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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년 4월호

문화예술

연주자와 청중은 세계적이나 시스템과 재정 수준이 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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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오케스트라 보유하려면 정부와 기업이 적극 나서야
중국은 도시 경쟁력 키우기 위해 베이징과 상하이에 콘서트 전용홀 건설 중


鄭明勳 서울시교향악단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
⊙ 1953년 서울 출생.
⊙ 미국 매네스음대 피아노과 졸업. 줄리어드 음악대학원 졸업.
⊙ 미국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 부지휘자, 서독 자르브뤼겐방송교향악단 음악감독 겸 수석지휘자,
    프랑스 국립바스티유오페라단 음악감독 겸 상임지휘자, 이탈리아 로마산타체칠리아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 역임. ◉ 現 라디오 프랑스 음 악감독 겸 상임지휘자, 일본 도쿄필하모닉 특별예술고문,
    국제 유니세프 친선대사, 대한적십자사 친선대사.
서울시향의 ‘찾아가는 음악회’에서 정명훈이 연주를 지휘하고 있다.
  2007년 1월 22일. 해마다 열리는 한・중・일(韓中日) 우정의 가교(架橋) 콘서트가 도쿄 아카사카(赤坂)에 있는 500석 규모의 산토리홀에서 열렸다. 오케스트라 전용 콘서트 공간인 산토리홀은 일본인들이 자부심을 느낄 만큼 건물이 아름답고 음향 시설이 뛰어난 곳이다. 이 자리에 콘서트 후원자인 도요다 쇼이치로(章一郞) 도요타자동차 명예회장을 비롯해 한・중・일 주요 인사 100여 명이 참석했다. 나루히토(德仁) 왕세자는 이날도 특별한 의장 없이 조용히 입장했으나 관객들이 그를 알아보고 기립 박수로 맞이했다.
 
  나루히토 왕세자는 일본 왕실 가족이 다니는 가쿠슈인(學習院) 대학 시절 교내 오케스트라에서 비올라 수석을 지낸 클래식 애호가다. 필자와는 2004년 일본 민예관 무대에서 협연한 것이 계기가 돼 벌써 여러 번 함께 무대에 선 경험이 있다.
 
  이날 우리는 3개국의 연주자와 함께 슈베르트의 피아노 5중주곡 ‘송어’와 베토벤의 3중주곡 ‘소곡’을 연주해 객석을 메운 400여 명의 청중으로부터 갈채를 받았다. 클래식을 사랑하는 음악인으로 청중과 교감을 나눈 나루히토 왕세자는 이날이 필자의 생일이라는 사실을 알고 즉석에서 축하 이벤트까지 선보여 감동을 배가시켰다. 그는 신분과 격식을 벗고 순수한 음악의 선율에 몸을 맡길 줄 아는 멋쟁이였다. 또한 그의 이런 모습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는 관객들이야말로 진정한 문화예술인이 아닌가 싶었다. 한국에서도 이런 분위기의 공연이 가능할까.
 
 
  보편성에 기초해야 세계화 가능
 
  한국인인 필자가 클래식 음악에 빠져 평생 이 길을 걷게 된 것은 클래식 음악이 가진 보편적인 아름다움 때문이다. 문화는 보편성에 기초해야 세계화가 가능하다. 자신의 것과 다른 뿌리를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해서 무조건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 자체가 가진 아름다움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 것만 하면 경쟁력이 없다.
 
  1000년 동안 훌륭한 작곡가와 연주자를 끊임없이 배출한 클래식의 역사에 도전할 음악은 지구상에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클래식 음악의 뿌리는 그만큼 깊고 넓다. 글로벌 문화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세계가 공감하고 좋아하는 클래식 음악의 수준을 높여야 한다.
 
  필자는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각국의 훌륭한 문화들을 많이 체험했다. 안타깝게도 한국이 경제력 못지않게 클래식 음악에서도 선진국 수준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았다. 왜 그럴까.
 
