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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년 8월호

權五哲 웨스트엘리베이터 대표이사

서부개발 붐 타고 24시간 풀 가동

李相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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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生 업체가 충칭시의 名브랜드에 선정
초기 투자비 절감 위해 대도시 아닌 郡 지역에 공장 설립
권오철 웨스트엘리베이터 대표이사.
  중국 충칭시(重慶市)에서 서쪽으로 1시간 정도 떨어진 둥량현(銅梁縣). 인구 81만명이 거주하는 이곳은 중국의 상징이 된 龍(용)춤의 발상지다. 이곳 金龍(금룡)공업지구에는 웨스트엘리베이터라는 둥량현의 유일한 한국기업이자 외국 합자기업이 진출해 있다.
 
  2006년 韓中(한중) 합작으로 설립한 웨스트엘리베이터는 현재 연간 600대의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 무빙워커를 생산하고 있으며, 매출 200억원에 직원 수는 100명이다. 웨스트엘리베이터 설립자인 權五哲(권오철·52) 대표이사는 “작년부터 주문량이 밀려들어 공장을 24시간 가동해도 수요를 따라잡기 어려워 현재 충칭 인근에 또 다른 공장을 짓고 있다”고 말했다.
 
  권 대표는 베이징이나 상하이, 충칭 같은 대도시가 아니라 둥량현이라고 하는 우리의 郡(군)단위 지역에서 사업을 시작한 이유에 대해 “서부개발이 시작됐기 때문에 앞으로 서부지역에 엘리베이터 수요가 많아질 것에 대비한 것”이라면서 이렇게 설명했다.
 
  “중국에 520개 엘리베이터 업체가 있는데 대도시는 경쟁이 너무 심합니다. 브랜드 인지도를 덜 따지는 외곽 지역에서 사업을 하는 것이 신생 브랜드의 약점을 가릴 수 있어 유리합니다. 또 생산제품을 대부분 인근 지역에 공급하기 때문에 물류비용도 줄일 수 있고요.”
 
  권오철 대표는 “충칭 시내만 하더라도 땅값이 비싸고 경쟁이 심하기 때문에 신생업체가 기업을 시작하려면 초기투자비 부담이 만만치 않다”면서 “군단위 지역에서 먼저 이름을 알린 후 대도시로 진출하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고 말했다.
 
  권 대표가 외국기업으로, 그것도 이름도 없는 新生(신생) 엘리베이터 회사를 사업 개시 2년 만에 성공궤도에 올려놓은 것은 그만의 ‘뚝심 경영’이 있었기 때문이다.
 
 
  현대엘리베이터 중국 주재원 생활
 
웨스트엘리베이터의 공장내부. 사진은 에스컬레이터와 무빙워커 생산 라인이다. 필자가 찾아간 날 마침 단오 휴일을 맞아 생산라인을 잠시 멈췄다.

  권 대표는 현대엘리베이터 출신이다. 1982년 울산 현대중공업 조선사업부에 入社(입사)한 권 대표는 1986년 현대중공업이 엘리베이터 사업을 시작할 때 차출되면서 엘리베이터와 인연을 맺었다. 1990년대 중반 권 대표는 현대엘리베이터 勞組(노조)위원장에 출마하려다 회사와 갈등을 겪었다고 한다.
 
  그러던 차에 1995년 현대엘리베이터가 중국 상하이에 진출했고, 권 대표는 중국 법인에 합류해 중국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당시 회사에서 엘리베이터 생산부터 설치, 보수까지 全(전) 공정에 대한 기술을 가진 사람은 제가 거의 유일했습니다. 그래서 중국 법인장이 도와달라고 부탁을 하기에 집사람에게 ‘6개월 만 중국에 갔다 오겠다’고 하고서 나온 것이 지금까지 이어진 것입니다.”
 
  권 대표는 1996년경 중국의 한 작은 엘리베이터 회사를 중견 기업으로 만든 일화를 소개해 주었다. 이 회사는 나중에 권 대표와 인연을 맺게 된다.
 
