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最大 규모 현지 연구소에서 세계적 수준의 채소종자 생산
“눈높이 낮추고 원칙을 지키는 正道경영 해야”
“눈높이 낮추고 원칙을 지키는 正道경영 해야”
- 박상견 북경세농종묘 총경리.
朴商見(박상견) 북경세농종묘 총경리는 한국 기업이 중국에서 실패하는 가장 큰 원인으로 ‘준비 부족’을 꼽았다.
“단순히 숫자로만 계산하면 무조건 실패합니다. 김치 한 포기가 한국에서 100원이라면, 중국 소득수준에선 10원에 팔아야 해요. 일단 매출에서 13억 포기가 아니라 1억3000만 포기로 줄어들죠. 더 중요한 사실은 대다수 중국인이 김치를 잘 먹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는 “중국을 쉽게 보는 한국인들은 절대 살아남을 수 없다”며 “중국 시장뿐 아니라 문화 전반과 정치 배경 등에 대한 정확한 학습이 필요하다”고 했다.
북경세농종묘는 한국의 대표적 종묘회사인 농우바이오의 중국 현지법인이다. 韓中(한중) 수교 직후인 1994년 중국에 진출해 15년 만에 중국 종자시장에서 ‘큰손’으로 인정받는 등 독보적 성과를 거두고 있다.
세농이 내놓은 ‘바이위춘(白玉春)’이란 이름의 무 종자는 중국 최고 명품종으로 손꼽힌다. 중국 ‘고급 무의 대명사’로 불리며 베이징, 톈진, 칭다오 등 중국 전역에 공급되는가 하면, 일부는 한국과 일본으로 수출된다. 산둥(山東)성 곳곳의 재래시장에서는 ‘무’란 이름 대신 아예 ‘바이위춘’이란 이름을 쓸 정도다.
당근 교배종 시장도 점령했다. ‘자오춘(朝春)’이란 이름의 종자는 기존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일본 종자를 3년 만에 따돌리고, 현재 70%에 가까운 점유율을 기록 중이다.
베이징연구소, 단일면적으론 중국 最大 규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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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교배종 종자 시장의 선두를 달리고 있는 세농종묘의 대표 종자들. |
중국 채소종자 시장 규모는 한국의 2배인 약 2억 달러에 달한다. 13억 인구 중 70% 이상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고, 국토면적은 남한의 97배다. 최근 중국의 농업분야 투자가 가속화되면서, 종자의 시장규모는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 회사는 지난해 신사옥 건축을 완료했다. 베이징(北京) 외곽의 다싱(大興)구 생물의약기지에 대지 1만7820㎡에 총 건축면적 4125㎡ 규모로 사옥을 완공해 본격적인 중국 시장 공략에 나섰다. 현재 진행 중인 3200㎡ 규모의 물류창고 공사가 완료되면, 중국 채소종자 시장 진출의 주요 거점이 될 전망이다.
연구 활동도 함께 진행됐다. 단일 면적으론 중국 최대인 15만㎡ 부지에 120개의 비닐하우스와 연구소 건물이 들어서 중국 북방·중부권 지역용 종자 개발이 한창이다. 2007년 광둥(廣東) 지역에 세워진 7만3920㎡의 연구소엔 40개의 비닐하우스에서 중국 남방권 종자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130만 달러로 시작한 자본금은 어느새 900만 달러로 늘어났고, 매출도 7000만 위안(한화 약 140억원) 규모로 성장했다. 전체 매출 중 100억원이 중국 내수에서 발생한다.
박상견 총경리는 2003년 6월 베이징 부총경리로 발령받았고, 6개월 후 총경리가 됐다. 중국어 한마디 할 줄 몰랐던 그는 밤낮없이 앞만 보고 달려야 했다. 아무리 늦은 술자리가 있어도 매일 오전 4시30분이면 어김없이 일어나 중국어를 배웠고, 3년 동안은 주말에도 항상 사무실에 출근했다.
“지금은 휴일이면 가끔 쉬기도 하지만, 매일 아침 사무실 문을 따는 사람은 여전히 접니다. 누구보다 일찍 출근하고 늦게까지 일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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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농종묘는 베이징 다싱구 생물의약기지에 총 건축면적 4125㎡ 규모로 신사옥을 완공해 본격적인 중국 시장 공략을 시작했다. |
― 직원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겠습니다.