  음악 전문가인 필자가 보기에 그 원인은 낙후된 시스템에 있다. 한국의 연주자나 청중의 수준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결코 뒤지지 않을 만큼 세계적 수준에 도달해 있다. 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만한 시설과 프로그램 등 공연 시스템은 재원의 절대 부족으로 다른 문화 선진국들에 비해 많이 떨어지는 상태다. 베를린필, 뉴욕필, 런던심포니 같은 세계적인 오케스트라가 인구 1000만명이 넘는 서울에 없다는 것 역시 같은 이유에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오케스트라는 대부분 창설 초기 정부나 기업으로부터 재정적으로 적지 않은 지원을 받았다. 문화예술 공연은 초기의 경우 재정적으로 적자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점에서 정부와 기업 등이 관심을 갖고 지원한 것이다. 한국 역시 정부나 기업의 지원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들 국가처럼 오랜 세월 지속적으로 애정을 쏟지는 않았다. 문화예술 분야는 기업처럼 투자한 만큼의 성과가 금방 나타나지 않는다. 인내심을 가지고 오랫동안 지켜봐야 한다.
 
영국 문화예술의 자부심이자 대명사인 런던심포니 오케스트라.

 
  문화 수준이 도시의 경쟁력
 
  국가의 경쟁력과 달리 도시의 경쟁력은 소득수준을 따지는 경제력이 아니라 문화의 수준이 척도가 된다. 그 대표적인 가늠자가 바로 도시를 대표하는 오케스트라다. 베를린필, 뉴욕필, 런던심포니, 파리오케스트라, 도쿄 NHK교향악단 등은 해당 도시의 품격을 높여 주고 있다. 이들 오케스트라의 성공으로 도시가 얻는 이익은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다. 이를 잘 알기에 유럽은 물론 중국이나 말레이시아 같은 국가들도 자국(自國)의 오케스트라를 키우기 위해 콘서트 전용홀 건설에 한창이다. 중국은 베이징과 상하이에, 말레이시아는 쿠알라룸푸르에 세계적 규모의 콘서트 전용홀을 건설 중이다.
 
  서울시교향악단은 창단 60년이 넘은 국내 대표적인 오케스트라지만 전용 콘서트홀이 없다. 또한 한정된 재원으로 오케스트라 본연의 연주 활동이 저조한 편이다.
 
  다행히 최근 들어 많은 이가 서울시향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데 관심을 보이고 있고, 또 재정적인 지원이 있어서 그동안 도전하지 못했던 다양한 음악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었다.
 
  서울 시내 구민회관, 대학교, 병원 등에 직접 찾아가 연주하는 ‘찾아가는 음악회’나 교육 프로그램인 ‘오케스트라와 놀자’ 같은 프로그램이 그것이다. 이들 프로그램을 통해 서울시향은 시민들 곁에 한 걸음 더 다가가기 위해 노력했고,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 그뿐만 아니라 오케스트라의 기량도 이전보다 훨씬 향상됐다고 생각한다.
 
  필자가 몸담고 있기에 서울시향을 예로 들었지만 그 외에도 우리나라는 시설적인 인프라면에서도 많은 발전을 보이고 있다. 최근 보면 각 도시를 중심으로 하거나 기업을 중심으로 한 좋은 공연장들이 많이 생겼다. 중요한 건 그런 공연장으로 시민들을 불러 모으는 것이다. 실력을 갖춘 음악인들의 열정만으로는 어렵다. 시민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좋은 프로그램들이 풍성해져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초기에 국가나 지방단체 및 기업의 재정적인 지원이 뒷받침 돼야 한다.
 
  일상 속에서 음악을 듣고 즐기는 건 사회나 젊은이들에게 가치 있는 일이다. 음악은 수천 년에 걸쳐 꾸준히 발전해 왔고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개발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음악에도 도전정신이 필요하다. 도전정신이 있어야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고, 국가 전체의 음악 수준이 올라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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