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과제를 선정하고, 새로운 정책을 마련하는 건 정부 출범 후에 해도 충분합니다. 정책을 만들어낼 준비만 하면 될 것을, 무언가 새로운 정책을 내놓으려 했단 말이죠. 그러다보니 노무현 정권은 아직 임기가 남아 있는데, 괜히 불필요한 마찰만 일으키게 된 겁니다. 그래서 인수위는 대통령과 일할 팀을 구성하고, 그다음으로 새 정부가 들어서면 추진할 정책을 가다듬는 것까지만 인수위가 해야 할 일이라고 봐요. 돌이켜보면, 5년 전 인수위는 새로운 정책만 양산해 내려다가 정제(精製)가 덜 된 정책을 쏟아내고 말았습니다”
최경환
58세. 연세대 경제학과 졸업. 미국 위스콘신대 경제학 박사. 제22회 행정고시 합격.
이회창 대통령후보 경제특보,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17·18대 국회의원,
한나라당 수석 정책조정위원장, 지식경제부 장관, 새누리당 후보자 비서실장 역임.
現 새누리당 국회의원(경북 경산·청도).
최경환
58세. 연세대 경제학과 졸업. 미국 위스콘신대 경제학 박사. 제22회 행정고시 합격.
이회창 대통령후보 경제특보,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17·18대 국회의원,
한나라당 수석 정책조정위원장, 지식경제부 장관, 새누리당 후보자 비서실장 역임.
現 새누리당 국회의원(경북 경산·청도).
최 의원은 연세대 재학 중 행정고시(22회)에 합격한 뒤 경제기획원, 청와대 경제수석실, 기획예산처에서 근무한 경력을 갖고 있다. 또 미국 위스콘신대학에서 경제학박사(국제경제학 전공) 학위를 취득했고, 국제금융기구인 유럽부흥개발은행(EBRD) 수석이코노미스트로 일하면서 동구권 경제개발 전략을 수립했다.
최 의원은 수년간의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활동을 통해 관가에서 ‘스나이퍼(sniper)’라는 닉네임을 얻은 인물이다. 그가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은 론스타의 외환은행 불법매각 사실을 주도적으로 폭로하면서부터다. 그는 재경위 시절 노무현(盧武鉉)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하기도 했다. 대선 과정에서 청와대가 이명박 후보의 경제공약에 대해 비판을 가하자 “노 대통령 자신이 대선 때 7% 공약을 했는데 재임 중에 4%밖에 달성하지 못했다”면서 “지도자의 역량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것으로, 지금 노 대통령은 시비보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데 대해 대(對)국민 사과를 해야 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2002년 이회창 한나라당 대통령후보 정책특보로 정치에 입문한 그는 17대 때 국회의원(경산·청도)으로 당선돼 한나라당 제4정책조정위원장으로 활동했다. 2007년 대선 때 선대위 경제살리기특별위원회 총괄간사를 맡았고, 현 정부에서는 지식경제부 장관, 박근혜(朴槿惠) 새누리당 대선 후보 비서실장 등을 역임했다.

인수위의 유일한 親朴
—이명박 당선자가 경선 때 박근혜 후보 종합상황실장을 맡은 ‘야전사령관’을 왜 중용했을까요.
“(당시 이 대통령이 나에 대해) 어떤 일을 해도 무리하지 않고 합리적으로 일한다는 인상을 갖고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1%포인트 차로 경선투표에서 이기지만 여론조사에서 진다고 정확하게 예측하자, 이 대통령이 ‘대단하다’고 촌평했다는 얘기를 전해들었습니다.”
—2007년 12월 26일 인수위가 공식 출범하면서 이명박 당선자 주재로 1차 전체회의가 열렸습니다. 친박계 인사로서 유일하게 인수위원으로 임명된건데, 눈치를 주는 사람은 없던가요.
