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 부산세계박람회가 열리는 ‘부산 북항’
부산항의 정체성, ‘산업항’에서 ‘미항’으로
“가덕도신공항이 들어서 배 환적(換積)이 다시 제자리를 잡고, 공항 물류를 중심으로 부산신항까지 들어오는 철로가 가덕도까지 연결됩니다.”
기자의 기억으로 부산역은 늘 공사 중이었다. 올 때마다 늘 무언가로 분주하고 요란한 공사 소음이 들렸다. 착각이거나 기분 탓일지도 모른다. 그런 인상이 머릿속에 박혀 있다. 과거 일제는 ‘북빈매축’을 통해 부산항을 만들었다. ‘북빈(北濱)’은 지금의 부산 북항(北港)이고 ‘매축(埋築)’은 바다를 메워 뭍으로 만든다는 뜻이다.
지난 9월 25일과 26일 찾아간 부산역은 여전히 분주했다. 역사 부근에 2030 부산 세계박람회 유치를 기원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부산이라 좋다(Busan is good)’는 조형물도 눈에 띄었다. 기자는 《월간조선》 2009년 10월호에 〈부산의 천지개벽이 시작됐다〉는 르포 기사를 실은 적이 있다. 4박 5일간 부산에 머무르며 ‘제조업 탈피하여 국제항만·영상영화 도시로 탈바꿈 중’이라고 썼다. 그때 북항 재개발 현장을 둘러보며 이렇게 썼다.
〈연약 지반 처리를 위한 바지선 두 척이 멀리 보이고, 덤프트럭이 바다의 입 속에 자갈을 쏟아붓고 있었다. 거품이 보글보글 올라왔다. 그 위로 갈매기 몇몇이 날고 있었다. (중략) 매립에 쓰인 흙은 인근 영선산에서 퍼다 날랐는데, 매립이 끝날 무렵 산봉우리 하나가 사라졌다고 한다.〉
2008년 시작된 북항 재개발 사업은 2015년까지 마무리할 ‘한국형 뉴딜 10대 프로젝트’ 중 하나였다. 원래는 2020년 완공 목표였으나 ‘뉴딜 정책’에 선정되면서 5년이나 기간이 단축됐다. 사업비만 8조5190억원에 달했다.
그러나 아직도 1단계 사업이 진행 중이다. 랜드마크조차 정해지지 않았다. 향후 3~4단계 사업까지 가야 할 길이 아득하다. 다만, 2단계 사업으로 북항 한편에 2030 부산 세계박람회장이 마련된다. 부산항의 미래, 아니 북항의 미래가 2030부산세계박람회와 연결된 셈이다. 신박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2030부산세계박람회와 함께 북항 재개발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부산역에서 서종우 부산시 정책기획보좌관, 양홍선 부산시 홍보기획팀장과 만났다. 우리는 부산역사 바로 뒤편 북항 1단계 현장을 둘러보았다. 서종우 보좌관은 “북항은 시민들의 공간이 아니었다”며 이렇게 말했다.
“부산, 그리고 북항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물류, 항만이지 않습니까. (부산시민들은) 커다란 컨테이너 차량이 도심 한복판을 다니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죠. 부산항 1부두에서 8부두까지가 전체 물류기지였으니까요. 컨테이너 항만 야작정을 떠올려보세요. 부두는 항만 노동자를 제외하고 들어갈 수 없는 공간이었습니다.”
북항과 산복도로
2022년 5월 북항 친수공원을 시민에게 개방했다. 잔디광장, 야생화단지, 경관수로, 보행데크 등이 들어섰다. 항구를 공원으로 만들어 시민의 품에 안겨주었다. 그러나 기자의 눈엔 여전히 요란한 소음을 내며 공사가 진행중이었다.
1단계 사업으로 들어설 공공시설은 ▲오페라하우스(2026년 개관) ▲정부 부산지방합동청사(2027년 완공) ▲마리나(2024년 하반기 완공) ▲부산항기념관(2024년 하반기 완공) 등이다.
