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남산의 부장들> 스틸컷
박정희 전 대통령의 최후를 다룬 영화 <남산의 부장들>에는 자칫 커다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장면이 나온다. 바로 박 전 대통령 금고에 담긴 스위스은행 계좌 목록과 금괴다.
영화를 보면, 10·26 사건 이후 전두혁 보안사령관이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 금고에서 금괴와 스위스은행 계좌 목록이 적힌 종이들을 가방에 넣고 빠져나가는 장면이 등장한다. 전두혁 보안사령관은 전두환 전 대통령을 모델로 했다.
관객들이 이 장면을 본다면, 박 전 대통령이 마치 스위스은행에 거액을 예치해 두고 있던 걸로 오인할 수 있다. 물론 이는 사실과 완전히 다르다.
박 전 대통령 사후(死後), 전두환 측이 박 전 대통령의 비밀 금고를 열어본 것은 사실이다. 문제의 금고에서 나온 건 9억 5000만 원이 전부였고, 스위스은행 계좌 목록이나 금괴 등은 발견되지 않았다.
조갑제(趙甲濟) 기자(전 월간조선 대표·조갑제닷컴 대표)가 1990년 3월호 《월간조선》에 쓴 기사 중 관련 대목을 보자.
<(박정희) 대통령의 국장(國葬)이 끝난 며칠 뒤 합수본부의 한 중령이 청와대로 와 비서실장실 금고 안에 든 돈의 처리지침을 통보하였다. 법률적으로는 아무리 계엄하라 하더라도 청와대 비서실이 합수본부의 지시를 받을 이유가 없었으나 그때 전두환 합수본부장의 위세는 대단하였다. 청와대에서는 그 중령이 하자는 대로 금고 안의 돈 9억 5000만 원을 처분하였다, 권숙정(權肅正) 청와대 비서실장 보좌관은 6억 원을 떼 내 박 대통령의 장조카 박재홍(朴在鴻)씨(당시 동양철관 사장)와 합수본부 중령의 입회 아래에서 (박)근혜씨에게 샘소나이트 가방에 현금과 수표를 넣어 전달하였다. 영수증도 받았다. 청와대 측에선 이때 그 동안 비서실장실 금고에서 지출된 돈의 사용처를 적은 기록을 폐기하였다.>
이에 대해 전두환 전 대통령은 1989년 12월 31일 국회 증언에서 “계엄사령관의 허가를 받아 1억 원은 합수본부의 수사비로 쓰고 2억 원은 육군참모총장에게, 5000만 원은 국방장관에게 전달했다”고 밝혔다. 여기서 말하는 육군참모총장은 당시 계엄사령관을 겸임하고 있던 고(故) 정승화씨를 말한다. 이어지는 기사의 한 대목이다.
<정승화 당시 계엄사령관의 이야기는 좀 다르다. “어느 날 전(全) 본부장(전두환 국군 보안사령관 겸 합동수사본부장)이 찾아와 이런 보고를 했습니다. ‘김계원 전 대통령 비서실장을 조사하다가 청와대에서 아무 데도 기록되지 않은 돈 9억 원을 찾아냈습니다. 박 대통령께서 남긴 재산이 없어 그 가족의 생계가 어려울 것 같아 6억 원은 근혜양에게 주고 1억 원은 합수본부 수사비로 쓰도록 빼놓고 2억 원은 여기 가져왔습니다. 이것은 총장님이 쓰시지요.’
