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학규의 경우 이인제와 달리 현직 대통령의 ‘보이지 않는 손’ 작용 없을 것
⊙ 민주당-국참당 통합 등 ‘連帶의 정치’가 손학규 진로에 變數 될 것
⊙ 국민은 복지 중시하면서 ‘中道 강화’ 희망, 민주당의 左向左는 위험
金亨俊
⊙ 1957년 생. 한국외국어대 중국어과 졸업, 美아이오와대 정치학 박사.
⊙ 한국사회과학데이터센터 부소장, 국민대 정치대학원 교수 역임. 現명지대 방목기초교육대 교수,
한국선거학회장.
⊙ 민주당-국참당 통합 등 ‘連帶의 정치’가 손학규 진로에 變數 될 것
⊙ 국민은 복지 중시하면서 ‘中道 강화’ 희망, 민주당의 左向左는 위험
金亨俊
⊙ 1957년 생. 한국외국어대 중국어과 졸업, 美아이오와대 정치학 박사.
⊙ 한국사회과학데이터센터 부소장, 국민대 정치대학원 교수 역임. 現명지대 방목기초교육대 교수,
한국선거학회장.
- 지난 10월 3일 전당대회에서 새 대표로 선출된 손학규 후보가 꽃다발을 높이 들어 당원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손학규(孫鶴圭) 후보가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새 대표로 선출됐다. 손 대표의 진정성과 집권의지, 그리고 당원들의 전략적(戰略的) 선택이 결합되어 나타난 결과로 보인다.
손 대표는 2008년 총선(總選)에서 참패한 후 춘천에 칩거하면서 지방선거, 재·보선 등 당이 요구할 때마다 주저하지 않고 열정을 다해 구원투수 역할을 했다. 손 대표의 당선은 당원들에게 이런 진정성이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지난 대선(大選) 때 잃어버렸던 600만 표를 되찾아 정권교체를 이루겠다”는 집권의지를 전면에 내세운 것도 승리의 요인이 되었다. 특히, 지난 2002년 대선에서 호남 기반의 민주당이 영남 출신 노무현(盧武鉉) 후보를 전략적으로 선택에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던 학습효과가 작동된 것이 선거승리의 결정적 요인이었다. 여하튼 민주당은 ‘정권교체 코드’를 선택했고, 호남 정당인 민주당 내에서 ‘전국정당’으로의 ‘변화’를 요구하는 대의원들의 힘을 얻어 손 대표가 당선됐다.
이번 전당대회 결과로 손 대표는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대권고지에 먼저 한발 다가서게 되었다. 손학규 후보가 민주당 대표로 선출된 뒤 동서리서치가 지난 10월 7일에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손 대표의 지지도가 11.8%로 박근혜(朴槿惠) 전 대표(31.5%)에 이어 2위로 급부상했다. 손 대표가 2위를 차지한 것은 지난 대선 이후 처음이다. 손 대표가 ‘민주당 대표로서 역할을 잘할 것’이라는 긍정적인 의견도 71.6%로 조사됐다.
무엇보다 손 대표는 범(汎)야권 후보들만을 대상으로 한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에서 33.3%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이어 유시민(柳時敏·12.8%), 이회창(李會昌·11.2%), 한명숙(韓明淑·10%), 정동영(鄭東泳·9.7%), 정세균(丁世均·2.9%) 순이었다.
그렇다면 손 대표는 2012년 대선에서 민주당의 대선후보가 될 수 있을까? 손 대표가 3당 합당(合黨)으로 민주자유당을 만들어 대권(大權)을 거머쥔 김영삼(金泳三)이 될 것인지 아니면 민주당에 들어가 이용만 당하고 팽(烹)당한 이인제(李仁濟)가 될 것인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손학규, ‘현직 대통령’의 입김 없어
손 대표는 YS와 이인제 전 경기지사와는 여러 면에서 차이가 있다.
첫째, 손 대표는 이인제처럼 민주당 내 조직력이나 당내 지지기반이 열세(劣勢)임에도 불구하고 자력(自力)으로 당권(黨權)을 장악했다.
이인제는 당내 기반의 취약성을 극복하기 위해 DJ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권노갑(權魯甲) 전 최고위원과의 연대를 통해 세를 확장하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손 대표도 그동안 당내 일부 수도권 출신과 486 의원들과의 연대를 통해 지지 확산을 추구했다. 하지만 대선후보를 지낸 정동영 의원과 2년간 당을 이끌었던 정세균 의원과는 조직 면에서 큰 차이가 있었다.
그런데 손 대표는 이인제와는 달리 전당대회를 통해 당원들의 지지를 얻어 당권을 차지했다는 점이다. 더구나 정통 민주당 세력을 자임하며 당내 주인 노릇을 해 왔던 정동영, 정세균 후보를 꺾고 승리했다는 것은 정치적으로 시사(示唆)하는 바가 크다. 무엇보다 정권창출을 위해 민주당의 ‘변화가 절실하다’는 당원들의 의지가 반영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런 의미에서 손 대표는 민주당을 재생시키는 데까지만 역할을 하고 정작 대선에서는 영남 후보에게 패해 용도 폐기되었던 이인제와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둘째, 손 대표는 YS, 이인제가 여당에 들어간 것과는 달리 야당에 들어가서 대권을 노리고 있다. 여당에 들어간 YS, 이인제는 좋든 싫든 대통령과 권력관계 속에서 대선후보를 쟁취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한국 대통령은 정권 말기에 통상 레임덕으로 인해 권력누수를 필연적으로 겪게 된다. 하지만 현직 대통령은 아무리 집권 말기라도 누구를 대통령으로 만들 수는 없지만 누구를 대통령이 되지 못하게 할 수 있는 힘은 남아 있다. YS는 노태우(盧泰愚) 전 대통령의 지지를 얻어 집권 민자당의 대선후보가 된 반면, 이인제는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막판에 노무현 후보를 전략적으로 선택함으로써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흥행을 위한 불쏘시개 역할만 하고 패배했다.
손 대표에게 결정적인 순간에 경선 판을 좌우할 현직 대통령의 ‘보이지 않는 손’과 같은 걸림돌이 없다는 것은 그만큼 운신의 폭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뉴페이스에 의한 돌풍 가능성 있어
셋째, 손 대표는 YS, 이인제와는 달리 대선패배의 기록이 없다. 2002년 민주당 경선(競選)에서 노무현 후보가 이인제 후보를 이길 수 있었던 것은 DJ와 호남 유권자들이 전략적 선택을 했기 때문에 가능했지만, 그 기저에는 노 후보가 비록 부산시장, 종로 재·보선에서 패배한 경력이 있었지만, 대선에서 패배한 전력이 없다는 것이 작동한 것이다.
당내 잠재적 경쟁자인 정동영 최고위원이 지난 대선에서 531만 표 차이의 굴욕적인 패배를 했고, 정세균 최고위원은 대권후보로서의 존재감이 약하기 때문에 손 대표를 위협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넷째, 손 대표는 ‘YS=영남’과 같이 자신의 강력한 지역적 지지기반을 갖고 있지 못하다. 지난 2008년 총선에서 대통합민주당의 대표로 한국 정치1번지라 할 수 있는 종로에서 출마했지만 한나라당 박진(朴振) 후보에게 패배할 정도로 수도권에서 지지도가 그리 강하지 않다. YS가 자신의 정치적 고향인 영남에서 향유했던 것과 비교해 보면 상대가 되지 않는다. 한국정치에서 지역기반과 같은 버팀목이 없다는 것은 정치적 위기상황이나 결정적인 순간에 일격을 당할 수 있는 내재적 한계가 있다는 것을 함축한다. 이 점에서 손 대표는 YS와 다를 수 있다.
