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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Room Exclusive

영화가 아닌 ‘진짜’ 국가부도의 날! 그 긴박했던 15일

IMF 사태의 내막(1) / “각하 이래 가지고는 큰일납니다. 국가부도 납니다” “우에하노”

정리 조성호  월간조선 기자 chosh760@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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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격적인 韓銀 보고서: "당행(한국은행)이 금융기관에 대해 외화자금을 지원해주지 못할 경우 디폴트(Default: 채무불이행에 의한 국가부도) 상황 발생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 이경식 한은 총재: “IMF에서 돈 꾸는 것 사실 그리 대단한 일 아니지 않습니까. 제일은행이 다른 은행에서 돈이 잠시 부족해 돈 꾸는 것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김영삼 대통령: “그러면 가면 될 것이지 왜 안 가노?”
⊙“나는 회의를 시작하자마자 다짜고짜 ‘IMF 측에서 돈을 내놓아야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뭐 앞 뒤 생각할 틈도 없이 떠오르는 단어대로 ‘당신 호주머니에서 돈 좀 빌려야겠다(I need the money from your pocket)’이라는 엉터리 영어가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습니다. 상황이 그만큼 급했습니다.” (이경식 한은 총재의 증언)
1998년 3월호 《월간조선》 ‘IMF 사태의 내막: 대통령은 없었다!’
1997년 외환(外換)위기는 IMF 관리체제를 불렀고, 한국은 사실상 ‘경제식민지’ 신세로 전락했다. IMF 사태가 발생한 지 정확히 21년이 지난 2018년 11월, 영화 <국가부도의 날>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 ‘6·25이래 최대의 국난(國難)’이라 불렸던 IMF 외환위기를 소재로 한 이 영화는 벌써부터 관객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1998년 3월호 <월간조선>은 외환위기 당시 김영삼 정부가 어떤 과정을 통해 IMF의 문을 두드리게 됐는지, 이를 심층취재한 기사를 보도했었다. 기사의 제목은 ‘IMF 사태의 내막: 대통령은 없었다!’이며, 부제는 ‘다큐멘터리·운명의 15일간: 김영삼, 강경식, 김인호, 이경식의 막후 행적 정밀추적’이다.
 
기사를 쓴 조갑제(趙甲濟), 부지영(夫址榮) 기자는 김영삼(YS) 대통령을 비롯해 강경식 재정경제원 장관 겸 경제 부총리, 이경식 한국은행 총재, 김인호 청와대 경제수석 등 정부 주요 당국자들의 ‘긴박했던 15일’간의 행적을 날짜별로 면밀히 추적했다.
 
기사는 발문에서 “이 사태의 핵심은 대통령이 국정의 중심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이라고 전하고 있다. 이어 “그(YS)는 국정의 주도권을 잡고서 이 중대 사태를 국가적 문제로 만들어 정치권과 국민의 협조를 구할 만한 지식과 용기, 그리고 관심을 상실한 ‘정치적 불구’ 상태였다”며 “경제팀이 하자는 것을 막지도 돕지도 않음으로써 김영삼 대통령은 끝까지 국외자로 머물렀다”고 비판한다.
 
이 기사를, 20년이 지난 지금 독자 여러분께 다시 소개한다. 원고지 300매가 넘는 방대한 분량이기에 읽기 쉽도록 요약해 두 번으로 나눠 게재한다. <> 안에 있는 날짜 및 주가지수, 환율 현황 등 각종 지표는 원(源) 기사에 있는 그대로이며, 중간 제목은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임의로 붙인 것이다.
 
지금부터 영화보다 더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1997년 11월 국가부도 문턱까지 갔던, 그 추운 겨울 날 한복판으로 여러분을 초대한다.
   
글·정리=조성호 월간조선 기자 
 

 
<11월 7일(금), 외환보유고 285.7억 달러, 종합주가지수 515.6>
 
1997년 11월 7일 금요일 오후 4시 반, 청와대 경제수석실. 김인호(金仁浩) 경제수석은 윤진식(尹鎭植) 청와대 조세금융 비서관과 함께 최연종(崔然宗) 한은 부총재 이하 실무진, 재경원의 윤증현(尹增鉉) 금융정책실장 이하 관계자들을 비상소집해, 외환위기 극복을 위한 긴급회의를 주재했다.
 
10월 23일 홍콩 증시(證市)가 폭락한 이후, 외국인 투자자들이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바꾸어 빠져나가고 하루가 멀다 하고 동남아의 외환위기가 한국의 외환위기를 부를 수 있다는 외신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던 상황이었다. 10월 28일 모건 스탠리는 ‘긴급: 아시아 지역에서 투자된 자금을 회수하라. 현 단계에서 설사 손해를 보고 있더라도 즉시 팔아치우고 빠져 나오라’고 타전했다.
 
