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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년 4월호

외교

네덜란드의 3P(평화·이익·원칙) 외교를 모델로 삼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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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외교예산은 예산의 0.7%, 네덜란드는 7.51%
압축발전 경험 살려 선·후진국 간 교량 역할 해야


金錫友 21세기국가발전연구원 원장·전 통일원 차관
⊙ 1945년 충남 논산 출생.
⊙ 서울대 행정학과 졸업. 서울대 대학원 국제법 석사.
⊙ 제1회 외무고시 합격, 외무부 아주국장, 대통령비서실 의전비서관·의전수석비서관, 통일원 차관,
    국회의장 비서실장 역임.
  한국은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했고, 미국발(發) 금융위기를 순조롭게 극복하면서 G-20 회의나 기후변화회의 등 국제무대의 중심으로 나아가고 있다. 2009년 11월에는 OECD 개발원조위원회(DAC) 회원국이 됐다. 2015년에는 개발원조(ODA)를 GDP의 0.25%로 올리게 된다. 이제 한국은 국력에 상응하는 외교를 펴나가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글로벌 스탠더드에 비추어보면 한국외교는 갈 길이 멀다.
 
  외교는 국내 산업생산이나 문화활동, 그 밖의 정부 기능과 비교하면 대상이나 환경이 국제적일 수밖에 없고, 그만큼 더 고차원적 과업이다. 뜨거운 애국심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과제가 너무 많다. 정확한 정세판단과 정책선택, 그리고 정교한 외교기술을 필요로 한다. 국민적 지지기반도 필요하다. 또한 국내정치가 외교의 발목을 잡지 않아야 한다.
 
  역사를 되돌아보면 한반도의 우리 민족이 중국이라는 대국(大國) 옆에서 5000년 동안 정체성(正體性)을 유지해 온 데는 외교가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근대에 들어와서는 국제정세를 잘못 파악하고 외교에 실패한 결과 일본제국주의에 국권(國權)을 침탈당했다.
 
  1948년 대한민국이 건국됐을 때, 우리에게 외교 경험이란 전무(全無)했다. 다행히 일제(日帝)하에서 독립운동을 하면서 국제관계를 통찰할 수 있었던 외교의 거인 이승만(李承晩) 전 대통령 덕분에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기본으로 하는 대한민국을 세울 수 있었고, 6·25전쟁의 와중에서 나라를 구할 수 있었다. 6·25전쟁 후 한미 동맹을 맺어 안보와 경제성장의 기틀을 마련한 것도 이승만 대통령의 외교였다.
 
  건국 후 60여 년이 지난 오늘날 대한민국은 전 세계 140여 개 신생 독립국 중에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성취한 유일한 사례가 됐다. 1960년대 이후 한 세대만에 이룩한 성과였다. 이는 대한민국이 건국 후 미국·일본 등 해양세력과의 협력을 기반으로 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한국외교의 한계
 
  황무지에서 출발한 한국외교는 지난 60여 년간 남북대결과 경제발전 과정에서 나름 기여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외교가 싱가포르나 이집트보다 앞선다고 할 수 있을까? 물론 북핵(北核)문제 같은 난제에 몰입하느라 다른 분야에 신경을 쓸 여유가 적었다. 국제 외교무대에서 북한 인권문제를 외면하여 국제사회의 웃음거리가 된 것은 한국외교의 수준을 보여주는 예라고도 할 수 있다. 한국의 스포츠, 경제 등 다른 분야의 국제화 속도와 비교해 보아도 외교는 뒤처졌었다. 그 이유를 열거해 보자.
 
  첫째, 식민통치 기간 국권상실로 외교경험이 없었으므로 처음부터 혼자서 길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한국 안에서는 우수한 인재들을 영입했어도, 서유럽 중심의 외교관례나 언어, 교섭기술, 외교정책 면에서 핸디캡을 벗어나는 것은 어려웠다.
 
  둘째, 전 세계적 냉전(冷戰)구조하에서 북한과 유엔에서 대표권을 다투는 데 전력을 다해야 했기 때문에 다른 분야에서 충분한 외교력을 발휘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한국은 남북대결 과정에서 동맹국 미국의 적극 지원을 받아 생존과 경제번영의 기틀은 잡았으나, 그 과정에서 대미(對美)의존 경향이 커져, 독자성·적극성 발휘가 늦어졌다.
 
