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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책부록
  1. 2009년 8월호

[머리말] 우리 민족의 DNA 속에 펄펄 끓는 商人 기질

朴勝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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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商人(상인)들이란 원래 중국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중국 고대에 商(상)이라는 나라가 있었고, 그 나라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 상인이었다. 때문에 상인이라면 바로 중국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고, 중국 사람들은 모두 상인이라고 보면 틀림없다.
 
  중국에 진출한 우리 기업인들은 ‘韓商(한상)’이란 말을 만들어 냈다. 상인들이 사는 세상에 비집고 들어가 상인들에게 물건을 팔겠다고 팔을 걷어붙이고, 웃통을 벗고 뛰어다니는 사람들이 한상이다.
 
  1990년대 초 갓 중국에 진출한 한 한국 무역회사 부장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어린 딸에게 베이징(北京)의 시장을 구경시켜 준다고 데리고 간 일이 있었다. 시장에 갔더니 한 중국인이 원숭이를 팔고 있었다….”
 
  그 중국인은 원숭이가 무척 얌전하며, 밤이 되면 조용히 잠을 잔다고 했다. 한국인 무역회사 부장은 딸이 조르는 통에 원숭이를 사서 데리고 집으로 왔다. 웬걸, 원숭이는 얌전하지도 않고 밤이 되자 끽끽거리며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했다.
 
  다음날 날이 밝자마자 그 부장은 원숭이를 끌고 시장으로 가서 중국인에게 따졌다. 중국인의 말은 간단했다.
 
  “훈련이 부족했던 모양이다, 여기 두고 갔다가 사흘 뒤에 와라, 훈련을 단단히 시켜놓겠다….”
 
  사흘 뒤에 딸과 함께 시장으로 간 부장은 자신이 속은 사실을 알게 됐다. 이미 원숭이값은 지불한 뒤였고, 그 상인은 시장을 떠난 뒤였다.
 
 
  원숭이 사건
 
  물론 그 중국 상인을 제대로 된 상인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걸작은 그 한국인 부장의 말이었다.
 
  “저는 원숭이 값으로 800위안(약 15만원)을 날렸지만 좋은 교훈을 얻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결심을 했습니다. 내가 그래도 한국의 무역회사 부장인데, 나를 속인 중국인들로부터 반드시 내 돈을 찾아오고 말테다….”
 
  그 무역회사 부장은 원숭이 사건을 계기로 중국인과 계약을 맺을 때 각종 조건을 신중하게, 또 꼼꼼하게 따지는 습관을 갖게 됐고 지금은 또 다른 대기업의 사장급 중국본부장으로, 중국 현장에서 한국 세일즈맨들을 지휘하고 있다.
 
  두산인프라코어는 지난 7년 동안 중국시장에서 올 6월 말 현재 1만2101대의 굴착기를 팔아 캐터필러, 히타치 등 쟁쟁한 글로벌 굴착기 업체들을 제치고 중국 내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산둥(山東)성 옌타이(烟台)에 있는 두산인프라코어의 굴착기 공장은 1997년 첫 번째 외환위기가 오기 직전에 대우그룹 金宇中(김우중) 회장의 판단에 따라 지은 공장이다. 물론 김 회장의 멀리 내다보는 안목도 훌륭하고, 현재 굴착기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두산인프라코어의 경영진도 훌륭한 기업인들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한국인이 경영하는 공장에서 생산되는 굴착기가 캐터필러니, 히타치니 하는 세계적인 업체의 굴착기들을 제치고 중국 내 시장점유율 1위를 하고 있는 데는 根性(근성)으로는 누구에게도 질 수 없다는 한상 비즈니스맨들의 땀과 눈물이 감추어져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한상 비즈니스맨들의 땀과 눈물은 그들의 출장 스케줄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그들은 오늘 옌타이에서 상담을 하고, 그날 저녁도 안 먹고 비행기를 타고 중국 남부 윈난(雲南)성 소수민족 지역의 마을로 찾아간다. 이른바 ‘希望工程(희망공정)’이라는 이름의 시골벽지 빈곤가정 아동들을 위한 장학금을 전달한다. 그리고 밤에는 그 마을 有志(유지)들과 밤새도록 배갈을 마시며, 환심을 사기 위해 폭탄주도 제조해 먹이기도 한다.
 
 
  “야 임마 그래프 봤어? 뭐 하는 거야!”
 
  그리고 그 다음날 아침 쓰린 속을 두 손으로 움켜쥐고, 마을을 빠져나와 다시 비행기를 타고 또 다른 도시로 날아간다. 굴착기를 사겠다는 연락이 오면 중국의 대도시건 사막 오지건 어디든 날아갈 준비가 돼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 굴삭기 세일즈맨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은 일이 있다.
 
  “중국 시골길을 가다가 많은 사람이 나와 토목 작업을 하고 있는 광경을 종종 봅니다. 그러면 모두 몰려 나와 집단 작업을 하고 있는 그 마을 사람들이 미워집니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을 합니다. ‘사람들 참 나 … 우리 굴착기 한 대 얼마 한다고… 마을에서 돈을 모아 한 대 사면 저런 고생 안 해도 될 텐데…’ 그런 생각을 말입니다.”
 
