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世逸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 1948년 서울 출생.
⊙ 서울대 법대 졸업. 美 코넬대 경제학 박사.
⊙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 서울대 법대 교수, 대통령정책기획수석비서관·사회복지수석비서관,
한국법경제학회장, 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 이사장, 제17대 국회의원, 한나라당 정책委 의장.
글로벌 스탠더드란 과연 무엇인가? 글로벌 스탠더드는 우리말로 ‘세계문명 표준’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 그러나 보다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단순한 세계문명 표준이 아니라 세계의 ‘선진(先進)문명 표준’을 의미한다고 보아야 한다. 환언하면 이미 앞서 성숙하고 발전한 선진국들이 가지고 있는 제도·관행·문화 등 가운데, 개별선진국가의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비교적 여러 선진국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보편성이 높은 선진 제도·관행·문화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후진국(後進國)들이 선진국이 되는 과정은 사실 이러한 글로벌 스탠더드, 즉 선진문명 표준을 배우고 모방하는 과정이 된다. 학교에서 공부를 잘하려면 공부 잘하는 학생들의 공부하는 법, 시간과 여가를 사용하는 법 등등을 배우고 모방하여야 공부를 잘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1948년 서울 출생.
⊙ 서울대 법대 졸업. 美 코넬대 경제학 박사.
⊙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 서울대 법대 교수, 대통령정책기획수석비서관·사회복지수석비서관,
한국법경제학회장, 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 이사장, 제17대 국회의원, 한나라당 정책委 의장.
특히 우리는 지금 세계화시대에 살고 있다. 세계화시대는 개인이든 국가든 성장과 발전을 위해서는 세계적 차원에서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는 시대다. 따라서 후진국들이 선진국이 되기 위한 경쟁도 당연히 치열해지고, 그 결과 선진국의 문명표준, 즉 글로벌 스탠더드를 배우고 모방하려는 경쟁도 당연히 치열해진다. 그리고 그러한 경쟁과 노력을 통하여 후진국의 상황을 벗어나 선진국이 되는 것이다.
모방에서 창조로
후진국이 선진국이 되기 위해 글로벌 스탠더드를 배우고 모방하는 과정을 보면 크게 두 단계로 나뉜다. 첫째 단계는 ‘모방(模倣)의 단계’이다. 무조건 선진적인 기준을 그대로 카피하고 똑같이 흉내 내면서 배우는 단계이다. 특히 후진국에서 중진국(中進國)까지 올라오는 데는 사실 이 선진국 모방이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본래 모든 배움은 우선은 가르치는 교사를 모방하는 데서 시작된다.
두 번째 단계는 ‘창조(創造)의 단계’이다. 이는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선진국의 선진문명 표준과 자기 나라의 표준, 즉 자기 나라 고유의 제도·관행·문화표준을 창조적으로 결합하는 단계를 의미한다. 단순한 카피나 흉내가 아니라 배울 것은 배우고 자신들이 주장할 것은 주장하는 단계다. 환언하면 자신들의 고유표준과 선진국의 표준을 통합·융합하면서 새로운 글로벌 스탠더드, 즉 ‘신(新) 선진문명 표준’을 창조하는 단계다. 일반적으로 중진국의 단계를 넘어 선진국으로 진입하려는 경우에는 반드시 이 창조적 단계를 거쳐야 한다.
우리 대한민국은 1960년대부터 시작한 산업화 덕분에 세계 최빈국(最貧國)의 하나였던 역사를 뛰어넘어, 이제는 당당한 중진국의 선두주자가 되었다. 1963년 1인당 국민소득 100달러의 경제를 1995년 1만 달러의 경제로 바꾸었다. 가위 ‘한강의 기적’이었다.
