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지난 2020년 수도권의 한 고속도로 휴게소 식당 모습이다. 사진=조선DB
지난 11월 10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이 A4 용지 몇 장을 테이블 위에 펼쳐놓았다. 고속도로 휴게소 가격표였다.
그날 회의에서 강 실장은 세 가지를 집중적으로 거론했다. 첫째, 한국도로공사가 민간업체에 위탁하고 그 업체가 다시 재임대하는 '임대→재임대' 구조. 둘째, 도로공사 출신 인사들이 휴게소 운영업체로 자리를 옮기는 '전관예우' 관행. 셋째, 전국 208개 휴게소 중 소수 업체가 장악한 '과점 체계'.
회의가 끝나고 한 달여. 정부는 이르면 내년 상반기 한국도로공사 산하에 전문 관리 자회사를 신설, 휴게소를 직접 운영하는 방안을 발표할 계획이다. 《한국경제》가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내년부터 5곳에서 시범 직영을 시작한다.
20여 년 전 민영화됐던 고속도로관리공단의 부활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질문도 함께 따라붙는다. "왜 비서실장이 나섰나?" "이게 정말 해법인가?"
역대 정권도 건드렸던 '휴게소 밥값'
휴게소 가격은 오래된 정치 이슈다. 다만 과거에는 주로 국토교통부, 기획예산처, 국회 국토위, 총리실이 다뤘다. 대통령비서실장이 전면에 나선 것은 거의 전례가 없다.
김대중 정부(1998~2003)는 경제위기 이후 물가 점검 차원에서 휴게소를 들여다봤다. 기획예산처와 건설교통부가 나서 가격을 조사했고, 몇몇 품목의 가격을 내렸다. 그러나 근본 구조는 바꾸지 못했다.
노무현 정부(2003~2008) 때는 국정감사에서 여당 의원들이 문제를 제기했다. 건설교통부가 '표준가격제' 도입을 검토했지만, 민간업체 반발과 법적 근거 부족으로 흐지부지됐다.
이명박 정부(2008~2013)는 대통령과 총리실이 직접 물가대책에 휴게소를 포함시켰다. 저가 메뉴를 늘리고, 일부 품목 가격을 인하했다. 하지만 위탁 구조 자체는 손대지 못했다.
박근혜 정부(2013~2017)는 국토부와 도로공사가 '착한 가격 메뉴' 의무화를 도입했다. 5000원 이하 메뉴를 늘렸지만, 여전히 전체 가격 수준은 높았다.
문재인 정부(2017~2022)에서도 국토부·공정위가 생필품 가격 인하와 수수료 개편을 추진했다. 일부 성과는 있었으나 구조 개혁에는 이르지 못했다.
윤석열 정부에서도 고속도로 휴게소 가격 문제는 꾸준히 제기돼 왔다. 국토교통부와 한국도로공사가 중심이 되어 가격 안정 대책을 추진했다. 2022~2024년 사이 도로공사는 일부 대표 메뉴 가격을 동결하거나 인하하고, 편의점·프랜차이즈 입점을 늘려 경쟁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패턴이 보인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가격과 품질 문제를 지적하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체감도는 낮았고 오래가지 못했다. 이번에는 다를까.
비서실장이 나선 이유
강훈식 실장의 개입은 두 가지 배경이 있다. 휴게소 운영권을 둘러싼 이해관계가 국토부·기재부·공정위·도로공사에 걸쳐 있다. 어느 한 부처가 단독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부처 간 조정이 필요한 사안이다.
다른 하나는 정치적 메시지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민생 경제'를 강조해왔다. 하지만 체감도가 약했다. 휴게소는 국민이 직접 느끼는 문제다. 독점적 구조에서 선택권 없이 높은 가격을 지불하는 억울함. 이것이 바로 비서실장이 전면에 나선 이유다.
기자가 만난 여권 핵심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물가 통계에 미치는 영향이 작다는 건 안다. 하지만 국민이 느끼는 불공정, 이게 민생 아니겠나. 공공자산으로 과도한 수익을 내는 구조를 바로잡는 것, 이것도 정부의 역할이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 고속도로 휴게소 가격이 우리나라 전체 소비자물가지수(CPI)에 미치는 영향은 얼마나 될까.
경제학자들의 답은 명확하다. "거의 영향 없다."
휴게소 지출은 전체 가계 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미미하다. 소비자가 매주 휴게소에서 식사하는 것도 아니고, 생활필수재를 사는 곳도 아니다. 한국은행의 CPI 구성 항목에 휴게소 음식이 별도로 포함되지도 않는다. 휴게소 가격이 10% 인하되더라도 국가 CPI 변동률은 소수점 이하에서 묻힌다. 통계적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그렇다면 왜 반복적으로 정치 이슈가 되는가. 이유는 '체감도' 때문이다. 휴게소는 독점적이고 선택권이 제한되어 있다. 한 번 지불한 가격의 '억울함'이 강하게 남는다. 이것이 국민 불만으로 이어지고, 정치권에서 다루기 좋은 소재가 된다.
