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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년 6월호

제3장 역사적으로 독도는 어느 나라 영토인가?

글 : 愼鏞廈 독도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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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4]
 
  Q : 독도는 역사적으로 언제부터 한국의 영토가 되었는가?
 
  A : 서기 512년(신라 지증왕·智證王 13년) 우산국(于山國)이 신라(新羅)에 병합된 때부터 역사적으로 한국 고유영토가 되었다.
 
  고문헌인 《삼국사기》(三國史記)(김부식 편, 1145년)에는 서기 512년에 우산국이 신라에 복속하여 병합, 신라의 한 지방으로 편성했다고 2곳에 기록되어 있다. 우산국은 지금의 ‘울릉도’와 ‘독도’를 포함한 동해상의 아주 작은 왕국이었다. 독도는 19세기까지는 우산도(于山島)라고 불렸다. 신라는 한국을 형성한 고대국가의 하나이다.
 
신라의 우산국 병합 사실을 기록한 《삼국사기》.(서울대학교규장각 소장)

  또 다른 고문헌 《삼국유사》(三國遺事)(일연 지음, 1285년)에도 신라 지증왕 때 장군 이사부가 우산국의 항복을 받아내어 우산국이 신라의 한 지방으로 병합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의 기록 내용이 일치한다.
 

  [015]
 
  Q : 혹시 ‘우산국’은 ‘울릉도’만을 영토로 한 나라이고 ‘독도’는 우산국의 영토가 아닐 수도 있지 않은가?
 
  A : 문헌이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 ①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② 《만기요람》(萬機要覽) 군정편(軍政編) ③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등 기타 여러 고문헌을 들 수 있다. 《세종실록지리지》의 원문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于山(우산)과 武陵(무릉·우릉)의 2섬이 현(울진현)의 정동쪽 바다 가운데 있다. 2섬이 서로 거리가 멀지 아니하며 날씨가 청명하면 가히 바라볼 수 있다. 신라시대에는 于山國(우산국)이라 칭하였다.(于山·武陵二島 在縣正東海中 二島相距不遠 風日淸明 則可望見 新羅時稱于山國)”
 
  여기서 우선 주목할 것은 우산도(于山島)와 울릉도를 2개의 섬으로 구분하여 기록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2섬이 서로 거리가 멀지 않아 날씨가 청명한 경우에는 볼 수 있다고 기록하고 있는 점이다. 동해의 중요한 지리상 특징 중 하나는 바다 중앙 큰 섬이 ‘울릉도’와 ‘독도’, 그리고 일본 오키시마의 세 개밖에는 없다는 사실이다. 울릉도 주변에는 몇 개의 큰 바위섬이 있는데 이들은 울릉도에 너무 가까워서 날씨가 청명하지 않아도 크게 매우 잘 보인다. 오직 날씨가 청명한 경우에만 조그맣게 서로 보이는 섬은 동해에 ‘울릉도’와 ‘독도’밖에는 없다.
 
우산도(독도)와 무릉도(울릉도)가 옛 우산국이었다고 기록한 《세종실록지리지》.(규장각 소장)

  《세종실록지리지》는 이러한 ‘울릉도’(武陵島)와 ‘독도’(于山島)를 신라시대에 ‘우산국’(于山國)이라 칭했다고 기록하여, 우산국이 ‘울릉도’와 ‘독도’를 영토로 한 해상 소왕국이었음을 명백하게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산국’이 서기 512년에 신라에 병합되었다는 것은 영토상으로 ‘울릉도’와 ‘독도’가 신라에 병합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세종은 “독도(우산)·울릉도 안무사”라는 직책의 관리 김인우(金麟雨)를 두 번이나 파견하면서 통치권을 행사하였다. 이것은 독도가 역사적으로 한국의 고유영토라는 명백한 사실 증거이다.
 

  [016]
 
  Q : 날씨가 청명하면 울릉도에서 ‘독도’가 정말 보이나?
 