그리고 전체 시설 용지 111만㎡ 중 분양 대상지는 약 30%인 34만㎡. 2023년 8월 말 기준 16만㎡(48%)가 분양되었다.
북항 재개발 시행자인 부산항만공사는 북항 재개발 1단계 랜드마크 민간사업자 공모를 이르면 다음 달 초 새로 진행할 예정이다. 지난 3월 공모를 냈지만 한 곳만 응찰해 유찰되고 말았다. 만약 2030부산세계박람회가 확정되면 랜드마크는 흥행 보증수표가 될 것이다. 서종우 보좌관의 말이다.
“과거 서울 역시 한강 접근성이 떨어졌잖아요. 올림픽대로랑 강변북로로 진입할 수 있는 몇 개를 빼고는 시민들에게 개방이 안 됐습니다. 부산도 산업 물류의 용도로 북항을 만들었기에 물류 중심 공간이 더 필요했거든요. 그러니 도심이랑 항만의 연결고리가 부족했던 거죠. 이번에 부산역에서 북항으로 걸어 들어갈 수 있게 했어요.”
잠시 숨을 고른 뒤 서 보좌관은 이렇게 덧붙였다.
(부산역사 뒤편을 가리키며) “저쪽 맞은편에 오래된 ‘산복도로’가 있는데 친환경 숲길로 연결해 이쪽(북항)과 바람이 통하게끔 했습니다. 무엇보다 산복도로는 부산 근대 역사의 어떤 핵심 연결고리가 아닙니까?”
기자는 산복도로라는 말에 귀가 번쩍 뜨였다. 부산 작가가 쓴 소설(《산복도로의 꿈》)의 한 문장이 떠올랐던 것이다.
“언덕에 위태롭게 매달린 자들의 가치는 누가 올려주는 걸까.”
산복도로는 누가 뭐래도 그 자체로 부산의 귀한 자산이자 가치가 아닐까.
산복도로는 근대 한국 도시 서민의 원초적 생활 공간이다. 전국에서 가장 길고 구불구불한 도로, 산허리 베어 닦은 아슬아슬한 경사각을 가진 도로다. 이 산복도로는 부산의 과거이자 미래의 공간이다.
부산시 자료에 따르면 4조636억원이 투입되는 2단계 북항 재개발 사업은 내년 상반기 착공한다. 준공 시기는 애초 2029년보다 2년 앞당긴 2027년을 목표로 한다. 이후 2030년까지 세계박람회 전시장과 각종 지원시설을 설치할 예정이다.
북항 재개발 2단계는 동구 자성대부두를 비롯해 부산역·부산진역 일원 228만㎡(육지 157만㎡, 해역 71만㎡)에 부지 및 기반 시설을 조성하고 해양 산업, 마이스(MICE)·관광·금융 산업, 주거 시설 등을 집적해 글로벌 해양 중심지를 만드는 사업이다. 1단계 구역은 세계박람회가 개최되면 숙박과 문화공연 등을 지원할 계획이다. 서 보좌관의 계속된 설명이다.
“대략 설명하자면, 요 앞의 북항 개발만 생각하는데, 아닙니다. 향후 이쪽 우암동 부지, 저쪽 영도 부지까지 ‘디귿’자 형태로 개발 계획을 잡고 있거든요. 실제론 어마어마한 규모죠. 그렇게 되면 부산항의 정체성은 ‘산업항’에서 ‘미항’으로 바뀝니다.”
도시의 구조와 그 기능이 달라지면 부산의 정체성, 부산시민의 삶도 달라질 것이다. 부산항, 그리고 북항은 더는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 되지 않을 것이다.
“여기다 트램선을 깔아 (북항과) 도심을 연결하는 축을 만들 겁니다.”
《부산일보》의 지난 9월 7일 자 보도에 따르면 부산시는 2030부산세계박람회와 연계한 북항 3단계 재개발을 위한 ‘밑그림’ 작업을 상당 부분 완료했다고 한다. 3단계 사업지(육지 면적 310만㎡)는 1단계(100만㎡), 2단계(157만㎡)를 합한 것보다 넓다. 우암동, 감만동 등의 부두 시설 이외에 일부 배후부지도 포함해 개발이 이뤄질 예정. 내년에 북항 3단계 재개발을 위한 ‘마스터플랜’ 연구용역을 발주할 예정인데 서울 강서구 마곡지구와 같은 대기업 R&D 센터가 들어설 것이란 이야기가 나온다.