이 산업화의 기간 동안 우리나라는 선진국의 글로벌 스탠더드를 모방하고 배우는 데 급급했다. 물론 시행착오도 많았고 우리의 전통문화 등과 달라 어색한 때도 많았지만, 결국 우리는 크게 보아 선진국 모방에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그 결과 우리는 중진국의 선두주자가 되었다. 그러나 이제 21세기에 들어 우리 대한민국은 중진국의 단계를 지나 선진국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따라서 더 이상 모방만으로는 국가발전과 선진사회를 이룩할 수 없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모방의 단계’에서 ‘창조의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수신형 창조와 발신형 창조
일반적으로 ‘창조의 단계’에서는 두 가지 종류의 창조가 일어나야 한다. 하나는 ‘수신형(受信型) 창조’이고, 다른 하나는 ‘발신형(發信型) 창조’이다. ‘수신형 창조’란 선진국에서 배워오는 ‘외래적(外來的) 표준’과 우리의 문화와 역사 속에 살아 있는 ‘내생적(內生的) 표준’을 결합하고 융합하여 우리 대한민국 국내에서 통용하고 사용할 ‘우리식 표준’을 만드는 창조다. 배워온 것을 우리에게 맞게 고치는 창조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수동적이고 내향적인 창조다.
반면에 ‘발신형 창조’는 우리의 역사와 문화와 전통 속에 있는 ‘보석’을 발견하여, 이를 기존의 글로벌 스탠더드와 결합·융합하여, 세계 어디에서나 통용될 수 있는 보편적 ‘신 세계문명 표준’을 창조해 내는 것을 의미한다. 선진표준과 우리표준을 결합하여 세계수준을 한 단계 더 높이는 새로운 글로벌 스탠더드를 창조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두 가지 의미의 창조, 즉 ‘수신형 창조’와 ‘발신형 창조’를 잘해야 우리는 진정한 세계 일류국가로서의 선진국이 될 수 있다.
그러면 우선 ‘수신형 창조’가 왜 필요한가를 생각해 보자. 본래가 선진국이란 여러 분야에서 성숙한 사회를 의미한다. 그런데 성숙이란 객관적이면서 주관적인 것이다. 성숙한 사회가 되려면 경제적·기술적 발전이 어느 수준 이상으로 올라야 하지만, 동시에 그 사회 구성원들의 주관적 만족과 행복감도 어느 수준 이상이 되어야 한다. 성숙사회란 경제적 기술적으로 풍요로운 사회일 뿐 아니라 동시에 주관적으로도 행복한 사회여야 한다. 객관적 풍요와 주관적 행복이 함께하는 사회여야 한다.
따라서 선진국이 되려면 경제적으로 앞선 나라에서 경제와 기술을 배워 오는 것, 선진국의 글로벌 스탠더드를 배워 오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반드시 그 글로벌 스탠더드가 자신의 역사적·문화적 풍토에 기초한 주관적 행복기준과 어울릴 수 있어야 한다. 아니 글로벌 스탠더드를 주관적 기준과 융합할 수 있는 방향으로 수정하고 보완하여야 한다. 한마디로 우리에게 맞도록 국내 통용을 위하여 새로운 글로벌 스탠더드를 창조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수신형 창조’이고, 이것이 가능해야 국민들이 만족하고 행복해하는 성숙사회를 만들 수 있으며, 나아가 선진국이 될 수 있다.
세계공헌국가가 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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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피겨여왕’ 김연아 선수. 이제 그녀의 피겨 스케이팅은 세계의 표준이 됐다. |
다음은 왜 ‘발신형 창조’가 필요한가를 보자. 그 이유는 우리가 되려고 하는 선진국은 ‘세계공헌국가’이고 ‘세계모범국가’이기 때문이다. 선진국이 되려면, 자기 나라의 발전뿐만 아니라 지구촌의 보편적 발전에 기여하고 공헌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지구촌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새로운 글로벌 스탠더드를 창조하는 데 공헌하여야 한다. 보다 높은 수준의 세계적 선진문명 표준을 창조하는 데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보다 먼저 우리 역사·문화·전통 속에 있는 보석을 찾아 나서야 한다. 그 보석은 우리에게도 보석이 되지만, 인류 모두에게도 보석이 될 수 있는 그러한 내용과 수준이어야 한다. 지구촌에 있는 모든 인류의 보편적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그러나 우리만이 가지고 있던 독특한 보석을 찾아내야 한다. 그래서 그 보석을 가지고 나가 기존의 글로벌 스탠더드와 결합·융합하여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의 선진 글로벌 스탠더드를 만들어내야 한다. 이렇게 지극히 한국적인 것을 가지고 세계적인 것으로 보편화할 수 있는 창조가 바로 ‘발신형 창조’다.
