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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년 4월호

귀화인 눈에 비친 한국인의 글로벌 스탠더드

한국에서 ‘중도파’로 사는 것이 왜 이리 어려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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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가치에 대한 無知가 한국 최대의 문제점이자 약점
이유없이 상대방 깎아내리는 ‘질투’ 버려야


호사카 유지(保坂祐二) 세종대 일본학과 교수
⊙ 1956년 일본 도쿄 출생.
⊙ 도쿄대학 공학부 졸업.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석·박사.
⊙ 2003년 한국 체류 15년 만에 한국인으로 귀화.
⊙ 現 세종대학교 일어일문학과 교수.
  한국은 무서운 스피드로 글로벌화하고 있다. 이번 밴쿠버 동계올림픽을 봐도 그렇다. 서양인들의 축제라는 느낌이 강한 동계올림픽에서 그들 사이에 당당히 낀 한국선수들의 활약은 한국의 저력을 과시했을 뿐만 아니라 김연아(金姸兒) 선수가 보여준 최고의 예술성처럼 한국의 보편적인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기에 충분했다.
 
  한국이 언젠가는 모든 분야에서 ‘세계적 모델’이 될 것이라고 믿고 있는 나는 솔직히 한국을 비판할 수 있는 재료를 별로 갖고 있지 않다.
 
  일부러 그러려고 그런 것이 아니라 어렸을 때부터 한국과 인연이 깊었고, 실제로 한국의 우수성을 인정하는 나의 자연스러운 마음이 그렇게 만들었다. 한국에 비판적이었다면 나는 한국인으로 귀화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사회에 존재하는 여러 가지 문제점은 어느 나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보편적인 문제들이고 시간이 지나면 고쳐질 것들이 많다. 그런 면에서 나는 한국에 높은 점수를 매기는 사람이고, 그렇다고 한국의 가치를 과대평가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렇게 가치가 있는 한국인데, 당사자인 한국인들은 그것을 잘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신의 가치에 대한 무지(無知)라는 상황이야말로 한국 최대의 문제점이자 약점이 아닌가 생각한다. 한국인들은 아직 자신의 모국(母國)이 가난하고 부족하고 자신밖에 모르는 사람들의 집단이며, 알맹이가 없는데도 큰소리만 치는 정신이 없는 나라라고 인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히려 한국의 위대함을 잘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은 한국인이 아니라 한국을 잘 아는 외국인들일 수도 있다.
 
 
  골 깊은 理念 대립
 
  남북이 분단되어 있는 한반도의 현실 때문에 한국에 살면서 내가 항상 느끼는 것은 깊은 이념(理念)의 대립현상이다. 한국에서는 중도(中道)에 선다는 것이 매우 어렵다. 어떤 모임에서 어느 참석자가 “나는 중도이고 우(右)도 아니고 좌(左)도 아니다”라고 말했는데, 같이 있던 다른 사람이 즉각 “그것이 실제로 가능한 일인가요? 나는 중도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상대방을 비판했다. 그때 다른 참석자들도 중도란 결국 불가능하다는 의견에 대부분 동의했다. 아마도 다른 자유 선진국에서는 보기 드문 대화가 오간 것이다. “아직 남북이 갈라져 있는 상황에서 중도라는 것이 있을 수 없다”는 의견인 것이다.
 
  일본에서는 중도파가 국민의 70% 이상을 차지한다. 일본 민주당 정권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거의 다 중도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민주당에 몰두한 것도 아니고, 민주당이 실패하면 또 다른 대안(代案)을 찾는 사람들이다. 말하자면 이성파(理性派)라고 할 수 있는 그들은 진짜 ‘실용적’이다.
 
  이념으로 규정된 사고방식을 갖고 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의 과제에 대해 이성적으로 대처해 나가려는 경향이 강하다. 자유 선진국에서는 사실 ‘탈(脫)이념화’된 그런 사람들이 상당히 많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의 현실은 아직 중도파를 용납하지 않는다. 탈이념화란 한국의 현실과 맞지 않다는 의견이 많은데, 이 문제는 좀 더 깊이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일 것이다. 한국 사회의 이념 대립은 ‘어쩔 수 없다’고 정당화해서 되는 일이 아니라 반드시 극복해야 할 과제인 것이다.
 
 
  다른 종교를 ‘악마’라고 부른다면…
 
2010년 2월 19일 밴쿠버의 리치몬드 올림픽 오벌에서 열린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1000m 결승전에서 이상화가 역주하고 있다. 이상화를 비롯한 이른바 ‘G세대’의 활약처럼 한국은 무서운 스피드로 글로벌화하고 있다.