  셋째, 민주화 이전에는 권위주의 정권의 존재가 효율적 외교수행에 부담이 됐고, 권위주의적 풍조 때문에 외교정책 수립 과정에서도 활발한 토론이나 일관성 유지가 어려웠다. 인사 면에서도 지연(地緣)·학연(學緣)의 영향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넷째, 구한말(舊韓末) 우리나라를 찾은 외국인들로부터 ‘은자(隱者)의 왕국’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한반도는 오랫동안 외부로부터 고립돼 있었다. 1960년대 초만 해도 외국에 나가는 한국인은 연간 수천 명에 불과할 정도였다. 이제 한 해에 연인원 1300만명이 해외여행을 할 정도로 개방이 되긴 했으나, 외교에 대한 국민의 의식이 바뀌고 외교 인프라가 제대로 갖추어지려면 좀 더 시간이 걸릴 것이다.
 
  다섯째, 전체적으로 적극적·능동적·전략적 외교를 전개하기보다는 당면한 현안들을 해결하는 데 급급해 왔고, 대통령의 국내정치적 수요에 부응하기 위한 외교에 치중하는 경향이 컸다.
 
 
  발전경험 살려서 후발개도국의 롤 모델 추구해야
 
  이제 한국외교의 지평이 넓어졌다. 경제력의 급격한 신장으로 남북한 격차는 40배로 벌어졌다. 88서울올림픽을 계기로 북방(北方)외교가 전개되면서 우리 외교의 지평이 확대됐고, 남북대결이라는 심리적 압박에서 벗어나서 전 세계를 외교시야에 넣을 수 있게 됐다. 김대중(金大中)·노무현(盧武鉉) 정권 시절 잠시 훼손됐던 한미동맹 관계도 복원됐다.
 
  글로벌 외교를 전개하는 데 한미동맹이 출발점이라는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지만 앞으로 남북분단 상태를 잘 관리하고 주변국의 협조를 얻어 통일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외교력을 발휘해야 한다. 나아가 한 세대만에 세계 최빈국(最貧國)에서 선진국 문턱에 도달한 한국의 경험과 경제적 위상을 바탕으로 후발개발도상국들의 롤 모델 역할을 추구해야 한다.
 
  국력 상승에 따라 외교 영역이 전 세계로 확대되는 데 맞추어, 우리의 외교역량도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높아져야 한다. 자연자원이 부족하고 강대국에 둘러싸인 한국이야말로 대외관계에서 살길을 찾아야 하고, 그만큼 외교의 역할이 중요하다. 지정학적으로 중국·일본·러시아의 가운데 놓여 있는 한국은 월등한 하드파워, 즉 군사력을 가진 그들과 같은 방식으로 맞서기보다는 국제정세를 정확하게 읽어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확보하는 소프트파워 외교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 과거처럼 당장의 생존에 급급해 현안에만 치중하던 수준에서 벗어나 전 세계적 과제에까지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능력을 구비해야 한다. 이를 위한 방안으로 몇 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
 
작년 9월 미국 피츠버그에서 열린 G-20정상회의에서 외국 정상들과 나란히 선 이명박 대통령(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

 
  외교예산, 전체 예산의 0.7%에 불과
 
  우선, 외교 전략과 정책에 큰 비중을 두어야 한다. 지금까지 한국외교는 개별 사안에 급급해하거나 외교행정이나 의전(儀典) 같은 부차적(副次的) 과제에 치우쳐서, 정작 정세파악과 정책수립에 소홀했다고 볼 수 있다. 국가의 운명이 좌우되 는 기본전략뿐만 아니라 주요 외교현안에 대해서도 철저한 논쟁을 거쳐 국가이익과 국제적 기준에 맞는 정책을 수립해서 시행하고, 그 성과에 대한 논공행상(論功行賞)에 좀 더 공정해야 한다.
 