받아보니 수표 20장이었습니다. 나는 하도 어이가 없어 당장 9억 원을 전부 회수시킬까 하다가 대통령 유족에게 못할 짓이란 생각이 들어서 엄중하게 주의를 주었고 받은 2억 원은 최인수 (육군본부) 비서실장을 시켜 은행에 예금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며칠 뒤 이 사실을 노재현 국방장관에게 보고했더니, 그도 전두환 장군이 가져온 5000만 원을 받아서 해·공군참모총장에게 2000만 원씩 나누어주고 국방부에서도 1000만 원을 쓰도록 했다고 합니다.>
받아보니 수표 20장이었습니다. 나는 하도 어이가 없어 당장 9억 원을 전부 회수시킬까 하다가 대통령 유족에게 못할 짓이란 생각이 들어서 엄중하게 주의를 주었고 받은 2억 원은 최인수 (육군본부) 비서실장을 시켜 은행에 예금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며칠 뒤 이 사실을 노재현 국방장관에게 보고했더니, 그도 전두환 장군이 가져온 5000만 원을 받아서 해·공군참모총장에게 2000만 원씩 나누어주고 국방부에서도 1000만 원을 쓰도록 했다고 합니다.>
정리하면, 9억 5000만 원 중 6억원은 딸 근혜씨에게 '생계비' 명목으로, 2억 원은 정승화 측에, 1억 원은 전두환 측에, 5000만 원은 국방부와 해·공군참모총장에게 갔다는 얘기다. 금고의 돈을 확인하는 과정에 있어서 정승화-전두환 두 사람의 기억은 다소 엇갈리지만, 9억 5000만 원이란 액수와 그 용처만큼은 일치하는 주장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영화에 등장한 스위스은행 계좌 목록이나 금괴 따위에 대한 이야기는 찾아볼 수조차 없다.
박정희와 스위스은행 커넥션은 그간 진보좌파세력이 단골로 써 먹던 '음모론' 중 하나다. 이런 음모론이 나온 연유는 1978년 출간된 미국 의회 국제관계위원회 산하 국제기구소위원회(당시 위원장 도널드 M. 프레이저)의 한미관계 조사보고서 때문이다. 이 보고서는 위원장의 이름을 따 흔히 ‘프레이저 보고서’라고도 불린다.
1985년 12월호 《월간조선》은 ‘미스터리 인물, 이후락 커넥션’이란 기사(조갑제 기자 작성)에서 이 보고서의 내용을 최초로 보도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문제의 스위스 은행 계좌는 ‘박(朴) 정권’의 실세 이후락(李厚洛·2009년 사망)씨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게 정설(定說)이다.
당시 《월간조선》은 ‘프레이저 보고서’를 인용해 스위스 은행의 관련 계좌번호는 물론, 이후락씨가 어떤 방식으로 돈을 관리·운용했는지 등을 상세히 보도했다. 기사에 따르면, 1965년 서정귀(徐廷貴)씨는 흥국상사라는 회사를 운영하면서 대한석유공사의 벙커C유(油) 판매권을 얻어 막대한 이득을 취하고 있었다. 서정귀씨는 이후락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의 지원하에 1969년부터 가동을 시작한 호남정유의 대주주(뒤에 사장)가 됐다. 걸프사는 흥국상사의 주식 25%의 추가 인수를 확정하고 서정귀 흥국상사 사장과 교섭에 들어갔다. ‘프레이저 보고서’ 부록에는 이런 기술이 있다. 《월간조선》 기사에서 옮긴다.