  “저장성(浙江省)에 ‘메룽’이라는 엘리베이터 회사가 있었습니다. 한 달에 엘리베이터 3~4대 정도를 만들던 동네 공업사 수준의 기업이었는데 제가 주문을 하면서 급격한 성장을 하게 됐습니다. 지금 이 회사는 엘리베이터만 한 달에 900대, 에스컬레이터를 120대 이상 생산하는 큰 기업이 됐습니다.”
 
  2005년 권 대표가 현대엘리베이터를 사직했을 때 메룽의 사장은 권 대표를 자신의 회사 부사장으로 스카우트 했다고 한다. 그때 권 대표의 월급이 한 달에 8만원(당시 환율로 1000만원) 정도였다고 한다. 권 대표의 설명.
 
  “거기에 연말에 해외수출 이익금의 20%를 저에게 주겠다는 조건이었습니다. 따져보니 연봉이 18억원 정도 되더군요. 저는 6개월 만에 그 회사 매출을 두 배로 올렸습니다. 저는 현대엘리베이터를 사직하고 엘리베이터 회사들의 원가절감을 위한 컨설턴트를 하려고 했었기 때문에 공장을 한 번만 둘러보면 원가 절감을 위한 밑그림이 그려집니다.”
 
 
  원가절감, 품질관리에 전력투구
 
  권 대표는 메룽의 부사장직을 수락하면서 사장에게 “회사 원가절감 개선업무에 대한 全權(전권)을 달라”고 해 약속을 받아 냈다고 한다.
 
  “부사장에 취임하자마자 간부회의를 소집했어요. 회의 전에 ‘할 이야기가 있는 사람은 내 발언이 끝난 다음에 하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한 명이 자꾸 제가 말하는 도중에 끼어들면서 발언을 하는 겁니다. 저는 두 번 경고했습니다. 그런데도 그 사람은 계속해서 끼어들었습니다. 그래서 제 테이블에 있던 재떨이를 들어 그 친구에게 던졌습니다. 그러자 모두 제 말에 꼼짝을 못하더군요. 초반에 직원들을 장악하기 위해 일부러 거칠게 행동했던 겁니다. 다음날 사장이 재떨이를 유리에서 깡통으로 바꾸어 놓았더군요.”
 
  권 대표는 이어 공장장에게 “지난 1년 동안 쓰지 않은 장비, 부품, 資材(자재)를 전부 야적장에 쌓으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공장의 기본은 정리, 정돈, 청소, 청결입니다. 공장을 깨끗이 청소하고 현대엘리베이터에서 했던 품질관리 시스템을 도입하자 공장 분위기가 싹 바뀌었습니다. 당시 일본 후지텍엘리베이터가 메룽의 제품을 납품받고 있었는데 후지텍엘리베이터 사장이 메룽 공장을 방문했을 때 공장 시스템이 완전히 바뀐 것을 보고 감동해서 한 달에 10대 정도 주던 주문량을 100대로 올렸습니다.”
 
  권 대표의 설명.
 
  “당시 후지텍엘리베이터 사장이 저를 불러 ‘당신의 경영 마인드가 뭐냐’고 묻기에 ‘우리나라가 원래 일본 기업의 경영방식을 도입했는데, 당신들과 다를 것이 뭐 있겠느냐. 물건을 제값 받게 해 주는 것이 나의 경영 마인드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권 대표가 메룽엘리베이터에 6개월 정도 근무했을 무렵 충칭에 있는 현대엘리베이터 대리점 직원들이 찾아왔다.
 
  “이들은 제가 현대에 있을 때 판매를 맡겼던 친구들인데 일을 정말 잘했고, 믿을 만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제가 메룽의 부사장으로 있다는 것을 알고 찾아와서 같이 엘리베이터 사업을 하자고 권유하더군요. 그때 저도 개인사업을 시작하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권 대표는 먼저 충칭시 둥량현에 부지를 확보해 공장 건립을 시작했다. 땅값이 싸고, 서부개발로 건설붐이 일어날 것을 예상하고 이곳을 공장 설립 입지로 택한 것이다. 그는 자기가 데리고 쓸 기술자들을 메룽에 취업시켜 미리 일을 배우게 했다고 한다.
 