  둘째, 국제법·통상·환경·인권 등 모든 분야에서 세계적 스탠더드에 맞는 이론과 방법을 체득하고 이를 활용해야 한다. 나아가 변환의 21세기 속에서 중진국(middle power)으로서의 한국은 외교를 통해 상대방의 동의를 이끌어내고, 약소국과 강대국 간의 이해를 조정하며 상호강화(mutual empowerment)하는 소프트파워 외교를 발전시켜야 한다. 한국이 강점을 가진 분야, 예컨대 압축성장을 달성한 경험을 개발원조에 활용하여 국제사회에 모범을 보이고, 선·후진국 간의 교량 역할을 해야 한다.
 
  셋째, 전문 외교인력을 많이 양성해야 하고, 이를 위해 예산을 과감하게 투입해야 한다. 현재처럼 적은 인력으로는 외교의 전문화는 요원하고, 냉탕·온탕식 인사운영이나 땜질식 외교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우리나라의 외교예산은 국가예산의 0.7%에 불과하다. 이 정도 예산으로 국제수준의 외교를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
 
 
  네덜란드를 외교 모델로 삼아야
 
국제사법재판소가 있는 네덜란드 헤이그의 평화궁. ‘평화’는 네덜란드의 3P외교 가운데 첫 번째를 차지한다.

  그러면 우리 외교의 롤 모델은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 이를 위해서는 국가의 크기나 전략적 위치를 감안해야 한다.
 
  미국과 같은 초(超)강대국이 우수한 외교 소프트웨어를 가지고 있다고 하여도 우리의 롤 모델로 삼기는 어렵다. 초강대국은 일시 실수해도 되고, 완벽하지 않더라도 생존에 지장이 없으나, 한국은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롤 모델은 지정학적(地政學的)으로 우리와 비슷한 중간국가에서 찾아야 한다. 일부에서는 통일한국이 영세중립국(永世中立國)인 스위스 모델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지정학적 위치나 인구, 국력 등을 고려할 때, 스위스 모델은 적당치 않다. 필자는 우리가 모델로 삼아야 할 나라는 네덜란드라고 생각한다.
 
  네덜란드는 지정학적으로 독일·프랑스·영국 등 인구 7000만명대의 강국들 가운데 놓여 있고, 자연환경이 열악한 좁은 국토에 1400만명의 인구를 가진 나라다. 13억 인구의 중국, 1억3000만의 일본, 1억4000만의 러시아에 둘러싸인 우리나라와 상당히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네덜란드인은 16세기 대항해시대에 당시로서는 가장 첨단적이던 동인도(東印度)회사를 세워 해양세력의 선두주자로 나선 경험이 있다. 이후 역사 의 진전에 따라 부침(浮沈)은 있었지만, 네덜란드는 작은 나라임에도 선진국이라는 지위를 유지해 왔다.
 
  열강(列强)에 둘러싸인 네덜란드가 독립과 번영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국가생존을 위해 외교 통상 분야에 파격적인 인력과 예산을 투입해 왔기 때문이다. 네덜란드 국민은 보통 3, 4개의 외국어를 구사한다. 인구는 대한민국(남한)의 3분의 1도 안 되지만, 외교 인력은 3배, 외교예산은 20배에 가깝다. 2008년 네덜란드의 외교예산은 197억 달러로 국가예산의 7.51%에 달했다. 같은 해 한국의 외교예산은 10억 달러에 불과했다.
 
 
  네덜란드의 3P 외교
 
  네덜란드는 ODA와 인권외교를 주요 외교수단으로 삼고 있다. 네덜란드는 ODA원조를 위해 매년 국민총소득(GNI)의 0.8%를 예산에 반영하고 있다. EU가 2015년까지 ODA원조를 GNI 의 0.7%,한국은 0.25%까지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을 상기하면, 네덜란드의 대외 원조 수준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네덜란드는 헤이그 국제사법재판소를 비롯한 국제 기구들을 유치하고 있다. 네덜란드 외교의 3대 지표는 Peace(평화), Profit(이득), Principle(원칙)의 3P로 요약된다.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네덜란드의 국가이미지와 국제적 발언권은 국력을 넘어서고 있다.
 
  우리도 네덜란드 수준으로 우리의 외교를 업그레이드시킨다면, 우리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지는 것은 물론이고, 골드만삭스의 예측대로 2050년 G-7 진입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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