  이쯤 되면 상인들보다 더 무서운 사람이 韓商(한상)이라는 생각이 안 들 수 없다. 사람들로 넘쳐나는 중국 시골마을에서 뭣 하러 돈을 들여 굴착기를 사서 땅을 파겠는가. 마을 사람들이 모여 공동작업을 하면 그만인데….
 
  그러나 그런 중국 시장을 연구하고, 파고들고 해서 지난 7년 동안 판 1만2101대의 굴착기 한 대 한 대마다에는 끈질긴 한상들의 商魂(상혼)이 서려 있는 것이다.
 
  날로 커 가는 중국 휴대전화 시장에서 노키아, 모토롤라와 시장점유율을 놓고 매일같이 혈전을 벌이고 있는 삼성차이나 朴根熙(박근희) 사장과 LG차이나 禹南均(우남균) 사장과 함께 점심을 먹거나 차를 마시다 보면 슬그머니 미안한 생각이 든다.
 
  박 사장은 식사를 하면서도 쉴 새 없이 담배를 피운다. 피워 물었다가 절반도 못 피우고 끄고, 또다시 피워 물고, 또 끄고…. 박 사장 앞의 재떨이에는 얼마 안 가 담배꽁초가 수북이 쌓인다. 그러면 박 사장은 겸연쩍게 웃으면서 말한다.
 
  “건강에 나쁜 줄은 알지만… 에이 자식들…, 그래프를 쳐다보고 있으면 화딱지가 나서 견딜 수가 있어야지…. 담배라도 피워야지…. 근데 담배도 소용이 없어. 전화를 걸어야지. ‘야 임마. 그래프 봤어? 뭐 하는 거야, 대체! 빨리 끌어올려 임마!’ 그렇게 소리치고 나면 어쨌든 그래프가 올라가기는 가거든.”
 
  박 사장은 그렇게 말해 놓고는 특유의 겸연쩍은 웃음을 흘린다. 욕을 먹은 중국 내 휴대전화 판매 지점장에게 미안한 마음을 그런 웃음으로 대신하는 것이다. 도대체 어느 나라 상인들이 판매량 그래프를 보면서 진정으로 화를 내고, 화가 나서 전화하고, 전화를 받은 쪽은 또 욕을 먹고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해서 분발하고, 전화를 받으면 뛰어서 판매량을 어쨌든 끌어올리고….
 
  이들이 과연 자신의 출세만을 위해, 또 가족들을 먹여살리기 위한다는 이유만으로 뛰고 있는 것일까. 옆에서 보기에 이들 한상은 나름의 고집과 각오가 있어 뛰는 것이지 특별히 소속된 회사에 대한 충성심만으로 뛰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이 사람아. 길부터 뚫어줘야지”
 
  중국 내 휴대전화 판매량에서 삼성보다 다소 뒤진 LG의 우남균 사장도 간단한 사람이 아니다. 우 사장은 “언젠가는 삼성도 모토롤라도 노키아도 꺾는다”는 꿈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다. 현재는 다소 뒤져 있어 속은 시커멓게 타들어 가지만, 항상 웃음 띤 얼굴로 중국어로, 영어로, 우리말로 번갈아 구사언어를 바꿔 가며 오늘도 중국 전역을 누비고 다니고 있다.
 
  우리 민족의 DNA 어디에 그런 상인 기질이 감춰져 있었던 것일까. 우리는 왜 조선왕조 500년, 아니 수천 년 역사를 통해 그 상인 기질을 발휘하지 못했을까. 아무래도 士農工商(사농공상)이라는 말로 사회 구성원을 분류한 유교에 그 이유가 있었던 것이 틀림 없을 것이다.
 
  전통적으로 사농공에 이어 제일 뒷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상인 근성이 1960, 1970년대의 산업근대화와 함께 다시 발현된 것인지 모른다.
 
  그렇지 않고서야 한국에서 파는 롤케이크가 부모와 한 자녀만으로 구성된 중국인들의 가정 생활습관에는 맞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해 내고, 한국에서 파는 롤케이크의 절반 크기의 롤케이크를 뚜레주르 매장에 내놓아 ‘대박’을 쳤다는 CJ차이나 朴根太(박근태) 사장의 이야기는 들을 수 없었을 것이다.
 
  또 그런 박 사장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었다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중국 시장 개척을 위한 수많은 일화도 들을 수 없었을 것이다. 김 전 회장이 어느 날 중국 남부에 버스공장을 세우라고 하자 담당 직원이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거긴 아직 도로도 뚫려 있지 않은데요…”라고 말했다가 혼쭐이 난 이야기도 들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직원에게 김 전 회장이 했다는 말은 이렇다.
 
  “이 사람아. 버스공장을 세우려면 우선 도로부터 뚫어줄 생각을 해야지 지금 무슨 말을 하는가?”
 
  지금 중국 시장을 누비고 있는 한상들은 우리 민족의 DNA 속에도 상인의 기질이 감추어져 있었음을 입증하고 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또 다른 상인의 DNA 鹽基(염기)를 추가하고 있는 중일 것이다.
 
  상인들을 상대로 물건을 팔기 시작한 한상들의 성공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지켜보는 것은 실로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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