“IMF에 가면 정말 괴롭습니다”
 
11월 5일 뉴욕 월스트리트에 큰 영향을 끼치는 세계적인 경제전문 뉴스공급 통신사인 ‘블룸버그’(본사 뉴욕)와 ‘아시안 월스트리트저널’이 거의 동시에 한국 외환보유고에 대해 의구심을 부채질하는 보도를 했다.
 
‘한국의 외환보유고가 알고 보면 겉으로 드러난 것보다 적을지 모른다’, ‘선물환 투자 많아 순 외환보유고는 바닥이다’는 식의 보도였다. 이때만 해도 10월 말 기준으로 계산할 때 돌아올 선물환은 연말까지 9억 달러에 불과한 상태였다. 11월 6일에는 '인터내셔널 해럴드 트리뷴'이 한국이 IMF(국제통화기금)의 지원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는 보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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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호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 출처: 월간조선
김인호 수석은 다급해지고 있는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재경원(재정경제원)과 한은이 각각 대책을 마련하여 7일 오후 4시에 수석실에 모이도록 지시했다. 참석자는 비밀 유지를 위해 극소수로 제한했다. 김 수석이 회의를 주재하게 된 것은 강경식(姜慶植) 부총리가 1998년도 예산과 금융개혁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국회에서 살다시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회의를 시작하기 직전 엄낙용(嚴洛溶) 재경원 차관보가 다른 회의를 끝내고 나가면서 김인호 수석의 귀에 살짝 이렇게 말했다. “일본을 좀 다녀와야겠습니다. 부총리에게도 보고를 했습니다” “응? 일본은 왜?” “일본에 여러 가지 협조를 부탁하러 가봐야겠습니다” “아 그래?” 갑자기 엄 차관보의 목소리가 줄어들었다. “그런데 말이죠. IMF에 가면 정말 괴롭습니다.”
 
충격적인 韓銀 보고서
 
이날 회의에서는 <외화유동성 사정과 대응방안>이라는 한국은행 보고서가 논의됐다. 충격적인 내용이 담긴 보고서의 중요 부분을 발췌한다.
  
<외화보유고 급감: 10월30일부터 11월6일까지 환율 안정을 위해 총 23.3억 달러(선물환 1.5억 달러 포함)를 외환시장에 공급했다. 따라서 1997년 11월 7일 기준으로 계상한 외환보유고는 10월 말의 305.1억 달러에서 약 285억 달러 수준으로 급감했다. 이 때문에 금융기관 해외점포 예치금 및 기매도(旣賣渡) 선물환 결제 자금을 제외한 가용외화 보유액은 11월 7일 현재 불과 148억 달러로 전년 말에 비해 146억 달러가 감소했다.
현재의 가용외환 보유액은 약 1.2개월간의 수입대금 충당 수준이다. 통상 적정 수준으로 인식되고 있는 3개월간 수입대금의 절반밖에 안 되는 실정이다…. 당행(한국은행)이 금융기관에 대해 외화자금을 지원해주지 못할 경우 디폴트(Default: 채무불이행에 의한 국가부도) 상황 발생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한국은행의 이 보고서는, 상황이 계속 악화되면 11월 말 이후에는 수입 물자에 대해 달러가 없어 결제를 해주지 못하는 상황이 올 가능성이 있다는, 즉 국가부도 상황이 올 수 있다는 확고한 결론을 정부 차원에서 내린 최초의 경고였다. 이 보고서는 외환업무 관련 공직자들이 그 시점에서 파국적 상황의 도래를 두려워하고 있었으며 그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11월 7일의 회의’가 이루어진 것임을 말해준다. 이 회의가 있었다는 사실은 시장에 주는 악영향을 막기 위해 비밀에 부쳐졌다.
 
<11월 8일(토), 외환보유고 285.9억 달러. 종합주가지수 495.7>
 
김인호 경제수석은 7일 회의에서 논의된 사안이 중대한 만큼, 시간이 얼마 없다고 느꼈다. 바로 다음날 아침, 7일 회의에 참석하지 못한 강 부총리와 모처(某處)에서 조찬을 했다. 회의 내용과 협의 결과를 설명하고 대응방안을 협의했다. 강경식 부총리는 의외로 순순히 “IMF로 가는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반응을 보였다. 강 부총리는 “대통령 선거 전후의 정치적 변혁기에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 필요로 하는 많은 개혁과제들을 추진해 나가기 위해서는 IMF로 가는 것이 바람직스러운 면도 있다”는 요지의 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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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식 당시 경제부총리. 출처: 국가경영전략연구원
강 부총리의 지론은 ‘금융은 신용이고 신용은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라는 확신이었다. 정부로서는 금융개혁법 통과를 위해서 최대한 노력을 계속하고 국제금융계가 요구하는 강력한 안정대책을 내놓음으로써 신뢰를 회복, 단기외채의 만기연장율을 높이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대책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이런 사정을 아무리 이야기해도 야당 의원들이나 일부 언론이 그저 재경원에 유리한 내용의 금융개혁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한 위협 정도로만 받아들이고 있어 강 부총리는 답답해했다.
 
