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골프를 칠 때 골퍼의 의지와 다르게 골프공이 하늘 높이 솟아오르는 경우가 있다. 이때 우리는 ‘하늘에서 비가 쏟아지겠다’ 아니면, ‘대한항공-’, ‘아시아나-’ 등을 외치며 낄낄댄다. 멀리 나가야 할 공이 공중으로 높이 솟아 지척에 떨어지면, 골퍼는 벼랑 끝에 내몰린 심정이 되고 만다. 그런데, 일본사람들은 이런 경우에 ‘덴뿌라-‘라고 외친다. 이유인즉, 덴뿌라(天婦羅)를 튀길 때 솟아오르는 연기(煙氣)를 일컬음이다. 이것은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일본의 전통적(?)인 음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3대째 이어오는 덴뿌라 집
일본은 가업을 이어가는 전통이 우리와 사뭇 다르다. 대학을 나온 아들이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 도자기를 만들기도 하고, 초밥집이나 덴뿌라 집, 우동 집들을 이어받는 장인(匠人) 정신이 유별나기로 유명하다. 그 중에서도 필자가 20여 년 동안 들르는 덴뿌라 집이 있다. 후쿠오카 나카스(中洲)의 후미진 골목길에 있는 ‘이와나가(岩永)’라는 곳이다. 필자는 20여 년 전 ‘와타나베 아키라(渡邊章, 61세/中村學園大學 事務局長)’씨의 소개를 받아 가끔씩 이곳을 찾는다. 이제는 필자가 와타나베(渡邊) 씨 보다 더 단골손님이 되어 버렸다.
덴뿌라 집의 주인 ‘이와나가 노리카(岩永憲芳)’씨가 바로 3대 째 이업에 종사하고 있다. 이 덴뿌라 집은 다이쇼(大正) 6년, 그러니까 1917년에 ‘요정 이와나가(料亭岩永)’라는 이름으로 그의 할아버지에 의해서 문을 열었다. 그 후 쇼와(昭和) 32년인 1957년에 ‘덴뿌라 이와나가별관(天婦羅岩永別館)’으로 상호를 변경하였다. 3대 째인 지금의 주인 ‘이와나가 노리카(岩永憲芳)’는 1969년 대학 졸업과 동시에 아버지가 운영하는 ‘이와나가(岩永)’에 취업하였고, 1976년부터 이 가게의 사장이 되었다.
덴뿌라의 생명은 신선도
우리식으로 하면 이와나가(岩永)씨는 튀김집 주인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는 항상 밝고 명랑하다. 본인의 일에 대한 만족도가 그 누구보다도 높다. 그 집의 특징은 일반 초밥 집처럼 주방 앞 카운터에 둘러앉아 튀기는 모습을 보면서 먹는 맛이 일품이다. 그리고 주인과 손님간의 재미있는 대화는 음식 맛을 돋구어준다.
‘이와나가(岩永)’씨는 일본 말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영문과 출신답게 영어로 설명을 해준다. 그는 국제화를 위해서 일찍이 어린 딸을 뉴질랜드에 유학 보냈다. 그 딸은 이제 성년이 되어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그의 딸이 가업을 이어받아 ‘글로벌 덴뿌라 하우스’를 차릴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그는, '덴뿌라의 맛은 재료의 신선도에 있다'고 했다. 일본 국내산의 야채나 생선을 엄선(嚴選)하는 일이 그의 노하우(know how)다. 그는 일본 시코쿠(四國) 지방에서 재배되는 야채를 쓴다고 했다. 시코쿠(四國)의 물이 좋고, 재배방법도 환경 친화적이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사케(酒)'도 시코쿠(四國) 지방의 술을 권했다. 대체로 일본의 가게들은 자기 지방의 술을 권하는 데, ‘이와나가(岩永)’씨의 경우는 남달랐다. “물맛이 좋아야 술맛도 좋습니다.” 그의 지론이다.