이제 대한민국은 선진국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따라서 산업화시대와는 달리 글로벌 스탠더드의 문제를 보는 우리의 시각도 선진화시대에 걸맞게 바뀌어야 한다. 즉 이제는 단순히 모방과 카피가 아니라 창조적이어야 하고, 그 창조도 ‘내향적(內向的) 수신형 창조’의 단계를 지나 ‘외향적(外向的) 발신형 창조’의 단계로 나가야 한다.
이제는 국가발전모델도 선진국형을 배우고 모방하는 데 급급해 할 것이 아니라 자신들에게 맞는 모델을 스스로 창조해내야 한다. 동시에 거기서 그치지 않고, 자신의 모델을 보편화하고 세계화하여 다른 이웃 나라들에도 모범이 되고 표준이 될 수 있는 창조적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즉 내향적 창조를 반드시 외향적 창조로 한 단계 더 발전시켜 세계화하여 나가야 한다. 그것이 21세기 선진화와 통일을 지향하는 우리나라가 나아갈 방향이다.
“워싱턴 컨센서스는 죽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오늘 우리 사회 일각에서 논의되고 있는 ‘서울 컨센서스(Seoul consensus)’가 가지는 의미는 대단히 크다. 우리나라에서 앞으로 전개될 ‘창조적 글로벌 스탠더드의 시대’에 우리가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를 보이는 좋은 예시의 하나가 될 것이다.
주지하듯이 지난 20년간 바람직한 국가발전모델로 세계를 지배한 것은 신(新)자유주의적인 ‘워싱턴 컨센서스(Washington consensus)’였다. 1989년에 존 윌리엄슨이 정리한 ‘워싱턴 컨센서스’는 기본적으로 선진경제의 경험을 배경으로 워싱턴에 있는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IMF) 등의 국제기구들이 제시하는 국가발전모델이다. 그 주된 내용은 ① 거시(巨視)경제의 안정정책 ② 대외(對外)개방과 규제완화의 자유화 ③ 공(公)기업의 민영화(民營化)와 사유화(私有化)라는 3가지였다.
그런데 이 선진국의 경험을 일반화한 워싱턴 컨센서스가 2008년 미국발(發) 세계금융위기를 계기로 그 타당성에 대한 신뢰를 크게 잃게 되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는 “워싱턴 컨센서스는 죽었다”고까지 선언하고 있다. 이제 세계는 국가발전모델이 없는 시대로 들어가고 있다.
물론 이러한 공백을 메우는 대안적 발전모델을 만들려는 노력도 있었다. 2004년 바르셀로나에서 조지프 스티글리츠, 폴 크루그먼, 제프리 삭스, 댄 로드릭 등 세계최고 수준의 우수한 학자들이 모여 워싱턴 컨센서스 이후의 발전모델을 찾아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그들의 합의문을 보면 ① 역사와 문화와 제도의 중요성 ② 시장과 정부의 균형 ③ 소득분배와 환경에 대한 관심 ④ 단기국제자본에 대한 규제 등을 강조하는 선에서 끝났다. 별로 성공적이지 못했다.
이러한 발전모델의 공백을 중국이 메우겠다고 나서고 있다. 2004년에는 중국의 발전경험을 배경으로 쿠퍼 라모가 ‘베이징 컨센서스(Beijing consensus)’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내용이 ① 형평(衡平)과 평화를 중시하는 양질(良質)의 성장 ② 단일 해법(解法)보다 실험적 해결의 선호 ③ 이념적이면서도 실용적 접근이라는 대단히 애매모호하고 추상적인 주장에 그쳤다. 그리고 베이징의 발전경험은 기본적으로 ‘1당지배의 국가주의적 발전모델’이기 때문에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다른 많은 개도국에는 실효성 있는 대안이 될 수 없다.
공동체 자유주의에 기반한 ‘서울 컨센서스’
그래서 워싱턴 컨센서스에 대한 신뢰의 추락을 배경으로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앞으로 어떠한 새로운 발전모델과 발전패러다임에 의지하여 국가경제의 발전을 도모할 것인가에 대해 오늘날 세계는 고민하고 있고,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아직 확실한 정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나라 학자들이 모여 21세기 바람직한 국가발전모델의 답을 찾으려 노력하기 시작했고 이것이 바로 ‘서울 컨센서스’다.