“그래도 할 수 없어요. 종자는 농민의 한 해 운명을 좌우할 만큼 중요한 존재입니다. 클레임이 걸리면 10배 이상 피해를 보기 때문에 철저한 확인 점검이 생명입니다.”
실제로 종자를 구입한 농민이 수확이 좋지 않아 항의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조사를 해 보면 종자에서는 전혀 문제가 발견되지 않지만, 농민들은 일단 지방정부에 종자가 잘못됐다고 항의부터 한단다.
“어쩔 수 없이 지방정부에서 조언을 합니다. 정치적으로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고요. 그러면 몇만 위안어치의 농기계나 비료를 사서 도움을 준다든가, 종자를 조금씩 더 주는 방법으로 달랩니다.”
박 총경리는 “예전에 비하면 그래도 지금은 많이 좋아진 셈”이라며 과거를 이렇게 회상했다.
“2003년 초 사스가 창궐했습니다. 제가 중국으로 발령받기 직전이었는데 그때 직원들이 현지 대리점에 방문조차 할 수 없었어요. 그래도 관리는 해야 하니 몰래 다녀오고 그랬습니다.”
현재 중국엔 약 8000개의 종자 회사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중국 종묘기업은 대부분 국영으로 운영되며, 다국적 종묘기업은 10여 개 안팎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종자기업이었던 흥농종묘와 서울종묘가 외국계 기업에 인수됨에 따라, 세농종묘는 사실상 유일한 중국 진출 한국 종묘기업이 됐다.
가장 큰 敵은 편법과 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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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농종묘 베이징연구소 이인복 소장이 토마토 상품을 살펴보고 있다. |
“어느 분야나 그렇겠지만, 중국 종자 시장은 사실상 전쟁이 시작된 거나 다름없어요. 세계 각국에서 달려와 경쟁을 하고 있으니까요. 마치 수십 년 전 일본이 한국에서 종자 사업을 한 것과 비슷하죠. 얼마 전까진 일본 종자 기술이 한국보다 10배 앞섰고, 한국 종자 기술이 중국보다 10배 앞섰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속도라면 중국 종자 기술이 한국을 따라잡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 한국은 어떻게 대비해야 합니까.
“지금 외국에서 수입되는 농산물의 관세가 250~450% 정도 해요. 그렇게 걷은 세금으로 농민들을 해외로 진출시켜야 합니다. 갈 곳은 얼마든지 많아요. 지리적으로 가까운 몽골, 중국, 러시아 등은 외국인이 땅을 임차할 수 있습니다. 경쟁력 있는 우수한 종자를 가져다가 농사를 지어 한국에 보내거나 수출하면 되죠. 무조건 시위한다고 지원만 할 것이 아니라 외국으로 진출하려는 농민들을 지원하는 쪽으로 정책 방향을 바꾸어야 합니다.”
박 총경리는 종자산업은 단순히 종자만 팔고 끝나는 게 아니라 농산품 시세 파악부터 판촉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를 접목해야 하는 3차원 산업이라고 강조했다. 우선 판촉과 기술지도 등 서비스를 거쳐 판매가 이뤄지고, 수확 후엔 농산물을 유통하고 품질관리를 하는 등 종합 서비스가 이뤄져야 한다.
“종자의 생명은 보안이에요. 기술 유출이 가장 큰 적입니다. 그만큼 해외에 나와서 연구를 하려면 철저하게 관리하고 감독해야 합니다.”
박 총경리가 중국 사업 성공을 위해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바로 ‘원칙’이었다.
“사업을 하다가 어려운 일이 생기면 일부 중국인들이 불법을 유도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큰 건수가 걸리면 신고한다고 협박을 하기 시작하죠. 만약 진짜로 신고를 하게 되면 회사 자산보다 많은 벌금이 나와요. 그러면 어떡하겠습니까. 회사를 포기하고 돌아가는 수밖에 없죠.”
채무관계도 정확하게 이뤄져야 한다. 편법적인 거래를 하다가 돈을 못 받고 나간 기업이 한둘이 아니라고 한다.
“처음 중소기업이 중국에 진출하면 서로 세금계산서를 발급하지 않고 거래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물건은 받았는데 돈을 안 준다고 합니다. 그러면 어디 가서 호소할 곳도 없고, 너무 답답해지죠. 1원 한 푼 쓰더라도 세금계산서를 쓰는 게 제 원칙입니다.”
