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문화 바탕으로 서구가 갖지 못한 대안적 사고를 가져야
서구적 가치를 따라가는 리더십은 서구에서도 세계에서도 필요하지 않을 것
尹相現 한나라당 국회의원
⊙ 1962년 충남 청양 출생.
⊙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美 조지타운大 국제정치학 박사.
⊙ 서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아시아태평양문제연구소 소장 등 역임.
지난 1990년대 말부터 세계화는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이름 아래 무역과 통상 및 각국 정부의 경제정책이나 기업지배구조에까지 적용되며 급속히 확대돼 왔다. 특히 우리나라는 1998년 외환위기 이후 경제회복을 위해 이 글로벌 스탠더드를 의욕적으로 적용해 왔다. 수출이 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우리로선 가속화되는 ‘지구촌화’에 대응하여 글로벌 스탠더드에 더 많은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10여 년이 흘렀다. 이제 대한민국은 G20 의장국으로서 세계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경제운용 방향을 주도하기도 하고, 환경과 재생에너지, 기후변화, 녹색성장 등에서도 선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서구적 가치를 따라가는 리더십은 서구에서도 세계에서도 필요하지 않을 것
尹相現 한나라당 국회의원
⊙ 1962년 충남 청양 출생.
⊙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美 조지타운大 국제정치학 박사.
⊙ 서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아시아태평양문제연구소 소장 등 역임.
‘세계화=미국화’ 인식 있어도 세계화 멈추지 않아
표면적으로 보면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말은 서구화를 의미하고, 서구화는 또 미국화로 압축돼 왔다. 때문에 글로벌 스탠더드는 곧 아메리칸 스탠더드를 부드럽게 부르는 방법에 지나지 않았다. 아메리칸 스탠더드는 경제적으로는 신자유주의가 되겠고, 정치적으로는 자유와 경쟁에 가중치를 두는 자유민주주의가 될 것이다. 프란시스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말>에서 이를 찬양했지만, 그 또한 국가간·계층간 빈부격차 심화와 대외의존도 증가 같은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그동안 글로벌 스탠더드가 유일 초강대국인 미국의 이익을 대변하는 역할을 해 온 탓에 다른 약소국가들을 오히려 더 빈곤하게 만들었다는 비판도 커져 왔고, 이런 문제의식이 반(反)세계화 시위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도 글로벌화가 멈추지는 않을 것이다. 글로벌 스탠더드가 곧 아메리칸 스탠더드라는 등식은 앞으로 서서히 무너져가겠지만, 글로벌화는 피할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다. 우리 사회가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되도록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글로벌화에 뒤처지면 경제위기 극복은 커녕 선진국으로의 진입도 불가능해진다.
국회 대결구도에 얽매여 민주정치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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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7월 국회 본회의에서 한나라당이 미디어법을 직권상정해 법안을 통과시키자 민주당 등 야당의원들이 의장석으로 뛰어들며 거세게 항의하고 있다. |
그런 면에서 보면 우리 정치현실이 참 답답한 것이 사실이다. 경제규모는 세계 10위권을 눈앞에 두고 있고, 우리 문화는 ‘한류’라는 이름으로 세계를 누비고 있으며, 각종 스포츠에서도 선도국가가 되고 있는데, 여전히 정치는 글로벌 스탠더드와 큰 거리를 두고 있다. 갈등을 조정해야 할 국회에서는 여전히 몸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다수결을 기본으로 하는 민주주의의 전당인 국회에서조차 그 원칙이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지난 2008년 12월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회의장에서 벌어진 폭력사태는 한국정치의 후진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 사회가 시장성·투명성·효율성으로 대표되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변화해 나가는 것과 함께, 정치영역도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변해야 한다. 우선 필요한 것은 정당의 의사결정구조를 선진화하는 일이다. 현재와 같은 하향식 의사결정구조는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어렵게 한다. 국회와 정당은 다양한 국민의견을 대변하는 곳이기에 서로 다른 견해가 대립되고, 또 대립될 수밖에 없는 곳이다. 문제는 대화와 타협을 통해 이를 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 국회와 정당은 그러한 대화보다는 의견관철이라는 목표에 집중하다 보니 몸싸움과 폭력행사라는 물리력까지 동원한다. 갈등을 해소하고 통합을 추구해야 할 정당정치, 의회정치의 영역에서 오히려 갈등이 증폭되고 대립이 심 화되는 것이다.
