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5월 30일 오후 국민의힘 황우여 비상대책위원장과 추경호 원내대표가 충남 천안 재능교육연수원에서 열린 제22대 국회의원 워크숍에 참석해 앉아 있다. 사진=조선DB
궁(窮)하면 변(變)하고 변하면 통(通)한다고 했다.
2004년 총선을 앞둔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도 그랬다. 노무현 당시 대통령 탄핵사태에 따른 역풍이 거셌던데다 한나라당의 차떼기 불법대선자금 사건까지 맞물리면서 존폐 위기로 까지 치닫았다. 여론 지지율은 10%대로 추락했고 의석전망은 50석조차 힘들 정도였던 것. 궁지에 몰릴대로 몰렸던 셈이다. 한나라당에 대한 유권자들의 거부감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절박한 상황에서 ‘천막 당사’를 치고 선거운동에 뛰어들었던 게 승부수였다. 재선의원이었던 박근혜는 투표일을 20여일 남겨둔 상황에서 구원투수 격으로 대표를 맡자 종전의 호화 당사를 버리고 여의도 공터에 천막으로 만든 당사로 옮겼다. 그는 ‘부정부패·기득권 정당과의 절연’을 선언한 뒤 당내 개혁기구를 설치하고 국고보조금 사용내역에 대한 감사원 감사, 비리연루 의원의 자진사퇴 등을 공약했다. 선거 유세에서도 ‘부정부패와 절연하겠다. 마지막 기회를 달라‘는 등 읍소하는 데 주력했다.
승부수는 통했다. 선거결과가 당초 예상보다 훨씬 선전,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던 것이다. 121석을 차지했고 득표율도 40%를 넘어섰다. 2년후 지방선거에선 광역단체장 16명중 12명을 당선시키는 등 압승했고 이같은 기세는 차기 대선까지 이어졌다.
2004년 5월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 천막당사 모습이다. 사진=조선DB
4·10 총선에서 참패한 국민의힘도 위기상황에 처해 있기는 2004년 당시의 한나라당과 마찬가지다. 집권당이 대통령 임기 초반에 ’참패‘했다는 건 전례가 없는 사태이기도 하다. 게다가 선거전 초반만 해도 우세한 것으로 관측됐던 판세가 뒤집혀졌던 것이다. 해병대 채상병 순직사건으로 의혹을 받던 이종섭 전 국방장관의 호주대사 임명사태와 대파 논란 등의 악재들에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정치경험 부족, 김건희 여사 명품가방 수수, 윤석열 대통령의 오만·불통 리더십 논란까지 겹쳐지면서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것도 당 대표들이 각종 혐의로 사법 심판대에 올라있는 야당을 상대로 그렇게 됐을 정도다.
다시 일어서기가 2004년의 한나라당보다 버거운 상황이다. 이번 총선 성적표는 역대 최악이었던 4년전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최대 승부처인 수도권에서는 전체 의석의 15%인 19석으로 쪼그라들었다. 20년전 탄핵 총선 이전만 해도 40%였다.
상황이 이런데도 국민의힘은 총선 참패에 대한 책임론을 놓고 네탓 공방을 거듭, 분열양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차기 지도부 구성방식을 놓고 벌어지는 논란도 이같은 양상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당내 위기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지적들이 당안팎에서 들릴 수밖에 없다.
국민의힘으로선 당을 쇄신하고 수직적 당정관계를 정상화시키는 게 시급하다. 20년전 그랬듯이 기득권 정치에 맞설 수 있는 소장파들에게 이목이 쏠리게 되는 상황이다. 한나라당이 2004년 위기에서 벗어나 재도약하게 된 데도 소장파들의 역할이 컸던 것이다. 천막당사로 옮겨 당을 쇄신할 것을 촉구했고 박 대표가 이를 수용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수렁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됐다.
2005년 3월 24일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와 강재섭 원내대표 등 당직자들이 여의도 천막당사 1주년을 맞이하여 강서구 염창동 당사 한 켠에 마련된 천막 당사 기념관 초심의 공간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조선DB
국민의힘 원내외 3040 정치인들도 최근 모임을 갖고 행동에 나설 것이라고 다짐했다. 당내 쇄신과 정치개혁 과제를 다뤄나갈 것이라고 합심, 향후 행보가 주목된다. 기득권에 맞서야 하는 만큼 쓴소리도 쏟아내야 한다.
이들이 지적했듯 당내 분열정치도 총선패배 원인들 중 하나였다.
2016년 총선을 앞두고 벌어졌던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의 비박 공천학살은 집권당 분열을 초래, 결국 선거를 망쳤다. 선거를 앞두고 새누리당이 180석을 차지할 것이란 압승 전망까지 나돌았을 정도였는데 김무성 대표의 옥새파동까지 벌어졌던 당 분열 앞에선 속수무책이었다.
이같은 분열은 또 국회에서 박근혜 당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가결로 이어졌고 배신자 논란까지 초래했으며 지금도 여권 단합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경쟁상대인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총선 압승을 토대로 이재명 대표 일극(一極)체제를 강화함으로써 단일대오를 형성, 국회를 장악하고 대정부 공세를 한층 강화할 움직임이다. 저변에는 차기 대선을 앞두고 이 대표 사법 리스크를 철통 방어하려는 절박감이 자리해 있다. 조국혁신당도 대통령 임기단축 개헌이나 탄핵을 통한 윤석열정부의 조기 종식을 외치는 등 날을 한껏 세우고 있다.
그런데도 국민의힘에는 위기감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총선 참패로 왜소해질대로 왜소해진 처지임에도 친윤. 비윤, 친한(한동훈) 등으로 세력간 갈등양상을 표출하고 있다. 윤 대통령과 당 지도부가 최근 워크숍을 통해 단일대오를 역설했다지만 공염불같기만 하다.
국민의힘은 과연 변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