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신간] 紙上 최대의 말잔치 김기덕 시인의 《빅뱅과 에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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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 시인의 《빅뱅과 에덴》(문학공원)

시집이 전체 575쪽이다. 크게 4장으로 이뤄진, 1번에서 1004번에 이어진 시편들. 시집에는 문장 마침표가 없다. 마침표가 없다는 것은 종결이 없다는 의미다. 네버 엔딩 스토리. 종결을 향해 끝도 없이 나아가는 기도의 언어, 고백만 있을 뿐이다.


시집 제목이 어마어마하다. 《빅뱅과 에덴》(문학공원 刊). 마치 창세기의 첫 장 같은 느낌을 준다. ‘~했네’, ‘~하였어’라는 고백체 서사적 단문이 읽는 이의 귀에 쏙쏙 박힌다.

시집의 첫 문장은 이렇다. ‘하늘문을 환하게 열어젖힌 보름달 빛이 쏟아지네’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나는 아직 태양에게 보이지 않았으니 독한 가시를 세우며 바라보네’

이 시에는 수많은 이미지, 시인이 경험한 다양한 사건(에피소드)이 등장하지만 모두 ‘영혼의 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동원됐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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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세계란 ‘강 건너’, 누드의 조각달이 허리 굽혀 기도해야 갈 수 있는 곳이다. 나룻배를 타지 않고선 건널 수 없는 세상이다.

강을 건너기 위해 배를 타야 하는데 ‘사공이 없는 배’를 타야하는 시대가 되었다. 기계와 인공지능이 인간을 지배하는 사회를 일컫는다. 시인은 말한다.


‘사물을 믿고 여행하다 잘못되면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불안의 시대에 진정한 선장이 필요하지’(p225)


‘진정한 선장’은 누구일까. 시인은 답을 정하지는 않는다. ‘우주의 끝은 어디일까 어쩜 우주의 끝은 우리들 상상력의 끝이 아닐까’하고 정답의 문을 열어 놓았다. ‘우주도 하나님도 내가 만들고 있어. 상상력 속에서 탄생하고 존재해’라고 말한다. 


‘우주는 눈으로 보는 게 아니고 상상으로 보는 거야’(p371)


시인의 눈에 비친, 상상력 속의 인간은 어떤 모습일까. 385쪽의 일화(逸話)를 통해 유추할 수 있다. 시인은 요로결석으로 응급실에 실려간 적이 있다. 그곳에서 수많은 원숭이를 보게 된다. 술 먹고 실려온 원숭이, 간호사에게 고래고래 욕하는 원숭이, 친구와 술 마시다 싸워서 피를 흘리는 원숭이, 길 가다 정신 잃고 주저 앉았다며 히죽거리는 원숭이 등등으로 가득했다. 시인이 내린 결론은 이랬다. ‘원숭이들은 지금도 진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진화가 덜 된 원숭이들이 사람들 무리에 섞여 살면서 진화하고 있어. 인간세계엔 진화하지 못한 원숭이가 있고 좀 더 진화한 인간이 있고 새롭게 거듭난 천사가 있어’(p385)


시인의 상상력은 ‘진화하는 원숭이’를 넘어 구원(救援)의 문제로 넘어간다. ‘구원’은 십자가와 만나는 일에서 시작해야 하고, 모든 사물 속에 숨겨진 상징을 발견하는 일이 신을 만나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성경의 두께처럼 두툼한 시집 《빅뱅과 에덴》은 결코 하루 아침에 쓰여지지 않았다. 오랜 시간동안 쌓아 올린 경험과 사색 위에 언어와 문장을 입혀 완성되었다. 어쩌면 1908년 11월 발표된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 이후 이런 시집은 처음일지 모른다. 이런 묵직한 무게의 시와 시집은 처음일지 모른다. 그런 만큼 이 시집은 그 자체로 오래 기억해야 마땅하다.

이 시집을 읽은 평론가 김순진은 이렇게 의미를 부여했다.


“T.S 엘리어트의 《황무지》 이후 지상(紙上) 최대의 말잔치가 시작된다. 김동환의 《국경의 밤》과 문덕수의 《우체부》에 맥을 잇는 쾌거라 할 수 있다. 이제 우리나라에도 공자의 《시경(詩經)》, 아리스토텔레스의 《시론(詩論)》에 견줄 책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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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김기덕은 2000년 《시문학》을 통해 등단했으며 지금까지 시집 《열매들은 소리 지르지 않는다1》, 《열매들은 소리 지리지 않는다2》, 《사랑한다는 메시지가 낡아 보인다》, 시론집 《주역에서 시를 보다》, 《이미지의 공식》, 《상자 속의 수평선》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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