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별책부록
  1. 2010년 1월호

4만 달러 시대의 패션산업

우리의 모든 삶이 디자인을 입는다

著者無   

  • 기사목록
  • 프린트
⊙ 세계인에게 우리 문화를 입히려면 전통을 과감히 깨뜨리고 해체하는 노력 필요
⊙ 우유의 단백질, 코코넛 껍데기 등을 활용한 친환경 패션에도 관심 가져야 할 때

이상봉 디자이너
⊙ 서울 출생.
⊙ 서울예술대 방송연예과 졸업.
⊙ 일본 오사카 세계 월드패션쇼, 광주 비엔날레 국제미술 의상전, 파리 프레타포르테 컬렉션 참가,
    중앙디자이너그룹 회장, 한국패션협회 이사 역임. 現 서울시 홍보대사.
선진국이 되려면 패션 강국이 되어야 한다. 사진은 2009년 10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파리컬렉션 2010년 SS(봄ㆍ여름)쇼에 출품한 이상봉 디자이너의 작품.
  패션산업의 발전 여부는 그 나라가 선진국인지 아닌지를 가름하는 척도다. 쉬운 예로, 이탈리아, 프랑스, 미국, 영국 등 패션 强國(강국)으로 꼽히는 나라들은 모두 선진국 대열에 있다. 우리나라 패션산업은 급속한 경제발전과 맥을 같이하며 빠르게 성장해 지금은 세계시장에서 당당히 이름을 알리고 있다. 패션 소비국으로서도 중요한 비중을 차지해 우리나라 시장에서 세계적인 브랜드들을 대부분 만날 수 있고, 한국, 중국, 일본 등 3국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 시장은 美洲(미주) 시장보다 규모가 크다. 불과 30~40년 전까지만 해도 섬유 수출로 먹고살던 생산 기반 국가에서 소비국으로 그 위치가 바뀐 것이다. 게다가 세계적인 브랜드들과의 경쟁도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으니 참으로 눈부신 변화다.
 
  패션산업의 역사가 일천한 우리가 전통적인 패션 강국들과 경쟁해 이길 수 있는 길은 지금으로서는 단 한 가지, 바로 디자인이다. 그들에게는 없는 우리의 고유한 멋과 문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디자인이라면 승부를 걸어볼 만하다. 다만 그것은 단시간에 가능한 작업이 아니기 때문에 지금부터 준비해 단계적으로 세계 시장을 공략해 나가야 한다.
 
 
  우리 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자긍심이 먼저
 
  지금 우리는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가 실시간으로 소통하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파리에서 쇼를 하면 1~2시간 뒤에 한국의 지인들로부터 축하 전화가 걸려 온다. 국가 간의 물리적 거리는 큰 의미가 없어졌고, 세계는 빠른 속도로 하나가 되고 있다. 그러니 글로벌화라는 것은 결국 전 세계 문화가 국경 없이 자유롭게 소통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소통이란 일방통행이 아니다. 우리 것을 잃어버리며 남의 것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고유한 문화를 지키는 동시에 다른 문화도 존중하는 자세다. 디자인에도 그것이 반영되어야 한다.
 
  필자는 한글 디자인의 작품을 발표할 때, 그 나라 언어와 병기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중국에 가면 중국어를, 러시아에서는 러시아어를 함께 넣는다. 그래야 모두 그 내용을 이해하고, 진심으로 멋있다고 느낀다. 한국적인 것의 세계화를 논하기 전에, 우리 것의 존재를 알리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보다도, 우리 문화에 대한 자긍심과 자부심을 찾는 일이 먼저다.
 
  필자가 처음 프랑스에서 한글 티셔츠를 선보일 때만 해도 많은 사람이 의아해했다. 오히려 우리 글이 아닌 영문으로 된 티셔츠에는 익숙해져 있으면서 정작 한글은 낯설었던 것이다. 그것이 과연 상품화 가능성이 있는지 반신반의하고 있을 때, 해외 전시를 부추긴 것은 오히려 외국 바이어들이었다. 미국, 유럽, 러시아, 중동 등 다양한 국적의 바이어들이 한결같이 좋은 반응을 보이자 자신감이 생겼다. 우리의 멋과 문화를 고스란히 담고 있으면서 세계적인 보편성을 갖는 디자인이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는 확신도 그때 얻었다.
 
 
  전통 계승한 디자인의 산업화가 관건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전통 문화는 계승, 발전시켜야 하지만 전통과 산업은 분명히 다르다는 점이다. 2003년에 필자는 샤머니즘이라는 가장 토속적인 테마를 들고 파리컬렉션을 준비한 적이 있다. 컬렉션 당일 프랑스 문화의 심장인 파리 루브르 박물관 지하에 마련된 쇼장에는 한국에서 공수해 간 솟대들이 세워졌다. 실제 무속인을 데리고 가 진행한 쇼는 언론들로부터 “매우 신선하다”는 반응을 얻었지만, 상업적인 성과로 이어지지는 못 했다. 문화는 강요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먼저 관심을 갖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는 계기였다.
 