박 총경리가 부임한 후 28명이던 직원 수가 98명으로 늘어났다. 인재가 있어야 회사가 성장할 수 있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부임을 하자마자 그가 찾은 곳은 유명 농업대학들이었다. 세농종묘 최초로 공채 제도를 도입해 조선족과 한족 직원을 뽑았고, 사원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 연수교육을 시행하는 등 적극적인 인재육성 정책을 펼쳤다.
“매년 10명씩 공채를 했어요. 그런데 그렇게 키워놓으면 결국 삼성, CJ, 현대와 같은 대기업으로 떠나가더군요.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다시 뽑아서 가르쳐야죠. 중국 농업 분야에서 최고로 키워주겠다고 하고 가급적 남으라 합니다. 그렇게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이 정도로 성장할 수 있었죠.”
눈높이 낮추고 현지화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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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견 총경리가 항온항습 종자 창고를 둘러보고 있다. 이 창고는 250t의 종자를 보관하고 있다. |
박상견 총경리는 2006년 소비자 신뢰 농산품 브랜드상을 받았고, 2007년엔 외국인으로는 유일하게 중국 농업경제인 10대 인물에 선정됐다. 농업부와 농업대학, 농촌잡지사에서 중국의 정책목표인 신농촌건설을 촉진하기 위해 2년에 한 번씩 중국 농업발전에 기여한 인물들을 뽑아 시상하는 프로그램이다.
장학재단을 통한 인재 양성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1년에 2000만원을 장학금으로 조성해 농업대학과 중고등학교 학생 40명에게 제공한다. 박 총경리는 “이 정도 장학금은 대기업 입장에선 푼돈일지 몰라도, 세농과 같은 규모의 기업에선 이런 사업을 벌이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한국의 농민단체와 농업 전공 학생들의 방문도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경기도 교육위원회에서 성적이 우수한 농업고등학교 학생 약 300명을 선발해 2차에 걸쳐 회사를 방문했다. 박 총경리는 그날 방문한 학생들에게 “한국 농업이 어렵고, 농업고를 다니는 것은 더 어렵지만, 한국에서만 싸울 것이 아니라 눈을 더 크게 뜨고 해외로 나가라”며 격려했다.
박 총경리는 “중국에서 사업하려는 최고경영자라면 업무 능력뿐 아니라 현지인들이 배울 수 있는 도덕적 존경심까지 필요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억지로 시켜서 하는 것보다 진심으로 일하는 직원이 필요합니다. 중국은 특히 리더가 모범을 보여야 해요. 조금만 빗나가면 바로 떠나가 버리는 곳이 중국입니다.”
박 총경리의 휴대전화엔 약 500개의 전화번호가 입력돼 있다. 그중 400개가 중국인이다.
“많은 사람이 ‘관시(關係)’가 중요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정말 깊은 신뢰가 먼저 형성돼야 해요. 중국인들, 같이 술 먹을 땐 ‘하오 펑유(好朋友·좋은 친구)’라며 좋아하지만, 나중에 뭐 가지고 가서 부탁하면 바로 선을 그어버립니다. 그만큼 진실한 관계가 요구되는 곳이죠.”
박 총경리는 한국인이 먼저 중국의 눈높이에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1인당 국민소득이 3000달러 수준인 나라에 2만 달러 기준으로 덤벼들어선 얻을 것이 없다는 것이다.
“눈높이를 중국인 수준에 맞춰야 합니다. 얼마 전 베이징 대학의 한 중국인 교수가 이렇게 중국인을 분석했습니다. ‘창의성과 책임감이 부족하고, 게으르다’고요. 논란의 여지가 있는 말이긴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그네들의 눈높이에 맞는 현지화된 전략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 박상견 총경리가 전하는 중국 성공 비결
ㆍ철저히 준비하라. 13억 시장은 아무에게나 움직이지 않는다.
ㆍ원칙을 가지고 正道(정도) 경영을 하라.
ㆍ한국식으로 판단하지 마라. 눈높이를 낮추고 현지화하라.
ㆍ‘관시’는 술 몇 잔 함께 먹는다고 이뤄지는 게 아니다.
ㆍ중국인들은 감성적이다. 그들의 마음을 건드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