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NewsRoom Exclusive
  1. 사회

故 박홍 전 서강대 총장이 걸어온 길

김원율  대수천 교리연구소장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하기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본문이미지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故 박홍 신부의 빈소.

[편집자 주] 故 박홍 전 서강대 총장은 천주교 신자 모임은 대한민국수호 천주교인모임(대수천)의 지도신부로 활동해 왔다. 대수천 김원율 교리연구소장이 고인의 삶과 걸어온 길을 《월간조선》에 보내왔다.
 
-------------------
 
박홍 신부님이 서울 아산병원에서 11월 9일 새벽 4시 40분경 지병으로 선종하셨습니다. 이하에서 박홍 신부님이 걸어오신 길을 회고하며, 하느님 곁으로 떠난 신부님의 명복을 빕니다.
 
박홍 루카 신부님은 1941년생이시며 1989년에서 1997년까지 8년 동안 서강대 총장과 이사장을 역임하셨습니다. 박 신부님은 어릴 때부터 몸이 약한 아이를 힘세고 못된 아이들이 괴롭히면 참지 않고 못된 아이들을 혼내셨던 정의감과 의협심이 강한 분이었습니다. 박 신부님은 중학교 2학년 때 3일 동안 피정을 하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됩니다.
 
그는 자신이 비록 의리파였지만 싸움을 일삼았던 것을 후회하면서 자신의 죄를 신부님에게 고백하였습니다. 그런데 꾸지람을 받을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오히려 신부님으로부터 정직하게 죄를 고백하였다며 오히려 큰 격려와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는 이러한 경험으로 사람들의 마음에 평안을 심어주는 신부가 되겠다고 결심합니다.
 
박 신부님은 가톨릭계의 성신고교를 졸업, 1960년 가톨릭대에 입학하여 철학과 신학을 전공하였으며 1969년에 대건신학대를 졸업하고 사제 서품을 받으셨습니다. 박 신부님은 이미 70년 초 가톨릭 지성인협회 지도신부와 71년 크리스천 사회행동 협의체 초대 이사장을 맡으면서 활발한 사회활동을 펼치셨습니다.
 
그 후 박 신부님은 미국의 세인트루이스대와 이태리 교황청 그레고리안대에서 ‘영적신학’을 전공하여 신학박사 학위를 받으셨습니다. 그는 이태리 유학시절 혼자 무작정 유럽 무전여행을 떠나기도 하였습니다. 유로패스로 전 유럽을 돌면서 여행 중 얻은 느낌을 노트에 기록하여 생전에 귀중하게 보관하셨습니다. 그는 그런 경험으로 인해서 한정된 틀에서 수동적인 교육만을 받는 청소년들의 현실을 안타깝게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박 신부님은 그래서 청소년들과의 대화를 통하여 그들의 입장을 이해해주고 그들의 안목을 넓히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이셨습니다. 
 
박 신부님은 또한 예수회에 처음 사제로 들어갔을 때, 인생에서 수련을 쌓고 체험의 폭을 넓히기 위하여 넝마주이 생활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는 이러한 생생한 체험을 통하여 인생에서 많은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어떨 때는 구역을 침범했다며 폭력을 휘두르는 다른 넝마주이에게 맞아 어깨를 다치기도 하였으며, 다 헤진 걸레조각 같은 옷을 걸쳐 입은 그를 무시하는 사람들의 태도에서 그는 인간의 참된 가치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넝마주이로 돌아다니는 그를 쓰레기처럼 취급하였으나 아이들만이 그를 환대해주었다고 합니다. 목이 마르다고 하면 그들은 뛰어가서 물을 떠다 주었고 그를 스스럼없이 대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느 누구라도 천진난만한 어린 아이처럼 되지 않으면 하늘나라를 차지할 수 없다고 하신 말씀의 참된 의미를 박 신부님은 이 때 깨달았을 것입니다.
 
박홍 루카 신부님은 1989년에서 1997년까지 8년 동안 서강대 총장과 이사장을 역임하셨습니다. 박홍 신부님은 1989년 베이징 대학, 그리고 1990년 모스코바 대학 등 당시 공산주의 본산인 곳에서 과감하게 공산주의를 비판하는 강론을 하셔서 이들의 가슴에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심어주셨습니다. 이들은 ‘종교를 아편’으로 인민에게 가르쳐왔으나 박 신부님은 ‘공산주의야말로 꿀바른 독(毒)’이라고 갈파함으로써 이들 전체주의 국가에 종교가 다시 돌아오는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박홍 신부님은 우리에게 육안으로만 보면 세상 만물의 껍데기만을 본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마음의 눈으로 사물을 볼 때 줄기뿐 아니라 그 뿌리를 볼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실존적 공허증’을 겪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 껍데기는 하루가 다르게 살찌고 번지르르해지지만 정신은 하루가 다르게 피폐해지고 있는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이제 정신차려야 합니다.”
 
2018년과 2019년 중 오태순 신부님께서는 여러 차례 박홍 신부님이 입원하신 아산병원을 방문하여 봉성체(성당에 나오지 못하는 병자를 위한 영성체)를 행하셨습니다. 2018년 6월 27일 박홍 신부님은 “인간을 작게 만들고 인간 존재를 부정하게 하는 어둠의 세력을 성령의 힘으로 물리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라고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2018년 8월 2일, 70년대 초 담시(譚詩), 오적(五賊)으로 국제적으로 필명을 드높였던 김지하 시인이 관절염으로 불편한 몸에도 불구하고 박홍 신부님을 문병하였습니다. 김지하 시인은 박홍 신부님과 1941년생, 동갑으로 오랜 기간 박 신부님과 교분을 나누어 온 사이입니다. 박 신부님은 노태우 정부시절인 1991년 청년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분신정국’ 때에 “우리 사회에 죽음을 선동하는 어둠의 세력이 있다.”라고 주장함으로써 사회의 논란과 주목을 받으신 바 있습니다.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마음이 통하였는지 김지하 시인께서도 그 해에  반국가 세력을 크게 질책하는 ‘죽음의 굿판을 걷어 치워라!’ 제하의 글을 일간지에 기고함으로써 나라를 어지럽히던 반정부 세력이 이후 기세를 잃고 잠잠해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교회의 진리에 무지하며 비영성적이고 세속적인 무리들이 교회를 장악하고 있습니다. 정의구현사제단이라는 사탄의 하수인들이 교회 내에서 분탕질을 치며 평신도의 분노를 사고 있음에도 누구 한사람 바른 소리를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박홍 신부님의 빈자리는 더욱 크게 느껴집니다. 신부님께서 세속의 잡다한 일은 모두 잊으시고 하늘나라에서 편안히 쉬시도록 기도합니다.

입력 : 2019.11.09

조회 : 7216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NewsRoom 인기기사
Magazine 인기기사
사진

김태완 ‘Stand Up Daddy’

kimchi@chosun.com
댓글달기 1건
댓글달기는 로그인 하신 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신상철 (2019-11-09)

    어둠을 향해 일갈하셨는 신부님, 하느님 품에서 영면하시길 기원드립니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