일환으로 열린 ‘참꽃 가요제 모습’. 박근혜 전 대표가 내년 총선에 불출마할 가능성이 높자, 출마예상자들이 군내 행사에 자주 얼굴을 내밀고 있다. |
그런 달성에서 이상 징후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지난해 6ㆍ2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군수를 당선시키지 못한 것이다. 박 전 대표의 집과 개인사무실이 있는 달성군 화원읍에서도 무소속 군의원이 당선됐다. 박 전 대표를 달리 부르는 표현인 ‘선거의 여왕’은, 자신의 지역구에서만큼은 아니었다.
그리고 1년이 지났다. 겉보기에는 이전과 달라진 것이 없었다. 군수의 당적 유무가 군정(郡政)에 무슨 결정적 영향을 미치겠는가.
장터 민심과 정치평론
5월 6일 화원읍 5일장이 열렸다. 많은 사람이 마치 늑장을 부리듯 물건을 흥정하며 장터를 서성거렸다. 대개 사지도 않으면서 뒤적거리기만 하는 것 같았다. 장바닥은 말끔히 쓸렸는데도 상인들이 내놓은 물건들로 길은 비좁았다. “싸다(싸구려)”고 외치는 소리가 행인들의 목소리에 눌려 기를 못 펴고 있었다. 고무 대야에 야채를 잔뜩 담아 놓은 할머니에게 다가가 박근혜 전 대표에 대한 이야기를 물었다.
“아이고, 늙은 것이 그걸 어찌 아노”라면서도 “대통령이 돼야 안되겠나. 글쎄 되면야 좋지만 그게 쉬운 일이가. 옛날에는 공손하게 인사하는 모습이 보기 좋더니만, 요새는 좀 거북살스러워 보이기도 하데? 인심을 좀 잃긴 잃었지.”
한 상인은 박경호(朴京鎬) 전 달성군수 이야기를 했다. 박 전 군수는 1998년과 2002년 한나라당 공천을 받아 민선 2~3기 달성군수를 지냈다. 지난해 6ㆍ2 지방선거 이전만 하더라도 박 전 군수는 박 전 대표의 대리인 내지 후견인으로 알려졌었다. 누가 뭐래도 그는 달성군의 토호다.
“박경호 군수 때문에 사람들이 다 등 돌렸다고 하던데, 소문이야 그렇지 우리 같은 사람이 실상을 어떻게 압니까? 물론 소문이야 많지요.”
그러더니 기자의 얼굴을 외면하고선 자기 일에 빠져 버렸다.
행인을 붙잡고 다시 물었다. 그는 상이군인 출신으로 6ㆍ25 때 참전, 한쪽 눈을 잃었다고 했다. 공교롭게도 상이군경회 달성군지회 사무실과 박근혜 전 대표의 개인사무실은 층만 다른 같은 건물이었다.
“사람들이 박근혜, 박근혜케도(해도) 그 어른(박정희 대통령) 보고 밀었지. 인자는(이제는) 생각도 많이 바뀌었거든, (한나라)당은 내삐리고(내버리고) 사람, 인품보고 찍어야지.”
―인품이 뭔데요.
“지대로(제대로) 공부는 했나, 어디서 뭘 했는지, 그런 것 있잖아.”
―박근혜 전 대표가 대통령이 될 것 같은가요.
“돼야지. 그렇다고 우리가 손핵규(손학규 민주당 대표)를 찍겠나?”
―박경호 전 군수의 근황은 어떤가요.
“한나라당 탈당이야 하겠는교? 달성의 우두머리였는데, 그래도 요즘은 조용하다 하데. 좀 놀랐을 낍니다. 요새는 절대로 한나라당이라 해서 다 안 찍어 줍니다. 시골이라 깔보면 안 되지!”
이 노인의 음성이 느리고 조용조용해서인지 근엄하게 들렸다.
‘의성 떡 방앗간’ 주인인 유경목(兪景穆)씨는 화원읍 시장번영회 회장이다. 그는 “저번에 박경호씨가 박근혜 대리 행세를 하다가 욕 많이 얻어먹었지요. (6ㆍ2 지방선거에서) 똑똑한 사람 다 빼고 지(자기) 사람들만 공천했다는 소문이 많았다”고 했다.
“만약에 내년 대통령 선거 나간다고 박근혜 전 대표가 (국회의원 선거에) 안 나서면 박경호씨가 1순위가 안 되겠습니까. 좋든 싫든 워낙 이름이 마이(많이) 알려졌잖아요. 그런데 당선될지는 모르지. 민심을 알 수야 있습니까. 저는 그때 가서 누가 나오는지 보고 판단할랍니더.”
“무서운 거라, 민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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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 달성군 화원읍에 위치한 ‘박근혜 전 대표 사무실’. |
치킨집을 운영하는 시장번영회 총무 김옥수(金沃洙)씨의 말이다.
