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위원들은 과시욕구를 버려야 합니다. 인수위는 구체적인 정책을 하나하나 결정해 나가는 곳이 아닙니다. 우리 국가의 큰 방향과 정책적 흐름을 설정해 나가는 곳입니다. 정부 부처 조직을 바꾸거나 정책을 바꾸려면 국회의 동의가 필요한 사안인데 어떻게 50일 인수위 활동을 하면서 이런 세세한 것들을 모두 결정할 수 있겠습니까. 때문에 인수위원들은 스스로 그 역할이 어디까지인지를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불필요한 논란이나 구설을 막을 수 있습니다”
김병준
59세. 영남대 정치학과 졸업. 델라웨어대 정치학 박사.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
제7대 교육인적자원부 장관, 부총리,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 역임.
現 국민대 사회과학대 행정학전공 교수.
김병준
59세. 영남대 정치학과 졸업. 델라웨어대 정치학 박사.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
제7대 교육인적자원부 장관, 부총리,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 역임.
現 국민대 사회과학대 행정학전공 교수.
의욕적인 ‘개혁’ 청사진을 제시하면서 변화와 개혁의 기치를 내걸었던 노무현 인수위에서 공약 밀어붙이기, 정책 번복, 월권(越權) 시비, 고압적 태도 등 과거 인수위를 답습(踏襲)한 이유는 무엇일까
당시 정무분과 간사를 맡은 김병준(金秉準) 국민대 교수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김 교수는 노 당선자의 최측근으로 인수위 때부터 노무현 정부 임기 끝까지 대통령 정책실장,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 대통령정책특보 겸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 등 요직(要職)을 두루 거친 인물이다.
非학계, 교수 출신 인수위원 견제

—정치인 배제 원칙 때문에 정치권 인사들과 학자 출신 인수위원 간의 마찰음이 컸다고 하던데요.
“겉으로 드러난 것은 없습니다. 직접적인 만남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마찰은 일어날 수 없었지요. 다만 밑으로는 긴장감이 감돌았습니다. 정치인들이 학자 출신 인수위원들이 차기 정부의 핵심요직에 가는 것을 탐탁지 않아 하는 분위기였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을 우려해서 노무현 당선인도 학자 출신 인수위원들에게 ‘당신들은 인수위 활동이 끝나면 모두 학교로 돌아가는 것으로 알아달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정치권과 학자 출신들이 대립해 봐야 이득 될 게 없었으니까요. 그래도 이런 이야기는 계속됐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에 대한 이야기도 많았고요.”
—일종의 타깃(target)이었군요.
“교수들을 대표하는 입장에 있는데다 정무위 간사이다 보니 여기저기서 전화가 많이 왔습니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였죠. 사실 받을 수 있는 환경도 아니었습니다. 그랬더니 이 사람 저 사람이 노 당선인께 저에 대해 안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한 모양이더라고요.
노 당선인이 저에게 ‘정치하는 분들이랑 좀 잘 지내세요’라고 여러번 이야기할 정도였습니다.”
—여러분이라 했는데 정치인도 포함돼 있었나요.
“그렇죠. 정치인들이 학자 출신 인수위원들을 달갑지 않아 했으니까요.”
—그들이 주로 어떤 이야기를 노 당선자에게 전했다고 들었습니까.
“지방대학 출신인데다가 학계에서도 비주류인 제가 인수위에서 큰 역할을 하는 것이 모양이 좋지 않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대한민국의 메인스트림(mainstream·주류)을 잡을 수 없다는 뜻이죠.
노 당선인이 전해줘서 알게 됐습니다. 말을 듣고 당선인에게 ‘그래서 뭐라 그러셨습니까’라고 물었더니 ‘나는 고등학교밖에 안 나왔는데 그게 무슨 소리냐’고 이야기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도 제가 상심했다고 판단했는지 한번은 저한테 힘을 실어주는 제스처(gesture)를 보여주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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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당선자가 2003년 1월 7일 대통령직 인수위 회의에 앞서 김병준 정무분과 간사와 악수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있다. 이 사진이 보도된 직후 김 간사를 향한 견제가 줄어들었다. |
—그게 무엇입니까.
