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림역 지하통로 테크노마트 입구에 서울생활문화센터 다목적 홀이 있다. 이곳에서는 문화행사나 전시회가 수시로 열린다. 이날은 여느 행사와는 달리 특별한 작품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사)대한파킨슨병협회가 주최하는 전시회였다. 지난 10일의 일이다.
전시회의 테마는 ‘파킨슨, 꽃으로 다시 피우다’였다. 전시장 입구에 비치된 팸플릿을 펼쳐보자 다음과 같은 글이 쓰여 있었다.
<파킨슨병은 뇌간의 중앙에 존재하는 뇌흑질에 도파민계 신경이 파괴됨으로써 움직임에 장애가 나타나는 만성질환입니다.>
필자는 파킨슨병에 대해서 상식으로만 알았을 뿐 정확히는 몰랐었다. 팸플릿에는 파킨슨병의 증상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쓰여 있었다.
<무표정한 얼굴, 안정 시 손발 떨림, 종종 걸음과 느린 행동, 처진 어깨, 구부정한 자세, 관절이 굽고 뻣뻣해짐…'일부러 떠는 거 아니에요', ‘화난 거 아니랍니다’, ‘조금 느려도 기다려 주세요’, ‘엄살부리는 거 아니에요’> 등 이해와 배려에 대해서도 소개하고 있었다.
36명의 환자들이 직접 그리고 쓴 작품들
놀라운 것은 작품을 출품한 사람들이 모두 파킨슨병 환자라는 사실이었다.
‘환자이면서도 이토록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니?’
<관계자들이 오프닝 테이프 커팅을 하고 있다/ 가장 오른 쪽이 대한파킨슨협회 양성동 회장, 오른 쪽 두 번째가 파킨슨행복쉼터 정보경 이사장>
테이프 커팅을 마친 후 (사)대한파킨슨협회 양성동 회장은 다음과 같이 인사말을 했다.
“풍요로운 계절 가을에 파킨슨 환자 전시회를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이 전시회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전시회입니다. 그리고 첫 번째로 여는 전시회입니다. 이번 전시회는 예술적 완성도보다는 우리 파킨슨 환자들의 삶을 날 것 그대로 전시를 통해 파킨슨병에 대한 편견을 해소하고, 파킨슨 환자들에 대한 공감과 배려 문화가 싹트는 장(場)이 되기를 바랍니다.”
파킨슨 환자들을 돕기 위한 행사 이전에 환자들이 직접 참여하는 첫 번째 전시회라는 사실에 큰 의미가 있었다.
(사)대한파킨슨협회는 2008년도 환자 및 가족들의 파킨슨병에 대한 이해와 치료방법 등을 서로 공유하고, 희망의 끈을 이어가기 위해 228명으로 출범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림을 그리며 행복을 알아
<자신의 그림 '해바라기(50x40cm)'에 대해서 설명하는 '초콜릿(이순영)' 씨>
전시장을 돌아보다가 '초콜릿(본명 이순영, 55)' 작가가 그린 ‘페이스트(Paste)로 다시 태어난 해바라기’ 그림 앞에 섰다. 그림도 좋았지만 작가의 말에 큰 울림이 있었다.
“2019년 파킨슨 확진 후 공황장애를 겪던 중 우연히 고개 숙인 꽃을 봤습니다. 제 모습을 보는 듯했습니다. ‘그 꽃을 살려주고 싶다’는 맘이 생겨 꽃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림을 그리면서 행복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더 이상 고개를 숙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림도, 이름도, ‘순수’라는 작가의 말도 가슴 뭉클했다.
“6년차 환자입니다. 저희 담임 목사님이 파킨슨병으로 힘들어하는 저에게 ‘순수’라는 이름을 지어 주셨습니다. 그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지금 목사님이 많이 아프십니다. 다시 건강 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림 '희망'/50x40cm>
그림마다 밝은 미래를 향한 염원이 담겨 있었다. ‘꿈(7년차)’이라는 이름의 작가가 그린 ‘희망’에도 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작가의 말이다.
<파킨슨 확진 후, 10년 동안 해오던 일을 그만둘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정신적으로 힘들어 할 때, 그림을 그리면서 손에 힘도 생기고 자신감도 얻게 되었습니다. 다시 일하고 싶다는 소망이 생겼습니다.>
다음 날(11일) 전시장에 가자 ‘페이스트로 다시 태어난 해바라기’를 그린 이순영 작가가 입구에서 작은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방문자들에게 선물하기 위한 행사였다. 옆에서는 캘리그라피 작가 ‘동수’씨가 열심히 글씨를 쓰고 있었다. 이 또한 방문객들을 위한 책갈피 선물이었다.