“하하. 나이 든 사람은 몰라도 60대 밑으로는 인식이 많이 바뀌었지요. 인물감이 되고 할 만하다 싶은 사람을 찍는다고들 말합니다. 6ㆍ2지방선거 때, 박근혜 대표가 한나라당 후보를 위해 뛰었는데, 그래도 보소. 무소속이 안됐습니까. 무서운 거라, 민심이….”
―그래도 대통령 선거는 다르겠지요?
그는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군수는 무소속 뽑아도 대통령은 박근혜로 밀어야지”라고 했다.
달성군 의회 하용하(河龍夏) 부의장의 지역구는 화원읍이다. 박 전 대표가 달성에 내려오면 기거하는 집이 화원에 있다. 하 부의장은 초선이지만, 민정당 시절부터 한나라당까지 정치 이력이 30년이 넘는다. 그러나 현재 당적은 없다.
하 부의장은 지난 2007년 12월 대선 당시 ‘명사랑’(이명박 공식 팬클럽) 중앙회 영남지역본부 대구 대표를 지냈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한나라당 입당이 불허됐다.
박근혜 전 대표와의 인연도 오래됐다. 박 전 대표가 정치에 입문하던 1998년 4월 보궐선거 당시 43살이던 그는 한나라당 달성군지구당 조직부장이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1998년 보궐선거 총책임자나 다름없었다”고 했다.
“김석원(金錫元) 의원이 물러나는 바람에 지구당이 텅 비게 됐고, 상대 당 후보로 엄삼탁(嚴三鐸)씨가 출마하면서 많은 분이 그쪽으로 넘어갔지만 저는 당을 지켰습니다. 그때(1997년 대선) 이회창(李會昌) 총재가 낙선하지 않았습니까. 하도 억울해서 혼자 당에 남았습니다. 박 대표가 공천을 받아서 오기에, 손 털고 정치 안 하려고 했는데 주위에서 하도 붙잡아서 선거를 치렀지요.”
“선거 때 나를 안 도왔지 않습니까”
보선에서 박 전 대표가 승리하자, 하 부의장은 한나라당 대구시의원 후보로 공천됐다.
그러나 달성군수 후보는 마땅한 인물이 없었다고 한다. 박 전 대표는 내심 달성 출신 대구ㆍ경북견직물조합 이사장인 하영태(夏榮兌)씨를 마음에 뒀다고 한다. 그러나 하 이사장이 고사했다.
하 부의장은 당시 민선 1기 달성군수였던 양시영(梁始榮)씨를 추천했다. 양씨는 무소속이었으나 1997년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에 입당한 상태였다. 하 부의장의 말이다.
“저는 달성군의 대통합을 위해 양 군수가 좋다고 말씀드렸더니, 박 대표는 ‘선거 때 나를 안 도왔지 않습니까’라며 탐탁지 않게 여겼습니다.”
당시 박경호씨는 한나라당 달성군지구당 부위원장이었다. 군수에 출마할 생각이 있었던 박씨는 하 부의장이 양 군수를 지지하는 것에 불만을 품었다고 한다. 하 부의장과 박경호씨는 둘 다 달성군 토박이로 윗대부터 훤히 아는 사이였다. 하 부의장은 화원읍 천내3동, 박 전 군수는 천내1동 출신이다. 계속된 그의 말이다.
“박경호씨가 제게 ‘(1998년 보궐선거 때) 당원 명부를 달라’고 으름장을 놓는 겁니다. 지구당 책임자가 저였기 때문에 저는 못 준다고 했지요. 저더러 시의원 출마하지 말고, 자기 군수선거나 도와달라는 얘기였지요. 박경호씨와 실컷 싸우고 저는 시의원 안 한다고 공천장을 내던졌어요. 그리고 박 대표에게 편지를 팩스로 보내고 훌쩍 떠나 버렸지요.”
―뭐라고 썼나요.
그는 편지 쓴 날짜(1998년 5월 10일)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달성지구당이 사당화(私黨化) 돼선 안된다고 했어요. 그때 박 전 대표가 보선에 당선되고 서울로 올라간 뒤 잘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박경호씨가 기고만장했지요. 자기가 없으면 달성군이 안된다는 식으로 상황(上皇)처럼 사람들을 안하무인(眼下無人)격으로 대했어요.”
그러나 1998년 민선 2기 지방선거에서 결국 박경호씨는 군수가 됐고, 하 부의장은 시의원 공천권을 반납하고 빈손으로 지구당을 떠났다. 그 길로 박근혜 전 대표와 멀어졌다.