2009년 여름부터 분야별로 수십 명의 학자가 한반도선진화재단에 모여 많은 토론과 격론을 통하여 ‘서울 컨센서스’를 만들어 오고 있다.
우선 대한민국의 산업화시대(1960~70년대)의 경험을 철저히 분석하여, 그 장점과 단점을 구별, 앞으로 선진화시대(2000년대 이후)에서도 계승·발전해야 할 부분과 폐기해야 할 부분을 구분했다. 그리고 산업화 시대 이후 민주화 시대(1980~90년대)의 각종 국민들의 욕구분출이라는 정책 환경의 변화를 감안하고, 그리고 21세기 초 세계화시대의 변화, 특히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의 국제환경의 변화 등을 감안하여, 새로운 초(超)세계화 시대의 선진화를 위한 국가발전모델로서의 ‘서울 컨센서스’- 대한민국을 위해서는 ‘선진화발전전략’이고 이웃 중진국들을 위해서는 ‘워싱턴 컨센서스’를 대체할 ‘신국가발전모델’로서의 ‘서울 컨센서스’를 만들고 있다.
첫째, 서울 컨센서스는 신자유주의적인 워싱턴 컨센서스와는 달리 그 철학적 기반을 ‘공동체자유주의’에 두고 있다. 공동체적 가치와 연대(連帶)를 소중히 하는 자유주의가 올바른 국가발전전략이라는 사상적 신념에 기초하고 있다. 따라서 시장·성장·효율에 대한 맹목적 신뢰가 아니라 ① 시장과 정부와 시민사회와의 조화 ② 경제적·물질적 가치와 정신적·문화적 가치의 균형 ③ 개인의 창의와 공동체 가치의 조화를 목표로 한다.
둘째, 서울 컨센서스는 우리나라의 좌(左)와 우(右), 합리적 보수와 합리적 진보의 차이를 아우르고 뛰어넘는 ‘선진화 전략’에 그 이론적 기반을 두고 있다.과거 박정희(朴正熙) 식의 산업화발전모델이 성장지상과 수출지향 그리고 정부주도였다면, 오늘날 21세기 초세계화시대 선진화를 지향하는 선진화발전모델로서의 서울 컨센서스는 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조화 ② 성장-분배-환경의 공생적(共生的) 성장과 지역 간 발전균형 ③ 도덕과 정신문화의 개조 ④ 역사경험과 구체적 현장변화 등을 중시한다.
‘창조적 글로벌 스탠더드의 시대’를 열자
이러한 방향으로 구상하고 있는 ‘서울 컨센서스’가 앞으로 안으로는 대한민국의 선진국 도약과 국민통합으로 가는 길이 되기를 희망한다. 동시에 밖으로는 신자유주의적 ‘워싱턴 컨센서스’ 이후 지적(知的) 혼란 속에 있는 세계에, 특히 많은 개도국에, 바람직한 새로운 대안적(代案的) 국가발전모델이 되기를 희망한다. 이와 더불어 ‘서울 컨센서스’를 만드는 이러한 노력이 바로, 다른 많은 영역에서도 - 예컨대 교육·과학·문화 등 - 앞으로 우리가 ‘창조적 글로벌 스탠더드’의 시대를 어떻게 열어가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선례(先例)가 되리라 생각한다.
이제 우리 대한민국도 지난 60여 년간의 선진국으로부터 일방적으로 배우고 모방만 하는 국가수신(國家受信)의 시대를 끝내야 한다. 2010년부터는 우리는 대한민국의 과거와 미래가 세계이웃나라들에 큰 희망이 되는 새로운 국가발신(國家發信)의 시대, ‘세계공헌의 시대’로 들어가야 한다. 그것이 21세기 ‘창조적 글로벌 스탠더드의 시대’를 여는 길이 되고, 동시에 21세기 대한민국의 국가목표인 선진화와 통일, 통일된 부민덕국(富民德國)을 앞당기는 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