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위 활동 두 달 안에 지난 5년의 국정을 점검하고 향후 5년의 비전을 제시해야 해요.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 그리고 그 주변 사람들은 미리 국정운영 전반에 대한 준비를 완벽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섀도 캐비닛(shadow cabinet : 예비 내각)도 있어야 하고요. 미리 준비를 해놓고 인수위 기간은 점검하는 시간이 돼야 할 겁니다”
이경숙
70세. 숙명여대 정외과·美 사우스캐롤라이나대 대학원 졸업. 11대 국회의원,
숙명여대 13~16대 총장 역임. 現 한국장학재단 이사장.
이경숙
70세. 숙명여대 정외과·美 사우스캐롤라이나대 대학원 졸업. 11대 국회의원,
숙명여대 13~16대 총장 역임. 現 한국장학재단 이사장.
서울 연세빌딩 한국장학재단 이사장 집무실에서 만난 이경숙 이사장은 “인수위 두 달 동안 국가를 위해 모든 것을 후회 없이 쏟아부었고, 정치학자로서 현실정치를 직접 알게 된 귀중한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보통 역대 인수위원장은 선거에 큰 역할을 했던 사람이나 향후 정권에서 큰 역할을 할 사람들이 맡아왔습니다. 이명박 당선자가 비정치인인 이경숙 이사장을 위원장으로 임명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꼭 정치인과 비정치인을 구별해 중용하겠다는 것은 아니었어요. 대통령직 인수위란 단순한 인수인계가 아니라 대한민국을 선진 일류국가로 만들겠다는 비전을 제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의 입장이나 이익과 관계없이 대한민국 발전을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부을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었다고 합니다. 제가 숙대 총장을 14년 동안 하면서 가장 중요시한 것이 당장의 발전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비전을 제시하고 미래를 준비하자는 것이었거든요. 대통령은 대한민국에도 그런 식으로 비전을 만들자고 제안했습니다.”
—이 대통령의 ‘고려대·소망교회·영남’ 인맥 중 하나인 소망교회 인맥으로 알려져 있습니다만.
“그건 아니에요. 대통령과는 대학 시절부터 알고 지낸 사이입니다. 이른바 ‘6·3세대’로 대학 시절 대통령이 고려대 학생회장, 제가 숙대 학생회장을 맡으면서 학생운동에 함께 나서기도 했기 때문에 서로 잘 알고 있었지요. 당시 서울대 학생회장은 정정길 전 대통령실장이었고요.
그 후 제가 대통령과 더 잘 알게 된 것은 각각 서울시장과 숙대 총장으로 재직하던 시절입니다. 당시 이명박 시장은 교육에 관심이 많아 서울에 있는 대학의 총장들과 가끔 모임을 갖고 의견을 청취하곤 했어요. 대학에 지원도 많이 하고 싶어했지요. 특히 숙대는 그동안 서울시에 묶여 있던 땅을 인수하고 새 건물을 20개 이상 짓는 등 부동산·건축과 관련해 서울시와 논의해야 할 일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당시 시장이었던 대통령이 제가 일하는 스타일을 유심히 보았던 모양입니다. 또 숙대가 나날이 어떻게 발전하고 있는지 그 과정을 직접 지켜보기도 했죠.
대통령은 잘 알려져 있듯 매우 부지런하고 바쁘게 일하는 분입니다. 매일 새벽기도를 갈 정도로 얼리 버드(early bird)이기도 하고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같이 일해 보자 생각했던 것 같아요. 처음엔 고사했지만, 인수위만 잘 마무리하고 학교로 돌아갈 것이라고 약속을 하고 인수위에 합류했습니다.”

미리 준비하고 인수위는 점검하는 수준이어야
이경숙 이사장은 인수위 시절을 “고3 때 이후 이처럼 잠 안 자고 일 또는 공부만 한 것은 처음”이라고 회고했다.
—인수위 두 달은 적지 않은 시간 아닙니까. 너무 길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두 달 안에 지난 5년의 국정을 점검하고 향후 5년의 비전을 제시해야 해요.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땐 4월 총선을 앞두고 있어서 1월 말 설연휴만 지나면 정치인들은 지역구에 아예 내려가겠다고 생각하고 있더라고요.
정치권 출신 인사들은 공천과 총선에 관심이 너무 많았어요. 상대적으로 일에 집중할 시간이 적었죠. 어쨌든 설연휴 전까지 50일 안에 모든 일을 끝내자고 결심했고, 그러다 보니 하루에 서너 시간밖에 잠을 못 자는 것은 일상이었습니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 그리고 그 주변 사람들은 미리 국정운영 전반에 대한 준비를 완벽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섀도 캐비닛(shadow cabinet : 예비 내각)도 있어야 하고요. 미리 준비를 해놓고 인수위 기간은 점검하는 시간이 돼야 할 겁니다. 사실 그때만 해도 준비가 안 돼 있었어요. 여야가 바뀌다 보니 인적 연계도 잘 안 됐고요. 두 달 안에 대한민국 정부 업무 전반의 인수인계와 비전 제시를 해결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역대 인수위와 구별되는 이명박 인수위의 특징이 있었다면.
