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의 농경지 면적은 20대 경제대국 중 꼴찌지만 농업 생산액은 네덜란드의 두 배이며 캐나다,
호주, 영국보다 많고 독일과 비슷
⊙ 한국의 농경지 1ha(1만㎡)당 생산액 1만4600달러로 1만4700달러인 네덜란드에 이어 2위
李泰鎬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
⊙ 1955년 서울 출생.
⊙ 경기고, 서울대 농경제학과 졸업. 미국 코넬대 대학원 경제학 석사, 아이오와 주립대 농업경제학
박사.
⊙ 경실련 농업개혁위원장, 농림부 농가소득안정심의위원,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학부장 역임.
⊙ 現 한국농업경제학회 부회장.
한국은 땅이 좁고 인구가 많아 땅을 이용하는 농업이 발전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농업은 훌륭한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세계 20대 경제대국의 농업을 비교해 보면 한국농업은 14위 정도의 농업생산액을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GDP 세계 12위 국가의 수준에 걸맞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표 참조). 호주, 영국보다 많고 독일과 비슷
⊙ 한국의 농경지 1ha(1만㎡)당 생산액 1만4600달러로 1만4700달러인 네덜란드에 이어 2위
李泰鎬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
⊙ 1955년 서울 출생.
⊙ 경기고, 서울대 농경제학과 졸업. 미국 코넬대 대학원 경제학 석사, 아이오와 주립대 농업경제학
박사.
⊙ 경실련 농업개혁위원장, 농림부 농가소득안정심의위원,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학부장 역임.
⊙ 現 한국농업경제학회 부회장.

한국의 농경지 면적은 20대 경제대국 중 꼴찌지만 농업 생산액은 네덜란드의 두 배이며 캐나다, 호주, 영국보다 많고 독일과 비슷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한국의 농경지 1ha(1만㎡)당 생산액이 무려 1만4600달러로 1만4700달러인 네덜란드에 이어 2위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현재의 한국 농업에 만족하는 국민은 많지 않다. 여전히 소비자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농산물을 생산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농업인의 농업과 농촌에 대한 만족도가 높지 않다.
한국의 농지 생산성이 이렇게 높으므로 독자들은 한국이 원예, 축산과 같은 면적당 생산성이 높은 작물을 주로 재배하는 나라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한국 농민의 대부분은 쌀농사를 짓고 있다. 한국의 농지 생산성이 높은 이유는 우리 농업인이 근면하고 창의성이 있기 때문이지만, 무엇보다 정부 정책에 의해 쌀값이 높게 유지되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좁은 땅에서 국민을 부양할 식량을 생산하기 위해 거국적으로 식량농업, 특히 쌀 농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경제가 성장하고 무역의 세계화가 이루어져 다양한 식품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게 된 지금, 식량으로서 쌀의 중요성은 현저히 감소했다. 특히 쌀 소비의 급격한 감소는 쌀 농업에 편중되어 있는 우리 농업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한다.
현재 우리 쌀 농가의 수는 65만 호에 이른다. 반면 채소 농가는 23만 호, 과수 농가는 15만 호, 밭작물 농가는 13만 호, 축산 농가는 8만 호, 특용작물은 3만 호, 화훼 농가는 1만 호 정도다. 2008년 통계에 의하면 소득 순위가 중간인 가구의 연간 소득은 3000만원 정도다.
농가의 연간 소득이 3000만원 정도 되려면 적어도 연간 판매액이 5000만원 정도는 되어야 하는데, 쌀농사로 판매액을 5000만원 이상 올리려면 5ha(5만㎡) 이상은 농사를 지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60%의 쌀 농가가 1ha 미만의 논을 경작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쌀 농업은 거의 100% 기계화되어 있어 한 농가가 10ha도 충분히 경작할 수 있다. 이것은 우리 논 면적이 90만ha 정도이니 능력 있는 쌀 농가가 9만 호만 있으면 쌀농사를 모두 할 수 있다는 말이다. 9만 호가 지어도 되는 농사를 무려 65만 호가 짓고 있으니 토지 생산성은 최고 수준일지 모르지만 노동 생산성이 낮고, 자연히 농업인의 살림살이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쌀’이 아닌 다른 분야로 눈 돌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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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9만 호가 지어도 되는 농사를 무려 65만 호가 하고 있어 토지 생산성은 최고 수준이지만 노동 생산성이 낮다. 자연히 농업인의 살림살이가 어려워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
2005년 농업 총조사 결과에 의하면 연간 판매액이 5000만원 이상 되는 농가의 비중은 축산이 11%, 화훼가 8%, 특용작물이 3%, 채소와 과수가 각각 1%, 쌀 농가는 0.3%에 그친다. 특히 쌀의 경우 판매액이 없는 농가가 10%가 넘고, 약 75%(50만 호) 농가의 판매액이 1000만원이 안된다.
