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炯國
⊙ 69세.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서울대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
미국 캘리포니아대(LA교)도시계획학 석·박사.
⊙ 서울대 환경대학원장, 한국도시연구소 이사장, 한국미래학회 회장,
녹색성장위원회 초대 위원장 역임.
⊙ 現 서울대 환경대학원 환경계획학과 명예교수.
⊙ 69세.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서울대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
미국 캘리포니아대(LA교)도시계획학 석·박사.
⊙ 서울대 환경대학원장, 한국도시연구소 이사장, 한국미래학회 회장,
녹색성장위원회 초대 위원장 역임.
⊙ 現 서울대 환경대학원 환경계획학과 명예교수.
내남없이 난국에 봉착하면 훈수를 줄 만한 선지식(善知識)을 찾는다. 중국 국력의 급부상이 동아시아의 지정학, 나아가 세계패권 재편에 미칠 영향이 궁금하면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어김없이 싱가포르 리콴유(李光耀) 선임장관의 관측을 기사화해 왔다. 우리도 세계무역 10대국 경제력에 합당한 국격(國格)이 관심사가 되자 부쩍 외국의 선지식을 들으려 한다. 프랑스의 기 소르망(Guy Sorman) 같은 이가 최근 우리 언론에 자주 등장함도 그런 배경이겠다.
근대화의 새 경지로 ‘생태근대화’ 추가
선지식을 찾아 귀담아들으려 함은 세상을 꿰뚫어 보는 그들의 통찰력을 높이 사기 때문이다. 선지식의 저술이 바로 ‘우리 시대의 고전’이겠는데, ‘20세기의 마르크스’란 찬사를 듣는 영국 사회학자 기든스(Anthony Giddens)도 이 시대의 선지식인이다. 저명 대학의 초청을 받아 시대문제에 대해 강의하면 곧이어 책으로 묶일 정도로 ‘말하면 사람들이 귀기울이는’ 세계적 석학이다.
미국 스탠퍼드 대학 초청강의(The Consequences of Modernity, 1990)가 말해주듯, 그의 중요 관심사 가운데 하나가 18세기에 유럽에서 시작되었고, 이후 세계적으로 확산된 근대화과정, 그 과정의 핵심인 ‘근대성’에 대한 규명이다. 영국의 블레어 수상에게 ‘제3의 길’을 권고하던 책사(策士)로서 김대중(金大中) 정부시절 서울에서 가졌던 특강도 우리 청중에게 큰 인상을 남겼다.
근대화의 새 경지를 말했던 것. 산업화로 발단한 근대화는 공간적으로 도시화를, 이어 정치적으로 민주화를 촉발시켰으며 그런 변혁 속에서 상류층의 전유물이던 (고급)문화가 세속화되었음이 사계의 통설이었다.
기든스는 거기에 근대화의 새 경지로 ‘생태근대화’를 추가했다. 근대화의 원동력이긴 해도 환경을 희생시키는 까닭에 산업근대화의 정당성이 끝장나게 되었고, 그래서 총체적으로 종언을 맞을 것이라는 성급한 예단과는 달리, 경제와 환경의 공존, 곧 생태근대화의 가세로 근대화과정은 문명사적으로 현재 진행형이라 강조했다.
생태근대화는 1982년 독일 사회학자 예니케(Martin Janicke) 등이 처음 제안했다. 지구의 수용력 한계를 인정하고 자원의 공급과 생태계의 수용력 안에서 생태 및 경제 효율성을 함께 높이자는 이론이다. 이를테면 쓰레기를 자원 처리하면 경제가치도 창출할 수 있고 환경오염도 경감할 수 있는 일석이조의 ‘생태효율성(eco-efficiency)’을 얻을 수 있다 했다.
생태효율성 내지 생태근대화 발상법은 기후변화가 심각해지자 그 적실성(適實性)이 한결 각광을 받는다. 화석연료가 지구온난화의 주범인데, 그 연료 사용을 효율화하면 경제성도 확보되고 대기환경도 덜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온실가스 감축을 포함해서 생태효율성에 전 세계가 매달린 덕분에 서기 2100년에 지구 평균 온도가 지금보다 섭씨 2도 상승에 그친다면 인류가 살아남을 것이지만, 지구적 합의와 노력이 미흡해서 최대 4도가 올라가면 인류파멸이 예상된다는 것이 유엔기후변화협약 측의 관측이다.
지구온난화, 그 ‘불편한 진실’
온난화는 산업화를 앞서 이룩한 나라일수록 심각하게 여겼고, 이에 대한 경고를 발하는 저술도 세계적 베스트셀러 대열에 올랐다. ‘중산층 확산(flat)’과 ‘인구과밀(crowded)’의 지구적 상황 전개 속에서 ‘온난화(hot)’의 심각성을 경고한 《뉴욕타임스》 논설위원 프리드먼(Thomas Friedman)의 저서 《Hot, Flat, and Crowded》(2008)가 좋은 보기다.
온난화가 과학적 진실임을 토대로 유엔기후협약, 그리고 이를 지지하는 국내외 시민단체가 대책 마련을 위해 부심하지만, 온실가스의 주범인 화석연료 업체가 앞장선, 온난화의 기정사실화는 음모라고 규정하는 기후변화 회의주의자의 주장도 만만치 않다.
