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조선DB
13일 제주공항에서 이륙하려던 여객기에서 한 승객이 "비행기를 잘못 탔다"며 하차해 운항이 지연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항공사에 따르면 이날 오전 7시경 제주에서 김포로 가려던 대한항공 KE1200편에 탑승한 50대 여성 승객 1명이 갑자기 내렸다. 당시는 이륙 전으로 승객들이 탑승하는 과정이어서 여객기 출구가 열린 상태였다.
이에 승무원은 "이륙 전이라도 탑승한 후에는 내릴 수 없다"고 제지했다. 불가피하게 내리려면 이유에 관한 조사와 여객기체 보안 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 역시 해당 승객에게 알렸다. 그럼에도 해당 승객은 “비행기를 잘못 타서 어쩔 수 없다”며 하차했다. 결국 기체 보안검사가 진행됨에 따라 해당 여객기는 20여분 후에야 이륙할 수 있었다.
여객기에서 내린 해당 승객은 경찰·정보기관 조사를 받았고 별다른 혐의점은 없었다. 조사과정 중 해당 승객은 "가족들과 제주 여행을 하던 중 일정보다 이르게 집으로 혼자 가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원래는) 김해로 가야 하는데, 급한 마음에 김포행 항공권을 발권 받는 바람에 잘못 타게 됐다"며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다고 한다.
이처럼 단순 착오와 개인 사정으로 인한 도중하차라도 기체 보안검사와 정보기관 조사가 뒤따를 만큼 비행기에서의 하차 승인은 엄격히 적용된다. 심리적 공포, 질병, 사건사고 발생 등 여러 사유로 비행기에서 내리는 승객들이 이따금 존재한다. 이륙하는 비행기를 세운 ‘간 큰’ 사람들의 사연을 《월간조선》이 2007년 8월호를 통해 보도했다. 관련 기사를 소개한다.
글=월간조선 뉴스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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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조선 2007년 8월호]
비행공포증 체험취재 - 이륙하는 비행기를 세운「간 큰」사람들
『너, 비행기 세워 봤어』라고 큰소리는 치지만…
●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 오고 안 내리면 죽을 것 같았던 느낌이 내리니까 멀쩡
● 김포공항에서 금년에만 27건(7월11일 현재) 발생
● 낙하산 점프 경력의 특전사 출신이 비행기 세우는 일도
● 비행공포증 전문 클리닉 등장… 서구는 성인 중 10%가 비행공포증 환자
김성동 월간조선 기자
지난 6월26일 오전 기자는 김포공항으로 향했다. 취재차 오전 10시30분 출발하는 제주行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였다. 자가진단이기는 하지만 기자는 평소 약간의 「폐쇄공포증」이 있다고 생각해 왔다.
그럼에도 국내선을 이용하는 데는 큰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신혼여행, 가족 휴가, 취재 등의 이유로 서울과 제주를 20여 차례 왕복한 경험이 있었다. 불과 2개월여 전에도 이번의 제주行 이유와 마찬가지인 「金成東의 인간탐험」 취재를 위해 다녀왔다.
김포공항 가는 교통편으로 지하철을 이용했는데 5호선 공덕역에서 전철을 갈아타는 순간, 「아, 여기서부터 김포공항역까지 수십 분을 땅속으로만 가야 하는구나(실제 걸리는 시간은 25분가량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갑갑했다.
「중간에 내려 바깥 공기를 쐬고 다시 탈까, 택시를 이용할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그대로 주저앉았다. 잠을 청하거나 다른 일을 하면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가방에서 그날의 취재 자료를 꺼내 뒤적이며 애써 갑갑함을 잊으려고 했다.
자료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다행히 지하철역마다 오르내리는 사람들의 다양한 표정을 훔쳐보며 김포공항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지하철 驛舍(역사) 바깥으로 나오자 갑갑함은 한순간에 가셨다. 살 것 같았다. 담배까지 한 대 맛있게 피운 후 공항청사 안으로 들어갔다.
동굴 속을 들어가는 느낌
예약한 비행기표를 찾아들고 일찌감치 검색대를 통과해 탑승구 앞으로 가서 탑승 개시 시간을 기다렸다. 좌석번호 40F. 오전 10시쯤 포항에 취재가 있는 사진기자로부터 문자 메시지가 왔다. 우리는 제주공항에서 합류하기로 약속한 터였다. 포항에서 제주로 출발하는데 오전 11시30분께 도착 예정이라는 내용이었다. 기자가 탑승할 비행기의 제주공항 도착 예정 시간은 오전 11시45분이었다.
오전 10시15분 탑승이 시작됐다. 양쪽 창가로 3석씩 가로 한 줄에 6석이 있는 비행기였다. 통로는 당연히 그 가운데를 지나는 한 곳뿐이었다. 예전에 탔던 비행기들은 다 통로가 두 개였다는 기억이 떠올랐다.
좌석을 찾아 비행기에 들어가는 순간 동굴 속을 들어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조금 전 지하철 안에서 엄습해 왔던 그 느낌이. 고개를 흔들며 속으로 「다른 생각을 하자」고 스스로를 달래 보았지만 갑갑함의 무게는 더해 갔다.
좌석 40F를 찾아 앉았다. 창가였다. 바깥이 보여서 좋은 게 아니라 뜨거운 햇살이 싫었다. 「통로 쪽이라면 틈틈이 다리라도 뻗을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옆 두 좌석에는 연인 한 쌍이 앉았다. 두 좌석 건너에 있는 통로가 너무 멀어 보였다. 답답함을 잊기 위해 가방에서 자료를 꺼내 들었다. 속이 메스꺼웠다. 「내리고 싶다」와 「취재 약속을 깰 수 없다」는 생각이 수없이 교차됐다.
