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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년 8월호

朴顯淳 인터바스 대표

제품이 아니라 ‘한국의 디자인’을 판다

金南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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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욕실용품시장 선두주자
2003년 중국 진출, 직영점 3곳과 베이징, 난징, 칭다오 등 10여 곳에 전시장 개설.
박현순 인터바스 대표.
  흰색 일색이었던 중국 화장실에 꽃을 입히고 있는 한국 기업이 있다.
 
  중국 상하이 푸둥신구 ‘홈마트’ 진슈(錦秀)점. 중국 업체인 백연그룹이 운영하는 이 대형마트는 주택용품 전문 상가다. 상하이에만 16개 체인이 있는 대형 마트 1층 한편에는 각종 욕실용품을 파는 점포들이 몰려 있었다. 일본, 독일, 미국, 중국 브랜드들이 양변기, 세면기, 욕실타일, 거울, 욕실 액세서리를 진열해 놓고 중국 소비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하얀 광채를 번쩍이는 제품들 사이에서 마치 꽃가게를 연상시키는 점포가 눈에 띈다. 홈마트를 찾은 중국 고객들도 신기한지 연방 발걸음을 이 점포로 옮겼다. 가까이서 보면 꽃가게가 아니라 한국 욕실 브랜드인 ‘인터바스’다.
 
  다른 브랜드 제품들과 달리 인터바스 욕실제품들은 각종 꽃과 식물 문양이 새겨져 있어 멀리서 보면 마치 꽃집인 것처럼 보였다.
 
  朴顯淳(박현순·50) 동원세라믹 대표는 “욕실용품은 흰색인 게 당연하다는 중국 시장에서 이제 흰색은 촌스럽고 단순하다는 생각이 일고 있다”며 “저희 인터바스가 지난 6년간 중국에 진출해서 변화시킨 결과”라고 말했다. ‘인터바스’는 동원세라믹의 욕실용품 브랜드 이름이다.
 
 
  절수형 양변기 국내 최초 생산
 
화려한 디자인으로 중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인터바스 제품.

  박현순 대표는 욕실 브랜드 ‘인터바스’(interbath)를 2003년 중국에 진출시켰다. 국내 욕실용품 브랜드로서는 최초다. 지난 1994년부터 국내에서 위생도기(양변기, 세면기)를 생산해 온 박 대표는 우리나라 위생도기 분야의 전문가다.
 
  지난 1986년 타일 제품을 생산하는 동원세라믹을 설립한 박 대표는 1980년대 말에 태국에 양변기 공장을 설립했다. 저렴한 태국 노동력을 이용해 OEM(주문자 상표부착 생산) 형태로 국내에 양변기를 팔았다. 그러던 중 당시 국내 양변기 제조 업체들이 절수형 양변기를 제조하지 못하는 걸 보고 자신이 개발에 나섰다.
 
  “당시 그린라운드 여파로 에너지, 환경문제가 큰 이슈였어요. 국내에서도 節水(절수), 節電(절전) 운동이 일고 있었죠. 국내뿐만 아니라, 일본 중국 미국 등에서는 절수형 기능 제품이 대세였어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런 절수형 양변기를 못 만들더군요. 그래서 우리 회사가 국내 최초로 절수형 양변기를 생산했습니다.”
 
  기존 양변기가 한 번에 물 13리터를 사용하던 것에 비해, 그가 만든 절수형 양변기는 한 번에 6리터로 대소변을 처리할 수 있었다. 그는 이 공로로 환경마크협회로부터 국내 업체 최초로 그린마크를 얻었다.
 
  이후 양변기 사업은 순풍의 돛 단 형세였다. 창업 8년 만에 강서구 화곡동에 5층 사옥을 지었다. 화곡동은 그의 부모님이 살고 계신 곳이다.
 
  “제가 대학을 중퇴하면서 타일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돈이 없어 화곡동 부모님 집 옆의 신문 보급소 골방에서 전화기를 놓고 사업을 했어요. 그 신문보급소 땅을 사서 그 자리에 사옥을 지었습니다. 부모님이 돈이 없어 대학도 중퇴하고 사업하는 아들 걱정에 밤잠을 못 주무셨어요. 사옥을 짓고 나니 불효를 조금이나마 던 것 같아 너무 기뻤습니다.”
 
