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금의 흐름을 ‘성장’과 ‘분배’의 논리가 아니라, ‘비용’과 ‘투자’의 개념으로 바로잡아야
⊙ 농업은 선진국으로 가는 걸림돌이 아니라 양보할 수 없는 생명선
廉東浩 일본 호세이대 비교경제연구소 겸임연구원
⊙ 1966년 광주 출생.
⊙ 경희대 졸업. 일본 호세이대 대학원 경제학 박사.
⊙ 농업은 선진국으로 가는 걸림돌이 아니라 양보할 수 없는 생명선
廉東浩 일본 호세이대 비교경제연구소 겸임연구원
⊙ 1966년 광주 출생.
⊙ 경희대 졸업. 일본 호세이대 대학원 경제학 박사.
- 일본 경제의 핵인 도쿄 중심가.
2009년 11월 24일, 2001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노요리 료지(野依良治) 일본 이화학연구소 이사장이 일본 민주당 정권을 향해 大怒(대로)했다. 국가사업을 전면 재검토하고 있는 정부 행정쇄신위원회가 과학 분야 사업의 폐지 및 예산 삭감을 잇달아 결정한 데 따른 원로 과학자의 꾸지람이었다. 과학 예산을 ‘비용’으로 생각하는 정치가들에 대한 일갈을 일본 언론은 대서특필했다. 일본 전체가 한순간 멈춰서는 듯했다.
국가의 미래와 성장에 ‘버려야 할 것’과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선별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무엇이 비용이고, 무엇이 투자인지, 4만 달러 시대로 가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취해야 할 것인지, 우리의 미래는 이 고민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GDP 4만 달러를 목전(3만8559달러)에 둔 일본이 심한 독감을 앓고 있다. 최첨단 기술을 보유하고 세계 최대 금융자산을 보유한 채권국이 앓고 있는 독감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주고 있다. 전문가들은 일본의 독감 요인을 “政(정)·財(재)·官(관)의 유착과 이들을 지배하고 있는 낡은 성장방정식”이라고 지적한다. 지금까지 일본을 경제대국으로 이끈 성장방정식은 ‘첨단기술=경쟁력=성장=고용창출’이었다. 현재 이 성장방정식은 상대적 빈곤율 15.7%와 低(저)출산이라는 사회적 질병을 낳는 한편,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양극화를 유발하며, 더 이상 고용을 창출하지 못하는 병든 방정식이 되어 버렸다.
GDP 2만 달러를 눈앞에 둔 우리는 어떤가? 상대적 빈곤율은 2000년 10.5%에서 2008년 14.3%로 8년간 3.8%나 증가했다. 취업 애로층은 300만명에 달하며, 단기 취업자가 늘어나는 형국이다. 산업 현장의 비정규직은 30%를 넘어섰다. 바로 新(신)개념의 빈곤층이 탄생한 것이다. 출산율 또한 1.22명(선진국 평균 1.64명)으로 전 세계 186개국 중 꼴찌에서 두 번째다.
신개념의 빈곤층과 低(저)출산율은 미래 4만 달러로 가는 길에 반드시 털어내야 할 최대 걸림돌이자 커다란 사회적 비용이다.
그럼 우리는 무엇을 취해야 할 것인가? ‘첨단기술=경쟁력’의 시대는 20세기의 유물이라고 하지만, 첨단기술은 우리에게 있어서 목마른 여름날의 우물물이다. 여기에 ‘첨단기술(하이테크) + 감성(하이 콘셉트)의 융합=세계시장 확보=성장’이라는 방정식이 필요하다.
반도체, 액정TV 등의 분야에서 일본을 누르고 세계 정상에 올랐다고는 하나, 21세기형 산업구조에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소재 산업과 에너지 산업 등 극복해야 할 장벽은 높다. 자원과 재원이 부족한 우리에게는 정부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고용창출에 세금 써야
세금을 어떻게 쓸 것인가는 지속적인 성장에서 가장 큰 정부의 역할이다. 경제정책도 바꿔 말하면 세금의 쓰임새를 의미한다. ‘성장’과 ‘분배’의 논리가 아니라, ‘비용’과 ‘투자’의 개념으로 바로잡아야 한다.
新(신)빈곤층과 양극화라는 사회적 비용을 해소하고 내수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고용확보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바로 여기에 세금을 써야 한다.
먼저 일자리 창출과 세금의 관계를 보도록 하자. 예를 들어 ‘임시 투자세액공제’는 기업이 설비투자(10억원)를 늘리면 세금(1억원)을 탕감해 주는 제도다. 10여 년 전만 해도 대기업이 10억원을 투자하면 50여 명의 고용이 창출됐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세계화된 우리 대기업들은 국내투자보다는 인건비 등이 싼 해외투자를 선호하고 탕감된 세금으로 자동화를 추진한다. 50여 명에 달하던 일자리는 이제 10명의 밥그릇을 확보하는 것도 버겁다. 그만큼 세금의 고용창출 효과가 약해졌다는 것이다.
