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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반대의 길을 걸은 미국의 두 여성 대법관 - 긴즈버그와 오코너

리버럴 위해 죽는 날까지 대법관 자리 움켜쥐었던 긴즈버그, 알츠하이머 걸린 남편 간병 위해 은퇴한 오코너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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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최초의 여성대법관 샌드라 데이 오코너(왼쪽)과 두번째 여성대법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미국 연방대법관이 9월 18일 타계했다. 향년 87세. 긴즈버그 대법관이 세상을 떠나자 미국에서는 ‘국가적으로’ 그를 애도하고 있다. 
1993년 연방대법관으로 지명되어 27년간 그 자리를 지킨 긴즈버그는 평생을 차별받는 이들을 구제하기 위해 투쟁했던 ‘진보 투사’였다. 그가 변호사, 교수, 대법관으로 내린 판결들 가운데는 성(젠더)이나 인종에 따른 차별들을 타파하는 이정표가 된 것들이 많다.
그는 판결을 통해서 뿐 아니라 삶을 통해서도 ‘투사’였다. 특히 그는 암 투병을 하면서도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있는 한 죽지 않겠다”고 공언, 미국 리버럴들의 환호를 받았다. 미국 연방대법관은 종신직이고, 대법관이 죽으면 대통령이 후임자를 지명해 상원의 인준을 받게 되어 있다. 때문에 긴즈버그는 자기가 죽으면 트럼프가 보수성향 대법관을 임명할 것을 우려해 그렇게 버텼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공직자로서, 특히 법관으로서 바람직한 자세였을까? 미국 헌법이 연방대법관을 종신직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은 사법부가 대통령이나 의회로부터 독립해서 판결하게 하는 장치이지, 대법관에게 죽을 때까지 그 자리를 누리게 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특히 대법관은 당파성으로부터의 독립도 중요한데, 보수성향 법관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을 막기 위해 대법관 업무를 정상적으로 수행할 수 없는데도 악착같이 그 자리를 지키려 한 것이 바람직한 일이었는지, 박수를 칠 일이었는지는 의문이다.

긴즈버그의 이런 행태는 미국 최초의 여성 연방대법관이었던 샌드라 데이 오코너(1981~2007년 재임)와 대조적이다. 
오코너 역시 ‘유리 천장’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던 여성법조인이었다. 스탠포드대 로스쿨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지만, 로펌에 취직하려 해도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 이후 변호사, 애리조나주 검찰차장, 애리조나주 상원의원, 애리조나주 항소법원 판사 등을 거쳐 1981년 레이건 대통령에 의해 연방대법관으로 지명됐다. 연방상원은 표결에 불참한 한 명을 제외한 전원이 오코너에게 찬성표를 던졌다.
오코너는 보수주의자인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에 의해 임명되기는 했지만, 보수 일변도의 판결을 내리지는 않았다. 오히려 미국 내에서 보수와 리버럴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낙태문제에 있어서는 보수세력의 요구에 반해 찬성 입장을 견지했다. 오코너는 긴즈버그처럼 화려한 주목을 받을 만한 판결을 내리기보다는 중도적인 판결을 많이 내려 연방대법원이 좌우 어느 한쪽으로 기우는 것을 막는 균형추 역할을 했다. 때문에 그는 나중에는 보수세력으로부터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미국 리버럴의 대변자 역할을 했던 긴즈버그와는 대조적이었다.
오코너 대법관은 퇴임도 산뜻했다.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 자리를 지킬 수 있었음에도 2005년 돌연 은퇴를 선언하고 이듬해 1월 은퇴한 것이다.
오코너가 은퇴한 것은 알츠하이머병을 앓는 남편 존 오코너를 간병하기 위해서였다. 기가 막힌 얘기는 그 다음부터였다. 기억을 완전히 잃은 남편 존이 요양원에서 만난 ‘케이’라는 할머니와 사랑에 빠져버린 것이다. 오코너는 이 말도 안 되는 현실을 쿨하게 받아들였다. 그의 큰 아들 스캇에 의하면 오코너는 남편이 요양원에서 새 연인을 만나 만족해하고 행복해하는 데 대해 매우 기뻐했다고 한다. 오코너는 일반인들이 알츠하이머에 대해서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자기 부부의 사례가 TV방송에 나가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기도 했다. 오코너는 1994년에는 전미암생존자연맹 행사에 나가 자신의 유방암 수술 경험을 소개하면서 암환자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어준 바 있었다.
이후 오코너는 알츠하이머병 치유를 위한 전도사를 자처하면서 미국 젊은이들에게 시민윤리를 강의하는 웹사이트 ‘아이시빅스’(iCivics)를 만들어 활발하게 활동했다. 미국의 명문대학인 윌리엄앤드메리대학 학장도 지냈다. 2009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민간인에게 수여하는 최고의 훈장인 ‘자유의 메달’을 수여했다.
알츠하이머는 오코너에게도 찾아왔다. 2008년 10월 오코너는 자신이 알츠하이머 초기 단계라는 진단을 받았다고 스스로 밝혔다. 그는 법원에 보낸 서한 형식의 성명을 통해 “나는 여전히 친지들과 더불어 살겠지만, 치매가 있는 삶의 마지막 단계가 나를 시험에 들게 할지 모른다"면서 "하지만 축복받은 내 삶에 대한 감사와 태도는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코너는 “새로운 지도자들이 아이시빅스를 이끌어야 할 때가 왔다”면서 그동안 해온 모든 공적 활동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존 로버츠 연방대법원장은 이 소식을 접하고 “오코너 전 대법관은 거탑과 같은 인물이자 여성은 물론 법 앞에 평등한 모든 이의 모범이었다”면서 “오코너 전 대법관이 비록 공적 생활에서 은퇴하기로 발표했지만, 그 어떤 병세도 그가 많은 이들을 위해 제공했던 영감과 열정을 앗아가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람이 사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다. 어느 쪽이 옳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진보운동의 투사’라는 입장에서 판결을 하고, 그 관점에 따라 죽는 날까지 대법관 자리를 움켜쥐려 안간힘을 썼던 긴즈버그보다는, 보수주의자이면서도 ‘법의 정신’에 따라 균형 있는 판결을 하려 노력하고, 남편을 돌보기 위해 대법관 자리를 내려놓고, 남편의 새로운 사랑을 기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자신이 알츠하이머에 걸렸다는 진단이 나온 순간 스스로 공적 활동을 그만 둔 오코너의 경우가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오코너는 ‘멋있는 보수’가 무엇인지를 보여준 사람이었다.

입력 : 2020.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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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진영 ‘어제 오늘 내일’

ironheel@chosun.com 어려서부터 독서를 좋아했습니다. 2000년부터 〈월간조선〉기자로 일하면서 주로 한국현대사나 우리 사회의 이념갈등에 대한 기사를 많이 써 왔습니다. 지난 70여 년 동안 대한민국이 이룩한 성취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내용을 어떻게 채워나가는 것이 바람직한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2012년 조국과 자유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45권의 책을 소개하는 〈책으로 세상읽기〉를 펴냈습니다. 공저한 책으로 〈억지와 위선〉 〈이승만깨기; 이승만에 씌워진 7가지 누명〉 〈시간을 달리는 남자〉lt;박정희 바로보기gt;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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