강 부총리와 김 수석은 “IMF로 갈 수밖에 없지 않은가”라고 동의하면서도 재경원 금융실로 하여금 IMF 이외에 가능한 모든 대안(代案)을 검토시킨 후 다음 날(9일) 저녁에 다시 모여 의논하기로 했다.
 
이 무렵 재경원은 색다른 발상을 하고 있었다. ABS, 즉 정부가 보증하는 채권을 해외시장에서 약 100억 달러 발행하면 굳이 IMF 구제금융을 받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닌가 하는 계산이었다. 강 부총리도 이 발상에 상당히 미련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YS는 자신의 명예보호에 관심
   
김인호 경제수석은 이날(8일) 오전 전날 밤의 대책회의에 대해 대통령에게 그 내용을 간략하게 처음으로 보고했다. ‘IMF로 가는 문제를 검토하겠다’는 보고에 대해서 김영삼 대통령은 “나도 그렇게 이야기를 들었는데 잘 검토해 보라”고 지시했다. 이날 재경원은 100억 달러 규모의 ABS 발행 등 마지막 대안들을 검토했다.
  
이날 오전 김영삼 대통령은 특별담화를 발표했다. 라디오와 텔레비전을 통해서 중계된 이날의 담화는 ‘김 대통령의 측근참모들과 김현철 인맥이 국민신당의 이인제 후보를 비밀리에 지원하고 있다’는 신한국당과 국민회의의 공세에 대해서 경고하는 내용이었다. 김 대통령은 “허위사실 등이 유포되는 선거풍토를 정화하기 위해서 정부의 권한을 총동원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틀 뒤에는 국무회의, 14일엔 검사장회의를 소집하여 자신의 이런 뜻을 전달했다.
 
이 특별담화는 당시 김 대통령의 관심이 무너지는 외환시장이 아니라 대통령 선거와 자신의 명예보호에 있었음을 짐작하게 하는 증거이다. 김 대통령은 이 결정적인 시기에 외환위기와 관련해서는 국민들에게 한 마디의 설득이나 해명도 하지 않았고 ‘정부의 권한을 총동원’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는 국가경제가 아닌 개인적인 명예보호를 위해서 정부의 힘을 총동원하려고 하고 있었다.
 
<11월 9일(일), 확대회의(휴일이므로 지표 없음)>
  
11월 9일 밤 7시. 시내 모처. 재경원의 검토 내용을 갖고 강 부총리와 김 수석, 윤증현 재경원 금융정책실장이 저녁을 하면서 대책을 협의했다. 금융개혁법안의 통과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종합대책(강 부총리와 김 수석이 경질된 11월 19일에 임창렬 신임 부총리에 의해서 발표된 내용)을 마련하여 법안통과와 동시에 발표하며,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는 문제를 계속 검토한다는 줄기에 합의했다.
 
이들은 IMF 문제는 그 정치·사회적 파장을 감안하여 최종 결정이 날 때까지는 공개적으로 거론하지 않기로 했다. 식사 전후로 예정된, 여러 사람들이 참석하는 회의에서는 보안을 위해 공개적으로는 이야기를 꺼내지 않기로 했다.
  
  
<11월 10일(월), 외환보유고 279.1억 달러, 달러 환율 1,000원대 돌파. 종합주가지수 525.3>
  
11월 10일 아침 10시,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 강 부총리가 청와대에 도착했다. 배석자는 여느 때처럼 김인호 수석이었다. 강 부총리는 9일 밤의 회의 내용에서 나온 결론대로 진행 중인 금융개혁법안 등 전반적인 외환위기 대책을, 제목만 열거된 한 페이지의 메모를 들고 들어가 김영삼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간단한 메모로 보고한 것은 전날 회의가 너무 늦게 끝나 실무자들이 정식보고서를 작성할 시간이 없었던 데다 사안이 중대했던 만큼 형식을 갖춘 보고서를 작성하게 되면 타이피스트나 서류전달 과정을 통해서 보안이 누설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고려한 때문이었다.
 
강경식, YS에게 IMF行 공식 보고
 
대통령과 마주한 이 자리에서 강 부총리는 금융개혁법안 처리와 종합금융안정정책, ABS 대안(代案) 등 그 동안의 협의 내용을 설명하고, “이런 방안들이 안되면 IMF에 가는 가능성도 검토되어야 합니다”고 말했다. 부총리로부터 대통령에게 IMF 문제가 정책적으로 보고된 최초의 순간이었다(그 이틀 전에 김인호 수석이 IMF 문제가 검토 중이라는 보고는 대통령에게 했다).
 
강 부총리는 부실채권 정리와 일부 종금사의 정리를 포함하는 종합적인 금융시장 안정대책을 주로 강조했다. 그는 또 환율대책과 관련해서 우리나라 금융제도를 개혁하기 위해서는 IMF의 전폭적인 지지가 필수적이므로 IMF와 정식으로 접촉을 시작하겠다고 보고했다.
 