“허허, 눈총 같은 건 없었어요. 대선 과정에서 박근혜 후보가 깨끗이 승복하고 전국을 돌면서 지원유세를 열심히 했고, 그때만 해도 공동정부라고 했거든요. 그래도 대선 공신(功臣)이 들어갈 자리에 나 같은 사람까지 끼워주겠나 생각은 했었죠.”
—경선 당시 박근혜 후보 측 경제살리기특위 총괄간사를 맡아 구상했던 정책들이 있었을 텐데, 인수위 경제2분과 간사로 활동하면서 정책 수립에 반영할 기회가 있었나요.
“이명박 당선인이 선거 과정에서 내건 ‘일자리 창출’과 ‘부동산 정책’ 등 큰 골격의 경제정책들을 제외하면, 당시 한나라당의 경제정책을 이어받은 것들이었습니다. 한나라당 정조위원장을 지내면서 오랜 기간 경제정책들을 다뤘던 적이 있어 대체적으로 익숙한 것들이었어요.
다만, 중소기업 육성에 관한 것은 인수위 활동을 하면서 특별히 강조를 했습니다. 경제 환경이 대기업 일변도로 가기 때문에 중소기업을 육성하지 않으면 일자리 문제가 더욱 어려워진다는 판단에서 그랬던 겁니다.”
그는 인수위에 들어가서 맨 처음으로 중소기업 담당 전문위원 자리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했고, 청와대 대통령실에도 경제수석 산하 중소기업비서관 자리를 신설했다고 한다. 그는 “인수위 중소기업 담당 전문위원으로 송종호(宋宗鎬·현 중소기업청장)씨를 불렀다”면서 “청와대에도 중소기업비서관 자리를 역대 정부 가운데 처음으로 만들면서 중소기업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계기를 만들었다”고 했다.
국민들은 당시 이명박 인수위의 이경숙(李慶淑) 위원장이 ‘영어 공교육 완성 프로젝트 실천방안 공청회’에서 영어 표기법의 획기적인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 ‘오렌지(orange)’의 발음과 표기법을 ‘어륀지’로 바꿔야 외국인이 잘 알아듣는다는 이색주장을 한 것 등을 주로 기억하고 있지만, 이명박 인수위가 인수위 기간 동안 총력을 기울인 정책 과제는 일‘ 자리 창출’과 부‘ 동산 문제’였다고 한다.
MB 인수위, 조직 인선에 소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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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환 인수위원회 경제2분과 간사가 2008년 1월 7일 삼청동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에서 열린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건설교통부 업무보고에서 건교부 간부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
—이명박 인수위에서 59일간 활동을 했는데, 이제 정권 말기가 됐습니다. 지금 와서 당시의 인수위를 평가한다면요.
“지금 인수위의 총체적 활동에 대해 나름 평가해 보면 당시 인수위는 반드시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했습니다. 인수위 임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당선자가 대통령에 취임했을 때 일할 팀을 짜는 거 아니겠습니까. 청와대팀과 내각을 중심으로 한 정권을 담당할 팀을 짜는 인선(人選), 이게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고 봤습니다만, 다른 일에 몰두하다가 중요한 것을 소홀히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른 일이라면.
“정책을 마련하느라 골몰하다 조직 인선에 소홀했던 거죠. 막바지까지 총리감을 못 찾아 굉장히 허둥댔던 게 대표적 사례입니다. 막판에 한승수(韓昇洙) 총리와 류우익(柳佑益) 비서실장으로 가닥은 잡혔지만…. 조각(組閣)도 서두르다 보니 검증이 소홀해졌고, 중간에 낙마(落馬)하는 문제도 생겼단 말이죠. 인수위가 가장 심혈을 기울여야 할 것은 결국 당선자와 머리를 맞대고 국정(國政)을 논할 인사들을 선별하는 일일 것입니다.”
—사람 고르는 문제가 제일 중요하단 말씀이군요.
“그렇습니다. 정책을 마련하는 건 그다음 문제입니다.”