현재 민주당이 안고 있는 상황적·구조적인 특성으로 인해 손 대표는 대선후보직만을 놓고 보면 이인제보다는 김영삼의 길을 걸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정치는 역동성(力動性)과 불예측성이 지배하는 영역이다. 더구나, 유권자는 항상 변화에 목말라한다. 따라서 향후 뉴페이스에 의한 돌풍이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손 대표의 민주당 대선후보 획득에 가장 위협적인 요인은 연대(連帶)정치의 폭발성이다. <표1>은 6·2 지방선거 직후 한국정책과학연구원(KPSI)이 실시한 국민의식조사 결과를 토대로 대선후보 지지도를 분석한 것이다. 각 후보의 미래 잠재력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지지도뿐만 아니라 전국 규모의 선거가 끝난 후 드러난 민심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선거과정과 선거결과를 접한 민심의 잠재의식 속에 누가 경쟁력이 있는지를 파악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유시민보다는 한명숙이 위협적
분석 결과, 전당대회 전부터 호남 지역에서 손 후보의 대선 경쟁력(32.2%)이 정동영(3.4%), 정세균(0.9%) 후보를 압도했다. 이 지역에서 이들은 더 이상 손 대표의 대선후보 경쟁자로 부상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오히려 국민참여당의 유시민 전 장관과 한명숙 전 총리의 경쟁력이다. 만약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전에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이 합당할 경우, 대선후보 경선게임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될 수 있다.
만약 ‘리틀 노무현’으로 불리는 김두관(金斗官) 경남지사를 포함한 친노세력, 유시민의 국민참여당, 한명숙 전(前) 총리를 구심점으로 하는 정통 DJ 세력 등이 ‘반(反)손학규 연대’를 형성하면 상당한 파괴력을 갖게 될 것이다.
반손학규 연대의 기수(旗手)로 누가 부상할지 현재로서는 예측하기 어렵지만 유 전 장관보다는 한 전 총리가 손 대표에게 훨씬 위협적인 존재가 될 것이다. 한 전 총리는 DJ의 호남세력과 친노세력를 모두 우군화(友軍化)할 수 있고, 더불어 정동영 등 비(非)주류 세력을 껴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반손학규 그랜드 연합’의 구심점(求心點)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폭발성이 클 수 있다.
서울신문과 한국리서치가 공동으로 지난 8월 20일과 21일에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내일이 대통령 선거일이라면 다음 중 누구에게 투표하시겠습니까?”라는 질문에 6·2 지방선거 시 야당 지지층에서 반기문(潘基文) 유엔사무총장이 10.4%로 가장 높게 나왔다. 뒤를 이어 유시민(6.8%)과 한명숙(5.6%)이었다. 이번 민주당 전당대회에 출마했던 손학규, 정동영, 정세균 등 빅3는 모두 이들보다 지지도가 낮았다.
2012년 대선에서 ‘야당후보를 선호한다’는 유권자층만을 대상으로 대선후보 지지도를 분석한 결과, 유시민이 14.5%로 가장 높게 나왔다. 반기문(12.2%)과 한명숙(11.7%)이 뒤를 이었다.
민주당과 국참당, 2012년 대선 이전 합당 가능성
물론 전당대회가 끝난 현 시점에서 지지도는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은 바로 유시민과 한명숙의 연대가 가져올 수 있는 파괴력이다.
손 대표는 경기도지사 시절 노무현 대통령을 경포대(경제를 포기한 대통령)라고 강도 높게 비난한 적이 있고, 노 전대통령은 손학규 대표를 “보따리장수 같다”고 비판한 적이 있다. 손 대표는 대표 선출 이후 봉하 마을의 노 전 대통령 묘소를 찾았다. 거기서 “제가 정치적 입장을 달리했을 때 국가원수였던 노무현 대통령께 인간적으로 용서받을 수 없는 결례를 범한 사실을 다시 떠올리며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고뇌하고 고민하고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노무현 대통령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반성이 지금도 있다”며 거듭 사과했다.
이런 손 대표의 참회와 사과는 안정적인 당 운영과 대권가도를 위해 친노세력과의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이지만 손 대표와 핵심 친노세력 간에는 여전히 넘을 수 없는 ‘마음의 38선’이 존재하고 있다. 이런 구원(舊怨)의 정치가 2012년 대선후보 경선에서 손 대표의 운명을 결정지을 수도 있다.
이 대목에서 국민참여당과 유시민 전 장관의 정치적 선택을 주목해야 한다. 현재까지 이들은 지난 경기도지사 선거에서와 같이 민주당과의 합당보다는 독자적인 대선후보를 내놓은 다음 막판 후보단일화에 비중을 둘지 모른다.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국참당의 유시민 후보는 이런 전략으로 민주당의 김진표(金振杓) 후보를 꺾고 최종 야권 단일후보가 되었지만 한나라당 김문수 지사에게 패배했다. 민주당 지지자들이 유시민 후보를 거부하면서 민주당 조직이 체계적으로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민참여당이 이런 실패의 전철을 다시 밟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2012년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이 합당(合黨)할 개연성(蓋然性)이 크다.
이런 정치적 상황이 전개되면 손 대표는 내년 12월까지 민주당 대표를 맡으면서 쌓아 올릴 조직과 영향력은 위력을 발휘하기 어려울지 모른다. 2012년 총선공천 과정에서도 실질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기가 만만치 않을 것이다.
민주당의 ‘左向左’와 손학규의 고민
손 대표가 이런 ‘반손학규 연대정치’의 희생물이 되지 않기 위한 가장 확실한 길은 대선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한나라당의 유력한 대권후보인 박근혜 전 대표와의 지지도 격차를 빠르게 줄여 나가는 것이 관건이다.
이를 위해 손 대표는 자신의 최대 강점인 중도(中道)를 아우르는 전략을 담대하게 구현해야 한다. 문제는 민주당이 중도 선점(先占)을 향한 행보보다는 정반대로 좌(左)클릭에 치중하고 있다는 점이다. 민주당은 지난 전당대회에서 15년간 이어 온 ‘중도 개혁’을 당 강령에서 삭제하는 대신 ‘진보(進步)’ 노선을 적극 반영했다. ‘포괄적 성장’을 강조하는 ‘뉴 민주당 플랜’을 사실상 폐기하고 ‘좌향좌(左向左)’로 방향을 튼 것이다.
순수 집단지도체제하에서 쇄신연대 출신의 비주류 측은 ‘진보’와 ‘복지’를 매개로 손 대표를 ‘왼쪽’으로 견인하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정동영 최고위원은 “대표 개인의 생각이 당 정체성(正體性)이 아니다”, “새로운 사고(思考)와 행동이 필요하다”며 손 대표를 견제하고 있다. 특정 계파로 구분되지 않는 이인영(李仁榮) 최고위원도 당의 진보적 색채를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손 대표가 한나라당 출신의 정체성 논란을 조기 불식시키고, 2012년 대선 때 야권의 연대·통합을 위해서 진보적 색채를 보여줄 필요가 있어 ‘좌클릭’을 강화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는 ‘위태로운 줄타기’가 될 수도 있다. 손 대표가 지난 전당대회 과정에서 “진보와 개혁 진영에 더해 중도세력까지 끌어안을 수 있어야 집권이 가능하다”고 줄기차게 강조해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집권을 위해 진보·개혁·중도층을 아우르겠다는 손 대표의 ‘삼합론(三合論)’이 당 정체성 정립과정에서 혼선을 일으킬 가능성이 상존한다. 당장 한미(韓美)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둘러싼 논쟁이 손 대표에게 시험대가 될 것이다. 손 대표는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때 한미FTA 찬성 쪽에 섰고, 이번 전당대회 과정에서 한미FTA 재(再)협상에 유보적 자세를 취했다. 분명한 것은 손 대표가 과거 입장을 바꿔 FTA를 반대하면 신뢰가 무너지게 되고, 찬성하게 되면 정체성 문제에 직면할게 될 것이다.