강 부총리는 “기아(그해 7월 부도처리된 기아그룹을 의미-기자 주) 문제도 처리해보니까, 국내적으로는 잘 처리한 것 같은데 국제적으로는 잘 안 먹혀 들어갑니다”라는 말도 했고, “앞으로의 정치 일정을 감안했을 때 IMF로 가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는 취지의 이야기도 했다.
 
강경식 '(YS가) IMF행의 정치적 의미를 모르는 게 아닌가'
 
대통령의 반응은 ‘의외로’ 담담했다. 그저 “알았다”는 식으로 강 부총리의 보고를 듣고, 별다른 ‘말씀’이나 지시사항은 없었다. 강 부총리는 대통령의 태도를 보고 ‘아마도 여러 경로를 통해 IMF로 가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을 듣고 계신 것 같다’고 느꼈다. 한편으로는 김영삼 대통령이 IMF로 간 뒤에 겪게 될 어려움과 정치적 의미에 대해서 모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주었다.
 
보고를 끝낸 강경식, 김인호 두 사람은 대통령 집무실을 나왔다. 통상 부총리가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나면 곧바로 청와대를 떠나는 것이 아니다. 옆 대기실에서 보고에 배석했던 경제수석과 차를 한 잔 마시면서 그날의 보고 결과를 정리해보고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점검하는 것이 통례였다.
 
이경식 한은 총재에게 전화 건 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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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식 당시 한국은행 총재. 출처: MBC 캡처
11월 10일 밤 9시30분쯤(이경식 총재의 기억) 한국은행 이경식 총재의 집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집에 있을 때 조금 일찍 잠자리에 드는 이 총재는, 이날 퇴근 후 최근의 경제위기에서 오는 압박감을 풀기 위해 스카치 양주를 한두 잔 마시고 막 잠에 들려는 찰나였다. 전화는 이 총재의 부인이 받았다. 전화를 받은 후 부인은 황급히 이 총재를 깨웠다. “‘어른’께서 전화하셨어요.”
 
이 총재는 1993년 12월 경제 부총리직에서 그만두고 나서는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전화를 받은 것이 두 번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한 번은 다른 자리를 제의할 때 대통령이 건 전화였고, 다른 한 번은 한은 총재직을 제의할 때 준 전화였다. 대통령은 단도직입으로 물었다. “이 총재, ‘경제’가 이래 가지고 되는 거야?”
  
“각하 이래 가지고는 큰일납니다. 국가부도 납니다” “그러면 우에하노”
 
이 총재는 무너지는 외환시장의 일선에 선 입장에서,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었다. 다그치듯 물어온 대통령의 전화에 이 총재는 다소 격앙된 어조로 대답했다. “각하 이래 가지고는 큰일납니다” “응?” 대통령의 놀란듯한 목소리가 전화기 저편에서 울렸다.
 
그러나 이 총재는 당시 “‘경제’가 이래 가지고 되는 거야”로 시작된 대통령의 물음에서 위기의 핵심인 외환보유고의 심각성보다는 주식시장 등 경제 전반에 대해 대통령이 걱정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았다. 당시 이 총재가 말했다. “각하 이래 가지고는 큰일납니다. 국가부도 납니다. 외환이 바닥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에하노(어떻게 하나)? 얼마나 버틸 수 있노?” “잘해야 한달 정도 버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 그럼 어떻게 하노?” “IMF에 가야지요” “응?”
 
이 총재는 계속 말을 이었다. “IMF에서 돈 꾸는 것 사실 그리 대단한 일 아니지 않습니까. 제일은행이 다른 은행에서 돈이 잠시 부족해 돈 꾸는 것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러면 가면 될 것이지 왜 안 가노?” “제가 가는 것을 결정하는 결정권자(부총리를 의미)는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니 내일 김인호 수석 불러서 ‘외환 사정이 나쁘다는데 어떻게 할래’하고 강하게 말씀하십시오.” “알았다.”
 
이경식 총재는 재경원이 다른 대안을 검토하느라 시간을 잡아먹고 있다고 판단하고, 하루빨리 IMF 구제금융 쪽으로 상황을 몰아가야 한다는 절박감을 갖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 이 통화내용이다. 이경식 총재의 느낌이 말해주듯 대통령은 외환위기의 심각성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증권시장 같은 정치적이고 대중적인 경제 문제에 더 신경을 쓰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11월 11일(화), 외환보유고 279.3억 달러. 종합주가지수 522.1>
 
점심 무렵 김인호 경제수석은 대통령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대통령과 수석간에는 직통전화가 있어 수시로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전화를 받게 되어 있다. “홍재형(洪在馨) 전 경제부총리가 전화를 해와서 IMF에 가야 한다고 하던데 그 IMF 문제 어떻게 되고 있노?”
   
