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3월 5일 조국(오른쪽) 조국혁신당 대표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사진=조선DB
조국혁신당이 원내교섭단체 자리를 꿰차겠다고 호언했으나 그렇게 되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의원 몇 명을 꾸어오는 게 방법이 될 수 있지만 더불어민주당 측은 호응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게다가 ‘혁신’을 내걸고 있는 당이 그런 편법을 동원하려는 자체가 궁색하기도 하다.
당선자를 배출한 군소정당들과 함께 공동교섭단체를 만들 수도 있으나 교섭단체 최소 의석수(20석)를 채우기가 벅차다. 의석수를 낮추기 위해 관련법을 개정하려해도 칼자루를 쥐고 있는 교섭단체들, 즉 국민의힘은 물론이고 법개정을 총선공약으로 했던 더불어민주당조차 부정적으로 돌아섰다. 돌변한 저변에는 예상밖으로 몸집이 커진 조국혁신당에 대한 견제심리가 깔려 있을 것이다.
법 개정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추진할 경우 교섭단체를 구성했다고 한들 자력에 의한 게 아니기에 정국상황에 따라 언제든 붕괴될 수 있다, 과거 사례를 되짚어보면 그렇게 교섭단체 자리를 차지하는 게 정치적으로 약(藥)이기만 했던 것도 아니다. 의원을 꿔줬거나 함께 교섭단체를 구성했던 정당들도 비슷한 운명에 처할 수 있다.
그럼에도 총선만 치르면 교섭단체 구성문제가 이슈로 부각돼왔던 것은 원내 3당이라고 해도 교섭단체가 되지못하면 군소정당들과 처지가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국회에서 벌어지는 주요 활동들은 교섭단체들간 협상을 통해 이뤄지고 군소정당이 끼어들 여지가 없는 것이다. 국고보조금 지원방식도 교섭단체에 훨씬 유리하게 돼 있다.
1996년 총선에서 50석을 차지했던 제 3당 자민련은 4년 뒤 총선에선 원내교섭단체도 구성하지 못하는 17석으로 쪼그라들었다. 부랴부랴 교섭단체 의원 수 요건을 10명이상으로 낮추는 개정법안을 만들어 국회운영위를 통과시키는 것까지는 성공했으나 본회의에서 한나라당 반대로 무산돼 버렸다.
그 와중에 등장했던 게 ‘의원 꿔주기’라는 편법이었다. DJP 공동정부의 한 축이었던 덕에 새천년민주당으로부터 의원 4명(자민련 의원 1명이 반발·탈당했기에)을 빌려와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하는 데 성공했던 것.
하지만 몇 년 못가 교섭단체 지위를 빼앗겨야 했다. 통일부장관 해임 건의안 투표과정에서 자민련이 한나라당에 가세, 찬성한 것을 계기로 새천년민주당이 공동정부를 붕괴시켰고 꿔줬던 의원들을 데려가 버렸던 것이다.
2004년 4월 10일 서울 마포 자민련 당사에서 당직자들이 김종필, 이한동, 이인제 전 총재 및 총재권한대행에 대한 검찰 수사를 규탄하는 집회를 갖고 있다. 사진=조선DB
그리고 자민련은 2004년 총선에서 텃밭이었던 충청권조차 열린우리당 측에 거의 다 뺏겨버리고 4석에 불과한 미니 정당으로 전락했다. 비례대표 1번이었던 JP조차 낙선, 정계를 은퇴하게 됐던 것. 의원들을 꿔줬던 새천년민주당 역시 노무현 대통령 탄핵역풍에 휩쓸려 호남에서 열린우리당에 참패, 9석의 군소정당으로 추락했다,
2008년 총선에서도 교섭단체를 구성하기 위한 움직임이 있었다. 자민련의 후신격인 자유선진당과 문국현 대선후보의 창조한국당 간 공동교섭단체가 결성됐던 것. 당시 선진당은 충북에서 참패하는 바람에 충청권 14석에 비례대표까지 포함해도 18석에 그쳤으나 창조한국당 측과 공조, 교섭단체를 구성하는 데는 일단 성공했다. 하지만 양당은 탈당과 의원직 상실 등의 사태에 휩쓸리면서 1년만에 교섭단체 지위를 상실했다.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와 창조한국당 문국현 대표가 2008년 8월 6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교섭단체구성합의문에 서명을 한 뒤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조선DB
그후 선진당은 4년 뒤 총선에서 비례대표를 포함, 5석으로 쪼그라들자 새누리당과 합당해버렸다. 창조한국당은 득표율 저조로 정당등록 자체가 취소돼 버렸다.
이들 정당 외에도 2018년 민주평화당과 정의당, 2년 후에는 민주평화당을 흡수한 민생당이 무소속 의원들과 공동교섭단체를 구성했으나 얼마 못가 모두 원외정당으로 전락하거나 사라졌다.
이처럼 자력이 아닌 방식으로 교섭단체를 구성했던 게 당의 정치적 위상을 일시적으로는 높일 수 있었으나 결국에는 몰락의 길을 걸을 공산이 컸던 것이다. 양당 체제가 워낙 강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교섭단체 구성에 집착, 당의 정체성이 약화됐던 것도 원인(遠因)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총선에서 표출된 유권자 표심을 거스르는 것이기도 하다.
2018년 3월 5일 오후 민주평화당 장병완 원내대표와 정의당 노회찬 원내대표가 민주평화당과 정의당의 교섭단체 연대 등을 협의하기 위해 만나고 있다. 사진=조선DB
조국혁신당은 어떻게 될까. 이번 총선에선 무소속 당선자가 한명도 없었을 정도로 양대 정당에 대한 표 쏠림이 어느 때보다 강했기에 군소정당들끼리 합쳐 공동교섭단체를 만든다는 건 더욱 어려워졌다.
교섭단체 의원 수 요건을 낮추는 방식은 과거에도 수차례 있었으나 단 한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DJP 공동정부 때는 국회본회의까지 법안이 올라갔음에도 끝내 무산됐을 정도다. 양대 정당과 군소 정당들 간의 이해관계가 팽팽히 맞섰기 때문이다. 현행 의원 수 요건은 50여 년 동안 버텨왔던 철벽이기도 하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조국혁신당의 경우 의지할 곳이라곤 더불어민주당밖에 없다. 의원 꾸어오기 따위는 하지 않을 거라고 호언하고 있지만, 달리 뾰족한 방법을 찾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법 개정을 추진한다고 해도 더불어민주당에 달려있다.
문제는 양측이 친명·친문 갈등과 맞물려 야권의 전체 파이를 놓고 경쟁해야 하는 관계로 치닫을 수 있어 성사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이재명 대표 입장에서도 조국 대표의 정치적 부상이 껄끄러울 것이다. 두 사람 모두 야권의 대선후보감으로 거론되는 상황이다.
물론, 두 사람의 정치적 운명은 무엇보다 재판의 향배에 달려 있어 그 결과에 따라 야권 판도가 흔들릴 수 있고 교섭단체 성사여부에도 변수로 작용할 여지가 있다.
조국혁신당으로서는 교섭단체를 만들려고 애쓸 것이나 현재와 같은 상황에선 기대난망일뿐이다. 그렇다고 군소정당으로 주저앉아 있다가는 국회활동에서 찬밥 신세로 전락, 결국 더불어민주당의 들러리로 밀려날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 친문(문재인) 당선자들의 탈당·합류를 고대(苦待)할 수도 있지만 당장은 쉽지 않아 보인다. 고민이 깊어지는 조국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