“부산만 바라봐서는 답이 없다”
서 보좌관은 박형준 부산시장의 구상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박 시장님은 부산만 바라봐서는 답이 없다고 생각하십니다. 남부권 전체가, 대한민국의 또 다른 바퀴가 돼야 한다, 이런 입장이죠. 기존의 자산을 잘 유지시켜 성장해야 하는데 코로나19 이후 (부산의) 위치가 애매해졌거든요. 가덕도신공항이 들어서 배 환적(換積)이 다시 제자리를 잡고, 공항 물류를 중심으로 부산신항까지 들어오는 철로가 가덕도까지 연결됩니다. 여기서 울산으로, 그다음에 경남을 통해, 멀리 전남까지 확장하는 명실상부 남부권을 연결하는 구상을 박 시장님이 갖고 계십니다.”
환적이란 화물을 운송하는 도중에 목적지가 아닌 항구에서 다른 선박으로 옮겨 싣는 것을 말한다.
― 부산의 정체성이 가덕도신공항과 다 연결돼 있군요.
“그렇습니다. 사실 산업적 기반은 경남이 훨씬 탄탄합니다. 부산보다 큰 기업이나 공장들이 많지 않습니까? 울산은 조선소와 자동차, 석유화학 단지가 있고요. 그나마 부산이 가지고 있는 것은 인재들을 길러내는 대학들이거든요. 이런 것들과 맞물려 성장의 새로운 모멘텀을 만들어야 합니다. 부산만으로 어렵죠. 함께해야 합니다. 서울을 넘어 글로벌화의 초석이어야 한다, 이런 생각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국토부와 문체부 쪽에서 남해안권 종합개발 계획안을 마련 중인데 KDI(한국개발연구원)가 중심을 잡고 물류와 산업 쪽으로 연구를 하고 있어요. 부산이 (산업, 물류의) 거점으로 가덕신공항이 하나의 매개체가 될 수 있다,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양홍선 홍보기획팀장이 가덕도신공항과 부산신항의 좌표를 다시 그려보았다.
“가덕신공항은 여객 수송보다 산업적인 측면이 훨씬 영향력이 커요. 공항이 들어서면 환적 2위의 세계적 항만(부산신항)을 가진 한국 제1의 해상복합물류공항이 되는 겁니다. 단순한 지역 공항, 부산만을 위한 공항이 아닙니다. 물건을 받아 다시 풀어 재가공까지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그냥 분류해 (해외로) 보내는 정도입니다. 재가공까지 해야 산업화가 되거든요. 내륙으로 (물건을) 옮긴 뒤 재가공해 다시 배에 실어 보내려면 물류비가 엄청나잖아요.”
서 보좌관이 다시 말을 받았다.
“최근에 부산신항의 주변 배후 지역을, 이제 그냥 보세창고 정도가 아니라 실제로 가공, 제조를 할 수 있게끔 법안이 풀렸습니다. 부산신항 주변 배후지를 산업 단지화하는 것까지 고민하기 시작했죠. 그렇게 되면 환적을 넘어 생산의 기점으로 다시 재가공 수출의 거점으로도 활용될 수 있고… 그러니까 물류의 속도라든지… 이런 게 다 저희 생각과 계획인데….”
“148년 만에 부산항, 시민들 품으로 돌아가”
기자는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에 위치한 북항재개발홍보관을 찾았다. 이곳에서 주봉관 부산시 북항재개발사업팀장을 만났다. 그는 PPT로 제작된 자료를 보여주며 북항의 과거, 현재, 미래를 설명했다.
“여기가 부산항 제1부두인데 국내 최초로 만들어진 토목 해양 구조물이란 상징성이 있습니다. 1950년대 6·25전쟁 당시 병참기지로 사용됐습니다. 여기 보십시오. 1950년대 북항 제2부두의 모습입니다.”