김인호 수석에게 채근한 YS 
 
김 수석은 그 동안의 경과를 다시 보고했다. “어제 부총리가 보고한 것이 바로 그 내용입니다. 어제 보고 드린 대로 부총리, 한은 총재 등과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습니다. IMF로 가는 문제는 단순히 경제 문제에서 그칠 수가 없으며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한 사안이므로 부총리의 판단을 기다리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부총리가 여러 가지를 감안해서 결정한 후 건의하면 이를 받아 각하께서 결정하는 모습을 취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그 이후에도 김 수석은 “IMF 문제가 어떻게 되어 가냐”는 대통령의 채근을 몇 번 받았다. 김인호 수석은 김대통령이 IMF로 가는 문제에 대해서 그 정치적 파장을 좀 가볍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가졌다고 한다. 경제정책을 책임진 입장에서는 IMF로 가기 전에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해 보아야 하는데 외부 인사들은 다른 입장에서 빨리 가야 한다고 대통령에게 건의할 수는 있을 것이고 이런 건의에 대해서 대통령은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던 것이다. 여러 가지를 고민하느라 김 수석은 이날 밤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11월 12일(수), 외환보유고 267억 달러, 종합주가지수 517.5>
 
김인호 수석은 12일 새벽 강 부총리에게 전화를 걸어 대통령의 어제 이야기를 자세히 전달했다. “대통령께서 이런 요지의 말씀을 하시는데 홍재형 전 부총리 등 여러 채널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IMF로 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참고하시지요. 만나서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김인호 수석이 강 부총리와 새벽 통화를 하고 출근한 직후인 아침 8시 반 청와대. 통상적인 보고를 하러 들어간 김 수석은 다시 대통령으로부터 “IMF 건은 어떻게 되어 가는가”하는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대답은 이전과 같을 수밖에 없었다. 김 수석은 그 이후로 매일 한 번 정도 “IMF건은 어떻게 되고 있나”하는 대통령의 채근을 받았다.
  
<11월 13일(목), 외환보유고 264.7억 달러. 종합주가지수 519.5>
 
김인호 수석은 7일의 외환관리 비밀회의 후 일주일도 안돼 끝없이 빠져나가는 외환보유고와 폭락만 하고 있는 증시(證市)상황을 점검하면서 결론을 내려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무너지는 것은 비단 외환보유고뿐만이 아니었다. IMF로 가지 않고 이 상황을 막을 수 있는 마지막 대안으로 기대를 걸고 있던 것들도 하나씩 나가떨어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이즈음 기대했던 일본으로부터도 사실상 ‘안 되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 시점에서 왜 경제팀이 국민들과 정치권에 실상을 제대로 알려 협조를 구하지 않았나 하는 의문에 제기된다. 그들은 IMF로 갈 수밖에 없다는 상황이 밖으로 알려지면 외환시장의 혼란과 주식시장의 폭락은 불을 보듯 뻔한 상태이므로 비밀리에 IMF와의 협의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경제팀이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그러면 왜 이 중대한 문제를 경제팀의 수준에서 붙들고 있었던가. 자력(自力)으로는 풀기 어려운 수학문제가 있는데 왜 선배와 선생님을 동원하지 않았나. 즉, 대통령에게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알리고 정치권에 협조를 당부하여 경제팀만이 아니라 정부와 국가의 힘을 총동원하는 방법을 없었을까.
 
이런 질문에 대한 당시 경제팀의 곤혹스러운 반응을 우리가 해석한다면 이러하다. “대통령은 외환위기를 비롯하여 경제의 본질에 대한 이해가 근본적으로 취약한 분이고 정치권은 대통령 선거에 빠져들어 국익 차원의 판단이 마비된 상태였다.”
   
이날 오전 김인호 경제수석은 비서를 통해서 금융통화위원회를 주재하고 있던 이경식 한은 총재와 점심을 하자고 연락했다. 중요한 일이니 웬만한 다른 약속은 취소하고 식사를 하면서 논의하자는 것이 김수석의 제안이었다. 김수석은 저녁에 부총리와 대책회의를 하기로 약속을 해 놓았으니 사전에 한은 측과 조율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점심 식사 자리의 대화는 무거웠다. 
   
김 수석: “상황을 어떻게 봅니까” 
이 총재: “아주 힘든 상황입니다. 일주일 전(7일)보다 더욱 어렵습니다” 
김 수석: “IMF로 가는 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 총재: “가야 할 것 같습니다” 
김 수석: “다른 대안은 없습니까. 재경원의 대안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이 총재: “재경원 쪽에서는 자꾸 외환사정을 모르고 그러는데 백업 퍼실리티나 각국 신디케이트 론을 추진하려면 몇 달씩 걸리는데 시기적으로 너무 늦었으며, 다른 안들도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외환보유고와 외환출입을 매일 체크하는 우리(한은) 입장에서는, 외환보유고의 이상(異常)적인 감소가 너무 가파르니까 더 긴박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이때 김 수석은 홍재형 전 부총리가 자신에게 비슷한 이야기를 하더라는 대통령의 말을 떠올렸다. 김 수석은 이 총재에게 넌지시 물었다. 
 