이런 형국이고 보면 빈발하는 국내외 기상이변을 당하거나 듣고도 보통사람들은 돌아서면 도무지 납득하지 못한다. 지난겨울 줄곧 계속된 추위를 두고 북극의 온난화가 그 주변의 한랭전선을, 예년과 달리, 그 아래로 밀어붙여 생겨난 현상이라 말한 전문가의 진단은 보통사람들이 납득하기 어려웠다. 전 미국 부통령 앨 고어에게 노벨 평화상을 안겨준 영화와 책 《불편한 진실》(2006)처럼, ‘불편한 진실’을 좀처럼 수용하지 않으려는 것이 사람의 속성이기 때문일 것이다.
보통사람이 “덥다, 춥다” 함은 하루하루 날씨에 대한 느낌인 반면, 전문가들이 말하는 기후는 30년 또는 그 이상 기간에 걸쳐 파악한 지구 평균 온도에 대한 과학이다. 비록 기후변화의 장기적 파악이 온난화일지라도 우리가 실감할 수 있는 징후가 없지는 않다.
이를테면 봄의 전령인 벚꽃 개화가 지난 10년 사이에 예전보다 이틀이 빨라졌다는 사실이다. 가까이는 2010년 여름 광화문 일대가 잠기는 유례없는 물난리를 겪었고, 2011년 새해 벽두에 100여 년 기상관측 사상 최대 폭설이 내려 강원도 영동지방이 엄청난 설화(雪禍)를 입었다. 기후변화가 대재앙임을 예감한 위정자가 “과거의 기상자료가 무의미한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말할 만도 했다.
그러나 자연에 기대는 농부이거나, 밭농사와 글농사를 병행했던 덕분에 예감이 비상했던 소설가 박경리(朴景利)가 ‘…자본주의의 출구 없는 철옹성/ 온난화 현상이 일렁이며 다가온다/ 문명의 참상이 악몽같이 소용돌이친다/ 춥지 않은 회촌 골짜기의 올해 겨울’(《박경리 유고 시집》, 2008)이라 비감해 했던 경우가 아니면, 우리 국민의 통상적 반응은 그저 날씨 이변 정도지 지구가 전반적으로 데워지는 온난화와 결부시키지는 못한다. 그래서 기후변화를 말하면 ‘뜬 구름 잡는 소리’ 곧 허황된 생소리로 치부하기 십상이다.
스턴의 《기후변화의 경제학》과 쌍벽
기든스도 기후변화에 대한 전문가의 경고를 보통사람들이 간파하기 어렵다며 이들 사이의 괴리를 ‘기든스의 역설(Giddens's paradox)’이라 이름 붙인 뒤 ‘기후변화의 정치학’에 대해 적는다. 지금까지 기후변화에 대한 문자적 경고는 주로 자연과학자들이 제기했고 그걸 확대재생산해서 국내외 식자들과 환경단체가 인류생존에 결정적인 위협이 될 개연성에 대한 시나리오를 제시해 왔음에 대비되게, 기후변화에 대한 실천적 처방을 체계적으로 제시했다. 역시 영국학자인 스턴(Nicholas Stern)의 《기후변화의 경제학》(2007), 일명 ‘스턴 보고서’와 쌍벽을 이루게 되었다.
스턴 보고서는 무엇보다 장차 기후변화로 말미암은 비용과 위험이 매년 세계 GDP의 5% 내지 20%에 이를 것이라 경고한다. 대신, 매년 GDP의 1% 정도를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투자하면 최악의 피해를 막을 수 있다 했다. 다만 행동이 늦어질수록 대처비용이 급증할 것이기 때문에 시급한 행동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스턴 보고서에 견주어 기든스의 제안은, ‘정치학’이란 책 제목의 한 단어가 말해주듯, 기후변화를 다루기 위한 정책적 발상법과 필요 제도 구축을 포괄적으로 제안한다. 특히 시장경제에 의존하는 신자유주의적 발상법과는 다르게,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정부의 시장개입을 정당화한다. 그래서 정부가 촉매자, 조장자, 보증자, 또는 권능부여자의 역할을 맡아, 지난날 우리 정부가 경제개발을 위해 수립·추진했던 것처럼, 저탄소 미래사회의 도래를 위해 장기종합계획을 수립·추진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에너지-기후 위기’에 대한 선지식의 경고와 권고에 즈음, 한국정부는 녹색성장을 최우선 국정과제로 삼아 기후변화 관련 투자를 권고치의 두 배인 GDP 2%의 투자를 실행 중이다. 정부의 선제조치에 호응해서 조만간 우리 국민도 기후변화를 심각하게 여길 것이라 나는 조심스럽게 낙관한다. 무엇보다 물난리 ‘수재(水災)’, 바람 난리 ‘풍재(風災)’, 전쟁 발발 ‘화재(火災)’ 곧 삼재(三災)를 두려워했고, 이 천재(天災) 셋이 사람 탓의 인재(人災)라 여겼던 인식도 깊었던 전래 우리 정서의 연장으로 지구온난화의 ‘난재(暖災)’ 역시 인재가 분명하다고 여길 것이라 싶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