내리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았다
눈을 감았다. 즐거운 상상을 하기로 했다. 하필이면 최근에 기자에게는 즐거운 일이 없었던 것 같다. 아무것도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눈을 떴다. 햇볕은 여전히 뜨거웠다. 창문의 햇볕 차단막을 내렸다. 기자를 포함한 199명의 승객들이 전부 자리에 앉았다.
「에라, 모르겠다. 이렇게 한 시간 10분만 죽었다고 생각하고 가자」고 결심했다. 마음이 조금은 편해지는 것 같았다. 휴대폰 전원을 끄기 위해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오전 10시25분. 시간을 보는 순간 다시 갑갑해졌다. 본능적으로 안전벨트를 풀었다. 가방을 들고 비행을 준비 중인 승무원들이 서 있는 출구로 갔다.
비행기 타는 일을 직업으로 가진 승무원들이 새삼 신기하게 보였다. 「신기해 보이는」 그들에게 『내리겠다』고 했다. 미소를 잃지 않은 女승무원이 물었다.
『무슨 일이 있으세요?』
『갑갑해서 비행기를 못 타겠어요』
신기한 것은 비행기 탑승구에 서자 다시 마음이 안정되는 것이었다. 남자 승무원이 다가왔다.
『오늘 비행기가 만석인데 선생님께서 내리시면 나머지 승객 198명도 다 내려야 합니다』
기자의 상식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말이었다.
『저만 내리면 되는데 다른 분들은 왜 내려야 하죠』
『항공법상의 보안규정이 그렇게 돼 있습니다』
女승무원이 종이컵에 냉수를 담아서 건넸다. 여전히 그녀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물 한잔 드시면 마음이 가라앉으실 거예요. 천천히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세요』
나머지 승객 198명에게 불편을 끼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女승무원의 미소도 외면할 수 없었다. 물 한 컵을 마신 후 일간지 하나를 집어들고 다시 좌석으로 돌아와 앉았다. 안전벨트를 매고 신문을 펼쳤다. 일간지 하나를 꼼꼼히 다 읽고 나면 제주공항에 도착해 있으려니 하는 기대와 함께. 그러다가 잠이 오면 더욱 좋고. 그러나 기사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륙 안내방송이 나오기 시작했다. 다시 「이렇게 비행기를 타고 가다가는 질식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내려야 한다, 내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공중에 떠서 죽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게 나머지 승객들에게 더 번거로움을 주는 일이다」
그 와중에도 기자는 나름대로 비행기에서 내려야 할 명분을 찾고 있었다.
다시 안전벨트를 풀려고 하는데 풀어지지 않았다. 당황했다. 옆에 연인과 앉아 있던 여자가 기자를 힐끗 봤다. 얼굴에서는 식은땀이 흘렀다. 그녀의 손을 끌어당기며 안전벨트를 풀어 달라고 부탁했다. 그녀는 안전벨트를 쉽게 풀었다. 후다닥 가방을 챙겨 들고 비행기 출구로 달려 나갔다.
아직 미소를 잃지 않은 女승무원이 다시 물었다.
『정말 내리셔야 되겠어요?』
『예, 내리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아서요』
『내리시면 조사를 받아야 합니다. 지금 이 비행기는 다시 보안검색을 해야 하기 때문에 30분 정도 지연돼야 하고요』
『미안합니다. 그래도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남자 승무원이 다가왔다.
『가방 외에 짐은 없습니까』
『예, 이게 전붑니다』
남자 승무원은 기자를 게이트 입구로 안내했다.
『조사원들이 올 때까지 여기에 계십시오』
잠재의식
다시 멀쩡해진 기자는 『예』 하고 대답하곤 서 있었다. 잠시 후 탑승객들이 내리기 시작했다. 창피했고 미안했다. 맨 앞에 나오고 있는 일행에게 『죄송합니다』 했다. 승객들은 기자의 「죄송함」을 받아들일 기분이 아닌 것 같았다. 하기야 주옥같은 시간 30분을 기자 때문에 뺏겼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비행기를 내리는 승객들 앞에서 등을 돌리고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비행기 안에서와는 다른 식은땀이 흘렀다.
비행기를 내리는 승객들의 긴 행렬이 기자의 눈앞에서 사라질 즈음 항공사 직원이 다가왔다. 그에게 물었다.
『지금부터 제가 무얼 어떻게 해야죠?』
『번거로우시겠지만 조사를 받으셔야 합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조사받는 일은 유쾌한 일이 아니다. 공항직원이 물었다.
『과거에도 이런 경험이 있습니까』
『처음입니다』
비행기에 탔다가 내린 일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기자는 여러 차례 비행기 타는 일을 회피한 경험이 있다. 2000년 봄, 가족이 캐나다로 여행을 가기로 했을 때 기자는 온갖 핑계를 대며 그 여행에서 빠졌다. 결국 아내와 두 아이만 다녀왔다. 장거리 비행기를 타는 것보다는 보름간 홀아비 생활하는 게 더 나았다.
이후 회사에서 몇 차례 해외 출장 기회가 주어졌지만 제사 등 온갖 핑계를 만들어 가며 피해 다녔다. 1시간가량의 국내선 비행기 탑승은 참을 수 있었지만 그 이상은 자신이 없었다.
캄보디아 비행기 추락 사건
딱 한 번 제대로 걸린 것이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취재였다. 기자들이 순번대로 돌아가는 해외 취재였기 때문에 피해갈 방법이 없었다. 사표를 쓰든지 앙코르와트를 다녀오든지, 하는 갈림길에서 사표를 쓸 수 없었던 기자는 앙코르와트行을 택했다. 막연한 공포를 극복하고 싶다는 생각도 어느 정도 있었다. 2002년 1월 하순에 벌어진 일이다.
