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8서울올림픽, 2002韓日월드컵이 국가 발전의 일등공신
⊙ 평창이 세 번째 도전에서 성공하면 우리는 하계·동계 올림픽과 월드컵을 모두 개최한 그랜드슬램
국가 반열에 오를 것
愼鏞碩
⊙ 1941년 인천 출생.
⊙ 서울대 농대, 서울대 신문대학원 졸업.
⊙ 조선일보 파리 특파원·국제부장·사회부장·논설위원, 관훈클럽 총무 역임.
⊙ 세계사격대회, 88서울올림픽, FIFA 월드컵 및 인천 아시안게임 유치활동.
⊙ 현 2014 인천 아시안게임 대외협력 위원장.
⊙ 평창이 세 번째 도전에서 성공하면 우리는 하계·동계 올림픽과 월드컵을 모두 개최한 그랜드슬램
국가 반열에 오를 것
愼鏞碩
⊙ 1941년 인천 출생.
⊙ 서울대 농대, 서울대 신문대학원 졸업.
⊙ 조선일보 파리 특파원·국제부장·사회부장·논설위원, 관훈클럽 총무 역임.
⊙ 세계사격대회, 88서울올림픽, FIFA 월드컵 및 인천 아시안게임 유치활동.
⊙ 현 2014 인천 아시안게임 대외협력 위원장.
- 2002 한일월드컵은 88 서울올림픽과 함께 국가 발전의 일등공신이었다.
손기정 선수의 마라톤 우승과 일장기 말소사건은 식민치하에서 신음하던 우리 민족에게 기쁨과 함께 자신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손 선수의 마라톤 우승 이후 전국 방방곡곡에서 마라톤 열기가 달아올랐다.
손기정 선수의 우승은 많은 마라토너를 탄생시켰다. 손 선수의 정신적 제자였던 이들은 광복 직후 미국 보스턴 마라톤대회를 석권함으로써 마라톤 강국의 위상을 전 세계에 과시했다. 1947년(제51회 보스턴 마라톤) 서윤복 선수가 세계신기록으로 우승하고, 1950년(제54회 보스턴마라톤)에는 함기용, 송길윤, 최윤칠 선수가 1~3위를 휩쓸어 기염을 토했다.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핀란드의 헬싱키에서 열린 올림픽에서도 우리나라는 힘들게 선수단을 보냈고 온 국민이 마라톤 종목에 기대를 걸었다. 당시 초등학교 4학년생이던 필자는 어른들 틈에서 음질이 나쁜 라디오 중계방송을 통해 최윤칠 선수가 4위로 골인했다는 소식을 듣고 아쉬워하던 기억이 새롭다.
戰後(전후)복구사업과 경제개발이 한창이던 1950년대부터 70년대까지 한국 스포츠는 국제무대에서 침체한 모습이었다. 농구, 탁구, 축구, 권투, 레슬링, 역도, 유도 같은 종목에서 간혹 메달을 따내기는 했지만,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처음으로 딴 것은 1976년 몬트리올 대회(레슬링 양정모)였다.
1981년 독일의 바덴바덴에서 개최된 IOC총회에서 일본의 나고야와 대결해 52 대 27이란 압도적 표차로 1988년 올림픽을 서울로 유치한 것은 우리 현대사에 일대 사건이었다. 당시 올림픽 유치단의 일원으로 바덴바덴에서 유치전략과 득표 활동에 깊이 관계했던 필자는 지금도 88서울올림픽의 유치와 성공적 개최가 우리나라의 國運(국운)에 결정적 요인이 됐다고 확신하고 있다.
국가브랜드 가치 상승
88서울올림픽 2년 전에 열렸던 아시안게임은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개최된 멀티·스포츠 게임이었다. 동시에 2년 후 개최될 올림픽 운영을 위한 경험을 쌓고, 중국을 포함한 동유럽의 서울올림픽 참가의 길을 열게 된 중요한 계기였다. 서울올림픽을 전후하여 대한민국은 舊(구)소련을 위시한 동구 諸國(제국)과의 외교관계를 수립했고 소련의 개혁개방과 동유럽의 자유화에도 결정적인 기여를 하게 된다.
2002년 일본과 공동으로 주최했던 FIFA 월드컵대회 역시 축구라는 스포츠를 통해서 전 국민이 하나가 되는 거대한 축제를 연출했다. 월드컵은 88올림픽과 함께 대한민국의 국가브랜드가치를 올려 세계의 중심국가로 진입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를 광고비로 환산하면 수백억 달러에 이를 것이란 연구결과도 나왔다.
돌이켜보면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2002년 월드컵대회에 이르기까지 66년 동안 대한민국은 스포츠를 통해 민족의 자존심을 되찾고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이룩하면서 세계의 중심국가로 우뚝 서게 됐다. 스포츠야말로 대한민국의 현대사에서 국가 발전에 공헌한 일등공신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국제스포츠기구에도 한국인들의 진출이 활발해져 IOC(국제올림픽위원회)에는 한때 3명의 한국인이 IOC 위원으로 활동했다. 올림픽대회에서도 계속 10위권을 지키는 저력을 과시했다. FIFA 월드컵대회에도 1954년 대회 이후 32년 동안 한 차례도 본선 진출을 못하다가 1986년부터는 연속으로 7번째 출전(브라질 18회, 독일 14회, 이탈리아 12회, 아르헨티나 9회, 스페인 8회)하는, 세계에서 몇 안되는 나라로 꼽히게 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 우리나라 스포츠는 안팎의 도전에 직면했다. 입시 위주의 교육이 체육을 황폐화시켜 청소년 스포츠는 심각할 정도로 위축됐다. 한때 우리는 3명의 IOC 위원을 보유하고 있었으나 이제는 8년 임기의 문대성씨 한 명뿐이다.