최근 한국 대선에서 중도를 선점하지 못한 세력이 승리하기란 사실상 어렵다. 따라서 이런 냉혹한 현실 앞에서 손 대표가 민주당의 새로운 진보노선에 자신의 중도 포용 전략을 어떻게 조화롭게 이뤄 낼지 향후 대권가도의 최대 관전(觀戰) 포인트가 될 것이다.
차기정부 성향으로 ‘보수’보다 ‘진보’ 선호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 완패한 뒤 민주당 내에서는 ‘더 이상 민주당 간판으로는 희망이 없다’는 패배주의가 만연했다. 하지만 손 대표의 선출로 정권교체의 가능성과 수권(受權)정당의 희망을 다시 그릴 수 있게 됐다는 것이 중론(衆論)이다.
최근 동서리서치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들의 49.2%가 ‘선호하는 차기정부의 성향’으로 ‘진보개혁 성향의 정부’를 선택했다. ‘보수(保守)안정 성향의 정부’는 41.1%로 나타났다. 한국 대선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화이트칼라층에서 보수정권(35.1%)보다는 진보정권(60.4%)을 선호하는 비율이 훨씬 높았다.
여하튼 손 대표 체제 출범 이후 ‘집권 희망이 없는 불임(不姙)정당’이라는 비판을 받아 왔던 민주당 내에서 ‘대선에서 한번 해 볼 만하다’는 자신감이 생긴 것은 분명하다.
만약 천신만고 끝에 손 대표가 민주당의 대선후보가 된다고 가정했을 때 과연 손학규 민주당은 잃어버렸던 정권을 되찾아 올 수 있을까? 집권의지가 강하다고 승리가 담보되지 않는다.
민주당이 정권을 되찾아 오기 위해서는 실증적인 근거에 입각해 대선승리 전략을 짜야 한다. 무엇보다 중도 선점을 위해 당의 노선을 재정비해야 한다. 민주당은 지난 지방선거 승리 이후 진보 강화 노선을 채택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은 완승(完勝)을 한 것이 아니라 절반의 승리를 한 것이다. 그 근거로 한나라당의 전체 득표율이 광역단체장을 포함한 모든 선거에서 민주당의 득표율을 앞섰다는 것이 이를 입증한다(<그림 1> 참조).
민주당, 절대 지지층 적고 절대 반대층 높아
더구나 한나라당은 여전히 지역과 이념에서 확실한 기반을 갖고 있는 박근혜 전 대표와 같은 유력한 대권후보를 갖고 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지난 지방선거 직후 KPSI가 실시한 여론조사 자료를 토대로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지지층 유형을 분석한 결과, 민주당은 한나라당에 비해 절대 지지층의 규모가 작은 반면, 절대 반대층의 비율은 한나라당보다 훨씬 높았다.
민주당 지지층의 경우, ‘과거 선거에서 민주당을 찍었고, 지방선거에서도 민주당을 찍었다’는 민주당 ‘절대 고정층’은 29.5%로 나타난 반면, ‘과거에도 민주당을 찍지 않았고 이번 선거에서도 민주당을 찍지 않았다’는 ‘절대 반대층’은 53.5%로 나타났다. ‘과거에는 민주당을 찍었지만 지방선거에서는 민주당을 찍지 않았다’는 ‘이탈층’은 2.9%인 반면, ‘과거에는 민주당을 찍지 않았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민주당을 찍었다’는 ‘유입층’은 14.1%로 조사되었다.
한편, 한나라당의 지지층 구조는 ‘과거 선거에서 한나라당을 찍었고, 지방선거에서도 한나라당을 찍었다’는 한나라당 ‘절대 고정층’이 35.2%로 나타난 반면, ‘과거에도 한나라당을 찍지 않았고 지방선거에서도 한나라당을 찍지 않았다’는 ‘절대 반대층’은 36.6%였다. ‘과거에는 한나라당을 찍지 않았지만 지방선거에서는 한나라당을 찍었다’는 ‘유입층’은 10.8%인 반면, ‘과거에는 한나라당을 찍었지만 지방선거에서는 한나라당을 찍지 않았다’는 ‘이탈층’은 17.5%로 조사되었다.
민주당이 주목해야 할 사항은 한국 대선에서 결정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는 중도층에서 한나라당은 절대 고정층(35.6%)과 절대 반대층(36.0%)이 거의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민주당은 절대 반대층(53.1%)이 절대 고정층(29.3%)보다 1.8배 이상 높게 나왔다는 점이다.
이런 분석결과가 주는 함의는 비록 지난 지방선거에서는 민주당이 승리했지만 중도층에서 민주당의 지지기반은 아직 상당히 취약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국민은 중도 강화 희망
동아시아연구원과 한국리서치는 최근 여야 정당의 이념성향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와 기대를 조사했다. <그림2>에서 보듯이, 국민들은 한나라당과 민주당 모두 이념성향을 현재보다 왼쪽으로 약간씩 이동하기를 기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다른 시각에서 보면 국민들은 중도 강화를 요구하고 있다.
한나라당의 경우, 이념성향 평가에서 중도가 차지하는 비율은 20.4%이지만 중도성향 기대는 33.9%로 이보다 훨씬 높다. 보수에서 중도로 전환하라는 요구로 해석된다. 반면, 민주당의 경우도, 이념성향 평가에서 중도가 차지하는 비율은 26.4%이지만 중도성향 기대는 31.6%로 4.8%포인트 높다. 한편, 이념성향 평가에서 진보가 차지하는 비율은 35.2%이지만 이념성향 기대는 40.4%로 5.2%포인트 높다. 진보 기대가 중도 기대를 압도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이런 분석결과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민주당이 중도개혁을 포기하고 진보 노선을 강화하는 전략을 선택하는 것은 위험한 길로 가는 것이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 결과, 국민들의 주관적(主觀的) 이념성향에서 진보가 강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 것은 한국 이념지형은 2007년 대선 이후 ‘진보 25%-중도 40%-보수 35%’에서 최근 다시 ‘진보 30%-중도 40%-보수 30%’로 복원되고 있다. 따라서 진보의 비중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절대기준에서 보면 중도의 비율이 진보보다 훨씬 높다. 따라서 지난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승리한 것은 진보가 강화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중도가 진보를 선택했기 때문이라는 추론(推論)이 더 타당성이 있다.
문제는 한국의 중도층은 상황에 따라 상당히 유동적(流動的)인 특성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대선에서는 중도가 보수를 압도적으로 선택했지만, 지난 지방선거에서는 반대로 진보를 선택했다. 따라서 진보 강화를 토대로 한 ‘민주당의 민주노동당화’가 정권창출을 담보한다고 볼 수 없다.
한나라당이 산토끼를 잡기 위해 좌클릭한다는 것은 외연(外延)을 확대한다는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집토끼를 잡기 위해 민주당이 좌클릭한다는 것은 대선전략적인 측면에서 볼 때 이례적(異例的)인 것이다. 외연을 확대하는 전략이 아니라 오히려 민심의 영토를 좁히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러한 민주당의 좌클릭 행보는 세계적인 추세와도 맞지 않는다. 작년과 올해 “EU 27개국 중에 좌파정당이 집권하고 있는 나라는 4개국밖에 안된다. 보수정당, 또는 중도나 보수정당의 연합정권이 EU 국가 다수에서 집권하고 있다. 진보와 보수의 수렴(收斂)이 전 세계의 보편적인 추세인데 민주당의 좌향좌 전략이 한국 대선에서 먹혀들지 의문이 든다.