싱가포르 공항을 경유했는데 그곳에서 프놈펜 외곽에 있는 포첸통 국제공항까지, 또 포첸통 국제공항에서 앙코르와트 유적지가 있는 시엠리아프까지 비행기를 갈아타야 하는, 기자로서는 난코스 중의 난코스였다.
비행기를 갈아탈 때마다 이국의 정취를 느끼는 게 아니라 서울로 돌아가야 할 길이 점점 더 멀어진다는 걱정뿐이었다. 「돌아갈 때는 누가 나를 기절시켜서 데리고 갔으면」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여러 차례 했다. 어쨌든 기자는 기절하지 않고 서울로 무사히 귀환할 수 있었고, 그 여행은 다시는 장시간 비행기를 타지 않겠다는 결심을 더 굳히게 했다.
기자는 비행공포증에 대해 취재하면서 전문가들로부터 당시의 캄보디아 여행과 지난 6월26일의 제주行 비행기 下機(하기) 사건이 관련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제주로 출장 가기 전날인 6월25일, 회사 부근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있는데 후배 기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후배는 『선배, 지금 캄보디아에서 한국인 13명이 탄 전세기가 추락했다는 속보가 인터넷에 떴는데, 이 비행기가 선배가 앙코르와트에 갔을 때 탔던 기종 맞죠?』 했다.
캄보디아 비행기 추락사건 자체를 모르고 있던 기자가 추락한 비행기가 기자가 탔던 비행기와 같은 기종인지 아닌지 알 턱이 없었다. 친절한(?) 후배 기자는 추락한 비행기와 같은 기종의 사진을 들고 나타났다. 「쌍발 프로펠러와 52인승」이라는 사진 설명을 보면서 기자는 같은 기종이거나 비슷한 기종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기자가 앙코르와트를 다녀와서 月刊朝鮮 2002년 3월호에 쓴 기사에는 그 비행기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포첸통 공항에서 시엠리아프로 가기 위해 탄 비행기였다.
<포첸통 공항의 국내선 청사는 한국 중소도시의 시외버스터미널 같은 풍경을 담고 있다. 60석 규모(편집자 注: 당시 기자가 어림짐작으로 좌석수를 센 것이다)의 쌍발 프로펠러 여객기에는 지정된 좌석이 없다. 먼저 차지하는 사람이 좋은 자리의 임자다. 좌석은 오래된 시골 시외버스의 좌석처럼 낡아 있었다. 좌석 뒤에 달려 있는 고무줄 달린 작은 짐꽂이도 시골 시외버스의 그것과 닮아 있다>
그때의 기억과 캄보디아 비행기 추락 사건이 잠재의식 속에서 공포를 만들었던 것이다.
국정원 등의 합동조사를 받다
공항직원은 주소 등 간단한 인적사항을 기록한 후 기자를 국정원 직원 등이 포함된 합동조사반에 인계했다. 우리는 조사실로 향했다.
비행기 탑승 후 내린 승객을 조사할 법률적 근거는 「항공 안전 및 보안에 관한 법률」이다. 이 법은 탑승했던 비행기에서 중도에 내린 승객을 어떻게 조사해야 한다는 조항은 없다. 항공사별 보안규정에 세부 절차가 규정돼 있다. 9·11사태 후 한층 강화됐다고 한다.
합동조사에 참여하는 기관은 공항에 파견돼 있는 국정원, 공항공사 폭발물 처리반, 공항 경찰대, 기무사, 건교부 공항관리소 등이다. 「對테러 문제」라는 사안의 성격상 조사를 주도하는 기관은 국정원이다. 국제선도 동일한 적용을 받는다.
국정원 직원 등 조사반원들은 기자의 인적사항을 다시 챙겼다. 기자에게 과거에도 유사한 사례가 있었는지 물었다. 제주 방문 목적과 그곳에서 만나기로 한 사람의 나이와 연락처 등을 꼼꼼하게 물었다. 그제서야 기자는 이들의 조사가 「對테러 가능성」 때문이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조사가 끝나갈 무렵, 기자는 조사를 주도한 국정원 직원에게 물었다.
―제가 비행기에서 내린 후 다른 승객들도 다 내리던데 불필요한 일 아닙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탑승 후 승객 중의 누구 한 명이라도 내리면 보안검색을 다시 해야 합니다. 테러범들이 폭발물을 설치해 놓고 먼저 내려 버릴 가능성이 있는 거니까요』
―탑승 게이트로 오기 전 검색대에서 소지품 검사를 다 마쳤는데요.
『만의 하나의 가능성에 대비하는 겁니다. 실제 테러범이 비행기에 폭발물을 설치해 놓고 자신만 먼저 내려 버린 사례는 국내에서 아직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가능성이 있다면 다소 불편하더라도 승객들의 안전을 먼저 생각해야죠』
―어떤 검사를 합니까.
『선생님께서 앉았던 좌석의 앞뒤 등 세 줄의 좌석을 뜯고 샅샅이 조사를 합니다. 화장실과 머리 위 선반도 검색 대상입니다』
―국정원 직원이 합니까.
『국정원과 항공사 승무원이 함께 실시합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면 다른 승객 가운데서 탑승을 안 하는 경우가 있습니까.
『아무래도 불안한 마음이 들고 하니까 그러는 분들이 간혹 있습니다』
―이런 일로 인해 비행기는 보통 몇 분 지연됩니까.
항공사 직원이 대신 답했다.
『대략 30분 정도 지연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러고 보니 합동조사반에서 조사받는 데 30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됐다.