박경호 전 군수의 근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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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용하 달성군 의회 부의장. |
<박경호 군수가 당선되고 군내 토목업체가 많이 등록되었다. 면면을 살펴보면 박 군수 선거를 도운 자들이 대다수이다. 특히 기존 업체 중 군 발주 수의계약을 1건도 수주 못한 것은 무슨 이유일까? (중략) 공무원 속에서도 서로 눈치 보고 동료 간에도 불신이 왜 있는 것인가? 그리고 박 군수의 실세 핵심참모가 읍ㆍ면에 몇 명씩 있어 사사건건 간섭을 하고 공무원이 눈치를 봐야 한다니 한심하지 않은가? 또한 초상이 나면 군수 조화를 읍ㆍ면 공무원이 제일 먼저 들고 와 조문한다. 슬픈 유족에게 위로는 될지 모르나 공무원이 그렇게도 할 일이 없는가?>
하 부의장은 “군정을 잘 이끌라는 뜻에서 쓴소리를 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저처럼 박경호씨에게 바른 소리 하는 사람도 없을 겁니다. 지난번 (지방선거에서) 무소속 군수가 당선된 것은 박근혜 전 대표를 등에 업고 기고만장하던 자를 군민들이 심판한 것이라고 봅니다.”
―박경호씨에 대한 부정적인 민심을 박근혜 전 대표는 몰랐을까요.
“전달이 안됐겠지요. 박 전 대표는 박경호씨를 믿었지만, 껍데기만 보고 (민심의) 속이 다 썩어 가는 줄 몰랐던 거지요.”
―6ㆍ2 지방선거 이후 박경호씨의 근황은 어떤가요.
“소문에는 박 전 대표 주변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했다고 하데요. 이제는 그 실체를 완전히 다 알았으니까. 언로(言路)가 소통되는지 모르지만, 누가 보고하는 사람이 안 있겠습니까. 선거에 지고, 박 전 군수는 달성군 당원협의회 수석부위원장 자리도 내놨다고 하데요. 그리고 밖으로 안 다니는 모양입니다. 다니면 부끄러우니까….”
―현재 무소속이지요? 주위에서 한나라당에 입당하라고 권유하는 분도 있지요?
하 부의장은 이 질문에 답하지 않고 지난 2007년 대선 당시를 떠올렸다. 당시 그는 이명박(李明博) 대통령의 당선을 돕던 사조직(명사랑)의 대구 대표였다.
“대통령 선거 때 위(중앙당)에서 입당하고 싶은 사람을 전부 다 받으라고 했어요. 한 표가 아쉬웠기 때문에 타당 출신도 다 복당시켰어요. 그 무렵, 한나라당 대구시당 복당 심사위원회가 꾸려졌지요. 대구시당에서 제게 복당신청서를 내라고 해서 팩스로 보냈지요. 각 지역 당원협의회마다 부위원장이나 실무자가 와서 복당심사에 참여했는데, 전력(前歷)을 안 묻고 다 복당시켜 줬다고 해요. 그런데 달서구와 달성군만 복당이 안됐습니다. 바로 저랑 김문오, 박성태 세 사람입니다.”
공교롭게도 복당이 안된 김문오(金文澳)ㆍ박성태(朴成泰)ㆍ하용하(河龍夏) 세 사람 모두 지난해 6ㆍ2 지방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김문오씨는 군수, 박성태씨는 시의원, 하용하씨는 군의원에 당선됐다. 하 부의장의 계속된 말이다.
“세 사람을 심사하는데, 대구시당 실무자가 박경호씨에게 전화를 걸어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박씨 왈(曰), ‘대표에게 물어보고 답을 주겠다’더랍니다. 잠시 후 전화가 와서 ‘(박 대표가) 세 사람 모두 복당시키지 마라’고 했다고 해요. 그 짧은 시간에 정말 박 대표에게 전화했을까요? 저는 복당을 못한 것이 박 대표 뜻은 아니라고 봅니다.”
박근혜 불출마 소문에 10여 명 거론
기자는 달성군에 내려와 박근혜 전 대표가 내년 총선에 출마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대통령 선거 출마가 확실한 만큼 총선에 나서지 않을 것이란 얘기였다. 대선 후보가 되면, 지역구 의원직을 내놓는 것이 관례인 만큼, 그럴 바에야 전국구로 옮겨 가거나 아예 출마를 하지 않는 것이 순리라는 것이다.
이런 소문은 달성군 공무원들과 지역 유지들 사이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공공연한 비밀이었고 한나라당 대구시당에서도 관련설을 확인시켜 주었다. 아무래도 지역구 방문이 드문 박근혜 전 대표로서는 무척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현재 자천타천 거론되는 인사로는 대구지검 서부지청장을 역임한 곽상도(郭尙道) 변호사, 고(故) 구자춘(具滋春) 의원의 아들이자 《조선일보》 기자 출신의 구성재(具聖宰)씨, 현 김문오 달성군수, 재경(在京)달성군향우회 수석부회장인 김징완(金澄完) 전 삼성중공업 부회장, 전직 대구시의원 출신의 전성배(田聖培)씨, 박경호ㆍ이종진(李鍾振) 전 달성군수와 6ㆍ2지방선거에 한나라당 군수후보로 나섰던 이석원(李石原)씨, 박상희(朴相熙) 대구경영자총협회 회장, 미래희망연대 소속 송영선(宋永仙) 의원 등 10명 안팎이다.