〈주식 인수 대금을 200만 달러에 합의한 직후 이후락은 걸프와 한국 주재 대표인 힐 보닌에게 연락, 관계자 회의를 요청했다. 이 회의에는 이후락, 서정귀, 보닌, 그리고 몇몇 주주들이 참석했다. 이후락은 서(徐)씨의 양해를 얻은 다음 주식 인수 대금 200만 달러 가운데 20만 달러를 박 대통령의 미국 방문 경비로 건네줄 것을 요청했다. 보닌은 이 제의를 (피츠버그 본사에 있는 한국 투자 담당자) H.I. 굿맨에게 전달했고, 굿맨은 E.D. 로니에게 보고했다. 로니는 20만 달러의 송금을 이후락이 제안한 방법대로 하도록 승인했다.〉
보고서는 “1969년 8월 21일 미국 피츠버그의 걸프 본부는 20만 달러를 전신환(電信換)으로, 스위스 취리히에 있는 스위스 유니온 은행(UBS)으로 송금했다. 수취인은 서정귀였고, 계좌번호는 625,965,60D였다”고 기재했다. 그 4개월 후인 1969년 12월 이 계좌에서 19만9750달러가 인출됐다. 보고서는 “이 돈은 이후락이 서정귀를 대신해 서명한 뒤 인출해 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이 발견된다. ‘스위스 유니온 은행’은 서정귀 명의의 계좌명세서(Statements for the account)를 정화섭(Wha Sup Chung)이란 사람에게 보낸 것이다. 정화섭은 바로 이후락씨의 사위였다. 미 하원 국제문제소위원회 조사관은 이후락씨의 둘째 아들 이동훈씨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정화섭씨가 장인을 위해 돈을 관리한 적이 있다”는 진술도 확보했다. 보고서는 “이후락은 스위스 은행 계좌에 대통령용(用)이란 명목으로 (비자금을) 입금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결론 내렸다.
즉 스위스은행과 박정희는 아무 관련이 없다는 얘기다.
당시 《월간조선》은 ‘프레이저 보고서’를 인용해 스위스 은행의 관련 계좌번호는 물론, 이후락씨가 어떤 방식으로 돈을 관리·운용했는지 등을 상세히 보도했다. 기사에 따르면, 1965년 서정귀(徐廷貴)씨는 흥국상사라는 회사를 운영하면서 대한석유공사의 벙커C유(油) 판매권을 얻어 막대한 이득을 취하고 있었다. 서정귀씨는 이후락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의 지원하에 1969년부터 가동을 시작한 호남정유의 대주주(뒤에 사장)가 됐다. 걸프사는 흥국상사의 주식 25%의 추가 인수를 확정하고 서정귀 흥국상사 사장과 교섭에 들어갔다. ‘프레이저 보고서’ 부록에는 이런 기술이 있다. 《월간조선》 기사에서 옮긴다.
〈주식 인수 대금을 200만 달러에 합의한 직후 이후락은 걸프와 한국 주재 대표인 힐 보닌에게 연락, 관계자 회의를 요청했다. 이 회의에는 이후락, 서정귀, 보닌, 그리고 몇몇 주주들이 참석했다. 이후락은 서(徐)씨의 양해를 얻은 다음 주식 인수 대금 200만 달러 가운데 20만 달러를 박 대통령의 미국 방문 경비로 건네줄 것을 요청했다. 보닌은 이 제의를 (피츠버그 본사에 있는 한국 투자 담당자) H.I. 굿맨에게 전달했고, 굿맨은 E.D. 로니에게 보고했다. 로니는 20만 달러의 송금을 이후락이 제안한 방법대로 하도록 승인했다.〉
보고서는 “1969년 8월 21일 미국 피츠버그의 걸프 본부는 20만 달러를 전신환(電信換)으로, 스위스 취리히에 있는 스위스 유니온 은행(UBS)으로 송금했다. 수취인은 서정귀였고, 계좌번호는 625,965,60D였다”고 기재했다. 그 4개월 후인 1969년 12월 이 계좌에서 19만9750달러가 인출됐다. 보고서는 “이 돈은 이후락이 서정귀를 대신해 서명한 뒤 인출해 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이 발견된다. ‘스위스 유니온 은행’은 서정귀 명의의 계좌명세서(Statements for the account)를 정화섭(Wha Sup Chung)이란 사람에게 보낸 것이다. 정화섭은 바로 이후락씨의 사위였다. 미 하원 국제문제소위원회 조사관은 이후락씨의 둘째 아들 이동훈씨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정화섭씨가 장인을 위해 돈을 관리한 적이 있다”는 진술도 확보했다. 보고서는 “이후락은 스위스 은행 계좌에 대통령용(用)이란 명목으로 (비자금을) 입금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결론 내렸다.
즉 스위스은행과 박정희는 아무 관련이 없다는 얘기다.
글=조성호 월간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