  A : 물론이다. 울릉도와 독도의 거리는 87.4km(47.2해리)인데, 지구가 둥글기 때문에 해변에서는 보일 때도 있고 잘 안 보일 때도 있으나, 200m 이상의 울릉도 고지에서는 날씨가 청명하면 선명하게 잘 보인다. 특히 울릉도 성인봉(높이 984m)에서는 독도의 모습이 선명하게 잘 보여서, 울릉도에서는 이를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많은 사람이 울릉도에서 보이는 ‘독도’를 카메라에 담기도 한다.
 
  동해에는 약간 큰 섬으로 울릉도와 독도, 일본 오키시마 등 세 개가 있는데, 울릉도에서는 한국 동해안이 멀어서 보이지 않고, 일본 오키시마도 멀어서 보이지 않는다. 오직 독도(우산도)만 청명한 날에 조그맣게 보인다. 이 사실은 우산도가 곧 독도임을 증명함과 동시에 15세기에 세종의 통치를 받은 조선왕국의 영토였음을 명백히 증명한다.
 

  위의 사진 등에서도 잘 증명되는 바와 같이, 《세종실록지리지》의 “2섬이 서로 거리가 멀지 아니하여 날씨가 청명하면 가히 바라볼 수 있다”는 기록은 정확한 것이고, 2섬이 모두 신라시대에는 ‘우산국’이었다는 기록도 정확한 것이다.
 

  [017]
 
  Q : 그 밖에 독도와 울릉도가 모두 우산국 영토였음을 기록한 고문헌 자료가 또 있나?
 
  A : 대표적인 것으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과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만기요람》 군정편, 《증보문헌비고》 등 기타 여러 고문헌을 들 수 있다. 1808년에 편찬된 《만기요람》 군정편은 “《여지지》(輿地志)에 이르기를 울릉도와 우산도는 모두 우산국 땅(영토)이다. 우산도는 왜인들이 말하는 송도(松島·마쓰시마)이다”라고 기록하였다. 이 자료에서 인용된 《여지지》라는 책은 현재 발견되지 않은 책이다. 그러나 조선왕조 조정이 편찬한 《만기요람》 군정편이 인용한 위의 기록은 두 단원에서 ‘독도’가 우산국 영토였고 한국 고유영토임을 증명하고 있다.
 
  우선 첫째 문장에서 “울릉도와 우산도(독도)는 ‘모두(皆)’ 우산국 땅(영토)”이라고 해서, 울릉도뿐만 아니라 ‘우산도(독도)’도 ‘모두’(2섬 모두) 옛날의 우산국 영토임을 명백히 밝히고 있다. 둘째 문장에서는 “우산도(독도)는 왜인들이 말하는 松島이다”라고 해서 우산도가 바로 오늘의 ‘독도’임을 거듭 밝히고 있다. 오늘날과 달리 일본은 1870년대 말까지는 조선의 울릉도를 ‘竹島’(죽도·다케시마)로 호칭하고 조선의 독도(우산도)를 ‘松島’(송도·마쓰시마)로 호칭하였다. 이것은 일본의 모든 학자와 정부도 인정하고 있는 사실이다. 위의 자료의 둘째 문장에서 “우산도는 왜인들이 말하는 松島이다”라고 한 것은 “우산도는 곧 (오늘의) 독도이다”라는 의미인 것이다.그러므로 《만기요람》 군정편은 ‘독도’가 울릉도와 함께 ‘모두’ 옛 우산국 영토임을 명백히 증명해 주고 있으며, 또한 ‘독도’가 1808년 이전에는 한국에서는 ‘우산도’라고 불렸고, 한국 고유영토였음을 명백히 증명해 주고 있는 것이다.
 

  [018]
 
  Q : 고문헌 이외에 ‘독도’가 울릉도와 함께 옛 우산국의 영토임을 증명하는 자료는 없는가?
 
  A : 우선 ‘독도’를 ‘우산도’라고 하여 ‘우산’이라는 나라 이름을 따서 부른 명칭 자체가 ‘독도’가 우산국 영토였음을 증명해 준다.
 