이렇게 국회가 대결구도에 얽매여 있는 탓에 국회의 주요 기능인 행정부에 대한 견제와 감시기능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국회의 정치기능을 떨어뜨려 결과적으로 대통령에 대한 지나친 권력집중을 초래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권력집중은 다시 삼권분립이라는 민주정치의 원칙이 훼손되는 결과로 돌아온다.
정치인 도덕적 무장 새롭게 해야
의식에서도 변화가 필요하다. 현역 정치인과 정치지망생들이 도덕적 무장을 새롭게 해야 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철학을 가지고 공인으로서의 책임감과 봉사정신을 갖춰야 한다. 이해관계에 따라 이합집산하기보다는 스스로의 철학을 가지고 그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 투명한 정치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정치인 스스로 자신에게 정직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변화가 쌓여 정치권이 원칙과 규칙을 지켜나간다면 국민의 신뢰는 자연스럽게 형성될 것이다.
그러나 한국 정치에 글로벌 스탠더드를 적용하는 것이 무조건적인 추종이 되어선 안된다. ‘가치의 권위적 배분’이라는 데이비드 이스턴의 정치에 대한 정의와 ‘타인의 마음과 행동에 대한 지배’라는 한스 모겐소의 권력에 대한 정의가 우리나라 상황에 꼭 부합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근대 서구에서의 정치는 마치 기술과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 전통 속의 정치는 그렇지 않다. 우리 전통에는 우리 문화에 맞는 정치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정신이다. 널리 인간세계를 이롭게 하라는 홍익인간의 정신이야말로 한국 전통에 맞는 최고의 정치이념이다.
홍익인간에서 보여주는 정치는 ‘정즉인(政卽人)’이다. ‘정치’는 결국 ‘인간’이라는 것이다. 정치행위의 모든 것이 인간을 위한 것이다. 인간애에 곡진하고 인간성에 호소하는 정치라야 진정한 정치라 할 수 있다. 그것이 한국의 정치, 한국만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정치이다. 이를 버리고 글로벌 스탠더드만을 무조건 쫓아가면 자칫 우리 정서와 충돌이 발생할 수 있고,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다. 우리가 간직해 온 문화나 정서들 중에는 개선해야 할 것도 있겠지만, 소중히 다듬어 전승해나가야 할 것들이 참 많다. 이를 잘 구분하여 세계적 기준과 조화와 균형을 이루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진정한 글로벌 스탠더드는 우리 문화에서 융합돼야
진정한 의미의 글로벌 스탠더드는 일방적인 서구식 스탠더드가 아니다. 자유와 경쟁, 풍요의 가치와 조화와 평등, 공동체의 가치가 우리 문화 속에서 서로 융합되어야 한다. 그래서 지금 우리 사회에 글로벌 스탠더드를 구현할 수 있는 리더십은 새로운 길을 여는 사람들이다. 일정부분 한계에 부딪힌 서구식 신자유주의에 새로운 돌파구를 제시하고, 가치융합을 도모할 수 있는 제3의 길을 여는 능력이 필요한 시대이다. 세계적으로도 마찬가지이다. 지금 세계가 필요로 하는 인물은 서구가 갖지 못한 대안적 사고를 가진 사람이다. 서구적 사고와 가치를 따라가는 리더십은 서구에서도, 세계에서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글로벌 리더가 되고자 한다면, 우선 우리 것을 알고 그 다음에 서구와 세계를 알고, 그 위에서 현재 미국·서구 중심의 글로벌 스탠더드에 새로운 기준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글로컬라이제이션’이다. 미국식 글로벌 스탠더드에 충실한 리더십이 아니라, ‘글로컬라이즈드 스탠더드(Glocalized Standard)’를 구현할 리더가 필요한 것이다. 이를 일러 혹 ‘글로-코리안(Glo-Korean)’이라고 하는 것도 합당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