민주당, 보수적 가치 수용해야
중도 선점 이외에 집권을 위해 손학규 민주당이 역점을 두어야 할 과제는 창조적 파괴를 통한 외연 확대이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지방선거 직후인 6월 4일 조사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향후 민주당의 방향에 대해 ‘지역정당에서 벗어나 당의 기반을 확대해야 한다’가 37.7%로 가장 많았다. 그 다음으로 ‘세대교체와 체질개선으로 당의 면모를 일신해야 한다’(29.7%)와 ‘민노당, 국민참여당과 통합해야 한다’(14.2%)가 뒤를 이었다.
최근 손 대표는 관심을 모았던 민주당 사무총장 자리에 호남 중진(重鎭)인 이낙연(李洛淵) 의원을 임명했다. 박지원(朴智元) 원내대표 등 당내 주요인사를 접촉한 뒤 호남 우대 기조를 확정했다고 한다. 7명의 최고위원 중에 5명(정동영, 정세균, 조배숙, 박주선, 천정배)이 호남 인사들로 채워졌는데, 또 다시 호남을 배려한다고 하면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겠는가? 오히려 ‘민주당=호남정당’임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 되어 버렸다.
진보를 추구하는 정당의 생명은 항상 새로워져야 하고 진화해야 한다. 빅3라고 불리는 계파정치와 호남 지역정치의 한계를 넘지 못하면 민주당의 미래는 없다. 야당인 민주당은 전국정당화의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진화해야만 그나마 정권창출이 가능하다. 뼈를 깎는 환골탈태(換骨奪胎)의 자세 없이 너무나 쉬운 길만 걸어가면 어떻게 국민을 감동시키고 표를 달라고 할 수 있겠는가?
KPSI 조사결과, 앞으로 우리 사회가 가장 역점을 두고 추진해야 할 가치에 대해 ‘성장’이 45.4%로 가장 높았고, ‘경쟁’ 13.3%, ‘국토 균형발전’ 11.1%, ‘자율’ 8.0%, ‘분배’ 7.9% 순으로 나타났다. 즉, 보수적 가치 69.9%(성장, 자율, 경쟁, 법치)가 진보적 가치 30.1%(분배, 분권, 국토 균형발전, 언론자유)보다도 2배 이상 많았다.
이런 조사결과가 민주당에 주는 함의는 진보정당을 자처하는 민주당이 진보의 가치에만 매몰되지 말고, 보수의 가치를 능동적으로 수용해 진보의 시각에서 해결할 수 있는 전략을 세워야 집권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진보와 보수가 번갈아 가며 집권하면서 양자 사이에 일정한 수렴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즉, 보수는 진보의 정책을 적극 수용하고, 진보도 보수적 의제를 포용하는 유연성을 보이고 있다. 민주당이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과거와 같이 후보단일화나 연대와 같은 낡은 방식보다는 시대정신을 관통하는 비전과 가치를 만들고 이를 통해 국민과 소통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김효석(金孝錫) 전 민주당 정책위 의장의 “민주당 전당대회 과정에서 당을 앞으로 어떻게 끌고 가서 앞으로 2012년 우리가 어떻게 집권전략을 세워갈 것인가, 이런 로드맵, 구체적인 비전과 전략 이야기가 실종되어 버렸다”는 지적은 민주당이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대세론은 毒이다
야권의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인 손학규 민주당 대표의 재등장으로 야권 내 잠룡(潛龍)들의 대권경쟁이 조기에 불붙을 조짐이다. 그렇다면 여당인 한나라당 대권구도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손 대표가 등장하기 전만 해도 한나라당 대권구도는 박근혜 전 대표에 김문수 지사가 맹렬하게 추격하는 양상을 보였다. 그런데 손 대표의 등장으로 김 지사의 입지(立地)가 약화(弱化)되면서 박 전대표의 독주체제가 지속될 전망이다.
민주당 전당대회가 열리기 직전 케이엠조사연구소가 주관한 대권후보 지지율 조사에서 김 지사는 10.1%를 기록, 처음 10%를 넘겼다. 당시 손학규 후보는 6.2%에 불과했다. 그러나 민주당 전당대회 이후인 지난 10월 5일 동서리서치 지지율 조사에서는 손 대표의 지지도가 11.2%로 2007년 이후 처음 10%대를 기록했다. 반면에 김 지사는 6.2%로 떨어졌다. 두 사람 간 지지율이 거의 완벽하게 뒤바뀐 것이다.
이런 지지율 역전현상은 손 대표와 김 지사의 지지계층이 중첩되어 한쪽의 지지율이 잘되면 다른 쪽은 나빠지는 이른바 ‘제로섬 게임’의 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손 대표에 대한 쏠림 현상이 일어나면서 김 지사의 지지율은 빠질 수밖에 없는 구도라는 뜻이다. 당분간 대권지형에 대한 국민인식이 ‘여당=박근혜, 야당=손학규’로 고착화될 경우, 김 지사의 운신 폭이 그 만큼 좁아질 수밖에 없다.
박근혜 독주체제의 지속은 한나라당의 입장에서 볼 때 결코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과거 대선에서 이회창 대세론이 장기간 지속되면서 정권교체가 확실한 것처럼 보였지만 결국 바람이 불면서 패배했던 사례에서 보듯이 대세론은 독(毒)이 될 수 있다. 대세론에 따른 흥행 없는 ‘밋밋한 당내경선’은 본선 경쟁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박 전 대표의 독주체제는 한나라에 꼭 유리한 상황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
한국 대선에서는 “시대정신을 제대로 읽고, 중도를 선점하며, 파격적인 선거연합을 만드는 세력이 승리한다”는 법칙이 존재한다. 대선이 열린 시점에 국민들이 가장 절실하게 요구하는 것을 정확히 간파하고 적절한 대안(代案)을 제시하면서 자신의 지지계층을 넘어 외연을 확대하는 후보가 승리한다는 뜻이다.
2012 대선의 화두는 복지
그렇다면 2012년 대선의 시대정신은 과연 무엇이 될까? 최근 〈내일신문〉과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는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토대로 2012년 대선 화두로 ‘복지’가 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일반국민을 대상으로 정부가 추구해야 할 국정운영 방향을 묻자 복지국가란 응답이 38.1%로 가장 많았다. 공정사회(27.9%)가 2위를 차지했고 소통(19.6%)과 사회통합(13.3%) 순으로 집계됐다. 정치전문가들은 2012년 대선 화두에 대해 복지(34.4%)를 1순위로 꼽았다. 통일(15.6%), 사회통합(14.8%), 공정(13.1%), 양극화(兩極化) 해소(8.2%)가 뒤를 이었다. 이런 조사결과에 대해 “3년 전 대선을 지배했던 ‘성장 만능주의’가 가져온 양극화 심화가 역설적으로 복지에 대한 요구를 확대시킨 것이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그런데, 세계경제의 역동적 재편이라는 전(全) 지구적 도전에서 한국만 복지를 기치로 좌향좌하는 것이 대세가 될 수 있을까?