 
  기둥만 세운 상태에서 준공식
 
둥량현 정부 관계자들과 웨스트엘리베이터 직원들의 식사장면. 충칭시 한인회 회장을 맡고 있는 권오철 대표이사(가운데 정면 사진)는 지방 정부 공무원들(사진 정면 왼쪽이 둥량현 현장)을 자주 만나 현지 진출 한국 기업인들의 민원을 건의하곤 한다.

  권 대표는 1년 후 메룽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자신의 사업에 매달렸다.
 
  “처음에는 사무실도 없어서 둥량현 정부 청사의 사무실을 세 칸 빌려서 썼습니다. 외국 합자회사니까 우리가 잘돼야 세금을 많이 내지 않겠느냐고 정부 사람들을 설득한 것이죠. 그 후 2007년 1월 한국의 엘리베이터 업체 사장 20명과 중국 건설업계 사장, 정부 관계자들을 불러놓고 준공식을 했습니다.”
 
  권 대표는 “한마디로 웃기는 준공식이었다”고 회고했다. 공장의 기둥만 박아 놓은 채 지붕도 없고, 엘리베이터를 생산할 기계설비가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준공식을 했기 때문.
 
  “근처 도로는 포장이 전혀 안된 상태였고, 직원들 숙소도 없었습니다. 준공식에 참석한 사람들이 모두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습니다. 한마디로 기술 하나만 믿고 밀어붙인 것이죠.”
 
  권 대표는 “사업은, 시작하기 전에는 모든 요소를 꼼꼼하게 확인해 봐야 하지만 일단 투자가 시작되면 무서운 속도로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투자금이 투입되는 순간 일분일초가 모두 돈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란다.
 
  그때부터 권 대표의 뚝심 경영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엘리베이터를 만들 용접기 하나 없는 상태에서 수출 물량을 확보한 것이다.
 
  “직원들 월급도 줘야 하고, 공장 짓는 데 돈도 많이 들어가는데 앉아서 놀 수는 없잖아요. 저는 한국의 유명 반도체 회사인 S社(사)의 생산라인에 들어가는 리프트 납품을 따는 데 성공했습니다. 저는 기계를 한 번만 보면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기 때문에 S사 관계자들에게 현장에 설치된 리프트를 보고 기술적인 부분에 대해 막힘없이 설명을 하니까 저를 믿고 계약을 한 것이죠.”
 
  권 대표는 S사에 납품한 실적은 나중에 중국 내수시장 영업을 하는 데 큰 힘이 됐다고 한다. 한국의 유명 반도체 회사에 리프트를 납품할 정도면 믿을 수 있다는 여론이 형성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권 대표의 설명.
 
  “S사 관계자들이 우리 공장에 와 보고 ‘당신 같은 황당한 사람은 처음 본다’고 하더군요. 아직 완성도 되지 않은 공장을 보고 도대체 어떻게 납기 내에 물건을 제작할 수 있겠느냐는 거죠. 저는 ‘어쨌든 당신들이 원하는 납기에 원하는 품질의 물건을 납품하면 되는 것 아니냐’며 설득했어요.”
 
 
  공무원을 내 편으로 만들어라
 
  권 대표는 중국에 있는 엘리베이터 제작회사를 동원해 주문회사가 원하는 품질의 물건을 만들어 납품했다. 이후 한국의 H엘리베이터와 엘리베이터 주문 생산 계약을 맺는 등 회사 설립 초반에 한국과 수출을 통해 어느 정도 안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문제는 본격적으로 중국 내수시장을 뚫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건설회사가 신생 엘리베이터 업체의 물건을 자기들 빌딩에 집어넣겠습니까. 이름도 없는 회사 엘리베이터 장착했다가 괜히 빌딩 값 내려간다고 모두 꺼렸어요.”
 
