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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 하일지씨. 사진=조선DB |
하 교수는 19일 오후 2시 서울 성북구 동덕여대 백주년기념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저는 오늘로서 강단을 떠나 작가의 길로 되돌아가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그는 “일각에서는 저에게 타협을 권유하기도 했다”며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제가 지켜야하는 것은 제 소신이라고 판단했다”고 이같이 말했다.
하 교수는 “미투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무례하고도 비이성적인 공격을 받게 됐다”며 “인생의 한 부분을 바쳐 지켜온 제 강의는 학생들로부터 신뢰를 회복하기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14일 ‘소설이란 무엇인가’라는 강의에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에 대한 정무비서 김지은씨의 폭로가 일종의 질투심에 의한 것이라고 발언해 물의를 빚었다. 녹취록을 보면 그는 당시 해당 사건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했다.
“이혼녀이고 네 차례에 걸쳐서 그 오피스텔에, 호텔에 찾아갔다라고 하는데, 불러서 갔다? 한발 더 생각해보면 그 여성도 분명히 욕망을 가질 수 있는 거야. 자기도 그걸 즐겼을 수도 있다.”
또한 소설가 김유정의 작품 ‘동백꽃’ 이야기를 두고 “처녀가 순진한 총각을 성폭행한 내용이다. 얘(남자 주인공)도 미투해야겠네”라고 말해 파문이 일었다.
하 교수는 재작년 2월 함께 산책하던 학생에게 강제 입맞춤을 했다는 폭로도 나왔다. 이 사건과 관련 그는 지난 16일 TV조선에 “‘선생님은 천재예요’ 하니까 남자들이 우쭐해지지 않나”며 “(입맞춤 후) ‘정말 미안하다 내가 실수를 했다’고 수없이 사과했다”고 밝혔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학생들의 항의에 대해 “그렇게 하면 미투 운동이란 것도 옳지 않다”고 받아쳤다. 이어 “어쩌면 여러분(학생들)이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해 내 사과가 필요한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은 정직하지 못하고 지성적이지 못하다”고 반박했다.
빗발치는 학생들의 사과 요구에도 하 교수는 “도무지 무엇이 잘못된 건지 이해할 수 없다”며 “소설 수업에서 있었던 일로 정의감에 불타는 것은 대단히 코믹한 일”이라고 일축했다. 앞서 김지은씨 폭로 폄하와 관련, 본인은 사과할 입장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실험정신’ 추구했던 1990년대 포스트모더니즘 계열 소설가
하 교수는 1955년 경북 경주에서 출생, 중앙대 문창과와 동(同)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했다. 프랑스 푸와티에 대학교에서 불문학 석사학위를, 리모주 대학원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 경문고등학교와 중앙대부속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했다. 이후 중앙대, 숙명여대 강사를 거쳐 동덕여대 문창과 교수로 재직했다.
1990년 민음사에서 장편소설 《경마장 가는 길》을 발간하면서 작가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집요한 묘사적 문체와 작품의 순환적 구조 등 실험적 작법을 활용하는 문인으로 평가된다.
하 교수는 1980년대 민중문학 시대가 저문 뒤, 1990년대 포스트모더니즘 시작을 알린 작가다. 그의 소설 중에는 자본사회의 억압구조 속에서 고통 받는 인간을 그려낸 작품이 많다. 당시의 소설가들이 대개 정교한 단편에 집중한 가운데, 그는 장편소설을 주력으로 해 이목을 끌기도 했다.
“하일지에게 현실은 하나의 ‘거대한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그의 작품은 후기 산업사회, 즉 개인주의와 하위문화가 범람하는 포스트모던의 세계 속에서 분열하는 자아를 보여주고 있다. 과거 거대담론의 서사가 아닌 ‘메타픽션’(허구를 규정하는 현실의 붕괴를 지향하는 사조)적인 글쓰기로 사회현실을 묘파해낸다. 주제의식과 창작기법 모든 면에서 실험정신을 추구했던 것이다. 대표작품으로는 장편소설 《경마장 가는길》 《경마장을 위하여》 《경마장은 네거리에서》 《경마장의 오리나무》 《경마장에서 생긴 일》 등이 있다.
시인 장석주는 책 《나는 문학이다》에서 하 교수를 ‘한국문학의 길 위에서 길을 찾는 방외인 작가’라고 칭한 뒤 그의 작품경향을 이렇게 평가했다.
〈하일지의 소설은 1980년대 문학이 누락하고 있는 ‘일상의 생태학’, 그 일상의 생태학의 뿌리에 미만해 있는 ‘욕망’의 전면적 복원이라는 면에서 과녁이 사라진 시대, 과녁이 점처럼 분산된 시대의 문학의 새로움을 보여준다. ‘계몽’과 ‘이성’의 열정이 지워져버린 자리, 그 현실의 밑으로 앙금처럼 깔리는 지리멸렬한 욕망의 움직임을 집요하게 따라가는 하일지의 소설은 “전체가 개체를 억압하던 시대”였던 1980년대의 소설들과 분명한 ‘차이’를 보여준다. (...) 하일지에게 현실은 하나의 ‘거대한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나와 너의 삶이란 이 ‘거대한 허구’의 세계 속에 떠도는 유언비어와 같이 그 실재가 의심스러운 것이다.〉
글=신승민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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