선진 복지국가의 상징인 스웨덴의 총선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지난 9월에 끝난 스웨덴 총선에서 보수-중도연합 정당이 사민주의 강령의 상징처럼 된 부유세를 폐기하고 세금과 사회복지 예산을 줄이면서 기업을 장려하는 실용적 전략을 펼쳐 재집권에 성공했다. 물론 한국과 스웨덴의 정치지형이 다르다. 하지만 급변하는 글로벌 경제환경 속에서 ‘진보와 보수의 수렴’이라는 세계적 흐름을 무시할 수는 없다.
여하튼 손학규 대표 체제의 출범을 기점으로 대선의 긴 여정이 시작되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 시대정신을 어떻게 읽고, 상대방이 추구하는 가치와 의제를 어떤 개방적인 태도로 수용할지 숙제를 안게 되었다. 이런 숙제에 국민이 감동할 수 있는 해법을 제시하는 세력이 승리의 월계관을 차지할 것이다.⊙
손 대표는 2008년 총선(總選)에서 참패한 후 춘천에 칩거하면서 지방선거, 재·보선 등 당이 요구할 때마다 주저하지 않고 열정을 다해 구원투수 역할을 했다. 손 대표의 당선은 당원들에게 이런 진정성이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지난 대선(大選) 때 잃어버렸던 600만 표를 되찾아 정권교체를 이루겠다”는 집권의지를 전면에 내세운 것도 승리의 요인이 되었다. 특히, 지난 2002년 대선에서 호남 기반의 민주당이 영남 출신 노무현(盧武鉉) 후보를 전략적으로 선택에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던 학습효과가 작동된 것이 선거승리의 결정적 요인이었다. 여하튼 민주당은 ‘정권교체 코드’를 선택했고, 호남 정당인 민주당 내에서 ‘전국정당’으로의 ‘변화’를 요구하는 대의원들의 힘을 얻어 손 대표가 당선됐다.
이번 전당대회 결과로 손 대표는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대권고지에 먼저 한발 다가서게 되었다. 손학규 후보가 민주당 대표로 선출된 뒤 동서리서치가 지난 10월 7일에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손 대표의 지지도가 11.8%로 박근혜(朴槿惠) 전 대표(31.5%)에 이어 2위로 급부상했다. 손 대표가 2위를 차지한 것은 지난 대선 이후 처음이다. 손 대표가 ‘민주당 대표로서 역할을 잘할 것’이라는 긍정적인 의견도 71.6%로 조사됐다.
무엇보다 손 대표는 범(汎)야권 후보들만을 대상으로 한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에서 33.3%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이어 유시민(柳時敏·12.8%), 이회창(李會昌·11.2%), 한명숙(韓明淑·10%), 정동영(鄭東泳·9.7%), 정세균(丁世均·2.9%) 순이었다.
그렇다면 손 대표는 2012년 대선에서 민주당의 대선후보가 될 수 있을까? 손 대표가 3당 합당(合黨)으로 민주자유당을 만들어 대권(大權)을 거머쥔 김영삼(金泳三)이 될 것인지 아니면 민주당에 들어가 이용만 당하고 팽(烹)당한 이인제(李仁濟)가 될 것인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손학규, ‘현직 대통령’의 입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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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7년 10월, 이인제 경기지사가 김영삼 대통령과 만나 악수를 하고 있다. 손학규 대표는 김영삼의 길을 걸을 것인가, 이인제의 길을 걸을 것인가? |
첫째, 손 대표는 이인제처럼 민주당 내 조직력이나 당내 지지기반이 열세(劣勢)임에도 불구하고 자력(自力)으로 당권(黨權)을 장악했다.
이인제는 당내 기반의 취약성을 극복하기 위해 DJ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권노갑(權魯甲) 전 최고위원과의 연대를 통해 세를 확장하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손 대표도 그동안 당내 일부 수도권 출신과 486 의원들과의 연대를 통해 지지 확산을 추구했다. 하지만 대선후보를 지낸 정동영 의원과 2년간 당을 이끌었던 정세균 의원과는 조직 면에서 큰 차이가 있었다.
그런데 손 대표는 이인제와는 달리 전당대회를 통해 당원들의 지지를 얻어 당권을 차지했다는 점이다. 더구나 정통 민주당 세력을 자임하며 당내 주인 노릇을 해 왔던 정동영, 정세균 후보를 꺾고 승리했다는 것은 정치적으로 시사(示唆)하는 바가 크다. 무엇보다 정권창출을 위해 민주당의 ‘변화가 절실하다’는 당원들의 의지가 반영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런 의미에서 손 대표는 민주당을 재생시키는 데까지만 역할을 하고 정작 대선에서는 영남 후보에게 패해 용도 폐기되었던 이인제와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둘째, 손 대표는 YS, 이인제가 여당에 들어간 것과는 달리 야당에 들어가서 대권을 노리고 있다. 여당에 들어간 YS, 이인제는 좋든 싫든 대통령과 권력관계 속에서 대선후보를 쟁취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한국 대통령은 정권 말기에 통상 레임덕으로 인해 권력누수를 필연적으로 겪게 된다. 하지만 현직 대통령은 아무리 집권 말기라도 누구를 대통령으로 만들 수는 없지만 누구를 대통령이 되지 못하게 할 수 있는 힘은 남아 있다. YS는 노태우(盧泰愚) 전 대통령의 지지를 얻어 집권 민자당의 대선후보가 된 반면, 이인제는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막판에 노무현 후보를 전략적으로 선택함으로써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흥행을 위한 불쏘시개 역할만 하고 패배했다.
손 대표에게 결정적인 순간에 경선 판을 좌우할 현직 대통령의 ‘보이지 않는 손’과 같은 걸림돌이 없다는 것은 그만큼 운신의 폭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뉴페이스에 의한 돌풍 가능성 있어
셋째, 손 대표는 YS, 이인제와는 달리 대선패배의 기록이 없다. 2002년 민주당 경선(競選)에서 노무현 후보가 이인제 후보를 이길 수 있었던 것은 DJ와 호남 유권자들이 전략적 선택을 했기 때문에 가능했지만, 그 기저에는 노 후보가 비록 부산시장, 종로 재·보선에서 패배한 경력이 있었지만, 대선에서 패배한 전력이 없다는 것이 작동한 것이다.
당내 잠재적 경쟁자인 정동영 최고위원이 지난 대선에서 531만 표 차이의 굴욕적인 패배를 했고, 정세균 최고위원은 대권후보로서의 존재감이 약하기 때문에 손 대표를 위협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넷째, 손 대표는 ‘YS=영남’과 같이 자신의 강력한 지역적 지지기반을 갖고 있지 못하다. 지난 2008년 총선에서 대통합민주당의 대표로 한국 정치1번지라 할 수 있는 종로에서 출마했지만 한나라당 박진(朴振) 후보에게 패배할 정도로 수도권에서 지지도가 그리 강하지 않다. YS가 자신의 정치적 고향인 영남에서 향유했던 것과 비교해 보면 상대가 되지 않는다. 한국정치에서 지역기반과 같은 버팀목이 없다는 것은 정치적 위기상황이나 결정적인 순간에 일격을 당할 수 있는 내재적 한계가 있다는 것을 함축한다. 이 점에서 손 대표는 YS와 다를 수 있다.