  권 대표는 신생 브랜드의 약점을 뛰어넘기 위한 ‘묘안’을 생각해 냈다. 충칭시의 名(명) 브랜드로 지정받는다는 계획이었다. 권 대표는 자신이 가진 모든 인맥과 기술을 동원해서 명 브랜드 신청을 했다.
 
  “충칭시 관계자들이 심사를 나왔는데 제대로 시설도 갖추지 못한 이런 신생 업체가 어떻게 명 브랜드를 신청했느냐며 의아해했습니다. 저는 명 브랜드라는 것이 품질이 좋고, 계속해서 新(신)제품을 개발해서 소비자를 만족하게 하면 그것이 바로 명품 아니냐고 정부 관계자들을 설득했어요. 제가 기술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전문가이기 때문에 충칭시 관계자들이 아무 막힘없이 설명을 하는 저를 보고 믿고 명 브랜드를 허가해 주었습니다. 이것이 중국 내수시장을 뚫는 데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권 대표는 “특히 둥량현의 공무원들이 우리가 처음 진출한 외국기업이라 많은 신경을 써주고 있다”며 “공무원들과 관계를 잘 다져놓지 않으면 외국인이 사업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둥량현에서 발주하는 빌딩에는 대부분 우리 회사 제품이 들어가고 있습니다. 둥량현에서도 현지 기업이 잘돼야 세금을 많이 거둘 수 있기 때문에 건설회사들에 우리 회사 물건을 많이 선전하고 밀어줍니다. 중국은 官(관)의 힘이 크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천군만마를 얻은 셈이죠.”
 
  필자가 찾아간 날은 단오 휴일이었는데 권 대표는 집에서 쉬고 있는 둥량현 縣長(현장)을 점심식사에 초대했다. 권 대표는 현장에게 “한국의 제일 큰 신문사에서 일부러 우리 회사를 취재하기 위해 찾아왔다”며 필자를 소개했다.
 
  권 대표는 “엘리베이터 영업은 어떤 건물이 설계가 들어가면 이미 그곳을 대상으로 한 영업은 끝이 나야 한다”며 “현재 우리 회사가 이렇게 바빠진 것도 모두 작년에 영업을 잘해 놓은 결과”라고 말했다. 권 대표는 영업사원들에게 특별한 영업교육을 하고 있다고 한다.
 
  “영업사원들이 영업대상자인 건설업체 관계자를 직접 찾아가서 곧바로 영업을 하면 효과가 없습니다. 그 사람 주변 인물부터 파악해서 주변 사람들과 먼저 친하게 지내야 합니다. 그러면서 영업대상자에게는 생일과 결혼기념일 등에 꾸준하게 엽서와 꽃을 보내면서 호기심을 유발합니다. 그 후 적당한 때가 되면 평소 사귀어 놓았던 영업대상자의 친구와 같이 그를 만납니다. 그렇게 하면 효과가 거의 100%입니다.”
 
  그 외에도 권 대표는 영업부서에서는 영업대상자들이 좋아하는 술, 음식, 기호 등을 꼼꼼하게 리스트로 만들어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서 동북3성같이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주문이 들어오면 일부러 원가보다 싸게 물건을 내보내기도 한다고 한다.
 
  권 대표는 “같은 돈을 써도 좀 더 값어치 있게 쓸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찾는다”며 다음과 같은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다.
 
  “처음 중국에 왔을 때 음식을 주문할 줄 몰라 고생이 많았습니다. 하루는 유명 식당에 가서 그곳 식당의 메뉴에 있는 모든 음식을 다 시켰습니다. 중국 돈으로 600원 정도 나왔는데 맛있는 음식은 따로 적어놓고 다음에 그 음식을 시켜 먹었습니다. 계산을 해 보니 이렇게 해서 2년 정도가 되니 600원 투자한 금액이 빠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매번 무슨 음식인지 모른 채 시켜서 못 먹고 남기는 것보다 한 번 투자해서 계속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 더 이익 아닙니까.”
 
