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아 한인 납치사건에 외교부 27일 동안 '엠바고'... 정부는 그동안 뭘 했나 : 월간조선

리비아 무장단체에 납치된 한국인과 관련해 정부가 ‘엠바고(embargo:특정시점까지 보도유예’를 요청한 배경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납치 후 27일이 지나 현지언론이 인질 영상을 공개하도록 정부가 보도 통제만 했을 뿐 실제로 국민 구출 노력을 얼마나 강력하게 해왔는지 밝혀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1일 외교부에 따르면 지난달 6일(현지시각) 리비아 서부 자발 하사우나 지역에서 무장민병대가 현지 한 회사의 캠프에 침입해 한국인 1명과 필리핀인 3명 등 4명을 납치하고 물품을 빼앗았다. 무장단체의 실체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외교부는 사건 발생 후 엠바고 조치에 나섰지만 27일이 지난 시점에 리비아 현지 언론이 인질 동영상을 공개하자 엠바고를 해제했다.

리비아 현지 유력 매체인 '218뉴스'는 이날 소셜미디어 계정에 피랍자 4명의 모습이 담긴 2분 43초 분량의 동영상을 공개했다.
동영상에는 자신이 한국인이라고 말한 남성 1명과 필리핀인이라고 밝힌 남성 3명이 사막에서 구조를 요청하는 장면이 담겼다. 이들 뒤엔 총기를 들고 있는 남성이 포착됐다.

한국인이라고 밝힌 중년 남성은 영어로 "대통령님, 제발 도와달라. 내 조국은 한국이다(Please help me, president. My country South Korea)"라면서 "나는 지금 너무 고통스럽고, 많은 문제가 있다. 제발 도와달라(I am too much suffering, too much have problem. Please help me)"고 했다.

이 남성은 60대 초반의 물관리 회사 부장으로 한국에 있는 가족과 떨어져 리비아에서 혼자 장기 체류해 왔다.

일반적으로 국외에서 납치 사건이 발생하면 정부는 사건이 끝날 때까지 엠바고를 요청한다. 안전과 직결된 문제이며, 납치한 단체가 우리 정부를 대상으로 석방 협상을 시도할 때 협상 과정이 언론에 공개되면 협상액수를 계속 올리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리비아 납치사건의 경우 정부가 엠바고를 요청한 후 적극적인 협상과 구출 노력에 나섰는지 여부가 논란이 되고 있다.

사건 후 주리비아 대사관은 신고를 접수한 직후 대사를 반장으로 하는 현지 비상대책반을 가동했다. 리비아 외교부 및 내무부 등 관계당국을 접촉해 사건 해결을 위한 협조를 요청했고, 최성수 주리비아 특명전권대사는 지난달 30일에도 리비아 외교장관을 접견해 피랍문제 해결을 위한 협조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합동참모본부는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아덴만에서 임무수행 중인 청해부대를 피랍 현지 해역으로 급파했다.

그러나 27일간 어떤 진전도 없었다는 점에서 국민들의 반응은 부정적이다.

현재 정부는 납치단체의 정체와 협상 창구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동문제 전문 PD인 김영미 PD는 2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영상 분석 결과) 납치 조직은 IS나 알카에다 등 대형 조직이 아닌 작은 부족의 민병대 정도로 목적도 단순 금전인 것으로 보인다"며 "우리 정부와 리비아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선다 해도 그 방법만으로는 사건을 해결하기 힘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리비아 정부의 영향력이 수백 개의 작은 부족들까지 닿지 않는다"며 "지역 전문가나 다른 우방국의 협조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한편 대형 온라인 사이트와 커뮤니티 등에서 네티즌들은 "하루하루 목숨이 불안한 판국에 언제까지 숨기려고 한 것인가" "엠바고 걸어놓고 대통령과 비서실장은 휴가 갔나" 등 한 달 가까이 진척사항 없이 엠바고만 지켜온 정부와 언론에 비난 섞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글=권세진 월간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