  한자가 신라에 들어오기 이전 본래 우산국의 명칭은 ‘우르뫼’였는데, 이를 한자로 바꿀때 ‘于山’국이라고 하였다. 우산국의 영토인 울릉도가 본도(本島)이고 독도는 울릉도에 부속한 속도(屬島)이므로, 원래는 ‘우르뫼’를 ‘우산도’라고 변역하여 울릉도(본도)를 가리키는 호칭으로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본도의 명칭이 울릉(鬱陵)·울릉(蔚陵)·무릉(武陵)·무릉(茂陵)·우릉(芋陵)·우릉(羽陵) 등으로 한자 번역되어 정착되자, 그 부속섬인 독도(물론 당시에는 다른 명칭이었겠지만)가 ‘우산도’(于山島)의 명칭을 갖게 된 것이 명백하다.
 
  독도가 한국에서 1882년까지 공식적으로 ‘우산도’라는 명칭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바로 이 섬 ‘독도’가 ‘우산국’의 영토였음을 또한 명백하게 증명해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산도’(독도)가 ‘우산국’에서 나온 명칭임은 이렇게 스스로 명백하지 아니한가.
 

  [019]
 
  Q : 일본정부는 조선왕조시대 ‘우산도’가 오늘의 ‘독도’가 아니라고 주장한다는데, ‘우산도’가 ‘독도’라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도 있는가?
 
  A : 일본 외무성은 ‘우산도’가 오늘날의 ‘독도’라는 근거가 없다고 하는데, 한국과 일본의 다수 고지도가 가장 이해하기 쉬운 근거이다.
 
김대건의 <조선전도>(1846). 우산도(독도)를 울릉도 동쪽 정확한 위치에 그리고 ‘Ousan’(우산)이라는 한국어명을 불문자로 표기하여 조선영토임을 표시하였다. (프랑스 파리국립도서관 소장)

  예컨대, 한국의 초기 가톨릭 신부 김대건(金大建)이 1846년에 보고용으로서 프랑스어로 표기한 <조선전도>(Carte de la Corée)는 울릉도 동남쪽 정확한 위치에 ‘독도’를 그리고 ‘Ousan’(우산)이라고 표기했다.
 
일본인 소메자키(染畸延房)의 <朝鮮國細見全圖>(조선국세견 전도)(1873). 이 지도는 울릉도와 독도를 강원도와 같은 색으로 울진 옆에 그리고 독도를 ‘우산도’라고 표기하여 조선땅임을 명백히 표시하였다. (서울대도서관,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일본 고지도에도 <조선국세견전도>(朝鮮國細見全圖)를 비롯하여 ‘독도’를 우산도라고 표기하여, 우산도=독도임을 증명하는 고지도가 다수 있다.
 

  [020]
 
  Q : 그렇다면 일본 고문헌에 ‘독도’가 최초로 나오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이며, 그 내용은?
 
  A : 일본정부가 1960년에 한국정부에 보낸 외교문서에 의하면, 1667년에 편찬된 《은주시청합기》(隱州視聽合記)라는 보고서가 ‘독도’(송도)를 언급한 일본 최초의 고문헌이다.
 
  일본 외무성의 설명에 의하면 이 책은 출운(出雲)의 관리(蕃士) 사이토(齋藤豊仙)가 번주(藩主·大名, 봉건영주)의 명을 받고 1667년(일본 寬文 7년) 가을에 오키시마(隱岐島·隱州)를 순시하면서 보고 들은 바를 기록, 보고서로 작성하여 바친 것이다. 이 책에서 처음으로 독도를 ‘松島’로, 울릉도를 ‘竹島’로 호칭하면서 언급했다고 하였다. 그 기록 내용은 다음과 같다.
 
  “隱州(은주·은기도)는 北海(북해) 가운데 있다. 그러므로 隱岐島(오키시마)라고 말한다. … 戌亥間(술해간·서북방향)에 2日 1夜를 가면 松島(송도)가 있다. 또 1日 거리에 竹島(죽도)가 있다. [속언에 磯竹島(이소다케시마)라고 말하는데 대나무와 물고기와 물개가 많다. 神書(신서)에 말한 소위 50猛일까.] 이 2섬(松島와 竹島)은 무인도인데, 高麗(고려)를 보는 것이 마치 雲州(운주·出雲國)에서 隱岐(오키시마)를 보는 것과 같다. 그러한즉 일본의 서북[乾] 경계지는 이 州(隱州·隱岐島)로써 그 限(한·限界)을 삼는다.”
 
