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진=TV조선 캡처
1월 16일 함석헌사상연구회 주최로 워싱턴 D.C 근교에 있는 성공회 회의실에서 통일간담회가 열렸다. 이날 강연자로 나선 한국 전북 소재 대학교의 L 교수는 강연 직후 ‘민족통신’ 기자와 만났다.
민족통신은 재미 종북인사 노길남이 운영하는 친북 성향 인터넷 매체다. 노길남은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80년대 미국으로 건너간 뒤부터 꾸준히 종북 활동을 펼치고 있다. 북한을 75차례나 방문한 노길남은 2014년 4월 평양에서 김일성상(賞)을 받았고, 북한의 대남 선전 사이트 ‘우리민족끼리’가 주최한 경연대회에서도 ‘북녘 동포들 가슴 깊이 젖어든 령도자’라는 작품을 제출해 입상한 인물이다.
그는 2006년에는 ‘재외동포 언론인’ 자격으로 입국해 한명숙 당시 국무총리와 공관에서 오찬을 갖기도 했다.
L 교수는 근황을 묻는 민족통신 기자에게 1월 말 새로운 도서를 발행한다고 밝혔다. 책 제목은 ≪문학과 예술속에 반미≫인데, 민족통신은 기사에 제목이 흥미롭다고 썼다. 민족통신은 “L 교수에 따르면 이 책의 내용은 주로 광주항쟁을 계기로 분출된 반미소리와 반미의 역사를 문학과 예술 속에서 찾아 밝힌 내용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L 교수는 책 내용에 대해 블로그 등에 <1945년부터 반세기 동안 전개된 한미관계를 살펴보며, 한국의 소설과 시, 음악과 미술, 그리고 연극과 영화 등에 묘사된 미국의 부정적 모습을 소개했습니다. 반미주의는 1980년대 한국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폭넓고 강렬하게 전개됐습니다. 1980년 5월의 광주 학살이 한국과 미국 사이의 극도로 불평등한 관계 때문에 수십 년 동안 쌓여온 다양한 갈등으로부터 생겨난 불만과 원한 그리고 분노가 전면적으로 폭발하는 데 방아쇠를 당긴 것이었습니다. 많은 문인과 예술가들에게 미국은 더 이상 동맹이 아니었습니다. ‘제국’은 의심할 여지없이 ‘적’이 되었던 것입니다>라고 썼다.
L 교수는 2008년 6월 ≪두 눈으로 보는 북한≫이란 책을 냈는데 그가 북한 선전 매체의 역할을 한다는 의심을 받는 인터넷 통일뉴스(2013년 4월 8일)를 통해 책의 핵심이라고 밝힌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공산주의의 목표는 매우 훌륭한데 추구하는 방법이 바람직하지 못하다. (2) 북한 정부를 세운 사람들은 대부분 항일운동을 했던 공산주의자들로 북한도 정통성이 있다. (3) 김일성이 해방 이후엔 6·25남침과 독재정치 그리고 부자세습 등의 악행을 저질렀지만, 해방 이전엔 항일독립운동이라는 선행을 했다. (4) 주체사상은 긍정적 측면과 배울 점이 적지 않지만, 김정일에 의해 변질이 되어 독재와 부자세습을 정당화하는 도구가 되었다. (5) 선군정치는 김정일이 나라 안팎의 위기를 맞아 단결력과 충성심이 높은 군대를 로동당보다 우위에 둔 정치다. (6)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은 미국의 위협에 의해 시작된 것으로 미국을 상대하기 위한 것이다. (7) 연방제보다 바람직하면서도 실현가능성이 높은 통일방안은 없다.>
그는 전북 익산에서 재미교포 신은미씨와 민주노동당 전 부대표 황선씨의 토크콘서트를 조직했다가 고교생에게 테러를 당하기도 했다. 당시 오모 군은 신은미·황선 토크 콘서트가 열린 익산 신동 성당에 개탄과 황산을 섞은 인화물질을 던졌다. 이 때문에 L 교수 등 앞자리에 앉은 2~3명이 다쳤다.
L 교수는 2015년 1월 25일 미국 워싱턴 지역 교민들을 상대로 한 강연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대학 다닐 때 학생운동도 하지 않고 교수가 되기 위해 공부만 했고, 지금까지 감옥에도 다녀온 적이 없다. 제 스스로 민주화 운동의 죄인이라 생각한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하나라도 더 끌어오는 게 내가 기여할 수 있는 일이다.”
L 교수는 ‘통일운동’에 몸담게 된 계기에 대해 그는 “1999년 1차 연평해전 때 한국군이 북한 군인 30여 명을 수장시킨 뒤 군이 ‘승전가’를 보급하고, 나라 전체적으로 승전의 분위기에 들뜬 것을 보며 소름이 돋았다”고 말했다.
글=최우석 월간조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