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해외 투자 시 첫 고려 대상은 사법절차 공정성과 재판 예측 가능성
사회 전반에 준법정신이 자리 잡도록 시스템 구축해야
權五坤 ICTY(舊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 부소장
⊙ 1953년 충북 청주 출생.
⊙ 중앙中·경기高·서울法大 및 同 대학원 졸업. 美 하버드大 법학석사.
⊙ 제19회 사법시험 수석합격 및 사법연수원 수석졸업. 서울민사지법·형사지법 판사·대통령비서실
파견(법제연구관)·법원행정처 기획담당관·대법원 재판연구관·서울지법 부장판사·헌법재판소 연구
부장·대구고법 부장판사·사법연수원 연구법관. 現 舊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ICTY) 부소장.
바야흐로 우리는 글로벌시대에 살고 있다. 경제·사회·문화·정치 등은 서로 톱니바퀴처럼 얽혀 있다. 어느 한 나라에서 일어난 일이라 하더라도 글로벌한 시각에서 봐야 종합적인 이해가 가능하게 되었다. 이러한 시대에 국가 위상을 높인다는 것은, 우선 국가 브랜드, 국가 이미지를 높여 국가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눈사람을 만들 때 일단 눈덩이가 커지면 눈이 달라붙는 속도가 빠른 것처럼, 국가의 위상이 높아지면 국가 경쟁력이 높아지는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필자도 9년 전 유엔총회에서 열린 국제재판소 재판관 선거에서 처음으로 당선될 당시, 우리의 신장된 국력을 바탕으로 하지 않고서는 당선이 불가능하였으리라는 것을 피부로 실감한 바 있다.사회 전반에 준법정신이 자리 잡도록 시스템 구축해야
權五坤 ICTY(舊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 부소장
⊙ 1953년 충북 청주 출생.
⊙ 중앙中·경기高·서울法大 및 同 대학원 졸업. 美 하버드大 법학석사.
⊙ 제19회 사법시험 수석합격 및 사법연수원 수석졸업. 서울민사지법·형사지법 판사·대통령비서실
파견(법제연구관)·법원행정처 기획담당관·대법원 재판연구관·서울지법 부장판사·헌법재판소 연구
부장·대구고법 부장판사·사법연수원 연구법관. 現 舊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ICTY) 부소장.
글로벌 시대와 ‘법의 지배’
인터넷 등 정보기술의 발달로 인하여 지구의 반대편에서도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속속들이 파악하게 된 오늘날에 있어서는, 일회성 또는 한시적인 홍보만으로는 지속적인 국가 위상 제고의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국가 위상을 높인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국민 개개인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다. 법률적으로 풀어쓰자면, 국민 개개인이 인간의 존엄성을 지니며 인간답게 사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국격(國格)을 높일 수 있는 선순환(善循環)도 기대할 수 있다.
기업이 어느 한 국가에 투자 여부를 결정할 때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그 나라가 제공하는 각종 투자 유인책이 아니라 그 나라의 사법절차의 공정성 및 재판의 예측가능성이라고 한다. 아무리 많은 투자 유인책을 제공하더라도 나중에 분쟁이 생겼을 때 투자회수를 보장할 수 없다면 결코 세계화된 국가라고 할 수 없다.
지구촌화된 오늘날, 법의 지배(rule of law)의 정착 정도는 그 나라의 선진화(先進化)를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징표다. 법의 지배에 근거한 인간다운 삶만이 지속적인 ‘웰빙(well-being)’을 보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요즈음은 국제법에 있어서도 국가의 책임보다는 개인의 형사책임을 다루는 국제형사법 분야가 주목을 받고 있고, 국제 외교에 있어서도 경제 외교에서 인권 외교로 그 중심이 옮아가고 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따라서 법의 지배의 탄탄한 기반을 이루는 것이 우리나라의 국가 위상을 높이는 작업의 제1순위가 되어야 한다.
국제적 기준에 합당한 신뢰받는 사법제도
국제적 기준(global standard)에 부합하는, 예측 가능하고 신뢰받는 사법제도를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배심재판이 이루어지는 영미(英美)법계 국가에서 시민이 ‘사실’을 판단한다는 점에서 재판의 신뢰성이 확보되지만, 전문적인 법관이 법률 판단과 사실 인정까지 담당하는 대륙법계 국가에서 재판의 신뢰성은 절차의 공정성과 법률적 논거(legal reasoning)의 정당성에 기초할 수밖에 없다.
