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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책부록
  1. 2011년 4월호

金東吉 - 《뜻으로 본 한국 역사》 함석헌 著

수난은 약자의 몫이 아니라 강자의 몫

글 : 金東吉 태평양시대위원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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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東吉
⊙ 82세. 평양고보·연희대 영문과 졸업.
⊙ 연세대 사학과 교수·부총장, 통일국민당 최고위원, 제14대 국회의원 역임.
    現 태평양시대위원회 이사장.
  한 인간이 평생에 읽는 책이 도대체 몇 권이나 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읽은 책들 중에서 가장 감명이 깊었다든지, 읽은 사람의 일생을 좌우할 만한 큰 영향을 주었다든지 하는 그런 책은 아마 두서너 권밖에 안 되는 것이라고 한다. 나도 그렇다고 믿는다.
 
  《뜻으로 본 한국 역사》는 나의 일생의 방향을 정해 주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이 책을 읽고 나는 나의 조국의 정신적 흐름을 파악할 수 있었고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물음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었다고 믿는다.
 
  사실 이 책이 세상 빛을 보게 되기까지에는 상당한 우여곡절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책의 모체가 된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는 일제 때 김교신 선생이 발행하던 월간지 《성서 조선》에 여러 번 연재된 것인데, 나는 그 잡지를 일제하에선 읽어 보지 못했고, 내 친구 송석중이 가지고 있던 것을 빌려서 읽고 엄청난 감동을 받은 바 있다. 역사를 연대순으로 사건을 나열하여 놓는 것만으로는 올바른 이해가 불가능하고, 역시 이념이나 정신을 바탕으로 사건들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국은 고난의 여왕
 
  해방 뒤에 많은 학생이 읽어야 했던 책 중의 하나가 이병도씨의 《국사대관》이었다. 대학입시나 사법고시를 위해서는 필독의 국사책이었지만 암만 읽어도 재미라고는 손톱만큼도 없는 정말 재미없는 책이었다. 그러나 《뜻으로 본 한국 역사》는 한 번 펴서 들면 끝까지 읽고 싶어지는 흥미진진한 책이었다. 그러나 이 책만 읽어 가지고는 각종 역사 시험에 합격하기 어려웠다. 왜 그런가 하면, 각종 시험의 출제자들이 《역사대관》을 중심으로 출제하는 것이 분명하였기 때문이다. 이 책은 무슨 일이 언제 어디서 누구에 의하여 벌어진 것인가를 따졌을 뿐, 어떤 인물이나 사건의 정신적 가치를 밝힐 뜻은 전혀 갖고 있지 않았다.
 
  함석헌 선생께서는 역사에 일어난 사건들을 이해하려고 힘쓰라고 가르쳤다. 역사는 되풀이되는 것이 아니라 변화해 나가는 것이고 시대를 따라 역사가 변하는 까닭은 시대마다 정신적 자세가 달라지는 것이라고 파악하고 있어서 어차피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세계가 하나 되는 그런 흐름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알 수가 없고 그런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한반도의 역사적 사명을 파악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그런 입장에서 본다면 한국의 역사는 어려운 일, 힘든 일, 고달픈 일만 되풀이되어 왔기 때문에 저자는 우리 역사를 고난의 역사라고 이름 지었다. 다른 나라들 같으면 그런 엄청난 고난들을 이겨내지 못하고 멸망한 지 오래일 것이지만 한국만이 그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살아남게 된 까닭은 과연 무엇일까. 한국은 고난의 여왕이고 세계사의 새로운 출발을 위하여 고난의 여왕인 한국은 새로 등장하는 새 시대의 여왕 노릇을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일제하의 그 혹독한 탄압 속에서도 함 선생은 민족의 정기를 살려 새 시대의 주역이 되게 해야 한다고 믿었던 것이 분명하다. 얼핏 보기에는 한심한 역사이고 지저분한 역사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누구도 업신여길 수 없는 정신의 흐름이 있는데 고구려의 옛 터전을 되찾아 보려던 왕건의 꿈은 이루어지지 못하였고 최영·정몽주를 해치우고 시작한 이성계 일파의 조선조 500년이 매우 잘못된 역사이긴 하지만 성삼문을 비롯한 사육신의 장렬한 삶과 죽음은 그 어두운 역사 500년을 밝히는 한 줄기 빛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그런 풀이 때문에 우리들은 한국인으로서의 긍지와 자부심을 갖게 된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 자신을 두고 생각할 때 우리 역사에 대한 함석헌 선생의 그런 이해와 가르침이 없었다면 이 글을 쓰는 오늘의 나는 없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나는 우리 역사를 결코 비관적으로 보지 아니한다. 《뜻으로 본 한국 역사》가 있었기에 나는 민족의 내일을 위하여 우리가 마땅히 나아갈 길이 우리 앞에 뚜렷하게 있다고 믿고 살아왔다.
 