이명박 인수위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계속된 ‘좌파정권’을 청산하고 권력을 이양받는 중책을 띠고 있었다. 최 의원은 ‘여여(與與)’ 간 정권교체보다 ‘여야(與野)’ 간 정권교체 때 인수위 활동에 더욱 유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의 말이다.
“여야 간 정권교체는 여여 간 정권교체와는 확연히 다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핵심 포스트인 권력 기관장들, 특히 국정원장, 검찰총장, 국세청장 등의 임명은 매우 중요합니다. 제 기억으로는 김성호(金成浩) 국정원장, 임채진(林采珍) 검찰총장, 한상률(韓相律) 국세청장 등 세 자리를 유임시키거나 이전 정권과 관련된 인사들로 임명했습니다. 권력기관장들은 정권이 바뀌면 새 술은 새 부대에 넣는 것처럼 바꿔야 하는데, 새 출발의 취지가 퇴색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인수위의 부처 업무보고와 관련해 “인수위는 호통치는 곳이 아니다”라고 했고, 인수위는 “매우 적절치 못한 말씀”이라며 반박하기도 했습니다. 청와대는 인수위의 업무보고도 협조하지 않아 사실상 ‘무산’되기도 했습니다. 정권이 ‘여여’가 아니고 ‘여야’로 교체될 경우, 인수위 활동이 상당히 제약을 받는 것 같습니다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인수위의 할 일이 더 많아지고, 두 눈을 똑바로 뜨고 해야 할 일들이 많아지는 거죠. 여여 간 정권교체의 경우, 협조를 해야 할 범위가 좁은 반면, 여야 간 교체는 훨씬 클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정책은 출범 후 내놓아도 충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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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1월 3일 여의도 중소기업회관에서 열린 최경환 의원의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 최 의원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
—2008년 인수위 활동 일지를 살펴보면, 출범 직후 ‘노 홀리데이(no holiday)’를 선언하고, 1월 1일 인수위 시무식을 열고, 이튿날 바로 부처 업무보고에 들어갑니다. 보름만에 부처 업무보고를 통해 155개 국정과제를 당선자에게 보고했고, ‘13부2처’로 축소조정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정부조직 개편안도 내놓고 있습니다. 국민들에게는 졸속으로 일을 처리하는 인상을 줍니다.
“좋은 지적입니다. 국정과제를 선정하고, 새로운 정책을 마련하는 건 정부 출범 후에 해도 충분합니다. 정책을 만들어낼 준비만 하면 될 것
을, 무언가 새로운 정책을 내놓으려 했단 말이죠. 그러다 보니 노무현 정권은 아직 임기가 남아 있는데, 괜히 불필요한 마찰만 일으키게 된 겁니다. 그래서 인수위는 대통령과 일할 팀을 구성하고, 그다음으로 새 정부가 들어서면 추진할 정책을 가다듬는 것까지만 인수위가 해야 할 일이라고 봐요. 돌이켜보면, 5년 전 인수위는 새로운 정책만 양산해 내려다가 정제(精製)가 덜 된 정책을 쏟아내고 말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 아쉽습니다.”
경제2분과는 재정경제부, 기획예산처, 금융감독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 국세청, 관세청, 조달청 등을 담당하는 경제1분과에 비해 산업자원부, 건설교통부, 과학기술부, 농림부, 정보통신부, 해양부 등 당시 정부기구 개편 논의에서 다소 벗어난 부처를 관할하고 있었다. 하지만 인수위 경제2분과 간사인 최경환 의원은 이명박 정부의 제1 목표인 ‘일자리 창출’을 담당했고, 또 초미의 관심사인 부동산 정책을 관할하는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다. 최경환 인수위 경제2분과 간사는 2008년 당시 70여 개의 과제를 도출해 냈다. 주택 정책과 민생경제가 핵심이었다. 당시 언론은 그가 부동산 정책과 관련해 과감한 ‘메스’를 들이댈 것으로 관측했다. 그러나 최 의원은 “1가구 1주택 장기보유자에 대해선 세금 부담을 완화해야 했다”면서 “당시 재개발 규제를 ‘확’ 풀 것이라는 관측은 잘못됐다”고 말했다. 그는 “근본적으로 볼 때 새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주택 공급을 늘려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는 쪽이었다”고 설명했다. 그의 말이다.
