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에 미래가 있다’ : 월간조선

일본 도쿄(東京)역 앞에 ‘야에스(八重洲) 북 센터(book center)’가 있다. 정확한 주소지는 도쿄도(東京都) 주오구(中央區) 야에스(八重洲)2-5-1번지다.
이 서점은 교통이 편리해서 사람들의 발길이 더욱 잦다. 필자는 도쿄에 갈 때 마다 시간이 허락하는 한 이 서점을 들른다. 특별히 사야 할 책이 없더라도 일본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흐름을 알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3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지하 1층 지상 8층의 서점에는 120만-130만 권의 서적들이 독자들의 부름을 기다리고 있다.

건설회사의 자회사

이 ‘야에스(八重洲) 북 센터(book center)’는 일본 3위인 ‘가지마건설(鹿島建設)’의 자 회사다. ‘가지마건설(鹿島建設)’은 1840년(天保 11년)에 설립된 회사다. 이 회사는 사람으로 치면 올해로 167살이 되는 셈이다. 이 회사와 한국과의 인연이라면 일제시대 때 시공한 경부선 철도 공사를 들 수 있다. 필자는 가지마 건설(鹿島建設) 기획부장 출신인 ‘야마다 요시히로(山田佳弘, 71세)’ 씨와 이 서점 앞에서 만나기로 약속하여 ‘니노미야 킨지로(二宮金次郞, 1787-1856)’의 동상 옆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니노미야 킨지로(二宮金次郞)-'
그는 에도(江戶) 후기의 농정가다. ‘니노미야(二宮)’는 지게를 지고 나무하러 다니면서도 늘 책을 들고 공부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면학과 노력의 상징으로 학교나 서점 앞에 그의 동상을 세우게 되었단다.
오전 10시에 문을 여는 서점 앞 동상 주변에 20여명의 사람들이 모여서 문이 열리기를 고대하고 있었다. 평일이라서 그런지 대체로 나이가 지긋한 사람들이 많았다.
전차 사고로 20분 쯤 늦었다면서 ‘야마다(山田)’ 씨가 땀을 뻘뻘 흘리며 뛰어 왔다. 필자는 연로한 ‘야마다’ 씨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점 커피 숍에서의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가지마(鹿島)건설’로 이어졌다. 일본의 3위인 ‘가지마 건설’도 상당히 어렵다는 것이다. 최근에 경기가 살아나고 있다고는 하지만 ‘잃어버린 10년’ 동안 일본의 건설 회사들은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야마다’ 씨와의 얘기 중에 이 서점의 사장이 필자가 잘 아는 ‘가지마 쇼이치(鹿島昭一, 전 회장. 현 상담역이나 실질적인 오너)’씨의 장남 ‘가지마 코이치(鹿島光一, 37세)’라고 했다. 필자는 깜짝 놀랐다. 언젠가 서울에 왔던 그 학생이 사장이 되었다는 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필자는 ‘도쿄에 머무르는 동안 시간이 되면 한번 만나자’고 비서실에 연락을 했다. 당일 오후 3시에서 4시 사이에 만날 수 있다는 전갈을 받았다.

학생에서 경영자로 성장

필자와 야마다(山田) 씨는 오후 3시 반 쯤 다시 서점에 돌아왔다. 어떻게 연락이 되었는지 ‘가지마 코이치(鹿島光一)’ 사장과 나이가 지긋한 부사장이 엘리베이터 입구까지 뛰어 내려 왔다.
‘아! 장 차장님!’ 그의 제일성(第一聲) 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필자가 차장 때 만나고 이날 처음 만났으니까.
응접실에서 마주 앉은 우리는 죽마고우(竹馬故友)를 만난 것처럼 지난날의 얘기로 시간가는 줄을 몰랐다. ‘가지마(鹿島)’ 사장은 지금으로부터 15년 전 게이오(慶應) 대학 재학 중에 서울에 왔었다. 서울대학과 게이오(慶應) 대학이 서울과 도쿄를 왕래하며 인재를 교류하는 교환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인원은 70여명 정도. 그 당시 필자가 몸담고 있던 회사의 김우중 회장이 썼던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라는 책이 일본에서 ‘미래는 그대의 손 안에’로 출판되어 인기를 끌고 있을 때였다. 필자는 학생들의 안내자가 되어 김회장과의 토론회를 주선했고, 저녁에는 그들을 불고기집으로 데려가서 대장(?) 노릇을 했었다. 그는 그 시절의 상황을 배석한 사람들에게 전쟁터에서 살아 돌아온 병사의 무용담처럼 자랑스럽게 얘기했다. 그때 참으로 얌전했던 학생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차세대의 리더가 되어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서점과 출판 산업의 미래 방향을 제시했다.