  함석헌 선생이나 이 글을 쓰는 나나 북에 살면서 공산주의자들이 하는 짓을 직접 목격하고 38선을 넘어 월남하였기 때문에 절대 공산당에 나라를 맡길 수는 없다고 믿었고 겨레의 내일을 위해 반드시 자유민주주의가 승리해야 한다는 확신을 버린 적이 없었다. 그런 정신이 모두 이 책 속에 간직되어 있다. 한마디로 하자면 우리가 진리를 지키는 자의 입장에 마땅히 서야 한다는 것이다.
 
  함 선생이 보기에 “삼천리 강산은 불행의 박물관이요, 삼천만의 생명은 죄악의 실험관이다. 세계의 온갖 불행과 죄악의 결과를 보려는 자는 여기에 오면 볼 수 있다. 유교의 폐가 여기 있고 불교의 해가 여기 있으며, 군국주의의 표본이 여기 있고 자본주의의 노예가 여기 있다”는 것이니 조국의 역사 5000년을 이렇게 풀이한 지성은 일찍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불의의 값을 지는 자”가 되고 “우리는 세계의 짐을 진다”고 처절한 한마디를 던진 것이다.
 
  동양과 서양의 문명이 그 찌꺼기만을 이리로 몰고 온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인도의 불교나 중국의 유교가 아름답고 향기로운 종교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지만 압록강을 건너서는 그 고약한 폐해만을 전한 것 같고, 부산항, 인천항을 거쳐 우리에게 전해진 유럽의 사상과 미국의 문명이 물질주의의 해독만을 전한 듯하다고 개탄을 하면서도 그런 고난과 역경의 역사 흐름에서 깊은 뜻과 엄청난 사명이 있음을 갈파한 것은 ‘신들린’ 혜안이라고 생각된다. 우리가 겪은 고난과 역경은 비관할 것이 결코 아니고 이를 바탕으로 큰 꿈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장기려 박사가 “함석헌 선생의 사상은 오백 년 후에야 널리 알려질 것”이라고 예언한 바 있다는데, 예언자의 생각의 깊이는 예언자만이 헤아릴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수난은 약한 자의 몫이 아니라 강한 자의 몫이다. 고난의 짐의 무게를 감당 못해 쓰러지면 그만이지만 그 무게와 고통을 이겨내는 자가 왕관을 쓰게 마련이다. 그가 역사의 주역이 된다. “정의의 빛이 우리 마음에 비치고 진리에 대한 사랑이 우리 속에 불붙을 때 현대의 무력 국가들은 결국 한낱 골리앗에 지나지 않음을 발견할 것”이라고 역사의 내일을 그는 짚어 보았다.
 
  “다윗의 한 몸 위에 온 이스라엘의 운명이 달렸던 것같이 우리의 이기고 짐에 전 세계의 장래가 달렸다”는 한마디는 한국인의 삶을 자극하고 갈 길을 밝혀 준다. 못 믿겠다고 고개를 갸우뚱하는 자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모두 낡은 세계의 낡은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믿지 못하겠다는 것뿐이다. 우리에게 무슨 뾰족한 수가 있어서가 아니다. 우리에게 무슨 뛰어난 능력이 있어서 우리가 인류의 장래를 결정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섭리가 그렇게 명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역사적 필연’이다. 경제력이나 군사력만 가지고는 안 되는 세상이 왔다. 우리는 호모 사피엔스다. 앞으로의 역사는 점점 더 지성의 역사가 될 것이니 “칼을 꺾고 생각을 깊이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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