  외국인들이 우리 문화를 입게 만들려면 어떤 의미에서는 전통을 과감히 깨뜨리고 해체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들이 낯선 문화를 접하고 느끼는 단순한 호기심이나 신기함만으로 승부를 걸어서는 안된다.
 
  1997년도에 ‘IMF 사태’가 발생하기 직전 파리가 아닌 런던에 먼저 진출하려던 무렵, 당시 인터뷰에서 필자는 한국적인 것으로 승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이미 밝힌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도 실루엣은 반드시 서양적이어야 한다고 말했었다.
 
  가령 유럽에 소개된 지 100년이 넘는 기모노는 외국에도 많이 알려졌지만 그것을 외출복으로 입지 않는다. 이유는 일상적인 생활을 하기에는 불편하기 때문이다. 한복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입었을 때 거부감이 없고 활동하기 편하면서 이미지는 동양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필자는 해외시장을 목표로 할 때는 꼭 한국적인 모티브의 디자인을 선보였다. 그들과 경쟁해서 더 잘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우리 문화라는 생각에서였다. 사라져 가는 우리 문화를 어떻게 되살리고, 산업화할 것인가. 이것이 지금 우리 패션산업에 던져진 가장 중요한 화두다.
 
  디자인의 경쟁력은 의류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모든 것이 실은 넓은 의미의 패션이기 때문이다. 구두, 가방, 의류뿐만 아니라, 컴퓨터, 자동차, 건물까지 디자인이 안 들어가는 곳이 없다. 국민소득이 높아질수록 이런 디자인의 중요성은 점점 더 커진다. 이제까지는 기술이 우리의 삶을 이끌어 왔다면 앞으로는 디자인이 우리 삶을 지배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이것을 ‘라이프 스타일 디자인’이라고 부른다. 1993년에는 ‘이상봉 아트 컬렉션’이란 이름으로 스포츠웨어에서부터 가구, 그릇까지 망라하는 생활 디자인 제품들을 제작해 판매하기도 했다. 당시는 시기상조였던 탓에 2년 만에 사업을 접었다. 하지만 지금은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이 대부분 이런 작업에 참여하고 있을 만큼 일반화되었다. 필자 역시 그릇, 휴대폰, 아파트, 침구류 등 여러 가지 제품을 디자인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것을 두고 어떤 사람들은 ‘외유’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지만 디자인에서 영역을 나누는 것은 무의미하다. 어떤 영역이든지 디자인을 통해 감성을 자극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것이 궁극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런 감성들을 ‘우리 것’으로 담아 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패션산업 성장 좌우할 ‘친환경’
 
  미래 패션산업에서 또 하나 주목해야 할 현안은 바로 ‘환경’이다. 환경문제가 전 지구적인 문제로 대두된 지금은 패션산업도 예외가 아니다. 외국에서는 이미 제품 생산 과정에서 배출되는 탄소량을 라벨에 표기해 소비자가 볼 수 있도록 하는 ‘탄소 라벨 마케팅’이나 섬유 원산지부터 제품 가봉과 유통까지의 과정을 한눈에 들여다볼 수 있는 이력추진제도 등이 실시되고 있다고 한다.
 
  한국패션센터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도 2010년 S/S 시즌에는 우유의 천연단백질에서 추출한 신소재 섬유 속옷이나 코코넛 껍데기를 이용해 냄새 흡수력을 높인 의류, 100% 재생 가능한 식물성 산업 섬유 등이 선보일 예정이라고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자원낭비와 쓰레기 양산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는 ‘패스트 패션(유행에 따라 재빨리 만들어 내놓는 옷)’은 전 세계적인 추세이고, 그 비중도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영국에서 나온 한 조사결과를 보면 영국인 한 명이 한 해 입고 버리는 옷의 무게가 자그마치 30㎏에 달한다고 한다. 비교적 검소한 생활을 하는 유럽 국가에서 나온 통계치가 이 정도라면 우리나라는 이보다 훨씬 더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대다수의 패션 디자이너에게 환경문제는 덮어두고 싶은 민감한 사안이다. 하지만 최근 재활용이나 친환경 소재와 같은 에코패션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이다.
 
  디자인, 환경과 함께 전문인력의 양성도 시급한 과제다. 글로벌화로 어느 곳에서든 정보 공유가 가능하고, 동일한 커리큘럼으로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된 지금은 개인의 역량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소재, 부자재 등 생산 전문인력과 시설을 어떻게 확보하고 지켜나갈 것인가도 고민해야 한다. 값싼 노동력을 찾아 중국, 동남아 등지로 옮겨가 고가의 하이패션 정도로만 명맥을 잇고 있는 국내 제조 기반시설이 완전히 무너지기 전에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국내 高(고)임금을 감당하기 어렵다면, 아예 외국인 근로자들을 우리나라로 불러들이는 것도 방법 중 하나다.★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