“아직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2003년 1월 7일 당시 정부의 10대 국정과제를 확정한 날이었어요. 인수위 회의가 있는 날이었는데 노 당선인이 회의장에 들어서면서 제 앞을 지나가셨는데, 갑자기 두세 발자국 돌아오시더니 제게 악수를 청하시더군요. 엉겁결에 손을 잡았더니 제게 뭐라 귓속말을 하며 왼쪽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더라고요. 순간 수십 대의 카메라가 사진을 찰칵찰칵 찍어댔죠. 다음 날 신문에 보니 그 모습을 담은 사진이 대문짝만 하게 보도됐더라고요. 당선인이 저에게 힘을 실어준 것이죠. 그 이후에는 저를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 나오는 것이 덜해졌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실제 당시 언론보도들을 검색해 보니 노 당선자가 인수위 회의장에 들어서면서 정무분과 간사였던 김 교수하고만 인사를 한 뒤 이런 행동을 보인 것으로 나와 있었다.
李鍾旿 문제 계기로 다시 긴장상태
—노 당선자가 손을 들어줬으니 정치권을 비롯한 주변 분들과 학자 중심의 인수위원들 간 긴장은 완화됐겠습니다.
“그랬다가 이종오(李鍾旿) 국민참여센터 본부장 문제로 다시 긴장상태에 들어갔습니다.”
—이종오 국민참여센터 본부장도 정치인들로부터 공격을 당했습니까.
“그런 건 아니고요. 당시 인수위에 광범위한 국민 여론 청취와 정책 건의를 받는 국민참여센터를 두고 위원장에 이종오 계명대 교수를 임명했습니다. 이곳의 본부장이다 보니 자연히 이 교수가 국민참여수석으로 가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언론도 ‘유력’이라고 대대적으로 보도했고요.
근거는 없었는데 워낙 그런 이야기가 많아서 그런지 이 교수도 자신이 가는 것으로 확신했습니다. 참여센터 전문위원이었던 천호선에게 ‘내가 수석 가면 당신이 비서관을 해달라’고 말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박주현(朴珠賢) 변호사가 국민참여수석으로 임명됐습니다. 그러자 야단이 난 것입니다.”
—학자 출신 인수위원들이 들고일어났군요.
“그렇죠. 학자 출신 인수위원들은 ‘이 교수를 이렇게 짓밟을 수 있느냐. 임명을 하지 않을 것이었으면 언론에 보도가 나왔을 때 부인을 하거나, 본인에게 아니라고 통보를 해줬어야지. 입 다물고 가만히 있으면 이 교수는 뭐가 되느냐’고 노 당선인과 그 주위의 참모들을 비판했습니다.
노 당선인과 참모들은 그들대로 ‘한 번도 이 교수를 임명하겠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없는데 본인이 김칫국부터 마시면 어떻게 하느냐’고 반박했습니다. 그 이후로 제법 노 당선인을 비롯한 청와대 인사팀과 학자 출신 인수위원들 간의 갈등이 있었습니다.”
노 당선자가 임명한 박주현 변호사는 언론의 수많은 하마평에 한번도 거론된 바 없던 의외의 인물이었다. 김 교수는 “나중에 들어보니 노 당선인이 일관되게 시민사회단체의 사업에 적극 참여하고 봉사했을 뿐 아니라 젊은층의 의사를 적극적으로 수렴해, 국정에 반영할 수 있는 높은 능력과 자질을 갖춘 것으로 박 변호사를 평가해 임명했다고 하더라”고 했다.
인수위원 자신들의 역할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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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2월 5일 인수위 정무분과 김병준 간사가 대전 한국과학재단에서 열린 충청지역토론회에서 행정수도 이전과 관련한 인수위의 대책과 방향 등을 설명하고 있다. |
인수위 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점령군’이다. 목에 힘을 잔뜩 준 인수위원들이 각 부처를 상대로 사실상 ‘군기 잡기’를 시도하는 탓이다. 쌍방향 의사소통을 통한 의사 조율이 중요하지만, 권력을 잡은 이들에게는 군림(君臨)과 강압(强壓)만 있을 뿐이다.
노무현 인수위도 마찬가지였다. 인수위는 각 부처에 ▲공약에 비춰 지난 정부의 계승해야 할 정책 ▲수정이 필요한 정책 ▲현안 과제로 나눠 보고하도록 했고, 이 과정에서 인수위는 견해차를 드러낸 해당 부처를 고압적으로 대했다.
당시 상황을 보도한 2003년 1월 10일자 《한국일보》 기사의 일부분이다.