현재 민주당이 안고 있는 상황적·구조적인 특성으로 인해 손 대표는 대선후보직만을 놓고 보면 이인제보다는 김영삼의 길을 걸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정치는 역동성(力動性)과 불예측성이 지배하는 영역이다. 더구나, 유권자는 항상 변화에 목말라한다. 따라서 향후 뉴페이스에 의한 돌풍이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손 대표의 민주당 대선후보 획득에 가장 위협적인 요인은 연대(連帶)정치의 폭발성이다. <표1>은 6·2 지방선거 직후 한국정책과학연구원(KPSI)이 실시한 국민의식조사 결과를 토대로 대선후보 지지도를 분석한 것이다. 각 후보의 미래 잠재력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지지도뿐만 아니라 전국 규모의 선거가 끝난 후 드러난 민심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선거과정과 선거결과를 접한 민심의 잠재의식 속에 누가 경쟁력이 있는지를 파악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유시민보다는 한명숙이 위협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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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명숙과 유시민의 연대, 민주당과 국참당의 통합 등 ‘연대의 정치’는 손학규 대표의 진로를 가로막을 수 있다. |
주목해야 할 것은 오히려 국민참여당의 유시민 전 장관과 한명숙 전 총리의 경쟁력이다. 만약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전에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이 합당할 경우, 대선후보 경선게임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될 수 있다.
만약 ‘리틀 노무현’으로 불리는 김두관(金斗官) 경남지사를 포함한 친노세력, 유시민의 국민참여당, 한명숙 전(前) 총리를 구심점으로 하는 정통 DJ 세력 등이 ‘반(反)손학규 연대’를 형성하면 상당한 파괴력을 갖게 될 것이다.
반손학규 연대의 기수(旗手)로 누가 부상할지 현재로서는 예측하기 어렵지만 유 전 장관보다는 한 전 총리가 손 대표에게 훨씬 위협적인 존재가 될 것이다. 한 전 총리는 DJ의 호남세력과 친노세력를 모두 우군화(友軍化)할 수 있고, 더불어 정동영 등 비(非)주류 세력을 껴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반손학규 그랜드 연합’의 구심점(求心點)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폭발성이 클 수 있다.
서울신문과 한국리서치가 공동으로 지난 8월 20일과 21일에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내일이 대통령 선거일이라면 다음 중 누구에게 투표하시겠습니까?”라는 질문에 6·2 지방선거 시 야당 지지층에서 반기문(潘基文) 유엔사무총장이 10.4%로 가장 높게 나왔다. 뒤를 이어 유시민(6.8%)과 한명숙(5.6%)이었다. 이번 민주당 전당대회에 출마했던 손학규, 정동영, 정세균 등 빅3는 모두 이들보다 지지도가 낮았다.
2012년 대선에서 ‘야당후보를 선호한다’는 유권자층만을 대상으로 대선후보 지지도를 분석한 결과, 유시민이 14.5%로 가장 높게 나왔다. 반기문(12.2%)과 한명숙(11.7%)이 뒤를 이었다.
민주당과 국참당, 2012년 대선 이전 합당 가능성
물론 전당대회가 끝난 현 시점에서 지지도는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은 바로 유시민과 한명숙의 연대가 가져올 수 있는 파괴력이다.
손 대표는 경기도지사 시절 노무현 대통령을 경포대(경제를 포기한 대통령)라고 강도 높게 비난한 적이 있고, 노 전대통령은 손학규 대표를 “보따리장수 같다”고 비판한 적이 있다. 손 대표는 대표 선출 이후 봉하 마을의 노 전 대통령 묘소를 찾았다. 거기서 “제가 정치적 입장을 달리했을 때 국가원수였던 노무현 대통령께 인간적으로 용서받을 수 없는 결례를 범한 사실을 다시 떠올리며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고뇌하고 고민하고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노무현 대통령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반성이 지금도 있다”며 거듭 사과했다.
이런 손 대표의 참회와 사과는 안정적인 당 운영과 대권가도를 위해 친노세력과의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이지만 손 대표와 핵심 친노세력 간에는 여전히 넘을 수 없는 ‘마음의 38선’이 존재하고 있다. 이런 구원(舊怨)의 정치가 2012년 대선후보 경선에서 손 대표의 운명을 결정지을 수도 있다.
이 대목에서 국민참여당과 유시민 전 장관의 정치적 선택을 주목해야 한다. 현재까지 이들은 지난 경기도지사 선거에서와 같이 민주당과의 합당보다는 독자적인 대선후보를 내놓은 다음 막판 후보단일화에 비중을 둘지 모른다.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국참당의 유시민 후보는 이런 전략으로 민주당의 김진표(金振杓) 후보를 꺾고 최종 야권 단일후보가 되었지만 한나라당 김문수 지사에게 패배했다. 민주당 지지자들이 유시민 후보를 거부하면서 민주당 조직이 체계적으로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민참여당이 이런 실패의 전철을 다시 밟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2012년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이 합당(合黨)할 개연성(蓋然性)이 크다.
이런 정치적 상황이 전개되면 손 대표는 내년 12월까지 민주당 대표를 맡으면서 쌓아 올릴 조직과 영향력은 위력을 발휘하기 어려울지 모른다. 2012년 총선공천 과정에서도 실질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기가 만만치 않을 것이다.
민주당의 ‘左向左’와 손학규의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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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학규 대표는 지난 10월 6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 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를 참배, 친노(親盧)세력에게 화해의 제스처를 취했다. |
이를 위해 손 대표는 자신의 최대 강점인 중도(中道)를 아우르는 전략을 담대하게 구현해야 한다. 문제는 민주당이 중도 선점(先占)을 향한 행보보다는 정반대로 좌(左)클릭에 치중하고 있다는 점이다. 민주당은 지난 전당대회에서 15년간 이어 온 ‘중도 개혁’을 당 강령에서 삭제하는 대신 ‘진보(進步)’ 노선을 적극 반영했다. ‘포괄적 성장’을 강조하는 ‘뉴 민주당 플랜’을 사실상 폐기하고 ‘좌향좌(左向左)’로 방향을 튼 것이다.
순수 집단지도체제하에서 쇄신연대 출신의 비주류 측은 ‘진보’와 ‘복지’를 매개로 손 대표를 ‘왼쪽’으로 견인하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정동영 최고위원은 “대표 개인의 생각이 당 정체성(正體性)이 아니다”, “새로운 사고(思考)와 행동이 필요하다”며 손 대표를 견제하고 있다. 특정 계파로 구분되지 않는 이인영(李仁榮) 최고위원도 당의 진보적 색채를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손 대표가 한나라당 출신의 정체성 논란을 조기 불식시키고, 2012년 대선 때 야권의 연대·통합을 위해서 진보적 색채를 보여줄 필요가 있어 ‘좌클릭’을 강화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는 ‘위태로운 줄타기’가 될 수도 있다. 손 대표가 지난 전당대회 과정에서 “진보와 개혁 진영에 더해 중도세력까지 끌어안을 수 있어야 집권이 가능하다”고 줄기차게 강조해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집권을 위해 진보·개혁·중도층을 아우르겠다는 손 대표의 ‘삼합론(三合論)’이 당 정체성 정립과정에서 혼선을 일으킬 가능성이 상존한다. 당장 한미(韓美)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둘러싼 논쟁이 손 대표에게 시험대가 될 것이다. 손 대표는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때 한미FTA 찬성 쪽에 섰고, 이번 전당대회 과정에서 한미FTA 재(再)협상에 유보적 자세를 취했다. 분명한 것은 손 대표가 과거 입장을 바꿔 FTA를 반대하면 신뢰가 무너지게 되고, 찬성하게 되면 정체성 문제에 직면할게 될 것이다.
최근 한국 대선에서 중도를 선점하지 못한 세력이 승리하기란 사실상 어렵다. 따라서 이런 냉혹한 현실 앞에서 손 대표가 민주당의 새로운 진보노선에 자신의 중도 포용 전략을 어떻게 조화롭게 이뤄 낼지 향후 대권가도의 최대 관전(觀戰) 포인트가 될 것이다.