현재 한국 물가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은 ▲국제 에너지 가격 ▲농산물·식자재 수급 ▲공급망 비용 ▲서비스 물가 상승(임금·인건비) ▲임대료·운송비 등 구조적 비용 ▲식당·프랜차이즈 가격 체계 등이다. 이 중 어느 것도 휴게소 가격과는 직접 관련이 없다.
도로공사 자회사, 해법인가 새로운 비효율인가
정부가 추진하는 방안의 핵심은 '도로공사 자회사 직영 확대'다. 현재 전국 208개 휴게소 중 직영은 3곳뿐이다. 나머지는 대보그룹(시장점유율 13%), BGF휴머넷 등 민간업체 70여 곳이 위탁 운영한다.
직영 확대의 논리는 명확하다. 가격 투명성을 높이고, 과도한 수수료(평균 40%)를 줄이겠다는 것이다. 민간 위탁 → 재임대로 이어지는 복잡한 구조를 단순화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려도 크다. 한국도로공사는 이미 부채가 누적된 적자 공기업이다. 2024년 기준 부채가 23조 원을 넘는다. 이런 공기업이 다시 자회사를 만들어 직영 운영에 나설 경우, 비용 구조가 더 복잡해진다. 자회사 설립에 따른 초기 투자비, 인건비, 조직 운영비가 추가된다.
또 기존 민간 운영사 구조와 병행되는 '옥상옥(屋上屋)' 구조가 될 가능성이 있다. 직영 5곳, 민간 위탁 200여 곳이 공존하는 이원 체제. 관리는 더 어려워질 수 있다.
무엇보다 공기업 특유의 비효율이 가격 인하 효과를 상쇄할 수 있다. 직영이 확대되면 가격의 투명성은 높아질 수 있다. 하지만 인건비, 복리후생비, 관리비 등이 늘어나면서 실제 가격 인하 폭은 기대에 미치지 못할 수 있다.
기자가 만난 한 공공기관 전문가는 이렇게 말했다.
"과거 정부들이 가격만 손대고 구조를 바꾸지 않아 실패했다. 이번에는 공기업 중심으로 재편한다지만, 이것도 또 다른 형태의 비효율을 낳을 수 있다."
휴게소 가격 문제는 두 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다.
공공자산을 활용한 사업에서 민간업체가 과도한 수익을 내는 구조다. 재임대를 통해 중간 마진이 쌓이는 구조. 전관예우로 특정 인사들이 운영권을 독식하는 구조. 이것들은 분명 개선이 필요한 문제다.
다른 하나는 '통계적 한계'다. 휴게소 가격은 국민 체감도는 높지만, 국가 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극히 미미하다. 더 근본적인 물가 요인들인 에너지 비용, 식자재 수급, 물류비, 서비스 물가 상승을 건드리지 않는다면, '민생 행보'라는 평가만 있을 뿐 실질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20년 전 고속도로관리공단을 아는가
2000년대 초반까지 고속도로 휴게소는 고속도로관리공단이 직접 운영했다. 가격이 지금보다 저렴했고, 운영도 안정적이었다. 하지만 공공부문 개혁 바람 속에 민영화됐다. 효율성을 높이고 서비스 품질을 개선한다는 명분이었다.
20년이 지난 지금, 정부는 다시 공공 운영으로 돌아가려 한다. 민영화의 부작용을 인정하는 셈이다. 하지만 역사는 반복될까. 공공 운영이라는 이름으로 또 다른 비효율이 생기는 건 아닐까.
휴게소 가격 논쟁은 결국 이 질문으로 귀결된다. "우리는 과거의 실패에서 무엇을 배웠는가."이번에도 가격만 조금 내리고 끝날 것인가, 아니면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꿀 것인가.
답은 앞으로 1~2년 안에 나올 것이다.
희망은 있다: 휴게소 주유소가 답을 보여준다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음식은 비싸지만, 기름값은 시중보다 확실히 저렴하다는 점이다.
한국도로공사가 관리하는 'EX-OIL' 브랜드 주유소는 정유사로부터 유류를 대량으로 공동구매한 뒤 각 주유소에 공급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일부는 도로공사가 직접 운영하고, 일부는 휴게소 운영업체에 위탁하지만, 핵심은 유류 공동구매를 도로공사가 주도한다는 점이다. 그 결과 중간 마진이 사라지고 가격은 내려간다.
2025년 기준 전국 평균보다 리터당 약 50원 저렴하다. 2023년 기준으로는 전국 주유소 평균 대비 휘발유 52원, 경유 58원이 낮았다. 반면 민간투자(민자) 방식으로 운영되는 주유소는 일반 시중가와 비슷하거나 더 비싸다. 운영 방식에 따라 가격 차이가 명확하게 갈린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분명하다. 공동구매를 통해 중간 유통단계를 제거하고 투명한 원가 구조를 갖추면 가격을 낮출 수 있다는 증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