‘출판 산업의 국제화를 서둘러야’

“장 전무님! 한국에는 파주 출판 단지가 대단히 잘 되어 있다면서요? 꼭 한 번 가보고 싶습니다.”
그는 이어서 “출판의 국제화를 위해서는 우선 한자(漢子)를 쓰는 범아시아권의 교류가 시급하다는 의견을 내 놓았다.
그는 나름대로 출판 산업의 미래 구상을 세워 놓은 듯 했다. ‘책 속에는 단순한 정보가 아닌 미래로 가는 다양한 컨텐츠가 내재되어 있다’면서 독서를 많이 하는 국가가 발전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어서 그는 지난 8월 1일 부로 모 기업인 ‘가지마 건설’의 임원(取締役)으로 겸임 발령을 받았다고 했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가지마 건설(鹿島建設)’의 후계구도를 위한 경영 수업을 시작한 것으로 보였다.
“앞으로 더욱 바빠지게 되었군요.”라는 필자의 말에 “아닙니다. 아직 무임소 임원입니다. 출판 사업에 더욱 정진 할 생각입니다.”고 강조 했다.
이어서 그는 잠시 후부터 ‘사카이야 타이이치(堺屋太一, 71세)’ 선생의 강연회를 갖는다면서 필자의 참여를 권유했다. 소위 유명 작가와 독자와의 만남을 주선한 것이다. 필자는 다음 일정이 있어서 참석하지 못하겠다면서 ‘앞으로 자주 보자’는 말을 남기고 서점을 나섰다. 「단카이(團塊) 세대」로 유명해진 작가 ‘사카이야(堺屋)’ 선생의 강연을 듣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았다.

‘독서광들이 미래설계’

일본의 근대화는 학문을 중시하는 선각자들에 의해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이오 의숙(慶應義塾)’의 설립자인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 1835-1901)’는 난학(蘭學: 네델란드 학문)을 신학문이라고 믿다가 미국과 유럽을 둘러보고 나서는 미국과 유럽에서 새로운 지식을 유입시켜 일본의 개화에 앞장섰다. 그러나 그보다 앞서서 일본의 걸출한 선각자인 ‘요시다 쇼인(吉田松陰, 1830-1859)’도 독서광이었다. ‘요시다(吉田)’는 1850년 병학(兵學) 연구를 위하여 ‘나가사키(長崎)’에서 무사들과 깊은 교류를 가졌으며, 1854년 신학문을 배우기 위하여 해외로 밀항하다가 감옥에 갇히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는 옥중에서도 독서에 열중하였다. 1년 2개월 동안 그가 감옥에서 읽은 책은 무려 620권(신봉승의 이동인의 나라)이나 되었다고 한다. 하루에 두 권 정도를 읽은 셈이다. 그가 29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했지만, ‘다카스기 신사쿠(高杉晉作)’, ‘구사카 겐즈이(久坂玄瑞)’,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등 존왕양이운동(尊王攘夷運動:反幕府運動)의 지도자를 배출하여 일본 개화의 기틀을 만들었다. 그들이 조선침략 책동의 주역들이지만, 독서를 통한 신학문 도입의 측면에서 보면 대단한 열정을 가졌던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