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일본에서 아주 특별한 곳에 갔다. 목적지는 유텐지(祐天寺)라는 사찰이었다. 도쿄도(東京都) 메구로구(目黒区)에 있는 정토종이다.
(사진: 유텐지의 본당)
동행자는 ‘일본에 있는 한국인 유골遺骨)들을 송환하는 일’에 앞장서고 있는 (사)글로벌평화녹색 문화원의 박근목(76)이사장과 이상윤(69)원장이었다.
필자는 사찰의 경내로 들어가면서 한국과 일본 언론에 보도됐던 기사를 떠올려 봤다.
<1945년 8월 24일. 해방의 기쁨도 잠시, 강제동원 한국인을 태운 귀국선 ‘우키시마호(浮島丸號)’가 일본 마이즈루항 앞바다에서 침몰했다. 4730톤급 거함은 돌연 뱃머리를 돌려 그곳으로 향했고, 의문의 폭발과 함께 사라졌다. 그토록 그리던 고국 땅을 밟지 못한 채 수천 명의 한국인이 수장됐다.>
<유텐지 명단이 확보되면 과거 국내로 반환됐던 유해의 행방도 어느 정도 파악이 가능할 전망이다. 정부는 1971-1976년 3차례에 걸쳐 ‘우키시마호’ 희생자 유골 241구를 봉환했지만, 이후 추적 조사를 하지 않아 유골의 행방을 놓친 상태다.>
일단, 사찰의 사무실로 갔다. 사전에 연락을 했기에 어려움은 없었다. 방명록에 이름과 주소, 전화번호를 적었다.
“유골을 모신 곳으로 안내하겠습니다.”
사찰의 사무장은 필자 일행을 안내했다. 앞장서서 가던 그가 뒷문으로 들어가서 육중한 문을 열었다.
“제단의 사진 촬영은 안 됩니다. 단, 참배하는 사진은 괜찮습니다.”
“네. 잘 알겠습니다.”
(사진: 기도하는 박근목 이사장(왼쪽)과 이상윤 원장)
제단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기도를 하고서 다시 사무실로 갔다. 고국에 돌아가지 못하는 서러운 유골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박근목 이사장은 더욱 절절하게 말했다.
“우리 모두가 해야할 일입니다. 역사의 죄인이 되지 말아야 하니까요.”
사무실에서 차를 마시면서 사무장과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저희는 돌아가신 분들의 극락왕생(極樂往生)의 기도와 관리만합니다. 이 유골의 책임자는 일본 정부입니다.”
“그럼 정부의 어느 부서로 연락을 해야 하나요?”
“후생노동성입니다. 담당자의 이름은 알 수 없지만 대표전화로 연락을 하시면 될 것입니다.”
그는 전화번호가 적힌 명함 형식의 카드하나를 내밀었다. 그리고, 친절하게 택시를 불렀다.
‘10-15분 쯤 후에 이곳으로 택시가 올 것입니다. 사무실에서 기다리셔도 좋습니다’라고 말했으나 업무에 방해가 될 것 같아서 경내의 벤치에서 택시를 기다렸다.
‘좋은 사람 연기하고 있지 않습니까?’
사찰에 이와 같은 의미 있는 글이 있었다.
사람은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신의 기분을 억누르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좋은 사람인 척 자신을 속여서는 안 된다.
택시를 기다리는 동안 후생노동성으로 전화를 걸었다. 구내번호를 몰라서 교환원을 거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회사의 면접시험보다 더 어려웠다. ‘국적과 이름’은 기본이고, 방문 목적, 인원 수...끝이 없었다. 7분여 만에 담당자가 나왔다.
“담당자입니다. 유텐지(祐天寺)와 어떤 관련이 있으시나요?‘
“직접적인 관련은 없습니다만...”
“오후 3시에 전화하시죠. 내부 회의를 거친 후에 말씀드리겠습니다.”
필자는 그가 응대해 준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가볍게 식사를 하고서 다시 전화를 걸었다.
“아무래도 면담은 어렵겠습니다. 전화로 설명하시든지, 다음 기회에 정식으로 공문서를 제출하시죠.”
물론 어려운 일이다. 우리나라도 관공서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 절차와 형식을 따지기로 유명한 일본의 경우는 어떠하겠는가. 그러나 필자는 물러서지 않고서 그를 설득했다.
“그럼 저희 사무실로 오세요. 내일 오전 10시까지요. 여권은 필히 지참하셔야 합니다. 주소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절반의 성공이었다. 일행은 필자의 표정만으로도 박수를 쳤다. 담당자와 통화한 시간을 보니 16분 55초였다. ‘로밍을 했다’고는 하지만 국제통화 아닌가. 필자는 ‘수업료가 제법들었다’는 생각을 하면서 웃었다.
후생노동성에서 실마리를 찾아
다음날 후생노동성의 안내소에서 출입증을 받았다. 시간이 되자 전화통화를 했던 담당자가 로비로 내려왔다.
“저희 사무실로 가시죠. 회의실을 마련해 놨습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서 그가 안내한 대로 사무실 내부에 있는 회의실에서 정식으로 명함을 교환했다. K(52)과장과 S(45)계장이었다.
“유텐지에는 남한 출신의 유골 275기와 북한 출신 425기가 있습니다.”
그가 자료를 보면서 친절하게 설명했다. 그러면서 말을 이어갔다.
“전화상으로 충분히 이해를 했습니다. 유골 반환은 그다지 어려움이 없습니다. 한국의 외무부를 통해서 일본의 외무성으로 공문서를 보내시면 됩니다. 저희는 외무성의 지시에 의해 절차상 하자기 없으면 그대로 시행을 합니다. 물론, 유족들의 요구가 있어야 될 것 입니다.”
예정된 시간보다 길게 대화가 이어졌다.
“제 명함에 이메일 주소가 있습니다. 질문을 주시면 언제든지 답변해드리겠습니다.”
그는 다시 로비까지 내려와서 작별인사를 했다.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면서.
청사 밖으로 나오자 비가 그친 도교의 하늘이 맑고 푸르렀다. 저 멀리 구름 속으로부터 영혼(靈魂)들의 속삭임이 들리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