「글로벌 시대의 미아」
조사가 끝난 후 조사반은 기자를 다시 항공사 직원에게 인계했다. 같은 비행기를 탔던 승객들에게 미안했지만, 기자 때문에 번거로운 업무처리를 맡게 된 항공사 직원에게도 미안했다. 시간 지연 등 항공사가 기자 개인으로 인해 피해를 입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출발장 바깥으로 기자를 안내하던 항공사 직원에게 물었다.
―제가 어떤 배상을 해야죠.
기자를 안내하던 항공사 직원이 웃으며 말했다.
『배상하는 것은 없습니다. 다만 비행기표 환불을 받을 때 약간의 취소 수수료를 지불하면 됩니다. 일반 승객들이 탑승을 못 해서 환불받을 때와 동일합니다』
당시 기자가 제주行 비행기표를 구입하는 데 든 비용은 공항이용료를 포함해 7만3400원. 취소 수수료는 운임의 10% 정도다. 기자는 공항이용료를 포함해 7만700원을 돌려받았다. 굳이 따지면 2700원을 손해 본 것이지만 198명의 승객들에게 30분씩의 시간 손실을 준 비용, 지연 운항으로 인한 항공사의 피해를 감안하면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닌」 손해였다.
공항청사 밖으로 나왔다. 시원한 바람을 기대했지만 바람은 불지 않았다. 상황을 보고하기 위해 회사로 전화를 했다. 후배 기자가 전화를 받았다. 이야기를 듣던 후배 기자가 낄낄 웃었다. 후배에게 기자는 이렇게 말했다.
『너, 비행기 세워 봤어, 나는 세워 봤어』
나름대로 유머라고 한 소리지만 기자의 마음은 참담한 상태였다. 설명할 수 없는 속상함이 해일처럼 밀려왔다. 담배를 거푸 세 개비 피웠다. 그제서야 제주도에 도착해 있을 후배 사진기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휴대전화를 걸었다.
『李기자, 난데. 오전 11시45분 도착 예정이던 김포공항발 비행기가 한 30분 지연되고 있지?』
『네, 선배. 30분 지연된다는데… 어, 그런데 선배 지금 비행기 안에서 전화하는 건 아니죠?』
아침에 벌어진 상황을 설명해 주고 현지 사진 취재부터 부탁했다. 세계 60개국 이상을 다니며 여행전문가로도 활동 중인 후배 사진기자는 『그런 상황이면 안 타길 잘 했어요. 큰일 날 뻔했네요』라고 위로하며 전화를 끊었다. 후배는 위로의 말을 건넸지만, 전화 통화하는 동안 기자의 얼굴은 화끈거렸다.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회사 동료들의 얼굴은 어떻게 보고, 가족들에게는 뭐라고 설명할 것인지, 참으로 암담하고 부끄러운 노릇이었다. 그날은 나 자신이 「글로벌 시대의 미아」라는 사실을 절절하게 체험한 날이었다.
비행기를 세운 사람들
기자처럼 「간이 작아서」 또는 부득이한 사정으로 인해 탑승했다가 비행기를 세우는 「간 큰」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국정원에 따르면 김포공항의 경우 올 한 해(7월11일 현재) 승객이 비행기에 탑승했다가 비행을 포기한 사례는 27건에 이른다고 한다. 보통 한 해에 40~50차례 이같은 사례가 발생한다고 한다.
금년에 발생한 27건을 분석해 보면 폐쇄공포증·고혈압 등 건강 이상이 12건, 탑승 후 갑작스런 일정 변경 등의 사정이 10건, 가족 위독 소식 등 가족의 일 때문이 4건, 서류분실 이유는 1건이 발생했다고 한다.
대부분 비행기가 이륙을 위해 움직이기 전에 내리는 경우가 많지만, 간혹 이륙을 위해 활주로로 이동 중에 『내려 달라』고 호소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지난해 7월에는 보험회사에 다니는 41세 남자가 런던行 비행기가 활주로로 이동하던 중 급하게 『내려 달라』고 호소해 출발했던 게이트로 다시 돌아오는 소동이 벌어졌다고 한다.
출발을 알리는 안내방송 때까지 별다른 증상을 보이지 않던 이 승객은 비행기가 이륙을 위해 활주로를 향해 움직이는 순간 호흡곤란을 호소했다. 승객이 원할 경우 비행기는 다시 출발지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이 승객은 수화물 칸에 짐을 실었기 때문에 비행기 안 뿐만 아니라 수화물 칸까지 보안검색을 다시 받아야 했다. 지연시간이 훨씬 길어졌음은 물론이다.
공수특전사 요원도 비행기 세워
낙하산 점프 경력이 있는 특전사 출신의 승객이 활주로로 이동 중인 비행기를 되돌려 내린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이 승객은 특전사 중사 출신이었다. 1994년에 벌어진 일인데 軍에서 제대 후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가던 중이었다고 한다.
원인은 폐쇄공포증이었는데 심한 호흡곤란으로 비행기를 세웠다. 나중에 알고 보니 특전사에서 함께 근무한 동료가 낙하산 점프를 하다가 사고당한 사건을 잠재의식 속에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특전사 출신은 자신이 폐쇄공포증이 있다는 것을 그때까지 전혀 몰랐다가, 그 소란을 겪고 나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고 한다.
개인 일정변경으로 인한 경우는 대부분 출장지에서 예정되었던 회의가 취소된다거나, 지방에서 올라왔다가 비행기 탑승 후 갑자기 서울의 업무처리가 더 시급하다는 연락을 받고 내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분실물 때문에 급하게 내리는 경우도 있는데, 분실물이 高價(고가)일 때 간혹 발생한다고 한다. 실례로 비행기를 타기 전 화장실에 들렀다가 다이아 반지를 두고 온 것이 탑승 후에 생각 나서 비행기를 내린 승객이 있었다고 한다.