이렇게 세계화된 기업은 한국기업인지 외국기업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다. 한 예로 STX(조선 해운업)그룹을 보자. 이 그룹의 사원 4만7000여 명 가운데 한국인은 4000명 수준으로 8.5% 남짓에 불과하다. 단순 비율로 보면 1억원의 세금이 투여되었을 때 한국인에게 돌아가는 일자리 혜택은 0.7명에 불과하다는 계산이다.
이제는 한국인을 고용하는 기업을 위해 세금을 쓸 수 있도록 경제정책을 전면 수정해야 한다. 우리 중소기업 경영자들은 4대 보험 부담만 해결되어도 정규직 고용을 늘릴 수 있다고 호소한다. 한국인 신규 고용 한 사람당 한 달에 100만원씩만 지원한다면 세금 1억원은 9, 10명의 고용을 창출할 수 있다. 단순계산으로 대기업 0.7명과는 극명한 차이다. 이들이 다시 국내에서 소비를 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내수 진작 효과도 대기업보다 훨씬 크다는 계산이다.
일본의 에너지 로드맵
경제성장에 물처럼 중요한 것은 에너지다. 일본은 1970년대 1, 2차 석유 쇼크를 거치면서 장기적인 에너지 확보정책을 수립해 왔다. 그 결과 배터리나 바이오매스 등 신에너지 분야에서 세계 정상에 섰다.
일본은 벌써, 2030년까지 기술개발 로드맵이 만들어져 있다. 태양광 발전 코스트는 46엔/kWh에서 2030년 7엔/kWh로 줄인다. 2040년쯤에는 양자 나노형 등 초고효율 태양전지를 개발하는 등 새로운 구조와 재료의 태양전지를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배터리 성능은 2020년에 현재의 3배로, 2030년에 7배로 늘리고, 배터리 비용은 2020년에 1/10배로 2030년에는 1/40으로 줄인다.
이대로라면 20세기 중동에 의존했던 에너지를 21세기에는 일본에 의존해야 할 형편이라는 자조도 나온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에너지 공급 측면에서 발전과 송전의 효율성을 향상시키고, 태양광, 이산화탄소 회수 및 저장, 선진화된 원자력발전으로 저탄소화를 추진해야 한다. 수송 분야에서는 고도도로교통시스템을 구축하고, 연료전지 및 전기자동차 개발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나아가 바이오매스에서 대체연료를 얻을 수 있는 산업에 세금을 집중적으로 투자해야 할 것이다.
일본이 이러한 로드맵을 세울 수 있는 것은 기초과학이 뒷받침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연구개발비 규모는 2007년 18조9438억 엔. 민간 주택투자(18조9675억 엔)와 공공투자(21조8534억 엔)에 필적한다.
민간 연구개발투자는 기초연구 8027억 엔, 응용연구 2조4965억 엔, 개발투자 9조4285억 엔이다. 이처럼 매년 줄고 있는 기초연구를 공적연구개발투자 기초 1조5523억 엔, 응용 1조2582억 엔, 개발 9339억 엔으로 보완하고 있는 형태다.
하지만 경쟁이 격화되면서 연구개발의 효력이 단기화되고, 기초과학에서 응용 및 개발로 연구비가 옮겨가면서 일본 기업의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다. 1980년대 이후 신사업 개척을 담당했던 기업 연구소의 연구 내용과 역할이 본업 지원형으로 바뀌면서 일본 제조업의 수익구조 악화가 정착되었다고 지적하는 전문가가 적지 않다. 우리에게 좋은 반면교사라 아니할 수 없다.
농업의 산업화
인구 4500만명의 그리 크지 않은 우리로서 세계시장 확보는 절대적인 과제다. 그래서 FTA가 지지를 받는 것이고, 이는 세계적인 흐름이자 비켜갈 수 없는 대세다. 여기에 커다란 걸림돌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 바로 농업이다. 그러나 식량의 70%를 해외에서 조달하는 우리로서는 농업은 걸림돌이 아니라 양보할 수 없는 우리의 생명선이라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일본이 모든 경제교섭에서 농업을 내놓지 않는 이유는 단지 농업종사자와의 이해관계 때문이 아니라 장래 일본의 생존권이 달려 있다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인구가 급증하고 있다. 유엔인구기금의 세계인구보고서(2009)에 따르면, 한 해 동안 세계인구는 7970만명 증가했다고 한다. 이 속도로 가면 2010년에는 70억명을 돌파한다. 식량의 안정된 공급을 유지하려면 곡물 생산량은 2배로 늘어나야 한다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저성장 성숙사회로 진입한 일본이 농업과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한 지방경제 활성화를 추진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농산물은 더 이상 수입하는 것이 아니라 수출하는 제품이라는 개념으로 전환하겠다는 의도가 그 배경에 깔려 있다.
일찍이 남극기지에까지 야채공장을 만든 일본은 기업형 농업으로 버섯을 콘크리트 건물 야채공장에서 연간 14모작을 해내고, 땅속에 최첨단 칩을 묻어 비닐하우스의 온도 등을 자동으로 조절하는 농장을 만들었다. 바로 첨단기술과 기업의 자금력과 경영 노하우가 어우러져 만들어진 결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