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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거 직후의 김신조(좌에서 두 번째).
오늘은 북한군 124부대 무장공비 31명이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서울로 침투했던 1·21사태 50주년이다.
이들은 국군 복장으로 위장한 채 청와대 뒷편인 서울 세검정까지 침입했다. 경찰은 청운동을 넘어 세검정 고개를 통과하려던 이들을 불심검문, 무장공비임을 확인했다. 경찰과 무장공비 사이에 일대 총격전이 벌어졌다. 우리 군경(軍警)은 31명 중 29명을 사살하고 1명 생포했다(다른 1명은 도주). 이 과정에서 우리 군경민(軍警民) 34명이 희생되었다.
조사 결과, 이들 무장공비는 김일성의 지시를 받은 김정태 정찰국장으로부터 청와대 습격과 요인 암살 지령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수류탄과 기관단총으로 무장하고, 1968년 1월 17일 자정을 기해 휴전선 군사분계선을 넘어 야간을 이용해 잠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검거된 김신조는 남파 목적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청와대를 까러 왔다”고 답했다. 검거 직후 김신조와 중앙일보 손석주 기자가 나눈 일문일답이다.
<―너, 이름이 뭐야. 나이는?
“김신조다. 스물일곱 살이다.”
―주소와 계급은?
“군관(장교)이고 함경북도 청진시 청암구 청암동 3반에 가족이 살고 있다.”
―남파 목적이 뭐야?
“청와대를 까러 왔다. 21일 밤 8시에 공격을 개시해 5분 만에 끝낸 후 청와대 차를 뺏어 타고 문산 방면으로 도망하기로 했다. 이것이 잘 안 되면 비봉 쪽으로 달아나려 했다. 그러나 지휘자의 잘못으로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몇 명이 왔어?
“31명이 국군 복장을 하고 왔는데, 1명은 대위, 2명은 중위, 3명은 소위 계급장을 달고 나머지는 사병 복장을 하고 넘어왔다.”
―넘어 온 게 언제야?
“16일 평양에서 출발했다.”
―무기는?
“수류탄, 장총, 권총이다. 1인당 수류탄 열 개와 탄알 300개씩을 가져왔다. 우리는 결사대 훈련을 받았으며 모두 군관(장교)이다.”
―현재 기분은?
“모든 것이 끝났다. 이젠 겁도 안 난다.”> (조갑제 기자의 《박정희 전기》에서 발췌)
“김신조다. 스물일곱 살이다.”
―주소와 계급은?
“군관(장교)이고 함경북도 청진시 청암구 청암동 3반에 가족이 살고 있다.”
―남파 목적이 뭐야?
“청와대를 까러 왔다. 21일 밤 8시에 공격을 개시해 5분 만에 끝낸 후 청와대 차를 뺏어 타고 문산 방면으로 도망하기로 했다. 이것이 잘 안 되면 비봉 쪽으로 달아나려 했다. 그러나 지휘자의 잘못으로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몇 명이 왔어?
“31명이 국군 복장을 하고 왔는데, 1명은 대위, 2명은 중위, 3명은 소위 계급장을 달고 나머지는 사병 복장을 하고 넘어왔다.”
―넘어 온 게 언제야?
“16일 평양에서 출발했다.”
―무기는?
“수류탄, 장총, 권총이다. 1인당 수류탄 열 개와 탄알 300개씩을 가져왔다. 우리는 결사대 훈련을 받았으며 모두 군관(장교)이다.”
―현재 기분은?
“모든 것이 끝났다. 이젠 겁도 안 난다.”> (조갑제 기자의 《박정희 전기》에서 발췌)
김신조씨는 전향을 한 뒤 기독교에 귀의, 국내외 3200개 교회에서 간증·전도집회를 열었다. 1997년엔 목사 안수를 받고 목회를 하고 있다. 안보강연도 2800회 이상 가졌다. 김신조 목사는 최근 《월간조선》 2018년 2월호와의 인터뷰에서 “안보정신이 없으면 좋은 장비도 고철이 된다”며 “50년이 됐는데도 계속 (북에) 끌려 다니고 있다”고 우려했다. 김 목사는 “지금도 북한은 (대남 전략) 첫 번째가 도발, 두 번째가 대화 유도, 세 번째가 돈 끌어내는 것”이라고 진단하기도 했다.
김신조씨와 함께 침투했다 도주한 자는 훗날 인민군 대장이 된 박재경이다. 박재경은 2000년 9월 김정일의 특사 자격으로 김용순과 함께 방한, 김대중 대통령 등 우리 고위 인사들에게 송이버섯을 선물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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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규식 전 서장 동상 앞에 모인 추모식 참석자들. |
무장공비의 흉탄에 순직한 고(故) 최규식 전 종로경찰서장과 정종수 경사의 추모식은 매년 서울 종로구 자하문고개 인근 최규식 서장 동상 앞에서 경찰 주관으로 거행되고 있다. 당시 최규식 서장은 공비들의 기관단총 난사(亂射)에 가슴과 복부에 관통상을 입었음에도 “청와대를 사수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의 최후의 명령으로 청와대 기습은 저지될 수 있었다. 이때 정종수 경사도 공비들의 흉탄에 맞아 순직했다. 정부는 이들의 공로를 기려 최 서장과 정종수 경장을 각각 경무관과 경사로 1계급 특진시키고 이들에게 태극무공훈장과 화랑무공훈장을 추서했다.
기자는 6년 전(2012년 1월 21일) 이 추모식을 취재하러 간 적이 있다. 당시 최규식 전 서장의 장남 최민석씨(당시 51세)는 “세상이 바뀌었어도 나라를 위해 몸 바친 분들을 잘 기억하고 추모해야 한다. 이제는 그분들이 마치 희생양처럼 보이기도 한다”고 말했다. 최씨는 “요즘엔 물질적인 것만 추구하다 보니 나라를 위해 몸 바친 분들에 대한 기억이 사라지고 있는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이 나라, 이 강토가 우리의 집이다. 반드시 지켜내야 한다”고 말했다. 최씨는 “선친이 돌아가셨을 때 내 나이가 일곱 살이었다. 부친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어 자녀들과 되도록 많은 시간을 보내려 한다”고 덧붙였다.
글=조성호 월간조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