정작 두고 온 서류 때문에 비행기를 내리면서 건강을 핑계 대는 사람이 종종 있다고 한다.
지난 5월 중순 김포공항에서 부산 김해공항으로 가는 비행기에서였다. 중년의 재미교포가 갑자기 고혈압이 왔다며 내려 달라고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묵고 있던 호텔에 부동산 관계 서류를 두고 와서 그것을 찾으러 가기 위한 속셈이었다.
조사 과정에서 그 사실이 밝혀지자 재미교포는 『다른 승객들에게 미안해서 고혈압을 가장했다』고 고백했다고 한다.
중간에 내린 승객 별도 관리하지 않아
한 항공사의 경우에는 김포공항을 이용하는 탑승객이 내리는 사례가 연 평균 30회 정도 발생한다고 한다. 금년에는 6월30일까지 23건이 발생했는데, 비율로 나눠 보면 건강상 이유가 45%였고, 개인 일정변경이 그보다 약간 많은 47%였다. 나머지는 분실물 관련이다.
비행기를 내리는 승객들의 평균 나이는 42세 정도였다.
김포공항 지점의 한 항공사 관계자는 개인 일정변경이 많은 이유로 휴대전화 사용을 들었다.
―기내에서는 휴대전화 사용이 금지돼 있지 않습니까.
『그래도 사용하는 분들이 많아요. 이륙 직전까지 열심히 문자 보내고 통화하시죠. 그 과정에서 회의 일정이 변경되었다거나 가족이 위독하거나 사고를 당했다는 연락을 받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 거죠. 그런 상황에서는 휴대전화를 사용했다고 나무랄 수도 없고 참 난처하죠』
―건강상 이유로 내리는 분들의 증상은 어떻게 나타납니까.
『통상적으로 폐쇄공포증이 제일 많은데 승객이 숨을 못 쉽니다. 땀을 흘리고 눈의 초첨이 흔들리죠. 여러 가지 원인이 있지만 전날의 과도한 음주가 원인이 될 수 있어요』
―술 때문에 비행기에서 내리는 분이 있습니까.
『간혹 있죠. 지방에서 서울의 친척 행사 등에 참석한 후 술을 드시고 오시는 분들이 간혹 있지만 예전처럼 심하지는 않습니다. 대부분 양치질하게 하고 바람을 쐬게 해드리면 탑승할 정도의 상태가 됩니다. 간혹 그게 안 되는 분들이 있는데 1년에 한두 분 정도 그런 경우가 발생합니다』
―9·11 사태 후 공항과 비행기안전보안이 강화됐는데, 요주의 인물을 관리하는 리스트가 있습니까.
『미국의 TSA(美 국토안보부 산하 교통안전국)라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작성한 요주의 인물 리스트가 14만 명인데 그 명단에 한국인·중국인의 이름과 비슷한 동양인이 60여 명 있어요. 국가별로는 안 나오기 때문에 60여 명의 명단을 집중 관리하죠. 우리는 통상적으로 그 명단을 「워치 리스트」라고 부릅니다. 정밀 검색 후에 태울 수 있는 사람과 아예 탑승을 거부하는 두 부류로 나뉘어 있습니다』
―저처럼 비행기를 탔다가 내린 사람들도 주요 관리 대상이 되지 않습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그분들을 「下機 승객」이라고 부르는데 「下機 승객」의 명단을 데이터베이스化하지 않습니다. 사건 발생시 인적 사항을 보고하기는 하지만 그 자료를 전산화하지는 않습니다. 부서 차원에서 리스트 취합은 하지만 그것을 승객의 비행기 탑승 여부와 관련짓지는 않습니다. 지금까지 동일한 인물이 비행기에 탑승했다가 다시 내린 사례는 없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비행기 공포
전문가들에 따르면 폐쇄공포증 등의 비행공포증은 오히려 비행기를 많이 타본 사람들에게 발생할 확률이 높다고 말한다.
벤처사업가 류 某씨(41)의 경험담이다.
2001년 2월, 류씨는 제주도 여행을 가기 위해 김포공항에서 비행기를 탔다. 젊은 시절에는 인도로 배낭여행을 다녀오고, 사업을 하면서 해외를 자주 드나들었던 그에게 비행기는 버스나 택시 같은 대중교통과 별반 다를 게 없는 교통수단이었다.
물론 승용차로 터널을 지날 때나 교량 위를 달릴 때는 까닭모를 불안에 휩싸이는 일이 간혹 있기는 했다. 의식하면서 살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당시 제주行은 경영하는 회사의 코스닥 등록을 앞두고 푹 쉬는 게 목적이었기 때문에 가벼운 마음으로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가 이륙한 후 갑자기 「이상하다」는 생각과 동시에 극심한 호흡곤란 증세와 공포감이 밀려왔다. 비행기 안에서 그런 증상이 올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던 류씨는 그런 상황이 더 당혹스럽기까지 했다.
다행히 女승무원이 이런 상황에 대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공포에 휩싸인 류씨는 과호흡 상태로 헐떡거리기 시작했다. 체내에 산소가 많아지면 더 불안해진다고 한다.
호흡 조절이 필요한 상태에서 女승무원은 종이봉투로 류씨의 입을 막고 옆에서 『하나, 둘, 셋』을 세면서 규칙적으로 숨을 쉬게 했다. 千辛萬苦(천신만고) 끝에 제주공항에 내렸다. 언제 그랬느냐는 듯 멀쩡해졌지만 다시 서울로 돌아갈 생각을 하니 눈앞이 캄캄했다. 또다시 그 공포가 올까 봐 두려웠다.
