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깃을 스치는 바람이 제법 차갑게 느껴진다. 어느덧 가을이 우리들의 곁으로 다가왔다는 알림이리라.
“ 마지막 한 잎이 떨어지면 나도 가는 거야...”
“마지막 잎새야...”
“밤중에 틀림없이 떨어질 줄 알았는데 ―
바람소리를 들었어.
오늘은 아마 떨어질 거야.
그러면 나도 따라 죽는 거야….”
청소년들을 감동시키는 O,헨리(1862~1914)의 소설 「마지막 잎새」에 나오는 말이다.
떨어지는 이파리를 세면서 자기의 죽음과 오버랩(Overlap)시키는 주인공의 넋두리다. 죽음이 두려워서 불안감에 의한 자기표현이었을 것이다.
일본의 수필가 요시다 미쓰루(吉田滿) 씨는 「죽음과 신앙」에 대해서 이렇게 표현했다.
“누구나 자신의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많은 사람의 죽음을 본다. 그러한 생명의 연약함이 인생의 무상함을 자아내고, 그로 인하여 절대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신(神)을 추구한다.”
인간은 본시 연약한 존재다. 죽음 앞에서 신(神)에게 의지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으랴!
이것이 생명에 대한 인간의 본심이거늘…, 자기의 목숨을 쉽게 내던지는 사람들이 왜 이토록 늘어나는 것일까?
한해에 3만 명이 넘는 사람이 자살한다.
일본 경찰청이 발표한 바에 의하면 일본은 연간 3만 명이 넘는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고 한다.
1994년에는 2만 2,445명이었던 자살자가 1997년에는 3만 2,863명으로 늘어났고, 2003년에는 3만 4,427명으로 늘었다. 2004년에는 다소 줄어 3만 2,325명이 자기 목숨을 버렸다. 이런 수치는 2년에 한 번씩 나가사키(長崎)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것과 같은 사망자수(數)다.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이자 세계 제1의 장수(長壽)국가에서 왜 이런 비극이 일어나는 것일까?
일본 NHK에서 「인간강좌」를 하고 있는 이츠키 히로유키(五木寬之, 74세) 씨는 일본인의 마음(心)이 메말라 버린 데서 자살의 원인을 찾고 있다.
“일본에 자살자가 늘어나는 것은 일본인의 마음이 말랐기 때문입니다. 마른 것은 가볍습니다. 가벼운 생명은 내버려도 저항이 없습니다. 자기 생명이 가볍게 생각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생명도 가볍게 봅니다. 이것이 일본 사회의 문제입니다.”
이런 문제점에 대해 그는 「지금을 살아가는 힘」이라는 책을 통해 적나라하게 분석하고 있다. 그는 “자살을 하는 사람은 대체로 심약한 사람들”이라며 냉정(冷靜)한 자기 결과보다는 고독, 허무함. 절망감 등에 짓눌려 죽음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단순한 생각에서 자기 목숨을 던진다는 것이다. 참으로 가벼운 사람들이다.
건식(乾式)에서 습식(濕式)으로
이츠키(五木) 씨의 건축식 인간사(人間事)의 분석을 보면 재미있다.
“과거에는 도로에 커다란 철판을 깔고, 거기에 시멘트를 쏟고, 모래자갈 등을 넣어 양동이로 물을 부어서 콘크리트를 만들어 집을 지었다. 뿐만 아니라 벽에도 흙을 바르고 칠을 했다. 이 모두가 물이 없으면 되지 않는 일이다. 이것이 바로 습식(濕式)공법이다.”
“그러나 기술의 발달로 인해 콘크리트는 공장에서 생산되고 벽은 베니어판이나 플라스틱을 붙이고, 그 위에 비닐 벽지를 바른다. 알루미늄 섀시, 유리 등의 인공재료와 볼트, 나사, 접착제는 한 방울의 물도 필요 없다. 이러한 건식(乾式)공법이 사람을 메마르게 한다.”
이츠키(五木) 씨는 도쿄대 교수(鈴木博之)의 글을 인용하여 ‘메마른 삶의 근원’을 그럴듯하게 분석했다. 그는 의료행위도 건식(乾式)공법으로 한다면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과거의 의사선생은 항상 청진기를 가지고 환자의 배와 등을 눌러보면서 진찰을 했다. 또 손목을 잡고 진맥을 하기도 하며, 입을 크게 벌리게 하여 혓바닥을 살펴보기도 했다. 아울러 가정 사정들을 질문하면서 주변 상황을 체크하기도 했다. 오늘날의 진찰 방법은 첨단기계에 의한 검사 수치에 따라 처방을 한다.”
그의 진단에 의하면 사람이 진찰을 하는 것이 아니라 기계가 진찰을 한다는 것이다. 고용 측면에서도 건식 고용이 만연하고 있다며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고용 측면에서도 과거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옛날에는 기업에서 일단 채용을 하면 정년을 보장했다. 또 퇴직 후에도 관계회사에서 그 동안의 경험을 살릴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인재파견 회사로부터 사람을 채용하여 경기변동에 따라 신축적으로 운영하는 형태가 유행하고 있다. 습식(濕式)고용이 아닌 건식(乾式)고용에 익숙해진 것이다.”
이츠키(五木)씨는 또 건식 가족, 건식 친구 관계 등을 예시하면서 일본 사회의 건식화(乾式化)를 막는 것이 자살을 예방하는 지름길이라고 한다.
‘사막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일본인들에게 오아시스 같은 청량수(水)를 주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것은 다름 아닌 ‘인간성 회복’이다. 습식(濕式)사회를 만들어 인간적인 정(情)을 되살리자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해마다 자살자가 늘고 있다. 지난해 한해에만 1만 4,000여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하루 평균 40여 명이 자살했다는 통계인데, 이런 수치는 2004년에 비해 718명이 증가한 것이다. 그 중에서 염세, 비관 등으로 목숨을 버린 사람이 44%나 된다.
우리나라도 건식(乾式)사회화되고 있다는 증거다. 우리도 마음(心)이 메마르지 않도록 물을 뿌려 습식(濕式)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금가고 일그러진 걸 사랑할 줄 모르는 이는 친구가 아니다. 상한 살을 헤집고 입 맞출 줄 모르는 이는 친구가 아니다”라는 김남주 시인의 시(생명)도 있지 않는가.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있어 서로의 어려움을 달래가면서 서로를 위해주는 끈끈한 정(情)을 쌓아 가자. 일본과 자살로 경쟁을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