물 건너간 마지막 대안
 
김 수석: “대통령께서 IMF에 대해 홍재형 부총리의 건의 이야기를 하시던데, 혹시 이 총재께서는 무슨 말씀을 드린 것이 있습니까” 
이 총재: “아, 대통령께서 전화로 물어오셨기에 IMF로 가는 것이 불가피한 것 같다는 말씀은 드렸습니다”
 
이 총재와 점심을 하고 돌아온 김 수석은 이날 오후 대통령에게 다시 보고를 하러 들어갔다. “오늘 밤 부총리, 한은 총재와 다같이 논의를 하고 아예 결론을 내고 돌아오겠습니다. 그리고 내일 아침에는 부총리께서 들어와 보고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날 밤 6시30분 르네상스 호텔. 강경식 부총리, 김인호 경제수석과 한은 이경식 총재가 재경원과 한은의 관련 참모들을 데리고 모였다. 이들은 저녁을 먹고 재경원의 유재한(柳在韓)과장(산업금융담당관)의 브리핑을 들었다. 재경원 쪽에서 검토해오던 정부가 보증하는 해외채권, 즉 ABS실행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자연스럽게 내려졌다. 사실상 마지막 대안이 물 건너간 것이었다.
 
“ABS가 안되면 다른 대안들은 백업 퍼실리티(장치)로 다른 나라들로부터 빌어오는 수밖에 없는데 지금의 외환 상황으로는 그것만으로도 부족할 것이 확실시된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 결론이었다.
   
 <11월 14일(금), 외환보유고 264.4억 달러. 종합주가지수 520 회복>
 
11월 14일 아침 8시10분, 청와대 본관 대통령 집무실, 강경식 부총리, 이경식 한은 총재, 김용태(金瑢泰) 비서실장, 김인호 경제수석은 대통령에게 보고를 하기 위해 모였다. 원래 이 시간은 비서실장의 시간대이다. 사안이 중대하여 대통령이 출근하자마자 바로 비서실장을 따라 들어가 보고할 수 있도록 양해를 얻어두었다.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대부분 출근하기 전이라 보안에도 용이하다는 점도 고려되었다. 강 부총리가 간단한 메모만을 놓고서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보고 내용은 크게 세 가지였다. 금융개혁법안의 처리와 종합안정대책의 수립 및 발표, 일본·미국·유럽에서 200억 달러 정도를 빌려오는 과제, 그리고 이것들이 안 되면 ‘IMF로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IMF로 가면 언론은 ‘문민경제, IMF에 의해 마감’으로 보도할 것”
  
여기서 대통령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는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김 대통령은 평소에도 경제관련 보고에 대해서는 별다른 질문이나 이견을 보인 적이 없었다. 이날도 대통령의 반응은 “그대로 해”하는 식이었다. 강 부총리는 틈틈이 그날그날의 메모를 컴퓨터에 입력을 해 놓은 습관이 있는데, 이날의 메모는 ‘대통령의 결심이 확고했다’였다.
 
이경식 한은 총재도 대통령의 다른 반응은 기억에 없고 대통령이 “IMF로 가라”고 강하게 말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김 수석의 기억도 유사하다. 이 총재는 이날부터 IMF 협상이 타결되던 시점까지 열흘정도 대통령이 이틀에 한 번 꼴로 자신의 집 아니면 사무실로 전화를 해 상황을 물었다고 했다. 평소 직설적인 표현을 즐겨 쓰는 강 부총리는 이날 자신의 의견을 사족처럼 덧붙였다고 한다.
 
“IMF로 가는 문제로까지 발전할 줄은 몰랐습니다. 이것을 하면 아마도 언론은 ‘문민경제의 IMF에 의한 마감’으로 보도할 것입니다. 지금 대통령 선거를 한달 앞두고 있는데 특히 정치권은 그렇게 평가할 것입니다. 그 동안 각하가 아무리 잘한 것이 있더라도 문민경제는 IMF 구제금융으로 끝났다고 평가할 것입니다.”
  
김기환 대사, 캉드쉬에게 '비밀리에 서울 와 달라' 부탁
   
이 같은 강 부총리의 이야기에 대통령의 반응은 “IMF로 가라”는 것이 전부였다고 참석자들은 기억하고 있다. 따라서 김영삼 대통령이 “IMF로 가야 합니다”라는 아래로부터의 건의에 대해서 “꼭 내 임기 중에 가야 하느냐”고 제동을 걸었다는 항간(巷間)의 설은 부정된다.
   
이날 보고자들은 한편으로는 혹시 마지막 순간에 김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접근해서 반대하면 큰일인데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한다. 대통령이 “IMF로 가라”고 말해 그만큼 부담을 던 기분이었다고 회고하고 있다. 보고를 마치고 나온 다음에도 IMF 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 대통령께서 정말 알고 있는 건가라는 의문이 남을 정도였지만. 이날 대통령에게 보고 후 바로 강 부총리는 방콕에 와 있던 미쉘 캉드쉬 IMF 총재와 접촉할 것을 김기환(金基桓) 대외경제협력담당 대사에게 지시했다.
 