그렇다고 움직임이 왕성한 것 같지는 않다. 달성경찰서 관계자는 “이름이 거론되는 수준 이상의 행보는 없다는 것이 현지 주민들의 한결같은 얘기”라고 귀띔했다. 아무래도 박 전 대표를 의식해서다. 유력 대선 후보 지역구를 휘젓고 다닐 배짱 두둑한 이가 몇이나 될까. 괜히 나섰다간 역풍을 맞을 게 뻔하다.
다만, 지난해 6ㆍ2 지방선거 이후 박 전 대표에 대한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는 점에서 후보자들의 움직임이 과거와 달라진 것만큼은 분명해 보였다.
달성군에서 만난 한 공무원은 후보자의 면면을 이렇게 전했다.
“박근혜 전 대표가 부득이 빠지면 박경호씨가 가장 유리할 수 있는데, 바닥 민심이 여전히 차갑다는 것이 걸림돌이죠. 전성배 전 시의원은 박경호씨의 ‘직계(直系)’로 알려졌습니다. 아주 가까운 사이입니다.
후보자끼리 벌써 예민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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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6월 2일 한나라당 텃밭인 대구에서 한나라당 후보를 꺾고 이변을 일으킨 무소속 김문오 달성군수 당선자가 지지자들에게 둘러싸여 꽃다발을 들고 박수를 받고 있다. |
송영선 의원은 공개적으로는 달성군에 관심이 없다고 합니다. 대신 달성군과 인접한 ‘달서구 병(丙)’ 지역을 챙긴다는 얘기가 많은데 모르죠, 여건만 된다면 덤벼들지 않겠습니까.
고 구자춘 의원의 아들인 구성재씨가 열심히 군내(郡內) 이런저런 행사에 얼굴을 내밀고 있어요. 세월이 흘렀지만, 과거 부친(父親)에 대한 향수와 그를 돕던 사람과 조직이 아직 건재하다고 해요. 또 구자춘 의원은 박정희(朴正熙) 대통령과 돈독한 사이였고, 박근혜 전 대표와도 인연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김징완 전 부회장은, 저는 아니라고 보는데 누구는 뜻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어요. 김 전 부회장은 지난 4월 23일 달성군 참꽃축제 개막식에 고속버스를 대절해 재경향우회 인사들과 함께 찾았지요. 김문오 군수가 내빈 중에서 김 부회장만 일으켜 세워 인사시킨 것을 두고 말들이 나와요. 유독 그만 소개했느냐고요. 김문오 군수 말이 ‘외지에서 온 고향 선배고, 재경향우회를 대표하지 않느냐’고 했다고 합니다. 후보자들끼리 벌써 예민해지고 있어요.
민주당 전국구 의원 출신인 박상희씨도 좀 뜻이 있는 것 같아요. 당적이 좀 문제가 되겠지만 지난 2007년 10월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에 입당, 당 재정위원회 고문을 맡았고, 대선 당시 당 중앙선대위 직능정책본부 중소기업위원장으로 뛴 경험도 있어요.
곽상도 변호사의 이름이 간혹 흘러나오지만, 열심히 움직이는 것 같지는 않아요. 문희갑(文熹甲) 전 대구시장은 주위에서 많이 권한다는 얘기는 있으나, 본인은 별 내색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달성군에 출입하는 《매일신문》 김성호 기자는 이렇게 말했다.
“만약 박근혜 전 대표가 지역구를 물려준다면 누굴 주겠어요? 제일 믿을 수 있고, 신뢰하는 사람에게 주겠지요. 지금 거론되는 인사 중에서 박 전 대표의 마음에 흡족한 사람은 추측건대, 잘 안 보입니다. 그나마 제일 가까운 쪽이 박경호ㆍ이종진씨 정도인데 군민들이 받아들일까요?”
박근혜는 ‘TK 정치인’인가, 아닌가?
박근혜 전 대표는 이른바 ‘TK(대구ㆍ경북) 출신’이지만 달성군민도, 대구ㆍ경북 사람들도 그를 ‘TK 정치인’의 범주에 ‘가두려’ 하지 않는다. 그 역시 TK 정치인에 편입되길 바라지 않는 눈치다.
동남권 신공항을 경남 밀양에 유치하려고 ‘TK 정치인’이 몸이 달 때도, 박 전 대표는 이들과 거리를 두었다. “신공항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TK의 요구인 밀양 유치를 두둔하지 않았다. 물론 친박계 TK 국회의원들은 밀양에 목을 맸다. 이 지역 사람들은 그런 박 전 대표에 대해 내심 섭섭하게 생각하고 또 속이 상하다고 말한다. 박 전 대표를 지지하면서도 지지해야 할 이유가 점점 줄어드는 곤란함을 느낀다. 그리고 자문한다. “박근혜는 ‘TK 정치인’인가, 아닌가?” 하고.