제주 도착 이튿날 서귀포에 있는 신경정신과에 갔다. 의사는 「공황장애」라는 진단을 내렸다.
공황장애란, 예측할 수 없는 순간이나 어떤 특정한 상황에서 극심한 불안 상태가 나타나는 장애다. 자신은 죽을 것 같은 공포로 심장마비 또는 뇌졸중 등을 걱정하지만, 검진을 통해서는 아무 이상을 발견할 수 없다는 점이 특징이다. 全인구의 1~3%가 이 장애를 겪는다고 한다.
주요 증상으로는 호흡이 가빠지거나 숨이 막히고, 가슴이 답답하면서 어지럽고, 손발이 저리거나 몸이 떨리는 등의 신체적 증상과 함께, 공포·불안·두려움 등의 심리적인 증상을 동반한다고 한다. 비행기를 타지 못하는 사람들 중에 이 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폐쇄공포증보다 치료 기간이 길다고 한다.
폐쇄공포증이란 불안발작을 경험할 것 같은 장소나 이때 빨리 빠져나오지 못할 것 같은 상황에 대한 공포증상이다. 비행기뿐만 아니라 엘리베이터·고속버스·지하철 같은 데에서 불안을 느끼는 경우도 많다.
류씨는 신경정신과에서 지어 준 약을 먹고 서울로 올 수 있었다. 속된 말로 그 약을 먹고 「필름이 완전히 끊긴 상태」로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정신 차렸을 때는 승용차가 올림픽 대로를 달리고 있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신경정신과 등의 병원을 찾아다녔다. 최면요법과 심리분석을 다 해봤다. 병원이 권하는 대로 약 먹고 치료받았지만 전혀 좋아지지 않았다. 몇 년 동안 그렇게 고생을 했다. 웬만한 비행기 탈 일이 있으면 회피해 버렸다.
비행공포증 전문 치료 기관 등장
그렇다고 사업상 해외 출장을 가지 않을 수는 없었다. 北京을 자주 갔는데 그때마다 퍼스트 클래스석에서 술과 약을 먹으며 거의 기절한 상태에서 출장을 갔다. 한번은 北京에서 인천공항으로 돌아올 때 도저히 자신이 없어서 비행기에서 내리겠다고 했다.
결국은 北京에서 인천공항에 도착할 때까지 『이 비행기는 안전합니다, 비행기는 교통수단 중 가장 안전한 수단입니다』는 남자 승무원의 이야기를 쉬지 않고 들으면서 귀국했다.
여러 병원을 떠돌아다니던 류씨는 비행공포증 전문 치료기관으로부터 공황장애가 아닌 폐쇄공포증이라는 진단을 받고, 최근에는 명상요법으로 치료하고 있다고 한다.
류씨는 명상요법으로 비행기에 대한 공포를 치료하고 있지만, 국내에 비행공포증 치료 클리닉이 있다. 2003년 11월 대한항공과 「비행공포증연구소」(소장 李相旼·이상민·38)가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는 비행공포증 치료 클리닉으로, 국내 유일의 클리닉이다.
단순비행공포증·폐쇄공포증·고소공포증·공황장애 등 비행공포증에 대한 진단을 통해 「가상현실치료」, 「대한항공 견학 및 모형항공기 탑승 치료」, 「실제 항공기 탑승」 등 세분화된 프로그램을 통해 항공여행에 대한 불안을 극복하도록 돕고 있다.
설립한 지 3년 8개월여가 지난 지금까지 270여 명의 내원객 중 170여 명이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치료 성공률은 95% 정도라는 게 비행공포증연구소의 주장이다. 기업 경영자·연예인·학자·자영업자·주부·학생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치료받고 있다고 한다. 다음은 李相旼 소장과의 인터뷰다.
―개그맨 출신의 방송 MC 남희석씨도 이곳에서 치료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분이 2005년 초에 치료를 받았어요. 항공기 탑승 직후 다시 내려 버린 경험이 있는 분이죠. 의학적으로는 「광장공포증」으로 진단이 나왔죠. 용어는 다른 것 같지만 폐쇄공포증과 광장공포증은 유사해요. 광장공포증 안에 폐쇄공포증이 들어간다고 보면 될 겁니다. 남희석씨는 현재 항공여행에 아무런 지장이 없는 상태입니다』
―주로 어떤 연령대의 분들이 치료를 받으러 옵니까.
『외국 논문을 보면 비행공포증은 나이가 들수록 더 증가한다고 돼 있는데, 실제로 우리한테 오시는 분들은 한창 일하는 30~40代 분들이 많아요. 예를 들어 여행 목적으로 비행기를 타는 분들은 안 타면 그만이고 포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분들은 일 때문에 비행기를 타야 하니까 많이 찾아오시죠』
―치료 성공률이 95%라고 하는데, 치료가 안 되는 분들은 어떤 이유 때문입니까.
『타입에 따라 다른데, 폐쇄공포증 환자들은 치료시 비행기를 타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그 전에 닫힌 공간에 대한 적응 치료를 합니다. 「점진적 노출 치료」라고 합니다. 그 과정이 힘드니까 중간에 포기하는 경우가 있고요.
다른 비행공포증 환자들은 항공기에 대한 안정성이나 정비·조종에 대한 이야기를 해드리는데, 대부분 생각이 많이 바뀌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불안감을 완전히 버리지 못하는 분들이 있어요』
비행기 많이 탈수록 공포증 잘 걸려
「비행공포증연구소」李相旼 소장.
―어떤 직업을 가진 분들이 많습니까.
『비즈니스하는 분들이 많아요』
―비행공포증 환자가 증가하는 추세입니까.