“이명박 당선인은 최대한 많은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토론을 하라는 입장이었어요. 오픈마인드가 생활화돼 있는 분이었죠. 역대 그렇게 많은 간담회와 공청회를 열었던 인수위는 없을 겁니다. 셀 수 없이 많은 학자와 전문가들이 인수위를 거쳐갔습니다. ‘현장 중심’을 무엇보다 강조했어요. 수많은 의견을 모으고 정리하고 결정하다 보니 늘 시간은 부족했습니다. 당선인이고 위원장이고 자기 커피는 자기가 타 마셨고, 야전침대에서 쪽잠을 청하는 것도 보통이었죠. 그래도 새로운 대한민국을 열어간다는 보람으로 다들 미친 듯이 일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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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2007년 12월 26일 오후 서울 삼청동 금융연수원에 마련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현판식에 참석, 이경숙 인수위원장 등 인수위원들과 현판을 달고 있다. |
언론 대응에는 미숙
이경숙 이사장은 시종 활기찬 모습으로 인수위 이야기를 했지만, 당시 언론보도와 관련해서는 다소 불편한 심기를 보였다.
—‘어륀지(orange)’ 발언 등으로 곤욕을 치렀습니다.
“당시 언론 대응에 미숙했던 것이 인수위의 가장 큰 문제점이었어요. 노무현 대통령 당시 정부부처 기자실이 없어졌잖아요. 인수위가 생기니까 그동안 갈 곳 없던 기자들 500여 명이 매일 인수위에 모여들어 기삿거리를 찾더군요. 인수위 초반에는 이동관 당선자 대변인이 혼자 기자들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문제가 생겨도 대책을 마련하기엔 역부족이었어요. 어찌 보면 다들 순진했던 거죠. 대변인 한 명이 대외업무를 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를 몰랐어요. 또 기자들이 그렇게 말꼬리를 잡아가며 소소한 것까지 봇물처럼 기사로 쏟아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겁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었습니까.
“토론 위주의 인수위이다 보니 학자들이나 연구원, 실무자들이 제출한 토론발제문과 제안서 등이 사무실에 엄청나게 많았는데, 기자들도 그런걸 쉽게 접할 수 있었던 겁니다. 결정된 사실이 아닌 제안서나 발표문 같은 것들이 인수위에서 나왔다며 매일 언론에 터지는 거예요. 사실 어륀지 발언도 인수위 교육분과에서 나온 하나의 제안이었고 공청회에서 그걸 토대로 제가 이야기한 건데, 엄청나게 반향이 컸고 이를 수습하지 못했습니다. 사실 사교육시장이 수십조~수백조원에 달하는 현실에서 영어공교육이 현재 얼마나 중요합니까. 그런데 정책은 사라지고 엉뚱한 것만 사람들 기억 속에 남았어요.
또 인수위에 있는 일부 정치인들이 나름의 욕심에 기자들에게 확정되지 않은 사실을 흘려주기도 하더군요. 정치인들은 학자와 달라서 개인적인 생각도 여과 없이 이야기하더라고요. 그것들이 바로 기사화됐죠. 인수위 구성 초기부터 당선자와 제가 보안유지를 신신당부했는데 지켜지지 않았고요. 나중엔 하도 여기저기서 터져서 원인을 색출하기가 불가능할 정도였습니다.
전 정권에서는 정부부처 기자실을 폐쇄하는 등 취재환경이 좋지 않았는데 특종에 목말라 있던 기자들에겐 얼마나 좋은 기삿거리겠어요. 근데 기자들도 확인은 하고 써야 할 것 아닙니까. 학교 총장을 하면서 언론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 왔는데, 언론에 대한 신뢰가 많이 떨어졌어요. 좋은 정책인데 쓸데없이 미리 알려지고 지적당하면서 사장된 정책도 많습니다.”
청와대만은 손대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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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과 이경숙 인수위원장은 대학 시절부터 서울시장-숙대총장 시절까지 적지 않은 인연이 있었다. |
—국정홍보처도 폐지하지 않았습니까.
“사실 정부조직 개편 중 그게 제일 실수였다고 봐요. 당선인은 일만 잘하면 된다며 홍보에 대한 중요성을 크게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우리 세대가 대부분 그렇듯 생색내는 걸 부끄러워했다고나 할까요. 하지만 그러다 보니 홍보와 관련해 실수도 많았고 그런 실수를 만회하지도 못했지요.
인수위 시절부터 국내언론, 외신, 인터넷 등 분야별로 대변인과 공보단이 각각 시스템에 따라 활동했어야 해요. 잘한 일도 제대로 알리지 못했죠. 특히 소셜네트워크가 사회 전반을 지배하는 시대가 됐는데도 그 심각성과 중요성을 잘 몰랐고 그에 대해 발 빠른 대응을 하지 못했어요. 촛불사태도 제대로 된 대응만 했더라면 그렇게까지 문제가 되진 않았을 겁니다.”