이런 박 전 대표의 어정쩡한 입장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밀양을 언급하는 순간, “TK 금배지들과 유권자들의 아우성을 뿌리치지 못한 사욕(私欲)”이라는 비난이 쏟아질 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TK 정치인’으로서 지역을 살갑게 챙겨 달라는 기대, 또한 지역을 벗어나 중앙무대에서 성공하기를 바라는 염원이 복잡하게 얽혀 갈등상태에 빠져들고 있다.
《영남일보》 편집국장과 사장을 역임한 김상태(金相台)씨는 “TK에는 두 가지 부류가 있다”며 하나는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대구ㆍ경북에 눌어붙어 사는 거주민 TK, 다른 하나는 서울과 수도권에 진출해 권력과 재력까지 갖춘 ‘강남 TK’를 꼽는다. 강남 TK는 일찍 경상도 정권을 창출하고 유지하는 데 앞장섰거나 그들과 교분을 쌓아 정보에 한발 앞선 덕에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며 오늘날 세력을 형성한 사람 또는 그 직계들을 말한다. 김 전 사장은 “강남 TK는 개구리 올챙이 시절 모르듯 이미 고향을 잊은 지 오래일 뿐 아니라 아직도 낙후한 대구ㆍ경북에 사는 지역민들을 마음속으로 오히려 업신여기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박 전 대표는 이 두 부류 TK 중 어느 쪽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어느 쪽에도 해당 안되는 것 같다.
《매일신문》 서영관(徐泳瓘) 논설주간은 박 전 대표에 대한 지역민의 복잡한 심사(心思)를 이렇게 전했다.
“솔직히 대구ㆍ경북 사람들은 박근혜 전 대표가 밀양을 지지해 주길 바랐지요. 유권자가 언제부터 친정엄마처럼 마음이 넓었습니까? 오히려 보채고 투정하는 아이지요. 지역민의 눈높이가 무엇인지, 그들의 간절한 염원을 읽을 수 없다면 지역 정치인이 아니지요. 그래서 서운해하고 섭섭해합니다.”
박근혜가 밀양공항을 지지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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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희갑 전 대구시장. |
기자는 달성군 화원읍 본리에 위치한 ‘남평(南平) 문씨(文氏) 세거지(世居地)’를 찾았다. 목화(木花)씨를 들여온 문익점 선생의 18대손 문경호씨가 터를 닦아 남평 문씨 일족이 모여 사는 곳이다. 문희갑 전 대구시장이 이곳에 똬리를 틀고 산 지가 6년 가까이 된다. 그는 대구시장 시절, 카리스마 있는 시장으로 유명했다. 별명이 ‘문 핏대’, 하도 핏대를 올려서 붙여졌다.
성공한 TK가 너도나도 서울로 향하지만, 그는 공직에서 물러나고 고향에 뿌리를 내렸다.
“대구시장 그만두고 서울을 완전히 잊었지요. 서울 방배동에 집도 있고, 고시(考試) 출신 공무원 모임과 국회의원 모임 등 10여 개의 친목모임이 있지만 모두 끊어 버렸습니다. 중요한 길흉(吉凶)사만 챙겨요. 그 외에는 서울에 가지 않습니다. 고향에서 원로(元老)문화, 낙향(落鄕)문화를 만들고 싶어서입니다. 저를 만나고 싶어하는 분들이 찾아오면 기꺼이 만나고 문중(門中) 일도 도맡아 합니다. 그런데 시골에 살아 보니 그것도 쉽지 않아요. 기회만 있으면 그린벨트를 풀어 아파트를 지으려고 합니다. 겪어 보니 희한합디다.”
박근혜에 대한 양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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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전 대표가 지난 1월 3일 오후 달성군청 대회의실에서 열린 신년교례회에 참석, 김문오 달성군수(오른쪽 세번째),배사돌 군의회 의장(맨왼쪽) 등과 건배를 하고 있다. |
칩거 중이던 문 전 시장은 최근 동남권 신공항 문제가 불거지자, 모처럼 밖으로 얼굴을 내비쳤다. ‘영남권 신공항 밀양유치 범 시ㆍ도민 결사추진위원회’ 대구 명예위원장을 맡은 것이다. 그의 말이다.
“대한민국이 ‘서울공화국’으로 바뀐 지 오래입니다. 돈과 사람이 ‘중앙’에 집중돼 이 나라가 옳은 나라가 되기 어려울 정도가 됐어요. 말이야 ‘지역균형이다’ ‘지방이 발전해야 한다’면서, 지방에 꼭 필요하고 국가 미래를 좌우할 사업을 이렇게 외면할 수 있나요? 대구와 부산 사람들이 인천국제공항에서 외국손님을 맞거나 해외출장을 가려면 서울에 올라가 하룻밤 자든지, 새벽 심야버스를 타야 합니다. 얼마나 불편한지 서울사람은 꿈도 못 꿉니다.