  세계로 눈을 돌리면 이념 대립의 정도가 가장 큰 분야는 종교적 대립이다. 한국에서도 그런 대립이 뿌리 깊게 존재한다.
 
  한 여성이 나에게 자신이 다니는 교회로 오라고 하면서 다른 교파는 ‘사탄’이라고 주장했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자신이 어떤 종교를 믿는 것은 자유이지만, 다른 교파(敎派)나 종교를 ‘사탄’, ‘악마’라고 부른다면 스스로 평화를 파괴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나는 종교나 이념이 우리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초월한 ‘사랑’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랑’이 없다면 아무리 신앙심(信仰心)이 깊어도 소용이 없고, 오히려 그런 신앙은 전쟁의 씨앗이 될 수 있다. 어떤 강력한 신념을 갖고 일을 추진한다고 해도 ‘사랑’이 없다면 또 다른 ‘신념’과 부딪치기 마련이다.
 
  한국에 살면서 글로벌 스탠더드와 관련해서 굳이 나쁜 점을 또 하나 끄집어낸다면 ‘질투’를 들 수 있는 것 같다.
 
  2001년에 한일(韓日) 간 교과서 문제가 일어났을 무렵이다. 이때부터 나는 언론에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원래 나의 전공이 ‘일제(日帝)시대 연구’이므로 그 연장선상에 있는 역사교과서 왜곡(歪曲) 문제, 야스쿠니 신사(神社) 참배문제, 독도 영유권(領有權) 문제 등이 내 전공에 포함된다. 일본에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가 수상이 된 후, 이런 문제들이 속속 한일 간의 주요 현안이 되면서 전공자인 나에게 언론 인터뷰나 기고(寄稿) 요청이 부쩍 늘기 시작했고, 라디오나 TV 출연 요청도 많아졌다.
 
 
  ‘질투’로 인한 이유 없는 깎아내리기
 
  당시는 나를 좋게 평가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나를 마음대로 평가절하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를 평가절하하려는 사람들은 오히려 가까운 교수 중에 많았다. “논문이나 쓰지, 왜 언론에 자꾸 나가는가?” 하는 비판을 많이 받았다. 그들은 뒤늦게 내가 논문을 많이 쓰고 책도 여러 권 낸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 사실을 알기 전까지 그들은 내가 학술활동을 하지 않고 매스컴에만 나가려는 ‘엉터리 교수’로 생각한 모양이다. 교수의 본분인 학술활동을 성실하고 왕성하게 하고 있다는 것이 알려진 후, 내가 언론활동을 했다고 해서 비판하는 사람들이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어느 날 대학의 한 교무위원이 내게 “호사카 교수님이 TV출연도 하시는데 그렇게 학술논문을 많이 쓴 줄 몰랐다”고 말해 주었다. 나는 발표한 논문수(數)가 많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사실 “교수님이 논문수가 많으시니까 우리 학회의 편집위원을 맡아 달라”는 요청을 몇 번 받은 적이 있다. 편집위원들의 발표 논문수가 많은 것이 학회의 평가점수가 올라가는 조건 중 하나라고 한다.
 
  어느 학회에 참석했을 때 한 유명 교수가 내가 참석하고 있는 줄 모르고 나를 비판했다. 그가 말했다.
 
  “호사카 교수의 독도 연구는 객관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보는데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 물음에 대해 상대방 교수는, “글쎄요. 나는 간도(間島) 문제를 연구하지만, 한국을 위해 연구한다는 자세를 객관성의 결여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해요”라고 대답했다. 그도 내가 참석해 있는 것을 몰랐지만, 오히려 내 연구가 객관적이라고 평가해 준 것이다.
 
  토론회 도중 휴식시간에 나는 나를 비판한 교수에게 내가 와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인사를 건넸다. 그는 대단히 어색한 표정으로 나와 악수를 나누었다. 토론은 10분쯤 후에 재개됐지만 그 교수는 같은 질문을 다시는 하지 못했다. 왜 당당히 나에게 그런 질문을 하지 못하는가?
 
  권위 있는 학자인 그가 왜 숨어서 나에 대해 저런 질문을 했을까? 내게는 ‘질투’로 인한 이유 없는 깎아내리기로만 비친 사건이었다.
 
  한국은 내게 여전히 아름다운 ‘신비의 나라’이자 꿈을 실현해 주는 나라이다. 나에게 새로운 인생을 알려준 ‘스승의 나라’이기도 하다. 아마도 한국은 앞으로 동아시아 공동체의 중심이 될 것이고, 더욱 세계인이 모이는 장소가 될 것이다. 그때를 대비해 대한민국 국민들은 세계인들에게 들려줄 말이 있고, 나눠줄 수 있는 정신적, 문화적 자원이 풍부한 나라가 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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