독도를 기록한 일본 최초의 고문헌 1667년의 《은주시청합기》는 독도와 울릉도에서 고려를 보는 것은 마치 운주에서 은주(오키시마)를 보는 것과 같으므로 “일본의 서북쪽 영토는 이 은주로써 한계를 삼는다”는 요지의 기록.

  위의 기록을 정밀하게 검토해 보면, 이 보고서는 항해거리 일수(日數)를 통하여 ‘독도’를 ‘松島’(송도)로, ‘울릉도’를 ‘竹島’(죽도)라고 호칭하면서 ‘독도’를 일본에서는 처음으로 기록하면서도 ‘독도’와 ‘울릉도’가 모두 조선 영토이고 일본 영토가 아님을 명백히 기록하고 있다. 즉 독도(松島)와 울릉도(竹島)에서 고려(조선)를 보는 것이 마치 일본의 雲州(출운국·出雲國)에서 隱岐(오키시마)를 보는 것과 같아서, 이 두 섬 울릉도(竹島)와 독도(松島)는 고려에 속한 것이고, 그러한즉 일본의 서북쪽 경계는 隱州(은주·隱岐島)로써 한계(限界)를 삼는다고 밝히고 있는 것이다.
 

  [021]
 
  Q : 일본에는 ‘독도’를 일본 영토라고 기록한 고문헌이 있나?
 
  A : 일본 측이 현재까지 공개 발표한 고문헌들에는 ‘독도’를 일본영토로 기록한 것이 없다. 도리어 지금까지 알려진 일본 고문헌들에서 ‘독도’를 기록한 고문헌들은 모두 이 섬이 울릉도의 부속도서(섬)로서 조선 영토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들이다. 혹시 일본 측이 공개하지 않은 고문헌 자료에 그런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일 간에 고문헌 자료 조사를 통해 독도영유권 논쟁을 치열하게 전개하는 과정에서 일본 측은 조금이라도 일본에 유리할 듯한 일본 고문헌들을 총동원하여 논쟁을 전개했던 사실을 고려하면, 비공개 일본 고문헌들 속에서 ‘독도’가 일본 영토였다는 증명자료가 나올 가능성은 거의 없고, 도리어 ‘독도’가 한국 영토였다는 증명자료가 다수 나올 가능성은 매우 높다고 본다.
 
  한국과 일본 두 나라 고문헌 자료들은 모두 ‘독도’가 아주 오랜 옛날부터 ‘한국 영토’임을 잘 증명해 주고 있는 것이다. 이 사실에 대해서는 일본의 학자들도 대부분 인정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022]
 
  Q : 역사적으로 독도가 한국의 고유영토라고 하는 것은 증거가 명백하지만, 일본의 고유영토라고 하는 것은 근거 없는 주장 아닌가?
 
  A : 그렇다. 독도가 서기 512년부터 역사적으로 한국의 고유영토라고 하는 것은 증거가 충분한 역사적 진실이다. 이에 비해 독도가 일본 영토였다는 증거는 단 1건도 없기 때문에 현대 일본정부가 독도를 역사적으로 일본 영토라고 주장하는 것은 명백한 허위이다.
 
  일본에서도 학자들이 처음에는 독도가 역사적으로 일본 고유영토임을 조사연구해 달라는 의뢰를 받고 연구를 시작했다가 연구 도중에 독도가 한국 고유영토라는 수많은 증거자료를 읽고 연구를 포기하는 경우가 다수 있었다. 일본에서 독도가 역사적으로 일본 고유영토라고 주장하는 경우는 주로 일본 외무성 관료들과 정치인들의 경우이다. 독도는 증거자료들이 명백히 증명하는 바와 같이, 역사적으로 한국의 고유영토임이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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