제가 인천공항 건설계획을 입안할 때, 회의론도 많았지만 ‘동양의 관문’이 필요하다고 설득했지요. 당시 홍콩이 신공항 사업을 시작했고, 일본도 오사카 간사이(關西)공항을 건설할 때였어요. 저는 박태준(朴泰俊) 포스코 명예회장 등과 머리를 맞대어 고민했지요. 비록 추진과정이 지난(至難)했고 여러 말들이 많았지만 지금 세계 제일의 공항이 됐잖아요. 자부심을 느낍니다.”
―대구ㆍ경북에서 박근혜 전 대표의 역할을 어떻게 보나요.
“객관적으로 지역 민심을 들어 보면 양면성(兩面性)이 있습니다. 박근혜 전 대표가 국가의 중요한 일을 신중하게 얘기한다는 시각과 대선 후보로서 자기 인기를 생각해 꼭 해야 할 일을 기피한다는 시각으로 나뉩니다. 박 전 대표는 대구 달성군의 국회의원이 아닙니까?
현실적으로 대구ㆍ경북의 지지를 받아 상당한 수준 올라갔다면 지역의 명운(命運)이 달린 밀양공항에 정치생명을 걸어야 했습니다. 차기 대통령이 이끌어갈 다음 정권은 우리가 전혀 경험하지 못한 어려운 시절이 닥칠지 모릅니다. 남북관계도 그렇고 지역갈등, 소득격차 등 복잡한 현안이 즐비합니다.
지금 TK는 극도의 흥분상태
지도자가 되려면 결단이 필요합니다.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이 반공(反共)포로를 석방한 것이나 박정희 대통령이 주한미군 철수를 막으면서 경제발전을 추진한 것은 모두 지도자로서의 결단이 있어 가능했지요. 박 전 대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예민하고 중요한 문제를 피해 가면, 대통령에 당선되는 데는 플러스가 될지 몰라도, 대통령이 됐을 때 걱정스러운 면이 한두 가지 아닙니다.”
―지난해 6ㆍ2 지방선거 때 달성군에서 일어난 변화를 어떻게 봅니까. 달성군이 이렇게 민도(民度)가 높았나요.
“박근혜 전 대표에 대해 달성군이나 대구ㆍ경북 민심이 이반(離反)됐다고 듣고 있고, 저도 달성군에서 그걸 느끼고 있어요. 이곳에 와서 보니 박경호 전 군수가 달성군을 좌지우지하더군요. 박 전 대표가 그걸 몰랐느냐? 본인은 몰랐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군민들이 승복을 안 하는 거예요. 사실 지난 지방선거에는 박 전 대표가 올인을 했습니다. 정말로 자기 몸 아끼지 않고 뛰었습니다. 제가 이곳에 살고 있으니 잘 압니다. 그런데 민심이 무섭더군요. 과거에는 그분에 대한 지지가 굉장했어요. 그와 손을 잡으려고 줄을 서고, 가는 곳마다 구름처럼 몰려들었잖아요.
그런데 이번에는 손을 내밀어도 전부 외면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쇼크를 많이 받았다고 해요. 유세를 끝내고 투표까지 마친 박 전 대표가 투표소를 나서면서 인사를 건네도 그 많은 사람 중에 두 사람 정도만 인사를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투표하자마자 수행비서하고 그 자리에서 서울로 올라갔다고 해요. 그런 상황을 잘 모르는 서울쪽 사람이나 다른 곳에서, 그래도 박 전 대표를 열렬하게 지지하니까 충격에서 빨리 벗어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대선후보 가운데 지지율이 앞서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달성군과 부근 지역, 그리고 대구ㆍ경북은 그전보다 (여론이) 다르게 봅니다. 제가 느끼고 듣는 것이 그렇습니다.”
―내년 총선에서 TK에서도 한나라당 지지세가 많이 꺾일 것이란 얘기가 돌던데요. 벌써 무소속 바람 얘기하는 사람도 있고요.
“아마 상당하게 소용돌이칠 겁니다. 심하게 이야기하자면, 대구ㆍ경북에서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계층이 극도의 흥분상태에 있습니다. 이것을 풀어 주는 현명한 처방(處方)이나 공천(公薦)이 나오면 한 번 더 믿어보겠지만, 또 과거와 같은 식이라면 아마 큰 소용돌이가 칠 겁니다. 그렇다고 대구ㆍ경북 기질로 봐서 민주당이나 민주노동당을 지지할 순 없지요. 그래서 무소속이 쏟아져 나올 것으로 보는 이가 많아요.”
―대구ㆍ경북의 총선 표심과 대선 표심이 엇갈릴 것으로 보시나요.
“그것 때문에 TK가 갈등에 빠질 것입니다. 그리고 벌써 고민하고 있어요.”
김문오 달성군수, “한나라당 입당 절박함 없다”
김문오 달성군수는 아직도 무소속이다. 그는 6ㆍ2 지방선거 당시 “군수에 당선되면 주민 의사를 물어보고 한나라당에 입당하겠다”고 했었다.