“경제2분과는 실물경제와 민생 관련 문제들을 다뤘기 때문에 후보의 공약이나 현 정부의 정책 가운데 문제가 있는 것들을 골라내 일을 해나갔습니다. 방향성은 상당히 좋았다고 자평합니다. 지분형 아파트제 도입, 통신비와 유류세 인하, 대도시 출퇴근시간 고속도로 통행료 할인, 비료와 사료값 안정 등이 대표적 정책들이었습니다.”
—강만수(姜萬洙) 전 기획재정부장관이 맡은 경제1분과와 업무 분장은 잘 이뤄졌습니까.
“경제1분과와 2분과는 서로 역할이 달라서 협의할 내용은 없었습니다. 한쪽은 매크로(macro·거시경제)하고, 다른 한쪽은 마이크로(micro·미시경제)하잖아요.”
대기업, 무소불위 권력남용 시대 지나
최 의원은 노무현 정부의 규제와 세금기조의 주택정책을 규제완화와 공급확대로 바꿨다. 지방투기지역 전면 해제, 양도소득세 완화, 재개발·재건축 활성화 대책 등이다.
—인수위에서 가장 신경 썼던 것이 일자리 창출과 부동산 정책이었다죠.
“대기업들이 사원을 늘려 뽑는 것만으로는 일자리 창출에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기술 개발을 통해 기술을 창출하면서 일자리를 만드는 쪽에 포커스를 맞췄습니다. 부동산 대책으로 도시 외곽에 신도시를 개발하면 직장과 주거가 많이 떨어지는 문제가 발생해 직장과 가까운 곳에 주택을 공급하려는 정책을 펼쳤고 상당한 효과를 거뒀다고 봅니다. 그 때문에 대규모 신도시 개발은 이뤄지지 않았지만요.”
—노무현 정부가 꺼낸 혁신도시(공공기관 이전을 계기로 지방의 거점지역에 조성되는 새로운 차원의 미래형 도시) 문제는 어떻게 정리했습니까.
“노 대통령이 ‘대못’을 박는다고 하면서 해놓은 혁신도시 문제는 인수위에서도 뜨거운 감자였습니다. 하지만 이미 다 마련해 놓은 것을 덮고 원점으로 돌리자고 할 수는 없다고 판단을 했습니다. 세종시(충청남도 연기군 일대에 2015년까지 정부부처가 이주할 행정중심 복합도시) 문제는 정부 출범하고 나서 불거졌지만요.”
—대선 후보들은 각자 일자리 창출을 이야기하면서도 정년연장 또한 말하고 있습니다. 정년연장은 청년실업 해결에 상충되는 것 아닙니까.
“청년실업 해결에 도움은 덜 되겠죠. 기본적으로 평균수명이 연장되면서 베이비부머들을 비롯한 은퇴 계층들을 사회적 부담이 되지 않도록 잘 활용해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임금피크제’를 도입한다든지 노동시장 내에서 그런 문제를 유연하게 해결해야 합니다.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것은 자리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원하는 직장이 없는 거죠. 소위 공급되는 일자리와 청년층이 선호하는 일자리 간의 괴리가 존재합니다. 구인난(求人難)과 구직난(求職難)이 동시에 나타나는 기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새로 출범하는 정부는 청년들이 원하는 일자리를 만들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새누리당은 과학기술과 정보기술(IT)을 기반으로 일자리를 창출(일명 스마트뉴딜)하는 개념의 ‘창조경제’를 대선공약으로 제시하면서 ‘미래창조과학부’를 신설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농업, 제조업, 보건·의료 산업 등에 과학기술과 IT를 결합해 새로운 산업과 시장을 만들고 이를 통해 질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구상이죠.”