김기환 대사도 방콕에 머물고 있었다. 김기환 대사는 비밀리에 캉드쉬 총재를 만난 자리에서 금융시장 안정책과 금융개혁법의 추진상황을 상세히 설명한 뒤 유동성 부족의 해소를 위한 도움을 요청했다. 김 대사는 동시에 IMF와 구제금융 협의를 시작하겠다는 정부의 뜻을 전달했다. 귀국 길에 비밀리에 서울에 들려줄 것도 부탁했다.
   
<11월 16일(일), (휴일이므로 지표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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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쉘 캉드쉬 당시 IMF 총재. 출처: MBC 캡처
이날 저녁 6시30분 인터컨티넨털 호텔. 캉드쉬는 서울 잠입에 성공했다. 캉드쉬 일행 3명과 강경식 부총리, 이경식 한은 총재 등 우리 측 관계자와의 협상이 시작됐다. 김인호 수석은 나중에 결과를 통고 받기로 하고 서울시내 자택에서 대기 중이었다.
 
캉드쉬의 첫 질문은 외환보유고의 실태였다. 이경식 한은 총재가 설명했다. 이때는 이미 단기외채의 만기연장률(롤 오버)이 급격히 떨어져 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때문에 외환보유고는 260억 달러를 약간 상회하는 수준. 그나마 국내은행이 외국지점에 맡겨놓은 돈을 제외한 가용 외환보유고는 170억 달러 남짓했다. ‘선물환 대금’까지 이 외환보유고에서 제외한다면 더 내려가게 되었다. 회의가 시작되자마자 IMF 측과 한국 측은 바로 IMF건의 추진 일정과 절차에 대한 논의에 들어갔다.
  
‘당신 호주머니에서 돈 좀 빌려야겠다(I need the money from your pocket)’
 
이 자리에 있었던 이경식 총재의 증언. “당시 외환보유고에 대한 외신들의 의심 등 여러 가지 억측이 있었으므로 우리는 자료를 공개했습니다. IMF 측도 우리의 ‘억울하면서도 다급한’ 형편이 어떤지 바로 이해했습니다. 나는 회의를 시작하자마자 다짜고짜 ‘IMF 측에서 돈을 내놓아야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뭐 앞 뒤 생각할 틈도 없이 떠오르는 단어대로 ‘당신 호주머니에서 돈 좀 빌려야겠다(I need the money from your pocket)’이라는 엉터리 영어가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습니다. 상황이 그만큼 급했습니다.”
 
설명을 듣고난 캉드쉬는 “그럼 대체 얼마나 필요하느냐”고 물어왔다. 이 총재는 대답 대신 급한 김에 손가락 3개를 펴서 “이만큼 필요하다”고 답했다. 다시 캉드쉬가 물었다. “30억 달러요?” 이경식 총재가 답했다. “아니오. 300억 달러요.” 그렇게 해서 지원금액은 15일 한국 측 대책 회의에서 결정한 대로 300억 달러로 확정했다.
  
대통령 선거가 걸림돌
  
한국의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캉드쉬가 먼저 물어왔다. “그럼 대통령 선거 전(前)에라도 할 겁니까” 이경식 총재는 어떤 영어 단어를 사용했는지는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여유 있게 할 형편은 아니다”라고 다급함을 설명했다.
 
‘대통령 선거’라는 단어가 나오면서 잘 풀리는 것 같던 논의가 조금씩 엇갈리기 시작했다. 캉드쉬는 돌연 “그렇다면 ‘대통령 당선자’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을 내걸었다. 대선 전(大選 前)이라면 대통령 당선자가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유력 대통령 후보 전원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뜻이 된다.
 
IMF 논의 자체를 비밀에 부쳐온 한국 측으로서는 정치적으로 대단히 민감한 사안이었기 때문에 강 부총리는 “이 문제는 우리에게 맡겨달라”고 말했다. 한국 측은 금융개혁법의 국회 통과와 동시에 강도 높은 금융시장 안정대책을 발표하는 것은 물론이고 소신 있게 개혁을 주도해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IMF 측은 이 같은 한국 정부의 개혁을 지지하고 지원하는 모양으로 일을 추진해 나간다는 데 동의했다. 이날 회의는 9시가 넘어 끝났다.
 
<11월 17일(월). 외환보유고 260억(가용 163억) 달러. 종합주가 497> 
 
11월 17일 아침 7시 재경원의 한 과장이 16일 밤 IMF 측과 나눈 비밀 협의 사항을 정리한 보고서를 들고 김인호 경제수석실로 왔다. 김인호 수석은 대통령에게 그 내용을 보고했다. 이 자료는 IMF와의 협의와 관련된 유일한 정부 문건일 것이다. 경제팀은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서 문건을 만들지 않고 IMF와 접촉했기 때문이다. ‘캉드쉬 IMF 총재와의 면담 결과’라는 제목의 보고서는 다음과 같은 취지로 되어 있다. 
 