『당연히 증가하죠. 비행공포증은 비행기를 많이 타는 분들에게 더 잘 발생합니다. 비행기를 한두 번 타는 사람들은 호기심이 있어 신기하기도 하고, 여행의 즐거움이 있어 보통 컨디션이 좋은 상태에서 비행기를 즐겁게 탈 가능성이 높습니다. 비행기를 많이 타다 보면 기분 나쁜 경험할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나쁜 경험의 예를 들어주실 수 있습니까.
『비행기를 많이 타다 보면 즐겁지 않은 상황에서 여행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재판을 받으러 간다든지, 비행기를 타고 가서 도착하는 곳에 기다리는 일들이 버거운 일들이라든지, 하는 심리적인 부담 상태에서 비행기를 타면 공황장애나 폐쇄공포증이 생길 가능성이 있죠. 단순비행공포증 같은 경우 우리가 특정공포증이라고 하는데, 특정공포증은 비행기가 난기류로 흔들린다거나 비행기가 착륙을 하려다 다시 뜨는 경우가 있어요. 기분이 나쁘죠. 선회를 한다거나, 비행기 출발이 지연된다거나 이런 경험을 자꾸 하다 보면 환자분들 입장에서 비행기가 무섭고 불쾌한 입장이 들게 마련이죠』
―비행공포증 클리닉을 찾아오시는 분들은 비행기 탑승 횟수가 상대적으로 많은 분들이겠네요.
『저희한테 오는 분들을 보면 평균 비행탑승 횟수가 100회 정도예요. 500번, 1000번 탄 분도 있어요』
―비행공포증에는 광장공포증과 폐쇄공포증이 같은 뜻으로 사용되는 것 같습니다.
『비행공포증에서 「기분 나쁜」 것과 「위험한 것」에 대한 느낌은 차이가 있는데, 이걸 구분해야 합니다. 비행기의 안전성을 걱정하는 것은 「상황형 특정공포증」이라고 합니다. 안전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그 안에 들어가서 숨 막히고, 심장이 멎을 것 같고, 쓰러질 것 같은 느낌을 경험하는 것을 공황 장애나 폐쇄공포증·광장공포증 타입이라고 하지요.
광장공포증과 폐쇄공포증이 유사하다는 것은 광장공포증이 넓은 데 가면 불안하다는 게 아니라, 특정 장소에 있으면 불안하다는 뜻이기 때문이죠. 특정 상황과 장소에서 불안하다는 것이죠. 그 특정 장소에 폐쇄된 공간이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폐쇄공포증은 광장공포증의 한 분류죠』
비행기의 좁은 좌석도 한 요인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좁은 좌석이 심리적으로 영향을 주는 것 같던데요.
『비행기의 좌석이 좁은 것은 과거나 지금이나 차이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좁은 것에 신경 쓰는 사람은 폐쇄공포증일 가능성이 더 많고요. 그분들 같은 경우는 비즈니스석을 타면 실제 불안이 감소한다고 합니다』
―치료받는 사람들의 지역별 분포는 어떻습니까.
『아무래도 서울이죠. 서울에서는 강남 사람들이 많죠. 분포로는 전국적으로 있습니다. 지금도 진주에서 차량을 직접 몰고 와서 치료받는 분이 있습니다. 제일 기억나는 분 중의 한 분은 제주도에 사는 분인데, 제주에 사는 분들이 비행기를 못 타면 생활하기 곤란하니까, 그분 같은 경우는 치료를 받으러 이를 악물고 비행기를 타고 오셔서 2주 동안 치료를 받고 갑니다』
―치료 기간은 어떻습니까.
『단순비행공포증은 2~3주 만에 치료가 가능하고, 폐쇄공포증은 2개월, 공황장애는 3개월에서 6개월 이상 걸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비행기 승무원들이 치료받은 경우는 있습니까.
『저희 같은 경우는 문의를 받은 경우는 있는데 치료한 일은 없고요. 네덜란드에 왕립항공사인 KLM이 운영하는 비행기공포증 치료 프로그램으로 「VALK」라고 있어요. 이 프로그램에서는 객실 승무원 10명 정도가 매년 치료를 받는다고 합니다』
―비행공포증을 가진 사람들은 얼마나 됩니까.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 성인의 10% 정도가 비행공포증 환자라고 합니다. 저희는 그것보다는 낮을 겁니다. 미국이나 유럽보다 비행기를 덜 타도 되니까요. 9·11 테러 이후 미국의 국내선 항공사들의 상당수가 도산했어요. 테러 위협 이후 비행공포증이 상당히 많아져서 이제는 10%가 더 된다는 말도 있죠』
李소장은 『언론이나 영화가 비행공포증을 유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면서, 『비행기 타는 일을 불편하게 생각하는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치료를 통해 극복할 수 있는 질병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기자는 비행공포증과 관련된 취재를 하던 중 자유기업원 李春根(이춘근) 부원장이 캄보디아 비행기 추락사건 직후인 지난 6월30일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 비행기의 안전성을 강조한 글을 읽을 수 있었다.
『비즈니스하는 분들이 많아요』
―비행공포증 환자가 증가하는 추세입니까.
『당연히 증가하죠. 비행공포증은 비행기를 많이 타는 분들에게 더 잘 발생합니다. 비행기를 한두 번 타는 사람들은 호기심이 있어 신기하기도 하고, 여행의 즐거움이 있어 보통 컨디션이 좋은 상태에서 비행기를 즐겁게 탈 가능성이 높습니다. 비행기를 많이 타다 보면 기분 나쁜 경험할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나쁜 경험의 예를 들어주실 수 있습니까.