—노무현 정부 때 대기업 규제정책이 굉장히 심했는데요, 인수위에서는 어떻게 정책을 달리했나요.
“그때 인수위는 대통령의 공약(公約)을 중심으로 대기업 정책을 마련했습니다. 일명 ‘비즈니스 프렌들리’라고 하죠. 기업의 ‘출자총액제한 폐지’가 대표적인 것이었습니다. 금산분리(金産分離·산업자본의 은행 소유 금지)를 보완한 것들, 지금 생각하면 ‘경제민주화’를 실천했던 거죠. 이건 강만수 장관님의 파트에서 담당한 겁니다.”
—이번 대선에서는 경제민주화가 이슈로 등장하는 등 대기업들의 기업활동에는 많은 제약이 가해지는 것 같습니다.
“재벌들이 중소기업에 무소불위의 권력을 남용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향후 대기업 정책은 약자인 중소기업의 기술을 빼가는 것 등 공정거래 측면에서 규제를 강화하겠다는 겁니다.”
규제의 전봇대
이명박 인수위는 2008년 1월 16일 ‘13부2처’로 축소 조정하는 정부조직 개편안을 발표했다. 통일부, 해양수산부, 정보통신부, 여성부, 과학기술부 등 5개 부가 인수위에서 존폐가 논의됐고, ‘통일저해부’라는 말을 듣던 통일부는 폐지 직전까지 갔다가 기사회생했다.
—과학기술부를 교육부와 합친 것처럼, 정부조직 개편에서 부처의 역할과 효율성을 고려하지 않은 조직개편이라는 비판도 있었습니다.
“정부조직 개편은 인수위 내에서 박재완(朴宰完) 기획재정부장관팀에서 담당했습니다만. 당시 정부조직 개편의 큰 원칙은 업무 중복을 없애고 시너지 효과를 내기 위해 24개 부처를 15개로 줄이는 것이었습니다. 정보통신부, 과학기술부, 해양수산부는 없어지고 기능이 타 부처로 통폐합됐습니다. 기획재정부는 조직이 엄청나게 커졌습니다. 당시 정부조직 개편의 방향성은 맞았다고 생각하는데, 아쉬웠던 건 미래를 개척하는 요소가 빠지거나 약화됐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새누리당은 과학기술과 IT담론들을 담아낼 수 있는 조직을 만들자는 취지로 이번 대선에서 미래창조과학부를 만들겠다고 한 겁니다.”
—정부조직 개편은 인수위에서 한 달 만에 ‘뚝딱’하고 만들어낼 성질은 아닌 것 같은데요.
“대선이 끝나기 전에 미리 준비를 해야 할 일이지만, 현실적으로 ‘대선에서 승리한 것처럼 행동한다’고 오해를 받을 수 있어 난감합니다. 아무튼 충분하게 봐야겠죠.”
—당시 인수위는 5대 국정지표와 192개 국정과제를 발표했는데, 두 달이란 기간 동안 엄청나게 많은 일을 한 것 같습니다.
“짧은 기간에 그렇게 엄청난 일들을 하다 보니, 정작 해야 할 부분을 상대적으로 소홀히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전남 영암 대불산업단지의 전봇대를 뽑은 것도 최 의원의 작품이다. 최 의원은 “대불공단에 있는 600여 개 전봇대 가운데 하나를 뽑는 것은 비록 작은 일이지만, 공무원의 자세 전환을 유도하기 위한 상징적 조치로 반드시 필요했다”고 회고했다.
최 의원은 “인수위는 일할 준비를 하는 곳으로, 결코 과욕을 부리거나 서둘러서는 안 된다”면서 “새로운 정책은 취임하고 마련한다는 생각으로 조직·정책 등 사전준비를 치밀하게 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