  권 대표는 중국 진출을 고려하는 기업인이 있다면 절대로 동업자의 말만 믿어서는 안되며 A부터 Z까지 꼼꼼하게 자신이 직접 챙겨야 실패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준비 없이 중국에 왔다가 실패하는 한국인을 수없이 보았습니다. 저는 무조건 돈을 들고 중국에 오려는 사람을 보면 차라리 그냥 2년 정도 관련업체에 취업해서 일을 배우며 중국 사람들과 어울려 다니라고 조언합니다. 그만큼 중국 사람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 아무리 친해도 서류는 글자 하나까지 소홀하게 해서는 안되며, 정확한 계약을 체결해야 합니다. 그리고 100% 자기 투자로 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韓人會를 적극 활용하라
 
  권 대표는 “나처럼 오랜 세월 함께 일해서 상대를 충분히 파악한 경우가 아닌 상태에서 합작하면 실패할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제 경험상 중소기업일 경우 경쟁이 심한 대도시를 피해서 군 단위 지역에서 시작하는 것도 리스크를 줄이는 좋은 방법입니다. 또 마케팅이나 홍보는 정부 관계자를 적절하게 활용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투자를 시작하기 전에는 신중해야지만, 일단 투자금액이 송금됐으면 그때부터는 무조건 빨리 일을 진행해야 합니다.”
 
  권오철 대표는 마지막으로 중국에 진출하려는 기업인은 현지 韓人會(한인회)를 적극 활용할 것을 당부했다. 중국 내 한인들이 80만명인데 이들이 중국 전역에서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기업과 관련한 정보를 가장 정확하고 빠르게 제공할 수 있다고 한다.
 
  권오철 대표는 현재 재중국한인협회 부회장이자 충칭한인협회장, 충칭 둥량현 정부 상공회의소 고문직을 겸하면서 중국에 진출하는 한국 기업인들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쪹
 

  ▣ 권오철 대표의 중국 비즈니스 성공 노하우
 
  ‘중국에서 하지 말아야 할 50가지’
 
  경영 및 직원관리 부분
  ▶회사도장(인감)을 직원에게 맡기지 말자
  ▶직원에게 전권위임의 위임장을 써주지 말자
  ▶대표로서 자신에게 관대하지 말자
  ▶대표가 직원과의 문제를 직접 1 대 1로 처리하지 말자
  ▶직원복리에 인색하지 말자
  ▶직원 앞에서 화내지 말자
  ▶회계상의 문제점을 직원들에게 알리지 말자
  ▶월급 차이를 너무 두지 말자
  ▶직원 채용 시 출신지역 편견을 갖지 말자
  ▶사문화될 규정은 만들지 말자
  ▶직원을 툭툭 때리지 말자
  ▶직원 몸에 손대지 말자
  ▶중국 내수영업을 하는 경우 영업업무를 직원에게만 맡기지 말자
  ▶회사 안에서 방언을 쓰지 말자
  ▶집에 사무공간을 두지 말자
 
 
  ‘중국에서 해야 할 50가지’
 
  내수시장 진출 부분
  ▶중국 내수시장을 공략하자
  ▶중국 내수 전문가를 키우자
  ▶최고의 품질을 유지하자
  ▶高價(고가) 시장을 공략하자
  ▶직원보다 전문가가 되자
  ▶시장조사는 전문가에게 맡기자
  ▶근로자의 보험은 법대로 행하자
  ▶직원들을 인격적으로 대하자
  ▶직원들을 칭찬하자
  ▶능력이 된다면 회계직원은 한국인으로 두자
  ▶출장은 직접 다니자
  ▶컨설팅료를 아끼지 말고 컨설팅 업체를 적극 활용하자
  ▶사기꾼을 조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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