덴뿌라를 찍어먹는 소스도 간장과 소금 두 종류가 나왔다. 손님이 좋아하는 대로 먹어도 되지만, “간장을 찍어서 드세요.” “이번에는 소금을 찍어서 드세요.” “이 소금은 구마모토(熊本)에서 나는 천연염입니다.” 친절한 안내와 함께 날아갈 듯 빠른 손놀림은 마치 마술사 같았다.
아무거나 튀기지 않는다
이와나가(岩永)씨는 “덴뿌라에 레몬을 살짝 뿌리면 향긋하다” 면서 못생긴 레몬을 보여 주었다. “사람은 잘 생겨야 인기가 있습니다만, 저는 이처럼 못생긴 레몬을 좋아합니다.”
이유는 못생긴 레몬이 농약을 먹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그는 생선도 기름기가 없는 담백한 재료가 덴뿌라의 기름을 커버해준다면서, 새우, 오징어, 보리멸, 아나고 등의 생선을 튀겨내었다.
그리고 그가 내세우는 또 하나의 비결은 음식을 튀기는 기름이었다. 그는 ‘참기름과 두부를 만들 때 나오는 콩기름을 섞어서 쓴다’면서 고객의 건강을 최우선으로 한다고 했다.
필자와 동행한 일행은 여덟 명이었다. 주방 앞 카운터 좌석을 우리가 독점했다. 필자가 오래 전부터 예약을 하였기 때문에 우리 일행이 좋은 자리를 차지 할 수 있었다. 때때로 걸려오는 예약 전화를 그들은 모두 거절했다. 이미 준비한 재료 외에는 더 이상 손님을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가운데 고구마, 아스파라가스, 연근, 당근, 표고버섯 등 야채류가 시간에 맞춰서 각자의 앞에 놓여 있는 하얀 종이 위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평소에 튀김요라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람도 ‘아! 튀김의 이 맛!’ 하며 행복해 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생을 재촉한 덴뿌라
덴뿌라의 유래는 여러 가지의 설이 있다. 포르투갈이나 스페인의 요리법에 기름을 사용해서 만든 ‘Tempur' 라고 하는 요리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또한, 에도(江戶)시대에 '도시스케(利分)'라는 사람이 간사이(關西)지방에서 에도로 나와 기름을 사용한 음식점의 이름이 <덴뿌라>이었던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하기도 한다.
일본의 대하소설 ‘대망’이나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등에도 덴뿌라가 등장하지만, ‘도쿠가와 이에야스 야망(山岡莊八 作)’에 나오는 덴뿌라의 얘기가 보다 실감난다.
< “요즘 나가사키(長崎)에선 이 올리브유로 튀김을 만들어 먹는 것이 유행입니다. 생선, 야채, 두부 등에서부터 육류나 완자 종류까지도 기름에 튀겨 밥상에 올립니다. 원하신다면 제가 직접 튀겨드리겠습니다.”
“뭐, 그대가 튀김을 만들어 주겠다고?”
이에야스(家康)는 어린애처럼 기뻐하며 눈을 반짝거렸다.
“그럼, 이 도미로도 되겠는가?” “그야말로 최상의 재료입니다. 진미 중의 진미가 될 것입니다.”
그날 밤 이에야스의 밥상에는 커다란 접시에 도미 튀김이 잔뜩 담겨져 나왔다. 이에야스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젓가락을 들었다.
“뜨거울 때가 맛있구나. 식기 전에 많이 먹어라.” 연거푸 두 접시를 비운 이에야스가 더 이상 튀김에 손을 대지는 않았으나, 젊은 무사의 두 배는 더 먹었다.
다음날 이에야스는 배탈이 났다. 오장의 기력이 쇠했고 지나친 과식- 그것도 너무나 기름진 것이었다. 고령의 이에야스에게는 그것이 죽음을 재촉한 치명적인 원인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
이에야스와 덴뿌라와 얽힌 사연이다. 그의 말대로 덴뿌라는 따뜻할 때가 더욱 맛이 있다. 그래서 식도락가들은 덴뿌라 집의 카운터에 앉아서 음식을 주문한다.
그렇지만 아무리 맛이 있는 음식이라 할지라도 과식은 금물이다. 어디 음식뿐이랴.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지나치면 문제가 생겨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