그는 정치권 출신 인사들이 벌이는 인수위 내 자리다툼에서는 한 발짝 떨어져 있는 입장이었고, 자리다툼이 업무효율을 떨어뜨린다고 단언했다.
—인수위원장이 비정치인 출신이어서 안팎으로 다소 힘들었다는 사람들의 얘기도 있습니다.
“순수한 학자가 그 자리에 앉았다면 그럴 수도 있었겠지요. 하지만 저는 국회의원 경험이 있고 평생 정치학을 배우고 가르쳐온 사람입니다.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오롯이 국가만을 위해 일할 것이라는 점도 제가 임명된 이유겠지요. 전 학교라는 돌아갈 곳이 있기 때문에 정말 사심 없이 열심히 일만 했지만 정치인들은 그렇지 않잖아요. 대통령은 그런 점을 염두에 두었던 것 같습니다.
각 부처에서 파견된 공무원들을 중심으로 한 인수위 실무팀 내부 분위기는 아주 좋았어요. 정권이 바뀌면서 다들 희망에 부풀어 있었고 훌륭한 아이디어도 많았습니다. 개인적으로 그 정도로 훌륭한 인재들과 일해 봤다는 점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대통령이 실물정치보다는 학자들의 탁상공론에 더 중점을 둔다는 의견도 있는데요.
“워낙 많은 전문가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대통령은 주변 사람들보다는 각계 학자와 전문가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봐요. 이전 대통령들이 측근 중심으로 정치를 한 것에 비하면 긍정적인 변화가 아닌가 합니다.”
백서 발간은 필수
—MB정부가 인선에 실패했다는 평가도 많습니다.
“사실 저는 인수위원장이지만 인선에 관여하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잘 알지도 못하고요. 당선자는 늘 열심히 바쁘게 일하는 사람을 좋아했어요. 그러다 보니 자신이 인정하는 사람, 자신이 잘 아는 사람을 중용했던 것으로 압니다. 선택되지 못한 데 불만을 가지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고, 그런 쪽에서 나온 얘기 아닐까요. 인선은 대통령의 의중을 가장 잘 아는 임태희 비서실장이 주로 알아서 했던 것 같습니다.”
—정권 초기 인선에 대해 내부 충돌도 많았습니다만.
“인수위가 국정 전반을 인수했지만 딱 한 곳, 청와대는 인수위가 손대지 않았어요. 보통 대통령이 바뀔 때면 청와대가 과거 문서들을 숨기고 없애느라 분주하다고 합니다. 특히 여야가 바뀌었으니 더 그런 현상이 있었겠지요. 이명박 대통령은 전 대통령에 대한 예우라며 청와대는 인수위가 인수작업을 하지 말라고 했어요. 그러다 보니 그 과정에서 혹은 그 이후 인선이 불투명하게 이뤄졌을 수 있다고 봅니다.”
이명박 인수위는 자세한 회의록까지 담은 《인수위원회 활동 백서》를 출간했다. 이경숙 이사장은 “전 인수위들의 백서가 있었으면 불필요한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전엔 인수위 백서가 없었습니까.
“이전 인수위가 백서라고 낸 것을 보면 거의 화보 수준인 것들이에요. 실제로 참고할 것이 없더군요. 인수위가 구성돼 모이고 나니 막막했어요. 인수위 일을 안 해본 사람들이 모여서 뭘 기준으로 두 달 안에 일을 끝낼 수 있겠습니까. 잠을 줄여서 공부하는 수밖에 없었어요. 이번 백서에는 각 분야별 과제와 비전은 물론, 매일의 회의록도 일기처럼 담아두었습니다. 향후 인수위는 백서를 활용하면 불필요한 시간을 많이 줄이고 정책과 비전 마련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합니다.”
—시간 및 인력 낭비를 막기 위해 인수위가 향후 정부에서 일할 사람들로 구성돼야 한다는 의견도 많습니다.
“글쎄요. 논공행상식 인선이 국가발전에 어떤 도움이 될까요. 저는 인수위 사람들에게 ‘대한민국만을 위해서 내 인생 중 2개월을 완전히 바치자’고 계속 말했어요. 다른 사심 없이 국가만을 위해 아이디어를 내고 비전을 제시하는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공무원들은 안정된 자리가 있고 큰 사심이 없다는 점에서 열심히 일만 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정부에서 일할 자리를 찾는 사람이 인수위에 있다면 개인의 욕심이 먼저가 되지 않겠습니까.”
—높은 지지율로 당선된 대통령의 인기가 현재는 많이 떨어진 상태입니다. 인수위원장으로서의 소회는.
“경제를 회복시키고 일류국가를 만들겠다는 큰 꿈이 있었는데 정권 초반 촛불시위로 민심을 잃어 대통령이 그 많은 역량을 발휘하지 못한 점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다행히 외교·통일 등 외부적으로는 많은 활동을 했지만요. 제대로 알리지 못한 업적도 많다고 생각합니다. 역사가 평가해 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