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風)의 언덕(丘)을 넘어서'로 일본에서 히트를 친 한국 영화계의 거장 임권택 감독의 작품을 통해서, 일·한 문화교류를 탐구하는 '일·한 차세대영화제'가 11월 8일에서 16일까지 오이타(大分)현 벳부(別府) 등지에서 열린다. 임권택 감독이 일본에 와서 '나의 영화, 나의 인생'을 주제로 특별강연을 한다. 한국영화 22편이 상영되고, 여배우 강수연, 오정해 씨도 리셉션에 참석한다. 식민시대의 영화에 관한 학술 심포지엄도 개최된다.>(서일본신문 11/4)
오이타현립 예술문화대학과 벳부대학, 한국의 동서대, 임권택 영화예술대학이 공동 주최하는 제1회 한·일차세대교류영화제는 서편제(西便制)를 비롯하여 '장군의 아들' '춘향전' '천년학' 등 한국 영화 20여 편이 상영되었다. 영화제의 메인 프로그램이 '오이타 임권택 위크(Week)'로 명명될 정도로 임권택 감독을 위한 심포지엄을 가졌다. 일본의 매스컴들이 이 사실을 크게 다뤘다.
'바람(風)의 언덕(丘)을 넘어서'
'바람의 언덕을 넘어서'는 주지하다시피 '서편제'의 일본 명이다. '바람의 언덕을 넘어서'라는 이름으로 현해탄을 넘은 '서편제'는 그 당시 일본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며 한류의 물꼬를 텄다. 그러한 서편제가 일본 규슈에서 또 다시 각광을 받은 것이다.
필자는 서일본신문의 기사를 읽고 나서 방송사(TNC) 출신인 규슈의 오츠보 시게타카(大坪重隆, 66세) 씨와 전화 인터뷰를 했다. 그가 누구보다도 한국을 좋아하고 한국 문화를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츠보(大坪) 씨는 '바람의 언덕을 넘어서'라는 일본 명보다는 '서편제'라는 이름을 좋아한다고 했다. 그가 '서편제'를 처음 접한 것은 1995년. 나고야(名古屋) 역 앞의 자그마한 영화관 이었단다. 그는 한국어 은사인 홍(洪) 선생으로부터 한국인의 한(恨)의 의미를 배운 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 영화를 보고서 '더욱 강열한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한국인의 한(恨)의 의미를 깊게 이해하는 듯 한 오츠보(大坪) 씨는 '서편제'의 감동적인 세 장면을 나름대로 정리했다.
<첫째, 자연미가 살아있는 아름다운 농촌의 언덕길을 아버지와 두 남매가 진도 아리랑을 부르며 즐거움 속에서 인생의 참 맛을 느끼는 장면입니다.
둘째, 동생 동호(김규철)가 누나 송화(오정해)를 찾으려고 전국 방방곡곡을 헤매는 필사적인 모습 입니다.
셋째, 두 자매가 과거로 돌아가 서로 경쟁 하듯이 노래와 장단 맞추기에 몰입하는 열정적인 모습입니다.>
그는 또 '한(恨)에 머물지 말고 한(恨)을 넘어라'는 아버지(김명곤)의 말이 더욱 감동적이었다고 덧 붙였다. 필자는 오츠보(大坪) 씨가 한(恨)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목청도 목청이지만, 좋은 소리를 가꾸자면 소리를 지니는 사람의 가슴에다 말 못할 한(恨)을 심어 줘야 한다던가요?"
"사람의 한(恨)이라는 건 그런 식으로 누구한테 받아 지닐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인생살이 한평생을 살아가면서 긴긴 세월동안 먼지처럼 쌓여 생기는 것이라네. 어떤 사람들한텐 '사는 것이 한(恨)을 쌓는 일'이고, (어떤 사람들한테는) '한(恨)을 쌓는 것이 사는 것'이 되듯이 말이네....."
필자는 '한(恨)이라는 것은 억지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긴긴 세월 먼지처럼 쌓여지는 것'이라는 이청준 선생의 소설 <서편제>에 들어있는 글귀가 마음에 와 닿았다.
비판의 목소리도 있어
오츠보(大坪)씨는 "이 영화가 대작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독을 마시게 한다든지, 간통을 하는 등 정신적인 폐퇴(廢退) 측면에서 상영을 허용할 수 없는 작품이라고 비판하는 기사도 있었습니다"고 했다. 이어서 그는 "어찌했던 저는 이 영화를 대단히 좋아 합니다. 이 영화가 바로 한류의 시발점이 되었다고 봅니다"고 했다.
사회적인 통념에서 보면 그러한 측면도 없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현실이 아닌 예술적 측면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아무튼, 오츠보(大坪)씨는 '서편제'의 홍보 대사 역할을 톡톡히 했다. 나고야 중부 전략연구회 회원들에게 이 영화를 보도록 권유 한 것이다. 부부 동반으로 이 영화를 본 회원들은 영화가 끝난 후에도 일어서지를 못했단다. 모두가 눈물에 젖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그 후 한국영화의 배경 음악인 '천년학, 노래의 길, 선창가, 진도 아리랑' 등의 '카세트 테이프'를 샀다. 특히, 오츠보(大坪) 씨는 '천년학'과 '노래의 길'을 차(車)에 꽂아두고, 즐겨 듣는다고 했다.
"날아서 님에게 갈까 / 소리쳐 울면 돌아오실까 / 나는 천년학이 되었나 / 님을 어이 찾으리 / 바람아 구름아 나 데려갈까 / 소리쳐 부르면 돌아오실까........"
판소리의 진정한 의미 전달이 중요
춘향가, 심청가, 흥부가, 수궁가, 적벽가 등 판소리 다섯 마당은 일반 대중이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그러나 관심을 가지다보면 가까이 다가갈 수가 있다. 판소리에는 서민들의 삶이 그대로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이성재 선생은 < 우리 국악 이야기>에서 "판소리는 서민들의 힘겨운 일상생활이 생생히 그려지고 등장인물들 간의 갈등과 대결이 절절이 묘사된다. 고난과 갈등의 대결은 보는 사람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고난을 겪는 주인공과 함께 눈물을 흘리고 분노하는 것이다"고 했다.
하지만, 이러한 내용이 해외에 전파되려면 현지인들의 감동을 끌어내는 번역 기술이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필자는 수 년 전 뮤지컬 '춘향전'을 보고서 '아이고, 아이고' 우는 춘향의 모(母) 월매의 절규에 대해 질문하는 일본인에게 땀을 흘리며 설명했던 기억이 있다.
한양대 최경옥 교수는 <번역과 일본의 근대>에서 일본의 근대화에는 번역 술이 한 몫을 했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토록 짧은 기간에 문화의 거의 모든 영역에 걸쳐서 고도로 세련된 번역을 완성했다는 것 자체가 일본사회가 가지고 있는 역사적 경험과 언어학적 수단, 지적 능력의 놀라운 경지를 검증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남의 것을 우리 것으로 받아들이고, 우리 것을 남에게 받아들이도록 하는 일이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판소리의 경우는 더더욱 그러하리라. '한류의 세계화'를 위해서는 이에 대한 각별한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