그러나 아직 입당한다는 이야기가 들리지 않는다. 지역민 중에는 한나라당 입당을 권하는 사람도 있지만, 박경호 전 군수가 있는 한 입당은 어렵지 않겠느냐는 시각이 더 많다.
사실 김 군수와 박 전 군수는 화원초등학교 동창이자 죽마고우다. 서로를 누구보다 잘 아는 사이다.
지방선거 기간 중 김 군수는 박경호씨를 반대하는 인사들이 중심이 된 무소속 단일화 모임을 통해 ‘추대’ 형식으로 출마했다. 박근혜 전 대표에 대한 공격을 일절 하지 않았고 대신 ‘안티 박경호’ 전략으로 당선됐다고 한다. 그만큼 앙금이 있었기 때문이다.
달성군청을 찾아가 지난 1년간의 무소속 군수 경험담을 들었다.
―당적이 없어서 아쉬운 점은 없나요.
“군수는 정치인이 아니라 행정 CEO라고 생각합니다. 정치적 색깔을 띠거나 정치인처럼 행동하면 군정을 이끄는 데 오히려 부담이 됩니다. 무소속으로 당선될 때 주위 많은 분이 박근혜 전 대표와의 관계를 걱정하고 지금도 궁금해합니다. 또 제가 한나라당 입당할 것인지에 관심이 많아요. 나중에 지역민이 필요성을 제기한다면 그때 가서 진지하게 결정하겠습니다. 지금은 시기가 아닌 것 같아요.”
김 군수는 지난 1년간 박 전 대표와 행사장에서 여러 번 만났고, 지역현안을 협의하기 위해 2차례 독대(獨對)했다고 한다. 지난 1월 3일 달성군 신년인사회 때는 “나라의 큰 소임을 할 수 있도록 부탁한다”며 당초 연설 문안에는 없는 덕담을 건네 주위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군정을 이끌려면 박 전 대표의 힘과 도움이 필요합니다. 신년인사회 때 덕담한 것을 두고 지역 언론에서 ‘김 군수가 박 전 대표를 띄운 이유는?’이라는 추측성 기사를 쓰면서, 제가 한나라당에 입당하기 위한 행동이었다고 했어요. 또 일부에서는 ‘왜 갑자기 그러느냐’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도울 것은 도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후회는 안 합니다.”
―내년 대선이 되면 박 전 대표의 역할이 커질 텐데, 심정적으로는 도울 생각이죠?
“돕는다는 게 한나라당 당원처럼 움직일 수야 없지요. 지역 국회의원이고 그분이 큰일을 하시면 지역에 도움이 안되겠습니까?”
―한나라당 입당을 공식적으로 권하는 사람이 주위에 많다면서요.
“강력하게 권하는 이는 없지만 은근하게 권하는 사람은 많아요.”
“박경호씨, 요즘 박 대표 주변에서 안보여”
―입당을 원해도, 못하는 형편이 아닌가요.
“입당할 시점도 아니고 절박함도 없어요. 입당한다면 저더러 배신했다고 욕하는 사람도 안 있겠습니까?”
―당선되면 한나라당에 가겠다고 말해서 더 지지를 받은 게 아닌가요.
“사실 달성군은 한나라당 정서가 강하고, 한나라당을 지지하던 분 중에서 저를 많이 민 것도 사실이에요. 선거 당시 한나라당 입당을 표명하라고 주위에서 많이 권하긴 했어요. 그래서 좀 절충을 했어요. 박근혜 전 대표를 공격하지 않고, ‘주변에 호가호위(狐假虎威)하고, 잘못된 군민의사를 왜곡시키는 세력을 응징해야 한다’고 말했지요.”
―지난 1년간 박근혜 전 대표를 몇 번 만났나요.
“행사장에서 여러 번 뵈었지만 독대는 두 번인데, 서울에서 하고 대구에서도 만났지요. 사람들이 박 전 대표와 만나는 것에 얼마나 관심이 많은지…. 그래도 전직 군수(이종진)는 한 번도 독대한 적이 없다고 해요. 여러 사람이 있는 자리에 동석(同席)은 했지만 따로 만나지는 못했다는 거예요. 제가 박 전 대표와 독대한다고 하니 깜짝 놀라더군요.”
―독대할 때 입당 얘기는 했나요.
“에이, 정치 얘기는 안 했습니다.”
―박 전 대표가 요즘 박경호씨를 멀리하고 있다던데 사실인가요.
“그렇다는 얘기도 있고, 안 그렇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그러나 박 전 대표가 가는 자리에 (박경호가)안 나타나는 것은 사실인 것 같아요. 저도 들은 얘기지만 대구 국회의원들이 박경호씨에게 ‘당신이 여기 왜 나타나!’ 하고 나무랐다고 하는데 내부 속사정이야 모르지요. 정말 견원(犬猿)시하는지는 깊이 모르겠고, 과거에는 박 전 대표가 오시면 그림자같이 따라다니는데 요즘은 안 보이는 것 같기는 하더군요. 그런데 영 안 나타나는 것은 아니고, 가끔 먼발치에서 모습을 드러낸다고 합니다.”