<9일 노동부의 인수위 사회문화여성 업무보고에서는 ‘개혁 마인드’가 문제가 됐다. 보고가 시작된 뒤 3분여 만에 인수위 박태주 전문위원이 산별 교섭 추진에 대한 노동부 보고에 격분, “개혁 마인드가 없는 이런 보고는 시간낭비”라며 자리를 박차고 퇴장했다. 그는 업무보고가 끝난 뒤 회의장에 다시 나타나 노동부 공무원들에게 고성을 내며 호통을 쳤다. 노 당선자의 후보 노동특보를 지낸 박 위원은 “노동부 업무보고는 당선자의 개혁 의지 반영은 물론 실현 의지도 찾을 수 없다”면서 “‘수용 곤란’ ‘부분 수용’이란 표현을 쓰는데 노동부가 당선자의 공약을 심사·평가하는 곳이냐”고 성토했다.>
—이런 상황이 벌어진 이유는 무엇입니까.
“인수위원들이 자신들의 역할을 착각할 때가 많습니다. 자신들이 차기 정권의 주요 요직에 임명될 것이란 우월감 때문에 인수위 활동을 국정감사 같은 것으로 이해하는 분들이 꽤 있더라고요.
그래도 교수 출신 인수위원들보다는 전문위원들이 호통을 더 많이 쳤습니다. 교수들은 너무 논리적・이상(理想)적이라는 비판은 들었지만, 목소리를 높이거나 고압적으로 부처 사람들을 대하지는 않았습니다.”
—해당 부처와 인수위의 견해차가 가장 큰 곳은 어디였습니까.
“교육 분야가 아니었을까요? 교육은 모두를 만족하게 할 수 있는 안(案)이 없지 않습니까. 자세한 상황은 모르지만, 인수위 교육 분야는 동국대 교수인 박부권 위원이 맡고 있었고, 그를 지원하는 전문위원들과 자문위원들이 있었죠.
그런데 구성이 복잡했어요. 진보, 보수 등 시각이 전혀 다른 사람들이 자리를 같이했죠. 당연히 손쉽게 토론 결과를 합의하기 어려웠고, 서로 다른 입장만 확인할 수밖에 없었지요.”
—정무위 내부에는 의견 대립이 없었습니까.
“있었지요. 노 당선인은 하드웨어 중심의 부처 통폐합을 지양(止揚)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 생각이었습니다. 우리나라처럼 이렇게 부처를 자주 이동하고 바꾸는 나라는 없습니다. 내무부하고 총무처하고 통합하고 난 다음에 화학적으로 융화되는 데 10년 이상 걸리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일부 위원들은 대규모 조직개편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정무위에도 호통치는 위원들이 있었습니까.
“네. ‘이걸 보고하라고 했는데 왜 누락했느냐’고 몰아세우는 전문위원들이 있었습니다.”
호통치는 전문위원들
—그렇다면 전문위원들이 문제네요. 전문위원들은 어떻게 뽑습니까.
“소수가 그러죠. 다 그러면 일이 되겠습니까? 어쨌든 전문위원은 해당 부처에서 에이스급 2~3명을 배수로 올리면 인수위에서 최종 선정합니다.
우리의 경우는 위원장과 부위원장 그리고 저, 이렇게 세 사람이 선별을 했죠. 능력 없는 사람들이라도 인수위에 오면 사실 승진이 보장되기 때문에 임명되려고 애쓰는 사람이 많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입니다만 이들 부처에서 파견 나온 사람들이 고압적인 행동은 하지 않죠. 고압적인 행동은 외부에서 온 전문가나 당에서 온 분 중 일부에서 나타나는 현상이었습니다.”
—전문위원이 되기 위해 치열한 줄 대기가 벌어지는 게 현실인데요. 로비도 받아봤나요.
“2~3배수를 올린다고 하더라도, 사실상 부처에서 ‘1순위 누구, 2순위 누구’라고 정해서 주죠. 저희 경우는 그런 부처의 입장을 존중했습니다. 특히 군과 검찰 등은 조직의 특수성을 생각해서 보내온 대로 그대로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니 저희에게 로비할 필요는 없지요. 다만 전문위원으로 오기 위해 부처 내에서는 로비전을 벌이지 않겠습니까.”
—수백 명에 달하는 자문위원들은 어떻게 임명합니까.
“선거에서 도운 분 중 일정 요건을 충족하는 분들을 자문위원으로 위촉해 줍니다. 자문위원 숫자가 많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자문위원은 인수위 내에서도 ‘도깨비 집단’으로 불린다. 정확한 숫자가 집계되지도 않고, 누구 연줄을 잡고 임명됐는지도 불분명하다. 장관급에서부터 ‘동네 건달급(?)’까지 수준도 천차만별이다. 역할도 정해져 있지 않다. 일부 자문위원은 인수위원에 버금갈 만큼 권력을 과시하는 반면 회의 한 번 참석하지 않은 자문위원도 수두룩하다. 김 교수는 “회의에 참석하는 등 정말 자문위원 역할을 하는 분들은 극히 소수”라고 했다.
