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탄핵'의 불을 지핀 고영태 전 더블루K 이사가 27일 오후 보석으로 풀려났다. 지난 4월 11일 알선수재 혐의로 구속돼 재판을 받은 지 199일 만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는 이날 "보석을 허가할 상당한 이유가 있다"며 고씨의 보석 청구를 받아들였다. 이른바 '국정농단' 사건 관련 인사 중 보석으로 풀려난 이는 그가 처음이다.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1심 구속 기간은 최대 6개월이다. 검찰이 추가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않는 한 그의 구속 만료 기간은 11월 1일로 끝날 예정이었다.
     
고씨는 이날 오후 6시경 검은색 양복 차림으로 서울구치소를 나섰다. 그를 기다리던 취재진이 "최순실씨는 당신을 국정농단의 주범이라고 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그는 "법정에서 다 밝히겠다"고 말했다. 이후 추가 질문을 받지 않고 사라졌다.
       
고영태씨는 지난해 12월 국회 청문회에 출석해 "최순실씨가 우리나라 권력서열 1위라는 것에 동의한다"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은 최순실씨의 수행비서쯤 된다"며 충격적인 발언을 쏟아냈다.
   
한때 그는 미르재단 사무총장을 지낸 이성한씨와 함께 최순실씨의 최측근이었다. 그러다 금전 문제 등으로 사이가 틀어진 후 언론 폭로전을 벌였다. 이는 JTBC의 '태블릿PC' 보도와 맞물리며 헌정사상 첫 대통령 탄핵의 도화선이 됐다.

 

일부 야당과 박근혜 전 대통령 지지자들은 대통령이 설립을 주도한 K스포츠 재단을 고씨가 장악, 자신의 사익을 위해 최순실 게이트를 기획·폭로했다는 의혹을 제기했었다.

   
고영태·이성한 등은 최순실씨의 형사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치열한 공방을 펼쳤다. 이들에 대해 최순실씨는 법정에서 "나를 함정에 빠트린 후 돈까지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탄핵 사태 초기 고영태씨는 국정농단의 비밀을 폭로한 '의인(義人)'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최순실 힘'을 등에 업고 호가호위(狐假虎威)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마침내 구속됐다. 검찰수사 결과 그는 인천본부세관장 인사에 개입해 금품을 받았다.

    
자유의 몸으로 재판을 받게 된 고영태씨의 향후 행보에 벌써부터 관심이 모이고 있다. 이날 저녁 그의 석방 소식이 알려지면서, 지난 2월 유시민 전 의원이 모 방송사에 출연해 고씨를 평가한 대목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유시민씨는 "사람들도 고영태를 정의로운 사람으로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며 "다만 고영태의 내부고발 덕분에 우리가 숨겨졌던 사실들을 알게 됐다는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재판부는 지난 13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6개월 구속연장을 승인했다. 연장 사유는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어 구속의 사유나 필요성, 상당성이 인정된다는 것이었다. 17일 구속 만기를 앞두고 있던 박 전 대통령은 내년 4월까지 수감 생활을 이어가게 됐다.

   
구속연장이 결정된 이후 처음 열린 16일 공판에서 박 전 대통령은 "법치의 이름을 빌린 정치 보복은 저에게서 마침표가 찍어졌으면 한다"며 법정에서 처음으로 심경을 토로했다. 그는 "이 사건의 역사적 멍에와 책임은 제가 지고 가겠다"며 "모든 책임은 저에게 묻고 저로 인해 법정에 선 공직자들과 기업인들에게는 관용이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법원의 구속연장 결정에 반발해 박 전 대통령 측의 변호인단이 전원 사임하면서 법원은 10월 25일 박 전 대통령을 변호할 국선변호인 5명을 선정했다.

   

탄핵 사태를 둘러싼 주요 인물의 운명이 엇갈리면서 향후 재판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글=김성훈 월간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