IMF "日은 적극 지원할 것... 美의 직접 지원은 재정상 힘들어"
   
 〈 IMF는 한국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금융시장과 증권시장의 개방과 개혁이 매우 중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한국정부의 개혁의지를 계속 지원할 것이다. 그 협력 방법으로 IMF의 금융전문가를 다음주 중 한국에 비밀리에 파견, 한국의 외환보유 사정을 살펴보고 구체적인 지원책을 강구할 것이며, 이 같은 IMF와의 협의진행과 관련된 논의에 대한 발표시점은 한국 정부의 판단에 맡긴다.
또 IMF는 이 같은 IMF의 지원에는 대통령 당선자의 확고한 지지가 필수적이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우리들은 지원의 규모가 현재 혼란 속에 있는 시장을 진정시킬 만큼의 큰 규모이어야 한다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한은 총재는 300억 달러의 지원선을 제시했다. 한국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금융개혁법안의 통과도 IMF의 지원에 있어 필수적 요소이다.
IMF는 금주 중 발표할 종합금융대책에 대해서도 절대적 지지를 약속한다. 이 상황을 호전시키기 위해서는 중요 국과의 협력도 긴요하다는 점에 양측은 의견을 같이했다. 일본은 최대한 적극 지원할 것으로 사료되나, 미국의 경우 직접 지원은 재정상 힘들고 IMF를 통한 지원은 아끼지 않을 것이다.〉
  
YS, “잘됐다. 다행이다”
    
이런 보고를 듣고서 김영삼 대통령은 “잘됐다. 다행이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김인호 수석은 회담 진행 과정에 대한 더 상세한 보고를 위해서 “강 부총리로 하여금 다시 보고토록 하겠다”고 말하고 물러 나왔다. 그러나 국회 일정에 매여 있던 강 부총리와 대통령의 면담시간을 서로 맞추기가 힘들었다. 김인호 수석은 다시 강 부총리와 통화를 했다. 
     
강 부총리: “김수석, 보고 잘 됐습니까?” 
김 수석: “보내주신 자료와 그 동안 말씀해주신 것은 다 보고했습니다.” 
강 부총리: “그러면 됐지요. 따로 보고할 것 있겠습니까.” 
   
이렇게 해서 이날 대통령과 부총리의 면담은 이뤄지지 않았다. 
   
<11월 18일(화), 외환보유고 252억(가용 158억) 달러, 환율 1012.8원, 종합주가 494로 하락>
 
11월 18일 국회에서는 17일에 이어 금융개혁법안에 대한 정치권의 반대를 뚫고 법안을 통과시키려는 강경식 경제팀의 마지막 시도가 계속됐다. 김인호 수석은 이날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만나 IMF 구제금융 지원요청 여부와 관련 “현재 정부와 IMF 사이에서 구체적으로 이야기가 오가고 있는 것은 전혀 없다”고 부인했다.
 
이 같은 공개적 부인(否認)이라는 연막 뒤에서 IMF 준비작업은 진행되고 있었다. 강 부총리는 18일 오후 국회 일정 중 시간을 내서 일본 미츠즈카(三塚博) 대장성 장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강 부총리는 미츠즈카에게 캉드쉬와의 접촉 내용을 통보하고 일본의 협조를 부탁했다. 두 사람은 자세한 내용의 협의를 실무선에 맡기기로 하고 나머지는 12월초 말레이시아에서 있을 아시아 재무장관 모임에서 같이 만나 더 협의하기로 했다.
 
미츠즈카는 그 전부터 말레이시아 회의 참석 여부에 관해 보조를 같이 하자고 제안해왔기 때문에 이 때 같이 참석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강 부총리는, 개별 지원에 대해서는 난색을 표명한 일본이었지만 IMF를 통한 자금 지원에는 호의적인 반응을 보여왔기에 이를 못 박아 두자는 의도로 전화통화를 한 것이었다. 미국의 루빈 재무장관에게도 19일 오전 9시30분에 전화를 하기로 미리 연락을 취해두었다.
  
강경식이 全力 쏟은 '금융개혁법안', 與野 모두 외면
 
강 부총리 팀이 전력(全力)을 쏟았던 금융개혁법안의 국회 통과는 이날 끝장이 났다. 국회 재경위는 이날 오전 전체회의를 속개하고 금융개혁법안에 대해 최종적으로 논의하려했으나 법안을 다루지도 못한 채 회의를 끝냈다.
 
법안 통과에 찬성 입장을 보이던 신한국당조차 “자칫 노동법 사태 같은 일이 생기면 선거는 끝난다”고 입장을 바꾸었다. 국민회의와 자민련도 “신한국당에서 우리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데 말려들면 안 된다”며 틀었다. 경제팀으로서는 대통령 재가까지 받은 일괄 대책 중 날개 하나를 잃어버린 것이었다. (계속)
 

입력 : 2018.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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