언론이 인수위 傲慢 부추기기도
인수위 내부 일부 위원들의 고압적인 자세를 지적한 김 교수는 화제를 인수위 언론보도로 돌렸다. 그들이 ‘점령군’처럼 고압적인 태도를 보이는 원인으로 언론의 인수위 과잉보도를 꼽은 것이다.
사실 권력 교체기를 맞아 새 정권이 어떤 정책을 펼칠 것인지는 초미의 관심사이고, 언론이 집중 취재하다 보면 과열경쟁, 과잉보도 논란이 이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런 현상이다. 하지만 사실과 맞지 않거나 부풀린 추측기사들이 많아 국민이 혼란스러워하고 괜한 오해를 불러일으킨다는 지적도 부정할 수 없다. 그의 이야기다.
“인수위의 일부 관계자들이 신중하지 못한 발언을 하거나 다듬어지지 않은 아이디어를 내는 등 빌미를 제공한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개중에는 때로 스스로를 드러내기 위해 잘 모르는 내용까지 언급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언론이) 설익은 정책과 계획을 마치 확정된 것처럼 보도하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언론이 설익은 정책과 계획을 확정된 것처럼 보도했다고 했는데 대표적인 사례(事例)를 꼽아주십시오.
“대표적인 게 소방방재청 신설 문제였지요. 노 대통령은 흩어져 있던 재난업무를 모아 ‘소방방재청’을 신설한다는 공약을 내놓았습니다. 그래서 인수위에서 당연히 이 문제를 검토했습니다. 소방방재청 신설이 과연 합리적인가, 무리한 공약은 아닌가 살펴보는 단계였어요.
그런데 어느 날 기자가 소방방재청 신설 문제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느냐고 묻기에 ‘검토 중입니다’라고 답을 했는데 다음 날 ‘소방방재청 신설 백지화’라고 보도되더군요. 항의를 했더니 그 기자가 ‘공약한 것을 검토하는 것은 안 될 가능성이 큰 것 아닙니까?’라고 항변하더라고요. 결론적으로 소방방재청은 2004년 신설됐습니다.”
—정확성이 결여된 오보(誤報)가 양산(量産)되면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훨씬 크겠지요. 하지만 자기도취에 빠져 잘 모르는 내용까지 언급, 오보를 부추기는 인수위원이나 전문위원들도 문제 아닐까요.
“그렇지요. 경인운하 사업 백지화 문제가 비슷한 원인으로 발생했지요. 그때 난리가 났었죠.”
《조선일보》 특종 보도 이후 노무현 大怒
—당시 이런 일이 자주 터져 노 당선자가 입단속을 철저히 시켰다고 하던데요.
“그렇죠. 회의 때마다 각인시켰습니다.”
—그럼에도 정보 유출은 계속됐던데요. 노 당선자가 화를 내진 않았습니까.
“딱 한 번 엄청나게 화를 낸 적이 있습니다. 《조선일보》가 차기 비서실장 문희상, 정무수석 유인태라는 특종을 썼습니다. 문건으로 있었던 내용이었는데 《조선일보》는 노 당선자의 한 핵심 측근발(發)로 기사를 작성했더군요. 내용은 정확했습니다. 그때 한 번 노 당선인이 진노하며 보안을 철저히 하라고 당부했습니다.”
당시 노 당선인은 유인태(柳寅泰) 정무수석 내정 사실을 먼저 발표하고, 문희상(文喜相) 비서실장 내정자에 대해서는 시간을 두고 발표할 계획이었으나, 《조선일보》에 이 같은 사실이 보도되자 비서실장과 정무수석 인선을 동시에 발표했다.
다음은 2003년 1월 8일자 《조선일보》 1면 머리기사의 일부분이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당선인은 문희상(文喜相) 민주당 의원을 청와대 비서실장, 유인태(柳寅泰) 전 의원을 청와대 정무수석에 각각 내정하는 등 핵심 요직에 대한 인선에 본격 착수했다. 노 당선인은 또 김원기(金元基) 당선인 정치고문을 취임 후에도 대통령 정치고문으로 계속 기용하면서 정치적 자문을 받을 것으로 알려졌다. 또 노 당선인은 ‘안정감 있는 총리’를 물색 중인데 총리감으론 고건(高建)·이홍구(李洪九)·이수성(李壽成) 전 총리 등이 거론되고 있으나 의외의 인물이 발탁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상황을 자세히 설명해 주십시오.