우선 절차의 공정성과 관련해, 절차가 실제로 공정했다는 주관적 공정성뿐만 아니라 제3자에게도 공정한 것처럼 보여야 한다는 ‘객관적 공정성’도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정의(正義)는 행해져야 할 뿐만 아니라 보여야 한다(Justice must not only be done but also be seen)’는 외국의 법언(法諺)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따라서 공정하지 않은 절차뿐만 아니라 공정하지 않게 보일 소지가 있는 절차 역시 과감하게 개혁해야 한다.
재판이 제시하는 법률적 논거의 정당성은 공개된 정보에 기초해 언론과 국민의 검증을 받게 마련이고, 이것이 결국에는 사법부 신뢰의 초석이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법원이 사건을 재판하지만 결국에는 자기가 재판하는 사건에 의해 심판받게 되는 것(While the court tries cases, the cases try the court)’이다.
국제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국제적 논쟁이나 분쟁이 발생했을 때 우리가 승리할 수 있는 요인은 설득력 있는 논리에 근거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기관뿐만 아니라 사회 각 분야 곳곳에 법률가들이 진출해 각 분야의 전문가로 성장해야 한다. 단순히 사법시험 합격자 수를 대폭 늘렸던 시기를 지나 이제 본격적 로스쿨 시대로 접어든 오늘날, 법조인 양성 및 그 직역의 패러다임은 환골탈태와 같은 변혁이 요청된다.
지금 한국은 법률시장 개방, FTA 등 다양한 개방요구에 직면하고 있다. 불가피한 개방이라는 소극적 태도가 아니라, ‘세계 속의 한국’이라는 적극적인 인식을 가져야 한다. 개방을 발전의 토대로 삼아 국제사회의 분위기를 선도하는 글로벌 리더십이 필요하다.
대한민국의 경제 규모나 국제기구에의 분담금 등에 비춰볼 때 국제기구에 진출한 한국인의 수는 너무나도 적다. 앞으로 한국의 젊은 법조인들이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점을 명심하고, 더욱더 국제무대에 적극적으로 진출해야 한다. 이는 장기적으로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 것에 직결된다는 점을 감안해, 정부뿐만 아니라 대한변호사협회 등의 민간 부문에서도 한국의 젊은 법조인들이 국제기구 등에서 인턴 등으로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보조하는 등 다각적인 지원 방안이 강구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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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구스타프 스웨덴 국왕이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국제사법재판소(ICJ)를 방문했을 당시 각종 국제재판소의 수장들이 함께 모여 국제법 현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정면에서 오른쪽 두 번째가 권오곤 ICTY 부소장이고 왼쪽에서 두 번째가 송상현 ICC(국제형사재판소) 소장이다. |
성숙한 사회를 향하여
필자가 국제재판소에서 근무하면서 인상 깊게 느낀 것 중의 하나는 세계 각국에서 온 다양한 인재들이 자신의 의사를 단계적으로 세심하게 밟아 가며 논리적으로 표현하고, 다른 사람들과의 토론을 통해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해 내는 과정이었다. 우리나라가 성숙한 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건설적인 토론과 설득을 통해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할 수 있는 성숙한 국민의식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토론 문화가 몸에 자연스럽게 밸 수 있도록 어린 시절부터 토론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쟁점에 대한 토론 내지 분쟁 해결의 모범을 제시하는 사법절차가 더욱더 국민의 신뢰 속에 뿌리를 내려야 할 것이다.
우리의 사법제도가 영미법계의 제도와 대륙법계의 제도를 조화롭게 절충한 제도로서, 후발 개도국 등에 전범(典範)으로 제시할 수 있을 정도로 우수한 것이기는 하지만, 제도의 운용 면에 있어서는 아직도 개선할 점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사회 전반에 걸쳐 준법정신이 뿌리 깊게 자리 잡도록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또 기본적 인권에 관한 국민의식을 함양할 필요도 있다. 이와 관련해 언론도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열 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한 명의 무고한 사람을 벌해서는 안된다’는 교훈보다는 ‘한 명의 억울한 사람이 생기더라도 열 명의 범인을 효과적으로 처벌하는 것이 더 낫다’는 편의에 안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