 
  욕실에 디자인을 입혀라
 
화려한 디자인으로 중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인터바스 제품.

  사업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자 그동안 신경 쓰지 못했던 디자인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게다가 양변기 사업은 한계가 보였다. 그는 욕실제품으로 눈을 돌렸다. 이때 인터바스 브랜드를 만들었다.
 
  “1990년 후반부터 우리나라에서도 화장실이 단순히 생리작용을 처리하는 곳이 아니라 문화공간이라는 개념이 퍼졌습니다. 저는 당시 몇몇 분들과 함께 ‘아름다운 화장실 만들기’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아름다운 화장실은 문화가 있는 곳입니다. 문화는 디자인과 공간의 효율성이 있어야 합니다. 저는 인터바스 브랜드를 만들고, 욕실제품 하나하나를 아름답고 효율적으로 만들었어요. 제 콘셉트가 ‘보여주고 싶은 화장실’이에요.”
 
  인터바스 제품은 양변기, 세면기, 거울, 타일, 액세서리, 커튼지까지 수공업으로 생산하고 있다. 인터바스 제품이 출시되면서 우리나라 욕실문화도 바뀌기 시작했다. 욕실에 각종 스티커를 붙여서 멋을 내던 주부들이 인터바스 제품으로 욕실을 변화시켰다. 인터바스는 2000년 초까지 전국에 70여 개의 매장을 열었다. 주요 욕실 박람회에서도 호평을 받았다. 중국 진출도 박람회에서 결정됐다.
 
  “2002년 상하이에서 세계 최대 욕실 박람회가 열렸어요. 저희가 참가를 했는데, 세계 바이어들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일본, 미국에서도 평가가 좋았지만, 중국 바이어들은 충격을 받았다고 했어요. 욕실용품 디자인이 마치 명품 여성복 같은 것에 놀란 거죠. 수많은 중국 바이어가 우리 제품을 산다고 계약했습니다. 나중에는 워낙 물량이 많아서, 이럴 바에는 차라리 본격적으로 중국에 진출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어요.”
 
 
  가장 잘하는 걸 더 잘하면 중국서 성공
 
  박현순 대표는 지난 2003년 중국 상하이에 인터바스 상하이를 설립하고 공장을 지었다. 상하이에 직영점 3곳을 운영하고, 베이징(北京), 난징(南京), 칭다오(靑島) 등 10여 곳에 인터바스 전시장을 만들었다. 직영점뿐만 아니라, 다른 욕실제품을 하는 가게들에도 인터바스 제품을 공급한다. 매출이 늘면서 상하이 공장으로 부족해, 2006년에는 광둥성(廣東省)에 공장을 하나 더 지었다. 그는 향후 5년 내에 중국 20여 개 도시에 약 150개의 인터바스 전문매장을 설립할 계획이다.
 
  “현재 중국 욕실제품 시장에 인터바스를 모방한 제품들이 나옵니다. 우리는 마음대로 모방하라고 놔둡니다. 기존의 흰색 일변도 제품에서 저희가 주도하는 디자인 제품이 대세가 되면 차이가 더 커지거든요. 그리고 중국 회사들이 아무리 따라 해도 우리 인터바스 디자인팀의 노하우를 따라잡을 수 있는 실력이 안돼요. 우리는 매일 수십 가지의 디자인을 만들고 다듬고 있어요. 제가 한 달에 한 번씩 화곡동 본사에서 디자인 회의를 직접 주재합니다.”
 
  ―중국에서 이제 걸음마 단계인데 성공을 확신하십니까.
 
  “중국에 진출한 지 6년 됐는데요. 중국에서 성공한 기업과 실패한 기업은 하나의 차이가 있더군요. 자신이 잘하는 것을 더 잘하려고 노력한 기업은 성공하고, 그걸 안 하고 다른 곳에 눈을 돌린 기업은 실패했어요. 우리는 우리가 가장 잘하는 것을 가장 열심히 하니까 성공의 길로 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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