『비행기를 많이 타다 보면 즐겁지 않은 상황에서 여행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재판을 받으러 간다든지, 비행기를 타고 가서 도착하는 곳에 기다리는 일들이 버거운 일들이라든지, 하는 심리적인 부담 상태에서 비행기를 타면 공황장애나 폐쇄공포증이 생길 가능성이 있죠. 단순비행공포증 같은 경우 우리가 특정공포증이라고 하는데, 특정공포증은 비행기가 난기류로 흔들린다거나 비행기가 착륙을 하려다 다시 뜨는 경우가 있어요. 기분이 나쁘죠. 선회를 한다거나, 비행기 출발이 지연된다거나 이런 경험을 자꾸 하다 보면 환자분들 입장에서 비행기가 무섭고 불쾌한 입장이 들게 마련이죠』
―비행공포증 클리닉을 찾아오시는 분들은 비행기 탑승 횟수가 상대적으로 많은 분들이겠네요.
『저희한테 오는 분들을 보면 평균 비행탑승 횟수가 100회 정도예요. 500번, 1000번 탄 분도 있어요』
―비행공포증에는 광장공포증과 폐쇄공포증이 같은 뜻으로 사용되는 것 같습니다.
『비행공포증에서 「기분 나쁜」 것과 「위험한 것」에 대한 느낌은 차이가 있는데, 이걸 구분해야 합니다. 비행기의 안전성을 걱정하는 것은 「상황형 특정공포증」이라고 합니다. 안전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그 안에 들어가서 숨 막히고, 심장이 멎을 것 같고, 쓰러질 것 같은 느낌을 경험하는 것을 공황 장애나 폐쇄공포증·광장공포증 타입이라고 하지요.
광장공포증과 폐쇄공포증이 유사하다는 것은 광장공포증이 넓은 데 가면 불안하다는 게 아니라, 특정 장소에 있으면 불안하다는 뜻이기 때문이죠. 특정 상황과 장소에서 불안하다는 것이죠. 그 특정 장소에 폐쇄된 공간이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폐쇄공포증은 광장공포증의 한 분류죠』
비행기의 좁은 좌석도 한 요인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좁은 좌석이 심리적으로 영향을 주는 것 같던데요.
『비행기의 좌석이 좁은 것은 과거나 지금이나 차이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좁은 것에 신경 쓰는 사람은 폐쇄공포증일 가능성이 더 많고요. 그분들 같은 경우는 비즈니스석을 타면 실제 불안이 감소한다고 합니다』
―치료받는 사람들의 지역별 분포는 어떻습니까.
『아무래도 서울이죠. 서울에서는 강남 사람들이 많죠. 분포로는 전국적으로 있습니다. 지금도 진주에서 차량을 직접 몰고 와서 치료받는 분이 있습니다. 제일 기억나는 분 중의 한 분은 제주도에 사는 분인데, 제주에 사는 분들이 비행기를 못 타면 생활하기 곤란하니까, 그분 같은 경우는 치료를 받으러 이를 악물고 비행기를 타고 오셔서 2주 동안 치료를 받고 갑니다』
―치료 기간은 어떻습니까.
『단순비행공포증은 2~3주 만에 치료가 가능하고, 폐쇄공포증은 2개월, 공황장애는 3개월에서 6개월 이상 걸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비행기 승무원들이 치료받은 경우는 있습니까.
『저희 같은 경우는 문의를 받은 경우는 있는데 치료한 일은 없고요. 네덜란드에 왕립항공사인 KLM이 운영하는 비행기공포증 치료 프로그램으로 「VALK」라고 있어요. 이 프로그램에서는 객실 승무원 10명 정도가 매년 치료를 받는다고 합니다』
―비행공포증을 가진 사람들은 얼마나 됩니까.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 성인의 10% 정도가 비행공포증 환자라고 합니다. 저희는 그것보다는 낮을 겁니다. 미국이나 유럽보다 비행기를 덜 타도 되니까요. 9·11 테러 이후 미국의 국내선 항공사들의 상당수가 도산했어요. 테러 위협 이후 비행공포증이 상당히 많아져서 이제는 10%가 더 된다는 말도 있죠』
李소장은 『언론이나 영화가 비행공포증을 유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면서, 『비행기 타는 일을 불편하게 생각하는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치료를 통해 극복할 수 있는 질병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기자는 비행공포증과 관련된 취재를 하던 중 자유기업원 李春根(이춘근) 부원장이 캄보디아 비행기 추락사건 직후인 지난 6월30일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 비행기의 안전성을 강조한 글을 읽을 수 있었다.
가장 안전한 교통수단 항공기
<항공기는 많은 사람들의 인식과 달리 가장 안전한 여행 수단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공기 여행은 많은 사람들이 불안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마이클 잭슨, 무하마드 알리 등도 비행기 타는 것을 무서워한다고 합니다. 세계에서 제일 안전한 상업용 항공 여행 체제를 갖춘, 그리고 항공 여행을 제일 많이 하는 미국 국민들 중 20% 정도는 비행기 타는 것이 무섭다고 대답 한답니다(2001년 3월의 갤럽 여론조사).
MIT 대학의 통계학자 아널드 바넷 교수는 1967~1976년 10년간 비행기 사고로 사망할 확률은 200만 분의 1, 1987~1996년의 경우는 500만 분의 1 이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500만 분의 1이라 함은 우리가 매일 비행기를 한 번씩 1만3000년 동안 계속 탈 경우 한 번 발생할 수 있는 확률입니다. 현재는 1000만 분의 1 정도라 합니다.
1996년 미국의 국립운송안전국(NTSB)은 비행시간 10만 시간당 항공사고 사망률이 0.026이라 발표했는데, 이는 하루에 24시간씩 400년 동안 계속 비행기에 탑승하고 있을 때 한 번 발생하는 경우와 같은 것이라 합니다>
「글로벌 시대의 미아」가 되지 않으려면 이 글을 열심히 외워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