<방문자들을 위한 그림 그리기와 글쓰기의 모습/ 왼쪽이 이순영 작가>
필자의 차례가 와서 작가의 앞에 앉자, '원하는 그림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해바라기입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으시나요?’
“해바라기가 지금 러시아와 전쟁을 하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국화이기도 합니다만, 오래 전 ‘해바라기’라는 영화를 보고서 관심을 가지게 됐습니다. 작가님의 작품 소개의 글도 감동이었고요.”
“아이쿠! 영광입니다.”
작가는 미소를 띠면서 여유 있게 그림을 그렸다. 그림을 그리면서 자신의 일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느 날 훅- 파킨슨병이 저의 몸속으로 들어왔습니다. 40대의 나이였죠. 죽고 싶은 심정이었으나 기도하면서 이겨냈습니다."
작가는 중학교 때부터 그림을 좋아했단다. '화가가 되려는 꿈도 있었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무산됐다.’라고 말했다.
“그래도 그림을 그릴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합니다”면서 활짝 웃었다.
파킨슨병 환자들에게 하고 싶은 작가의 말이다.
“파킨슨병은 부끄러운 병이 아닙니다. 당장 죽을병도 아니고요. 하고 싶은 일하고, 가고 싶은 곳 가고, 나누고 싶은 것 마음껏 나누면서 즐겁게 또, 감사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소학행’과 ‘불수의’의 詩도 가슴 먹먹해
그림의 반대편 벽에 걸린 ‘이승’ 씨의 詩 ‘소확행(小確幸: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오늘도 무사히 부활하여 새날을 맞는다/ 밤새 들어온 소식은 핸드폰을 통해서 보고 듣고/ 단톡방에 들어온 아침 인사 서로 주고받는다/.../어느 날 나에게 손님처럼 찾아온 파킨슨!/ 두려움과 불안 속에서 보낸 그 끔찍한 세월./ 그러나 그 속에서 생의 아름다움, 소중함, 겸손함을 배운다…>
또한, 한택심 씨의 詩 ‘불수의(不隨意: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음)’도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의지를 따르던 몸/ 내 몸이라고 믿었던 몸/ 누가 흔드는가/ 누가 있어 신경 줄 당기고 풀며/ 꼭두각시 강요하는가/ 가라앉은 지옥 누가 휘저어/ 비명으로 타오르게 하는가…>
“(사)대한파킨슨병협화는 파킨슨병 환자와 그 가족들의 삶의 질 향상과 의료환경, 교육, 사회서비스개선, 복지향상, 제도개선 등을 위해 유관기관 및 단체와 정책 반영을 위한 노력을 경주하고 있습니다. 파킨슨병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참여해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사)대한파킨슨병협회 제도개선위원회 한양태(50)씨의 말이다. 그는 ‘우리나라는 미국〮영국〮일본 등에 비하면 의료환경이나 복지가 많이 뒤떨어져 있다. 이에 대한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통계에 의하면 파킨슨병 환자는 2019년 12만 5607명에서 2023년 14만 2013명으로 나타났다. 약 13%증가한 것이다.
일본의 경우는 어떠할까?
일본의 오랜 친구 구메소조(久米正三) 씨와 통화했다.
“후생노동성이 발표한 2022년의 통계를 보면 파킨슨 병의 환자는 29만 명입니다. 일본의 총 인구 수로 나누면 발병률은 0.23%입니다. 1만 명당 23명이 됩니다. 전문가가 아니라서 많은지, 적은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면서 파킨슨 환자 100인의 인터뷰 동영상을 보내왔다. 대부분 발병 10년이 넘은 사람들이 많았다. 그 중에서 17년, 20년, 21년의 환자들도 건강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신이 노력하면 얼마든지 잘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꽃과 풍경을 기쁜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은 평온한 일이다. 그 평온 속에서 시간과 영원성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세계적인 영성가 ‘안젤름 그륀(Anselm Grun)’의 말처럼, 파킨슨병 환자들이 희망을 잃지 말고 ‘평온 속에서 꽃으로 다시 피어나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