차기정부 성향으로 ‘보수’보다 ‘진보’ 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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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0월 3일 전당대회에서 당권을 놓고 경쟁했던 정동영(맨왼쪽), 정세균(맨오른쪽) 최고위원과의 관계 설정도 손학규 대표의 숙제 중 하나다. |
최근 동서리서치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들의 49.2%가 ‘선호하는 차기정부의 성향’으로 ‘진보개혁 성향의 정부’를 선택했다. ‘보수(保守)안정 성향의 정부’는 41.1%로 나타났다. 한국 대선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화이트칼라층에서 보수정권(35.1%)보다는 진보정권(60.4%)을 선호하는 비율이 훨씬 높았다.
여하튼 손 대표 체제 출범 이후 ‘집권 희망이 없는 불임(不姙)정당’이라는 비판을 받아 왔던 민주당 내에서 ‘대선에서 한번 해 볼 만하다’는 자신감이 생긴 것은 분명하다.
만약 천신만고 끝에 손 대표가 민주당의 대선후보가 된다고 가정했을 때 과연 손학규 민주당은 잃어버렸던 정권을 되찾아 올 수 있을까? 집권의지가 강하다고 승리가 담보되지 않는다.
민주당이 정권을 되찾아 오기 위해서는 실증적인 근거에 입각해 대선승리 전략을 짜야 한다. 무엇보다 중도 선점을 위해 당의 노선을 재정비해야 한다. 민주당은 지난 지방선거 승리 이후 진보 강화 노선을 채택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은 완승(完勝)을 한 것이 아니라 절반의 승리를 한 것이다. 그 근거로 한나라당의 전체 득표율이 광역단체장을 포함한 모든 선거에서 민주당의 득표율을 앞섰다는 것이 이를 입증한다(<그림 1> 참조).
민주당, 절대 지지층 적고 절대 반대층 높아
더구나 한나라당은 여전히 지역과 이념에서 확실한 기반을 갖고 있는 박근혜 전 대표와 같은 유력한 대권후보를 갖고 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지난 지방선거 직후 KPSI가 실시한 여론조사 자료를 토대로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지지층 유형을 분석한 결과, 민주당은 한나라당에 비해 절대 지지층의 규모가 작은 반면, 절대 반대층의 비율은 한나라당보다 훨씬 높았다.
민주당 지지층의 경우, ‘과거 선거에서 민주당을 찍었고, 지방선거에서도 민주당을 찍었다’는 민주당 ‘절대 고정층’은 29.5%로 나타난 반면, ‘과거에도 민주당을 찍지 않았고 이번 선거에서도 민주당을 찍지 않았다’는 ‘절대 반대층’은 53.5%로 나타났다. ‘과거에는 민주당을 찍었지만 지방선거에서는 민주당을 찍지 않았다’는 ‘이탈층’은 2.9%인 반면, ‘과거에는 민주당을 찍지 않았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민주당을 찍었다’는 ‘유입층’은 14.1%로 조사되었다.
한편, 한나라당의 지지층 구조는 ‘과거 선거에서 한나라당을 찍었고, 지방선거에서도 한나라당을 찍었다’는 한나라당 ‘절대 고정층’이 35.2%로 나타난 반면, ‘과거에도 한나라당을 찍지 않았고 지방선거에서도 한나라당을 찍지 않았다’는 ‘절대 반대층’은 36.6%였다. ‘과거에는 한나라당을 찍지 않았지만 지방선거에서는 한나라당을 찍었다’는 ‘유입층’은 10.8%인 반면, ‘과거에는 한나라당을 찍었지만 지방선거에서는 한나라당을 찍지 않았다’는 ‘이탈층’은 17.5%로 조사되었다.
민주당이 주목해야 할 사항은 한국 대선에서 결정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는 중도층에서 한나라당은 절대 고정층(35.6%)과 절대 반대층(36.0%)이 거의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민주당은 절대 반대층(53.1%)이 절대 고정층(29.3%)보다 1.8배 이상 높게 나왔다는 점이다.
이런 분석결과가 주는 함의는 비록 지난 지방선거에서는 민주당이 승리했지만 중도층에서 민주당의 지지기반은 아직 상당히 취약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국민은 중도 강화 희망
동아시아연구원과 한국리서치는 최근 여야 정당의 이념성향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와 기대를 조사했다. <그림2>에서 보듯이, 국민들은 한나라당과 민주당 모두 이념성향을 현재보다 왼쪽으로 약간씩 이동하기를 기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다른 시각에서 보면 국민들은 중도 강화를 요구하고 있다.
한나라당의 경우, 이념성향 평가에서 중도가 차지하는 비율은 20.4%이지만 중도성향 기대는 33.9%로 이보다 훨씬 높다. 보수에서 중도로 전환하라는 요구로 해석된다. 반면, 민주당의 경우도, 이념성향 평가에서 중도가 차지하는 비율은 26.4%이지만 중도성향 기대는 31.6%로 4.8%포인트 높다. 한편, 이념성향 평가에서 진보가 차지하는 비율은 35.2%이지만 이념성향 기대는 40.4%로 5.2%포인트 높다. 진보 기대가 중도 기대를 압도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이런 분석결과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민주당이 중도개혁을 포기하고 진보 노선을 강화하는 전략을 선택하는 것은 위험한 길로 가는 것이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 결과, 국민들의 주관적(主觀的) 이념성향에서 진보가 강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 것은 한국 이념지형은 2007년 대선 이후 ‘진보 25%-중도 40%-보수 35%’에서 최근 다시 ‘진보 30%-중도 40%-보수 30%’로 복원되고 있다. 따라서 진보의 비중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절대기준에서 보면 중도의 비율이 진보보다 훨씬 높다. 따라서 지난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승리한 것은 진보가 강화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중도가 진보를 선택했기 때문이라는 추론(推論)이 더 타당성이 있다.
문제는 한국의 중도층은 상황에 따라 상당히 유동적(流動的)인 특성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대선에서는 중도가 보수를 압도적으로 선택했지만, 지난 지방선거에서는 반대로 진보를 선택했다. 따라서 진보 강화를 토대로 한 ‘민주당의 민주노동당화’가 정권창출을 담보한다고 볼 수 없다.
한나라당이 산토끼를 잡기 위해 좌클릭한다는 것은 외연(外延)을 확대한다는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집토끼를 잡기 위해 민주당이 좌클릭한다는 것은 대선전략적인 측면에서 볼 때 이례적(異例的)인 것이다. 외연을 확대하는 전략이 아니라 오히려 민심의 영토를 좁히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러한 민주당의 좌클릭 행보는 세계적인 추세와도 맞지 않는다. 작년과 올해 “EU 27개국 중에 좌파정당이 집권하고 있는 나라는 4개국밖에 안된다. 보수정당, 또는 중도나 보수정당의 연합정권이 EU 국가 다수에서 집권하고 있다. 진보와 보수의 수렴(收斂)이 전 세계의 보편적인 추세인데 민주당의 좌향좌 전략이 한국 대선에서 먹혀들지 의문이 든다.
민주당, 보수적 가치 수용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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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4일 열린 민주당 최고위원회의. 왼쪽부터 박주선,이인영, 정동영, 손학규, 박지원(원내대표), 천정배, 조배숙. 손학규 대표와 이인영 최고위원을 제외하면 모두 호남 출신이다. 정세균 최고위원은 이날 불참했다. |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지방선거 직후인 6월 4일 조사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향후 민주당의 방향에 대해 ‘지역정당에서 벗어나 당의 기반을 확대해야 한다’가 37.7%로 가장 많았다. 그 다음으로 ‘세대교체와 체질개선으로 당의 면모를 일신해야 한다’(29.7%)와 ‘민노당, 국민참여당과 통합해야 한다’(14.2%)가 뒤를 이었다.