“문희상, 유인태 두 사람 명단이 《조선일보》에 특종 보도됨에 따라 인수위는 매우 곤란한 상황에 빠졌어요. 인수위에 네티즌들의 항의가 봇물 터지듯 했지요. 당일 오후 6시 국민참여센터로 300여 통 이상의 항의전화가 접수됐다고 하더군요. 인수위 차원의 조사가 벌어지는 상황까지 이르렀습니다.”
—내부의 정보 누설자는 찾았습니까.
“끝까지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국회의원들이 보면 기겁할 내용
—이 사건 외에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은 없습니까.
“제가 맡고 있던 정무분과 산하에 정치개혁실현 태스크포스팀이 가동됐습니다. 저는 별로 탐탁지 않게 생각했어요. 대통령이 정치개혁에 관여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정치개혁은 정치권에서 알아서 해야 할 일이지 대통령이 주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통령이 정치개혁한다고 전면에 나섰다고 가정해 봅시다. 당장 ‘대통령이 정치권도 손 보려 한다’는 목소리가 나올걸요. 그렇게 되면 엄청난 부담을 안고 새 정부가 출범하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TF팀 가동을 반대하는 편이었습니다.
대통령을 지지했던 그룹에서 하도 정치개혁을 주장해서 팀을 만들었는데 여기서 만들어낸 보고서가 아주 충격적이었습니다. 나가면 파란(波瀾)이 일어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쉬쉬하고 있는데 이 팀이 이 안은 당선인께도 보고됐다며 발표하겠다고 한 겁니다. 그때 저와 당선인은 순회토론 때문에 지방으로 가는 차 안에 있었는데 연락을 받고 발칵 뒤집힌 것이지요.”
—어떤 내용이 담겼기에 발칵 뒤집힌 것입니까.
“자세히는 이야기 못 하겠지만 정치자금과 관련한 것이었는데 국회의원들이 보면 기겁할 내용이었어요. 절대 발표를 막으라고 정순균 대변인에게 소리를 쳤죠. 다행히 나가지는 않았는데…. 이 보고를 받을 때 당선인이 너무 피곤해서인지 잠깐 졸았었나 봐요. 내용을 전혀 기억 못 하더군요. 그런데 이 TF팀은 당선인에게도 보고했으니 언론에 발표하겠다고 나선 것이었죠. 그나마 이를 이상하게 여긴 대변인이 같이 보고를 받았던 제게 전화를 해왔기에 막을 수 있었습니다. 어쨌든 공개됐으면 떠들썩했을 것입니다.”
당시는 일명 ‘오세훈법’으로 불리던 정치자금법(2004년·1인당 후원금의 한도를 정한 정치자금 규제법)이 개정되기 전이다. 김 교수가 정치자금과 관련한 내용이 있었다고 이야기한 것에 비춰봤을 때 오세훈법과 비슷하거나, 더 강도가 높은 내용이 보고서에 담겼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인터뷰한 지 2시간이 지나자 김 교수는 또 다른 약속이 있다며 이제 마무리 짓자고 했다. 그래서 그에게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차기 구성될 인수위원회가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지 물었다.
인수위 과시 욕구 버려야
김 교수의 이야기다.
“인수위원들이 과시 욕구를 버려야 합니다. 인수위는 구체적인 정책을 하나하나 결정해 나가는 곳이 아닙니다. 우리 국가의 큰 방향과 정책적 흐름을 설정해 나가는 곳입니다.
상식적으로 정책이란 여러 이해관계자가 얽혀 있어 조금씩 미세조정을 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정부 부처 조직을 바꾸거나 정책을 바꾸려면 국회의 동의가 필요한 사안인데 어떻게 50일 인수위 활동을 하면서 이런 세세한 것들을 모두 결정할 수 있겠습니까. 때문에 인수위원들은 스스로 분명한 의사결정으로 불필요한 논란이나 구설을 막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개인적으로 인수위에 정치인들이 참여하는 것은 반대합니다. 정치인들은 너무 바쁩니다. 만날 사람들도 많고요. 제가 해보니 오전 7시30분에 출근해서 자정까지 일해도 알고 싶은 것을 다 알 수가 없더라고요. 바쁜 정치인들보다는 국가의 중장기 비전까지 고려한 인수인계를 할 수 있는 인물들을 임명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