한국 스포츠의 총본산인 대한체육회장의 잦은 교체와 정치권력의 개입 또한 반성해야 할 대목이다. 회장 교체 때마다 전임 회장이 獄苦(옥고)를 치르는가 하면 정치권에서의 지나친 영향력 행사가 한국 체육계의 대외 이미지를 흐리고 있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에 두 차례나 실패하고 세 번째 도전장을 내민 것도 깊이 생각해야 할 대목이다. 평창이 세 번째 도전에서 성공하면 우리나라는 하계 및 동계 올림픽과 FIFA 월드컵을 모두 개최한 그랜드슬램 국가 반열에 오르게 된다. 미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등 5개국만이 그랜드슬램 국가에 포함되어 있어 내년 남아공 더반에서 평창이 三修(삼수)에 성공하면 6번째의 영예로운 나라가 되는 것이다.
엘리트 스포츠 정책에서 탈피해야
그러나 그랜드슬램 국가가 된다고 해서 자동으로 세계적인 스포츠 강국이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는 올림픽을 위시하여 세계적인 종합스포츠대회에서 메달을 많이 따기 위한 집중적인 전략을 추구해 왔다. 한국의 메달박스는 과거 권투, 레슬링, 유도 등에서 양궁, 배드민턴, 역도, 사격 등으로 변해 왔지만, 스포츠의 기본인 육상과 수영에서는 아직도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종목편중은 동계스포츠도 마찬가지다. 메달 획득 위주의 엘리트 스포츠 정책을 기초 종목의 경기력 강화로 전환하는 것이 당면과제다.
대한민국처럼 스포츠를 통해서 식민지 시절 민족의 자존심을 되찾고 경제 개방과 민주화를 성취하면서 세계 일류국가로 진입하게 된 나라도 드물다. 한국이 앞으로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 고지를 점령하기 위한 과정에서 스포츠가 큰 역할을 해야 한다. 또 스포츠 선진화를 위해서는 우리나라의 스포츠 정책과 방향이 제대로 정립되어야 한다.
첫째, 우리나라 체육의 사령탑인 대한체육회(KOC)를 엘리트 스포츠만을 관장하는 조직이 아니라 국민체육 전반을 다루는 명실상부한 스포츠 총본산으로 확대 발전시켜야 한다. 지난 몇 년 동안 필자가 아시안게임 유치와 준비과정에서 만난 세계 각국의 스포츠 지도사들은 한국의 스포츠 수준은 높은데 KOC의 지도부는 왜 자주 바뀌며, 체육인들의 역할이 미미하냐는 질문을 자주 했었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문화체육관광부)와 정치권의 간섭과 영향력을 최소화하면서 체육인 출신들을 중심으로 한 대한체육회 개편이 이뤄져야 한다.
두 번째로는 기초스포츠의 발전이 적극 모색돼야 한다. 2년 앞으로 다가온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과연 우리 선수가 메달을 몇 개나 딸 수 있을까? 현재로서는 비관적인 전망이 나오는 것이 우리 스포츠의 현주소다.
우리의 체육정책은 대형 국제대회에서 하나라도 많은 메달을 획득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왔다. 때문에 육상, 수영, 체조 같은 기초 스포츠는 비인기 스포츠로 추락하고 말았다. 이제부터라도 기초 스포츠 진흥을 위해 대한체육회와 해당 경기단체들은 머리를 맞대고 꿈나무 발굴과 육성에 나서야 하고, 필요한 예산을 확보해야 한다.
학교 체육과 국민 체육진흥도 국민 소득 4만 달러 시대를 지향하는 우리의 당면과제다. 치열한 입시경쟁에 학교 체육이 위축되고 국민 체육이 프로 스포츠 관전과 일부 계층의 특수 스포츠 애호로 둔갑하는 현실을 직시하고 효과적이고 적절한 대안이 하루빨리 수반돼야 한다.
셋째는 스포츠 선진국다운 國格(국격)을 스스로 만들어나가야 한다.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은 유치단계에서부터 현재까지 중앙정부로부터 제대로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2008년 11월 12일 ‘2010년 제16회 아시안게임’이 열리는 중국의 광저우(廣州)에서 마련한 1년 전 카운트다운 행사에 참석해서 광저우게임 조직위원회와 베이징 중앙정부 지도자들의 깊은 속내를 듣고 감명을 받았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이 성공했다고 해서 2년 후에 열리는 2010년 아시안게임을 소홀히 한다면 40억 아시아 사람들이 중국이라는 나라를 어떻게 생각하겠느냐는 것이 그들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삼수에 도전하는 평창의 2018년 동계 올림픽대회 유치작전도 국제적 안목과 전문성을 두루 겸비한 인사들을 중심으로 진지하게 펼쳐 이번에는 기필코 유치를 해야 한다.
스포츠 정책과 방향을 개선하여 스포츠의 선진화를 통해 4만 달러 시대를 열어야 한다. 메달 따기 위주의 스포츠정책보다는 많은 국민이 스포츠를 즐기고, 모든 스포츠 종목에서 고루 메달을 따면서 올림픽 지상주의사고에서 벗어날 때 1인당 4만 달러 소득시대가 열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