―박경호씨가 군수시절, 그에게 줄을 선 공무원도 적지 않았다고 하던데, 인사문제는 어떻게 하고 있나요.
“과거 누가 그쪽 줄을 섰네 어쩌네, 여러 말이 있어요. 저는 그런 것 안 따지고 능력을 봅니다. 어떤 분은 저를 찾아와 자격지심 때문인지 ‘선거 때 정말 미안하다’고 말하는 분도 있어요. 저는 오히려 ‘걱정하지 마라’며 이런 말을 했어요. ‘선거라는 게 인연 따라 하는 것이니 개의치 않는다’고요.”
그러나 과거 박 전 군수를 ‘왕군수’라 부르고 군수직에서 물러나서도 군정을 좌지우지했으며 그를 수족처럼 따르는 공무원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인사를 어떤 식으로 했나요.
“과거 인사에 피해를 봤다고 할까요? 억울한 인사였다고 호소한 사람이 있으면 발탁했지요. 그러나 지금까지 보복인사는 안 했고, 또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높은’ 국회의원 대신 심부름꾼 원해
‘박경호-박근혜-지방선거 패배’라는 ‘사슬’은 선거가 끝난 지 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달성군의 논쟁거리가 되고 있었다. 기자는 박경호 전 군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방선거 이후 민심이 많이 달라졌느냐”는 질문에 그는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또 “무소속 군수에 대한 군민의 평가가 어떤지”에 대해서도 “요새는 일절 활동을 안 하니 저도 잘 모르겠다”고 했다.
“현재 한나라당 내 당직을 맡고 있는지” 물었더니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박근혜 전 대표를 자주 만나느냐”는 질문 역시 “만나지 않는다. 못 뵌 지 오래됐다”고 했다.
무소속 군수를 배출한 ‘민도 높은’ 달성군이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어떤 선택을 할까. 만약 박근혜 전 대표가 총선에 나서지 않게 되면 누가 공천장을 받을까. 현재 달성군민들은 고민하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고민의 강도가 거세질지 모른다. 기자와 만난 군민들과 상인, 공무원들은 한결같이 “당보다 인물을 보고 찍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6ㆍ2 지방선거의 표심으로 전국적 관심이 쏠렸던 달성군의 선택이 대구ㆍ경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두고 볼 일이다.
달성군 구지면에서 만난 한 이장의 말이다.
“달성군에서도 남부권, 그러니까 현풍ㆍ유가ㆍ구지 쪽은 지역개발 문제 때문에 한나라당에 대한 섭섭함이랄까 불만이 다른 지역보다 많은 게 사실입니다. 물론 누가 한나라당 공천을 받느냐가 중요한데, 깜냥도 안 되는 사람이 나서면 무소속이 이기는 상황이 도래하리라 봅니다. 우리는 ‘높은’ 국회의원보다 심부름 잘하는 일꾼을 원합니다. 살갑게 자주 얼굴 비치고 건의사항이 있으면 자기 일처럼 챙겨 주는 그런 분이 와야 해요.”
구지면에서 만난 한 50대 주민은 이렇게 말했다.
“총선은 그렇다 쳐도 대선은 좀 다르지 않겠습니까. 민주당 아니면 한나라당인데 민주당 후보를 찍겠습니까.”
대구ㆍ경북 인터넷 신문 《평화뉴스》의 유지웅(兪志雄) 편집장은 “그래도 박근혜 전 대표에 대한 영향력은 여전하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보수성향’의 지역정서는 ‘이명박ㆍ한나라당'보다 ‘박근혜ㆍ친박'에 더 무게를 싣는 분위기입니다. 내년 총선에서 박 전 대표가 전면에 나와 선거를 지휘한다면 다시 표심을 결집할 수 있다고 봅니다. 다만, 박 전 대표는 아직 대구ㆍ경북에 ‘뭔가’를 보여준 적이 없어요. 설령 박근혜 전 대표가 대통령이 된들, 지지해 준 고향을 잊지 않고 배려하고 챙겨줄까요? 전 아니라고 봅니다.”
내년 총선 때 무소속 돌풍의 기운 감돌아
대구문화포럼 박인환(朴仁煥) 공동대표는 “동남권 신공항 불발로 한나라당에 대한 비토와 분노가 만연해져 ‘당선된 뒤에 한나라당에 들어가겠다’고 말하면서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정치신인이 대거 등장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분위기를 요약했다.
“우선 무소속 후보의 난립 가능성이 점쳐져요. 그렇게 되면 표가 분산될 것이고, 내년은 대선까지 연결되는 해여서 ‘정권 재창출론’으로 이어지면 유권자들이 고민에 빠질 수 있어요. ‘그래도 한 번 더 밀어 보자’는 식으로 말이죠. 그러나 무소속 바람을 감안하면, 무소속 당선자 비율이 30%대에 이를 것으로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