쌀에 주력하는 우리 농가 인구의 1인당 연간 생산액은 약 7800달러로 20대 경제대국 중 14위이다. 쌀의 자급이 달성된 이상 쌀이 아닌 다른 작물에 눈을 돌려야 한다.
네덜란드와 벨기에의 예를 보자. 이들 국가의 농업은 역경의 산물이다. 농지는 비좁고 토양은 척박했다. <로빈슨 크루소>의 저자인 다니엘 디포는 이곳에서 생산되는 곡물이 “닭들을 먹이는 데도 모자란다”고 빈정댔다. 좁은 농지에서 집약적인 농업으로 생산성을 높이려는 이들 국가의 노력과, 일찍이 무역으로 다져진 상업제도는 상업농을 발생시켰다.
16세기 후반에 벌써 이들의 농업은 유럽에서 가장 생산성이 높은 것으로 손꼽혔다. 가축을 잘 먹여 암소는 많은 젖을 생산하게 됐고, 원예농업이 발달했으며, 도시의 인분을 비료로 사용했다. 농업의 고품질화와 시장화는 자연스럽게 진행됐고 노동 생산성은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17세기 후반에는 농민들이 “농업 노동자의 임금이 하도 높아서 농장주보다 잘산다”고 투덜댈 지경에 이르렀다. 현재 네덜란드와 벨기에 국민의 자본주의 정신은 농업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보면 농업 선진국으로 가기 위한 방법은 확실하다. 이미 상당히 높은 토지 생산성을 더 높이는 것은 쉽지 않으므로 노동 생산성을 높이는 농업을 지향해야 한다. 노동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1인당 생산면적을 넓혀 주거나, 같은 면적에서 더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쌀처럼 면적당 생산을 높이기 어려운 소위 토지 이용형 작물은 논의 임대차를 활성화시켜 농가당 경작 면적을 늘려 주어야 한다. 축산, 화훼, 채소, 과실 등과 같이 땅이 많이 필요 없는 작물은 땅값이 비싼 우리나라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품목이다. 품질을 세계 수준으로 고급화하여 더 비싼 값을 받고 팔 수 있도록 하고 좁은 국내시장의 한계를 넘어 수출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축산, 화훼, 채소, 과실 등의 품질을 높일 수 있는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는 것은 오랜 시간과 많은 투자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농가 경영주의 나이가 60세 이상인 농가가 60%인 실정에서 새로운 농법을 도입하도록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농가당 논 면적을 넓히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쌀 농가의 수를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젊은 농촌’ 프로젝트
65만 쌀 농가를 4분의 1로 줄인다고 하면 약 50만 호의 농가가 농업을 그만두어야 한다. 일대 혼란이 일어날 것이다. 이것은 농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사회 전체가 같이 협력해야 한다. 쌀 농가의 수를 줄이기 위해서는 판매액 1000만원이 안되는 소위 ‘한계 농가’부터 쌀농사를 그만두도록 해야 한다. 이들은 농촌에 살지만 대부분의 소득은 농업 이외의 부문에서 얻고 있는 경우가 많다. 어차피 농업 소득이 얼마 되지 않으므로 웬만한 농업정책에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농사를 짓는 이유도 자가 식량 조달부터 취미 활동까지 다양하다. 이들 영세농은 또 高齡農(고령농)인 경우가 많다. 영세 고령농을 어찌할 것인가.
결론적으로 우리가 선진 농업국으로 가기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는 새로운 기술 도입을 가로막는 고령화 문제와(물론 고령 농민 중에도 젊은이보다 더 의욕적으로 훌륭한 농산물을 생산하는 분이 많이 있다) 규모화를 가로막는 영세농 문제로 압축된다. 이들 중 더욱 중요한 것은 고령화된 농업을 젊게 하는 것이다. 나이가 젊은 농업인이라야 의욕적으로 새로운 농법도 도입하고 규모화도 추진할 수 있다. 젊은이가 농사를 짓게 하려면 물질적인 동기부여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농업이 도전해 볼 만한 산업이라는 것을 알려야 한다.
사실 IT 농업, BT 농업, 유기농업, 농산물 유통 등 우리 농업에는 젊은이들이 도전해 볼 만한 기술집약적인 분야가 많이 있다. 이와 같은 분야에 젊은이들이 참여하도록 하려면 오랜 시간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성급한 지원 정책은 보조금을 바라고 농사를 짓는, 껍데기만 젊은 농업인을 양산하기 쉽다. 피카소의 말처럼 ‘젊어지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