최근 손 대표는 관심을 모았던 민주당 사무총장 자리에 호남 중진(重鎭)인 이낙연(李洛淵) 의원을 임명했다. 박지원(朴智元) 원내대표 등 당내 주요인사를 접촉한 뒤 호남 우대 기조를 확정했다고 한다. 7명의 최고위원 중에 5명(정동영, 정세균, 조배숙, 박주선, 천정배)이 호남 인사들로 채워졌는데, 또 다시 호남을 배려한다고 하면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겠는가? 오히려 ‘민주당=호남정당’임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 되어 버렸다.
진보를 추구하는 정당의 생명은 항상 새로워져야 하고 진화해야 한다. 빅3라고 불리는 계파정치와 호남 지역정치의 한계를 넘지 못하면 민주당의 미래는 없다. 야당인 민주당은 전국정당화의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진화해야만 그나마 정권창출이 가능하다. 뼈를 깎는 환골탈태(換骨奪胎)의 자세 없이 너무나 쉬운 길만 걸어가면 어떻게 국민을 감동시키고 표를 달라고 할 수 있겠는가?
KPSI 조사결과, 앞으로 우리 사회가 가장 역점을 두고 추진해야 할 가치에 대해 ‘성장’이 45.4%로 가장 높았고, ‘경쟁’ 13.3%, ‘국토 균형발전’ 11.1%, ‘자율’ 8.0%, ‘분배’ 7.9% 순으로 나타났다. 즉, 보수적 가치 69.9%(성장, 자율, 경쟁, 법치)가 진보적 가치 30.1%(분배, 분권, 국토 균형발전, 언론자유)보다도 2배 이상 많았다.
이런 조사결과가 민주당에 주는 함의는 진보정당을 자처하는 민주당이 진보의 가치에만 매몰되지 말고, 보수의 가치를 능동적으로 수용해 진보의 시각에서 해결할 수 있는 전략을 세워야 집권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진보와 보수가 번갈아 가며 집권하면서 양자 사이에 일정한 수렴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즉, 보수는 진보의 정책을 적극 수용하고, 진보도 보수적 의제를 포용하는 유연성을 보이고 있다. 민주당이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과거와 같이 후보단일화나 연대와 같은 낡은 방식보다는 시대정신을 관통하는 비전과 가치를 만들고 이를 통해 국민과 소통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김효석(金孝錫) 전 민주당 정책위 의장의 “민주당 전당대회 과정에서 당을 앞으로 어떻게 끌고 가서 앞으로 2012년 우리가 어떻게 집권전략을 세워갈 것인가, 이런 로드맵, 구체적인 비전과 전략 이야기가 실종되어 버렸다”는 지적은 민주당이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대세론은 毒이다
야권의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인 손학규 민주당 대표의 재등장으로 야권 내 잠룡(潛龍)들의 대권경쟁이 조기에 불붙을 조짐이다. 그렇다면 여당인 한나라당 대권구도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손 대표가 등장하기 전만 해도 한나라당 대권구도는 박근혜 전 대표에 김문수 지사가 맹렬하게 추격하는 양상을 보였다. 그런데 손 대표의 등장으로 김 지사의 입지(立地)가 약화(弱化)되면서 박 전대표의 독주체제가 지속될 전망이다.
민주당 전당대회가 열리기 직전 케이엠조사연구소가 주관한 대권후보 지지율 조사에서 김 지사는 10.1%를 기록, 처음 10%를 넘겼다. 당시 손학규 후보는 6.2%에 불과했다. 그러나 민주당 전당대회 이후인 지난 10월 5일 동서리서치 지지율 조사에서는 손 대표의 지지도가 11.2%로 2007년 이후 처음 10%대를 기록했다. 반면에 김 지사는 6.2%로 떨어졌다. 두 사람 간 지지율이 거의 완벽하게 뒤바뀐 것이다.
이런 지지율 역전현상은 손 대표와 김 지사의 지지계층이 중첩되어 한쪽의 지지율이 잘되면 다른 쪽은 나빠지는 이른바 ‘제로섬 게임’의 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손 대표에 대한 쏠림 현상이 일어나면서 김 지사의 지지율은 빠질 수밖에 없는 구도라는 뜻이다. 당분간 대권지형에 대한 국민인식이 ‘여당=박근혜, 야당=손학규’로 고착화될 경우, 김 지사의 운신 폭이 그 만큼 좁아질 수밖에 없다.
박근혜 독주체제의 지속은 한나라당의 입장에서 볼 때 결코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과거 대선에서 이회창 대세론이 장기간 지속되면서 정권교체가 확실한 것처럼 보였지만 결국 바람이 불면서 패배했던 사례에서 보듯이 대세론은 독(毒)이 될 수 있다. 대세론에 따른 흥행 없는 ‘밋밋한 당내경선’은 본선 경쟁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박 전 대표의 독주체제는 한나라에 꼭 유리한 상황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
한국 대선에서는 “시대정신을 제대로 읽고, 중도를 선점하며, 파격적인 선거연합을 만드는 세력이 승리한다”는 법칙이 존재한다. 대선이 열린 시점에 국민들이 가장 절실하게 요구하는 것을 정확히 간파하고 적절한 대안(代案)을 제시하면서 자신의 지지계층을 넘어 외연을 확대하는 후보가 승리한다는 뜻이다.
2012 대선의 화두는 복지
그렇다면 2012년 대선의 시대정신은 과연 무엇이 될까? 최근 〈내일신문〉과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는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토대로 2012년 대선 화두로 ‘복지’가 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일반국민을 대상으로 정부가 추구해야 할 국정운영 방향을 묻자 복지국가란 응답이 38.1%로 가장 많았다. 공정사회(27.9%)가 2위를 차지했고 소통(19.6%)과 사회통합(13.3%) 순으로 집계됐다. 정치전문가들은 2012년 대선 화두에 대해 복지(34.4%)를 1순위로 꼽았다. 통일(15.6%), 사회통합(14.8%), 공정(13.1%), 양극화(兩極化) 해소(8.2%)가 뒤를 이었다. 이런 조사결과에 대해 “3년 전 대선을 지배했던 ‘성장 만능주의’가 가져온 양극화 심화가 역설적으로 복지에 대한 요구를 확대시킨 것이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그런데, 세계경제의 역동적 재편이라는 전(全) 지구적 도전에서 한국만 복지를 기치로 좌향좌하는 것이 대세가 될 수 있을까?
선진 복지국가의 상징인 스웨덴의 총선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지난 9월에 끝난 스웨덴 총선에서 보수-중도연합 정당이 사민주의 강령의 상징처럼 된 부유세를 폐기하고 세금과 사회복지 예산을 줄이면서 기업을 장려하는 실용적 전략을 펼쳐 재집권에 성공했다. 물론 한국과 스웨덴의 정치지형이 다르다. 하지만 급변하는 글로벌 경제환경 속에서 ‘진보와 보수의 수렴’이라는 세계적 흐름을 무시할 수는 없다.
여하튼 손학규 대표 체제의 출범을 기점으로 대선의 긴 여정이 시작되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 시대정신을 어떻게 읽고, 상대방이 추구하는 가치와 의제를 어떤 개방적인 태도로 수용할지 숙제를 안게 되었다. 이런 숙제에 국민이 감동할 수 있는 해법을 제시하는 세력이 승리의 월계관을 차지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