기자는 사진을 뚫어져라 보았다. 부산 앞바다의 산들이 모두 민둥산이었다. 큰 배 한 척이 보였지만 나머지는 모두 작은 배들이었고 항구는 텅 비어 보였다. 6·25전쟁이 터지고 부산은 피란수도가 되었다. 팔도에서 몰려온 사람들이 민둥산에다 판잣집을 짓고 살기 위해 몸부림치던 시절이었다.
“1960~70년대 북항은 월남 파병의 입출항 기능을 담당했고, 우리나라 최초의 컨테이너 부두가 만들어지게 됩니다. 2000년대는 부산항이 세계 5대 항만으로 세계 항만 물동량이 3위에 이를 정도로 북항은 수출입 항만으로 대한민국 경제 발전의 현장이었죠. 그러나 점점 북항의 항만 기능이 쇠퇴하고 노후화로 인해 북항의 기능을 재배치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됩니다. 이에 해양수산부에서 2007년에 북항 재개발에 대한 마스터플랜을 본격적으로 추진합니다.”
주봉관 팀장은 “작년 5월 북항에 친수공원을 조성해 148년 만에 부산항이 시민들에게 열렸다”며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148년’이라는 표현을 여러 차례 썼다. 1876년 개항 이후 시민들에게 처음으로 개방한 것이다.
현재 북항 재개발 1단계의 랜드마크 사업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을까. 주 팀장의 말이다.
“랜드마크 부지가 3만9000평 정도입니다. 유무형 콘텐츠를 활용한 복합 용도의 글로벌 어트랙션 및 문화 공간으로 만들 예정인데요, 작년에 공모를 했어요. 1개사만 참여해 유찰되어 재공모를 정부와 협의 중입니다.”
이 대목에 가서는 목소리에 더 힘이 실렸다.
“북항 2단계 개발은 2030부산세계박람회를 위하여 내년에 본격적으로 추진될 것 같습니다. 한 6년에 걸쳐 2030부산세계박람회 상부(上部) 시설이라든지, 이런 걸 만들고 난 뒤에는 2030년 5월부터 10월까지 6개월간 2030부산세계박람회를 이곳 북항에서 개최할 예정입니다.”
“잼버리 이후 2030부산세계박람회 관심 더 많아져”
주 팀장은 속사포처럼 말을 이었다.
“예타(예비타당성 조사) 통과안입니다만 북항 2단계 사업은 글로벌 해양 허브 도시라든지 상생형 복합 경제 도시, 이런 걸 종합해서 향후엔 신해양 산업 중심지로 육성할 예정입니다. 여기에는 부산 원도심하고 연계한….”
북항이 아무리 거대한 미래의 청사진을 그려도, 구불구불 ‘산복도로’가 이어진 부산 원도심에 대한 애정은 빠뜨리지 않았다.
부산시 2030부산세계박람회추진본부로부터 2030부산세계박람회 준비사항에 대해 자세히 들었다. 황현기 엑스포 교섭지원팀장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 지난 새만금 잼버리 대회 이후 아무래도 국제행사 준비를 더 치밀하게 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어요. 이후 달라진 게 있나요?
“과거에는 (중앙부처에서) 2030부산세계박람회 관련 외빈들을 내려보낼 때 ‘알아서 하라’는 식의 이야기를 했는데 지금은 많이 달라졌어요. 나쁜 뜻으로 이야기하자면 간섭이 굉장히 많아졌고, 좋은 뜻으로는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조금 더 디테일하게 챙기려고 하는 것들이 많아졌다고 할까요?”
― 2030부산세계박람회를 준비하는 역량이 커졌기 때문이겠죠.
“피드백이 많아지면 저희가 더 철저히 준비하게 되니 좋은 것이죠.”
기자는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 옥상 전망대에 올라가 북항 일대를 바라보았다. 부산시가, 부산의 바다가, 부산의 푸른 하늘이 모두 한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부산의 미래가, 부산의 정체성을 바꿀 밑그림이 실루엣처럼 점점 보이기 시작했다.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